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뿌리

괘고정수(掛鼓亭樹) 600년의 사연

by 이덕휴-dhleepaul 2018. 2. 17.
南道 정자기행(11)- 전설담은 괘고정수(掛鼓亭樹) 600년의 사연

광주광역시 백운로타리에서 나주시 남평면을 거의 다가는 길에 표충사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면 표충사 바로 못가 한옥마을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이 남구 원산동 만산(마살메)마을이다..

원산동 구소동 대지동 도금동 석정동 승촌동 신장동 압촌동 양과동 양촌동 월성동 이장동 지석동 칠석동 화장동과 함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 행정지역으로 소속되며  자연마을로 맣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곳 한옥마을은 십 수년전 만해도 결혼식 피로연의 대명사로 알려져 융성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광주권내에서 피로연으로 유명한 곳은 무등산 증심사 닭집이 많이 있는 식당과 이곳 한옥마을을 꼽았었다. 증심사 식당 집단지역은 개발로 사라지고 이곳도 연맥만 이어지고 있다.

그 입구에 꽤 크다 싶은 고목 한구루와 작은 연못에 자리한다. 괘고정 왕버들나무이다.  이 정자는 실존건물이 아닌 노거수로 이나무를 가리켜 정(亭)이라 한 것은 원래 광산이씨 중조인 필문 이선제( 畢門 李先齊 ; 1389 ∼ 1454)가 손수 심은 것으로 그 모양이 정자의 지붕처럼 뚜렷하고 또 피서의 적지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한다. 높이가 약 15m 가량이며, 가슴높이의 직경은 약 1.7m 정도이다. 수관(樹冠)의 너비는 13m 내외로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이다.

필문 이선제는 세종 때의 문신(文臣)으로  태종실록 편찬과 고려사 개찬에 참여하였고.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으로 광주목(光州牧)이 무진현(茂珍縣)으로 강등된 것을 다시 목사(牧使) 고을로 승격하고 『광주향약』을 시행케 한 분으로 우리 광주시는 남광주역에서 사방 4거리까지 길을 필문로蓽門路라 명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긴 대나무가 물결에 드리우니 고기가 낚싯대로 알고 겁내고
긴 버들가지가 길가에 드리우니 말이 채찍으로 알고 놀라네
修竹映波魚怯釣 / 垂楊俠道馬驚鞭 -백련초해 51절-



이 나무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내용인 즉, 이선제가 심으면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쇄락해지리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선제의 후손들은 과거에 등제하게 되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놓고 축하연을 열었기 때문에 괘고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씨 운이 쇠퇴하여 이 나무가 고사하니 / 어느 누가 북을 걸고 어느 누가 아껴줄고.
모진 풍상 격으면서 그린 정이 다해지고 / 백년 우로 밟으면서 꿈 속에서 해맸도다.
李運衰之亭樹凅  無人掛鼓無人捫  幾度風霜情欲盡  百年雨露夢難攀 


이 마살메(만산동)마을은 광산이씨가 살고 있으며 광산이씨의 선조인 필문 이선제의 부조묘가 있는 곳이다. 만산동을 일명 만호동이라 부르는데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이장동에서 살았던 광산 이씨인 일영이 만산동으로 이주해 들어와 살다가 죽자 그 아들 선제가 만산동 뒷산에 묘를 쓰고 시묘를 했다. 다시 선제가 죽은 뒤 이 곳에 묘를 쓰고 과거에 합격한 5형제가 시묘를 할 때 많은 선비들과 관리가 출입했기 때문에 만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괘고유는 광산이씨인 선제가 심은 나무로 그가 죽기전에 예언했다는 말이 전설로 전해온다. 선제가 말하기를「이 나무는 내 자손들의 성쇠와 그 수를 같이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나무는 그의 5대손 동암 이발(李潑)형제 일가들이 1589년(선조22)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라 불리는 정여립모반사건(鄭汝立謨叛事件) 때, 정여립의 란에 몰려 장살을 당한 뒤 말라 죽었다가 3백여년이 지나 다시 살아 났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그 내용은 이 나무가 심어진후 선제의 아들 손자 대대로 벼슬에 올라 이 곳에 있는 선제의 부조묘에 고유를 드리기 위해 모이면 이 나무에 북을 걸고 삼현육각을 잡혀 축하염을 배풀곤 하였다. 괘고정을 읊은 시가 전한다.

괘고정 높이 솟아 우리 이씨 융성하니 / 과거 벼슬할 때마다 북소리 우렁찼네.
거듭 거듭 겹친 녹음 지붕처럼 두렸하니 / 맑은 그늘 은은하여 붉은 깃발 나부끼네.
(咏掛鼓亭)鼓亭高處李全盛   一鼓一官響入雲  綠陰重重停翠蓋  淸陰隱隱拂朱旛 

그 연유로 이 나무를 괘고정(괘고유)이라 하였는데, 5대손인 뿔뿔이 흩어진 뒤부터 말라 죽이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아 죽었는데 가지는 모두 곰삭아 없어졌으나 죽은 원목만은 계속해서 지탱하고 있었다 한다.

숙종 때에 이르러 동암과 강산이씨들의 죄가 신원이 되고 그 자손 일부가 이 곳에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여기서 살게된 이상엽이 이 나무에 얽힌 광산이씨들의 옛 일화를 듣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중 그의 아들 주신을 시켜 이 나무를 불태워 그 흔적을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아버지의 명을 받은 주신은 집 머슴들과 함게 나무를 해다 가운데만 썩어 보기 흉하게 서있는 이 나무 가운데다 마른 나무를 가득 채우고 불을 질러 3일간을 태웠으나 쎄어가던 이 나무는 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도끼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고목을 태우는데 실패한 주신은 아버지께 도저히 괘고정 썩은 둥치가 불에 타지 않음을 말하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시며「그 썩은 나무 사이를 파고 양자나무를 심어 보아라」하였다. 주신은 그 말을 듣고 정자나무로 알맞는 느티나무 묘목을 구해 썩은 괘고정 사이에 심었다. 이 양자나무가 30년 가량 자라자 이변이 일어났다.

3백여년 전에 죽어 고목뭉치만 남아 3일간 불을 먹은 이 나무 한 쪽에서 새움이 트기 시작했다. 지금의 조선버드나무는 서북편에 두 가지가 뻗어 높이 20m 가량의 고목이 되어 있으며, 그 옆에 양자나무인 느티나무도 나란히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내력을 아는 이들은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이 괘고정을 쳐다보며 선제가 남긴 유언을 이야기 한다.


특히 이 나무의 몸통 부분이 다른 나무와 달리 속이 비어있고 돌출 부분이 많아 그의 특이한 형상을 하여 멋스럼을 더한다. 나무의 제원은 조선시대.남구 원산동 579-1. 1998년 5월 7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한나무에 대한 애착이 깊었던 것은 다른 의미 외에 나무가 인간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에 기인한 후손들에게 의미전달의 수단으로 삼을려고 하지는 않했을까? 600년 계속되는 연두빛 새싹이 햇살을 담아 찬란한 초록생명을 발아하고 있다.

이 나무가 다시 살줄 그 누가 알았으리 /하루아침 새싹들이 뜻 밖에 돋아나네.
동중유정(動中有靜  그 이치로 그 뿌리가 잠복하니 /실날 같은 가는 기운 그 형체가 남아있네.
亭樹誰知終不死  一朝忽見長兒孫  動須有靜根應伏  氣不離形皮尙存

땅 속에 묻힌 양기 신비하기 그지없어 / 따스한 봄바람에 새 싹이 돋아나네.
선대 유업 닦은 것이 나의 복을 닦음이니 / 큰 공을 쌓은 자에 천복(天福)이 내리는 법.
泉下孤陽神鬼秘  春風付與一茅痕  聿修祖武爲修福  天餉終多碩果園 


이 괘고정수 위쪽에 필문 이선재선생의 부조묘가 위치한다. 나라에 공이 커 영원토록 위패를 받들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부조지전이다.

30년이 넘게 주요한 관직을 역임하면서 『태종실록』, 『고려사』를 편찬하고 중요한 정책 상소를 올리는 등 세종·문종대에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필문의 정확한 생몰 연대마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분청사기에 새겨진 필문의 묘지(墓誌)가 도굴되어 일본에 밀반출되기 직전 김해공항에서 발각되어 문화재 감정관이던 양맹준에 의해 필사됨으로써 극적으로 정확한 생몰 연대가 알려지게 되었다.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필문 이선재묘지는 시대적으로 조선조 초기의 분청사기로 만들어져 있고, 광주(光州) 충효동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으며 형태가 국내에서 발견된 몇안되는 위패형으로 되어 있으며 예술적으로도 뛰어나서 보물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루빨리 환수되어 나라의 보물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


참고문헌=광산이씨도문중

김은희 기자

 


 
南道 정자기행(122)-늦은 깨달음이 만오정(晩悟亭)
南道 정자기행(178)-나그네의 휴식처 이요정(二樂亭)
南道 정자기행(7)- 극락강(極樂江) 물줄기를 즐길 곳 풍영정 (風詠亭)
南道 정자기행(469)-千年묵은 사연을 품고있는 '최치원의 지산재(芝山齋)'
南道 정자기행(17)- 문인들의 흔적..만취정(晩翠亭)과 동호사(東湖祠)
南道 정자기행(46)- 기대승이 학구했던 곳 낙암정(樂庵亭)
南道 정자기행(646)- 만산정(萬山亭)과 남강정(南康亭)
南道 정자기행(210)-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운조루(雲鳥樓)
南道 정자기행(280)-광주지역 현존하는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