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인
생고르(Senghor) 김화영 옮김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그대 입은 피부빛은 생명(生命)이라, 그대 입은 형상(形象)은 아름다움이라!
나는 그대의 그늘 속에서 자라났네, 그대의 부드러운 두 손이 내 눈을 가려주었지.
이제, 여름과 정오(正午)의 한가운데서 나는 알겠네, 그대는 약속된 땅임을, 목마른 높은
언덕의 정상으로부터
그대의아름다움은 독수리의 번개처럼 내 가슴 한복판에 벼락으로 몰아치네.
벗은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단단한 살을 가진 잘 익은 과일, 검은 포도주의 어두운 황홀, 내 입에 신명(神明)을 실어주는 입
해맑은 지평(地平)을 여는 사반나, 동풍(東風)의 불타는 애무에 전율하는 사반나,
조각해 놓은 듯한 탐탐북이여, 승리자의 손가락 밑에서 우뢰같이 울리는 탐탐북이여.
그대 콘트랄토의 둔탁한 목소리는 연인(戀人)의 드높은 영혼의 노래.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바람결 주름살도 짓지 않는 기름, 역사(力士)의 허리에, 말리 왕자(王者)들의 허리에 바른 고요한 기름아.
하늘나라의 띠를 맨 어린 양이여, 진주(眞珠)는 그대 피부의 밤 속에서 빛나는별,
그대 비단 물살의 피부 위에 노니는 정신(精神)의 감미로움, 붉은 금(金)의그 림자,
그대 머리털의 그늘 속에서, 나의 고뇌는 이제 솟아날 그대 두 눈의 태양(太陽)빛을 받아 환하게 밝아오네.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시샘하는 운명(運命)이 그대를 한 줌 재로 만들어 생명(生命)의 뿌리에 거름 주기 전에, 나는 노래하네.
덧없이 지나가고 마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내가 영원(永遠) 속에 잡아두고픈 그 형상(形象)을 나는 노래하네.
요점 정리
작자 : 생고르(Senghor)/ 김화영 옮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상징적, 예찬적, 저항적, 긍정적, 영탄적
어조 : 예찬적이고 영탄적인 어조
제재 : 검은 여인
주제 : 검은 여인에 대한 찬양, 검은 피부에 대한 긍정과 흑인주의의 고귀함에 대한 찬양
특징 : 흑인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영탄법, 돈호법의 사용과 다양한 비유를 통해 밝고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일한 구절을 통해 매 연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상의 특징은 시의 대상을 강조하는 효과와 함께 시상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프리카 여인의 건강한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그 여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아프리카 여인의 건강함은 곧 아프리카 땅의 건강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그 동안 고통받고 소외되었던 아프리카에 대해 찬양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출전 : <그림자의 노래>(1945)
내용 연구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돈호법, 반복법을 통해 운율의 형성, 주제의 강조, 정감의 깊이를 표현하고 시상의 완결과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음]
그대 입은 [검은]피부빛은 생명(生命)이라, 그대 입은 형상(形象)은 아름다움이라![영탄법과 대구법을 사용했고, 벗은 아프리카 여인의 검은 피부빛을 의미하고, 아프리카 여인에 대한 애정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고, 검은빛과 벗은 몸은 유럽인들에 의해서 가난과 야만의 대상으로 비하를 받거나 정복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지녔으나 이 시에서는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으로 그 의미를 격상시키고 있다. 약속된 땅, 잘 익은 과일, 검은 포도주, 탐탐북, 기름, 진주, 붉은 금의 그림자, 사반나, 비단 물살 등은 모두 검은 색의 피부빛을 찬양하여 비유한 말]
나는 그대[강한 모성의 따스함으로 기억되는 아프리카의 여인]의 그늘 속에서 자라났네, 그대의 부드러운 두 손이 내 눈을 가려 주었지.
[여기서 '그늘'은 평소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강한 태양빛을 가려주는 고마운존재이다.]
이제, 여름과 정오(正午)의 한가운데서 나는 알겠네, 그대는 약속된 땅임을, 목마른 높은 언덕의 정상으로부터
그대의 아름다움은 독수리의 번개처럼 내 가슴 한복판에 벼락으로 몰아치네.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단단한 살을 가진 잘 익은 과일, 검은 포도주의 어두운 황홀, 내 입에 신명(神明)을 실어주는 입[아프리카 검은 여인의 피부에 대한 관능적인 비유가 돋보임]
해 맑은 지평(地平)을 여는 사반나[savanna : 열대 초원], 동풍(東風)의 불타는 애무에 전율하는 사반나,
조각해 놓은 듯한 탐탐북[아프리카 흑인들이 손으로 치는 북의 일종]이여, 승리자의 손가락 밑에서 우뢰같이 울리는 탐탐북이여.[직유법, 돈호법, 영탄법으로승리자가 그것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다는 것은 곧 승리의 상황을 의미한다.]
그대 콘트랄토[여성의 가장 낮은 음]의 둔탁한 목소리는 연인(戀人)의 드높은 영혼의 노래.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바람결 주름살도 짓지 않는 기름, 역사(力士)의 허리에, 말리 왕자(王者)들의 허리에 바른 고요한 기름아.
하늘 나라의 띠를 맨 어린 양이여, 진주(眞珠)는 그대 피부의 밤 속에서 빛나는 별[대조적인 색채를 가진 대상을 사용하여 검은 피부의 아름다움을 미화한 미화법],
그대 비단 물살의 피부 위에 노니는 정신(精神)의 감미로움, 붉은 금(金)의 그림자,
그대 머리털의 그늘 속에서, 나의 고뇌는 이제 솟아날 그대 두 눈의 태양(太陽)빛을 받아 환하게 밝아오네.
벗은 여인(女人)아, 검은 여인(女人)아 [건강함, 생명력, 생동감, 부드러움이검은 여인에게서 느껴짐]
시샘하는 운명(運命)이 그대를 한 줌 재로 만들어 생명(生命)의 뿌리에 거름 주기 전에[시샘하는 운명이 그대를 - 생명의 뿌리에 거름 주기 전에 : 아프리카인이 가혹한 착취자 밑에서 신음하다가 죽음이 찾아와 육신이 소멸하여 대지에 다시 뿌려지는 의식. 제2행의 '그대 입은 피부빛은 생명'이라는 구절을 생각할 때, 시인은 흑인을 가장 생명력이 강한 인종(人種)이라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억압적인 현실 밑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검은 여인의 생명력과 아름다음에 대한 묘사는 후대의 삶에 대해 저항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대를 한 줌 재로' 만드는 것은 여인의 죽음을의미하나, 그것마저도 생명의 뿌리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긍정적인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나는 노래하네.
덧없이 지나가고 마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내가 영원(永遠) 속에 잡아두고픈 그 형상(形象)[인간의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지만 그것을 시를 통해 영원한 것으로만들고 싶다는 시인의 염원을 담고 있다.]을 나는 노래하네.
지도 방법
1. 화자는 '검은 여인' 의 어떤 면을 예찬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자.
이끌어주기 :
각 연의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적인 감상과 더불어 추리, 상상을 통해 상징적인 면에 대한 이해에 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시답안 :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검은 여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 연별로 상세하게 살펴보자. 1연에서 화자는 검은 여인의 피부빛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고, 2연에서는 여인의 관능미를 예찬하고 있다. 3연에서는 여인의 피부와 머리카락을 예찬하고 있다. 마지막 4연에서는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여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1연의 '약속된 땅' , 2연의 '전율하는 사반나' , 3연의 '태양 빛' , 4연의 '생명의 뿌리' 등의 시구를 통해 화자는 아프리카 땅의 건강함과 가능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이 시를 읽고 나서 이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흑인 여성' 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는지, 달라졌다면 어떤 면이 그러한지 각자의 생각을 발표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하여 학생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해 보게 하고, 달라진 생각을 말하게 함으로써 인종적인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시적 화자가 검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내용을 통해 아프리카 여성이나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얀 피부와 파란 눈동자, 날씬한 허리를 가진 백인 여성을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생각해 온 나의 생각이 이 작품을 통해 바뀌게 된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민족이나 국가마다 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서구식 아름다움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인 양 잘못 생각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묻지 않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우리 사회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도 아마 우리의 잘못된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3. 조사 탐구 세게 문학사에 등장하는 유명 흑인 작가들을 조사해 보고 대표적인 작품을 발표해 보자.
이끌어주기 :
세계 문학사를 보다 총체적이고 균형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유럽 문학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좋은 작품을 남겼던 흑인 작가들을 찾아 그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균형 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소외되었기 때문에 소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보다는 교사가 찾은 작품을 소개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시답안 :
랭스턴 휴즈 Langston (James Mercer) Hughes (1902 ∼ 1967)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즈는 1902년 미주리 주에서 출생. 젊은 생애를 웨이터 조수나 화물선 선실 보이와 같은 하류 직업을 전전하며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삶에 대한 연민과 꿈을 잃지 않았으며, 이러한 긍정은 어둡지만 따스한 그의 작품 속에 잘 드러난다. 한때 부친의 강요로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하기는 했으나 곧장 그만 두고, 대신에 근처 할렘가와 술집 등을 떠돌며 흑인들의 삶과 비애를 몸으로 배웠다. 그의 시는 주로 할렘의 밤거리 인생들을 노래하고 있으며, '지친 블루' , '흑인 대서' , '할렘나이트 클럽' 등의 제목들이 암시하듯이, 그의 시는 흑인 예술이 번성하던 할렘 르네상스 시절의 할렘 분위기를 가장 잘 담고 있다.
대표작품 - '할렘'
유예된 꿈, 그것은 어찌되었는가? // 땡볕 아래 건포도처럼 그것은, / 말라 비틀어졌는가? 아니면 오래된 상처처럼 곪아 / 터져 버렸는가? / 그것은 썩은 고기처럼 악취를 풍기는가?
아니면 달콤한 사탕처럼 / 딱딱한 껍질을 입혀 / 그 위에 설탕을 뿌려놓았는가? // 아마도 그것은 단지 / 무거운 짐짝처럼 / 축 늘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2. 데이비드 디오프 David Diop (1927-1960)
데이비드 디오프는 제3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세네갈의 시인으로,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세네갈, 어머니는 카메룬의 흑인이다. 조국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 아프리카를 유린해온 식민세력에 대한 강한 울분을 주로 작품화했다. 1960년 다카르 앞바다에서 비행기 사고가 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작품에 '독수리', '순교의 시대', '도전', '아프리카' 등이 있다. 그가 남긴 한 권의 프랑스어 시집 '절구질(Coups de pilon)'(1956)은 유럽을 대표하는 모든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증오와 흑인의 장래에 대한 혁명이 필요함을 주창한 것으로 아프리카의 새 시대를 고하는 소리로 간주된다.
대표작품 - '아프리카'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 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 창백하게 시든 꽃들 가운데/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45년에 발간된 시집 <그림자의 노래>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인이 흑인에 대한 찬양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피부색에 대한 긍정이며, 그것을 가장 드높이 외치는 고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여기서 시인은 흑인을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아름다운 인종이라 찬양하고 있다. 그간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종래의 흑인문학과는 달리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작품이다. 이러한 밝은 정서는 흑인종에 대한 시인의 자부심과 긍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화 자료
작자 '생고르'에 대하여
생고르(L. S. Senghor)는 1930년대 파리에서 프랑스 식민지 출신 흑인 유학생들로부터 시작된 문화적, 정치적 함의가 얽혀 있는 '네그리튀드(Negritude)'운동(흑인의 문화적 정체성,흑인 문화 예찬 운동 등으로 풀이됨.)에 세제르(Cesair)와 함께 그 이념적 기초를 놓은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프랑스 어로 교육받은 세대에 의해 본격적인 아프리카 프랑스 어 표현 문학의 시대를 연 것은 생고르를 필두로 한 네그리튀드 시인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50년대 이전부터 아프리카 구전 문학과 프랑스 어 기록 문학과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낭테는 "프랑스 어 표현 문학은 생고르에 의해 만개하였다."라고 '프랑스 어 표현 흑인 문학 파노라마'에서 개진하는데, 생고르의 평생에 걸친 활동은 프랑스 의회의원, 세네갈 대통령직에 수반되는 긴박한 정치생활의 와중에서도 그의 글쓰기가 증거하듯, 아프리카를 문화, 사회, 경제 등의 제반분야에 걸쳐 차별과 소외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소망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아프리카 프랑스 어 문학을 주도했으며 다음 세대의 프랑스어권 시인들의 사표가 된, 통칭L. S.생고르로 불리는 생고르의 성명은 레오폴 세다르 니란느 생고르(Lopold Sdar Gnilane Senghor)이다. 출생 배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이름은 그의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포르투갈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세레르인 생고르, 기독교인이자 아프리카의 정령 숭배자인 생고르 등의 그의 이름이 내포하는 의미는 유럽적, 아프리카적 성격을 아우른다. 후일 생고르의 작품과 삶에서 혼재되어 나타나는 여러 대립되는 요소들이 서로 갈등을 빚지 않고 양립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이 같은 혼합적 성격이 작용했을 것이다.
생고르의 궤적을 살펴보면 정치와 문학은 네그리튀드의 틀 속에서 조화롭게 양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흑인의 존엄성과 흑인 세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또한 아프리카는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며 고유한 문화 체계에 근거한 세계라는 점을 설파하며 네그리튀드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네그리튀드'라는 용어의 주조자인 세제르가 급진적인 네그리튀드 개념을 발전시켰다면 생고르의 네그리튀드는 세제르의 경우처럼 투쟁을 통해 쟁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서에, 참여 정신에, 자연과의 합일에, 민족의 연대 감안에, 생명의 철학에, 무엇보다 말의 위력에, 즉 어느 곳에나 현존해 있는 모든 것이었다.
시론에 있어서 생고르는 리듬, 이미지, 감동이 주가 되는 시를 통해서 흑인만이 고유하게 지닌 정서를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시론에 천착하는 그의 시 세계에 대해 아프리카의 부흥과 프랑스어에 기여할 것을 뜻을 두고 프랑스적인 특수성과 아프리카적인 특수성을 조화롭게 융합시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출처 : 이복남, '시(詩)의 청각성 : 생고르의 프랑스 시론 수용 양상')
상고르와 흑인주의
생고르 이전에는 프랑스말 사전속에 네그리튀드(Negritude : 흑인성. 다시 말해서 흑인 특유의 사고방식, 정신)란 어휘가 없었다. 언어 학자이며, 시인인 생고르에 의하여신조(新造)가 된 이 어휘 속에는 생고르의 흑인주의가 담겨 있다. 세계의불의(不義) 앞에서 그가 느낀 사명감, 즉 수 세기에 걸쳐서 허리를 굽히고침묵하는 것 이외에 권리라고는 가져 보지 못한 흑인들의 대변자가 되겠다는사명감이 담겨 있다.
그에게 있어서 흑인이 해야 할 첫째임무는 스스로 부끄럼 없이 흑인임을 자처하는 일이며, 스스로의 피부색을되찾는 일이다. 시 '검은 여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피부색에대한 긍정이며, 그것을 가장 드높이 외치는 고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상고르 Leopold (Sedar) Senghor 1906. 10. 9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세네갈 조알~. 세네갈의 대통령(1960 ~80). 시인·정치가로서 온건한 '아프리카사회주의'의 주요 제안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세레르족(族)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태어났다. 그는 생후 7년간을 작은 마을에서 보냈으며, 최초의 꿈은설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근의 가톨릭 선교회와 신학교에서수업 을 받았다. 20세가 되자 그는 사제직이 자기의 천직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고 다카르에 있는 리세(중학교)로 전학했다. 어려서부터 상고르는아프리카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한 끈질긴 신념을 드러냈다. 1928년에그는 부분 장학생의 자격으로 파리에 가서 루이르그랑 리세와 소르본대학교에서정식 공부를 계속했다. 이 기간에 상고르는 아프리카 예술이 현대의회화· 조각·음악·문학에 명백한 자취를 남겼음을발견했으며, 이 발견은 아프리카가 현대 문명 에 공헌할 수 있다는 그의신념을 굳건하게 했다.
1935년 상고르는 아프리카인으로서는최초로 프랑스 학교제도에서 최고의 유자격 교사인 아 그레제(agrege)가되어 투르에서 프랑스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년후 그는 파리 가까이에 있는 한 리세로 전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초인 1939 년에 징집된 그는 1940년에 포로로 잡혀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으며 그곳에서 그의 가장 우수한 시들 가운데 몇 편을 집필했다. 집단수용소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가입했다. 전후에 상고르는 프랑스 제헌의회의 의원이 되었으며, 1946년 에는 파리에서개최된 프랑스 국민의회에 세네갈의 대의원 2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파견되 었다. 사회당(SFIO)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한 상고르는 1948년에세네갈민주연합(BDS)을 설 립했으며, 이 당의 후보로 1951년의 프랑스국민의회 선거에 출마하여 차점자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재선되었다. 5년 후 그는 세네갈의 철도교통의 중심지인 티에의 시장이 되었으며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6년 프랑스 의회가 아프리카의프랑스 영토들에 광범위한 자치를 부여하는 구역법(區域 法 loi cadre)을통과시킬 때 상고르는 처음부터 동법안에 반대했다. 그는 이 법이 연방이아닌 영토 정부를 강조했으며, 그 결과는 생존력이 없는 작은 나라들의난립이 될 것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구역법의 효과를 무산시키기 위해그는 아프리카 연방체의 설립을 위해 헌신할 일련의 정당 창설을 돕고그 정당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중 어느 정당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못했다. 국내 전선에서 그는 세네갈진보주의연맹(UPS)의 결성을 도왔는데, 이 연맹은 1976년 이후 사회당(PS)으로 불리면서 1980년대초까지도 세네갈의집권 여당으로 존속했다. 1950년대말에 상고르는 서아프리카의 다양한정치 집단들이 동맹을 체결하는 것을 도왔으며 그 결과 1959년에 세네갈(프랑스령수단[말리], 다호메이[베냉], 어퍼볼 타[부르키나파소]와 함께)이 회원국으로가입한 단명한 말리 연방이 창설되었다. 1959년 12월 상고르는 프랑스의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독립을 호소하는 열변을 토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말리 연방은 이듬해 8월까지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은두 회원국 세네갈과 프랑스령 수단이 탈퇴했기 때문이었다. 세네갈은공화국이 되었고 상고르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상고르의일생에 닥쳐온 2번째의 큰 위기는 1962년말에 일어났다. 오랫동안 상고르의비호를 받았던 마마두 디아 총리가 쿠데타를 기도한 것이다. 다시 한번세네갈 국민은 상고르를 지지하여 궐기했고, 마마두 디아는 종신구금형을선고받았다. 새 헌법이 비준되고 상고르는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는 1980년 12월 31일 5번째 임기 도중에 공직에서 은퇴했고 아브두 디우프가그의 뒤를 계승했다.
최고행정관으로서 상고르는 세네갈의농업을 현대화하고, 개화된 시민 의식을 고취하고, 부패와 무능력을추방하고,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프랑스와의 지속적인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무신론과 지나친 물질주의에서 다같이 벗어나아프리카의 현실 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같은 슬로건들과 거리가 먼 개방적이고 민주적이고인도적인 사회주의를 추구했다. 제3세계의 강력한 대변인으로서 그는농업국들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불공정한 무역 조건들에 항의했다. 정치적·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그의 관심을 그가 '흑인 아프리카 세계의문화적 유대의 총화' 라고 정의한 네그리튜드(negritude)에 대한 그의옹호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는 문학 작품과 정치적 업적을 인정받아 4개 대륙의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69년 12월에 그 는아프리카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윤리·정치학 협회의 회원이되었다. 1984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회, 이 아카데미의 역사상최초의 흑인 회원이 되었다.
상고르의 생애는 역설로 가득 찼다. 그는가톨릭교도인데다 세레르족이면서도 이슬람교도와 월로프족이 압도적으로많은 나라를 이끌었다. 탁월한 지식인이면서도 농민을 가장 큰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뛰어난 시인이면서도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직업 정치인으로서조국을 독립으로 이끌었고 그후 20년 동안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유감없이 발휘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 사전)
네그리튀드(Negritude) - 흑인주의
1930~50년대에 파리에 살던 프랑스어권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출신의 작가들이 프랑스의 식민통치와 동화정책에저항하여 일으킨 문학운동.
그 주도적 인물은 1960년 세네갈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로서, 그는마르티니크 출신의 에메 세제르, 프랑스령 기아나 출신의 레옹 다마스와함께 서구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재평가하기시작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동화정책이 이론적으로는인간평등의 신념에 근거를 두지만 아프리카 문화보다 유럽 문명이 우월하며심지어 아프리카에는 역사와 문화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하며여기에 반박했다. 세계대전에서 동포들이 자신들과 상관없는 명분을위해 죽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종처럼 취급받는 것을 보고분노했으며, 역사연구를 통해 흑인들이 처음에는 노예제도로, 다음에는식민통치로 고통과 굴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이런견해가 네그리튀드의 여러 기본사상을 형성하게 해준 요인이 되었다. 즉 자연과의 친근함 및 조상과의 부단한 접촉에서 비롯되는 아프리카인의삶의 신비로움과 포근함은 서구문화의 영혼부재, 물질주의에 맞서 올바른관점에서 자리를 찾아야 하며, 아프리카인들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가치와전통이 가장 유익한가를 선택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풍요로운 과거와문화유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상이 나왔다. 또한 사회참여 작가들은글을 쓸 때 아프리카의 문제와 시적 전통을 다루어야 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이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도록 고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그리튀드라는 개념은 아프리카의 문화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가치들을 모두 포괄하며,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전통과 민족의 가치 및존엄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상고르의 시에는 이런 주제가 모두드러나 있으며, 그는 다른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세네갈 출신의비라고 디오프의 시는 아프리카 삶의 신비를 다루었고, 다비드 디오프는혁명적 저항시를 썼다. 또 자크 라베마낭자라는 마다가스카르의 역사와문화를 예찬하는 시와 희곡을 썼으며, 카메룬의 몽고 베티와 페르디난드오요노는 반(反)식민주의 소설을 썼고, 콩고의 시인 치케야 위 탐지는매우 개인적인 시를 쓰면서도 아프리카 민족의 고통을 다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초부터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 운동의 정치적·문화적목표가 이루어지자 네그리튀드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줄었으며, 서아프리카문학운동의 중심지도 세네갈에서 나이지리아로 옮겨갔다.(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
세제르 Aime(-Fernand) Cesaire
1913. 6. 25 마르티니크 바스푸앵트~. 프랑스어를 사용한 아프리카의 시인·극작가. 레오폴드 세다르상고르와 함께 아프리카 흑인문화의 정체성 회복운동(네그리튀드 운동)을시작했고, 이 운동은 큰 영향을 끼쳤다.
상고르를 비롯하여 네그리튀드 운동에참여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제르도 파리에서 교육받았다. 1940년대초에마르티니크로 돌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의 독립을 지지하는정치활동에 참여했다. 흑인들의 곤경을 무산계급 투쟁의 일환으로 보았으며, 1946년에 제헌의회 위원이 되었고, 1946~56년에는 공산당에 가담했다. 전통적인 언어형태로부터 탈피하게 해주는 초현실주의야말로 자신의신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을 깨닫고, 아프리카적 심상이강한 유럽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격앙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 〈귀향수첩 Cahier d'un retour au pays natal〉(1939)·〈목 잘린 태양 Soleilcou-coupe〉(1948) 같은 격한 시들로 압제자들을 심하게 비난했다. 연극에관심을 갖게 된 후에는 네그리튀드 운동 대신 흑인 무력투쟁을 선택했다. 그의 비극들은 강한 정치성을 띠는데 〈크리스토프 왕의 비극 La Tragediedu Roi Christophe〉(1963)은 19세기 아이티의 독립을 그린 희곡이고, 〈콩고에서의 한 철 Une Saison au Congo〉(1966)은 1960년 콩고에서일어난 반란과 콩고의 정치 지도자 패트리스 루뭄바의 암살을 다룬 서사시이다. 이 두 작품은 영원히 실패로 끝날 흑인 지위향상운동의 운명을 그리고있다.(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