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기자의 인터뷰 - 김초엽작가(허락없이 게재하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나요?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을 던져본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김초엽 작가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 2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는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감각과 인지 세계를 가진 '다른' 존재들이 마주하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 일곱 편을 담고 있다.
시지각 이상증을 가진 마리, 정신과 몸의 불일치로 세 번째 팔을 이식하고 싶어하는 로라, 발성기관이 퇴화된 단희, 서른 살까지 밖에 살지 못하고 정신질환으로 사망하게 될 운명의 노아,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느린 시간대를 살아가는 유현화…. 다른 존재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와 사랑,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함께 탐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은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작가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올 한 해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그리고 두 번째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까지 세 권의 책이 나왔네요. 올 한 해 정말 바쁘셨겠어요.
아직도 바빠요(웃음). 책이 아직 두 권 더 나와야 하거든요. 이번 주에 한 권이 더 나오고 (인터뷰 후에 『행성어 서점』이 발간되었다 - 편집자), 크리스마스 때도 한 권 더 나올 예정이라서 당분간은 좀 바쁘지 않을까 해요.
그래도 기분은 좋아요. 그동안 썼던, 하지만 많은 독자들에게 닿지 않았던 작품들이 공개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몸은 바쁘지만 정신은 맑은 그런 근황을 보내고 있습니다(웃음).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은 비교적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올해 초 펴냈던 『사이보그가 되다』와도 이어지는 장애와 인식에 대한 이야기들인데요. 『사이보그가 되다』와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된 작품들이 쓰여진 시기가 비슷한가요?
네, 같은 시기에 썼어요. 논픽션에 매어있다보니 소설을 쓰면서도 거기서 보았던 소재라든가 주제의식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에 소설들을 모아놓고 보니 뭔가 그 시기에 몰두하던 생각들이 있었구나 싶어요.
여러 작품 속에서 장애는 외형적인 차이나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인지 능력, 다른 감각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제 작품에서 나오는 다른 존재들을 현실의 장애와 연결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긴 해요. 제 작품은 아무래도 SF다 보니까 현실을 그대로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인물들이 경험하는 삶의 어떤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현실의 문제로 넘어오면 굉장히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날카로운 차별과 맞서는 현실이 있거든요.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 장애라는 키워드를 읽는 분들이 많긴 할 것 같지만 우리 모두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해 본 어떤 소외감, 세계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는 감각, 이런 것에 좀 더 주목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다른 감각과 인지 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는데요. 감각이라는 것은 저에게 과학적으로 굉장히 흥미가 있는 이슈이기도 했고, 이 소설들을 쓰던 시기에 제가 감각이라는 것을 인지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그런 논픽션들을 많이 읽기도 했어요.
그래서 감각을 하나씩 잡고 글을 써보자, 이런 느낌으로 단편을 많이 썼어요. 시각의 경우에는 「마리의 춤」이, 후각의 경우에는 「숨그림자」가 되었고, 인간의 시간 인지 감각은 「캐빈 방정식」이 되는 이런 식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각들을 하나씩 소설로 옮겨봤던 것 같아요.
감각이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책에서 보여주는 다른 방식의 감각과 인지 방식이 너무 신선하고 흥미로웠어요.
저는 공감각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분명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이 사회 속에 섞여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일상적이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서 감각이라는 소재에 집중을 해봤던 것 같아요.
「마리의 춤」의 '나'는 몸의 감각까지 전달할 수 있는 연결망인 플루이드 접속에 호기심을 느끼는데요. 다른 감각과 다른 인지 방식을 가진 '다른 존재'에 대해서 혐오와 함께 호기심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균형 잡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존재'를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 찍어온 역사가 워낙 길쟎아요. 그러니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다른 감각을 다양성의 일환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실제 경험하게 되는 고통과 무참한 현실들을 쉽게 낭만화 시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도 '내가 다른 존재들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그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어쨌든 현실에서 대상화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의, 어떤 고유한 삶의 한 순간에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결론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죠.
「마리의 춤」에서 마리의 문제 해결 방식은 소설 속에서도 논쟁적이었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논쟁이 될 수 있는 지점인데요.
마리라는 캐릭터가 독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건 제가 시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긴 해요. 벌어지는 시위들에 대해서 너무 폭력적이다, 시위를 너무 과격하게 해서 반감이 생긴다, 오히려 저 사람들을 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과연 평화로운 시위라는 것이 가능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은 그런 과격성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건 어떻게 할까? 너무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저의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저는 소설 속 마리라는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지만, 현실로 옮겼을 때도 옹호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해요.
「로라」에서는 로라는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팔 외에 세 번째 팔을 원하는데요. 그런 로라는 몸 정체성 통합 장애를 가진 사람과도 다르고 트랜스휴먼과도 다릅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같지 않고, 때로는 같은 선택을 하지만 정반대의 입장인 경우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는데요. 장애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정확히 같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로라」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썼어요. 실제로 몸 정체성 통합 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멀쩡한 자기 팔을 날려버리기도 해요. 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사람에게는 유일한 선택일 수 있는 그런 일들인 거죠. 트랜스휴먼들은, '이게 아니면 안되겠어' 이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손가락에 센서를 단다든지,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신체 개조를 서슴지않고 하죠.
그렇다고 사람들은 다 다르고 다양하구나, 이렇게 끝나버리면 그것도 약간 허망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왜 인간에게는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구성하게 하는가, 이것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것도 제 관심사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연구의 대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이해하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행위일까? 아니면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까? 혹은 사랑과 연결된 것인가? 이런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로라」 안에 마구잡이로 들어있는 것 같아요(웃음)
「로라」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고, 또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묻고싶은 질문일 것 같아요.
그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엄마와 딸이 서로 이해 못하지만(웃음) 사랑하지 않냐고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잖아요. 가까운 관계에는 이런 모순적인 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또 내가 어떤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사랑과 이해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사랑하는 존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게 많은 문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떤 사회적인 이해의 감각을 넓히는데 기여한다고도 생각해요. 예를 들면 성소수자 부모들의 단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딸과 아들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싶은 분들이 모인 모임이거든요. 그렇게 항상 당사자와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연결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그런 불완전한 이해에 대해서 그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래된 협약」은 요즘처럼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시대에,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 작품은 인류세를 생각하면서 썼어요.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 작품을 쓰던 당시에는 제가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을 쓰려고 벌레나 식물,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공부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인간이 아주 많이 개입해버린 지구와 인간이 무시하고 있는 생명의 존재들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그것들을 벨라타와 인간의 관계로 형상화해보려고 했어요.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 과학적인 설정들과 설명이 독자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하진 않았나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을 쓰면서는 그걸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책을 내고 제가 놀랐던 게, 다들 하나도 안 어렵다는 거에요(웃음). 내가 독자분들 수준을 잘못 생각했던 거죠.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디테일을 좀 더 많이 넣었는데 여전히 안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SF가 아닌 소설이라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이나 지리, 지명 이런 걸 100% 다 알고 읽는 건 아니거든요. 정확히는 몰라도 읽으면서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읽는 것처럼, SF도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가도 중심 이야기가 있다보니까 다들 편하게 읽는 것 같아요.
「캐빈 방정식」에서 다루는 시간 인지 감각이라는 개념은 좀 많이 낯설었어요.
그 작품은 실제로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해달라는 청탁을 받아서 썼어요. 처음 구상할 때는 좀 어려웠어요. 실제 있는 공간을 SF로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제가 살고 있는 울산에는 관람차가 있거든요. 저게 뭔가 조금 SF적이긴 한데? (웃음) 이렇게 생각하면서 관람차를 굉장히 여러 번 탔어요. 타고 나니까 별 생각은 안 들고 그냥 무섭더라고요(웃음). 그러면 이 무서움이란 감정을 한번 SF적으로 해석을 해보자, 해서 쓰게 된 것이 「캐빈 방정식」이에요.
그 단편을 쓰면서 제가 참고했던 내용은, 인간이 갖고 있는 시간 인지 감각이라는 건데요. 이게 굉장히 특이해요. 인간에게는 시간만을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기관이나 이런 것이 없어요. 우리가 보고 있는 시각적인 정보, 청각적인 정보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정보, 이런 것들을 굉장히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의 시간 인지 감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특정한 시간 감각이 있는 게 아니고 우리의 어떤 전체적인 해석이 시간 감각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시간 감각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에요. 이렇게 대화를 막 즐겁고 나누다 보면 10분밖에 안 지난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 지나 있고,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가고요. 관람차를 보면서 그런 시간 인지의 주관성을 한번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어요.
「인지 공간」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자기만의 인지 공간을 갖기 위해 바깥 세계로 들어섭니다. 바깥 세계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들어선다'는 표현이 흥미로웠어요.
SF에서 자주 사용하는 플롯 중 하나가, 내가 속해 있던 세계가 나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세계 바깥에는 뭔가가 더 있고, 내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이야기거든요.
저는 어떤 세계의 미스터리를 파악하고 내 지식과 앎의 범위를 넓혀가는 이런 태도가 SF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SF에서 이런 이야기가 많고, 제가 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인지 공간」도 '나'는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를 벗어나서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되었죠.
「마리의 춤」, 「숨그림자」, 「캐빈 방정식」 등 여러 소설들은 서로 다른 신체기관과 기타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정확한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들이 어떻게든 서로 마음을 전하고야 마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언어와 감각이 다른 이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죠. 저는 인간이 정말 너무나 다른 외계 생명체를 만나를 이야기를 좋아해요. 어떤 작가님들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형태의 생명체를 그려내기도 하는데 제가 그리는 외계 생명체는 비교적 인간과 가까운 편이에요. 우리와 조금은 가깝고 조금은 다른 생명체를 그리는데 더 관심이 있어서인데,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관계 대부분이 그렇거든요.
예를 들면 인간과 반려동물과 공유하는 관계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어떤 호혜적인 관계에요. 반면 우리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난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생물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한 부분이 많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밀어내버리는 것이요.
말이라는 것이, 말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를 강하게 묶어주기도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바깥의 사람들은 밀어내는 것이라면, 과연 언어라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이야기들을 쓰게 되었고요.
요즘 관심 있는 주제라든가 테마 같은 것이 있나요?
아직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책이 있어서 당분간은 그쪽에 신경을 써야할 것 같은데요. 그 소설은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이야기에요. 요즘 타인의 비극이나 재난의 장소로 여행을 가거나 관련한 콘텐츠도 많이 나오는데, 여행의 윤리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 작품이 마무리되면 차기작은 생태문제와 관련된 것을 생각 중인데요.「오래된 협약」과 비슷하지만「오래된 협약」이 조금 아름답게 그렸다면 좀 더 어둡게 인간과 지구의 불편한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일단 책이 나오면 챙겨서 읽어주시는 분들께 굉장히 감사드려요. 독자분들께 부탁하고 싶은 건 없고(웃음), 그냥 감사해요. 소설을 쓰다 보면 쓰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독자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 열심히 쓰게 되고, 또 글이 더 잘 써지기도 하거든요(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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