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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마르크스의 《자본론》

by 이덕휴-dhleepaul 2022. 12. 2.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해

 

대중의 급진화와 저항의 분출

 

1990년대 이후 대중이 급진화하고 신자유주의에 맞선 저항이 일어난 것이 주요 요인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주장의 지적 토대는 초기에는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자본론》에 대한 관심도 다시 살아난 것이죠.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론》 강독과 그 강의를 엮어 낸 책[국역: 《맑스 『자본』 강의》, 창비, 2011]이 큰 관심을 끈 것을 보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요인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부흥하고, 《자본론》을 둘러싼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논의가 활발해진 것입니다. 이와 관계 있는 한 가지 현상이 MEGA(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 전집) 출판 작업의 진척입니다. 이 작업 덕분에 마르크스가 쓴 미출간 원고를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본론》을 탐구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그리고 《자본론》 연구는 단지 학술적 관심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특히 2007~08년 대불황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자본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1970년대에 《자본론》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그동안 《자본론》을 다시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싶었는데, 이번 책을 쓰면서 그럴 수 있었습니다.

자본은 사회관계를 가리키는 개념

당신의 신간 저서의 핵심 주장 하나는 자본을 관계로, 사회관계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개념을 강하게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래야 마르크스가 한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1840년대 직후부터 쭉 자본은 어떤 사물이나 일정량의 화폐가 아니라 사회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그 사회관계를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눠 규정합니다.

첫째는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서는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착취가 일어납니다.

둘째는 자본가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자본론》의 초고인 《그룬트리세》(『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마르크스는 “많은 자본들”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관계는 특히 라이벌 자본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형태를 띱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본질로 규정한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관계와 그 두 가지 관계의 상호 연관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통찰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자본론》에 관한 논의들을 보면, 자본을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트와 네그리는 자본을 모종의 사물로, 즉 그들의 책에서 “다중”이라고 부른 사람들을 피 빨아 먹으며 기생할 뿐 별일을 하지 않는 요소로 제시합니다.

노동가치론으로 현실을 설명하기

당신은 《자본론》을 해석하면서 마르크스가 영국의 걸출한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와 대결한 것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마르크스가 리카도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무엇이고 걸러 낸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마르크스가 리카도를 비판한 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에 관해서는 매우 많은 논의가 있고, 《자본론》이 헤겔의 《논리학》에서 많은 빚을 졌다는 얘기는 많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1850년대에 《그룬트리세》를 쓰면서 헤겔을 읽었다고 말한 사실은 유명하죠.

마르크스와 리카도의 관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을 보면 헤겔이 등장하고, 그래서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헤겔이 언급되는 부분은 무척 적습니다.

리카도에 대한 언급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자본론》의 초고 중 지적으로 매우 중요한 원고인 《1861~63년 수고》의 핵심 부분은 압도적으로 리카도 비판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며 한 일을 이해하려면, 헤겔·리카도 둘 다와 관련지어 마르크스를 봐야 합니다.

마르크스가 리카도에게서 받아들인 것은 노동가치론을 매우 분명히 표현한 진술입니다. 노동가치론은, 상품이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사회적 필요노동에 따라 교환된다는 생각입니다. 이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자본과 임금노동의 적대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오늘날의 경제와 임노동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리카도의 문제는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카도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를 어떤 생산 형태에서든 으레 나타나는 관계로 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를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간단히 말해, 리카도는 자신이 밝혀 낸 자본주의의 모순을 다뤄야 할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반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일시적인 것으로, 사회적 생산의 여러 형태의 하나일 뿐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리카도의 이런 문제는 리카도가 택한 방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리카도는 노동가치론이 옳다고 단언하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다양한 방식을 모두 다루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흔히들 돈이 저절로 생겨나고 임금노동 착취와는 상관 없다고 여기는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리카도는 다루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이런 각종 구체적 양상이 모두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에 실제로 담기지는 않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방법에서 헤겔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헤겔은 겉보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밝혔습니다.

《자본론》의 방법,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은밀한 본질을 들춰내는 데 유용한 분석 도구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기”가 있죠. 《자본론》에서 사용한 마르크스의 방법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기”는 마르크스가 《그룬트리세》 서문에서 쓴 말입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과학적으로 올바른 방법을 설명하면서 그랬죠. 이것은 그가 헤겔에게서 빌려온 문구입니다. 이 대목에서 헤겔이 마르크스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알려면, 앞에서 말한 마르크스와 리카도의 관계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리카도를 보면, 노동가치론과 자본주의의 여러 특징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즉, 금융시장이나 지대 같은 것들이 노동가치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여러 곳에서 리카도가 저지른 오류를 지적합니다.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이라는 추상적 명제를 구체적 특징들과 연관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매개적 단계들”을 하나씩 이어 나가야 하는데, 리카도는 그러지 못한 것이죠.

달리 말해,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구체적 양상들이 어떻게 해서 가치와 잉여를 추출하는 기초 과정에서, 즉 생산에서 일어나는 착취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에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노동가치론과 종합적으로 연관지어 자본주의의 실제 작동 방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겉모습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생산에서 일어나는 착취라는 근본적 관계가 어떻게 가려지고 감춰지는지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겉모습들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자본론》 제3권에서 그랬습니다.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기”라는 방법은 자본주의 체제의 복잡한 특징들을 하나씩 하나씩 도입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 방법이 의도한 바는 자본주의의 겉모습이, 가치를 창출하고 착취하는 체제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근본적 본질과 왜 다른지 밝혀 내는 것입니다. 그런 특징들을 적절한 지점에서 도입해 분석해 나가면, 그 특징들이 체제 전체에 어떻게 꼭 들어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네그리와 하트, 데이비드 하비, 그리고 마르크스

《자본론》에 관해 논의하면서, 순전히 이론적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함의까지 얘기하는 사람들이 임금노동의 구실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런 논의를 간략히 설명하고 사례를 알려 주십시오.

하트와 네그리가 딱 맞는 사례입니다. 요즘에 나온 그들의 주요 저작 《연방》에서 하트와 네그리는 자본이 본질적으로 기생적인 존재가 됐다고 말합니다.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창조적 활동이 일어나는데, 그 외부에 있는 자본이 이 창조적 세계로부터 가치를 뽑아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는 지대가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가장 유력한 형태가 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리카도는 둘 다 그들과 다르게 봅니다. 생산하려면 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토지 소유자들은 생산을 직접 조직하지는 않지만 노는 땅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잉여가치를 가져갑니다. 이것이 지대인 것이죠.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이 가장 분명한 사례이지만, 이런 유형의 생각이 얼마나 흔한지 보면 적잖이 놀랄 것입니다. 심지어 하비조차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이런 종류의 생각에 아주 많이 양보합니다.

이런 생각은 《자본론》의 핵심 사상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르크스가 직접 출판한 《자본론》 1권의 핵심 사상을 말입니다. 그 사상은 곧, 임금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고용돼 생산하며 착취당하는 생산 과정에서 가치와 잉여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던져 볼 핵심적 질문은 이렇습니다. 누구의 설명이 이 세계에 더 잘 들어맞을까요? 마르크스의 설명이 여전히 지금 세계에도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동아시아로 산업 자본주의가 확장한 것입니다. 그 과정의 초기에 천연자원 장악, 토지 강탈, 농민을 땅에서 쫓아내기가 있었다고요? 물론 그랬습니다. 이런 면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하비의 말은 옳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대규모 산업단지가 생겨나고, 그 속에서 임금노동자들이 죽도록 고생하며 제조업 제품을 생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재생산되는 데서 핵심적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마르크스가 근본적 특징이라 여긴 것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자본주의는 매우 파괴적이고 낭비적일 뿐 아니라 엄청나게 생산적인 착취 체제라는 것입니다.

이윤율 저하 경향과 금융은 어떤 관계인가?

경제 위기를 다룬 장(章)에서 당신은 마르크스가 위기에 대해 “다차원의” 개념을 가졌다고 썼습니다. 그래도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과 이것이 금융시장과 주고받는 영향을 중시했다고도 썼죠. 이에 관해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마르크스는 원래 《자본론》을 6권짜리 방대한 작업의 일부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기획의 대단원은 세계 시장과 경제 위기였죠.

이처럼 마르크스는 경제 위기를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기획을 완성시키는 데 가까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포기한 것 같아요.

마르크스는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체계적 분석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본론》을 위한 원고들을 보면, 경제 위기에 관한 꽤나 복잡한 설명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 위기론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저는 여섯 개로 분류합니다. 그중 핵심적인 것이 당신의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첫째는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입니다. 이 사상은 마르크스가 리카도에게서 물려받아 변형한 것입니다. 리카도는 농업 생산성이 떨어져 이윤율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면 임금이 올라 이윤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반대로 봤습니다. 노동생산성이 점점 더 향상돼서 이윤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 이유는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그 유명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생산수단에 투자된 자본과 노동자 고용에 투자된 자본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룬트리세》부터 《자본론》 제3권까지 쭉 보면, 이 이윤율 저하 개념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이 상쇄 경향이라고 부른 것을 점점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에는 이윤율을 낮추는 힘과 이윤율을 다시 회복시키는 힘이 둘 다 내장돼 있습니다.

이 상쇄 경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불변자본(생산수단에 투자된 자본)의 가치 하락·파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경제 위기를 매우 중요한 상쇄 경향으로 봅니다. 위기가 닥치면, 그동안 축적된 자본이 이제는 수익성이 좋지 않아 대량으로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노릇을 한다고 봅니다. 19세기 중반에 엄청난 금융 위기가 닥쳤고, 마르크스는 이것을 이해하고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시에 런던에서 살고 있어서 금융 위기를 살피기에 좋은 처지였죠.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에서 거품 형성과 공황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축적 과정이 촉진됩니다. 거품이 형성될 때는 투자자금을 모으기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금융 공황이 터지면 그런 자본이 파괴됩니다. 이것은 이윤율 수준을 회복시켜 체제가 다시 확장하는 데서 필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경제 위기에 대한 매우 정교한 이론을 이루는 요소들을 살펴봤습니다. 저는 2007~08년 사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서 이 요소들이 매우 유용하다고 봅니다. 또, 그 사태가 낳은 침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봅니다.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서 마르크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는 구닥다리이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이후 자본주의는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많이 변했다는 얘기가 흔합니다. 이와 반대로 당신은 마르크스의 설명이 오늘의 세계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에 견줘도 그 타당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매우 초기부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라고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그룬트리세》에서 그는 세계시장 창출이 자본 개념 자체에 내재한 경향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가 단지 빅토리아 시대 산업 자본주의를 설명했다고만 보는 것은 심각한 오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말 중에 낡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저작들이 지금 현실에도 들어맞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중국에 실제로 관심이 있었고, 중국이 미래의 세계 자본주의에 중요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1858년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이런 흥미로운 말을 남깁니다. “저는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가 미국과 중국으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에서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나머지 세계의 이런 신생 자본주의가 옆에서 공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마르크스는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1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비록 당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딱 맞게 얘기했지만 말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 하나는 그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을 이해하고자 더 많은 자료를 모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중국이 자본 축적의 주요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마르크스가 발전시키고 있던 분석으로 설명이 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확장이 위기, 환경 파괴,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으로 커지고 있는 임금노동 착취와 공존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결합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었고,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있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몸을 풀고 있는 중국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보도를 보면, 지난 15~20년 동안 베트남에서 발전한 거의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세계 자본주의와 세계 시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노동자들은 단지 중국에 반대해서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임금 인상 등을 위해서도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서 마르크스의 저작이 얼마나 적절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4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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