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0년 4월 5일
▣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 제목 :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선포 :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본문: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 참고 -롬13:10, 1요4:21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 사랑의 종이 되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육체적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지킬 것을 권면하며 율법의 참된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내에 발생한 문제는 율법주의에 따라 생활함으로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육체의 욕심에 지배받는 사고와 행동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그런데 왜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가? 너희가 유대인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가 얻은 자유는 율법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갈과 사라의 예를 들어서 여종인 하갈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낳고, 자유 있는 여자 사라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는다. -두 언약
갈라디아 4:21-31절에서 사도바울은 하갈과 사라의 예를 들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하갈과 사라, 시내산과 예루살렘이란 단어로 설명합니다. 하갈은 종이고,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 즉 자유자였습니다. 하갈에서 난 아들은 종이고, 사라에게서 난 아들은 주인인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아들입니다. 갈 4:23절에서 바울은 의미심장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한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는 약속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마엘과 이삭과 같은 내용의 말씀으로서 이삭은 이미 약속의 자녀라는 설명입니다. - 갈 4:28.
바울은 이것을 다시 시내산과 예루살렘으로 비유합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올라간 산으로 옛 언약 즉 율법을 말합니다. 시내산은 지금의 땅에 있는 예루살렘(성전)을 말합니다.(25절) 그런데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위에 있는 예루살렘’(26절)은 복음, 즉 새 언약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인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율법의 행위를 의지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자유하는 자들이며,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28절)이며, ‘성령을 따라 난 자’(29절)입니다. 율법은 절대 생명을 낳지 못합니다. 율법은 정죄하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생명을 낳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세웁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계시록의 내용은 새 언약을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시대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2. 얻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자유가 육체가 원하는 대로 죄를 짓는 일에 출발점이니, 죄에 매여 사는 삶을 살지 말라.
육체는 그 본성적인 것으로 인하여 자유를 범죄의 기회로 바꾸려고 부단히 시도한다. 온갖 물욕, 색욕, 금전, 권력 등등 요즘 보면, 4.15 총선이 가까워지니 참으로 볼 것, 못 볼 것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자유가 아니라 죄된 육체의 자유에 흠뻑 젖어 사는 인간상의 모습입니다. 장로라는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하나님 앞에서 그 많은 죄를 택하는 모습에서 참으로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종된 몸으로 많을 것을 느끼게 합니다. 회개합니다.
바울은 율법에 얽매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유를 사용할 정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자기 유익의 기회로 삼자말고 사랑으로서 서로 종이 되라는 탁월한 제안을 합니다. 문제는 자유의 기준을 성경적 가르침으로 보지 않고 자기 목적적 행위에 그 기반과 개념을 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죄를 짓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마음을 굳게 지켜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마22:34과 눅10:25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어떻게 읽느냐? 그가 말하기를 “네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다 너도 가서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묻고 있는 율법교사에게 율법을 알고만 있지 말고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가서 네가 알고 있는 대로 네가 믿고 있는 바를 실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모든 분들에게 주신 주님의 절대명령이요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로 이 시간 우리 모든 만나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3. 율법의 완성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사도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합니다. 롬13:10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는 빚진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은 또 모든 것을, 마음으로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과를 보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윗을 부르실 때도,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세상 법(율법)은 결과를 놓고 죄 값을 매기지만, 주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제자들과 밀을 비벼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무엇이 죄일까요? 안식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피고름이 나오고 배곯아 지쳐 쓰러지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일까요???
맺음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쫓아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버려야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시는 일,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갈라디아서 5장 22~23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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