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매우 작은 양자에 대한 것을 다루는 과학으로, 원자와 기본입자의 규모에서 물질의 거동과 에너지와의 상호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대조적으로 고전물리학은 오로지 인간 경험을 통해 익숙한 규모에 대해서만 설명하는데, 예시로는 달과 같은 천체의 움직임 등이 있다. 고전물리학은 현대 과학과 기술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과학자들은 큰 규모(거시규모)와 작은 규모(미시규모)의 세계에서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였다.[1] 관측된 현상과 고전이론의 불일치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발전이라는 물리분야의 큰 변혁을 일으켰고, 기존의 과학적 사고관을 변화시켰다.[2]
빛은 어떤 측면에서는 입자처럼 행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물질(전자나 원자같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우주의 "어떠한 것들")또한 파동같은 행동을 보인다. 네온 사인과 같은 몇몇 광원은 특정한 주파수의 빛만 방출한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빛이 전자기복사이면서 독립적인 단위인 광자임을 보여주고, 그 빛의 에너지, 색깔, 스펙트럼의 세기를 예측한다. 하나의 광자는 전자기장의 관측 가능한 가장 작은 양인 양자이다. 왜냐하면 부분적인 광자는 관측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큰 규모의 고전역학에서는 연속적으로 보였던 각운동량 같은 물리량들이, 작고 확대된 규모의 양자역학에서는 양자화 된 것으로 밝혀졌다. 각 운동량은 따로 떨어져 있는 허락된 값들 가운데 하나만 가질 수 있고, 값들 사이의 간격은 매우 작아서 원자 수준에서야 불연속성이 드러난다.
양자역학의 많은 부분들은 직관적이지 못하고[3] ,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는 규모의 현상과는 많이 다른 현상들을 설명해야하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에 따르자면, 양자 역학은 "자연을 터무니 없는 그 자체로 다룬다("nature as She is – absurd")".[4]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측정도구를 한 점에 가까이 다가가게 할수록 (입자의 위치), 같은 입자의 다른 관련된 측정(운동량)이 덜 정확해야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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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量子力學, 영어: quantum mechanics, quantum physics, quantum theory)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 등 미시적인 계의 현상을 다루는 즉, 작은 크기를 갖는 계의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분야이다. 또는 아원자 입자 및 입자 집단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이다.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한다.[1] 양자역학의 양자는 물리량에 기본 단위가 있으며, 그 기본 단위에 정수배만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물질의 운동이 본질적으로 비결정론적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기술,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론으로 평가된다.[2][3]
19세기 중반까지의 실험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아원자 입자와 관련된 실험들의 결과는 고전역학으로 설명을 시도할 경우 모순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역학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양자역학은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기로 하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에 의해 만들어진 전적으로 20세기에 이루어진 학문이다. 양자역학에서 플랑크 상수를 0으로 극한을 취하면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으로 수렴하는데, 이를 대응 원리라 한다.
미시세계를 탐구하는 양자역학에서 물리량은 기본적으로 불연속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거시세계를 탐구하는 고전역학에서 물리량은 연속적이였다. 다루는 이는 관찰 기준의 차이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비유로 우리가 모래사장을 멀리서 바라본다고 하면 이는 우리가 물리현상을 거시세계에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찰에서 모래사장의 표면은 연속적으로 보인다. 이는 거시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물리현상에서 물리량이 연속적으로 관찰된다는 것에 비유된다. 만약 우리가 점점 모래사장에 가까이 다가가 모래사장을 관찰한다면 이는 거시세계에서 미시세계로 관찰의 단위를 줄인 것이다. 모래사장 가까이서 모래사장을 관찰한다면 모래사장의 표면은 불연속적으로 관찰 될 것이다. 이는 미시세계에서 물리현상에 물리량이 불연속적으로 관찰 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즉, 거시세계에서 특정 물리량을 관찰하면 그 물리량의 불연속성이 미시세계의 관찰 기준에 비해 너무 미세해 마치 그것이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관찰 단위가 거시세계보다 작은 미시세계에서 대상을 관찰하면 그 불연속성이 보이더라'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역학, 전자기학(일반 상대성 이론은 제외)을 포함하는 고전 이론을 일반화한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양자역학의 효과는 거시적으로는 관측이 어렵지만[4] 고체의 성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양자역학 개념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드하스-판알펜 효과는 양자역학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원자 또는 그보다 작은 영역에서는 분명해진다.
양자역학이라는 용어는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이 처음 제시했다. 독일어 'Quantenmechanik(퀀텐메카닉)'이 영어 'Quantum mechanics'로 번역되었고 일본에서 이를‘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번역했는데 이것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5]
- 1900년 실험으로 알고 있는 흑체 복사의 자외선 파탄을 해결하여 에너지 밀도의 주파수에 대한 함수를 도출하기 위해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양자화)의 개념을 도입했다. 양자역학의 기본 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상수(Planck constant)가 h라는 표시로 등장하였다.[6]
-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가 양자(광자)로 구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로써 광전 효과를 설명하였다.
- 1907년 아인슈타인은 양자 가설을 사용하여 고체 비열의 온도 의존성을 설명하였다 (아인슈타인 모형).
- 1912년 앙리 푸앵카레가 "양자론의 측면에서(Sur la théorie des quanta)"라는 논문에서 양자화의 엄밀한 정의를 논의 하였다.[7][8]
- 1913년에는 보어가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소의 불연속적인 스펙트럼을 양자화를 이용해 설명하는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 1924년에 드브로이는 드브로이파(물질파)의 개념을 주장했다.
- 1926년경엔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가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이라는 두 가지 형식이 제안되었고, 슈뢰딩거는 이 두 형식이 동일한 물리학의 다른 표현임을 보였다.
-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도입하였고, 거의 같은 시기에 보른에 의해 파동함수가 명확하게 해석되었다. 이즈음, 디랙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합하여 디랙 방정식을 만들었고, 또 브라-켓 표기법을 도입하였다.
- 1932년 폰노이만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화를 하였다.
- 1940년대엔 파인먼, 다이슨, 슈윙거, 도모나가에 의해 양자전기역학이 성립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폴링의 양자화학을 필두로 양자역학이 여러 실용적인 문제와 미시계의 시뮬레이션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코펜하겐 해석의 완성자인 폴링, 원자 폭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 등의 학자들의 노력으로 발전하였다. 최근 밀도범함수이론이 발전하여, 슈뢰딩거의 방정식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근사적으로 풀이할 수 있게 되면서, 양자역학의 미시계 모사는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 양자 색역학의 역사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현재 알려진 것과 같은 이론은 폴리처, 그로스, 윌첵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1975년에 완성되었다. 슈윙거, 힉스, 골드스톤 등과 다른 많이 선구적인 연구에 기초해서, 글래쇼, 와인버그, 살람 등은 약한 핵력과 양자전기역학이 하나의 전기·약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을 각각 증명했다.
형성기
제1차 세계 대전의 종료와 평화의 회복과 더불어 물리학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1918년도의 노벨상은 패전국 독일의 물리학자인 막스 플랑크에게 수여되었으며(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21년, 닐스 보어 1922년),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양자론이 진전되었다. 그 주요 중심지는 1921년 이론물리학 연구소가 개설된 코펜하겐(닐스 보어)을 비롯하여 뮌헨(아르놀트 조머펠트), 괴팅겐(막스 보른, 막스 플랑크), 레이던(파울 에렌페스트)이며, 그 밖에 취리히의 에르빈 슈뢰딩거, 베를린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가담하였다. 이 형성기는 또한 젊은 세대의 활약이 특징적이었다.[9]
양자역학 형성의 길은 두 갈래로 되어 있다. 한쪽은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출발하여 대응원리(對應原理)에서 행렬 역학으로 통한 길이다. 또 한쪽은 아인슈타인의 광자로 비롯하며, 루이 드브로이의 물질파를 거쳐서 도달하는 파동역학의 길이었다. 이 둘은 그 형성과정이나 수립된 이론이 전혀 달랐지만 얼마 안 가서 실은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통일체로서의 양자학으로 간추려졌다. 그리하여 양자역학의 형성이 일단락될 무렵, 물리학은 재차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9]
성립기[편집]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였고, 전혀 다른 형태를 갖추고 형성되었으나, 그 이룩한 결과는 일치했다. 이것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에르빈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에서 행렬역학의 유도를 시도하여 양자의 동등성(同等性)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폴 디랙과 파스쿠알 요르단(Pascual Jordan)은 변환이론(變換理論)을 수립하였으며, 이것으로 두 개의 이론은 하나로 통합되어 1926년경에는 양자역학이 성립되었다.[10]
양자역학의 형식은 성립되었어도, 그 물리적 해석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예컨대 파동의 개념에 대하여서도 파동역학의 창시자 슈뢰딩거는 이것을 실재(實在)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아인슈타인의 반론을 받고, 보른의 확률해석이 이에 대체되었으나, 마침내 이것도 불충분하여 많은 모순으로 유도되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결국 낡은 물리학의 사고방식으로는 양자론의 개념은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음이 차차 확실해졌고, 드디어 1927년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등장하였다. 파와 입자의 두개의 상(像)을 결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이 관계는, 미시적 세계에서는 일상경험에서 만들어진 관념은 이미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어는 이 생각을 다시 자연인식 일반에 펼쳐 양자역학의 일관된 해석을 수립하려고 하여, 같은 해 상호보완성 원리를 제창하였다. 현상의 시공적(時空的)인 기술과 인과적 관계와는 서로 보충하는 동시, 서로 배제한다는 것이 골자이다.[10]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새로운 양자론의 해석에 찬성하지 않고 일관하여 EPR 역설 등 의문을 계속 제출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한 양자역학의 주장은 당시의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주어, 물질의 부정이나 주관주의·실증주의 경향의 세력이 증가하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10]
물리학의 미해결 문제 |
양자역학의 철학적 함의
양자역학의 결론은 당시 과학자의 직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이 이론이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많은 해석과 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많은 물리학자가 보어 가 개발한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해석에서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측면은 우리의 지식 부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결정론적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서는 안됩니다.
양자역학을 개발한 이들 중 한 명인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부작위성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양자역학 현상, 원숭이 원격 현상 등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그는 양자역학의 뿌리가 더 깊은 지역 숨겨진 변수 이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에 대한 몇 가지 논박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PER 역설입니다. Bell은 양자역학과 지역 이론 사이의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 PER 역설을 사용했으며 조건부 방법의 명확성을 가정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현실 세계는 조건적으로 모호하지 않거나 지역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영어 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루이스는 비 결정론이 철학적 신념에 이긋난다는 이유로 양자역학을 불완전한 이론으로 간주했습니다. Heisenberg의 불확실성 원칙은 존재론적 불확정성이 아니라 인식론적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코펜하겐의 해석에 대한 보어라는 숨겨진 변수 이론을 지지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논쟁은 당시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 중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표준 양자역학의 현재 해석은 코펜하겐의 해석, 또는 다른 해석, 숨겨진 변수이론의 해석, 아인슈타인의 주장 그리고 이후의 실험으로 전적으로 반박되었는데 이는 봄 이론을 기술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부적인 세계으 ㅣ해석은 조건부 법적 명확성을 포기합니다.
파동함수와 불확정성 원리의 상승(앎의 한계 지적)
양자역학의 새로운 이론은 원자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이론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더 많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새로운 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인가라는 새롭고 매우 급진적인 철학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원자와 관련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여각은 상태 함수라고하는 수학장치를 사용합니다. 양자역학이 제안된 초기부터 많은 물리학자는 파동함수의 의미를 논하며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수학을 이용하여 방정식과 공식의 모든 의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았었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방정식이나 공식적인 지원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파동함수가 전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Heisenberg는 양자역학 이론에 소위 불확실성 원리가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 이론은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물리적 현상을 실용적으로 아주 잘 설명해주는 이론들이 있었는데 그 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100년 전 프랑스의 피에르 가 플라스는 물리학을 통해 세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파동함수와 불확정성 원리의 출현은 그가 원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개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이해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자연과학』12호 (2002년 봄) 특집: "과학과 철학의 만남", 게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응용범위는 별들의 진화와 같은 거시적 수준의 현상에서부터 반도체내의 매우 작은 입자의 흐름과 같은 미시적 수준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세계의 모든 부분에 걸쳐있다.
양자역학은 매우 성공적인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성공은, 가령, 왜 금속이 전기를 잘 통하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일과 이러한 설명에 기반하여 초전도(superconductivity)와 같은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당연시하는 많은 기구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은 양자역학만 주어지면 그 다음에 이런 인공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한 응용일 뿐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근본물리이론이 잘 이해되고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관련 공학이론이나 기술적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창조적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양자역학을 모순 없이 이해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엽에 양자역학(혹은 적어도 그와 비슷한 내용을 지닌 이론)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현재 삶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랐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 도대체 이렇게 근본적이고 성공적인 이론을 왜 모순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 많은 과학철학자들과 적어도 일부의 물리학자들은 왜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혹은 개념적, 인식론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간단히 답해보고 양자역학을 정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몇 가지 시도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내용이 될 것이다.
2.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 물리적 속성의 실재성
서구 물리학에서 세상을 기술하는 여러 방식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 주변의 물리현상 중에서 어떤 것을 기술하고 싶은지(기술대상), 그리고 그 기술대상의 어떤 측면(기술목표)을 기술하고 싶은지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기술하고자 하는 물리적 대상, 혹은 물리계에 적당한 '물리적 속성(physical property)'을 부여한다. 물리적 대상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 일반적으로 물리적 대상은 그 속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그 다음 등장하는 것이 동역학 방정식(dynamic equation)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술목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말해준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설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술목표가 A라고 하더라도 A에 대한 동역학 방정식을 직접 생각하는 것보다, A를 포괄하여 기술대상을 특징지을 수 있는 방식(특성함수)을 고안해서 그 특성함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A의 시간적 변화를 얻어내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고전역학(Classical Mechanics)을 예로 들어보자. 고전역학은 기술대상을 잠재적으로 모든 물체로 잡고 기술목표를 그런 물리적 대상계의 시간에 따른 위치/속도변화로 한정한다. 이를 위해서 고전역학에서는 물체가 질량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 질량이, 물체에 가해지는 힘에 대해 일종의 '저항'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즉, 뉴튼의 제2법칙에 의하면 힘을 받은 물체는 일정한 가속도를 얻게 되는데 이 때 얻어지는 가속도는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전역학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힘이 주어지고 물체가 일정한 질량을 가진다고 상정할 때 물체의 위치변화에 대한 완전하고도 결정론적인 해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해법을 통해 얻은 물체에 대한 기술이 여러 수준에서 매우 성공적일 때 우리는 물체가 정말로 질량이란 것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물체를 밀 때 그 물체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와 같이 고전역학의 경우, 특성함수는 대상계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주어지고 (혹은 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라그랑지안이나 해밀토니안으로), 운동방정식은 뉴튼의 법칙들로 (혹은 라그랑지 방정식이나 해밀톤의 방정식으로) 그리고 측정은 대상계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속성들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특성함수의 여러 변수들이 그대로 대상이 가진 물리적 속성이 되고, 이들 속성이 모든 시간에 대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상정함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는 고전역학적 대상계에 대해 속도를 모든 순간에 부여하며 이 속도가 그 대상계가 늘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는 점에 의의를 달지 않는다.
양자역학적 기술방법이 갖는 어려움은 이렇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가정들이 더이상 정합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위에서 든 여러 가정들을 억지로 모두 유지하려고 하면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은(silver)원자에 대한 스턴-게락의 유명한 실험을 통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양자역학적 기술은 은원자에 스핀이라는 '속성'을 부여하는데, 은원자의 흐름에 불균일한 자기장을 강하게 걸어주면 서로 다른 방향의 스핀을 지닌 은원자들을 분류해 낼 수 있다. 이제 이런 장치를 사용하여 윗방향의 스핀을 가진 은원자와 아랫방향의 스핀을 가진 은원자를 아래 그림에서처럼 분류해 냈다고 생각하자. 이 분류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전제 하에서 윗방향으로 빠져나온 은원자들은 모두 윗방향의 스핀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윗방향으로 빠져나온 은원자를 다시 상하스핀 측정기에 걸어주면 모두 윗방향으로 빠져나오므로 우리가 이렇게 가정하는 것은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이 위로 빠져나온 은원자를 좌우방향의 스핀을 가려내는 또 다른 장치를 통과하게 하자. 그럼 이 중 일부는 왼쪽으로 다른 일부는 오른쪽으로 나올 것이다. 이제 이 장치에서 왼쪽으로 나온 은원자들을 다시 위/아래방향의 스핀을 가려내는 장치를 통과시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우리는 모든 은원자들이 윗방향으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은원자들은 정확히 절반씩 위/아래 방향으로 갈려나온다.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윗방향의 은원자를 다시 한번 왼쪽/오른쪽 스핀측정기에 집어넣으면 과거에 자신의 '정체성'을 잊을 채로 다시 좌우 정확하게 절반씩 갈라져 나온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은원자에게 스핀의 특정방향을 정합적으로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점을 다음 고전적 속성의 예와 비교해보자. 여러 가지 크기의 조약돌을 일정한 그물 크기를 지닌 체로 걸러냈다. 이 걸러내기가 완벽하다면 다시 이 조약돌을 그 체로 다시 걸러내면 모두 이 체를 통과할 것이다. 이제 이 걸러낸 조약돌들의 질량을 재서 평균보다 무거운 것과 그 이하인 것의 두 부류로 나누자. 이제 평균보다 무거운 조약돌을 다시 체로 걸러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조약돌이 모두 체를 통과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고 이는 실험을 통해서 확인이 된다. 이런 사실이 우리가 조약돌의 크기나 질량을 조약돌이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물리적 속성으로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속성인 스핀은 이런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왜 양자역학의 속성에 대해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짐작을 해볼 수 있다. 한가지 가능성은 조약돌의 크기를 잰 후 질량을 잴 때 조약돌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 반면에, 은원자의 상하방향 스핀을 잰 후 그것의 좌우방향 스핀을 재면 상하방향 스핀값이 변해 버린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이것이 양자역학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석에 가장 가까운 견해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은원자의 상하방향 스핀과 좌우방향의 스핀은 수학적인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데, 한 속성에 대한 측정이 다른 속성을 가질 확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어떤 물리적 메카니즘을 통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지에 대해 양자역학이 침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은원자의 상하방향 스핀측정이 이루어지면서, 은원자가, 윗방향 스핀과 아래방향 스핀 중 어느 하나를, 은원자의 특성함수인 파동함수(wave function)에 의해서 주어지는 확률에 따라 부여받게 된다. 그런 후에 파동함수의 환원(reduction of wave function)이라는 것이 일어나는데 이는 측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윗방향의 스핀을 부여받은 은원자들의 파동함수가 그 이후 상하방향 스핀측정이 이루어질 때 항상 윗방향으로 나오도록 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물리적으로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인지 아니면 일종의 형이상학적 전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양자역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결과를 산출해내도록 적당한 해석규칙을 부여한 것인지가 불명확하다. 게다가 양자역학적 측정이 정확히 어떤 과정인지, 그리고 이 측정과정이 다른 종류의 물리적 과정과 왜 달리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양자역학은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3. 아포로 논문과 벨의 부등식: 물리적 상호작용의 비국소성
양자역학의 발전초기에는 비결정론적(indeterministic) 특징이 매우 강조되었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어떤 대상의 특성함수를 완벽하게 알아도 그 대상이 측정을 통해 보여줄 물리적 속성은 일반적으로 오직 확률적으로만 알려질 수 있다. 이는 고전역학과는 달리 특성함수가 물리적 속성을 완전하게 결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비결정론적 특징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통계역학을 포함한 많은 과학이론들이 오직 확률적인 예측만을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비결정론적 특징이 발현되는 방식이 양자적 속성들의 실재성과 양립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이 지닌 기묘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양자적 속성의 실재성 여부만큼이나 양자역학의 정합적인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비국소성(non-locality)의 문제이다. 서로 연관된(correlated) 한 쌍의 입자의 속성은 자신의 짝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모종의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비국소성의 좋은 예이다. 이 비국소성의 근저에는 양자역학의 여러 보존법칙과, 파동함수가 (측정전까지는) 대상계가 공간적으로 얼마나 퍼져 있는가에 무관하게 전체적으로 변화하고 측정이 이루어지자마자 순간적으로 어떤 한 상태로 '환원'된다는 양자이론의 표준적 해석이 놓여있다. 문제는 이런 해석이 함축하는 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두 스핀량의 합(가령 0)이 보존되는 한 쌍의 입자를 생각하자. 이제 이 두 입자를 서로 아주 멀리 떨어뜨려 놓고(가령, 하나는 지구에 놓아두고 다른 하나는 시리우스 별에 놓아둔다면), 지구에 있는 입자의 스핀량을 측정하면(예를 들어 +1), 우리는 은하계 너머에 있는 입자의 스핀량을 구태여 측정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다. (즉, 1) 왜냐하면 양자역학에 따르면, 지구에 있는 입자의 스핀량을 측정하는 그 순간 시리우스 별의 입자는 스핀량 보존법칙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구입자 스핀값과 더해져서 원래의 스핀값 총합이 될 수 있는 스핀량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렇게 멀리 떨어진 입자가 어떻게 순간적으로 지구에서 일어난 측정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눈치빠른 독자라면 이런 사실 자체가 큰 문제가 될 필요는 없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리우스 별에 있는 입자의 스핀이 지구를 출발할 때 이미 그 스핀량을 지니고 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대해 '모르고'있다가 지구에 있는 짝입자의 스핀을 측정함으로써 그전까지 모르던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과 친구가 빨간구슬과 노란구슬이 담긴 주머니에서 구슬 색을 보지 않고 구슬 하나를 각각 꺼냈다. 그리고서 당신은 서울대에 남아있고 당신 친구는 멀리 배낭여행을 떠나갔다. 그 후에 당신은 어느날 자신이 가진 구슬의 색을 보았고, 빨간색임을 확인했다. 그럼 당신은 아주 쉽게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당신 친구가 노란구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당신과 친구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넘어선 초능력을 발휘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 이유는 친구의 구슬이 노랗다는 점은 이미 친구가 서울대에서 구슬을 꺼낼 때 결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당신 모두 그 사실을 몰랐지만, 두 사람 모두 친구가 자신의 구슬을 가지고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그 구슬이 노란색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할 이유가 없다. 고전역학에서 다루는 속성들은 모두 이런 성질을 공유한다.
문제는 양자물리학이 다루는 속성들에 대해서는 이런 소위 '무지(ignorance)'의 해석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앞의 은원자 실험과 비슷한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보면 확실하게 드러난다. 역시 스핀량의 총합이 0이 되도록 서로 연관되어 있는 한 쌍의 입자를 생각해 보자. 지구에 있는 입자의 스핀 상하 성분을 측정해 보았다. 위쪽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시리우스 별에 있는 입자의 스핀은 아래쪽이다. 이제 지구에 있는 입자의 스핀 좌우 성분을 측정해 보았다. 왼쪽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시리우스 별의 입자는 스핀 좌우성분으로 오른쪽을 갖고 상하성분으로 아래쪽을 가진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이런 상황에서 지구에 있는 입자의 스핀 상하성분을 다시 측정한다면 무슨 결과가 나와야 할까? 이건 쉽다. 시리우스 별의 입자가 가진 스핀의 상하성분이 아래쪽이니까 당연히 위쪽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양자역학에 따르면 지구상 입자의 스핀 상하성분은 위쪽과 아래쪽이 반반의 확률로 나온다. 양자역학이 제공하는 이유는 대강 다음과 같다. 두 입자에 대한 두 번째의 좌우 스핀방향 측정이 첫 번째 상하 스핀방향 측정결과를 완전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지구로부터 시리우스 별에 이르는 엄청난 공간에 대해 정의된 상태함수가 측정과정에서 환원되면서, 두 입자가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어떻게 지구상에서 이루어진 측정이 빛의 속도로 가도 8.7년이나 걸리는 장소에 있는 입자의 물리적 속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는가? 혹시 이런 모든 이야기를 단지 '이론적'인 논의일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국소적인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1980년 이후 실험기술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런 비국소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양자역학이 서술하는 여러 속성들이 보여주는 비국소적인 여러 특징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이는 양자역학이 가정하고 있는 스핀과 같은 속성이 질량이나 길이처럼 실재하는 속성이 아니라 불완전한 기술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당신의 친구를 일주일 동안 관찰해서 다음과 같은 행동패턴을 얻었다.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오전 9시까지 학교에 나온다. 그에 비해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후 11시가 되어야 학교에 나온다. 친구가 매우 규칙적인 사람임을 가정하면 당신은 아주 멀리 떨어져서도 각 시간대에 따른 친구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즉 오늘이 월요일 오전 10시라면 친구는 분명히 학교에 있다. 하지만 당신은 월요일이라는 요일 자체가 친구로 하여금 오전 10시에 학교에 있게끔 한 '원인'을 제공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이유는 가령, 월요일에 친구는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고 그 수업이 11시에 끝나니까 10시에는 학교에 있을 것이다는 설명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일은 친구의 시간에 따른 위치를 알려주는 유용한 지표이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준의 설명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일 이외에 부가적인 정보(가령 친구의 수업시간표 등등)가 있어야 당신은 친구의 행동패턴을 완전히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주창자이자 양자이론의 초기 발전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길 원했다. 즉 양자이론은 숨겨진 메카니즘을 보충한 보다 완전한 이론(흔히, '숨은변수(hidden-variable)' 이론이라 부르는)으로 대체될, 예측에는 유용하지만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이론이라는 견해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가진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성격과 양자적 속성이 가진 반실재론적, 비국소적 성격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양자이론이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틀린 이론이라고) 증명하려 노력했다. 양자이론의 주요한 창시자중 하나인 보어와의 여러 차례에 걸친 논쟁에서 갖가지 사고실험을 고안하여 보어를 괴롭힌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이런 공격을 잘 막아냈고 급기야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이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양자이론이 불완전한 이론임을 증명하려 했는데 이를 위해 다른 두 물리학자 포돌스키와 로젠과 함께 쓴 아포로 논문에서 몇 가지 사고실험을 고안했다. 그 사고실험은 아까 우리가 고려했던 비국소적인 상황에서 양자이론에 따르면 동시에 측정가능하지 않은 두 물리량이 실제로는 측정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하거나 아니면 상대성이론에 어긋나는 비국소적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적인 견해는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은 별다른 충돌이 없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비국소적 성격이 너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므로 양자이론이 가정하는 물리량들이 실재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기존의 양자이론은 이 물리량들을 실재하는 방식으로 취급하지 않으므로 양자이론은 불완전한 이론이 되고 만다. 재미있는 점은 이후 논의의 추세는 비국소적 현상이 비록 이상스럽고 우리가 익숙한 어떤 직관과도 어긋나기는 하지만 그것을 자연세계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현상으로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양자적 속성들이 도대체 존재론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시원스러운 답이 나오질 않고 있는데 주로 그 논리적 성격이 부울 대수학적인 고전적 속성과 다르다는 점 정도가 깊이 있게 연구되었다. 이러한 점을 따져보는 것이 양자역학 철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을 이상스럽지만 받아들여야 할, 물리적 세계에 대한 '사실'로 인정하게 된 데는 이를 지지하는 실험적 증거가 많이 나온 것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숨은변수 이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열망이 큰 문제점을 지녔음을 지적한 이론적 작업이 있었는데 그것이 벨이라는 물리학자가 제안한 벨의 부등식이다. 벨의 부등식의 대체적인 의미는 고전적인 물리량들이 만족시켜야 할 최소한의 제한조건을 부여하면 이들을 측정할 때 발생빈도가 만족시켜야 할 일종의 부등식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고전적인 물리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이 부등식이 반드시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고전물리학에서 상정하고 있는 질량과 같은 속성이외에 아인슈타인이 미래의 물리학이 발견할 것으로 기대했던 숨은변수들도 그것이 '고전적' 성격을 갖는 한 이 부등식의 적용영역에 들게 된다. 벨은 이 부등식이 이런 보편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범위에서 양자역학의 이론적 예측과 어긋남을 보였다. 즉, 양자역학이 만약 옳다면 양자역학은 이런 '고전적인' 변수들을 보충해서 얻어진 이론들로부터는 얻어질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이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인슈타인의 기대와는 달리 양자역학에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변수를 더해서 보다 완전한 이론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벨이 이 부등식을 처음 제안했던 60년대에는 양자물리학의 예측이 옳은지, 아니면 벨의 부등식이 만족되는지를 분명하게 결정지어줄 실험을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그 후 관련실험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양자역학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점에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점에 대해 대부분 물리학자들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측정결과를 해석하는 방법과 관련된 보른 해석(Born Interpretation)과 보다 포괄적인 코펜하겐 해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른 해석은 양자물리학의 특성함수에 해당되는 파동함수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와 관련된다. 파동함수는 측정하려고 하는 물리적 속성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한 결과들의 합으로 전개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a|스핀위〉+b|스핀아래〉식으로), 보른해석에 따르면 각각의 상태의 곁수의 제곱값(즉, a2, b2)이 측정시 그 상태가 나올 확률에 비례하게 된다. 그러나 보른 해석은 파동함수를 측정결과에 대한 예측적 도구로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관련될 뿐 파동함수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떤 성격을 지님에는 침묵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자역학의 초기에는 파동함수가 음파나 전자기파와 같은 진정한 물리적 파동일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 가능성이 부정된 상태이다. 이는 고전역학의 특성함수가 속도나 위치와 같은 구체적인 물리적 특성들을 변수로 갖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코펜하겐 해석은 이런 조작적인 파동함수 해석에 기초하여 양자이론에 대한 편의적 해석을 꾀한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양자물리학의 대상계는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는 동역학적 방정식에 따라서 그 특성함수가 결정론적으로 변화한다. 여기까지는 고전역학에서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뉴튼 방정식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과 동일한 양상을 지닌다. 그러나 측정이 이루어지면 이제는 더 이상 슈뢰딩거 방정식이 적용되지 않고 보른 해석에 따라 여러 가능한 결과들 중 어느 하나가 확률적으로 실현되게 된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 두 단계가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에 대해 한 번쯤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둘 사이에 어떤 연결도 존재하지 않는다. 코펜하겐 해석을 보다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측정 전에 양자 대상계가 어떤 물리적 속성을 가졌는지 논의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진다.
이런 표준적인 해석이 가진 문제점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우선 '측정'이 정확히 어떤 물리적 과정인지에 대해서 어떤 체계적인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물리학자들은 개별적인 상황에서 어떤 상황이 측정인지에 대한 매우 잘 정리된 사례별 합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사례들을 모두 아우르는 일반적인 설명은 아직 주어지지 않고 있다. 설사 측정의 물리적 성격에 관련된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여전히 양자역학이 상정하는 여러 주요한 성질들의 실재성 문제는 남게 된다. 앞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성격은 고전통계역학과는 달리 우리의 무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즉, 양자역학적 대상들이 특정 속성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에 관한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할 수 없이 확률을 사용하여 기술한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양자역학적 대상의 속성이 가진 존재론적 모호함이, 단지 일상경험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매우 미세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문제이므로 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세계상에 따르면 거시적 현상이란 결국 미시적 대상들이 합해져서 생겨나기 때문에, 미시적 수준에서는 실재성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가 어떻게 거시세계에서는 그런 실재성이 확고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게 된다. 흔히, 물리학 교과서들은 거시적 수준에서는 물질파의 파장이 매우 짧아져서 양자적 효과가 무시될 수 있다든지, 에렌페스트 정리에 의해서 양자물리학의 예측과 고전물리학의 예측이 거시적 수준에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분석이다. 핵심은 양자물리학의 예측이 어떻게 고전물리학의 예측과 비슷하게 나오는 가가 아니라 도대체 양자물리학의 예측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가령 앞의 예에서 상하스핀 측정 후 위쪽으로 나온 은원자에게 up-spin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은원자가 up-spin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그 은원자가 좌우스핀 측정 이후에는 오직 절반의 확률로만 spin-up을 가지는 것일까? 이 경우 두 번째 측정과정에서 은원자의 스핀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없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는 측정은, 모든 물리학 교과서가 그렇듯이 이상적인 측정이다. 측정오차도 없고 측정기기도 100% 완벽해서, 측정과정에서 측정대상을 절대로 교란하지 않는 그런 측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측정과정의 교란에 호소해서 이 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다. 물론 양자적 측정은 측정 당하는 대상의 속성을 양자역학이 서술하는 방식으로 바꿔주는 그런 물리적 과정을 의미한다고 '정의'해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에 답을 한 것이 아니라 용어를 정의해 버림으로써 문제를 회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면제를 먹으면 왜 잠이 오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건 수면제는 잠을 오게 하는 약이니까 그렇다고 답하는 것과 같다.
4.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한 여러 시도
이상에서 논의했듯이 양자역학에 대한 정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1) 결정론적 슈뢰딩거 방정식과 비결정론적 측정결과의 문제
(2) 측정의 물리적/인식론적 성격에 대한 정합적인 이해를 제시하는 문제
(3) 양자역학이 가정하는 물리적 속성들의 인식론적/존재론적 특징을 기술하는 문제
(4) 양자역학이 보이는 비국소성을 이해하는 문제
대부분의 물리학 이론에 기반한 해석들은 (1)과 (2)에 집중한다. 벨 부등식이 실험적으로 위배됨이 확실해졌으므로, 가능한 접근방법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동역학적 방정식을 시도하는 것과, 슈뢰딩거 방정식을 고수하되 비국소성을 내재적으로 수용한 숨은변수 이론을 만드는 것이 있다. 첫 번째 접근방법은 대개 슈뢰딩거 방정식에 비선형의 상호작용을 더해서 적당한 환경에서 양자적 대상계의 파동함수가 환원되는 과정을 모형화하는 것이다. GRW의 해석이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 접근방법의 대표주자는 봄의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들이 비국소적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양자 포텐셜이 존재한다. 봄 이론의 장점은 입자의 위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양자적 속성의 실재성을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접근 방법은 모두 기존의 양자이론이 오직 근사적으로만 참이거나 불완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물리학자들이 선호하는 해석으로는 대상계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대상계의 양자적 결맞춤(coherence)이 깨어지는 과정을 이론화한 결깨짐(decoherence) 해석이 있는데, 이 경우 특정한 속성에 한해서만 이런 결깨짐이 이루어진다는 등의 여러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 해석에서도 역시 양자적 속성이 고전적 속성에 '수학적으로' 근접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장회익 교수의 '서울해석'은 다른 해석들과는 달리 (3)과 (4)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장회익 교수에 따르면 물리이론의 핵심은 특성함수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동역학적 방정식을 풀어서 적당한 예측결과를 얻어낸 후 한 차례의 인식과정이 종료되는 것에 있다. 이 경우에 이런 인식과정의 결과를 구태여 대상에 부여하려는 것은 고전역학에만 적합한 라플라스적 서술이 모든 종류의 물리이론에 적용된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서울해석'이 앞으로 (1)-(2)의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기여를 하게 될 지가 매우 주목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많은 해석들 중 양자역학의 모든 측면들을 완벽하게 포괄하면서 정합적인 이해를 제공해주고 있는 해석을 찾기는 어렵다. 각각의 해석들이 어느 한 측면에서든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거의 10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양자역학을 우리는 아직까지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뉴튼의 역학이론은 17세기의 기계적 철학의 총아로 추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적 철학에서 금기시하는 원거리력을 가정함으로써 그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후 자연철학자들이 원거리력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었는데, 이를 기억할 때 우리가 양자역학을 만족스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5. 더 읽을거리 소개
초심자들은 Rae(1986)와 Albert(1994)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두 책이 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왔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의 해석과 관련된 논의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 왔는가를 살펴보는 데 좋다. 각각이 물리학자와 철학자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Hughes(1989)와 Bub(2000)은 이보다 약간 어려운 개설서이다. 특히 이 두 책은 역시 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고 양자논리에 대한 학계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좀더 전문적인 논의를 원하는 독자라면 D'Espagnat(1976)와 Redhead(1987)를 시도해 보면 좋을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초기 발전과정과 이에 따른 개념적 논의들을 사적으로 개관한 Jammer(1974)와 Jammer(1989)도 큰 도움이 된다. 양자물리학의 해석과 관련된 고전적인 (주로 물리학) 논문들은 Wheeler&Zurek(1983)에서 찾아볼 수 있고, 비교적 최근까지의 철학적 논의는 Cushing&McMullin에 모인 논문들을 참조하면 좋다. 벨의 선구적인 작업들과 그의 독특한 견해는 Bell (1987)에 실린 논문들에 담겨 있다. Cushing(1994)은 봄의 숨은변수 역학을 설득력 있게 변호하고 있다. Omnes(1994)는 최근 물리학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결깨짐(decoherence) 이론에 입각한 양자역학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장회익 교수는 세 편의 저작을 통해서, 양자물리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인식론적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이에 입각한 '서울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장회익 (1990)『과학과 메타과학: 자연과학의 구조와 의미』, 지식산업사.
장회익 (1994)「양자역학과 실재성의 문제」,『과학사상』9: 93-112.
장회익 (1998)「인식주체와 과학의 인식적 구조」,『과학철학』1: 1-33.
Albert, David Z. (1994) Quantum Mechanics and Experi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Bell, J.S. (1987) Speakable and Unspeakable in Quantum Mechan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Bub, Jeffrey (2000) Interpreting the Quantum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Cushing, James T. (1994) Quantum Mechanic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ushing, James T. and McMullin, Ernan (eds.) (1989) Philosophical Consequences of Quantum Theory,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D'Espagnat, B. (1976) Conceptual 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 Benjamin.
Hughes, R.I.G. (1989) The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Quantum Theory, Harvard University Press.
Jammer, Max (1974) The Philosophy of Quantum Mechanics, Wiley.
Jammer, Max (1989) The Conceptual Development of Quantum Mechanics, 2nd edition, Tomash Publishers.
Omnes, R. (1994) The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Rae, Alastair (1986) Quantum Physics: Illusion or Re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번역: "양자물리학: 환영인가 실재인가?", 들녘, 근간].
Redhead, Michael (1987) Incompleteness, Nonlocality, and Realism: A Prolegomenon to the Philosophy of Quantum Mechanics, Clarendon Press.
Wheeler, J.A. and Zurek, W.H. (eds.) (1983) Quantum Theory and Measurem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양자역학의 영향
프랑크와 보어의 초기 양자역학은 전자 궤도가 점프하는 현상을 강조했습니다.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전자의 위치를 확률론적 분포로만 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초기의 양자역학은 원자폭탄, 반도체 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이후의 양자역학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중대한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후기 양자역학은 인간 인식의 한꼐를 인정함으로써 현대철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편으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실험물리학의 혁명적 발전이 실험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포괄했습니다. 물리학은 실제로 끈 이론, 통일장 이론 등 여러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의 결론들은 당시 과학자(및 일반인)들이 가진 고전역학적 직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기에, 이 이론이 실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해 많은 해석과 철학적 논쟁이 있었다.
많은 수의 물리학자들은 보어 등이 개발한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해석에서 양자역학의 확률적 측면들은 우리의 지식의 부족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 실재 그 자체이며, 따라서 결정론적 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양자역학을 개발한 이들 중 한 명인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무작위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양자역학의 현상인 도깨비 원격현상등을 강력히 부정하면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자역학의 근본에는 보다 깊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해 여러 가지 반박을 제시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EPR 역설이라 불린다. 벨은 EPR 역설을 이용해, 조건법적 명확성(counterfactual definiteness)을 가정한 경우 양자역학과 국소적 이론 사이에 실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차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실험을 통해서, 실제 세계는 조건법적으로 명확하지 않거나 비국소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루이스는 비결정론이 그의 철학적 신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양자역학을 불완전한 이론으로 보았다.[11] 그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존재론적 비결정성이 아닌 인식론적 한계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이유에서 숨은 변수 이론을 지지했다. 코펜하겐 해석을 둘러싼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은 당시의 양자역학을 둘러싼 논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현재 표준적인 양자역학의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이나,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존재한다.
- 숨은 변수 이론 이 해석은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것이었는데, 후에 실험을 통해 완벽히 반박되었다.
- 봄 해석 (Bohm interpretation)
- 다세계 해석 이 해석은 (제한적 의미에서) 국소적이지만 조건법적 명확성을 포기한다.
양자역학이라는 새 이론은 원자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이었다. 학자들은 이 이론을 토대로 점점 더 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새로운 이론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새로 꺼내기 시작했다.
원자와 관련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은 ‘파동함수’라고도 하고 ‘상태함수’라고도 하는 수학적인 장치를 사용한다. 파동함수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양자역학적 계의 모든 양자역학적 정보를 담고 있다. 양자역학이 제안된 초창기부터 많은 물리학자들은 파동함수의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다시 말하면, 파동함수가 우리가 가진 거시세계에 대한 직관 중 어떤 것에 대응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전까지 물리학에서는 대체로 수학을 이용해 물리학 방정식이나 공식을 만들면, 그 의미는 인간이 경험하는 거시계로부터 얻은 직관과 잘 대응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가장 핵심이 되는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는 이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안에 소위 ‘불확정성 원리’가 있음을 밝혔는데, 이는 입자가 어떤 속도로 어디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특정 시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등을 안다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실용적으로 물리현상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있는데, 정작 그 이론은 고전적으로 통용되던 우리가 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보다 불과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을 통해, 원칙적으로는 물리학을 통해 물질계의 모든 것을 예측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파동함수와 불확정성 원리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가 원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 개념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의 영향
플랑크와 보어의 초기 양자역학은 전자의 궤도가 점프하는 현상을 강조한 반면 후기의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전자의 위치가 확률적 분포로밖에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양자역학은 원자폭탄, 반도체 등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고 후기의 양자역학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후기 양자역학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성을 인정함으로써 현대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실험가능한 물리학의 혁명적 발전이 실험이 불가능한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내포하기도 했다. 물리학은 실제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의 21세기 초반까지 끈 이론, 통일장 이론 등 여러 이론을 내놓았으나 실험이 불가능한 가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각주
- ↑ 노인영. (노인영 병영칼럼) 꽃과 양자역학 Archived 2019년 8월 2일 - 웨이백 머신. 국방일보. 2019년 6월 24일.
- ↑ 유용하. ‘슈뢰딩거 고양이’의 양자역학, 반도체·레이저로 무한 진화. 서울신문. 기사입력 2017년 8월 8일. 기사수정 2017년 8월 9일.
- ↑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11) 서로 모순되는 것이 공존하는 세계…양자역학이 밝혀낸 ‘상보성’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알 수 없는 건가. 경향신문. 2017년 8월 10일.
- ↑ 예외적인 경우로 초전도체(superconductor)가 있다. 초전도 현상은 중첩된 거대한 파동함수의 일종이다.
- ↑ 양자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YTN. 2018년 8월 29일.
- ↑ 김영태. 양자역학의 창시자, 자연과학은 정신과학과 불가분. 노컷뉴스. 2016년 9월 1일.
- ↑ McCormmach, Russell (Spring 1967), “Henri Poincaré and the Quantum Theory”, 《Isis》 58 (1): 37–55, doi:10.1086/350182
- ↑ Irons, F. E. (August 2001), “Poincaré's 1911–12 proof of quantum discontinuity interpreted as applying to atoms”, 《American Journal of Physics》 69 (8): 879–84, Bibcode:2001AmJPh..69..879I, doi:10.1119/1.1356056
- ↑ 이동:가 나 양자역학의 형성, 《글로벌 세계 대백과》
- ↑ 이동:가 나 다 양자역학의 성립, 《글로벌 세계 대백과》
- ↑ (영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는가? Archived 2011년 3월 21일 - 웨이백 머신
참고 문헌
- Sakurai, Jun John; Jim J. Napolitano (2011). 《Modern Quantum Mechanics》 (영어). Addison-Wesley. ISBN 0805382917.
- Griffiths, David J. (2005). 《Introduction to Quantum Mechanics》 (영어). Addison-Wesley. ISBN 013111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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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정인; 김인묵, 최준곤 (2002). 《양자역학》. 서울: 홍릉과학출판사. ISBN 979-1130412054.
- 최준곤 (2010). 《양자역학》 2판. 서울: 범한서적주식회사. ISBN 978-8971292327.
- Barletta, Antonio (2012). “An introduction to quantum mechanics for those who dwell in the macroscopic world”. arXiv:1201.4234.
- Cohen, Doron (2012). “Lecture Notes in Quantum Mechanics”. arXiv:quant-ph/0605180.
- Max Tegmark, John Archibald Wheeler (2001). “100 Years of the Quantum”. 《Scientific American》 284: 68–75. arXiv:quant-ph/0101077.
- 한스 라이헨바흐 저. 강형구 역.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년. ISBN 9791130412054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
- 네이버 캐스트 - 양자 역학
- 네이버 캐스트 - 양자물리학의 의미는?
- 양자역학, 보어의 원자모형
- 물리량의 양자화
- 김영훈 (2010). 《개념적 접근을 통한 양자역학 이해》. 화학공학연구정보센터 (CHERIC). 2012년 10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8월 17일에 확인함.
- 공개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10 함 찔러보는 양자역학.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2014년 4월 13일.
- 공개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13-1 좀 더 찔러보는 양자역학.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2014년 7월 27일.
공개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13-2 좀 더 찔러보는 양자역학.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2014년 7월 27일. - (원종우의 과학같은 소리하네)갑자기 친숙해진 나라 덴마크의 여전히 안 친숙한 양자역학 - 원종우 대표(과학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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