헤겔과 호네트의 인정투쟁이론
1
인간은 약하다. 생각보다 더 약하다.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로 인해서 자기 스스로를 낮게 폄하하기까지 한다. "나를 무시해?"라는 자의식은 약하다기보다 상처를 쉽게 받는다. 자의식의 문제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 아주 쉽게 노출된다. 사람이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출발점은 본능이자 생존이고, 자의식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인정투쟁의 이면에는 특정의 소유권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지배-피지배의 논리도 개입된다.
2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자의식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출발점은 욕망이다. 자의식은 자기 존재를 확신하기 위해 남을 무화하려 하고 이 활동은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충족하는 욕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헤겔에 따르면 자의식이 욕망으로서 부정하는 대상은 생명이다. 욕망으로서 자의식의 대상은 ‘자립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3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은 자의식이 자립성을 인정받으려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두 자의식은 모두 자기가 자립한다는 믿음을 남들과 자신에게 증명하려 한다. 두 자의식은 이 믿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헤겔은 남의 죽음을 겨냥해 자기 목숨을 거는 싸움을 “생사를 건 투쟁”이라 부른다. 자립한다는 믿음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은 자의식은 자립성을 포기하고 다른 자의식을 인정한다. 생사를 건 투쟁은 인정받기만 하는 자의식과 인정하기만 하는 자의식의 부등한 관계를 낳는다. 이 관계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다.
4
헤겔에 따르면 주인은 사물, 노예와 두 가지 관계를 맺어 노예에게 인정받는다. 첫째, 주인은 사물을 지배함으로써 노예를 지배한다. 주인은 생사를 건 투쟁에서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확립하지만 노예는 사물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인은 노예를 지배하는 힘을 가진 사물을 지배함으로써 노예도 지배한다. 둘째, 주인은 노예를 통해 사물을 누린다. 노예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물을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사물도 노예에 대해 자립성을 가지므로 노예는 사물을 무화하지 못하고 가공할 뿐이다. 주인은 노예에게 사물의 자립성을 가공하게 함으로써 사물을 누린다. 주인은 노예를 지배하고 노예가 가공한 사물을 누린다는 뜻에서 노예의 인정을 받는다.
5
헤겔이 인정이론에 몰두한 것은 예나대학에 재직하던 30대 초반이었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인정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본 것이다. 헤겔은 초기 연구를 결산한 〈정신현상학〉에서 정신 발전의 중요한 고리로 ‘인정 이론’을 개념화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정의 이면에 부정이 존재한다. 노예가 생명을 구하고 자립 존재를 포기하면서 스스로 부정한다는 요소는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반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헤겔은 “자립 의식의 진리는 따라서 노예 의식”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립 존재인 주인의 본질이 노예를 부정하는 일인데 이 일을 주인이 하지 않고 노예가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노예는 주인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니까 죽음의 공포 때문에 평생 불안하다. 노예의 예속 의식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해체하고 분열하고 동요한다. 그러나 헤겔은 해체와 분열과 동요의 절대 부정이 자의식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노예는 해체와 분열과 동요를 느낄 뿐 아니라 몸으로 수행해 사물을 가공한다. 욕망은 사물의 자립성을 부정하지만 노예는 사물의 자립성을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노예는 노동을 통해 욕망을 억제하고 사물의 자립성을 유지하고 새로 형성한다. 노예는 자신의 노동이 유지하고 형성하는 사물의 자립성을 보면서 자신의 자립성을 직관한다.
7
헤겔은 “생명을 걸 수 없는 개인도 인격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자의식의 자립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생명의 보존을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목표를 인격의 인정보다 더 높이 정한다. 이 목표가 자의식의 자립성이다. 인격은 남이 인정하지만 자의식의 자립성은 내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8
호네트가 헤겔의 인정 투쟁 이론에서 눈여겨 본 것은 인정의 반대 개념인 ‘모욕’의 역할이다. 호네트에 따르면 헤겔의 인정 투쟁 이론은 자의식의 자립성를 인정받으려는 개인의 투쟁이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 제도를 세우는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호네트는 헤겔의 인정 투쟁 이론에서 개인이 정체를 인정받으려는 투쟁은 인정 관계의 장애나 손상, 곧 인격에 대한 모욕에서 비롯한다는 데 주목한다. 즉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은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인정 투쟁 모델과 달리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 자기를 보존하려는 생명 충동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모욕을 극복하려는 도덕 충동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9
사실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항상 타인을 전제로 한다. 타인을 전제로 하지 않은 행위는 없다. 타인은 항상 우리의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타자를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사회심리학자 미드(G. Mead)는 '일반화된 타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호네트는 미드로부터 '일반화된 타자'의 개념을 차용하여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과 결합시킨다.
10
개인이 일반화된 타자와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상호 관계를 맺으면 그게 인정이다. 개인 간의 상호 관계는 그래서 인정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의 재생산은 상호 인정이라는 지상 명령 아래서 수행"된다. 하지만 개인은 항상 타자로부터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인정의 대척점에 모욕이나 굴종과 같은 '무시'라는 범주가 도사리고 있다. 인정은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힘이지만, 반면 무시는 주체에 엄청난 심리적 훼손을 가한다. 인정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무시는 개인을 사회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11
인정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과 같은 원초적인 인정 형식부터 각 주체의 권리를 인정하는 권리 관계 형태의 인정 형식 그리고 가치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대 형식의 인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 가지 인정 형태를 거치면서 개인의 긍정적 자기 관계의 정도가 단계적으로 높아"지기에, 인정 형태가 고양될수록 인간은 단순한 자기 보호로부터 적극적인 자기 발현으로 고양될 수 있다. 호네트는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이 인정의 단계들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인정의 세 단계를 재구성한다. 첫 단계는 가족 의 사랑이다. 개인은 가족이라는 정서의 인정 관계 속에서 구체적 욕망을 지닌 존재로 인정받는다. 둘째 단계는 시민 사회의 권리다. 개인은 시민 사회라는 권리의 인정 관계 속에서 인격으로 인정받는다. 셋째 단계는 국가의 민족 연대다. 개인은 국가의 인정 관계 속에서 주체로 인정받는다.
12
인정 형태의 고양이 일어나지 않을 때 혹은 각각의 인정 형태들이 무시라는 인정에 대한 거부와 만날 때 사회 투쟁은 벌어진다. 무시의 형태는 다양하다.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을 건드리는 무시가 있는가 하면, 굴욕의 경험을 안기며 개인의 자기 존중을 훼손하는 무시도 있고, 특정한 생활 방식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형태의 무시, 즉 인정에 대한 부정은 해당 당사자에게 무시나 모욕으로 이해되고, 이는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은 사회적 투쟁을 추진하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13
호네트는 헤겔의 통찰에서 자신의 이론적 거점을 발견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그의 이론의 뿌리가 된 것은 하버마스와 미셸 푸코다. 푸코는 평생 헤겔 변증법에 대항해 싸운 사람인데, 호네트는 푸코에게서 ‘투쟁 모델’을 찾아냈다. 동시에 호네트는 하버마스에게서 ‘의사소통 모델’을 이어받았다. 그는 하버마스와 푸코를 한편으로 수용하고 한편으로 비판하면 서 ‘인정투쟁’을 이론적으로 다진다. 호네트에게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개인들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 곧 긍정적 자기의식을 찾아낼 수 있는 심리적 조건이기도 하다.
14
호네트에 따르면 푸코는 모든 형태의 공동체, 모든 형태의 사회를 인간들에서 벌어지는 항구적인 투쟁의 일시적 휴전상태로 포착한다. 다시 말해 푸코에 따르면 사회적인 것의 본질적 모습은 투쟁이며, 성립되어 있는 질서란 일시적인 휴전상태일 뿐이다. 이렇게 푸코처럼 사회가 항구적인 투쟁과 갈등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푸코는 투쟁의 동기를 홉스, 또는 니체처럼 자기 보존이나 자신의 권력 강화에서 찾는다. 그런데 호네트는 투쟁 동기를 이러한 데에서 찾는 것은 인간학적으로나 사회 이론적으로 불충분하며 또한 잘못되었다고 본다.
15
그는 헤겔적인 인정의 형식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적 이념을 결합하여 더 분명한 투쟁 모델을 만든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주장의 타당성을 의사소통적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별자이든 집단이든 단지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사회 속에서 투쟁한다. 호네트는 여기서 푸코와 하버마스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에 따르면 인정투쟁 모델은 푸코의 투쟁 이념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념을 결합시킨다. 그런데 인정투쟁 모델은 갈등 또는 투쟁의 관점이 빠져 있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모델을 보완하고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16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모델에서는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신뢰 때문에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나 인간들 사이의 상호 작용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 또는 투쟁의 요소가 간과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모델은 투쟁의 동기를 지나 치게 홉스적으로 자기 보존에서 찾는 푸코의 결함을 보완하고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호네트가 보기에 사회란 단순히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다. 푸코에게 투쟁의 동기는 억압이고 투쟁의 목표는 자기보존이지만, 호네트에 따르면 투쟁의 동기는 무시이며, 투쟁의 목표는 인정이다.
17
호네트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으로 사랑, 권리, 사회적 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 형태를 제시한다. 호네트에 따르면 인간은 사랑, 권리, 연대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경험함으로써 긍정적 자기의식을 갖게 됨은 물론, 성공적 자아실현의 조건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정이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또 사회 비판의 규범이 된다. 호네트는 윤리를 삶의 목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행위나 법칙을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장치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호네트는 인간의 삶이 타인으로부터 훼손당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다.
18
인간이란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면서 자기의식을 갖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고 또한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의 삶은 단순한 생존유지가 아닌 자기실현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공적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타인의 인정, 다시 말해 나에 대한 타인의 긍정적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인정윤리의 관점이다. 내가 타인의 부정적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면 심리적 상처는 물론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긍정적 관계가 훼손될 위험에 빠진다. 따라서 개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 상호간의 윤리적 의무가 필요하며, 그 의무의 내용이란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상호 인정이다. 즉 인정이란 타인의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필수적 조건이며, 이런 점 에서 상호 인정은 인간 상호간의 의무로 설정될 수 있다.
19
인간 상호간의 윤리적 의무가 전제되지않을 경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특히 사회적으로 ‘모욕’이나 ‘무시’를 받을 경우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일으키고 이 분노는 사회적 투쟁에 나서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인정 욕망을 둘러싼 투쟁은 상호 인정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모욕이나 무시가 불의한 것이라면, 인정투쟁은 도덕적인 일이 된다.
20
이러한 관점에는 좋은 삶의 이념이 함축되어있다.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로, 권리의 담지자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자기실현에 도달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이는 단지 심리적 불안이나 사소한 박탈감에 그치지 않는다. 인정을 통해 긍정적 자기관계에 도달하지 못한 개인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좋은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호네트가 규정하는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다.
21
그런데, 호네트는 "relation-to-self"라는 개념을 아울러 말하는데,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헤겔과 호네트는 인간의 정체성은 타인에 의한 도움과 확인을 핵심으로 하는 상호주관적 관계가 결과하는 "자기 스스로 자신과 맺는 관계(relation-to-self)"에 의존한다는 인간학적 가정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가정 아래에서의 인간은 항상 외부적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의 도덕적 관점은 이와 같은 인간의 취약성을 최대한 감안해야 한다.
22
호네트에 따르면,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타자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결정하게 된다. 호네트는 타자가 나를 멸시할 때 그 멸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 멸시로 인해서 내가 나를 멸시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내가 내 스스로를 멸시하게 되면 나는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되며 이는 내가 나의 자아를 찾고 이를 실현시켜야 하는 윤리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대의 적이 된다. 결국 호네트는 단순히 타자에 의한 인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기 관계를 그의 윤리론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체성과 인정 사이에서 (0) | 2020.04.03 |
---|---|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0) | 2020.04.03 |
호르크하이머. "전통이론과 비판이론" (0) | 2020.04.01 |
순수이성비판 사사키 다케시 (0) | 2020.03.29 |
존재론적 논증 (0) | 202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