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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러시아의 문화 이해하기

by 이덕휴-dhleepaul 2022. 7. 21.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이해 라는 책은 일찌기 읽어 봤는데

러시아인에 대한 밀착 이해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러시아인이 웃지 않는 열 가지 이유

DEC 16 2013
이오시프 스테르닌
 

(사진제공=Shutterstock/Legio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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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미소에는 그 민족성이 다분히 배어 있다. 다른 나라에서 미소가 갖는 의미와 완전히 상반된다고까지 말하기는 그렇지만,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외국인 눈에 러시아인은 어둡고 침울하고 무표정하다. 그러나 무표정이 곧 침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무표정'이라는 현상은 러시아인의 비언어적 행동양식과 소통 문화 전반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민족적 특징 중 하나이다.

러시아인의 미소에 깃든 민족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1. 러시아인은 웃을 때 입술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윗니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랫니와 윗니를 모두 드러내고 웃는 것은 저속하다고 여기며 이런 모습을 '이빨을 드러내다' 혹은 '말처럼 웃는다'고 표현한다.

2. 러시아인과의 대화에서 미소는 친절의 표현이 아니다. 입가를 떠나지 않은 예의바른 미소를 러시아에서는 '접대용 미소'라고 부르며, 그런 미소를 짓는 사람은 진실하지 않고, 음흉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진심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3. 러시아인은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짓지 않는다. 아는 사람인 경우에야 러시아인들은 미소를 짓는다. 상점의 점원들이 손님에게 웃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원은 손님을 개인적으로 모르기 때문이다. 손님과 안면을 트고 나서야 점원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4. 러시아에서는 상대방의 미소에 바로 미소로 화답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도 덩달아 같이 미소를 짓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이야기를 좀 나누자는 신호로 받아들이곤 한다.

5. 러시아인의 미소는 상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의 신호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소를 보낸 사람이 상대에게 개인적으로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소가 개인적인 호감을 표시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러시아인이 아는 사람에게만 미소 짓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호감이 아직 싹틀 리 없으니 말이다. 생면부지인 상대가 미소를 지으면 "우리가 아는 사이였던가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6. 러시아에서는 공적인 업무나 어떤 책임 있는 일을 할 때 웃지 않는다. 세관원이 웃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진지하게 업무를 수행 중이라 그런 것이다. 점원이나 종업원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수업시간에는 웃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이나 수업을 준비할 때, 어른과 대화할 때 배시시 웃지 말고 진지한 태도를 보이라고 교육한다. 러시아 초중고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지적이 "웃지 말고 필기해라" 이다.

7. 러시아인의 미소는 기분이 좋거나 상대방에 호의를 느끼고 있음을 솔직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소는 언제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러시아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존재한다. 미소는 반드시 즐거운 기분이나 우호적인 태도의 진실한 표현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화 상대에게 실제로 호의가 있거나 그 당시 정말로 기분이 좋을 때만 웃을 '권리'가 있다.

8. 러시아인이 미소 지을 때는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의 미소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진다. 상대방이 미소 짓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면, 러시아인은 굉장히 불안감을 느끼게 되며, '미소'의 이유를 꼭 밝히려 든다.

9. 미소는 주위 사람이 보기에 시의적절해야 하고 상황에 맞아야 한다. 긴장된 상황 또는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이 있는 사람 등 앞에서 미소를 짓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10. 러시아에서 '미소'와 '웃음'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실생활에서는 이 두 가지가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고 서로 비슷하기도 하다.

확실히 러시아에서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웃는지 모르겠네!"

러시아 의사소통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진실성과 솔직함이다. 러시아의 집단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 삶의 방식은 모두 서로에 대해 알고 주위에 특별히 숨기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내포한다. 바로 여기서 감정과 기분을 숨기지 않으려는 성향과 습관이 기인한다.

수 세기 동안 러시아인의 하루 하루 일상과 삶은 생존을 위한 힘겨운 투쟁에 다름 아니었다. 평범한 러시아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이에 따른 걱정근심이 곧 '러시아인' 하면 생각나는 굳은 얼굴 표정으로 고착됐다. 이렇게 여건 하에서 미소 짓는다는 것은 무사안녕, 풍요, 즐거운 기분 같은 '예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런 것은 소수에게만 그리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락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소는 의혹, 시기심, 심지어는 "뭐가 좋아서 그렇게 히죽히죽 웃어대는 거냐?"라는 반감까지 불러일으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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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통째로 ‘들었다 놨다’...소련의 건물 이동 기술

JUNE 30 2017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유럽 국가 수도들 중에서 철거된 그리고 철거 중인 건물이 가장 많은 곳은 모스크바다. 그뿐이 아니다. 모스크바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진 건물의 수에서도 1위다.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1930년대에 시작해 1983년까지 모스크바에서는 무게가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수많은 건물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스탈린의 모스크바 재건 사업에 따른 것이었다.
프린트 스크린/ youtube.com

‘건물 이사’는 소련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집 또는 다른 건축물을 통째로 이전해왔다. ‘건물 옮기기’ 방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이탈리아 엔지니어인 아리스토텔레스 피오라반티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가 1455년에 볼로냐의 성모마리아 성당의 종탑을 10미터 이상 이동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건물 옮기기 기술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소련에서였다.

1935년 수도인 모스크바에 새로운 사회주의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모스크바 종합 재건 계획이 수립됐다. 처음 재건에 들어간 것은 고리키 거리(현 트베르스카야 거리)였다. 고리키 거리 양쪽으로 서있는 건물들의 파사드 높이를 맞추고 스타일을 통일시킴으로써 거리를 곧게 그리고 더 넓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당국은 크렘린으로 통하는 이 거리가 웅장한 모습을 갖기를 바랬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지도 상의 고리키 거리 양편으로 붉은 직선이 그어졌다. 이 붉은 선을 넘어 ‘튀어나온’ 건물들은 철거 또는 이동이 지시됐다.

자고 일어나니 창밖 풍경이 바꿨어요!

원한다면 푸른 바다에서도

파란 하늘에서도 항해를 할 수 있어!

원한다면 집도 옮길 수 있어.

집이 방해가 되면 말이지!

이 짧막한 글에서 아동작가 아그니야 바르토는 1937년 10월에 있었던 세라피모비치 거리의 한 건물 이동 광경을 묘사했다. 이 건물은 모스크바에서 여덟 번째로 이동된 건물이었는데, 단순히 장소를 이동시키는 것뿐 아니라 거의 2m를 지상에서 뛰우는 작업을 했다.

1937년 9월 27일자 이즈베스티야는 이렇게 썼다.

“세라피모비치 거리에서 5층짜리 석조건물을 기중기로 들어올리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며칠내로 굴대에 올려진 이 집은 레일을 타고 이동해 새로운 지반에 올려지게 된다. 이동 중의 건물에서도 전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모든 생활이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이와 동시에 고리키 거리 24번지 건물을 50미터 이동하는 작업이 준비 중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건물의 주민인 알렉산드르 발틴(60세)은 로시스카야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두달에 걸쳐 건물을 이동시켰다고 모친이 얘기하곤 했다. 집이 흔들린다거나 진동이 느껴지는 경우도 없었고 창문도 덜컹대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도 밤에 깨지 않고 잘 잤다고 하니까. 엔지니어들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보장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동 중에도 집안 모든 편의시설이 작동했다. 불도 들어오고 상수도와 전화도 됐다. 현관에는 목제 계단을 달아서 건물과 함께 움직였지요.”

또 하나의 운좋게 이동된 건물은 1907년에 지어진 구(舊) 사바 여인숙으로 현재 주소지는 트베르스카야 6번지다. 이 건물은 고리키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 파사드는 모던과 바로코적 요소가 혼합된 유광 타일로 장식돼 있었다. 하지만 수도 재건 계획이 진행되면서 이 건물도 이동시켜야 될 필요성이 생겼다. 그 결과 과거 이동된 그 어떤 건물보다 더 무거운 이 건물(2만3천 톤)을 이동시키기로 결정됐다.

 

집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렴 영화의 장면. 출처: youtube.com

준비작업에 4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정작 건물을 이동하는 데는 하룻밤밖에 걸리지 않았다. 건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불안한 나머지 이동할 때 사전에 고지를 해달라고 했지만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부러 잘못된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어느날 밤 이동 작업을 실시했는데, 얼마나 조용히 이동이 끝났는지 대부분의 주민이 아침에야 창밖 풍경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떠도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저녁에 큐빅으로 쌓아놓은 탑이 한밤의 이동을 겪고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도 한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트베르스카야 거리와 마모놉스키 골목 모서리에 위치한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안과병원을 이동시킬 때 부딪혔다. 건물을 자리에서 더 안쪽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97도 방향을 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물의 파사드가 마모놉스키 골목 방향으로 나게 됐다. 이 경우에도 이동 중에 건물 안에서 정상적으로 진료가 진행됐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의사, 환자가 그대로 있었고 수술도 진행 중이었다. 현재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안과가 들어서 있다.

이동 기술

건물을 옮기기 전에 지반에서 분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건물 주위로 빙 둘러 구덩이를 판 후 강삭(綱索)을 이용해 건물을 지반에서 “잘라냈다.” 그후 특수 빔으로 건물을 고정하고나서 차대를 만든 후 그것을 특수 굴대 위에 올렸다. 굴대는 사전에 설치해 놓은 레일을 따라 움직었다. 대개는 권양기로 건물을 앞에서 견인했고 기중기로 뒤에서 밀었다. 준비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동 자체는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이동 작업에는 주로 지하철 터널 굴착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던 지하철 건설자들이 동원됐다. 수십 년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거의 70채의 건물이 이런 방식으로 이동됐다.

‘아르히텍토르’ 통신사의 예카테리나 추구노바 사장은 “우리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을 현재 해외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뉴스포털 ‘스트라나(strana.ru)’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예로, 독일인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오래된 교회를 새로운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정작 기술이 개발된 러시아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기술을 외면해왔다. 이제는 건물을 애써 ‘들어다 놨다’ 하는 것보다 그냥 철거하고 ‘똑같은 것’을 다시 짓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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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러시아의 미인(美人)의 기준은?

JUNE 30 2017
엘레나 김
RUSSIA포커스
 
슬라브 민족을 포함해 중세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모성애와 결부돼 있었다. 이때문에 무엇보다 풍만한 몸매, 듬직한 체격, 큰 키, 당당한 자세가 미의 기준이 됐다. 그런가 하면 젊은 아가씨들에겐 ‘슬라부트노스티’가 있어야 했다. ‘슬라부트노스티’란 과연 무엇이고 러시아 미인의 진정한 기준은 무엇일까?
Flickr.com/ 알렉세이 예판친체브

‘명성 높은’, ‘영예로운’이란 뜻의 단어(славный)에서 파생된 ‘슬라부트노스티(славутность)’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호감가는 외모, 매력, 예의바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결한 이름으로 그것을 잃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겨졌다.

혈색이 좋아야 미인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여러가지 자료에 따르면 과거 러시아 여성들은 80kg은 넘어야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기준은 상인, 농노, 수공업자, 군인 등 사회 모든 계층에서 동일했다. 반면에 마른 것은 심각한 단점으로 여겨졌다. 중세 러시아에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었으며 말랐다는 것은 병약함의 징후로 여겨졌다. 병약한 처녀를 아내로 들이면 아이를 유산하거나 출산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고 참을성 있는 여자들만이 현모양처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건강한데 체질적으로 마른 처녀들은 시집을 잘 가기 위해 잔꾀를 부리기도 했다. 겉옷 안에 블라우스를 겹겹이 입어 포동포동해 보이도록 한 것이다.

미의 기준은 균형잡힌 얼굴, 뽀얀 피부에 발그레한 볼,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었다. 이러한 기준을 모두 갖춘 미인들을 ‘혈색이 도는 뽀얀 얼굴(кровь с молоком)’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런 기준을 다 맞추기란 어렵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얼굴을 희게 만들어주는 분과 볼을 붉게 해주는 용도로 비트가 사용됐다. 검은 눈썹을 위해 안티몬 가루로 특수 염료를 만들었으며 지방과 재를 섞은 것이나 석탄으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검은 담비 같은 눈썹(собольи брови)’이란 표현은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민간에서 아주 자주 사용됐다.

미의 기준은 '혈색이 도는 뽀얀 얼굴'이었다. 출처: 예브게니 카르마노브/ Flickr.com

1635~1639년에 독일 수학자 아담 올레아리우스는 러시아 여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중년의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보기 좋은 몸매에 부드러운 얼굴과 몸을 가졌다. 하지만 도시의 여성들은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칠해 마치 누군가 밀가루 한 웅큼을 얼굴에 끼얹고 붓으로 뺨에 붉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보인다. 눈썹과 속눈썹도 검게 칠하는데 가끔 밤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들은 (연지를 칠하는 것보다 태어난 그대로가 더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웃여자나 말상대가 하도 화장을 억지로 권하는 바람에 자연미가 인공미에 가려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처럼 화장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개성있는 자연미가 더 높이 평가됐다.

걸음걸이도 중요시됐다. 걸음걸이는 ‘백조가 헤엄을 치듯이’ 서두르지 않고 침착해야 한다. 중세 러시아의 아가씨들은 우물물을 길어 멜대에 물양동이를 지어나르면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침착하게 걷는 법을 연습했다.

발뒤꿈치까지 오는 긴 머리

러시아 여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고 다녔으며 그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은 아니었다. 안나 샤이두로바/ Flickr.com

중세 러시아에서는 머리카락을 ‘코스미(космы)’라고 불렀는데, 머리카락을 우주(космос)와의 소통을 돕는 일종의 안테나로 여겼기 떄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여자와 남자 모두 머리를 길렀다. 러시아 처녀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고 다녔으며 그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은 아니었다.

슬라브인들은 세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첫 번째는 영혼의 세계, 꿈과 사고인식의 세계(навь, 과거)다. 두 번째는 우리가 지금 사는 세계, 감각기관으로 인지하는 세계(явь, 현재)다. 세 번째는 신들의 세계(правь, 미래)다. 여자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세 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었는데 이것은 이 세 가지 세계의 통합을 상징했다. 땋은 머리채가 등을 따라 가지런히 놓이면 우주의 기운이 머리카락을 통해 척추로 들어가 장차 어머니의 역할에 필요할 생명력을 몸과 영혼에 불어넣어준다고 믿었다.

러시아 여자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세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었다. 출처: 막심 보고드비드/ 리아노보스티

건강하고 긴 머리카락은 수많은 러시아 동화에서 여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나온다. 동화에 나오는 미녀들은 대개 발뒤꿈치까지 머리를 기르고 있다. 땋은 머리채의 폭은 손바닥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헤어샵에서 할 수 있는 머리카락 이어붙이기 같은 기술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풍성한 머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처자들은 땋은 머리에 말총 가닥을 엮어 넣기도 했다.

땋은 머리를 보면 주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젊은 여자가 머리를 하나로 땋았다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머리에 리본을 묶었다면 시집 갈 나이가 됐다고 잠재적 신랑감들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 리본이 만약에 두 개라면 이미 신랑감을 정해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러시아 미인. 출처: 블라디슬라프 나고르느/ Wikipedia.org

결혼 후에 여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는데 자신과 미래의 아기 두 사람 몫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왕관처럼 머리 위로 올려 남의 시선으로부터 머리카락을 가려주는 머릿수건으로 고정했다. 여자에게서 머릿수건을 뺏는 것은 지독한 모욕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나온 표현이 ‘опростоволоситься(모자/머릿수건을 벗다, 머리를 드러내다, 웃음거리가 되다)’, 즉 ‘опозориться(자기 이름을 더럽히다, 망신을 당하다)’다.

결혼하기 전.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

연작 <발키리아의 보물>에 작가 세르게이 알렉세예프는 여인에게 머리카락을 잃는 것은 끔찍한 형벌이라고 썼다. 여인의 머리카락을 자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으며 둘 사이의 우주적 관계가 사라지며 남편이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 여자들은 자신이 마음을 준 사람에게만 네 개의 손가락을 위한 구멍이 난 빗으로 자신의 긴 머리를 빗도록 허락했다. 남자는 빗을 손가락에 끼워 긴 머리를 빗과 손가락으로 동시에 빗겨주었는데 빗질을 하는 동안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나이 많은 노파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떨구게 되면 새들이 둥지로 물고 가서 머리카락 주인이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머리는 손가락으로 꼼꼼히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집중하면서 빗어주면 좋다.

부지런한 팔방미인

호감가는 외모와 숯많은 머리만으로 ‘슬라부트니차(славутница)’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미녀가 되려면 명석한 두뇌와 원만한 성격도 필수다. 이때문에 요조숙녀들은 예절, 순종, 온순함에 더해 쾌할한 성격 그리고 노래와 춤추는 법을 배웠다.

'슬라부트니차'들은 부지런해야 했다. 출처: 콘스탄틴 마콥스키/ Wikipedia.org

‘슬라부트니차’의 중요한 자질 중에는 부지런함도 있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뜨개질, 바느질, , 요리, 집안일 등을 배웠다. 젊은 처녀들 사이에서는 자수가 특히 인기였는데 현모양처가 되려면 자신의 결혼 예복에는 직접 자수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러시아 여자들의 ‘이상형 남자’가 되기 위한 5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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