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학

매카시즘 -트럼피즘

by 이덕휴-dhleepaul 2021. 1. 12.

매카시가 가도 매카시즘이 살아남았 듯, 트럼프가 떠나도 트럼피즘은 죽지 않습니다

 

tags : #공화당, #극우, #극우주의, #매카시, #매카시즘, #미국, #미국정치, #반공주의, #음모론, #트럼프, #트럼프주의, #트럼피즘 2020년 12월 7일 | By: eyesopen1 | 세계, 정치, 칼럼 | https://newspeppermint.com/?p=71480"

 

data-mce-href="https://newspeppermint.com/2020/12/06/macarthy-trump-parallel/#disqus_thread">1개의 댓글

  • 예일대 역사학과의 베벌리 게이지 교수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대통령 선거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뭐라고 하든 조 바이든이 승자라는 사실을요. 이런 정치적 비겁함 앞에 우리는 과거에서 위안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완고하고 충성심 높은 공화당원들조차도 당보다 나라를 앞에 두었던 과거를 말이죠.

 

1974년 8월, 공화당 의회 지도자 세 사람은 백악관에 대한 당의 지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직접 만났죠. 1954년에는 공화당 다수였던 상원이 공화당 소속의 조세프 메카시 의원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고상했던 시절, 매카시의 동료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적 페어플레이에 끼치는 해악을 인식하고 매카시의 공포정은 물론 더 넓은 의미의 매카시즘을 종식시키기 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많은 민주당원들과 상당수의 공화당원들이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물러나면 트럼피즘도 잦아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죠.

 

오늘날 우리는 매카시를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미움받은 인물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지만, 1954년에 와서도 그는 상당히 열렬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카시의 반공 캠페인을 지지하는 사람이 미국인의 3분의 1에 달했죠. 상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는 그가 부패한 이익집단인 워싱턴 기득권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에 극우 정치가 부채질을 했고, 이것이 현대 보수주의 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954년 상원 결의안은 맥카시즘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워싱턴에서 몰아냈을 뿐이었고, 새로운 세대의 극우 활동가들이 매카시의 정신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엘리트 음모론과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지지자들을 정의롭지 못한 거대 정치 권력에 맞서는 고귀한 전사로 떠받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백악관을 떠난 뒤 이와 비슷한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의 시대는 막을 내리겠지만 트럼피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트럼프처럼 매카시 역시 자신을 정치계의 이단아로 규정했고, 공화당에 속해있긴 하지만 독자 노선을 걷는다고 주장했습니다. 1950년대 초, 워싱턴 정가의 인물들은 거의 100% “반공주의자”로 불릴만한 사람들이었지만, 맥카시는 아주 희미한 의심 하나도 충격적인 헤드라인으로 뽑아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죠. 트위터가 없던 시절에도 매카시는 제기한 의혹 하나가 반박을 받기도 전에 다음 의혹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가 하는 말 가운데는 거짓이 아닌 것도 있었지만, 진실과 거짓 사이를 지속적으로 넘나들면서 나라 전체의 담론을 흔들고 정치적 규범을 파괴했죠.

 

수백만 미국인이 이에 열광했습니다.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매카시는 50%의 지지율을 자랑했습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완전히 분열시켰죠.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더욱 인기가 높았습니다. 1950년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의원이 자칭 “양심 선언”을 통해 매카시가 상원을 “증오와 인신공격의 장”으로 전락시키며 “공포와 무지, 편견과 비방”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을 때, 단 여섯 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동의를 밝혔을 뿐 나머지는 침묵했습니다.

이들의 침묵은 1952년 공화당이 20년만에 정권을 잡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되면서 빛을 발하는 듯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대승의 공을 매카시에게 돌렸고,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백인 노동자 계층, 특히 가톨릭 교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그의 능력을 칭송했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매카시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위스콘신 유세 현장에서 매카시와 함께 하기도 했죠.

 

1952년의 승리 이후, 매카시는 악명높은 상원 소위원회를 장악하며 부실한 근거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고 CIA에서 미 육군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기관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1954년 중반에 이르자 동료 상원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매카시-육군 청문회에서 육군의 법률 자문인 조세프 웰치가 한 말 “선생님, 예의라고는 모르시는 분입니까?”는 바이든이 대선 토론에서 했다면 좋았을 대사였죠. 몇 달 후, 상원의 레임덕이 찾아오자 매카시의 공화당 동료들은 마침내 인간의 품격과 예의에 한 표를 행사해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키게 됩니다.

이 시절 매카시의 풀뿌리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성되던 반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만, 매카시에 대한 거센 비난은 그 자체로 그가 옳았다는 근거로 기능하게 됩니다. 정말로 미국이 악독한 정체를 숨기고 있는 리버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들이 신을 두려워하는 올바른 미국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주장이 말이죠. 이런 주장에 사로잡힌 이들 가운데, 부상 중인 보수 운동의 젊은 지성 윌리엄 F. 버클리가 있었죠. 그는 막 “예일의 신과 인간”이라는 히트작을 낸 참이었습니다. 1954년, 버클리는 처남이자 맥카시의 보좌관 겸 연설작가 L.브렌트 보젤과 함께 두 번째 책을 내고, 매카시의 방법론이나 스타일의 부작용은 대의명분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매카시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미 퍼져가던 “패했지만 계속 싸운다는 정신”을 반영하듯, 책 제목은 “매카시와 그의 적들”이었죠.

 

상원의 결의안 이후, 용맹한 전사가 부패한 적에 의해 쓰러졌다는 서사는 우파의 제도권 진입 물결을 불러옵니다. 1955년 버클리는 “내셔널 리뷰”지를 창간하며 “주요 정당을 장악하려 하는 페이비언 공작원들을 무찌르기 위함”이라고 창간 의도를 밝혔습니다. 3년 후, 캔디 제조업자인 로버트 웰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비밀리에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하는 음모론 계열 극우 조직 “존 버치 소사이어티”를 창립해 수백만 명의 회원을 모집합니다. 버클리는 이 조직의 피해망상적 스타일을 비하하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매카시에 대해서만은 시각을 공유했습니다. 매카시의 방식에 약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원이 그를 비난함으로서 부패한 거대 조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주장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매카시는 1957년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공화당 이너서클에서는 배제되었지만 여전히 수백만의 극우주의자 팬들을 거느리고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배리 골드워터나 로널드 레이건처럼 좀 더 무난하고 그럴듯한 인물들이 보수 운동의 창시자로 대두되었고, 초기 보수주의 운동을 견인한 매카시의 공적은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희생자라는 주장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2003년까지도 보수 계열 선동가인 앤 쿨터 같은 인물이 저서를 통해 매카시가 옳았고 그의 정적들이 틀렸을 뿐 아니라 반역자였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으니까요. 트럼프 본인도 맥카시의 오랜 친구이자 악명높은 위원회 자문이었던 로이 콘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습니다.

 

트럼프의 2020년 대선 스토리는 엘리트들의 음모, 숨겨진 부정부패, 임박한 사회주의자들의 국가 장악에 이르기까지 매카시 전설의 모든 특징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오는 1월 20일,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겠지만 이 이야기와 그 뒤의 원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힘을 얻어갈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미 2024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혹시 출마하지 않는다 해도 트위터와 케이블 뉴스, 라디오 토크쇼와 음모론 웹사이트(매카시가 부러워했을 환경이죠)를 통해 트럼프의 전설은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1954년 에드워드 머로우 같은 인물마저도 돌아섰을 때 매카시는 자신의 주장을 실어줄 주류 언론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트럼프의 눈 앞에는 이미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극우 미디어 세계와 게이트키퍼도 없는 소셜미디어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일개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와 달리 대통령직을 지낸 트럼프의 영향력은 훨씬 더 강합니다. 고령이지만 그 힘을 누리겠다는 의지는 왕성해 보입니다. 백악관을 떠나더라도 트럼프의 지지기반은 여전할 것이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피즘에 여전히 도취되어 있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하거나 매카시처럼 절망감에 무너지더라도, 그를 사랑한 수 많은 시민들이 4년 전보다 훨씬 더 잘 조직된 상태로, 이제는 순교자 설화까지 갖춘 채 그 자리에 머물 것입니다.

 

오늘날의 공화당 주류가 트럼프와 절연을 선언하는 날이 오더라도, 트럼프의 지지층, 그리고 트럼프 퇴장에 대한 이들의 해석이 트럼피즘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사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범죄  (0) 2021.01.28
propaganda  (0) 2021.01.22
종교의 본질-루트비히 포이어바흐  (0) 2021.01.07
UTILITARIANISM  (0) 2020.12.08
러시아 혁명사 상-1  (0) 20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