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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이렇게 인생을 열어 나가라 -카네기

by 이덕휴-dhleepaul 2018. 10. 14.

이렇게 인생을 열어 나가라

제목: 이렇게 인생을 열어 나가라 저자: D.카네기
머 리 말
35년 전 나는 뉴욕에서 가장 불행한 청년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생활을 위 해 트럭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트럭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알지 못했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하는 일을 경멸하고 있었다. 서부 56번 거 리의 싸구려 셋방―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에서의 생활을 경멸하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벽에 몇 가닥인가 넥타이가 걸려 있었는데, 아침에 내가 그것을 집으려고 하면 바퀴벌레가 와르르 흩어지곤 했다. 나는 또 바퀴벌레가 많은 싸고 불결한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는 것이 참으로 싫었다. 밤마다 나는 불쾌한 두통―그것은 실망·오뇌·고통·반항에서 일어나는 것 인데―에 시달리면서 휑한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학생 시절에 품었던 꿈이 악마로 화해 버렸기 때문에 반항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생인가?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인생의 일대사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싫은 일에 종사하며 바퀴벌레 와 함께 살고, 지독한 것을 먹고―미래에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이것이 나에게 있어 인생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란 말인가…나는 독서하는 시간, 학생 시절에 꿈꾸던 창작의 시간이 갖고 싶었다. 나는 자기가 경멸하는 일을 그만 둠으로써 얻는 것은 있어도 결코 잃는 것 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돈을 버는 일에는 흥미가 없고 인생을 신 중히 맛보는 데에 흥미가 있었다. 나는 대개의 청년들이 인생의 출발에 마주 치게 되는 결단의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거기거 나는 결심했다. 그 결심이 나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 결심에 의해 그 뒤의 35년 동안은 행복해졌 고 꿈은 예상 이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의 결단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싫은 일을 그만 둔다. 그리고 미주리 주 립 사범학교에서 배운 4년간의 공부를 살려 야간 학교에서 성인급을 가르치며 생활하자. 그렇게 하면 낮에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강의를 준비할 수도 있고, 소설도 쓸 수 있다. 「쓰기 위해 생활하고, 생활하기 위해 쓰기」로 하는 것이 다. 성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면 좋겠는가. 나는 학생 시절의 학습을 생각해 보 았을 때, 숱한 사람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경험이 무엇보다도 일하는 데나 처 세하는 데나 실제적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자신의 결핍을 제거해 버리고 다른 사람과 응대하는 용기와 자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주도권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진해서 일어나고, 자신의 의 견을 말하는 사람에게로 기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콜럼비아 대학과 뉴욕 대학에 야간 강좌로 퍼블릭 스피킹의 강사를 하 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양쪽 다 거절당했다. 나는 실망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나는 그리스도교 청년회의 야간학교에서 강의하기로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단시간에 효과를 올릴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학위나 사회적 명성을 구하여 오 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사업상 의 회합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세 일즈맨은 상대하기 벅찬 손님을 방문하는데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지 않아도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자신과 침착성을 몸에 익혀 일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수입을 늘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의 수업료는 여러 번에 나누어 내게 되어 있으므로 효과를 얻을 수 없으면 납입을 그만 두어 버린다. 그리고 나는 월급 이 아니라 이익의 몇 할이라는 계약이었으므로 생활하는 데는 실용적인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핸디캡 하에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이제 아서 생각하니 대상이 필요치 않은 훈련을 얻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학 생들을 자극해야만 했다. 그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야만 했 다. 매번의 강의를 흥미있게 하고 계속해서 출석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사랑했다. 나는 이들 실업가들이 참으로 빨리 자신감을 몸에 익혀 승진하고 월급이 오르는 데에는 정말 놀랐 다. 클라스는 나의 예상 이상으로 발전했다. 월급으로 하룻밤에 5달라를 지불 하려고 하지 않던 그리스도교 청년회가 하룻밤에 30달라의 배당을 지불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퍼블릭 스피킹만을 가르쳤는데, 그러다가 이들 성인들에 게는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휴먼릴레이션에 관한 적당한 책이 발견되지 않아 직접 자신이 썼다. 썼 다기 보다도 클라스에서의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친구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 (<이렇게 사람을 움직여라>>로 번역)이라고 이름지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성인 클라스를 위한 교과서로서 쓴 것으로, 그것이 그토 록 잘 팔리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살아 있는 저자 가운 데서 가장 놀란 사람의 하나일 것이다. 해가 지남에 따라 이러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고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학생의 대부분은 실업가―지배인·세일즈맨·기사·회계사 등 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클라스에는 직업 부인이나 가정 주부도 있었는데 그들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교과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찾았다. 나는 뉴욕의 큰 도서관에 갔 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고민이라는 표제로 등록되어 있는 책은 겨우 22권밖 에 없었다. 한편 벌레라는 표제로 등록된 책이 189권이나 되었다. 고민에 대 한 책의 아홉 배나 되는 벌레에 대한 책!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고민은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ㄹ 하나임으로 전국의 학교나 전문학교에서 「고민해결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 런데 어디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강의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다. 데비드 시벨 리가 그의 <잘 고민하는 방법>이라는 책 가운데서 「우리는 발 레이를 해 달라고 말한 독서광과 마찬가지 정도로 경험이라는 압박에 거의 준 비없이 성인이 되어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지당한 일이다. 그 결과는? 우리 나라 병원 침대의 절반 이상을 신경적·감정적 환자가 차 지하고 있다. 나는 뉴욕의 도서관에 있는, 고민에 관한 22권의 책을 훑어 보았다. 나는 닥 치는 대로 고민에 관한 책을 샀다. 그러나 클라스의 학생들에게 교과서로서 사용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쓰려고 결심한 것 이다. 나는 이 책을 7년 전에 쓸 준비를 시작했다. 어떻게 했는가? 모든 시대의 철학자들이 고민에 대해 말한 것을 읽은 것이다. 또 공자에서 처칠에 이르는 모든 사람의 전기를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또 모든 방면의 훌륭한 인물을 만 나 보았다. 잭 덴프시오마 블랫드레 장군, 마크 클라크 장군, 헨리 포오드, 이 리노어 루우즈벨트, 드로시 딕스 등. 그러나 그것은 극히 시초에 지나지 않았 다. 나는 회견이나 독서 따위보다는 더 중요한 일을 했다. 나는 성인 클라스라 는 연구실에서 5년 동안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온 세계에서 이런 종류는 맨 처음이고 또한 오직 하나인 연구소다. 나는 학생들에게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해 몇 가지 원칙을 주고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켜 보고, 그 결과를 클라스에서 이야기하게 해 보 았다. 자기들의 과거에 사용한 기법에 대해 보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의 결과로서 나는 이제까지의 누구보다도 많이 「어떻게 하여 나는 고민을 극복했는가」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생각한다. 또 고 민 극복에 관한 편지도 수천 통이나 읽었다. 합중국 및 캐나다의 219개 도시 에서 열린 클라스에서 입상한 실험담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상아탑에서 생겨 난 것이 아니다. 또 고민은 어떻게 해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학구적 인 설교도 아니다. 나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에 의해 고민은 어떻게 해결 되었는가 즉, <인생을 이렇게 열어 나가라>하는 간결하고도 기록적인 보고를 쓰도록 노력했다. 이 책은 실제적이다. 그 점 만인이 숙독해도 좋다고 확신하 고 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인간은 결코 가공적 인물이 아니다. 두서넛의 예외를 빼 놓으면 전부가 실제로 있는 사람으로 그의 주소도 현재의 것임을 담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발레리는 「과학은 성공한 처방의 집대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의해 주기 바란다. 여러분은 이 가운데서 아무것도 들어 보지 목한 것을 발견하지는 않겠지만, 보통에는 응용되어 있지 않은 여러 가 지를 발견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서로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 다. 우리는 완전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 는 산상의 설교를 비롯하여 많은 황금율도 읽고 있다. 우리늬 고민은 무지는 아니다. 무위(無爲)인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옛부터의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 설명하고 유선형화하며 공기 조절함으로써 당신은 분발케 하여 행동으로옮기 게 하는 일이다. 당신은 이 책이 어떻게 해서 쓰여졌는가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아니다. 당신은 행동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처음 4,50 페이지를 읽어 주 기 바란다.「그리고 고민을 해결하고 인생을 즐기는 어떠한 새로운 힘과 새로 운 영감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은, 이 책을 휴지통 속에 집어 넣어 주기 바란 다.」―그러한 사람에게는 이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디일 카네기 이렇게 인생을 열어나가라 /
차 례
제 1 부 고민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 지식 10 1. 명확하게 오늘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라 10 2. 고민을 해결하는 마술적 공식 22 3. 고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29 제1부 요약 41
제 2 부 고민 분석의 기본적 기법 42 4. 고민의 분석과 그 해결법 42 5. 사업상 고민의 5할을 없애는 법 50 제2부 요 약 54
제 3 부 고민하는 습관이 들기 전에 그것을 없애는 방법 59 6. 마음 속에서 고민을 몰아내는 법 59 7. 딱정벌레한테 넘어가지 말라. 69 8. 고민의 대부분을 추방하기 위한 법칙 77 9. 불가피에 협력하라. 84 10. 고민에 <손실정지>주문을 달아라 97 11. 톱밥을 켜려고 하지 말라 104 제3부 요 약 111
제 4 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정신 양성법의 7원칙 112 12. 당신의 생활을 전환시키는 몇마디의 말 112 13. 보복은 더 큰 괴로움을 가져오게 된다. 128 14. 이렇게 하면 망은에 고민할 일은 없다. 138 15.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백만 달러에 팔겠는가? 46 16. 자신을 알고 자신이 되어라. 이 세상에는 그대와 같은 인간이 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154 17. 레몬이 있으면 레몬수를 만들라 163 18. 14일 동안에 고민을 해소하는 법 172 제4부 요 약 189
제 5 부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190 19. 나의 부모는 어떻게 번민을 극복했는가 190
제 6 부 남의 비평을 이겨내는 방법 213 20. 죽은 개를 걷어차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213 21. 감추라―그러면 비평도 그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17 22. 내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 221 제6부 요 약 227
제 7 부 피로와 고민을 예방하고 에너지와 정신을 왕성하게 하는 6원칙 228 23. 깨어있는 동안의 생활에 하루 한 시간을 부가하는 방법 228 24. 무엇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그 대책은? 233 25. 주부가 번뇌를 면하고 언제나 젊게 있으려면 238 26. 피로와 번뇌를 막는 네 가지 좋은 작업 연습 214 27. 피로, 번뇌, 원한을 낳게 하는 권태를 몰아내는 방법 249 28. 불면증의 고민을 막는 방법 257 제7부 요 약 264
제 8 부 즐기면서 성공하는 일을 발견하는 방법 265 29. 인생에 있어서의 두 가지 큰 결단의 하나 265 제 9 부 경제적 고민을 더는 방법 274 30. 「모든 고민의 70퍼센트……」 274 제 1 부 고민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 지식 1. 명확하게 오늘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라 1871년 봄이었다. 어느 젊은이가 한 권의 책을 읽던 중 몹시 마음에 끌리는 21자로 된 구절이 있었는데, 이것이 뒷날 그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몬트릴 제너럴 병원의 의학도였으며, 졸업 시험을 앞두고 무척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시험에 다행히 통과할 수 있을는지, 만일 떨어지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하며 개업을 어떻게 해야 좋은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 게 생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의학도가 1871년에 읽은 그 한 구절이 그를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의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존스 홉킨스 의학교를 창립했고, 영국의 의사로서는 최대 명예인 옥스포드 대학의 명예 교수까지 되 었다.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 훈관사(勳官士)라는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죽은 뒤에는 천 오백 페이지에 이르는 두권의 전기도 간행되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오슬러경―그가 1871년에 읽은 책의 구절은 카알라일의 말이었는데, 그 한 마디로써 그는 일생 동안 온갖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 말인즉 「우리의 중요한 임무란 먼 곳에 있는 희미한 것을 보는 일이 아니라, 명확하게 자신 가까이에 있는 것을 몸소 실행하는 일이다.」 그로부터 42년 뒤, 교정에 튜울립이 활짝 피어 있는 어느 봄날 저녁, 윌리엄 오슬러경은 예일 대학 학생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그는 오늘날 자신은 4개 대 학의 교수가 되어 있으며 평판있는 저서도 내놓았으므로 남들이 알기에는 특 별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처럼 생각되어지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했 다. 자기의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가장 평범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 지나 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의 성공의 비밀은 무엇이었다. 그것은 <오슬러가 현재에 살았 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무슨 뜻인가. 예일에서 연설하기 두서너 달 전, 오슬 러경은 기선을 타고 애서양을 건너 미국에 왔다. 그 배에서는 선장이 덱크에 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즉시 기계 소리가 나며, 배의 각 부분이 차례차례로 닫혀져 커다란 방수실(防水室)로 되었다. 오슬러 박사는 예일 대학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여객선보다 훨씬 훌륭한 조직체이며, 보다 긴 항해를 해야만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항해를 편안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정확히 오늘이라는 구획 속에서 살아나가도록 기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덱키에 올라가 보면 배를 움직이는 모든 기 관이 큼직한 칸막이로 질서 정연하게 되어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버튼을 눌러 보라. 여러분 인생의 모든 평면에서 과거를 닫아 버리고, 이미 죽어 버린 어제를 닫는 철문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버튼을 눌러 보라. 그것은 미래,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내일을 그 금속의 커튼으로 닫아 버릴 것 이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안전하게 될 수 있다―모름지기 과거를 닫아 버 려라. 과거로 하여금 과거를 장사지내게 하라―똑똑하지 못한 이들에게 더러 운 죽음에의 길을 밝혀 주던 어제를 덮어 버려라. 내일의 길은 가장 강한 사 람조차도 좌절하게 한다. 미래도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단단히 닫아라. 미래 란 바로 오늘이다. 내일은 아니다. 인간 구제의 날은 바로 지금이다. 정력의 낭비, 정신적 고뇌와 번민은 내일의 일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의 발 밑에 따라 붙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앞뒤의 칸막이를 닫아 버리고, 명학하게 오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생활 습관을 익히도록 유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오슬러 박사는, 우리들은 내일에의 준비에 아무런 노력도 할 필 요가 없다고 말한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내일을 위한 최선의 준 비 방법은 오늘의 일을 오늘 하기 위해서 모든 지성과 모든 정열을 집중하는 데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랴말로 내일을 위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오슬러 박사는 또 그리스도의 기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로써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도록 권했다. 이 기도는 다만 오늘의 양식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것은 어제 먹었어야 했던 묵은 빵에 대해 불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오, 주여! 이번 가뭄으로 밀밭에 물이 말랐습니다. 앞으로도 가뭄은 계속될 지 모릅니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에 먹을 양식은 어찌 되겠습니까. 또 만일 제 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오, 주여! 저는 그때 어떻게 빵을 구해야 합니까? 」 이 기도는 오늘만의 양식을 주십사고 바랄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의 빵 이야말로 사람이 입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인 것이다. 옛날에 어떤 가난한 철인이 돌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말할 수 없이 생활이 어려운 곳이었는데, 어느 날 군중들이 그의 강론을 듣고 자 언덕 위에 모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도 가는 곳마다 인용하던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말했다. 「이런 까닭에 너희는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의 일은 내일이 되 어 걱정하라. 하루의 노고는 그날 하루로써 충분한 것이다.」 라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말라」 고 했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했다. 그들은 이 말을 실행하기 불가능한 이 상적인 안이며, 동양의 신비주의라고 했다. 그들은 말한다.해햐 보험에 들어 두어야 한다. 늘그막을 대비해서 저금을 해 두어야 한다. 입신 출세하기 위해 장래를 계획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라고. 물론 그래야만 하다. 결국 3백년 전에 영역되었던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 은, 제임즈 왕조 때에 의미한 것을 오늘날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3백 년 전에 는 <생각>이라는 단어가 곧잘 <걱정>을 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근대에 개정 된 성서에는 「내일에의 불안을 갖디 말라.」 로 되어 있다. 확실히 내일의 일은 주의깊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겠지만 불안을 가져서는 안된다. 제2차 대전 중 미국의 군사 지도자들은 모름지기 내일을 위해 계획했다. 그 러나 그들이 불안을 품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 즈음 미 해군을 지휘하던 어네스트 J.킹 제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가장 우수한 군대에 최상의 무기를 공급했다. 그리고 가장 현명하다 고 생각되는 사명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의 전부였 다." 그는 말을 이어 "가령 배가 격침되었다고 하자. 그것을 다시 끌어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배가 침몰하려 할 때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제 있었던 사건 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내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훨씬 보람있는 시 간의 이용법이다. 더구나 지나간 일에 언제까지나 사로잡혀 있다가는 도저히 체력이 유지되지 않는다" 전쟁시나 평화시를 막론하고,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즉 좋은 생각은 원인과 결과를 다루며,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계획에 통한다. 그와 반대로 나쁜 생각은 종종 긴장과 신경 쇠약에 통한다. 나는 최근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의 하나인 <<뉴욕타임즈>>의 발행 자 아더 헤이스 샬즈버거와 회견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제2차 대전의 전화가 유럽을 뒤엎었을 때 몹시 놀랐다. 그리고 앞날에 너무 나 초조하고 불안하여 불면증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밤중에 일어나 캔버스와 그림 물감을 꺼내어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려 했다. 그는 그림 을 그릴 줄 몰랐지만, 자신의 불안한 생각을 물리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 러나 그는 자신을 꾸짖기 위해 다음과 같은 찬송가의 1절을 찾기까지 실로 마 음의 평화를 가질 수가 없었다. 영묘한 길잡이인 빛이여…… 가는 길 멀리까지 비추오소서 주여! 내 약한 다리를 지켜 보살피시와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길 인도하소서. 그와 거의 같은 무렵, 유럽 어느 전선에 종군 중이던 어는 한 젊은이도 이 와 똑같은 교훈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메릴란드주의 발티모어 출신인 테드 벤저미노였는데, 그는 전쟁에서 오는 극도의 피로병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이 렇게 썼다. 「1945년 4월 나는 극도의 오뇌로 경련성 횡단결장이라는 심한 통증에 걸렸 다. 만일 그 무렵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완전히 육체적 폐 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94보병 사단에 소속된 전상병 기록계 하사관이었는데, 전사한 자, 행방불명된 자, 병원으로 후송된 자의 명단을 기 록하는 일이 임무였다. 그리고 또 아군과 적군을 가지리 않고 전투 중에 급히 서둘러 아무렇게나 얕게 매장해 두었던 병사들의 시체를 파내는 일도 거들어 야만 했다. 나는 이러한 전사자들이 남긴 소지품을 정리하여―이것들에 깊은 애착을 느낄 것이 분명한― 그드르이 어버이나 친지들에게 보내 주어야만 했 었따.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유물들이 서로 바뀌는 터무니없는 중대한 착오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다행히 살아 돌아가서,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태어난 지 16개월 된 어린 자식을 안아 볼 수 있 을 까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로 말미암아 녹초가 되도록 지쳐 몸무게가 34파 운드나 줄었다. 나는 심한 번민으로 반 미치광이 상태에 빠졌다. 내 손은 뼈 와 가죽만 남았다. 이러다가는 폐인이 되어 귀국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어 했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혼자 있게 되면 저절로 눈물이 아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전과 같은 사람 이 될 수 없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안이 군 대의 진료소에서 딱 멎어 버렸다. 그때 어느 군의관의 말이 내 일생의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진찰하고 나서, 내 병은 정신적인 것이 라고 진단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테드! 자네의 인생을 모래 시계라고 생각하게. 모래 시계의 맨 꼭대기에는 수없이 많은 모래가 담겨져 있네. 그것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천천히 중앙의 가늘고 좁은 곳을 지나는 걸세. 그러나 모래를 한 알 이상 통과시키려고 한다 면, 시계는 고장이 나고 말걸세. 우리들은 모두 이 모래 시계와 같은 걸세. 아 침에 우리는 그날 안으로 해야만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로 생각하네. 그러 나 우리가 그것을 한 번에 하나씩 차례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 해치우려고 들다가는 마치 모래 시계의 모래알처럼 우리들의 육체나 정신도 파괴되고 마 는 것일세."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들은 잊을 수 없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줄곧 이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한 번에 한 알의 모래…… 한 번에 한 건의 일>이라는 이 충고로써 나는 전쟁 중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현재 인쇄 회 사의 선전 광고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데에도 이 충고가 도움이 되고 있다. 지 금도 싸움터에서와 마찬가지로 할 일이 많이 밀려든다―재고품의 품절, 새로 운 기술 도입, 거래처 명부의 개정, 지점의 개폐, 기타 등등. 그러나 나는 조급 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그 군의관이 하던 말대로 <한 번에 한 알의 모래. 한 번에 한 건의 일>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함으로써 나 는 싸움터에서의 지칠 대로 지친 혼란에서 해방되어 시원시원하게 일을 해치 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만일 그리스도의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말라.」 는 말씀이나 오슬러 박사의 「오늘에 살라.」 고 한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날 행복하고 유익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두 개의 영원이 상합하는 순간에 서 있다. 즉 영원을 뒷받침 해 온 광대한 과거와, 이미 기록된 때의 최후의 음절까지 돌진하는 미래 사이 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두 영원의 어느 쪽에서도 살 수는 없다. 한 순간일지라도 그럴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는 육체 와 정신이 모두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 수 있는 현재라는 유일한 시공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부터 깊이 잠들 때까지― 영국의 이름난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잠까지는 운반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루 동안이면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즐겁게, 참을성 있게, 청결하게 생활할 수 있다― 해가 지기까지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인생이 의미 하는 모두인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두인 것이다. 그런데 미시 간주 사기나우의 세일드 부인은 자살 직전에 이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7년, 나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나는 실의에 빠진데다가 거의 무일푼이었 답니다. 나는 전에 근무한 일이 있는 켄자스시의 최사에 부탁하여 다시 일하 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전에 각종 책들을 시골이며 도시에 있는 학교에 팔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남편이 병으로 드러눕게 되었 을 때, 차를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뒤 첫 불입금을 마련하여 중고차를 월부로 사들여 다시 책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나다니게 되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다음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혼자서 차를 몰 아야 하고,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무렵 시골에서는 장사도 그다지 잘 되지 않았고, 많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불 입금도 치르기 힘들었습니다. 1938년 봄, 나는 미주리주 버사일스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 학교는 가난했고 길은 험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쓸쓸하 고 실망되어 자살을 결시했습니다. 어차피 성공은 불가능하고, 살 목적도 없으 니까요. 저는 아침나다 일어나 인생에 직면하기가 두려웠던 것입ㄴ다. 자동차 의 불입금을 못 내게 되지나 않을까. 집세가 밀리게 되면 어쩌나, 식사 비용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점점 몸이 쇠약해저 가는 것 같은데 의사를 찾아가 볼 비 용은 어떻게 마련할까? 이러한 모든 일이 걱정거리였습니다. 내가 자살을 단 행하지 못한 것은, 동생이 슬퍼할 일과 자신의 장례 비용조차도 없었던 때문 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들추다가 그 문장 중의 한 구절을 일 고, 실의에서 구제되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문구에 대 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활이 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 구절을 타이핑해서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내 차의 바람받이에 붙였습니다. 어쨌든 하루 하루를 살아 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나는 지나간 어제 일을 잊고, 내일 일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침마다 저는 '오늘은 새로운 인생이다'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는 고독의 공포와 결핍의 공포를 극복하 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하며, 제법 성공한 셈입니다. 인생에 대해 서도 정열과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이 어찌 되든지, 두 번 다시 겁내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하루만을 살고―<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 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시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 행복하리라, 홀로 있으면서도 오늘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편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일이 최악일지라도 그게 무어랴, 오늘의 삶을 마쳤음에야. 이러한 시는 근대적이라고 생각되나, 그리스도 탄생 30년 전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인간의 성질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의 하나는 우리들이 생활을 도피하려 고 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지평선 저쪽에 있는 마법의 장미 꽃밭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오늘 자기 집 창 밖에 피어 있는 장미꽃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왜 우리은 이처럼 바보인가―비극적인 바보인가―? 스티븐 리코크는 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 인생의 진행은 실로 기묘하다. 어린아이들은 '이제 내가 자란다면' 하고 말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내가 어른이 된다면'하고 말 한다. 그러나 결혼했다고 해서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다음에는 '은퇴하게 된 다면'하고 말한다. 그러다가 결국 은퇴하게 되면, 그는 이미 지나기 버린 경치 를 돌이켜 본다. 찬 바람이 그 위를 스쳐 가고 있다. 그는 그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듯한 느낌이 떠오르는 사이에 벌써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만 다. 인생이란 그나 그 시각의 연속을 살아 가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고 에드워드 S.에반즈는 오뇌의 고통으로 죽음의 상태에까지 이르렀으나, 앞에서 말한 <인생이란 그날 그 시각의 연속을 살아 가는 것>이 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 본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신문팔 이에서 잡화상 점원이 되었고, 그 뒤 도서 외판원 조수가 되어 일곱 가족을 먹여 살렸다. 급로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그 일을 그만 둘 만한 용기가 없었 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 뒤, 그는 겨우 독립할 기력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독립하게 되자 그는 55달러의 빚을 자본으로 삼아 연수입 1만 2천 달러의 사업을 이룩해 놓았다. 그 무렵, 심한 불경기가 닥쳐왔다. 그는 친 구를 위해서 거액의 어음에 보증을 섰는데, 그 친구가 그만 파산을 하고 말았 다. 거기에 또 새로운 불행이 일어났다. 그가 가진 돈을 모두 예금했던 은행이 망하고 만 것이다. 그는 가졌던 돈을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1만 6천 달러 의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잠이 안오고 식용기 떨어지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그것은 극도의 번 민때문이었다. 나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걸을 수 없게 되어 자리에 드러누웠는데, 열이 오르고 심한 통증에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날 로 쇠약해져 갔다. 마침내 의사는 앞으로 2주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 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나는 유언장을 써 놓고, 병상에 누워 닥쳐올 죽 음을 기다렸다. 이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자 최근 몇 주일 동안은 불과 두 시간도 계속해서 잠들어 본 일이 없었는데, 세상의 노고가 이제 막 끝나려 하 는 때 갓난아기처럼 깊은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식욕이 나고 몸무게도 늘어 갔다. 2, 3주일이 지나자 나는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고, 6주일 뒤에는 그전처럼 다시 일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1년에 2만 달러나 벌고 있었지만, 나는 자진해서 주급 30달러의 일자리를 맡았다. 내가 하는 일이란, 자동차를 배에 실을 때 차바퀴 뒤를 받아치는 대목을 파는 일이었다. 나는 지 금까지의 혼미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이제 내게는 고민이 없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후회도 없으며,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자신의 시간과 에네르기와 정열을 모두 이 대목 파는 일에 집중했다." 그때부터 에반즈는 눈부시게 향상했다. 몇 년 뒤에는 에반즈 프로덕스 컴퍼 니의 사장이 되었는데, 이 회사의 주는 다년 간에 걸쳐 뉴욕 주식 거래소에 상장되고 있으며, 지금 그린란드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비행장도 있다. 아무튼 말할 것도 없이 에반즈의 성공은 그가 <오늘에 산다>는 법칙을 체득 한 결과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프랑스의 대철학자 몽테뉴까지도 착오를 범했다. 그 는 「나의 생애는 끔찍한 불행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그 대부 분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라고 했다. 우리도 이처럼 생각하기 쉽다. 단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라고. 인생은 참으로 놀라운 스피드로 지나가 버린다. 우리들은 초속 19마일이라 는 속도로 공간을 질주해 간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가장 귀 중한 소유물인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지닌 단 하나의 확실한 소유물 인 것이다. 그것이 로웰 토머스의 철리이다. 최근에 나는 그의 농장에서 주말을 보낸 일이 있는데, 그의 방송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시편 한 구절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이 날은 주께서 창조해 주신 것, 우리는 즐거이 그 속에 살리라. 존 러스킨은 책상 위에 <오늘>이라는 단어를 새긴 돌을 놓아 두고 있었다. 나는 윌리엄 오슬러경의 책상 위에 언제나 적혀 있었다는 인도의 희곡작가 카 리다사의 시를, 매일 아침 면도할 때마다 쓰는 거울에 붙여 두고 있다. 여명에의 인사 이 날을 보라 이것이야말로 생명, 생명의 생명이다. 그 짧은 행로에는 그대 존재의 모든 진실과 현실이 담겨 있나니 생육의 기쁨 행동의 영광 성공의 화려함 어제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내일은 환상일 뿐 그러나 충실하게 지낸 오늘은 언제까지도 행복한 꿈으로 만들고 내일을 희망에 넘친 환상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이 날을 똑똑히 보아다. 이것이야말로 여명에의 인사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고민에 알아야 할 첫째 사항은 다음과 같다. 즉 인생으로 부터 고민을 몰아내고 싶다면, 오슬러 박사가 실행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철문으로 닫아 버리고 오늘이라는 테두리 속에 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자문 자답을 적어 보는 것도 좋다. 1. 나는 미래를 걱정하거나 아득히 먼 피안에 있는 마법의 장미 꽃밭을 동경 하여, 현재에 살기를 도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2. 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후회함으로써 현재를 괴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 가. 3. 매일 아침마다 일어날 때 <오늘을 파악하리라>, <오늘이라는 24시간을 최 대한으로 활용하리라>고 결심하고 있는가. 4. <오늘에 산다>는 것으로써 인생으로부터 보다 많은 보람을 붙잡을 수 있 는가. 5. 이것을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다음 주일……? 내일……? 오늘……? 2. 고민을 해결하는 마술적 공식 여러분은 이 책을 더 읽어 가기 전에 당장 고민을 처리하기 위한 확실한 처 방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공기 조절 장치 공업을 창시한 기사로, 현재 뉴욕의 캐리어 코펴 레이션 사장인 윌리스 H. 캐리어가 실행했던 방법을 말하기로 하겠다. 이것은 내가 직접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캐리어씨의 경험담은 이렇다. "내가 버팔로우의 주물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ㄸ, 한 번은 크리스탈시에 있 는 판유리 공장으로 가스 정화 장치를 하러 갔었다. 그것은 가스에서 불순물 을 제거하여, 연소로 인해 엔진에 고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스를 순화하는 방법은 아주 새로운 것으로서, 지금까지 꼭 한 번 다른 조 건 아래에서 시험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에 뜻하지 않는 곤란 이 일어났다. 장치는 어느 정도까지는 기능을 발휘했으나, 우리가 보증한 것만 큼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것처럼 실패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으며, 신체의 내부가 뒤틀리는 기분을 느끼면서 빈 민 끝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는 동안에 나는 쓸데없이 생각에 사로잡혀 보았자 아무런 소용 이 없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냈다. 그런데 운좋게도 이것이 들어맞았다. 나는 그 뒤 30년 동안이나 이 방법을 써오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로 간단한 것으로서 다음의 3단 계로 성립된다. 첫째, 먼저 상황을 대담 솔직하게 분석하여, 그 실패의 결과로 일어날 수 있 는 최악의 경우를 예측해 보았다. 아무도 나를 감옥에 집어 ㅇ거나 사살하여 즐지는 않는다. 그 점만은 분명하다. 나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내 고용주는 내가 애써 장치한 기계를 떼어 버리고, 지금까지 쏟아 넣은 20만 달 러의 비용을 손해볼지도 모른다. 둘째, 어쩌면 일어나게 될는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를 예측해 본 뒤,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이번 실패는 나 의 이력에는 오점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 나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고용 조건은 지금보다 나빠질지 모르지만 다시 새 로운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 또 고용주 측은 가스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새로 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니까. 2만 달러는 실험에 쓰여진 연구비로 생각 하면 그만인 셈이다. 이렇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예측하고 이것을 달게 받다 들이기로 결정한 순간, 실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완전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오랜 만에 평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셋째, 그 뒤부터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 받아들인 최악의 사태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조용히 나의 시간과 정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나는 당면한 2만 달러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으 려고 노력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실험한 끝에, 다시 5천 달러를 부속 장치에 들인다면 잘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를 실행한 결과 2만 달러를 손 해보는 대신 1만 5천 달러를 벌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내내 번민을 계속하였다면, 아마 이렇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 냐하면 고민의 가장 나쁜 특징의 하나는 집중하는 능력을 잃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최악의 사태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 일 것을 마음에 결심했다면 우리는 온갖 막연한 상상을 배제하고, 침착한 마 음으로 그 문제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벌써 오래 전의 일이지만 실로 도움이 되었으므로, 나는 언제 나 이것을 모든 일에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나의 생활은 완전히 고민으로부 터 해방되어 있다." 그러면 캐리어씨의 마술적인 공식은 어째서 심리적으로 그렇듯 귀중하며 실 제적인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고민으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져서 손으로 더 듬으며 몸부림치던 회색빛 그름 속으로부터 세차게 끌어내려, 땅바닥에 단단 히 발을 딛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만일 발 밑의 지면이 단단히 받쳐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겠는 가? 응용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즈 교수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 금으로부터 39년 전이지만, 만일 그가 지금 살아 있어서 이 최악에 임하는 공 식을 들었더라면 그는 진심으로 찬성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 냐 하면, 그가 제자들에게 "모든 일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일단 일어나 버린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일은 불행의 결과를 이겨 내는 첫걸음이니까." 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도 이와 같은 의견을 그의 유명한 저서 <<생활의 발 견>>에서 말하고 있다.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하는 데사 얻어지며, 이는 심리학 적으로 에네르기의 해방을 의미한다.」 확실히 그렇다!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에네르기의 새로운 해방은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단 최악의 것을 받아들이고 보면, 그 이상 나쁜 사태는 일어 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는 곧 모든 일이 그전보다 잘 되어진다는 말이다. 캐리어 씨도 "최악에 직면한 뒤, 나는 한결 마음이 차분해져서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그 뒤부터는 사물은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일생을 학대해 왔다. 최악의 사태를 받아들일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금이 라도 좋게 고치려는 노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운명을 재건하여 보 려고는 하지 않고 <경험과의 치열한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우웅증에 사로잡혀 버린 탓이다. 그러면 캐리어씨의 공식을 적용한, 뉴욕 어느 석유상의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그는 나의 클라스에 있던 사람이다. "나는 무서운 협박을 받고 있었다. 공갈 협박이란 대체로 영화에서 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내가 직접 공갈을 당한 것이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내 가 경영하는 석유회사에는 여러 대의 배달용 트럭과 운전수들이 있었다. 그 즈음의 물가 관리국 조례는 워낙 엄중했기 때문에, 거래처에 주는 배급량이 규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몇몇 운전수가 거래처에 주는 배급량을 속여서 그 남은 석유를 뒤로 빼돌린 모양이었다. 내가 이러한 부정 행위를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이 계통의 감독관이라고 자차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사건을 적당히 묵인해 줄테니 입을 막기 위한 돈을 내라고 말한 때였다. 이 사람은 운전수의 부정 행위에 대한 증거 서류를 보이 면서, 돈을 내지 않으면 지방 검사에게 고발하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에게는 거리낄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법률상으로는 고용인이 한 행위 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했고, 더구나 이 사건이 밖으로 드러나 신문에라도 나게 되면 신용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회사가 무너지게 될지도 모 른다. 24년 전에 나의 아버지가 창립했던 자랑스러운 회사가…… 나는 몹시 고민했다. 밤낮 사흘 동안을 식사도 잊고, 잠도 자지 못했다. 얼 빠진 사람처럼 방 안을 빙빙 돌면서 안절부절했다. 그 사람에게 5천 달러를 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대로 하라고 버티어 볼 것인가?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망설이며 마치 악몽에라도 쫓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밤의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카네기씨의 클라스에 있었 을 때 얻었던 <<고민을 극복하는 법>>이라는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여기서 캐리어씨의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라>는 말을 대하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세 물었다. '만약 내가 돈을 주지 않아서 그 협박자가 지방 검사에게 고발한다면, 최악 의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그 대답은 '회사가 망한다. 그것이 최악의 경우이다. 교도소에 들어갈 리는 없다. 업계 에서 신용을 잃고 회사가 문을 닫게 될 뿐이다. 좋다. 그렇다면 회사는 망한 다. 그건 그렇다고 하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무언가 일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좋겠 지. 나는 석유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 또한 일 자리를 부탁하 면 기분좋게 나를 써 줄 회사가 몇 군데는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자 나 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사흘 낮 사흘 밤을 두고 나를 괴롭히던 걱정의 안개 개 옅어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그러자 놀랍게도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제3단계인 <최악을 보다 좋게 완화하라>에 직면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서 해결법을 생각하는 동안 아주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 다. 어쨌든 한 번 변호사를 찾아가서 앞뒤의 사실을 털어 놓는다면, 내가 알지 못하던 해결법을 찾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사실은 공연히 헛된 고민을 해왔던 것이다. 그 럼, 내일 아침 당장 변호사를 찾아가리라―나는 이렇게 결심하고 나서 자리에 들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튿날 아침 변호사는 검사를 찾아가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실행했다. 검사는 내 이야기를 다 듣 고 나더니, 이런 협박 사건은 예전부터 자주 있었으며 <그 계통의 감독관>이 라고 사칭하는 사나이는 수배 중인 상습범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 고 깜짝 놀랐다. 그런 상습적인 나쁜 놈에게 5천 달러를 내주어야 하나 어쩌 나 하고 망설이면서 사흘 동안이나 꼬박 고민하던 끝에 이런 말을 듣자 정말 마음이 놓였다. 이 경험은 나에게 잊혀질 수 없는 교훈을 주었다. 나는 난처한 문제가 생기 면 언제나 윌리스 H. 캐리어의 공식을 적용하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캐리어 씨보다 더 고민한 사람도 있다. 이번에는 매사추세츠주 윈체 스터시에 사는 알 P. 하네씨의 실화를 적어 보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1948년 11월 17일, 보스턴의 스타르라 호텔에서 직접 들은 사실이다. "20년대에 나는 몹시 고민한 탓으로 위궤양 증세가 나타났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많은 피를 토하고 시카고의 노오드 웨스턴 대학 부속 병원에 입원하는 처지가 되었다. 몸무게가 175파운드에서 90파운드로 줄어들었다. 나는 중태이 므로 손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세 사람의 의사가 나를 <불치>라고 진단 했다. 한 시간마다 먹는 음식물이라고는 알칼리성의 분말과 반 숟가락 정도의 밀크와 크림뿐이었다. 간호사는 아침 저녁으로 위에다 고무관을 집어 넣어 위 속의 것을 빨아 냈다. 이러기를 몇 달이나 계속했다― 마침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알 하네여, 만일 네가 죽음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면, 이제부터 남겨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게 어떻겠는가. 너는 죽기 전에 세계일주 여행을 한 번 하기를 원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의사에게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고 싶으며, 하루에 두 번 위를 씻어 낼 생각이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깜짝 놀랐다. 어림없는 소리! 그것 은 미친 짓이다. 세계일주여행 따위에 나섰다가는 바다에 장사지내게 될 것 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주장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네브래스카주 부 로우큰 보우에 있는 조상 대대의 묘소에 묻어 줄 것을 친척들에게 부탁해 놓 았다. 그러니까 나는 관을 등에 지고서라도 떠나겠다." 나는 관을 준비해 배에 싣고, 내가 죽으면 시체는 냉장고에 보관하여 본국 으로 이송해 주도록 기선 회사와 예약을 해 두었다. 나는 마치 노시인 오마르 와도 같은 심정으로 미국을 출발했다. 아아, 남겨진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이용하하. 우리가 죽어서 티끌로 떨어져 가기 전에 먼지는 먼지가 되어, 또 먼지 밑에 누오리 술도 없고, 노래도 없고, 시인도 없다. 그리고 ― 종말도 없나니! 로스앤젤리스에서 프레지던트 애스덤호를 타고 동양으로 향하게 되자, 나의 마음은 상쾌해졌다. 이때부터 나는 서서히 알칼리성 분말 복용이라든가 위장 을 씻어 내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온갖 종류의 음식―내 몸에 아주 해롭다는 이국의 낯선 음식까지도 거리낌없이 먹기 시작했다. 몇 주일 뒤에는 독한 잎담배까지 피웠고, 하이보올도 마시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배를 타고 있는 동안 계절풍이며 심한 풍랑과 태풍도 만났지만, 공포를 느껴 죽을 지경이기는 커녕 그러한 모험에 유쾌한 흥분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는 배 안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고, 노래도 불렀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 함께 어울려서 밤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중국과 인도에 닿았 을 때, 나는 본국에서 직면해 온 사업상의 괴로움 따위는 동양의 빈곤이나 굶 주림에 비하면 천국과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부질없는 걱정을 모 두 잊었다. 실로 즐거웠다. 미국에 돌아왔을 때 내 몸무게는 90파운드나 늘어 있었다. 위궤양 같은 것은 말끔히 잊어버렸다. 건강 상태는 아주 좋았다. 나 는 전처럼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앓은 일이 없다." 하네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캐리어씨의 고민을 극복하는 공식을 실행했 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첫째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란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 대답은 죽음이었다. 둘째로, 나는 남겨진 짧은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즐겁게 보냄으로써 사태 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했다.― 만약 내가 배를 타고 난 뒤에도 고민하기를 계속했더라면, 관 속에 누워서 시체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 러나 나는 마음 편하게 지냈다. 온갖 번민을 모두 잊었다. 이와 같은 정신의 안정이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원을 주었으며, 그것이 내 목숨을 건져 준 것이 다." 그러면 여기서, 만일 여러분에게 어떤 고민거리가 있다면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실행하는 것이 유익하다. 캐리어 씨의 마술적 공식을 적용하여 1.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항은 무엇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2.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3. 그런 뒤에는 조용히 그 최악의 사태를 개선해 간다. 3. 고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알렉시스 카렐 어느 날 저녁 이웃 사람이 찾아와서 나와 우리 집 가족들은 모두 종두를 맞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결고로 뉴욕 시내에는 곳곳마다 종두를 맞으 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섰다. 종두는 병원에서 뿐만 아니라 소방서, 결찰 서, 공장 같은 데서도 실시되었다. 2천명이 넘는 의사와 간호사가 밤낮으로 있 는 힘을 다해 일했다. 그러면 이 소동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이즈음 뉴욕 시내에서 8명의 천연두 환자가 생겨 두 명이 사망했다. 약 8백만 인구 중에서 겨우 두 사람의 희생자가 생겨 이런 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37년이 넘도록 뉴욕에서 살아 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고민이 라는 정신적인 질병―이 37년 동안에 천연두의 수천 배, 수만 배에 이르는 손 해를 주고 있는―에 대하여 경고를 해 준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1할은 고민이라든가 감정적인 갈등으로 말미암 아 신경 쇠약증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경고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 러므로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이것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박사는 말한다.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라고. 이 말은 단지 사업가뿐만 아니라 가정 주부, 의사, 노동자들에게도 모 두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나는 산타 페 철도 회사의 의무국에 근무하는 O. F.고버 박사와 함께 텍사스에서 뉴멕시코까지 자동차 여행을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고민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7할은 고민이나 공포감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으면 완쾌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병이 단순히 기분 탓이라는 말은 아니다. 심 한 치통이라든가, 무서운 중증 따위는 결코 기분 탓일 수 없다. 신경서 소화불 량, 어떤 종류의 위궤양, 심장병, 불면증, 두통, 그리고 어떤 종류의 마비 등도 확실히 상상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병은 아니다. 이러한 병들은 현실이다. 나 자신도 12년 동안이나 위궤양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 포는 고민의 원인이 된다. 고민은 인간은 긴장케 하고, 초조하게 하며, 위신경 에 영향을 주어 위액의 분비에 이상을 초래하고 때로는 위궤양으로까지 발전 시킨다." 이에 대하여 조셉 F. 몬타규 박사도 그의 저서 가운데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위궤양의 원인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 또 W. C. 알바레스 박사는 「위궤양은 때때로 가정적 긴장의 강약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이 보고는 마요 진료소에거 위 진찰을 받은 천 5백명의 환자에 대해 연구한 결과이다. 그 가운데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아무런 육체적인 원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공포, 불안, 증오, 극단적인 이기주의 현실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무능이 그들이 걸린 위장병의 원인이었다. 위궤양은 불치의 죽을 병이다. 잡지 <<라이프>>에 의하면, 위궤양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전 사망자 수 가운데 제10 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산업계에 관계하고 있는 의사들의 연차 연합회에서 마요 진료소의 해 럴드 C. 헤바인 박사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고 있다. 그가 평균 연령 43.4세 의 중역급 176명을 진찰한 결과에 의하면, 그 중 3분의 1이상이 이른바 고도 의 긴장 생활에서 오는 특유한 질환, 말하자면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실업계 중역들 가운데 3분의 1이 나이 45세도 되기 전에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등으로 그들의 육체를 소모하고 있단, 성공이란 얼마 나 값비싼 것인가를 반증해 준다. 게다가 그들의 모두가 성공을 차지하고 있 지도 못한 것이다! 온 세계를 모두 차지한다 해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천 하를 그 손아귀에 넣었다 할지라고 그의 침대는 하나로 족할 것이며, 하루에 세 끼밖에는 먹지 못하다. 이것은 시궁창을 파는 노동자라도 다를 것이 없으 며, 오히려 이들은 중역들보다도 깊은 잠을 잘 자고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 같으면 철도 회사나 담배 공장을 경영하다가 45살에 건장을 잃으니보다는 밴조(악기)를 무릎에 놓고 앨라배마의 동가에서 소작인 노릇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침 담배라는 말에서 생각난 일인데, 최근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담배 제조업자가 캐나가의 숲 속을 산책하다가 심장 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61세로 급사했다. 아마도 그는 <사업 상의 성공>과 자신의 수명을 맞바꾼 것이리라. 내가 보기에는, 그 백만장자인 연초 회사 중역의 성공은 무일푼으로 81살에 돌아가신 미주리주의 농부였던 내 아버지의 성공에 비해 훨씬 못하다고 생각 된다. 유명한 마요 형제는 국내에 있는 병원 침대의 과반수는 신경병 환자가 차지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신경은 시체를 해부하여 정밀 한 현미경으로 조사해 본 결과, 대부분의 경우 잭 뎀프시의 신경와 같은 정도 로 건강했다. 그들의 <신경의 고장>은 신경의 물리적 퇴화에 의한 것이 아니 라 무익, 실패, 오뇌, 공포, 패배, 절망 등의 감정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플라톤 의 말에 「의사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은 우선 마음을 치료하려 하지 않고 육체를 고 리쳐는 데 있다. 사람의 마음과 육체는 하나이므로 그것을 따로 취급할 것이 아니다. 」 라고 했다. 어쨌든 의과학이 이 위대한 진리를 의식하기까지는 2천 3백년이나 걸렸다. 최근에는 정신 신체 의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의과학이 발달되고 있다―이것 은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는 의과학이다. 이제는 그렇게 되어도 좋을 법하 다. 종래의 의학은 물질적인 병균에 기인된 질병―천연두, 호열자, 황달병, 그 밖의 무수한 사람을 불행한 죽음으로 몰아 간 질병을 박멸할 수 있었으나, 병 균 때문이 아닌 오뇌, 공포, 증오, 절망 같은 감정에 의해 일어나는 정신적 육 체적 환자를 구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러한 감정 질환에 의한 사망율은 놀라운 속도로 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말로는 현재의 미국인 20명 중 한 사람 꼴은 일생에 한 번은 정신 병원을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또 제2차 대전 중에 소집된 젊은이 가운데 6명 중 한 사람은 정신병이나 정신 박약자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정신 이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아무도 모 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공포와 오뇌가 그 주된 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것 같다. 즉 차디찬 현실 세계와의 싸움에 지고, 의기가 꺾인 사람들은 그의 환경 과 인연을 끊고, 그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자기만의 꿈의 세계로 도피하고 만 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긔 고민은 해결되는 것이다. 지금 내 책상에는 에드워드 포돌스키 박사의 <<고민을 중단하고 개선하 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있는데,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들이 있다. < 고민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 <고혈압은 고민에 의해서 일어난다> <류머티스는 고민에 의해 생길 수 있다> <위장을 위해서도 고민을 적게 하라> <고민은 어찌하여 감가의 원인이 되는가> <고민과 갑상선> <고민하고 있는 당뇨병 환자> <<마요 형제>>로 유명한 칼 메닝거 박사의 <<자기를 배반하는 인간>>이 라는 저서에는, 고민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기술은 없으나, 불안, 실 의, 증오, 원한, 반항, 공포 등에 의해서 어떻게 인간의 육체가 파괴되는가 하 는 것이 자세히 씌어 있다.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오뇌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병들게 한다. 그랜트 장군은 남북 전쟁 끝무렵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랜트 장군은 9개월에 걸쳐 리치먼드를 포위 공격하고 있었다. 리 장군의 군대는 굶주림에 지쳐 패배하여, 전군이 도망치지 시작했다. 남은 병사들은 텐 트 안에서 기도회를 열고 울부짖으며 광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최후가 눈앞 에 다가왔다. 리 장군의 부하들은 리치먼드의 목화 창고와 담배 창고에 불을 지르고 병기고를 태워 버리고는 밤하늘에 치솟는 불길을 뒤로 하고 시내에서 도망했다. 그랜트 장군의 군대는 좌우 양쪽과 뒤에서 맹렬히 남군을 추격했다. 한편 세리단 장군이 이끄는 기병대는 적이 도망가는 길을 끊고 철도를 파괴하 여 군수 물자를 실은 열차를 포획했다. 그런데 그랜트 장군은 심한 두통에 시달려 하는 수없이 대열에서 처져 어떤 농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아래와 같이 씌어 있다. 「나는 밤새도록 겨자탕에 두 발을 담그고 손목과 목 뒤에는 겨자 고약을 붙이고는 아침까지는 부디 좋아지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말끔히 완쾌되었다. 그러나 겨자 고약의 효력은 아니었 다. 그것은 리 장군의 항복 문서를 지닌 군사가 도착한 때문이었다. 그랜트 장 군을 그 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군사가 와 닿았을 때 나는 여전히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문서 의 내용을 보는 순간 곧 두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확실히 고민과 긴장이 그랜트 장군을 병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감 정이 자신, 성공, 승리의 빛을 띠기 시작하자마자 단번에 완쾌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70년 뒤에는 프랭클린 루우즈벨트 내각의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 는, 고민은 사람의 기분을 해치고 현기증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일 기에는 대통령이 밀 값을 인상하기 위해 하루에 4백 4십만 부셀의 밀을 사들 일 때, 그는 몹시 난처했었다고 적혀 있다. 「나는 그런 일이 행해지고 있을 때,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그래서 집으 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하고 두 시간이나 자리에 누워 있었다.」 고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싶다면, 나는 달리 도서관이나 의사를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쓰고 있는 내 집의 유리창 을 통해서도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1가 구내에는 고민으로 말미암아 심한 신경 쇠약증에 걸린 사람도 있고, 당뇨병을 앓은 이 의 집도 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이는 주식이 폭락했기 때문에 혈액 중의 당분과 오줌의 양이 상승한 탓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몽테뉴가 그의 고향 보르도의 시장으로 뽑혔을 때, 그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문제에 기꺼이 손을 빌려 드릴 생각입니다면, 그것을 나의 간이나 폐에까지 미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이웃 사람은 주식 시장 문제를 가지고 어찌나 자시의 속을 썩였던지, 자 칫 죽음에까지 이를 뻔했다. 고민이 인간에게 어떠한 작용을 미치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고 싶다면 구태 여 이웃집을 들출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방을 보면 된다. 이 집의 전 주인은 너무 고민하던 나머지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데도 서둘어 무덤으로 가 버렸다. 또 고민으로 말마암아 사람들은 관절염이나 통증에 걸려 바퀴의자 신세를 지는 수가 있다. 코넬 의과대학의 러셀 L.세실 박사는 통풍에 대해 세계적 권 위자인데, 그는 가장 많은 통풍의 원인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1. 결혼의 실패 2. 경제적 재난과 그에 따른 비탄 3. 고독과 오뇌 4. 오랫동안 계속 쌓여 온 원한 물론 이상 네 가지의 감정적 조건만이 통풍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 풍에도 여러 가지 원인에서 오는 갖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 하지만, 통풍을 일으키는 가장 보편적인 조건은 세실 박사가 열거한 네 가지 에 그친다. 예를 들면,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이 불경기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 가스 회사는 가스를 끊었고, 은행은 집을 차압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갑자 기 심한 통풍에 걸렸다. 온갖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 런데 이 병은 남편의 경제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ㅇ다. 또 고민은 충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윌리엄 메코니글 박사가 미국 치과 학회에서 보고한 바에 의하면 「고민, 공포, 잔소리 등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은 체내의 칼슘의 균형을 잃 게 하여 충치의 원인이 된다.」 라고 했다. 박사를 찾아온 어떤 환자는 그의 부인이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이 가 건강했는데, 아내가 3주일이나 입원해 있는 동안에 충치가 9개나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고민이 그 원인이었다고 했다. 여러분은 갑상선에 의하면, 그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 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체를 조정하는 갑상선의 분비가 고르지 못 한 때문이다. 가슴이 몹시 뛰며 온 몸이 마치 통풍조절 장치를 활짝 열어 놓 은 난로처럼 활활 타고 있는 것이다. 수술이나 무슨 방법으로 이것을 저지하 지 않는 한, 까맣게 타버리고 말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이런 병에 걸린 친구와 함께 필라델피아에 갔었다. 그리고 이 방면의 명의로 알려진 이스라엘인 부람 박사의 진찰을 받기로 하였다. 그의 대합실에는 커다란 액자에 넣은 다음과 같은 주의서가 걸려 있엇다. *휴식과 오락 사람의 마음을 가장 부드럽게 해 주며 영기를 길러주는 힘은 건전한 종교, 수면, 음악, 웃음이다. 주께 믿음을 바치라―깊이 잠들라― 좋은 음악을 사랑하라―인생의 익살스러운 면에도 눈을 돌리라― 그렇게 하면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박사가 내 친구에게 물어 본 첫째 질문은 「어떤 감정적 고민이 이런 증상을 일으키게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경고했다. 만일 이대로 고민을 계속한다면 심장병, 위궤 양, 당뇨병까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러한 병들은 서로 친척지간이라는 것이었 다. 사실 그 말대로이다. 말 오베론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결코 사소한 일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연히 그런 걱정을 하 면 스크린에서의 연기에도 지장이 있고, 또 얼굴도 미워질 케니까요. 제가 처 음으로 영화계에 들어서려 했을 때, 걱정이 되고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갓 왔기 때문에 런던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는 두 서너 분의 제작자를 찾아갔습니다만 아무도 저를 채용해 주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저는 2주일 동안이나 과자 와 물만으로 지냈습니다. 그러자니 걱정이 될 뿐만 아니라 배도 고팠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영화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경험도 없고, 연기 같은 것은 해 본 일도 없지 않 은가! 겨우 얼굴이 좀 예쁘다는 것뿐이 아닌가?' 저는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 보았을 때, 고민이 세 얼굴을 형편없이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주름살 과 겁에 질린 표정을 역력히 찾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 게 타일렀습니다. 이런 짓은 단연코 그만 두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까지나 고 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볼 만한 것이라고는 단 하나뿐인 얼굴이 형편없이 되어버리지 않느냐?' 라고" 고민처럼 여자를 빨리 늙게 하고 추하게 하며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없다. 고 민은 표정을 굳어 버리게 하며, 턱의 곡선을 딱딱하게 만들고, 얼굴에 주름살 을 만든다. 얼굴을 찌푸린 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백발을 늘게 하고, 탈모 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얼굴을 거칠게 하고, 온갖 종기나 여드름의 원인 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심장병은 미국에서 제1위를 차지하는 죽음의 병이다. 제2차 대전 중 에 전사한 미군의 수는 약 30만 명인데, 같은 시기에 심장병으로 사망한 시민 의 수가 2백만 명이나 된다. 그 중에서 백만 명은 고민과 심한 긴장이 병의 원인이었다. 카렐 박사가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라고 말한 까닭의 하나에 이 심장병이 꼽혀 진다. 남부의 흑인이나 중국인은 어떤 일에 구애되어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 으로 인한 심장병은 거의 걸리지 않는다. 또한 통계에 의하면 심장병으로 죽 는 의사의 수는 농장 노동자의 20배에 이르고 있다. 의사들은 정신적으로 긴 장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셈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지 모르나, 신경 계통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헨리 제임즈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전혀 믿을 수 없을 만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즉 해마다 전염병으로 죽는 미국인이 수효가 가장 많은 데, 그보다도 대개의 경우 <고민> 때문이다. 잔인한 중국의 장군이 포로를 고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포로의 손발을 묶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물주머니 밑에 앉혀 준다. 똑…… 똑…… 똑…… 밤낮을 가리지 않고 똑…… 똑…… 한 번도 그칠 사이없이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마침내 해머로 때리는 소리처럼 들리 게 되어―포로의 정신을 미치게 한다. 이러한 고문법은 스페인의 종교 재판, 히틀러 치하의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도 쓰여졌다. 고민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똑… … 똑…… 떨어지는 그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고 자살로 몰아 넣기도 한다. 내가 미주리주의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빌리 선디의 <지옥의 업화에 대 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무서워한 일이 있다. 그러나 내게 그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이승에서의 고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되는 육체적 고통의 업 화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다. 이를테면 만일 당신이 조그마한 일 로도 대단히 걱정을 하는 성질이라면 협심증이라는 고통에 사로잡혀 쓰러져 버릴지고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괴로움으로 신음할 것이다. 당신의 울부 짖음에 비한다면, 단테의 <<지옥편>>에 나오는 아비규환도 <장난감 나라 아 기들>의 울으소리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오 주님이시여! 이 병만 낫는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고민하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신에게 말할 것임에 틀림없다(내 말이 지나친 과장이라고 여긴다면, 당 신의 가족이나 의사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오래도록 장수하여 건강을 즐기 기를 바라는가? 거기에는 좋은 방법이 있다. 나는 다시 카렐 박사의 말을 인 용하기도 한다. "현대 도시의 혼한 속에서도 편안한 정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정 신적인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 당신은 과연 어떠한가. 당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대답은 <예스>일 것이다. 아니, 단연코 <예스>인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 는 것보다도 강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정신적 자원 을 지니고 있다. 도로우의 불면의 명저 <<왈덴>>가운데 이러한 구절이 있다.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그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훌륭한 능력만큼 믿 음직한 것은 없다……만일 인간이 자기의 이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확신을 가 지고 나아가, 그가 공상하던 인생을 누리려고 노력한다면, 보통으로는 기대할 수 없을 만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올가 자비에 못지 않은 의지력과 정신적인 자원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다호우주 커르 달렌에 살고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비극적인 환경에 처했으면서도 고민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되풀이하여 설명하고 있는 진리를 적 용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올가씨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는 8년 전에 암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죽음을 선고받았습니다. 유명한 전 문가도 그렇게 진단했습니다. 나의 앞길은 막히고 죽음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젊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주 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 속의 절망감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조 금 초조한 듯이 저를 타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지요? 올가씨? 당신에게는 아무런 투지도 없습니까? 울고만 계시다간 정말 죽고 맙니다. 지 금 당신의 병세는 확실히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요. 그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현실과 대결하는 거예요! 고민은 그만 두십시오. 그리고 어 ㅉ든 노력해야 합니다!』이 말을 듣고 저는 그때 그 자리에서 두 손을 아프도 록 움켜 쥐고 굳게 맹세했습니다.――『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 울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물질보다도 월등한 정신력이라는 것이 있기만 하다면, 나는 반드시 이겨 내리라!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라듐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된 데에 대한 뢴트겐 선의 보통량은 하루에 10분씩 30일간이지만, 저는 49일 동안을 하루에 14분 30초씩이나 쐬었습니다. 저의 위는 불모의 언 덕 위에 있는 바위처럼 깡마른 몸에서 튀어 나왔고,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 워졌으나, 저는 결코 작은 일을 걱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도 눈물 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랑하게 웃으며 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기 야 아무리 그렇게 버티고 있는 저이기는 했지만, 벙글거리기만 하면 암이 낫 는다고 믿을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그러나 명랑한 정신적 태도야말로 육체가 병과 싸우는 것은 도와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거의 기적적인 암의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그전보다 더 건강해졌는데, 이것도 모두 『사실과 대결하는 거다! 고민을 걷어 치워라! 그리고 어떻게든 노력해 보는 것이다!』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카렐 박사가 말한 "고민과 싸우는 방법은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라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이 장을 끝마칠까 한다. 예언자 마호멧을 광신하는 신자들은 그들의 가슴에 <<코란>>에 있는 성구 를 문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모든 사름에, 이 장의 타이틀을 새겨 주고 싶다.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카렐 박사는 대체 누구를 향해 이 말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 1 부 요 약 고민에 대해 꼭 알아 두어야 할 기본적 사실 제1법칙:만일 고민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윌리엄 오슬러경이 한 대로 실행하라――즉 <오늘에 산다>는 것. 미래에 대해서는 마음을 죄지 말 것. 잠 자리에 들 때까지, 다만 그날 하루를 생활할 것 제2법칙:고민에 쌓여 헤어날 수 없다면, 윌리스 H. 캐리어씨의 마술적 공식을 적용할 것. 1. 스스로에게 묻는다.――「만일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무엇인가?」 2.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에는 최악의 사태에 부닥칠 각오를 한다. 3. 이미 마음 속에 받아들인 최악의 사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완화하도록 노 력한다. 제3법칙:건강이라는 이름으로써, 고민에 대해 지불하고 있는 터무니없이 많을 댓가를 생각하라.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 제 2 부 고민 분석의 기본적 기법 4. 고민의 분석과 그 해결법 나는 여섯 명의 충복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 그들이 가르쳐 준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이다. ――루드야드 키플링 제 1부의 2장에서 말한 윌리스 H. 캐리어의 마술적 공식은 모든 고민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그 해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온갖 종류의 고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 분석의 세 가지 기본적 단계를 알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세 단계란―― 1. 사실을 파악한다. 2. 사실을 분석한다. 3. 결단한다――그리고 그것을 실행한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것을 가르쳤고, 또한 실천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나날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제1법칙을 들어 보기로 하자. <사실을 파악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을 파악한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즉, 만일 그렇지 않으면 지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일까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없고서는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할 뿐이다. 이것은 나만의 의견이 아니라, 칼럼비아 대학의 학장이었던 고 허버트 E. 허크스씨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일찍이 20여만 명 학생들의 고민 문제 해결을 지도해 왔다. 그는 나에게 <혼란이 고민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의 고민의 절반은, 사람이 결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을 충분히 갖지 않고 결단하려고 서두르는 것이 그 원인이다. 가령 나에게 다음 주 화요일 3시에 맞닥뜨려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하자. 나는 화요일이 되기까지는 그 문제에 대해서 결단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이 문제에 관계있는 온갖 사실을 파악하기에 전념할 뿐이지 결코 자꾸만 걱정하고 조바심하지는 않는다. 골치를 앓지도 않거니와 불면증도 걸리지 않는다. 다만 사실을 파악하기에 전념할 뿐이다. 그리고 화요일이 디기까지 사실이 파악되어 있으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하는 것이다. 나는 허크스 학장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나는 완전히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누구든지 공평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소비한다면, 모든 고민은 지식의 빚을 받아 증발하고 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한 번 되풀이 하면 <누구든지 공평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소비한다면, 모든 고민은 지식의 빛을 받아 증발하고 만다는 것을 발견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인간은 사고의 노력을 회피하려고 온갖 방편에 의지한다. 고 토머스 에디슨도 말한 일이 있지만――우리들은 기왕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지지하는 사실만은 추구하며, 다른 것은 모두 무시한다. 우리는 자시의 행동을 정다화하는 사실, 희망적인 생가과 일치되는 사실만을 구하여 미리 생각해 두었던 편견을 정당화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앙드레 모로아는 이 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개인적인 욕망에 일치되는 것들은 모두 진실인 것처럼 생각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를 노하게 만든다. 이러고 보면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둘 더하기 둘이 다섯(2+2=5)이라는 가정 아래 나아간다면, 이와 같은 단순한 계산 문제일지라도 다분히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둘 더하기 둘은 다섯 ――때로는 5백이라고 고집을 부려 자타의 생활을 지옥화하고 있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사고에 감정을 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크스 학장이 말한 대로 <공평한 객관적인 방법으로ㅍ사실을 파악하는>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민하고 있을 때는 감정이 흥분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문제를 벗어나서 사실을 뚜렷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1. 사실을 파악하려 할 에는,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실을 냉정하고 공평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감정을 제거할 수 있다. 2. 자신을 괴롭히고 어떤 문제에 관해 사실을 수집할 때, 나와는 반대측에 서서 변론하여고 준비하고 있는 변호사의 입장이 되어 보라. 다시 말하면 나에게 불리한 사실,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는 사실을 뚜렷하게 해 주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측의 사실과 상대편의 사실을 글로 적어 본다. 대개의 경우 진실은 이 두 가지 상반된 극단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도, 나도, 아인쉬타인도, 합중국최고 재판소도 우선 사실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문제에도 현명한 재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가 남긴 2천 5백 권의 노트에는 그가 직면했던 문제에 관한 사실들이 가득히 적혀 있었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의 제1법칙은 <사실을 파악하는 데>있다. 허크스 학장이 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우선 공평한 태도로 사실을 수집한 다음에 문제 해결에 착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온갖 사실을 모은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을 분석하고 해명하기까지는. 나는 쓰디쓴 경험을 한 결과 사실을 기록하고 나서 분석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문제를 종이 위에 써 본다는 것은 현명한 결정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것이 된다. 정확학 문제를 기술한다는 것은 문제의 절반을 해결한 것이 된다. 라고 차알즈 케더링은 말했다.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설명해 보기로한다. 일찍이 중국인들이 한 폭의 그림은 일만어의 문자보다 뛰어나다고 했듯이, 나는 여기서 어떤 한 사람이 어떻게 하여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현실의 행동으로 옮겼는가를 그림으로 보여 드리기로 하겠다. 이것은 동양에서 가장 성공한 미국인 중의 하나인 갈렌 리치필드의 사실담이다. 1942년 그가 중국에 있을 때, 일본군이 상해에 침입했다. 다음 이야기는 그가 우리집에 찾아왔을 때 들여 준 것이다.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하고 얼마 안되어서 상해로 물밀 듯이 밀어 닥쳤다. 나는 바로 그 무렵, 상해에 있는 아시아 생명 보험회사의 지배인으로 있었는데, 일본군은 <군대 청산인―그는 현역 해군 대장이었다―을 우리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나에게 이 사람에게 협력하여 회사의 자산을 청산하라고 명령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협력이냐, 아니면 총살이냐,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들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했다. 왜냐하면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5만 달러에 해당하는 일부의 증권만은 일본군에게 넘겨 준 자산표에서 제외해 두었다. 이들 증권은 홍콩 지점에 소속된 것으로 본사의 자산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만일에 이것이 발각되면 혼날 것이라고 겁이 났었는데, 결국 그들에게들키고 말았다. 이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나는 마침 없었고, 사무실에는 회계과장이 있었다. 나중에 그가 하는 말에 의하면, 일본 군인인 청산인―그는 장성급이었다고 한다―은 노발대발하여 발을 구르며 야단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를 두고 『도둑놈! 반역자! 일본군을 모독하다니!』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붓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브리지 하우스에 끌려갈 것은 면할 길이 없는 셈이다. 브리지 하우스! 이것이야말로 일본 게쉬타포(나찌스의 비밀 경찰)의 고문실이 아닌가! 내 친구 중의 하나는 그곳으로 연행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자살했다. 그곳에 열흘 동안 갇혀서 고행하다가 죽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지금 내가 그 속으로 끌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였던가? 내가 사건의 내용을 들은 것은 일요일 오후였다. 이 만일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한 기법을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나는 공포로 당황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무슨 고민이 있기만 하면, 즉시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과 그 대답을 기록하기로 해 왔던 거싱다. 즉―― 1.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2.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얼마 전까지는 문제를 기록하거나 하는 일없이 그 해답을 얻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런 짓은 그만 두기로 했다. 그것은 문제와 해답을 함께 기록하는 편이 훨씬 사고를 명확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요일 오후에 나는 즉기 기독교 청년 회관 안의 내 방으로 가서 타이프라이터를 끌어 내어 다음과 같이 타이핑했다. 1.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나는 내일 아침, 브리지 하우스에 갇히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다음에 나는 제2 질문을 타이핑했다. 2.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몇 시간을 곰곰히 생각한 끝에, 실행할 수 있는 네 가지 경우를 적어 보았다. 1. 나는 일본군 장교에게 자세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모른다. 만일 통역을 통해 설명한다면 다시금 그를 노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잔인하 사람이니까, 귀찮은 변명 따위를 듣기보다는 나를 브리지 하우스에 처 고 말할 것이다. 2. 도망칠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언제나 나의 일거 일동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도망하려다가 들키면 붙잡혀서 총살될 것이다. 3. 나는 이 방에 들어박혀 사무실에는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일본군 장교에게 의심을 살 것이다. 그는 나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병사들을 보내어나를 브리지 하우스에 집어 넣고 말 것이다. 4. 나는 월요일 아침에 여느때처럼 태연하게 사무실에 출근하는 방법도 있다. 일본군 장교는 언제나 바쁘게 때문에, 내가 한 일을 생각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일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때는 기분이 냉정해졌을 때니까, 어쩌면 나를 내버려 둘지도 모른다. 일이 그렇게만 된다면 다행이겠으나, 설령 그가 나를 괴롭힌다 해도 그때는 또 그때대로 변명할 기회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월요일 아침에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브리지 하우스로 가는 길을 모면하는 두 번의 기회를 갖는 셈이 된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네 번째의 계획을 받아들일 결심을 하자, 그와 동시에 기분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다음날 아침 내가 사무실에 나갔을 때, 일본군 장교는 담배를 입에 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빤히 노려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주일 뒤에 그는 도쿄로 돌아갔고 나의 고민은 끝났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일요일 오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갖가지의 수단과 그 결과를 기록해 보고 나서 냉정하게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나는 죽음에서 구출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허둥지둥 당황하여 경거 만동하다가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심사 숙고한 끝에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일요일 오후를 번민 속에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밤은 뜬눈으로 새웠을지도모른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는 초췌한 얼굴로 사무실에 나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마도 일본군 장교는 의혹을 품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여러 차례의 경험에 의해, 나는 결단에 이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일정한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 언제까지 개미 체바퀴 돌듯하면서 그것을 멈출 힘이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을 신경 쇠약증에 걸리게 하고 생지옥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나는 내 고민의 50퍼센트는 일단 내가 명확한 판단에 이름과 동시에 소멸되며, 나머지 중 40퍼센트는 그 판단을 실행해 옮김으로써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의 4단계로써 고민의 9할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1. 무엇에 대해 고민하는가를 자세히 기록한다. 2. 그것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한다. 3.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4. 그 판단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갈렌 리치필드는 현재 스타 파크 앤드 프리맨 회사(뉴욕 보험업 투자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의 극동 담당 이사인데, 그는 나에게 자기의 성공은 앞에서 말한 고민 분석법과 그 실행법에 힘입은 바 크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 어째서 그의 방법이 그렇게 훌륭한 것인가? 그것은 그 자체가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3의 없어서는 안될 법칙, 즉 <그것에 대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온갖 사실의 발견도 그 분석도 공념불일 것이며, 정력의 장비에 불과한 것이다. 윌리엄 제임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단 결단이 내려져 그 실행만이 남아 있을 때는,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과 <걱정>은 완전히 잊어버려라. (이 경우에 윌리엄 제임즈는 <걱정>과 <불안>을 동의어로 사용한 것 같다.) 그는 아마도 일단 사실에 의거하여 주도 면밀한 결단이 내려졌으면 곧 행동에 옮겨라. 재고하거나 하지 말라.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뒤로 물러서지 말라, 뒤미쳐 연달아 일어나는 의혹에 끌리지 말라, 어깨 너머로 뒤돌아 보지 말라――고 설파한 것 같다. 나는 언젠가 오클라호머에서 으뜸가는 대석유업자 웨이트 필립스씨에게, 그는 어떻게 해서 결단을 실행해 옮기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어떤 문제를 일정한 한도 이상으로 계속해 생각한다는 것은 혼란과 고민을 자아낼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때로는, 정도 이상으로 연구하거나 또 사고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있다. 때로는, 결단하고 행동하여 뒤돌아 보아서는 안 될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제는 갈렌 리치필드의 기법을 자신들의 고민데 적용시켜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5. 사업상 고민의 5할을 없애는 법 만일 당신이 실업가라면, 당신은 아마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이 문장의 타이틀은 우스꽝스럽다. 나는 이미 19년 동안이나 사업을 계속해 왔다. 남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따. 사업상 고민의 50퍼센트를 제거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구? 맹랑하기 짝이 없군! 확실히 나 자신도 4, 5년 전에 이런 제목을 보았지만 이와 똑같이는 느끼었을 것이다. 그것은 중대한 것을 보증하고 있지만――보증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당신의 사업상 고민의 절반을 제거해 줄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잇는 것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여기서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왔는가를 전할 뿐이다――그리고 나서는 당신의 마음에 맡기는 것이다. 당신은 우선 내가 앞에서 인용한 알렉시스 카렐 박사의 고민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실업가는 일찍 죽는다. 라는 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고민이라는 것은 고토록 중대한 것이기 때문에, 설사 내가 당신 고민의 1할만이라도 줄어들도록 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만족할 일이 아니겠는가. 어떤가?――좋다! 그렇다면 어떤 중역이 영업상의 문제 해결에 노력하여 그 고민의 절반을 없애고, 회의에 허비했던 시간의 75퍼센트를 절약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이것은 <미스터 존>이라든가 혹은 <오하이오주의 내 친구>라든가 하는 막여한 사람에 대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인물에 대한 실화이다. 그동안 시몬 슈스터의 인쇄 회사 중역으로 있었으며, 지금은 뉴욕의 포켓북 발행 회사 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다음에 쓰는 것은 그 자신이 말한 그의 체험담이다. 15년 동안이나 나는 매일같이 반나절은 회의나 토론으로 보냈었다.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혹은 그만 둘까? 우리들은 사뭇 흥분했고 의자 위에서 몸을 뒤틀었으며 온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의논은 개미 쳇바퀴 돌 듯 끝이 없어 아무리 오래 끌어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녹초가 되도록 지쳐 버렸다. 죽을 때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가 싶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렇게 해 와서, 달리 좋은 방법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던 것이다. 이때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쓸데없이 귀찮은 회의에 소비하고 있는 시간의 4분의 3과 신경 긴장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리에 어둡고 실제로 쓸모없는 놈팡이라고 욕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 한 계획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제는 벌써 년 동안이나 이 벙법을 실시하고 있다. 그것은 능률, 건강, 행복의 점에서 실로 놀라울 만한 성공을 거도구 있다. 대뜸 이렇게 말하면 마술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온갖 마술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트릭을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 비결은 이렇다. 첫째로, 15년 동안이나 회의를 여는 데 써왔던 수속을 모조리 없앤다――우선 동료 임원들이 실패한 사항을 상세히 보고한 끝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로 끝나는 수속인 것이다. 둘째로, 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즉 나아게 문제를 제출하고자 하는 이는 우선 다음의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각서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것이다. 제1문――그 문제란 무엇인가? (종전에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뚜렷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로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귀찮은 의논을 계속했던 것이다.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뚜력이 적어 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 문제에 대해 갑론 을박 흥분했던 것이다.) 제2문――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나는 문제의 근본이 되고 있는 조건을 분명하게 파악하려 하지 않고 귀찮은 회의로만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겨운 생각이 든다.) 제3문――그 문제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해결법은 무엇인가? (종전에도 누군가가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주장한다. 그러다 보면 모두 열을 올리고 만다. 때로는 논의의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도 있다. 회의가 끝나고 보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항이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었다.) 제4문――당신이 제안하는 해결법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공연히 번민을 계속하여 왔을 뿐이며 조금도 이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내가 제안하는 해결법은 이것이다>하고 한 번도 기록해서 제출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 왔던 것이다.) 나의 동료들은 절대로 어떤 문제를 갖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러한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온갖 사실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다 한 뒤에는, 대개의 경우 나에게 의논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적당한 해결법이 마치 토스터에서 빵이 튀어나오듯이 나왔기 때문이다. 의논할 필요가 있는 경우일지라도 피차 의논은 종래의 3분의 1로 충분하다. 순서있게 논리적인 방법을 거쳐 타당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회사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거나 의논하는데 있어 긴 시간을 소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일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의논보다도 실행에 중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로 보험업계의 거물인 프랭크 베트거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업상의 고민을 해결하여 수입을 두 배 가량이나 늘렸다고 말하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보험 증서를 팔기 시작했을 대, 나는 이 사업에 무한한 정열과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 나는 실망한 나머지 사업이 지긋지긋해져서 그만 둘 까 하고 생각했다. 만일 어느 일요일 아침, 고민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만 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1. 우선 나는 나신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내가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는데도 불고하고, 수입이 이에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예약할 때에는 곧잘 되다가도, 막상 거래를 하려면 『글쎄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다음에 한 번 와 보십시오』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이나 헛걸음을 치게 되는 것이 점차 지긋지긋해졌다. 2. 나는 스스로 묻는다. 어떻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겠는가? 그러나 이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사실을 잘 연구해야만 했다. 나는 최근 1년 간의 장부를 내놓고 연구해 보았다. 나는 여기에서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 거래처의 7할은 단 한 번의 면담으로 성곡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머지의 2할 3부는 두 번 찾아가서 거래가 성립되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씩 시간을 낭비하게 한 뒤에 성립된 것은 겨우 7부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거래액의 7부 문에 낭비했던 셈인 것이다! 3. 대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명백했다. 나는 한 곳을 두 번 이상 방문하지 않기로 하고, 그 시간을 새로운 고객을 찾는 일에 돌리기로 하였다. 그 결과는 실로 놀랄 만했다. 얼마 안 가 나는 1회 방문의 가치를 2달러 80센트에서 4달러 20센트로 올릴 수가 있었다. 이렇게 미국의 생명 보험계에서 가장 수완있는 세일즈맨으로 매년 수백만 달러의 보험 계약을 성립시키고 있는 프랭크 베트거도 한 번은 보험업에서 손을 떼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는 실패를 수긍하려 했었다――그런데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성공에의 길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사업상 문제에 이러한 문답을 적용할 수 없는가. 나는 반드시 50퍼센트는 당신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다시 한 번 여기에 기록해 두겠다. 1. 문제는 무엇인가? 2.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3. 문제에 대한 온갖 가능한 해결법은 무엇인가? 4. 당신은 어떤 해결법을 제안할 것인가? 제 2 부 요 약 ――고민을 분석하기 위한 기본적 기법 제1법칙: 사실을 파악하라. 허크스 학장의 말을 기억하라. 이 세상의 고민의 절반은 결단의 밑바탕이 되는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 결단을 내리려고 서두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제2법칙: 온갖 사실을 용의 주도하게 살핀 뒤에 결단하라. 제3법칙: 일단 결단을 내렸으면 실행하라. 결단을 즉시 행동으로 옮겨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불아해 하지 말라. 제4법칙: 당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경우에는, 다음의 물음과 그 대답을 기록해 보라. 1. 문제는 무엇인가? 2.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3. 문제에 대한 온갖 가능한 해결법은 무엇인가? 4. 가장 좋은 해결법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배우기 위한 아홉 가지 시사 1. 만일 당신이 이 책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면, 어떠한 규칙이나 테크닉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한 가지 필요 조건이 있다. 당신이 이 기본적인 요소를 갖지 않은 한, 백 가지 천 가지의 연구법이 있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 기본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이 책에서 많이 나열된 제안 같은 것은 읽지 않더라도,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술적인 필요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민을 해고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 굳은 결의와, 그것은 배우겠다는 용기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은 충동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러한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항상 기억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탁월한 의사가 당신의 생활을 보다 풍성하게, 보다 행복해지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내 마음의 평화, 나의 행복, 나의 건강, 나의 수입까지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고래의 평명하고 항구적인 진리를 적용하느냐 않느야에 달려 있다.」 라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타일러야 한다. 2. 처음에는 이 책의 개요를 파악하기 위해 단숨에 각 장을 독파하라. 그렇게 한다면 빨리 다음 장을 들추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장난삼아 읽는 것이라면 몰라도,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고민을 해소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를 진정으로 원해 이 책을 읽는 것이라면, 다시 한 번 되돌아가서 각 장을 차근차근 다시 정독해 주기 바란다. 결국 그러는 편이 시간도 절약되고 성과도 오를 것이다. 3. 읽어 내려가다가 가끔 멈추어 읽고 있는 것에 대해 검토해 보라.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하여 이러한 시사를 적용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라. 이와 같은 독서법은 사냥개가 토끼를 좇듯이 맹진하는 것보다 훨씬 당신에게 유익할 것이다. 4. 붉은 크레용이나 색여필 또는 만년필을 손에 들고 읽을 것.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시사라면, 문장 전체에 선을 긋든가 ◎표를 할 것. 책에 ◎표를 하거나 선을 긋는 것은 그 책을 한층 더 흥미깊게 하며, 재독할 때에도 매우 편리하다. 5. 나는 15년간을 어느 대보험 회사의 지배인으로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는 매달 한 번씩 자기 회사가 발행한 보험 계약의 전부를 살펴 보고 있다. 그는 매달 매년 빼지 않고 똑같은 보험 계약을 전부 살펴 본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계약을 분명히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전에 퍼블릭 스피킹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데 2년이나 걸린 일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무엇을 썼던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에 기록했던 것을 다시 읽어야만 했다. 사실 누구나 인간은 빨리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이 책에서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한 번 읽고 넘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도 매달 다시 복습하는 데 4,5 시간은 들여야 할 것이다. 언제나 책상 위에 놓고 가끔 어 보아야 한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풍부한 향상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내 몸에 인상짓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열성있게 복습하고 적용을 반복함으로써 습관이 되어지며 무의식화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6. 버나드 쇼오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당신이 남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든다면, 그는 결코 배우지 않을 것이다. 쇼오의 이 말은 지당하다. 배운다는 것은 적극적인 과정이다. 즉 우리는 행동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이책에서 읽은 원칙을 마스터하길 바란다면, 그것을 실행해야만 한다. 또 이 법칙을 모든 기회에 적용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그것을 실행해야만 한다. 또 이 법칙을 모든 기회에 적용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행동으로 옮겨진 지식만이 마음에 남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사를 언제나 적용한다는 것은 곤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을 저술한 나 자신도 여기서 주창하고 있는 일들을 전부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 단지 지식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습관을 기르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력과 부단한 적용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가끔 이 책을 펼쳐 보라. 이 책을 고민을 극복하기 위한 편리한 핸드북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귀찮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도 결코 흥분하지 말라. 분별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언제나 충동적인 행동은 좋지 않다. 그러한 때에는 이 책을 펼쳐 들고 줄을 그어 놓은 곳을 다시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여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가 사의를 지켜 보는 것이 좋다. 7. 이 책에 시사되어 있는 원칙 중에 하나를 어기는 것을 부인에게 들키면, 그 즉시 매번 25센트의 벌금을 내도록 하라. 그러면 부인은 당신을 훈련시켜 줄 것이다. 8. 이 책 제22장 첫 부분을 보라. 월가의 은행가 H.P. 하우엘과 벤플랭클린이 어떻게 해서 그들의 과오를 고쳤는가를 읽어보라. 이 책에 기록된 원칙의 적용을 시험하기 위해, 당신도 하우엘이나 프랭클린의 수법을 써 보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해 보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첫째로, 당신은 흥미가 많고 비용이 들지 않는 교육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로, 당신의 고민은 해고되고, 살아나가는 능력이 월계수처럼 자라고 번성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9. 일기를 쓸 것. 이런 원칙이 순조롭게 실행되었음을 상세히 기록하라. 인명, 날짜, 결과 등――이와 같은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보다 유익한 노력을 하게끔 당신을 격려해 준다. 더욱이 뒷날에 우연히 그것을 보았을 때도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적 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시사 1. 고민을 극복하는 원칙을 배우겠다는 강한 욕구를 길러라. 2. 다음 장으로 옮기기 전에 각 장을 두 번씩 읽을 것. 3. 가끔 읽기를 멈추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시사를 적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것. 4. 중요한 아이디어에는 줄을 그어 둔다. 5. 매달 한 번은 다시 읽는다. 6. 온갖 기회에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한다. 매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좌우명을 담은 핸드북으로 삼는다. 7. 당신이 이 원칙 중의 하나를 어긴 것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그때마다 상당한 벌금을 지불함으로써 공부에 흥미를 돋우도록 한다. 8. 매주 경과를 검토해 볼 것. 어떤 과오를 범했는가. 어느 정도 진보했는가. 장래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등. 9. 이 책의 뒤에다, 이 원칙들을 언제, 어떻게 적용했는가를 날짜에 따라 기록해 둘 것. 제 3 부 고민하는 습관이 들기 전에 그것을 없애는 방법 6. 마음 속에서 고민을 몰아내는 법 나는 4,5 년 전 어느날 밤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의 클라스에는 마리온 J.더글러스라는 사나이가 있었다(여기서는 본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 가명으로 한다.) 다음 이야기는 그가 나의 성인 클라스에서 말한 실화이다. 그의 가정에서는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이나 불행한 일을 겪었다. 처음에 그는 5살 난 귀여운 딸을 잃었다. 이것은 실로 그들 부부에게는 견딜 수 없이 가슴아픈 일이었다. 10개 월 뒤에 다시 딸이 태어났다――그런데 또 닷새만에 죽어 버렸다. 이 겹친 불행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완전히 기력을 잃고 말았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도 없었다. 나는 의기를 상실했고, 모든 일에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그는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자 어느 의사는 수면제를 주었고, 또 어떤 의사는 그에게 여행을 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다 해 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의 몸은 공사장 바이스에 잔뜩 물려서 그 양쪽 턱이 점점 죄어드는 것 같았다. 비탄과 긴장――슬픔에 사로잡혀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4살 난 아들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 아이가 나의 고민을 풀어 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오후 내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느라니까, 그 아니가 나에게 『아빠, 보트 만들어 주세요』 하면서 졸라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만한 경황이 없었다. 세상 만사가 귀찮았다. 그러나 아들 녀석을 고집불통이었다. 결국 내가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장난감 보트를 만드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 그리고 이것을 다 만들고 나서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달았다.. 이 보트를 만드느라고 소비한 세 시간은 요 몇 개월 동안에 내가 처음으로 맛본 정신적인 휴식이며 평화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발견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방심 상태에서 헤어 나와 사고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기획이나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어떤 일에 몰두하는 동안은 고민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경우에는 보트를 만드는 일이 고민을 몰아 내준 것이었다. 그래서 난 늘 바빠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튿날 나는 온 집 안을 돌아 보면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책상, 계단, 덧문, 문의 손잡이, 자물쇠, 구멍 난 홈통 등 고쳐야 할 것이 꽤 많았다. 그리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2주일 동안에 손보아야 할 일거리를 2백 42건이나 찾아 낸 것이었다. 최근 2년 동안에 나는 이 일들을 거의 처리했다. 게다가 나는 줄곧 바쁜 나날을 보냈다. 1주에 두 번 씩 뉴욕의 성인 클라스에 출석하고 있었다. 또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시민 활동에 참가하였으며, 현재는 교육 위원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다. 이 밖에도 나는 여러 회합에 출석하고 있으며, 적십자가를 비록한 여러 공공 사업을 위한 모금 운동도 돕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바빠서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게 되었다. 고민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윈스턴 처칠경이 대전이 한창 불을 뿜는 가운데서 하루 18시간 일하던 때에 한 말과 같은 말이다. 처칠은 그가 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 무거워 몹시 골치를 앓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차알즈 케더링도 자동차 스타터 발명에 착수하였을 때, 이와 감은 처지에 있었다. 그는 최근에 은퇴할 무렵까지 제너럴 모터스 부사장으로서 제너럴 모터스 리서치 코퍼레이션을 주재해 온 인물이다. 그러나 한 때는 그도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창고의 한 쪽을 실험실로 썼으며, 식료품을 사기 위해 그의 부인이 창고의 한 쪽을 실험실로 썼으며, 식료품을 사기 위해 그의 부인이 피아노를 가르쳐서 번 천 오백 달러를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생명 보험의 불입금에서 5달러를 빌러 쓴 일까지 있었다. 나는 그의 부인에게 그런 때에 고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녀는 이런 말을 했다. 예. 저는 말할 수 없이 걱정스러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이는 일에 열중해서 고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파스퇴르는 <도서관과 실험실에서 얻는 평화>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곳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도서관이나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은 연구에 몰두하여 고민하거나 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에 온 힘을 쏟는 사람은 거의 신경 쇠약에는 걸리지 않는다. 그럴 만큼 여유있는 시간을 갖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바빠야 한다는 이 간단한 일이 어째서 불안을 없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심리학으로써 밝혀진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의한 것이다. 그 법칙이란 아무리 훌륭한 것으로도 인간의 마음은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험해 보기로 하자. 지금 곧 의자 깊숙이 기대앉아 눈을 감으시오.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과 내일 아침에 당신이 하려고 생각하는 일을 동시에 생각해 보시오(빨리 그렇게 해 보시오). 아마 번갈아서라면 두 가지 일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감정의 분야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한 쪽에서는 마음내키는 일에 열중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서는 고민에 빠지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감정은 다른 감정을 몰아 냈다. 이 단순한 발견으로써 대전 중 정신과 군의관이 기적을 이룩했던 것이다. 싸움터에서의 무서운 경험에 질려 후송된 장병들은 한결같이 <정신 신경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때 군의관은 <그들은 바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정신에 이상을 일으킨 사람들의 수면 이외의 시간은 활동의 연속이었다――낚시질, 사냥, 야구, 골프, 사진, 정원 손질, 댄스 등 주로 옥외 활동이다. 그들에게는 지난날의 무서운 경험을 되새겨 번민할 만한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 < 직업에 의한 치료법>――이것은 마치 직업이 무슨 약재인 것처럼 처방되어질 때에, 정신병학에서 쓰는 술어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지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 고대 희랍 의사들을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5백년 전에 이미 이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퀘이커 교도는 벤자민 프랭클린 시대에 필라델피아에서 이 요법을 사용했었다. 1774년 퀘이커 교도의 요양소를 찾은 어떤 사람은, 정신병 환자들이 그곳에서 열심히 아마(亞痲)로 길쌈하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고 한다. 그는 퀘이커 교도들로부터 환자들은 조금 일하는 편이 병에 좋다는 말을 듣기까지는, 불쌍한 그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일에 열중한다는 것은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 특효였던 것이다. 정신병 전문 의사들은 바쁘게 일하는 것이 신경병의 대증요법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 헨리 W. 롱펠로우도 젊은 아내를 잃었을 때 이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아내는 어느 날 촛불로 봉랍을 녹이다가 옷에 불이 붙었다. 롱펠로우는 그녀의 비명을 듣고 달려갔으마 이미 때는 늦어, 그녀는 그 화상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 뒤 얼마 동안 롱펠로우는 그때의 끔찍스러운 경험이 생각나서 고민하였으며, 거의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그가 돌보아 주어야 할 세 어린 자식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슬픔을 딛고 일어나 아이의 아버지 겸 어머니가 되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거닐었으며,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 같이 돌아 주기도 했다. 그들 부자의 사랑은 그의 시 <<아이들의 시간>>에 의해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것이다. 롱펠로우는 또한 아이들을 위해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다. 이처럼 그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기 때문에 자신의 비탄을 잊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던 것이다. 테니슨은 그의 친구 아더 할람을 잃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에 몰두하여 나 자신을 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 속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날마다 쉴새없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일에 몰두>하기란 어렵지 않으나, 그 일이 끝난 뒤의 시간이 위험한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즐기게 되고, 가장 행복해야만 할 때에 고민이라는 끔찍한 이름의 마귀가 우리들을 공격해 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조금씩 향상되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궤도에 올라 서 있는 것일까? 부장이 묘한 말을 하던데, 그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이제는 머리가 조금씩 벗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본디 우리의 마음은 한가로울 때면 진공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기 쉽다. 물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에 띄는 것으로 가장 진공에 가까운 것은 백열 전구의 내부이다. 전구를 깨드려 보라. 자연은 그 이론적 진공 상태 속에 공기를 유입시킬 테니까. 자연은 또 공허한 마음까지도 채우려고 돌입한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돌입하는가? 보통은 감정으로써 채우려 든다. 왜냐하면 고민, 두려움, 질투, 부러움 등의 감정이 원시림 시대의 역학적 에네르기와 원시적인 활력에 의해 추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극히 맹렬하게 우리들 마음 속으로부터 모든 평화롭고 행복한 감정을 몰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칼럼비아 대학의 교육학 교수인 제임즈 L.머셀은 이 사실을 교묘하게 설파하고 있다. 고민은 인간이 행동할 때가 아니라, 하루의 일과가 끝났을 때 가장 심하게 덤벼드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이때에 분방해져거 온갖 종류의 어리석은 가능성을 불러 일으키고, 아무것도 아닌 실책을 확대시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때 마음은 짐을 싣지 않고 달리는 모터처럼 된다. 이런 모터는 속력을 내어 달리다가 축바퀴를 태우든가 부수고 말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고민에 대한 치료법은 어떤 건설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때닫고 실행에 옮기는 데는 구태여 대학 교수라야 되는 것은 아니다. 대전 중에 나는 시카고에서 온 어느 주부를 만난 일이 있는데, 그때 그녀는 <고민에 대한 치료법은 무엇이든 건설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때닫게 된 자초지종을 나에게 들려 주었다. 그때 나는 뉴욕에서 미주지주의 농장으로 가는 참이었는데, 마침 식당차에서 그 부인 내외를 만났던 것이다(나는 언제나 만나는 사람의 조소며 성명 등을 명기하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알아 두지 못한 것을 시로 유감스럽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아들은 진주만이 공격되던 바로 다음 날 입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은 이 외아들의 일이 너무 걱정되어 거의 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어디에 있을까? 몸은 무사할까? 지금쯤 전쟁을 하고 있을까? 부상당하지나 않았을까? 전사하지나 않았을까? 하고―― 그래서 고민을 어떻게 물리쳤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즉시 한 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일했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우선 하녀를 내보내고 집안일을 손수 함으로써 몸을 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 일이라야 모두 기계적이기 때문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지요. 잠자리를 보살피고 그릇 닦기를 하는 동안에도, 고민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종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바빠질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백화점 점원이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그날부터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활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값이라든가 치수, 빛깔 등을 묻는 손님들에게 에워싸이고 말았으니까요. 저는 눈 앞의 일거리밖에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1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지쳐서 빨리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저녁 식사만 하고 나면 잠자리에 쓰러져 세상 모르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고민할 겨를이나 기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녀는 존 쿠퍼 포이스가 <불쾌감을 잊는 기술>이라는 책 속에서 다음 과 같이 말한 것을 체험했던 것이다. 어떤 즐거운 행복감이나 깊은 내명적인 평화 또는 행복한 마비 상태 들은 일정한 일거리에 몰두하는 인간의 신경을 가라앉힌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인 탐험가인 오사 존슨에게서 그녀가 고민과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었던 실화를 직접 들은 일이 있다. 그녀의 저서 <<나는 모험과 결혼했다>>는 독자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의 표제대로 그녀는 모험과 결혼한 여자였다. 그녀는 16살 때 마틴 존슨과 결혼했다. 그리고 켄자스에서 비행기로 출발하여 밀림에 내린 뒤, 그로부터 25년 동안 이 부부은 온 세계를 답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라져 가는 야생 동물의 생활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들은 9년 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영화들을 보여주면서 강연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덴버에서 대평양 연안으로 행하던 도중, 그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산에 부딪쳐 마틴 존슨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의사는 오사 여사도 재기 불능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사 존슨이라는 인간을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3개월 뒤, 그녀는 바퀴의자에 앉아서 수많은 청중에게 강연을 했다. 그녀는 이 무렵에 1백회 이상이나 강연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슬퍼하거나 고민할 겨를이 없도록 노력했습니다. 오사 존슨은 백 년 전에 테니슨이 노래한 「나는 활동에 몰두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위축되어 버린다.」 라는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바드 제독이 다섯 달 동안, 남극을 뒤덮고 있는 대빙하기의 만년설에 묻힌 오두막집 속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 또한 이 진리를 터득했다. 그는 다섯 달 동안을 그곳에서 고독하게 지냈다. 주위의 백 마일 안에는 생물이라고는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았다. 추위가 얼마나 심했던지 바람이 불면 자신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저서 <<혼자서>>에서 그가 경험한 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지치게 만드는 암흑에 대해 기술하여 놓았다. 낮은 밤과 마찬가지로 어두웠다. 그는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언제나 바빠야 했다. 그는 말한다. 밤에 등불 끄기 전에 나는 다음날 아침에 할 일을 계획하는 습관을 길렀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러하다―정비에 한 시간, 식료터널 벽에 책꽂이를 만드는 데 한 시간, 썰매의 브리지를 갈아 끼우는 데 두 시간―이와 같이 시간을 할당하는 것을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었다. 이로써 자제심을 지닐 수가 있었다. 만일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루하루를 보내는 목적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없는 나날이 계속되는 한, 생활은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목적이 없는 생활이 계속되는 한……>이라는 한 구절을 독자들은 잊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만일 우리의 마음 속에 고민이 생겼을 때에는 옛부터 하던 일을 약 대신 쓰는 일이다. 하버드 대학의 임상 의학 교수였던 고 리처드 C.카보드 박사는 <<인간은 무엇에 의해 사는가?>>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의사로 의혹이며 망설임, 동요, 두려움으로부터 일어나는 영혼의 마비 상태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함으로써 고쳐진 실례를 여러 번 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용기는 일찍이 에머슨이 언제까지나 빛나는 것으로 만들었던 자신과 흡사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쁘지 않고―그저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만 잠긴다면― 우리는 차알즈 다윈이 <윕버 기버스>라고 불렀던 것을 많이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요컨대 <윕버 가버스>라는 것은 구식의 소악마로, 이것에 한 번 붙들리게 되면 우리의 행동력이나 사고력이 고스란히 빠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뉴욕의 어느 실업가가 분주해짐으로써 오뇌와 초조해 할 틈을 없애고, 이 <윕버 기버스>를 물리칠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그의 이름은 트렘퍼 롱맴으로 나의 성인 클라스의 학생이었다. 그가 고민을 극복한 경위가 아주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으므로, 나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었다. 그리고 밤이 깊도록 그의 경험담을 들었다. 다음은 그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10년 전 나는 격심함 번민 끝에 불면증에 걸렸다. 나는 극도로 긴장했으며 안절부절하던 나머지 신경 과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신경 쇠약증에 걸리려 하고 있었다. 내게는 고민할 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는 뉴욕의 크라운 프루츠 앤드 엑스트랙트 회사 회계 담당이었다. 회사는 갈론 통조림 딸기에 5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 이미 20년 동안이나 그 통조림을 아이스크림 제조업자에게 팔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거래가 끊어졌다. 대아이스크림 제조업자들이 나무통에 들어 있는 다량의 딸기를 사들여 생산량을 올림으로써, 돈과 시간을 절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니 50만 달러나 되는 딸기가 우리들 손 안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데다가, 앞으로 1년 동안에 백만 달러치에 이르는 딸기를 사겠다는 계약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에 35만 달러를 은행에서 빌어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갚기도 어려웠고 지불 기한을 미루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일이 이쯤 되자, 내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을 당연하다. 나는 공장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장에게 사장이 바뀌었졌다는 것과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그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책임은 뉴욕 사무소의 무능함에 있다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여러 날을 두고 설득한 끝에 그 이상 딸기 통조림을 만들지 않기로 하고 나머지는 생채로 샌프란시스코 생과시장에 팔기로 했다. 이로써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으므로, 나의 고민도 당연히 없어져야 될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고민은 습관이다. 나는 그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와서도 갖가지 일에 신경이 쓰였다. 이탈리아에서 사들이고 있던 버찌, 하와이에서 사들이는 파인애플 등등――나는 극도로 긴장했으며 안절부절하여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신경 쇠약증이 심해져 가고 있었다. 절망 끝에 나는 새 생활로 들어갔다. 이것이 나의 불면증을 고쳐 주었고 또 고민을 풀어 주었다. 나는 나의 모든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의 처리에 몰두했다. 지나간 일을 언제까지나 걱정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하루에 7시간을 일해 왔지만, 그 뒤로부터는 하루에 15, 6시간이나 일을 했다.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사무시레 남아 있었다. 나는 새로운 직무와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밤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는 피로에 지쳐 자리에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리곤 했다. 나는 이런 생활을 무려 3개월이나 계속했다. 그리하여 나는 고민하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므로, 그 뒤부터는 정상대로 7,8시간인 보통 업무로 되돌아갔다. 이것은 벌써 18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끼자 나는 불면증이나 고민에 시달린 일이 없다. 조지 버나드 쇼오의 말은 옳다. 그는 겨우 몇 마디로써 이러한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비참해지는 비결은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 따위를 새각할 겨를을 갖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하게 골똘히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자, 덤벼라!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야 한다. 이 말대로만 하면 혈액 순환이 좋아져서 머리가 활동하기 시작하며, 생명의 힘찬 분류가 마음 속으로부터 고민을 몰아 내고 마는 것이다. 몸을 쉬지 말고 언제나 바쁘도록 하라. 이것이랴말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 가운데서도 가장 값싸고 가장 효험있는 약이다. 고민의 습관을 없애 버리기 위한 법칙 제1―― 언제나 바쁘도록 할 것. 고민이 있는 사람은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위축되고 말 것이다.   7.딱정벌레한테 넘어가지 말라   나에게는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뉴저어지의 로버트 무어씨로부터 들은 실화이다―― "1945년 3월, 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큰 교훈을 배웠다.  그것은 인도네시아의 앞바다 276피트인 해저에서의 일이었다. 나 는 잠수함 베이어호에 타고 있던 88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레이다로 몇몇의 일본군 호위 선단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먼동이 틀 무렵이 되자 우리는 공격하기 위해 잠 항했다. 잠망경을 통해 보니 일본의 구축함이며 유조선, 기뢰 부 설함 등이 보였다. 그러자 우리는 구축함을 겨누어 세 개의 어뢰 를 쏘았으나 명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뢰 장치에 고장이 난  때문이었다. 그런데 적의 구축함은 공격받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 고 항해를 계속했다. 그래서 이때 별안간 기뢰 부설함은 방향을  바꾸어 곧바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이것은 일 본군 비행기가 해면 깊숙이 60피트 밑에 있던 우리를 발견하여  무선으로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적에게 발 견되지 않도록 150피트까지 잠수하였다. 그리고 수중폭뢰 준비를  내지 않도록 선풍기며 냉방 장치, 그밖의 온갖 전기 장치를 멈추게 했다.   3분 뒤 이 세상의 지공이 출현하였다. 6개의 폭뢰가 우리  주위에서 터졌고, 우리는 276피트의 바다 밑에 가라앉고 말았다 .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잠수함은 천 피트  이내에서 공격을 당하면 위험했으며 5백 피트 안에서라면 우선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심 5백 피트의 절반 남짓한 깊이 에서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안전도로 말하자면 겨우 무릎이 잠길  만한 깊이에서 공격당한 것이다. 이때부터 15시간 동안 일본의  기뢰 부설함은 폭뢰를 쏘아댔다. 폭뢰가 잠수함과 15피트 안의  거리에서 터지면, 그 진동으로 배에 구멍이 나고 만다. 그런데  대부분의 폭뢰는 우리들로부터 50피트 이내의 지점에서 터졌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꼼짝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무서움에  질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다!이제는 최 후다!라고 되풀이 하여 나 자신에게 말했다. 선풍기며 냉방 장치 가 모조리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함내의 기온은 100도를 넘었다 . 그렇지만 나는 무서움에 떨려 털옷에다 가죽자켓까지 입고 있었으나, 그래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악물어도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으며 식은 땀이 몸에 흘러내렸다. 적의 공격은 15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딱 멎었다. 확실히 일본의 기뢰 부설함은 폭뢰를 모조리 쏘아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우리가 공격을 받은 15시간은 그야말로 천 5백만 년이나 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의과거 생활이 눈 앞에 펼 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저질렀던 온갖 나쁜 짓을 비롯하여 공연히  속을 태웠던 어리석은 일들까지도. 나는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은행의 사무원이었는데 일하는 시간은 길고 급료는 박한데다가,  진급될 가망성도 없었기 때문에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자기 집  하나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새 차도 살 수 없으며, 아버지에게는  멋있는 옷 한 벌 사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또 언제나 잔소 리만 늘어놓고 야단만치는 늙은 너구리 같은 계장에게도 화가 났다 . 그러다가 밤늦게 언짢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아내와 곧잘 다투던기억 등이 생생하게 생각났던 것이다.  또한 자동차 사로로 다친 얼굴의 상처에 대해서도 고민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것들이 아주 큰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폭뢰에 날려 가지나 않을까 하며 떨고 있을 때는 그런 일 들이 정말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맹세했다.만일 또다시 햇빛이나 별을 볼 수 있다면, 다시는 고 민 같은 것을 하지 않겠다고……나는 그 잠수함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15시간 동안 대학에서 4년간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이 인간 의 사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커다란 재액에는 용감이 맞서지만, 작고 하찮은  일에는 넘어지고 마는 경우가 곧잘 있다. 이를테면 사무엘 핍스 의 일기 가운데 할리 벤경의 목을 잘리는 것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할리경은 쳐형대에 올라갔을 때, 형리에게 목숨을 살려 달라고 는 하지 않았으나, 목에 난 종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 다는 것이다.   바아드 제독이 극지의 암흑과 추위가 지독한 밤에 발견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부하 대원들은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보다도  실로 대단치 않을 일에 야단법석이었다. 그들은 위험과 곤란, 때 로는 영하 80도에 달하는 극한도 태연하게 견디어 냈다.    그러나 바아드 제독은 말하고 있다.   "베개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동료가 갑자기 입 을 다무는 때가 있다. 그것은 서로 상대방이 자기의 잠자리를 침 입한 것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음식을 28번이 나 씹기로한 완전 저작 주의가가 보는 앞에서는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지의 캠프에서는 이와 같은 자질구 레한 일이 잘 훈련된 사람까지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 다."   그러나 바아드 제독이여, 당신은 결혼 생활의 사소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며,그것이 이 세상 고민  절반의 원인이라는 것을 거기에다 덧붙여야 했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많은 권위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카고의 조셉 사바스 판사는 4만건 이상이나 되는 불행 한 결혼의 조정을 처리한 사람인제,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결혼 생활에 있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아주  사소한 일이다."   또한 뉴욕의 지방 검사 프랭크 S.호오간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형사 재판 사건의 과반수는 사소한 원인 때문이다. 술집에서 부터 공연한 허세, 가정에서의 말다툼, 모욕적인 말투, 욕설,  버릇없는 행동―이런 사소한 일이 목행, 살인을 일으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몹시 부당하게 혼이 나는 일은 별로 없다. 자존심이나  허영심을 다치게 했다든지, 멸시를 받았다는 따위의 사소한 일들 이 이 세상 고민의 절반의 원인인 것이다."   엘리너 루우즈벨트는 결혼 초에 몹시 번민을 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일 뿐, 그다지 신경을 쓰 지 않아요."  그래야만 감정적으로 어른다운 행동이라고 할 만하다.   한때 포악하기로 이름난 캐더린 대제마저도 요리사가 요리에 실 패했을 때에는 껄껄 웃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시카고에 있는 친구 집으로 만판에 초대되어 갔을  때의 일인데, 내 친구가 고기를 자르다가 실수를 했다. 나는  거것을 눈체채지 못했었지만, 비록 알았다 해도 잠자코 있었을 것 이다. 그런데 그의 부인을 이것을 보자 대뜸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    "여보, 그게 뭐예요! 언제나 그걸 배울 거예요? 그만한 일 을?"   그리고 그녀는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분은 언제나 실수를 한답니다. 주의를 하려들지 않는다니까 요"   그건 그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부인과 20년 이상을 함 께 살아온 내 친구에게 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잔소리를 늘어 놓는 여자와 함께 북경의  오리고기며 상어 지느러미와 같은 기막힌 요리를 먹기보다는, 평화 로운 분위기에서 핫도그를 먹는 편이 훨씬 기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 뒤 우리는 몇몇 친구를 저녁 식사에 초 대했었다. 그런데 손님이 닿기 조금 전에야 아내는 준비된 냅킨  가운데 세 장이 테이블 클로오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나중에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요리사에세 물어 보니 그 세 장은 세탁소에 보냈다는 군요.  손님들은 벌써 문 앞에 오셨고 해서 바꿔 깔 시간도 없었어요.  저는 울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실수로 밤새도록 언짢게 있 어서야 되겠는가?"하고 생각했지요. 저는 생각을 고쳤어요. 아무 튼 될 대로 되라구요. 그랬더니 다행히도 마음먹은 대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어요.저는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 기보다는 차라리 주책없는 주부로 보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무도 냅킨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법률은 사소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법률상의 유명한 금 언도 있다. 고민으로부터 헤어나서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려면, 그 마음 속에  새롭고도 유쾌한 인생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술가인 나의  친구 호머 그로이는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훌륭한 실 례를 들고 있다.   그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저술에 종사하고 있을 때, 그는 난방  장치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시달려 미칠 것 같았다는 것이다.  스팀에서 픽쉬-하는 소리가 날때마다 그는 마음이 산란해졌다. 그 로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럭저럭하다가 나는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그리고  모닥불을 쬐다 보니까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난방 장치인 스팀 소 리와 똑같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편에서는 유쾌 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도 불쾌한 것일까?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모닥불 타는 소리는 듣기에 즐거웠다. 난방 장 치의 소리도 이와 흡사하지 않는가-잠자리에 들거는 이 소리에 신 경을 쓰지 않도록 하자"고. 나는 그대로 실행했다. 그런데 2, 3일 동안은 난방 장치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 뒤부터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소한 고민도 이러한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두고 고민하는 것도 말하자면,  사물을 침소봉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것을 작게 할 수는 없다." 또 앙드레 모로아는 <<디스 위크>>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은 내가 많은 쓰라린 경험을 겪는 동안 아주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가볍게 받아 넘겨 잊어버려도 좋은, 하찮은  일로 곧잘 고민하게 된다――우리가 이땅 위에 머무르는 것은 겨 우 몇십년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우리 1년 뒤에는 모든 사람 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 불평과 불만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많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생을  가치있는 행동과 감정, 또는 위대한 사상과 진실한 애정 등 영 구적인 사업에 바쳐야만 한다.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다."   루드야드 키플링 같은 유명한 인물마저도 때로는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도 짧다>는 것을 잊었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 가? 그는 그의 처남과 버몬트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송으로 다 투었다. 이에 대해서는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키플링은 버몬트의 처녀 캐롤 린 발레스티어와 결혼하여 버문트의 브래틀보로에 훌륭한 저택을 짓 고 여생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의 처남 비티발레스티어는  키플링의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며 같이 즐겼다.  그러다가 키플링은 철마다 건초를 베게 하겠다는 조건으로 발레스 티어로부터 땅을 샀다.그런데 어느 날 발레스티어는 키플링이 목초 장에 화원을 만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본 발레스티어는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몹시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키플링도 양 보하지 않았다. 일이 이쯤되다 버몬트의 그린 마운틴의 공기는 험 악해졌다.   4,5일 뒤, 키플링이 자전거를 달리고 있을 때 그의 처남이  난데없이 마차를 몰고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나와 키플링의 앞 길을 가로질렀기 때문에, 그는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졌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자제심을 잃고 당신에게 비난을 퍼부을지 라도, 당신은 되도록 자제심을 지녀라>고까지 기술하였던 키플링이  바로 발레스티어의 체포 명령을 청구했던 것이다. 그러자 센세이 셔널한 공판이 시작되었다. 큰 도시에서 보도진이 밀어닥쳤고, 이  소식은 눈깜짝할 사이에 온 시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싸움으로 말미암아 키플링 부부는  그들의 여생을 미국에서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 켜 보면, 온갖 이러한 고민과 비통도 따지고 보면 극히 사소한  일-건초 한 다발이 원인이었다.    페리클레스는 벌써 24세기 전에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너무 오래 입씨름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여기에 하리 에머슨 포스딕 박사가 말한, 실로 재미있는 이야 기가 있다. 그것은 숲 속 거인의 승패담이다.    콜로라도주 롱피이크의 경사지에 거목의 잔해가 있다.박물 학자 는 그 나무가 4백 년이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일찍이 컬럼버스가 산살바도르에 정주했을 때에는 반쯤 자라 있었다. 그 나무는 긴 생애 동안에 열 네번이나 낙뢰를 맞았었다. 눈사태와 폭풍우는 4세기에 걸쳐 수없이 맞아 왔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 왔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딱정벌레 떼가 몰려와 그 나무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벌레들은 나무 껍질을 파먹어 가,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끊임없는 공격으로 수목 내부의 활력을 파괴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숲의 거인,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뇌화에도 굽히지 않고, 폭풍에도 굴하지 않았던 거목이 끝내 작은 벌레- 사람이 손 끝으로 짓이길 수 있는 작은 벌레 때문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우리 인간도 이 숲의 거인과 흡사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나운 폭풍과 눈사태라든가 인생의 뇌화에 견디어 살아 나가지만, 고민이라는 작은 벌레- 손끝으로 짓눌러 버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벌레 때문에 마음을 먹혀 버리지나 않았을까? 4,5년 전 나는 와이오밍의 도로 관리관 차알즈 사이프렛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티톤 국립공원으로 여행한 일이 있다. 이때 우리는 공원 안에 있는 존 D.록펠러의 소유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 차가 마침 길을 잘못 들어사, 다른 차들보다 한 시간이나 늦어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문의 열쇠를 맡아 가지고 있던 시이프렛씨는 우리가 도책할 때까지 한 시간이나 모기가 많은 숲속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곳의 모기는 성자라도 내게 만들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극성스러운 모기 떼들도 시이프렛씨만은 굴복시킬 수 없었다. 그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피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당도했을 때 모기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유쾌하게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훌륭한 사람의 기념품으로서, 그 피리를 받아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고민하는 습관에 당하기 전에 그것을 해치우는 법칙 제2-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잊어야 할 사소한 일에 대해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나 짧다.」 8. 고민의 대부분을 추방하기 위한 법칙 나는 미주리주의 한 농장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버찌 씨를 따는 것을 도와 드리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딜 왜 우는 거냐? 어머니께서 이렇게 묻자 나는 울면서 난 산 채로 매장을 당할까봐 걱정되어서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그 무렵 나는 모든 일이 고통스러웠다. 비 오는 날에 번개가 치면 벼락을 맞아 죽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집안 형편이 불경기가 되면 당장 굶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다. 나는 또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심지어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샘 화이트가 나의 커다란 귀를 잘라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는 두려워했다. 그는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 하곤 했으니까. 나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면 여자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했다. 그리고 또 나와 결혼해 줄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 직후에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어느 시골 구석의 교회에서 예식을 올리게 되겠지만, 식이 끝나면 단장을 한 사륜 마차를 타고 농장으로 돌아오겠지……그런데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어떻게? 어떻게? 나는 밭을 갈면서 이런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내가 여태껏 걱정해 온 것 가운데 99퍼센트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르테면 나는 전에 그토록 벼락을 무서워하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1년에 벼락을 맞아 죽는 사람은 35명 중에 한 사람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산 사람이 생매장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바보스러운 것이었다. 인간의 시체에 방부처치를 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생매장이 된 사람은 천 만명 가운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하였다. 그런데도 이런 것을 모르고 나는 겁에 질려 울었던 것이다. 사실 말하자면 여덟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암이라는 병으로 사망한다. 그러므로 내가 고민을 하자면 벼락이나 생매장 는 암을 겁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지금 나는 어렸을 때와 청년기의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어른들의 고민도 상당히 바보스러운 것이 많다. 우리는 이제라도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우리의 고민에 정당성이 있는가를 충분히 고려하여, 조그만 일에 걱정하지 않도록 하면 우리의 고민의 9할은 틀림없이 해소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험회사―런던의 로이드 해상 보험회사―는 사람들의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을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로이드는 인간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 재난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내기를 걸었다고 하지 않고, 보험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을 평균율에 바탕을 둔 도박인 것이다. 이 대보험 회사는 창립 후 2백년이 되는데, 인간의 성질이 변화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50세기는 지속될 것이더. 그리도 또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정도만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재난에 대해 평균율의 법칙을 적용하여 구두, 선박, 봉랍 등에 보험을 걸도록 해 갈 것이 틀림없다. 만일 우리가 평균율의 법칙을 조사해 본다면 우리는 여태껏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가령 나는 앞으로 5년 동안 게티즈 버어그의 전쟁과 같은 격전에 참가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분명히 공포에 떨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있는 돈을 다 털어 보험에 들 것이고, 유언장을 작성하여 재산과 그밖의 일들을 정리할 것이다. 나는 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 테니까, 남은 몇 해 동안은 마음껏 향락하자. 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게티즈버어그 전쟁에서의 위험율은 평화시에 50세부터 55세까지 살아가는 동안의 위험율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시에 50세부터 55세 사이에 죽는 사람의 사망율은 게티즈버어그의 싸움에 참가했던 16만 3천명의 장병들의 사망율과 겉의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몇 장을 보오의 호반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서 집필하였는데, 한 여름을 그곳에서 지내는 공안, 샌프란시스코에 사응 허버트 H. 샐린저 부처를 만났다. 샐린저 부인은 차분하고 조용한 여성으로, 고민 같은 것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인품으로 보였다. 어느 날 밤, 난로가에서 한담을 하던 중,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걱정거리로 고민해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고민이라구요?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일생을 망칠 뻔했답니다. 난 자그만치 11년 동안이나 스스로 만든 지옥의 고통을 맛보다가 겨우 고민에서 빠져 나왔답니다. 나는 잔걱정이 많고 성질이 급해서 늘 안절부절 못했지요. 나는 매주 산 마테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버스로 물건을 사러 다녔었는데, 물건은 흥정하다가도 여러 가지 집안 일들이 걱정스러워 내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전가 다리미를 끄는 것을 잊지나 않았는지, 집에 혹 불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하녀가 아이들만 내버려 두고 나가지나 않았을까, 아이들이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놀다가 차에 치지나 않았는지 하고 근심거리가 태산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사다가도 조바심이 나 견디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가 버스를 타고 다시 집을 둘러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나의 첫 번째 결혼이 불행하게 끝난 것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나의 두 번 째 남편은 변호사인데, 이분은 매사를 괴로워하지 않는 침착하고 비판적인 성격입니다. 가끔 내가 초조하기 시작하면 이런 말을 한답니다. 『좀 침착해봐요.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 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요.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과연 그것이 현식적으로 일어나겠는가를 연구해보는 것이 어떻게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우리가 뉴멕시코의 알브커크에서 칼스바드 가번스까지 험한 길을 드라이브하던 때의 일인데, 도중에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차가 흔들리고 마구 미끄러지는 게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장장에라도 차가 도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천천히 운전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설령 차가 도랑에 들어 박힌다고 해도,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는 다치지 않을 것이요.』그의 침착성과 자신력이 나를 진정시켰던 것입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캐나디안 록키스의 토퀸 계곡으로 캠핑을 갔습니다. 어느 날 밤, 해발 7천 피트 지점에서 야영하던 중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텐트는 당장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텐트는 밧줄로 튼튼하게 나무 대에 묶어 놓았지만, 바깥쪽의 텐트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비명을 울렸습니다. 나는 당장 텐트가 찢겨져 공중으로 날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서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판인데,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여보, 우리는 부류스터의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브류스터들을 이런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알고 있어요. 그네들은 60년 동안이나 이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 왔다지 않소. 이 틴트도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지만, 지금까지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았어요.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보아도 오늘 밤에 사고는 없을 거요. 만일 날려 간다 해도 다른 텐트로 옮기면 되지 않소.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이 말은 듣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을 편히 잤습니다. 몇 해 전 캘리포니아의 우리 고장에 소아마비가 굉장히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어마 그전 같았으면 나는 히스테리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진정하도록 타일러 주었어요. 우리는 되도록 조심했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 보내지 않도록 했으며, 학교를 쉬게 하고 극장에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위생국의 보고를 조사해 본 결과,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심하게 소아마비가 유행하던 때에도 이 병에 결린 아이드은 온 주를 통틀어서 1835명이었으며, 여느때는 2백명 내지 3백명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것도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아이들은 이병에 걸리는 율은 극히 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나의 고민의 90퍼센트를 제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20년 동안의 나의 생활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인디언 파이터였던 조지 크루크 장군의 <<자서전>>속에는 「온갖 고민과 불행은 대부분 그들의 상상에서 생기는 것이지, 현실에 의한 것은 아니다.」 라고 씌어 있다. 나도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의 고민의 대부분이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 그랜트는 자기 또한 그러했다고 말한다. 그는 뉴욕의 제임즈 A. 그랜트 디스트리뷰팅 컴퍼니의 경영자로서, 그는 플로리다산 오렌지와 그레이프 프루츠를 한 번에 화차 열 대 내지 열 다섯 대분은 주문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해 왔다고 한다. 혹시 그 가운데 열 대개 뒤집히지나 않을까, 과실즐이 선로에 쏟아지지나 않을까, 화차가 철교를 통과하다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물론 화물에는 보험이 걸려 있지만, 기일 내에 과실을 배달하지 못한다면 거래처를 잃게 될 염려가 있다. 그는 걱정을 하던 나머지, 위암에 걸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의사를 찾았다. 진찰을 받은 결과 별로 이상은 없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의사의 말을 듣고 겨우 마음을 놓았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자문 자답하기를 『여보게, 짐 그랜트, 자네는 지금까지 몇 대의 과실 화차를 취급해 왔나? 약 2만 5천대. 그렇다면 그 중에서 몇 대 정도나 열차 사고가 있었나? 글세, 다섯대 가량이 아닐까.』 여기서 나는 다시 말했다. 『2만 5천대 중에서 겨우 다섯대라구? 그러면 5천 대 1의 비율이 아닌가. 그렇다면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화차 한 대가 전복할 위험율은 겨우 5천분의 1에 불과하지 않나? 그걸 가지고 무얼 걱정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만 『철교가 무너질지도 모르지.』『잠깐만 기다리게, 여태껏 철교가 무너져서 손해 본 화차는 몇 대나 있었지? 한 대도 없었어.』 또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자네는 정말 바보군. 한 번도 일어난 일이 없는 철교추락이나, 5천 대 1의 위험율밖에 없는 열차 전복을 걱정하지 않나, 위암이 생긴 것이 아니냐고 속을 태우지 않나!……』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좀 바보스러워진 것 같앗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고민은 평균율의 법칙에 맡기기로 하자고. 그런 뒤부터, 나는 <위암> 같은 것으로 고민한 적은 없다! 알 스미드가 뉴욕 지사로 있을 때, 그는 정적으 공격에 대해 언제나 기록을 조사해 봅시다. …… 기록을 조사해 봅시다. 라고 대답하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실을 실천해 나갔다. 이제 우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고민할 경우가 있으면, 그때는 현명한 알 스미드의 충언에 따라 기록을 조사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불안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프레데릭 J. 말스테드는 바로 그 자신이 묘 속에 누워 있다고 느껴졌을 때 이것을 해치웠다. 그가 우리 성인 클라스에서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44년 6월 초, 나는 오마하 비치에서 가까운 좁고 긴 참호 속에 누워 있었다. 나는 제999 통신 중대의 일원으로서 노르망디에서 <혈거>하고 있었다. 나는 좁고 긴 참호를 둘러보고 『이건 꼭 무덤같군』하고 말했었는데, 막상 그 속에 누워 자려니까 그것이 정말 무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건 내 무덤일지도 모른다』고 혼잣말을 지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밤 11시쯤 독일군 폭격기가 나타나서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자 나는 공포로 몸이 굳어져 버렸다. 처음 며칠 동안은 밤에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4,5일 후에는 신경 쇠약이 되었다. 달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정말 미치고 말거라고 느껴졌다. 이때 문득 나는 오늘로 5일째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무사했다. 물론 부상자가 두 명 있었지만 그것도 독일군의 폭탄에 맞은 거이 아니라, 아군 고사포의 작열탄 파편에 맞은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건설적인 일을 함으로써 고민을 잊어보려고 결시하였다. 그래서 참호 위에 파편을 막기 위한 두꺼운 나무 지붕을 만들었다. 나는 우리 부대가 펴져 있는 넓은 지역을 생각해 보았다. 이 깊고도 좁은 참호 속에서 내가 당하게 될 확율은 만분의 1이 될까말까할 정도였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고 2,3일 후에는 심한 폭격 속에서도 태연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미합중국 해군은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평균율 법칙의 통계를 이용하고 있다. 전에 수병이었던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군에 있을 때, 그와 그의 친구는 고 옥턴 유조선의 근무를 명령받았다. 그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그들은 모두 고 옥턴 가솔린을 실은 유조선이 어뢰를 맞게 되면 배는 폭발하고 모든 승무원을 날려버린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합중국 해군은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정확한 숫자를 공표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어뢰에 명중된 백 척의 탱커 중에서 60척은 침몰하지 않았으며, 침몰한 40척도 10분 이내에 침몰할 것은 겨우 5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배에서 도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며, 사상자는 극소수라는 것이 된다. 이 사실이 해군들의 사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이 평균율의 법칙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불안은 일소했다. 고 해군 출신인 미네소타주 센느 펄에 사는 클라이드 W.마스는 말하고 있다. 전승무원은 용기를 되찾았다.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평균율의 법칙에 의하면, 대체로 전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고민하는 습관에 말려들기 전에 그것을 해치우는 법칙 제3―― *기록을 조사해 봅시다. 그리고 자문자답할 것―― 이제라도 당장 일어날 지 모른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는 그 일이 사실고 일어날 것인가,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확률이 있는가? 9. 불가피에 협력하라. 어렸을 때 나는 미주리주에 있는 몹시 낡은 집 다락방에서 몇몇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려올 때, 나는 문틀을 살짝 밟고 뛰어내렸다. 그러다가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끼었던 반지가 못에 걸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무서웠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다 나은 뒤에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불가피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지금 내 왼손에는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세 손가락 밖에 없지만, 한 달에 한 번도 그런 것을 생각한 일은 없다. 몇 년 전에 나는 뉴욕의 상가에 있는 어느 빌딩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왼손은 손목에서부터 절단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목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뭐,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일도 없습니다. 나는 독신입니다만, 손 하나가 없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바늘에 실을 꿸 때뿐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어떠한 상태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를 그것에 적응시켜서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16세기 때의 사원 폐허에 있던 비석명을 기억하다. 그것은 플란더즈 말로 그건 그러하다. 그렇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씌어 있다. 우리는 오랜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의 어쩔 수 없는 불쾌한 실패에 부딪친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선택은 자유이다. 즉 그것을 불가피한 일로서 받아들여 자신을 거거에 적을시키든가, 혹은 그것에 반항하여 우리의 인생을 망치게 하든가, 아니면 신경 쇠약에 걸려 일생을 헛되이 하든가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존경하는 철학자 윌리엄 제임즈의 현명한 충고가 있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일단 일어난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행한 결과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오리건주 포오틀란드의 엘리자비드 콘리는 갖은 고생 끝에 이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그녀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여기에 인용하기로 하겠다. 「미국이 북 아프리카에서의 전승을 축하하던 그날, 저는 육군성으로부터 제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또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저는 비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인생은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기꺼운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조카를 키우는 데 온갖 정력을 바쳐 왔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더없이 착하고 아름다우며 이상적인 청년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치 수면에 던진 빵이 모두 케이크가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던 참에 이런 전보가 온 것입니다. 저의 모든 세계는 무너져 버렸습니다. 저는 산다는 목적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친구들도 멀리 했습니다. 만사를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은 원망했습니다. 어째서 나의 소중한 조카는 빼앗겨야만 했는가? 어째서 희망에 찬 그런 훌륭한 청년이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비탄에 억눌려 일도 걷어 치우고 눈문과 슬픔 속에 자취를 감추어 보려고까지 결심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곳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책상을 청소하다가 편지 한통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전사한 조카가 보낸 것으로 3,4 년 전에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가 써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도 모두 할머니의 서거로 쓸쓸해졌습니다만, 숙모님은 특히 그러하시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숙모님께서 슬픔을 이겨내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숙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갖가지 아름다운 진리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설사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언제나 미소를 잊지 말라.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하거나 남자답게 그것을 받아들여라.> 이렇게 말씀하신 숙모님의 교훈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그 편지를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숙모님은 어째서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을 실행하시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용기를 내주십시오.』그래서 저는 다시 일 자리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원망을 한다든가 반항적인 태도를 고쳤습니다. 저는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조카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분발하리라.』 하고 끊임없이 저 자신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너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군인들―다른 사람들에게 위문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성인 클라스에 출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배웠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변화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과거에 대해 슬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기쁨에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조카가 저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저는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전보다도 더욱 풍성하며 완전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 콘리는 조만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배웠던 것이다. 즉 우리는 불가피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은 좀처럼 배우기 어려운 일이다. 왕좌에 앉은 군주들까지도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 조지 5세는 버킹검 궁전의 도서실 벽에 다음과 같은 말을 걸어 두었다. 「달은 찾아 울지 말려, 엎질러진 밀크를 후회하지 않도록―― 나에게 교훈을 내리라.」 이와 같은 사상이 쇼펜하우에르에도 나타나고 있다. 「충분한 체념은 인생길을 떠나는 준비로서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확실히 환경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감정을 결정짓게 하는 것은 환경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설했다. 지옥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재난과 비극에 견디어 승리를 얻을 수 있다―정말 꼭 그렇게 해야만 될 것이라면, 즉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만일 그것을 이용하기만 한다면 수행해 낼 수 있는 실로 강한 내부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 부나 타킹턴은 언제나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인생이 나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참을 수 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맹목이다. 이것만은 견딜 수 었다. 그런데 그가 60살을 넘어선 어느 날, 타킹턴이 무심코 마루 위에 깔아 놓은 융단을 내려다보니까 색깔이 부옇게 흐려 뵈는 것이다. 그리고 무늬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전문의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비통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으며, 이미 한 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불행이 드디어 닥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타킹턴은 이 <최악의 불행>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였던가. 그는 <올 것이 왔다! 나의 일생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고 느끼었던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놀랍게도 그는 명랑한 기분이었다. 그는 일종의 유머러스한 감정을 느끼었을 정도였다. 작은 반점이 그를 괴롭혔다. 그것들이 그의 눈 앞에 아른거리며 돌아다녀 그의 시력을 빼앗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커다란 반점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 또 영감님이 오셨군!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어디로 가시는 거지! 과연 운명은 이렇듯 강한 정신을 때려 눕힐 수 있을까? 아니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두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을 때 타킹턴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자신의 시력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이 다른 온갖 것들을 받아들이듯이. 만일 내가 다섯 가지의 감각을 모두 상실했다 하더라도 나는 마음 속으로 살아 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간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 보며 마음 속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그는 시력을 되찾으려고 1년에 열 두 번 이상이나 국부 마취만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이든 피할 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고통을 더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도 특별실을 거절하고 다른 환자와 함께 있기 위해 일반 병실에 들었으며, 그들을 격려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아야만 했을 때, 눈 수술의 도통이 어떠한지를 잘 말면서도 자기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오늘날의 과학은 사람의 눈처럼 델리켓한 것까지 수술하는 기술을 가졌다니! 라고 그는 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서도 여전히 눈먼 장님이라면 틀림없이 신경 쇠약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타킹턴은 오히려 나는 이와 같은 쓰라린 경험을 보다 행복한 경험과 바꿀 생각은 없다 고 말했다. 그것은 그에게 인종을 가르쳤다. 또한 인생이 가져다 주는 어떠한 불행도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던 것이다. 장님이 된다는 것이 비참하지는 않다. 다만 눈이 먼 사실에 견딜 수 없는 것이 비참하다. 는 말의 의미를 그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뉴잉글랜드의 유명한 여권주의자인 마가레트 풀러는 나는 우주를 받아들인가 라고 하며, 그것이 그녀의 신조라고 말했다. 성질이 까다롭기로 이름난 토머스 카알라일은 영국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하는 거야! 라고 만족해 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도 불가피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이에 대해 반항하거나 조바심한다고 해서 불가피를 변동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다. 나는 일찍이 이 사실을 몸소 경험한 일이 있다. 언젠가 한 번 나는 내가 직면한 불가피한 사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에 반항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곧 나는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 지옥을 헤매게 되었고, 온갖 짜증나는 일들이 쏟아졌다. 결국 1년 동안이나 자신을 괴롭힌 끝에, 처음부터 도저히 변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작부터 윌트 휘트먼 노래에 맞추어 노래했어야만 했다. 오, 맞설지어다, 밤에, 폭풍에, 굶주림에, 조소에, 재액에, 반항에, 수목이나 동물이 그러하듯이. 나는 12년 동안이나 가축을 보살펴 왔지만, 아직껏 가뭄이라든가 진눈깨비, 추위, 목초가 타 버렸다거나, 혹은 보이 프랜드가 지나치게 다른 암소와 의좋게 지낸다 하여 젖소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동물들은 밤이나 폭풍이나 굶주림에도 태연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동물은 결코 신경쇠약이라든가 위암에 걸리는 법이 없으며, 미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은 온갖 재액에 무조건 머리를 숙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한 운명론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 사태를 조금이라도 개량할 가망성이 있는 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그것이 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안다면, 광인이 아닌 한 앞뒤를 살펴 보고 따르게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칼럼비아 대학의 허크스 학장은 <<마더 구스>> 중의 1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태양 아래의 온갖 괴로움에는 구원이 있다. 그 중에는 없는 것도 있디만 만일 있다면 그것을 찾아보라 만일 없다면 잊어버리는 거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나는 미국의 많은 지도적 실업가들과 회견했다. 나는 그들을 불가피에 협력함으로써 전혀 고민이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데 감탄했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확실히 긴장에 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두서너 가지의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페니 스토어의 창설가인 J.C. 페니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나는 재산을 모두 잃더라도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을 해 보아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최선은 다한 후에 그 결과는 주께 맡길 뿐이다. 헨리 포오드도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상대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클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사장 K.T. 켈러에게 고민 처리법을 질문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난처한 사태에 부딪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나는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래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은 참으로 여러 가지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그러한 힘을 움직이는지 아무도 모르며 예언할 수도 없다. 그러니 고민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켈러에게 <당신은 철학자>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는 당황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실업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에픽테투스가 19세기 전에 로마에서 가르친 것과 같은 철학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에픽테투스은 일찍이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행복에의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는 어떻게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를 그만 두는 데 있다. < 성스러운 사라>라고 예찬받던 사라 베르날은 불가피에 협력하는 방법을 알았던 부인의 좋은 실례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녀는 전세계의 극단에 군림했던 여왕이었다. 그런데 71세에 가서 재산을 모두 잃고 파산하고 말았다. 그녀의 주치의는 발은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폭풍을 만나 갑판에 뒹굴어 다리를 몹시 다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맥염을 악화되어 다리가 오그라들고 말았다. 더구나 고통이 심해져 의사는 절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을 내렸던 것이다. 의사는 성격이 거칠고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를 주저했다. 그녀가 이 끔찍한 말을 듣고 반 미치광이처럼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사라는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해야만 될 일이라면 해야겠지요.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수술실로 실려가는 자기를 울면서 바라보고 있는 아들을 보자, 힘차게 손은 흔들면서 아무 데도 가지 말라. 난 바로 돌아올 테니까. 하고 쾌활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수술실로 가는 도중 자기가 연기했던 연극의 한 장명을 외었다. 그것이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하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지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예요. 저 분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이 수술을 받고 회복된 뒤에도 그녀는 다시 7년 동안에 걸쳐 세계 각국을 순회하면서 관객을 매혹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불가피와 싸우기를 그만 둘 때 우리는 에네르기를 해방한다. 그 에네르기야말로 우리에게 보다 풍부한 인생을 창조하여 주는 것이다. 엘시 맥코믹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기재한 평론 가운데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불가피와 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생활을 창조하기에 충분한 감정과 활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든 그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불가피한 폭풍설 앞에 머리를 숙이든가―그렇지 않으면 반항을 하다 파멸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미주리주의 나의 농장에서 그 예를 보았다. 그 무렵 나는 그 농장에서 많은 수목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나무들이 놀랄 만한 힘으로 줄기차게 성장했다. 이윽고 진눈깨비가 섞인 폭풍이 불어오자, 나뭇가지는 온통 눈 속에 파묻혔다. 그런데 이들 수목은 얌전히 눈의 무게에 머리를 숙이지 않고 감연히 저항하기 때문에 눈더미의 무게에 눌려 끝내 부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마침내 베어지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수목들은 북부 삼림의 지혜를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캐나다의 상록림을 수백 마일이나 여행한 일이 있는데, 아직껏 한 번도 침엽수라든가 소나무가 얼음이나 진눈깨비 때문에 쓰러진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상록림은 머리를 숙이는 것을, 가지를 늘어 뜨리는 것을, 협력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유도를 몸에 익힌 사람들은 버들가지처럼 휘거나 참나무처럼 저항하지 말라. 고 가르치고 있다. 당신은 자동차의 타이어가 오랜 기간에 걸쳐 그렇듯 모질게 사용해도 견디는 까닭을 아는가? 최초의 타이머 제조업자들은 도로의 쇼크에 저항하는 타이어를 만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내 끈처럼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도로의 쇼크를 흡수하는 타이어를 만들었다. 그것은 쇼크를 소화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험한 인생 행로에 있어서의 쇼크라든가 요를 흡수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행복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쇼크를 흡수하지 않고 이에 대해 반항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혹은 또 <버들처럼 휘기를 거부하고 참나무처럼 저항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명료하다. 우리는 수많은 내면적 갈 등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고 긴장하여 신경 쇠약에 걸리고 말 것이다. 더구나 만일 우리가 준엄한 현실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꿈의 세게로 도피한다면, 그 때는 미치광이가 되고 말 것이다. 대전 중 수백만이라는 공포에 떨던 병사들은 불가피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긴장에 쓰러지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뉴욕의 윌리엄 H. 카셀리어스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이것은 나의 성인 클라스에서 입상한 실험담이다. 나는 연안 경비대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대서양 연안서도 사장 더운 곳에 배속되었다. 거기서 나는 폭발물 감시병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크래커 판매원이었던 내가 폭발물 감시병으로 되다니! 수천 톤에 달하는 강력 폭탄 위에 서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크래커 판매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겨우 그런 일의 훈련을 받았을 뿐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조금 알게 된 사실이 한층 나의 공포를 더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맨 처음으로 당번섰던 날을 한평생 잊을 수 없다. 어둡고 춥고 알개낀 날, 나는 뉴저어지주 케이븐 포인트의 지붕없는 부두에서 최초의 명령을 받았다. 나의 담당은 5번 선창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5명의 부두 노동자들과 함께 일해야만 했다. 그들은 모두 늠름한 체격이었는데 폭탄에 대해서는 전연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발이면 이 낡은 배를 날려 버릴 대형 고성능 폭탄 (TNT 함유량 1톤)을 들으로 져 나르는 것이었다. 이 대형 폭탄들을 겨우 두 개의 철사 고리로 매달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만인 저 줄 하나가 끊어지거나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오오 맙소사! 나는 이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무서웠느냐구요? 물론 살아 있는 것 같은 심정이라곤 없었다. 입은 침 한 방울없이 말랐고, 다리는 와들와들 떨렸다. 가슴은 쉴 사이없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만일 도망을 친다면, 탈주로 몰리겠지. 그렇게 되면 나는 면목을 잃고 만다―부모님들도 면목을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나는 탈주한 죄로 총살될지도 모른다. 나는 부두 노동자들이 고성능 폭탄을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배는 지금 당장에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전긍긍하는 상태가 한 시간 남짓하게 계속된 후에, 나는 겨우 상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정신 차려라!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구? 할 수 없는 일이지. 어차피 별 차이 없을 테니까. 오히려 이것이 편히 죽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암으로 고생을 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어리석은 것도 정도 문제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게 마련인 거다. 나는 이 일을 해내든지 아니면 총살을 당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렇게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러자 차츰 마음이 가라앉아서, 결국에는 불가피를 받아들이므로써 고민과 공포를 이겨낼 수가 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 교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을 당하여 고민하게 될 때에는, 언제나 어깨를 흔들며 『에라, 잊어버리자』고 말하기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나 같은 크래커 판매원에게도― 만세! 이 크래커 판매원에게 만세를 불러 주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외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임종의 광경은 아나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일 것이다. 앞으로 1만 세기가 지난 뒤에도, 인간은 플라톤의 불멸의 기록을 온갖 문학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의 하나로 감격하며 읽어 갈 것이다. 맨발의 늙은 소크라테스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아태네의 일부 사람들은, 그를 무고하여 사형 판결을 내리게 했다. 그에게 가진 옥사장은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불가피는 조용히 견디어 내십시오. 소크라테스는 그 말에 순종했다. 그는 신에 가까운 평정과 인종으로써 죽음에 직면했던 것이다. 불가피는 조용히 견디어 내십시오. 이말은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399년 전에 말했던 것인데, 이 고난의 세계에 있어서는 오늘날도 옛날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 불가피는 조용히 견디어 내십시오. 불가피는 조용히 견디어 내십시오. 지난 8년간 나도 나소나마 고민의 해결법을 풀이한 책이나 잡지라면 거의 독파해 왔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써 내가 발견했던 바, 고민 해결에 관한 가장 좋은 충고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것을 적기로 하자――이 말은 매일 아침 세수를 할 때 마음 속의 온갖 고민도 함깨 씨서 버리기 위해, 욕실 거울 위에 붙여 둘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듯 참으로 귀중한 이 기도문은 뉴욕 유니언 신학교의 라인홀드 나이버 박사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주여, 나에게 평정을 주시옵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 서로 다름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고민하는 습관에 당하기 전에 그것을 해 치우는 법칙 제4―― *불가피에 협력하라. 10. 고민에 <손실정지> 주문을 달아라. 당신은 월가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싶은가? 아무튼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백만이나 있다. 만일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아마도 이 책은 한권에 1만 달러라도 팔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성공한 중매인들이 실행하고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이 이야기는 뉴욕에 사무소를 갖고 있는 투자 상담업자 차알즈 로버트에게서 들은 것이다. 나는 맨 처음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위한 돈 2만 달러를 친구에게 빌어 가지고 텍사스에서 뉴욕으로 왔다. 나로서는 주식의 요령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있는 돈을 몽땅 잃고 말았다. 한 때는 좀 벌기도 했지만, 결국에 가서는 전부 없애고 말았다. 나는 내 돈을 없앤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친구들의 돈을 잃은 것은 정말 면목이 없다고 생각되었다―그들은 그 돈을 잃고 곤란을 당할 사람들은 아니었지만―나는 그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다시 얼굴을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실로 호기있게 돈을 쓸 뿐만 아니라 실속없는 낙천주의자였다. 이 무렵의 나는 될 대로 되리라는 심사였고, 거기다 요행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만 업혀 있었다. 결국 H.I. 필립스가 말한 대로 <귀로 시세를 살피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기 전에 이 방면에 대해 연구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증권계에서의 대성공자 버튼 S. 카스틀스라는 사람을 만나 아주 친해졌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성공자라고 예찬받았는데 그러한 성공은 단순한 호운의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나에게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방법에 대해 두세 가지를 질문했다. 그리고 주식을 하는 데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떠한 거래에 대해서는 스톱 로스 오더(손실정지 주문)를 달아 둔다.』이를테면 한 주에 50달러에 산 것에 대해서는 45달러로 매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시세가 떨어져서 샀던 주가 5포인트 내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팔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손실은 5포인트로 끝나는 셈이다. 『만일 당신이 첫 번에 잘 성사만 시킨다면, 당신의 이익은 평균 10내지 25, 또는 50포인트에 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손실을 5포인트로 제한한다면, 절반 이상 거래에 실패하더라고 막대한 벌이가 되는 셈이다.』나는 이 말을 듣고 재빨리 이 원칙을 채택했다. 그런 뒤부터는 고객에게도 이윤을 주게 되었고, 나 자신도 벌었다. 그 후 나는 손실 정지의 법칙이 주식 시장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일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경제적인 고민 이외에도 이것을 응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온갖 귀찮은 일이나 불쾌한 사건에도 마법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 한 예를 들면, 나는 한 친구와 가끔 점심을 같이 했는데, 이 사람은 언제나 약속 시간에 늦곤 했다. 그래서 전에는 그 친구가 올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렸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나의 <스톱 로스 오더>를 설명하고 이렇게 말했다. 빌, 나는 자네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스톱 로스 오더는 20분으로 하겠네. 그래서 만일 자네가 10분 이상 지각한다면, 우리의 점심 약속은 해약일세―난 가버리고 말 테니까. 아아, 나도 좀더 일찍 나의 성급함, 변덕스러움, 고집스러움, 뉘우침 그밖의 모든 정신적 감정적 긴장에 대해 스톱 로스 오더를 달 줄 알았더라면! 어째서 나에게는 나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려는 온갖 사태를 똑바로 판단하여 이봐, 데일 카네기. 이번 일에는 이만큼 머리를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네. 하고 자신에게 타일러 줄 만한 지혜가 없었던가! 참으로 유감 천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도 한 번은 센스를 발휘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뽐내고 자랑해도 괜찮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도 실로 둥대한 경우―일생의 위기였다―장래에 대한 꿈이라든가 플랜, 여러 해 동안의 사업이 맥없이 깨끗하게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러했다. 즉 30대 초기에 나는 소설가가 되어 보겠다고 결심했었다. 말하자면 나는 제2의 프랭크 노리스라든가, 잭 런던, 또는 토머스 하아디가 되어 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진정이었으므로 유럽에서 2년간이나 지냈었다. 이 무렵은 제 1차 세계 대전 후의 대인플레 시대였으므로, 달러만 있으면 참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2년 동안 <<큰 눈보라>>라는 제목을 붙인 대걸작을 저술했었는데, 이 표제는 정말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저작에 대한 출판업자들의 태도는 다코타 평원을 휘몰아치는 눈보라못지 않게 싸늘했다. 나의 문학적 대리인으로부터 그것을 가치가 없다, 자네에게는 소설을 쓸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은 멈춰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망연해서 그의 사무실을 물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보다 더한 타격이었다.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인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실로 중대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끼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어느 쪽으로 행해야 좋을 것인가? 나의 자실 상태는 여러 주일이나 계속되었다. 그 무렵 나는 당시의 고민에 스톱 로스 오더를 달아라. 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때의 일을 돌이켜 보면, 그것을 실행했떤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소설을 쓰기 위해 고심참담하던 2년 동안을 귀중한 경험으로서 청산해 버리고, 거기서 다시 새로이 출발했던 것이다. 나는 성인 클라스를 만들어 교육하는 사업으로 되돌아왔으며, 그 여가에 지금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이 전기라든가 비소설적인 책들을 저술했다. 그때 그런 결심을 한 것을 기뻐하느냐구요? 물론이다! 나는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몹시 기뻐 노상에서도 춤을 추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 이래로 나는 내가 제2의 토머스 하아디가 되지 못한 것을 절대로 슬퍼하거나 한 적이 없다. 지금부터 1세기 전 어느 날 밤, 한 마리의 부엉이가 올덴 본드 호반의 숲 속에서 울고 있을 때, 헨리 솔로우는 손수 만든 잉크에 깃털 펜을 적셔가며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가치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러고 있는 것의 양을 말한다. 그것은 곧, 때로는 오래 있다가 교환된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물에 대해 우리의 근본적 존재에서 빼낼 수 있는 것을 지나치게 지불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더욱이 길버트와 설리반이 그러했다. 그들은 명랑한 말과 즐거운 음악을 만들 줄은 알았지만, 그들 자신의 생활을 쾌활하게 하는 법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미카도>>, <<피나포어>>, <<페이션스>> 등 실로 아름다운 경가극을 창조하여 전세계를 기쁘게 했으나, 자신의 감정을 조정할 수는 없엇다. 그들은 겨우 한 장의 융단값 때문에 몇 해씩이나 불쾌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설리반은 그들이 산 극장을 단장하기 위해 새 융단을 주문했다. 그런데 길버트가 그 청구서를 보고 떠들어대어 그들은 법정에서까지 다투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설리반은 신작을 작곡하면 그것을 길버트에서 우송했다. 그러면 길버트는 거기에 가사를 붙여 설리반에게 다시 우송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함께 무대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난처한 경우에 당면했다. 그러자 그들은 스테이지 양쪽에 서서,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숙여 서로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들은 일찍이 링컨이 했듯이, 그들의 원한에 대해 스톱 로스 오더를 달만한 분별이 없없던 것이다. 남북 전쟁 중에 링컨의 친구 몇 사람이 그의 원수를 비난하자,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은 나보다 개인적인 원한이 심한 것 같군. 나는 그것이 지나치게 적은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익은 아닌 것 같네. 인간은 일생의 절반을 논쟁으로 허비할 겨를이 없으니 말일세. 만일 누구든지 나를 공격하기를 그만 둔다면, 나는 그의 과거에 대해 잊어버리기로 했다네. 나는 나의 숙모 에디스가 링컨과 같은 너그러운 정신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이 숙모와 프랭크 숙부는 물 사정도 나쁘고 잡초도 많은, 게다가 저당잡혀 있는 농장에 살고 있었다. 그분들이 지내는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동전 한 푼도 아껴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숙모는 커튼이다 뭐다 하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들이기를 좋아해서, 그것으로 보잘 것 없는 집을 꾸몄던 것이다. 더구나 숙모는 그것을 외상으로 샀ㄷ. 그런데 남의 빚을 겁내는 농부 기질의 숙부는 이것이 걱정스러워서, 아내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주지 말라고 몰래 상정베 부탁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숙모는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숙모의 노여움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수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최후로 들은 것은 숙모께서 70을 훨씬 넘었을 때였다. 나는 숙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숙모님, 숙부께서 숙모님의 체면을 손상시킨 것은 확실히 잘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50년 전 일을 가지고 지금껏 서운한 말씀을 하시는 숙모님 쪽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사실 이 말은 소귀에 경읽기였다.) 숙모는 오랫동안 지녀 온 노여움과 괴로운 추억에 대해 퍽이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던 것이다. 이른바 마음의 평화라는 대가를…… 벤자민 프랭클린은 7살 때 잘못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70년 동안이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7살 때 호루루기를 몹시 좋아했다. 그는 이미 호루루기에 열중해 버려 장난감 가게에 가서 카운터 위에 가지고 있던 동전을 몽땅 내놓고, 값도 물어 보지 않고 호루루기를 달라고 하였다. 그는 70년 후에 그때의 일을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좋아라며 온 집안을 불고 다녔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그가 호루루기 값을 너무 많이 주고 산 것을 알고 동생을 놀려 댔다. 그래서 그는 『분해서 울었다.』 는 것이다.」 뒷날 프랭클린이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프랑스 대사가 되었을 때, 그는 그때까지도 호루루기 값을 너무 많이 준 일을 기억하고 있어 「호루루기에서 얻은 기쁨보다 분한 생각이 더했었다.」 고 쓰고 있다. 그러나 결국 프랭클린이 체득한 교훈은 값으로 따지자면 퍽 싼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성장하여 사회에 나와 세상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에 이르자 매우 많은 사람들이 호루루기에 대해 값을 지나치게 많이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인간의 불행의 대부분은 그들이 사물의 평가를 잘못함으로써 호루루기의 값을 너무 많이 치른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길버트와 설리반도 그들의 호루루기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값을 지불했다. 에디스 숙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데일 카네기 역시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러하다. 세계 최대 걸작에 속하는 <<전쟁과 평화>,<<안나카레리나>>의 저자인 불멸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영 백과사전에 의하면 레오 톨스토이는 그의 생애 가운데 최후의 20년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사람>이었다. 그 20 년 동안―1890년부터 1910년 까지―무수한 숭배자들이 그의 얼굴을 한 번이나마 보려고, 그의 음성을 들으려고, 그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보려고 톨스토이의 집을 찾았다. 그의 말은 한 마디 한 구절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 것처럼 기록되었다. 그러나 사생활면에서 본다면, 톨스토이 프랭믈린이 7살 때 가졌던 분별을 70세가 되어서도 지니지 못했다! 그는 전연 상식을 벗어났던 것이다. 여기서 나의 해석을 말하기로 한다. 톨스토이는 그가 몹시 사랑하던 소녀와 결혼했다. 그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들은 이렇듯 극락과도 같은 법열의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지기를 주께 기도했다. 그런데 톨스토이가 아내로 맞이한 소녀는 디 질투심이 강했다. 그녀는 누추한 촌 여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숲 속에서까지 남편의 행동을 곧잘 감시하곤 했다. 그녀의 질투는 점점 심해져서 자식에게까지 미쳤다. 그리고 딸의 사진을 소총으로 쏘아대는 짓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편 병을 입에 물고 마룻바닥을 뒹굴면서 자살하겠다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방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무서워서 몸을 떨었다. 그러면 톨스토이는 어찌했는가? 나는 그가 흥분하여 가구를 부수었다고 해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짓을 했다. 즉 그는 비밀히 일기를 썼던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모두 아내가 나쁘다고 썼다.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그의 <호루루기>였다. 그는 다음 세대들이 자기에게 동정하여 아내를 비난하도록 하려고 이렇게 꾸민 것이다. 이에 대해 그의 아내는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남편의 일기를 빼앗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자기도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그 속에서 남편을 악한으로 기록했다. 그녀는 다시 <<누구의 죄>>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남편을 가정의 악마로 만들었으며, 자기를 그 희생자로 만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을까? 어째서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유일한 가정을 톨스토이의 말처럼 <정신병원>으로 만들고 말았을까? 여기에는 확실히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 강한 욕망이었다. 사실 그들은 다음 세대에 속하는 우리들의 비판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저 세상에서까지 남의 비행에 대해 욕설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톨스토이를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다. 우리 잣니의 문제만으로도 벅차니까. 그런데 이 딱한 두 사람은 얼마나 비싼 대금을 그들의 <호루루기>에 지불했는가! 그들은 50년 간에 걸친 지옥의 생활―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스톱! 소리를 할 만한 양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모두 지금 곧 이런 일에는 <스톱 로스 오더>를 답시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낭비하고 있어요. 이만하면 <충분해>로 해 둡시다 이렇게 말할 만한 판단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나는 참다운 마음의 평화의 비결이란 가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만일 우리가 일생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각개의 금본위 제도를 제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지닌 고민의 50퍼센트는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고민하는 습관에 우리가 다하기 전에 그것을 해치우는 법칙 제5― *인간 생활에 있어서 좋지 않은 것에 대해 귀중한 돈은 허비하려는 유 을 느낄 때는 일단 멈춰 서서 다음 세 가지 물음을 생각해 볼 것. 1.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 얼마만큼 중대한 일인가? 2. 몇 포인트나 내리면 이 고민에 대해 <스톱 로스>의 주문을 내고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3. 이 <호루루기>에 대해 정확히 얼마를 지불하면 되는가? 이미 지금까지에 충분히 지불하고 있지나 않은가? 11. 톱밥을 켜려고 하지 말라. 이 구절을 쓰면서 나는 창 너머로 정원에 있는 공룡의 발자국을 바라본다. 이것은 혈암이나 돌 속에 묻혀 있는 것으로, 예일 대학의 피이버디 박물관에서 사온 것이다. 그것은 1천 8백만 년이나 옛날로 되돌아가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쪽이 훨씬 더 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180초 전에 일어난 일이라도 그 후에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수의 인간들은 그것을 하고 있다. 확실히 우리는 180초 전에 일어났던 일의 결과를 수정하도록 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을 변경할 수는 없다. 과거를 건설적인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을 조용히 분석하여 그것을 유용화하는 데 있다―그리고 과오를 잊어버리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행할 만한 용기와 사려를 가지고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수년 전에 내가 경험했던 기이한 사건 하나를 말하기로 한다. 나는 30만 달러나 되는 돈은 한 푼의 이익도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나는 한 때 대규모의 성인 교육 사업을 시작하여 각 도시에 분교를 설치하고, 광고라든가 잡비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리고 나는 학생을 가르치기에 너무나 바빳으므로, 재정면에 유의할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나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라이었으므로 비용을 감독할 만한 수완있는 영업 지배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약 1년 후에 가서야 나는 뜻하지 않는 실태를 알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막대한 수입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된 셈인지 이익은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취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있었는데, 그 하나는 흑인 과학자 조지 워싱턴 카아버가 그에 있어 일생 동안의 저축인 4만 달러를 은행의 파탄으로 잃었을 때 보였던 것과 같은 양식을 가지는 일이다. 그는 은행이 파탄한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수업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는 돈을 잃은 것을 마음 속으로부터 완전히 일소해 버리고 두 번 다시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내가 해야 했던 제2의 방법은 과오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 어느 쪽도 실행하지 않았다. 나는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몇 개월 동안이나 망연 자실하고 있었다. 불면증에 걸려들어 체중도 줄었다. 그리고 이 크나큰 과오로부터 교훈을 배우기는커녕 더욱 계속해서 규모는 작았지만 똑같은 과오를 다시금 저질렀던 것이다. 이처럼 우둔한 행위를 그대로 고백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유익한 것을 20명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그 20 명 중의 한 사람이 되어 나 자신이 가르친 것을 몸소 실천하는 편이 훨씬 어렵다. 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뉴욕의 알렌 선더스가 사사했던,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의 폴브랜드와인 박사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선더스씨는 나에게 그의 위행학 클라스의 선생이었던 폴 브랜드와인 박사가 자기에게 교훈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나는 그 무렵 십대였는데, 선천적으로 잔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조그만 가실에도 오래도록 걱정하며 애를 태웠다. 시험 답안을 제출하고 나면, 혹시 낙제나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이 한 일을 다시 생각해 내어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했으며, 자기가 한 말을 되새기고 그 말이 서툴렀다고 후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우리 클라스가 과학 실험실에 출석하자, 폴브랜드와인 박사는 누구에게서나 잘 보이는 책상머리에 밀크 병을 놓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 밀크를 보면서 선생께서 가르치는 위생학과 밀크가 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아하게 여기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때 박사가 벌떡 일어나며 갑자기 밀크 병을 오물통에 쏟아 넣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엎지른 밀크를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리고 나서 박사는 우리를 오물통이 있는 곳으로 오게하여, 깨어진 병을 보였다. 『잘 보라. 나는 여러분이 일생 이 교훈을 기억해 주기 바라는 것이다. 밀크는 이미 엎질러져 하수도로 흘러가 버렸다. 자네들이이제 와 아무리 떠들고 후회한대도, 그것을 한 방울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하고 조심했더라면 밀크는 엎질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일을 모조리 잊어비리고 다음 일로옮겨 가는 것 뿐이다. 』 이 조그마한 실습은 입체 기하학이나 라틴어를 잊어버린 뒤에도 나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4년간의 고교생활에서 그 이상으로 실용적인 생활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밀크를 엎질르니 않도록 주의할 것. 만일 일단 엎질러져 하수도로 흘러가 버렸다면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는 이처럼 진부한 「엎지른 밀크를 후회해도 소용없다.」 는 격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냉소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진부하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 여러분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격언에 온갖 시대의 슬기의 에센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의 불길 같은 경험에서 태어나와 무수한 세대를 거쳐 연결되어 온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온갖 시대의 위대한 학자들이 쓴, 고민에 관한 모든 기록을 독파했다 하더라도, <다리에 오기까지는 다리를 건너지 말라>들가, <엎지른 밀크를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등의 진부한 격언 이상으로 기본적이고도 의미 심장한 말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그것을 코웃음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 책은 전연 쓸모없게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만일 예살 격언의 대부분을 널리 적용한다면, 거의 완전에 가까운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릇 지식이라는 것은 실천되어야 비로소 힘이 된다. 그리고 이 책이 목적은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일깨워, 그것을 여러분들이 적용하도록 고무, 격려하자는 것ㅇ다. 나는 언제나 프렛풀러 세드와 같은 인물을 존경하고 있다. 그는 묵은 진리를 새롭고 생생한 형식으로 설명할 줄 아는 특수한 재능을 가졌다. 그는 <필라델피아 블레틴>의 주간이었는데, 어느 대학 졸업반들에게 한 연설 가운데서 이렇게 물었다. 제군들 중에 나무를 톱질해 본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손을 들어 보라. 대다수의 학생들은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또 물엇다. 톱밥을 켜본 일이 있는 사람은 없는가? 이런 질문이 나오자 손은 하나도 올라가지 않았다. 물론 톱밥을 톱으로 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그것은 톱으로 켜져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은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일을 가지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톱밥을 톱으로 켜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야구계의 대원로 코니 마크가 81세때 나는 그에게 시합에서 패배한 것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코니 마크는 이와 같이 대답했다. 물론 가끔 번민할 일도 있지만, 그런 어리석은 일은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네. 고민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냇가로 흘러가 버린 물로 곡식을 찧을 수는 없기 때문이야. 확실히 이 말대로 냇물로 흘러가 버린 물로 곡식을 찧을 수도 없으며 재목을 켤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 얼굴의 주름살이라든가 위암을 켤 수는 있다. 나는 지난 해 감사절 때, 잭 뎀프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는 크랜베리 소스를 친 칠면조 요리를 먹으면서, 터니에게 패배하여 중량급 선수권을 빼앗기던 시합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그의 자아에 대한 충격이었을 텐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한창 시합을 하는 중 나는 갑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느끼었다……10회전이 끝났을 때 나는 서 있었지만, 그것은 그냥 건성으로 서 있었을 뿐이었다. 얼굴은 부어서 상처 투성이었고, 눈은 거의 뜰 수도 없었다……나는 심판이 터니의 손을 번쩍 치켜 들고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세계의 챔피언은 아니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군중을 헤치고 탈의실로 돌아왔다. 내가 지나칠 때, 몇 사람인가는 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눈물이 글썽한 이도 있었다. 1년 뒤, 나는 터니와 다시 싸웠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나는 영원히 끝장이 나고 만 것이다.그렇게 생각ㅎ자 자꾸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나는 과거에 살 생각은 없다. 또 엎지른 밀크를 후회할 생각도 없다. 나는 이 타격을 턱으로 받아 내리라. 이대로 쓰러지지는 않는다.』 이리하여 잭 뎀프시는 훌륭하게 그것을 해냈던 거싱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과거에 대해서는 결코 고민하지 않겠다>고 타이르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단순히 그에게 과거의 일을 생각하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여 그것을 망각해 버린 뒤, 장래의 계획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성취했다. 즉 그는 잭 뎀프시 레스토랑과 그레이트 노우슨 호텔을 경영함으로써 성취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권투의 흥행을 주최하기로 하고, 모범 시합에 출전함으로써 그것을 이룩했다. 그는 끊임없이 무엇이든 건설적인 사업에 몰두하여, 과거에 대해서는 고민할 겨를이 없도록 함으로써 그것을 성취했다. 나는 근래 10년 동안, 선수권 보유자였을 때보다 더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고 그는 말한다. 뎀프시는 그다지 책을 읽은 일이 없다고 하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익스피어가 말한 「현명한 사람은 데없이 그들의 손실을 한탄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힘차게 그 손실을 배제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라는 충고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역사나 전기를 읽고 비경에 처한 사람들을 관찰할 때마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들의 고민과 비극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행복과 생활로 나아가는 그 능력에 대해 감명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싱싱 교도소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곳의 죄수들이 사회의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행복스러워 보이는데 놀랐다. 내가 그 이야기를 소장 루이스 E. 로우즈씨에게 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범죄자가 싱싱에 와서 처음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남을 원망하지만, 몇 달이 ㅈ나게 되면 다소 분별이 있는 대부분의 죄수들은 불행을 물리치고 마름을 가라앉히게 되며, 조용히 교도소 생활을 받아들여 되도록 유쾌하게 지내려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전에 정원사였던 어떤 죄수는 구내에서 야채와 꽃을 가꾸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꽃을 가꾸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싱싱의 죄수는 많은 우리보다도 훨씬 분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 움직이는 손>은 기록한다, 기록하고는 옮겨간다. 너의 신앙도 지혜도 그 <한 행>의 절반도 되찾지 못하고 또 너의 온갖 <눈물>도, 그 <한 마디 말>마저도 그러므로 눈물을 헛되이 흘리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우리는 갖은 실책과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어떻다는 말인가? 그것은 누구든지 하는 일이다. 나폴레옹조차도 그가 싸웠던 주요한 전쟁의 3분의 1은 패배였다. 아마 우리의 타격률은 나폴레올 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한 나라의 모든 병력을 동원한대로 과거를 전대로 돌이킬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칙 제7을 잊지 않도록―― *톱밥을 켜려고 하지 말라. 제 3 부 요 약 고민하는 습관에 당하지 전에 그것을 해치우는 법 제1법칙: 일에 바빠짐으로써 마음 속으로부터 고민을 밀어 내라. 활발한 행동이야말로 <언제까지나 걱정만 하는 병>에 대한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제2법칙: 하찮은 일에 법석을 떨지 말라. 인생의 하찮은 일로 자신의 행복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제3법칙: 고민을 몰아 내기 위해 평균율의 법칙을 적용하라. 「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몇 할이나 되는가?」 라고 스스로 물으라. 제4법칙: 불가피에 협력하라. 만일 사태가 아무래도 변경 개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다.」 고 자신에게 타이르도록 하라. 제5법칙: 고민에 <스톱 로스>주문을 달아라. 사물에 상당하는 고민의 한도를 정하여 그 이상 고민하기를 거부하라. 제6법칙: 과거로 하여금 과거를 묻어 버리게 하라. 톱밥을 켜려고 하지 말라. 제 4 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정신 양성법 7원칙 12. 당신의 생활을 전환시키는 몇 마디의 말 몇 해 전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배운 바, 최대의 교훈은 무엇인가?」 라는 라디오 프로에 회답을 요청받은 일이 있다. 이것은 간단했다. 내가 배운 가장 귀중한 교훈은 생각한다는 것의 중요성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면 당신의 인품을 알게 된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정신 태도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엑스 요소이다. 에머슨도 「그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그 사람이다.」 라고 했다. 사실 그 말대로이다. 우리가 덤벼들어야 할 최대의 유일한 문제는 옳게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일 이에 성공한다면 온갖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열려 가는 것이다. 로마 제국을 통치한 위대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불과 몇 마디 말로 요약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몇 마디의 말로 ――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즐거운 생각을 하다면 우리는 즐겁다. 또한 비참한 생각을 하면 비참하게 된다. 또한 무서운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 병적인 생각을 하면 병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지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피하고 멀리하게 된다. 노르만 빈센트 피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생각 그 자체가 그 인간인 것이다.」 나는 온갖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불행스럽게도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제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걱정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하다는 것과 고민한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이제 그것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뉴욕에서 교통이 혼잡한 거리를 횡단할 때, 언제나 나는 자신의 문제의 본질을 알아 내어 조용히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번민한다는 것은 미친 듯이 무익한 원의 테두리 안을 빙빙 도는 일이다. 인간은 그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무엇이든 마음을 쓴다. 그러면서도 가슴에는 카아네이션을 달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할 수가 있다. 나는 로우얼 토머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제1차 대전의 알렌비 로렌스 작전의 유명한 필름을 처음으로 공개했을 때 그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조수들은 각 방면의 전선에서 많은 전쟁 영화를 제작했는데, T. E. 로렌스와 그 대채로운 아라비아 군의 활약과 알렌비 군의 성지 탈환의 두 영화는 특히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파렐스티나에서는 알렌비와, 아라비아에서는 로렌스와 더불어>라는 제목의 강연은 런던은 물론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의 로얄 하우스에서의 모험에 가득찬 이야기와 영화 상연을 지속시키기 위해 런던의 오페라 시즌은 6주간이나 연기되었다. 그리하여 러던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후, 세계 각국을 순회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인고와 아프카니스탄의 생활을 기록 영화화할 준비에 착수했었는데, 이때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불행이 속출한 끝에 불가능이 일어났다. 그는 런던에서 파산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그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들은 라이온즈의 코너 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싸구려 식사로 견뎌야만 했다. 그나마도 토머스씨가 이름높은 스코들란드의 화가 제임즈 막베이씨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었더라면 그곳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의 초점이 있다. 로우얼 토머스씨는 막대한 부채와 심각한 실의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심은 하였으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역경에서 자절되고 만다면, 자기는 채권자에 대해서나 일반 세상에 대해 전연 가치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에 앞서 꽃을 사서 그것을 활보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진다는 것은 게임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것은 정상을 목표로 삼는 사람에게 필요한 훈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태도는 우리의 육체력에 대해서도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유명한 정신병학자 J. A. 하드필드는 <<힘의 심리>>라는 저서 가운데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악력계를 사용하여, 정신 암시가 완력에 미치는 영향을 세 사람(남자)에게 실험해 보았다.」 그는 우선 그들에게 힘껏 악력계를 쥐게 했다. 그것은 세 가지의 다른 조건하에서 하게 해 보았다. 보통의 맑은 정신일 때 테스트했을 경우 그들의 평균 악력은 101파운드였다. 다음에는 그들에게 최면을 걸고, 당신들은 참으로 약하다는 암시를 준 후에 재어 보니 겨우 29파운드로 보통 힘의 3분의 1도 못되었다. (세 사람 중의 한 명은 권투 선수였는데, 최면을 걸고 당신은 약하다는 암시를 주자, 「내 팔은 어린 아이의 팔처럼 작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드필드는 세 번째의 테스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에 측정하였더니, 그들의 평균 악력은 142파운드에 달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마음이 강하다는 적극적인 관념으로 충만되자, 그들의 육체적 힘은 50퍼센트나 증가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상의 마력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역사상에 있어 가장 놀랄 만란 이야기 하나를 소재하기로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한 권의 책으로도 쓸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간단히 줄이기로 한다. 남북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끝난 지 얼마 안되는 서리 많은 시월의 어느 날 밤, 집도 없는 가난한 지상의 표류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한 여인이, 매사추세츠 주 암즈버리에 사는 퇴역 해군 대령의 부인 마더 웹스터 댁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준 마더 웹스터는 <백파운드가 될까말까한, 피골이 상접한>가련하고 작은 사람 같은 것을 보았다. 이름을 미시즈 그로우버라고 밝힌 이 여인은 밤낮으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때문에 집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집에 있으면 어떻겠어요? 난 이렇게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까. 웹스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시즈 그로우버가 얼마 동안을 마더 웹스터와 함께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러던 차에 뉴욕으로부터 웹스터 부인의 사위인 빌 에리스가 유가를 얻어 찾아왔다. 그는 미시즈 그로우버를 보자 이 집에 뜨내기를 둘 수야 있느냐. 고 떠드는 바람에, 이 집 없는 여인은 쫓겨나고 말았다.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를 맞으며 얼마 동안을 떨고 있더니, 마침내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정처없이 떠났다. 그런데 여기에 이야기의 놀라운 곡절이 있는 것이다. 빌 에리스가 문 밖으로 쫓아 낸 그 <뜨내기> 여인이 뒷날 이 세상의 사상에, 실로 커다란 영행을 미칠 운명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크리스찬 사이언스 창시자 메리 베이커 애디로서, 몇 백만 신도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더욱이 그때까지 그녀는 질병, 비애, 비극을 제하고는 일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맨 첫 남편은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죽었으며, 두 번째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유부녀와 눈이 맞아 도망쳤다. 그 뒤 그는 빈민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가난과 병과 질투 때문에 그 아이가 4살 때 그녀는 자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후로 아들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31년 뒤에야 그를 다시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본디 허약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정신요법의 과학>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녀의 생애에 있어서 극적인 전기는 매사추세츠주 린에서 일어났다. 어느 추운 날 아침 상점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녀는 얼어붙은 길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녀는 척추를 몹시 다쳤기 때문에 그 발작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의사는 그녀가 소생하기 어려울 것이며, 만일 살아난다 해도 두 번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죽음의 침상이라고 생각되는 베드에 누워 있으면서 메리 베이커 애디는 성서를 펴들고, 거룩한 손길의 인도를 받아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읽었다.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사람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아들아,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노라……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어가거늘……」 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녀의 체내에 켜다란 힘과 크나큰 신앙, 크고 격렬한 회복력을 불러 일으켜 즉석에서 침대를 떠나 걸을 수 있었다. 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미시즈 애디는 또 이런 말을 했다. 그 경험이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찬스가 되었습니다……나는 모든 것의 원인은 마음 속에 있으며, 온갖 결과는 정신적 현상이라는과학적 확증을 잡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메리 베이커 애디는 신흥 종교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사제장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가 창시한 크리스찬 사이언스는 여성에 의해 창시된 유일하고 위대한 신교로서, 전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여러분 중에는 이 카네기 라는 자는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선전을 하고 있구나. 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분명히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신도가 아니지만, 해를 거듭함에 따라 생각하는 힘의 강함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35년 동안 성인 클라스를 가르쳐 온 결과, 나는 누구나 그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고민과 공포, 그밖의 온갖 질병을 몰아내고 그들의 생활을 일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 몇 백번이나 그렇듯 믿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아 왔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여기에 사고의 힘을 설명하는 믿기 어려운 변화가 나의 클라스 학생에게서 일어났던 실례가 있다. 즉 그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었느냐 하면, 그것은 고민 때문이었다. 이 학생은 다음과 같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매사에 고민했다. 나는 자신이 지나치게 말랐다든가. 머리카락이 빠진다든가, 결혼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모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혹은 좋은 어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실연을 당하지나 않을까. 선량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하고 모든 일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인식되어 있지나 않을까 하고 고민했으며, 어떤 때는 위암에 걸린 것처럼 생각되어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어 그만 두었다. 나는 몸 안에 가득 긴장을 감아 마치 안전핀이 없는 보일러처럼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점점 압력이 늘어나서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더니―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만일 당신이 심한 신경 쇠약증에 걸린 일이 없다면 단연코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왜냐하면 제아무리 대단한 육체적 고통이라도, 고민에 시달리는 마음의 고통에 비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신경 쇠약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과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사고를 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랐고 사람들을 피했다. 더구나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울부짖는 일도 있었다. 그날그날이 고민의 하루였다. 나는 누구에게나―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강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러다가 플로리다로 갈 것을 생각해 냈다. 장소가 바뀌면 마음도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기차에 올랐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주시면서 플로리다에 닿을 때까지는 펴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관광 시즌이 한창일 무렵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그곳의 호텔은 모두 만원이었으므로 어느 가라아즈의 침실을 빌었다. 나는 마이애미로 떠나는 부정기 항로 화물선의 일자리를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 해안에서 소일하게 되었다. 나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도 플로리다에 와 있는 편이 한층 더 비참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편지를 뜯어 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 아들아, 너는 집에서 천 5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네 고민의 유일한 씨앗을 몸에 지니고 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네 자신이다. 너에게는 몸이나 마음이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네가 당면한 사태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이런 사태에 대한 생각이 너를 해쳤던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생각하는 바와 같은 것이니라.』 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돌아오너라, 너의 병은 나았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화가 치밀었다. 이제껏 내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동정이었지 교훈이 아니었다. 나는 몹시 흥분하여, 그때 그 자리에서 두 번 다시 집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날반, 내가 마이애미의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던 중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 교회 앞에 이르렀다. 나는 그다지 갈 곳도 없었으므로 그곳에 들어가서 <너희 마음을 이기는 자는 한 도시를 함락시키는 자보다 강하니라>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신성한 하나님의 집에 앉아 아버지께서 편지에 썼던 것과 똑같은 사상을 듣고 있으려니, 내 머릿 속에서부터 쌓였던 먼지들이 씻겨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새물을 분명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참다운 광명의 빛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전세계와 그 위에 사는 전인류를 바꾸어 보리라고 생각했었으나―도리어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던 유일한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라는,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짐을 꾸려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1주일 후에는 다시 그전 일 자리로 돌아갔고, 4개월 뒤에는 실연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던 소녀와 결혼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5남매의 자녀가 있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뮬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주님의 은총을 입고 있다. 지난날 신경 쇠약으로 시달리던 무렵 나는 18명의 부하를 거느린 작은 백화점의 야경 주임이었는데, 현재는 450명의 종업원을 둔 후지 제조 공장의 이사이다. 이제 내 생활은 순조로우며, 사람과의 교제도 잘 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만끽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으면(이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마음의 카메라 초점을 맞추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러면 그것으로 만사는 OK인 것이다. 나는 정말로내가 신경 쇠약에 걸렸던 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사고력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어떻게 강한 힘을 미치는 가를 뚜렷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자신의 생각을 자기에게 반대되지 않도록 하고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나의 온갖 고민의 원인은 외부의 사태가 아니라, 내가 그 사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깨달은 순간,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 뒤에도 완전히. 이상의 이야기가 그 학생의 경험담이다. 나는 우리의 생활로부터 얻는 마음의 평하나 기쁨은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다만 우리의 정신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여기서 외부조건은 거의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를테면 하퍼스 페리에서 합중국의 병기고를 습격하여, 노예들에게 반란을 교사했다는 죄목으로 교수형을 받은 존 브라운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관위에 실려 처형대로 보내졌는데, 그의 곁을 따르던 간수는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브라운은 냉정했다. 그는 버지니아의 블루 리지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냐! 일찍이 내가 천천히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게 유감이다.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남극에 처음으로 도달한 영국인 로버트 스코트와 그 대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귀환 여행은 유사 이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식량은 떨어졌고 연료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나운 폭설이 열 하루 동안 밤낮없이 극지의 벌판을 휠쓸었고, 빙판 위에는 융기와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코트와 그 대원들은 이제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만일에 대비하여 상당량의 아편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복용하기만 하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ㅇ낳는 편안한 꿈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마취제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쾌활한 노래를 소리쳐 부르면서> 죽어 갔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8개월 후, 수색대가 그들의 동사체에서 발견한 유서에 의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용기와 평정의 창조적 사고력만 가지고 있다면 자기의 관에 걸터앉아 교수대로 끌려 가면서도 경치를 즐기 수 있을 것이며, 굶주림과 혹한으로 죽어가면서도 <유쾌한 노래>루 텐트를 가득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장님인 밀턴은 이미 3백 년 전에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 마음은 스스로의 터전이다. 그 안에 지옥에 천국을, 천국에 지옥을 만들 수 있다니.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도 밀턴의 이 말을 완전히 실증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열만하는 것―명예와 권력과 부귀를 얻었으나, 그러면서도 센트 헬레나에서 나의 일생에 있어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 고 했던 것이 . 그런가 하면 장님이며 벙어리인 헬렌 켈러는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고 단어하고 있다. 내가 반세기 동안의 생애에서 무엇이든 배운 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그 자신밖에 없다. 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에머슨이 그의 <<자신>>이라는 제명의 논문의 결론 가운데서 말한 것을 내가 되풀이하는 데 불과하다. 즉 정치적 승리, 땅값의 인상, 병자의 회복, 또는 오랫동안 떠나 있던 친구의 귀환, 그 밖의 외부적 사건은 인간의 정신을 앙양시키며 장래의 행복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된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정말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스토아 학파인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육체의 종양이나 농창을 제거하기보다는 마음 속으로부터 나쁜 생각을 제거하도록 힘쓰라.」 고 했다. 에픽테투스는 이미 19세기 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현대 의학도 이에 동의하리라고 본다. G 켄비 로빈슨 박사는 존 홉킨즈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의 5명 중 4명은, 감정적 긴장이나 압박감이 일부 원인이 되어 일어난 병태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기질성 질환에 있어서도 결국은 생활 및 그 문제에 대한 조절 불량에 기인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철학자 몽테뉴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인간들은 일어나는 일로써 상처를 입는 것보다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의견 때문에 더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의견은 우리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이 고민에 시달려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졌을 때, 그러한 때에는 의지의 힘에 따라 정신 태도를 변경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당신에게 단언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그대로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 방법을 당신들에게 전수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비결은 지극히 간단하다. 응용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윌리엄 제임즈는 일찍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행동은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행동과 감정은 둥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의지에 이해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는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우리는 직접적 지배하에 있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규제할 수가 있다. 」 바꾸어 말하면 윌리엄 제임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단지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즉석에서 바꿀 수 없으나, 행동을 변경할 수는 있다. 그리고 행동을 바꾸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바꾸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쾌활성을 잃었을 때, 자력으로 그것을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쾌할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미 그것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유쾌하게 말하고 또한 행동하는 것이다. 」 이 간단한 비결은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시험해 보라. 반면에 미소를 띠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크게 숨을 들이켜 무슨 노래라도 불러 보라. 만일 노래를 못하겠으면 휘파람이라도 불어라. 또 휘파람도 불지 못하면 부는 흉내만이라도 내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윌리엄 제임즈가 한 말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대단히 행복한 듯이 행동하면서도, 하찮은 일을 언제까지나 고민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것은 자연의 작은 기본적 진리의 하나로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있어 기적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캘리포니아의 어떤 부인도 일찍이 이러한 비결을 알았더라면, 그녀의 모든 고민을 24시간 이내에 제거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연만한 미망인다. 그것은 확실히 비통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한 듯이 행동하려고 할 것인가? 아니다. 그녀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뭐 여전합니다. 라고. 그렇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울먹이는 어조는 자신이 얼마나 슬픈 꼴을 당해 왔는지 모를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는 행복하다는 것을 억누르게 된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불행한 여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녀의 남편은 평생을 지낼 수 있을 만한 보험금을 그녀에게 남겨 주었고, 결혼한 자식득까지 있어서 언제든지 그녀를 모시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세 사위가 모두 구두쇠이며,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어리석은 불평을 하고 있다―사실 그들에게 몇 달씩이나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고, 그리고 딸들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그러면서도 자기는 <만년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단단히 돈을 넣어 두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자기 자신에게나 불행한 가정에 대해서나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만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을 불쌍하고 괴팍스럽고 불행한 처지에서 가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간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러려먼 우선 쾌활하게 행동하여, 그녀가 지금까지 자기 자신에게만 쓸데없이 기울였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내 친구 중에 인디애나주의 텔 시티에 사는 H. T. 잉글런트라는 사람이 ㅇ씨다. 그는 이 비결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그는 10년 정에 성홍렬이라는 병에 걸렸었다. 그런데그것이 낫게 되자 이번에는 신장염에 걸려, 의사라는 의사는 모조리 찾아 보았고 심지어는 <덜팔이 의원>에까지 진찰을 받았지만 도무지 완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다른 병까지 겹쳤다. 고혈압증이 된 것이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최고 혈압이 214나 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치명적이다, 게다가 더 악화될 경향이 있다. 재빨리 모든 일을 정리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보험료가 전부 불입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신께 나의 죄를 참회했다. 그리고 어두운 명상에 잠겼다. 나는 집안 식구들을 모두 슬픔에 잠기게 했다. 아내와 자식들도 실로 처참한 지경이엇고, 나 자신도 완전히 침울해졌다. 그러나 한 주일 가량 자기 연민에 잠긴 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너는 참 못나기도 했구나! 아직도 1년 쯤은 더 살지 모르는데, 어쩌자고 살아 있는 동안에 즐기려 하지 않는가?』 나는 어깨를 펴고 얼굴에 미소를 지어 만사가 순조롭다는 듯이 보이려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쩐지 어색했으나, 점차 쾌활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로써 가족들도 구할 수 있었지만, 나 자신도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우선 나는 처음에 그렇듯 생각을 가지려고 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끼었다. 그리하여 나의 병세는 하루하루 차도를 보여, 몇 개월 후에는 무덤 속에 잠들었어야 했을 내가 완전히 건강해져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혈압도 내려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하나의 뚜렷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고민하던 끝에 기력을 잃고 『에라 모르겠다』고 하였더라면 의사가 말한 대로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 태도를 바꿈으로써 나의 몸에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기로 한다. 만일 우리가 단순히 쾌활하게 생동하고, 건강과 용기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 사람의 생명이 구해졌다고 한다면, 어째서 우리는 조그마한 우울이나 의기소침으로 언제까지나 괴로워하는가? 또 쾌활하게 행동함으로써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오래 전에 나는 작은 책자 하나를 읽고 실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제임즈 알렌의 <<생각나는 대로>>라는 책이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한 구적이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바꾸게 되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과 사물도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게 되면, 그는 그것이 그의 생활의 외적 조건을 급속도로 변화시키는 것을 보고 놀리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끌어 당기지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만을 끌어 당긴다. 우리의 목적을 형성하는 <신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내부에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하는 모든 것은 그의 사고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그의 사고를 앙양함으로써 일어서서 정복하고 설취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만일 그의 사고의 앙양을 거부한다면, 약하고 비열하고 비참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구약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신은 인간에게 전세계의 지배권을 주었다. 이것은 실로 강대한 선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초국왕적 특권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일뿐이다―자신의 사고에 대한 지배, 자신의 공포에 대한 지배, 자신의 마음, 자신의 영혼에 대한 지배인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단순히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반응을 억제하는 것도 되어, 내가 마음이 내킬 때는 언제나 이 지배를 놀라 정도로 달성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리엄 제임즈가 한 다음 말을 잊지 않도록 하자. 「이른바 악의 대부분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내면 태도를 공포로부터 투지로 변화시킴으로써 축복할 만한 선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싸우자. 쾌활하고 건설적인 사고의 계획에 따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싸우자. 여기 그 계획이 있다. 그것은 <오늘만은>이라는 타이틀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사본을 수백 부나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지금부터 36년 전에 고 시빌 F. 페트릭이 쓴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우리 고민의 대부분을 없애고,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기쁨>을 무한히 누릴 것이다. ◆오늘만은 1. 오늘만은 행복하게 지내리라. 링컨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만큼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참으로 옳음 말이다. 사실 행복은 그 내부로부터 온다. 그것은 인간 외부의 사정은 아니다. 2. 오늘만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적합하도록 하자. 사물을 자기가 바라는 대로 하려고는 하지 않으리라. 가족, 사업, 요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그것에 적합하게 하자. 3. 오늘만은 몸조심을 하리라. 운동을 하고 몸을 아끼자. 영양을 섭취하자. 혹사하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 몸은 나의 명령에 따르는 완전한 기계가 될 것이다. 4. 오늘만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하리라. 무언가 유일한 것을 배워 보리라. 정신적으로 게으름장이가 되지는 않으리라. 무언가 노력, 사고, 집중을 필요로 하는 책을 읽기고 하자. 5. 오늘만은 세 가지의 방법으로 내 영혼을 운동시키리라. 남이 눈치 채지 않도록 뭔가 좋은 일을 하리라. 윌리엄 제임즈가 시사하듯이 수양을 위해 적어도 두 가지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을 일을 사자. 6. 오늘만은 상냥하기 지내리라. 될 수 있는 대로 활발한 것처럼 하고, 되도록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조용히 이야기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며, 아낌없이 남들을 칭찬하리라. 그리고 남을 비판하지 않고, 무슨 일이나 혐을 찾지 말고, 남을 훈계하거나 꾸짖지 않기로 하자. 7. 오늘만은 오늘 하루만을 살아 내기로 하자. 인생의 온갖 문제와 한꺼번에 맞붙으려고 하지 말라. 일생을 두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문제일지라도 12시간에 해 치워 버리자. 8. 오늘만은 하루의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다.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을 써 두기로 하자. 비록 그대로는 되지 않을지라도 모르지만, 어쨌든 해보리라. 성급함과 꾸물거림을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9. 오늘만은 반 시간 동안은 혼자서 조용히 휴식할 시간을 가져 보리라. 그 동안에 때로는 주를 생각하리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10. 오늘만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자. 특히 행복해지는 일, 아름다움을 즐기는일, 사랑하는 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자. 만일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정신적 태도를 기르고 싶다면, 여기에 그 법칙 제1이 있다―― * 쾌활하게 생각하고 또한 행동한다면 유쾌함을 느낀다. 13. 보복은 더 큰 괴로움을 가져오게 된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옐로우 스톤 파크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소나무며 가문비나무의 울창한 산림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석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조금 뒤 우리가 구경하고 싶어서 기다리던 동물, 이 숲 속의 공포인 큰 회색 곰이 휘황하게 빛나는 등불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원내의 호텔 식당에서 버려진 듯한 음식 찌꺼기를 먹기 시작했다. 산림 감독인 마틴 소령은 말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흥분한 여행객들에게 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회색곰은 서부의 다른 어떤 동물보다로 강하며, 이것과 맞설 수 있는 상대는 들소와 코디악 곰 정도라는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회색 곰이 숲 속에서 나온 어떤 한 마리의 짐승에게만은 잠자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광경을 보았다. 그 짐승은 스컹크였다. 곰은 그 앞발로 한 번만 치면 스컹크를 해 치울 수가 있다는 것을 알텐데도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곰은 그것이 별로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네 발달린 곰을 덫으로 잡은 적이 있다. 또 내가 어른이 된 뒤에는 뉴욕 거리에서 가끔 두 발 달린 스컹크를 본 일이 있는데, 어쨌든 나의 쓰디쓴 경험에 의하면 양쪽 다 그것들을 건드리면 손해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적을 증오하게 되면 적에게 힘을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수면, 식욕, 혈압, 건강, 행복에 관한 힘인 것이다. 우리의 적은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껑충거리며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말하자면 우리의 증오는 조금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에게 주야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고 있는 것이 . 「만일에 어떤 이기적인 사람이 당신에게 골탕을 먹이려 든다면, 그 사람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보복을 하려 해서는 안된다. 보복을 하여 든다면 상대편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몽상적인 눈을 하고 있는 이상가의 소리라고 생각될 지 모르나, 그렇지는 않다. 밀워어키의 경찰 본부에서 발간한 <<경찰 홍보>>에 실려 있던 것이다. 보복은 어떻게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거 가지 방법이 있다. 잡지 <<라이프>>에 의하면 그것은 건강까지도 해롭게 만드는 수가 있다고 한다. 「고혈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은 원한이다. 원한이 만성화하게 되면, 만성 과도 긴장과 심장병을 일으킨다.」 고 <<라이프>>지는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한 말은 단순히 올바른 도덕율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의학까지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곱 번을 70번까지도 용서하라.」 고 말했을 때 바로 그는 우리에게 고혈압, 심장병, 위암 등의 예상법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최근에 내 친구 하나가 심한 심장병에 걸렸는데, 의사는 그녀를 침대에 눕게 하여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떤 일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의사는 심장이 약한 사람이 노여움으로 발작을 일으키면 죽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죽는 수가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수년 전에 와싱턴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의 주민은 노여움의 발작 때문에 죽었다. 여기에 그 실증으로서, 와싱턴의 스포건 경찰 본부장 제리 스워타웃씨의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그곳에 카페를 경영하던 윌리엄 퍼케이버(68세)라는 사람은 요리사가 접시로 커피를 마시겠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화가 치밀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권총을 들고 쿡을 좇아갔는데, 총을 손에 든 채 심장 마비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검시관은 노여움의 발작에 의한 심장 마비사라고 단정했다.」 그리스도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얼굴 가짐을 좋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파했다. 나는―그리고 여러분도―증오와 원한 때문에 주름살이 많은,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부인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의 어떤 미용술도 관용과 친절과 애정의 정신이 없이는 그들의 용모를 아름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증오는 음식을 맛보는 능력까지도 파괴한다. 성서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사랑을 곁들인 가난한 야채 요리는 증오에 가득찬 기름진 고기 요리보다 낫다.」 우리의 적은 우리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지치고 신경 쇠약이 되며, 얼굴생김이 험악해지고 심장병에 걸려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비록 우리가 원수는 사랑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을가. 우리의 적에게 우리의 행복, 건강, 용모의 지배권을 내주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원수를 위해 난로의 불을 너무 많이 때지 말라. 그 불에 나 자신을 태우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원수를 <일곱 번을 70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견실한 사업에 관해서도 설명했던 것이다. 마침 여기에 스웨덴 웁살라의 게오르규 로나에게서 받은 편지가 있다. 그는 비엔나의 변호사였는데 제2차 대전 중에는 스웨덴으로 피난햇다. 그러나 수중에 무일푼이었으므로 일 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그는 수개 국어에 능통했으므로, 어디든 무역 회사의 통신원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역 회사에서는 전쟁 중이어서 그런 일거리가 없지만 성명만은 적어 두겠다는 대답이었다. 그 무렵에는 어느 회사를 찾아가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어떤 한 회사만은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내왔다. 「회사의 일거리에 대한 당신 생각은 잘못되어 있다. 우리 회사에선 통신원이 전혀 필요없다. 만일 필요하다 해도 당신을 채용한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당신은 우선 스웨덴 말을 만족할 만큼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편지는 오자 투성이이다.」 게오르규 로나는 그 편지를 잃고 노발대발했다. 오자 투성이라니, 무슨 말인가. 이 시골뜨기 녀석! 네 녀석의 편지는 오자 투성이가 아닌가! 게오르규 로나는 어떤 촌놈을 호되게 혼내 주려고 편지를 썼다. 그러나 잠깐만. 그는 반성했다. 어쩌면 이 사람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내딴에는 스웨덴어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모국어는 아니니까 미쳐 몰랐던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취직을 하기에는 좀더 스웨덴어를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멀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해도, 그의 호의에는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이건 한 번 인사 편지라고 보내기로 하자. 그리하여 개오르규 로나는 전에 썼던 것을 찢어 버리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귀사에서는 통신원이 필요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수고스럽게 회답까지 보내 주시어 감사합니다. 더구나 귀사의 사정을 잘 몰랐던 데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하오나 귀사에 서신을 올렸던 것은 조사를 했을 때, 귀사가 무역업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회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생의 편지에 문법상의 잘못이 있었던 데 대해서는 심히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스웨덴어를 공부하여 두 번 다시 잘못이 없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소생의 앞길에 친절하신 지도를 베풀어 주셔거 깊이 감사합니다.」 며칠 수, 게오르규 로나는 바로 편지의 장본인으로부터 내사를 청한다는 서신을 받았다. 로나는 찾아갔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게오르규 로나는 <부드러운 대답은 노여움을 푼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만한 성자는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그것이 바로 현명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도둑맞거나 모욕당하거나 하는 것은 그것을 잊어버리는 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나는 언젠가 한 번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인 존에게, 그의 아버지는 남을 원망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천만에요. 아버지는 자기가 싫은 사람들에 관한 일을 생각할 시간이 단 1분도 없으시답니다. 라고 대답했다. 옛날에도 성낼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 성내지 않는 사람은 현명하다는 말이 있었다. 전에 뉴욕 시장을 지냈던 윌리엄 잭 게이너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적색 신문의 눈의 가시가 되어 미친 사람에게 저격되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생명을 위해 싸우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매일 밤, 나는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 이 말은 한낱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유화와 광명이 과잉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염세주의의 연구>>의 저자인 독일의 대 철학자 쇼펜하우에르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자. 그는 인생을 기리켜 무익하고 끝없이 괴로운 경험이라고 햇다. 그가 길을 걷게 되면 마치 우울이 그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더욱이 그의 절망의 밑바닥에서 쇼핀하우에르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되도록이면 누구에게나 원한은 품어서는 안된다.」 나는 일찍이 윌슨, 하아딩, 쿠울지리, 후버, 루우즈벨트, 트루먼 등의 여섯 대통령이 신임한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치에게, 지금까지 정적의 비난 때문에 고민할 일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니오, 아무도 나를 무안을 주거나 골탕을 먹일 수는 없어요. 애당초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않으니까요. 우리 역시 애당초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우리도 골탕을 먹거나 난처해질 까닭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몽둥이나 돌은 나의 뼈를 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로는 결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옛부터 인간은 자기의 적에 대해 아무런 악의를 품지 않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바쳐 왔다. 나는 가끔 캐나다의 재스퍼 국립공원을 찾아가, 서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산경을 바라본 일이 있다.――이 산은 1915년 10월 12일, 독일의 조총부대 앞에서 성인처럼 죽어간 영국의 간호사 에디스 캬벨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캬벨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러면 대체 그녀는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 그녀는 벨기에의 집에서 영불의 부상병을 간호하고 식사를 제공하고, 그들을 도와 네덜란드로 도망하게 했던 것이다. 그 운명의 10월 어느 아침, 브류셀의 군사 교도소 내의 감방으로 영국인 종군 목사가 찾아와서 그녀에게 죽음의 준비를 시켰을 때, 에디스 캬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말은 지금도 쇠붙이나 돌에 새겨져 있다―― 「나는 애국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품지 않으렵니다.」 이로부터 4년 뒤, 그녀의 유해는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얼마 전, 런던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 그때 나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향해 서 있는 그녀의 동상 앞에 서서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 후세에까지도 오래 남아 있는 그녀의 명언을 읽었던 것이다. 「나는 애국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품지 않으렵니다.」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고 그걸 잊는 확실한 방법은 자기보다도 무한히 큰 어떤 주의에 몰두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당하는 모욕이라든가 적의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주의 이외의 온갖 것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18년, 미시시피의 솔밭 속에서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던 극히 극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린치였다. 즉 로렌스 존스라는 흑인 목사 겸 교사가 처참한 린치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년 전 나는 이 로렌스 존스가 창립한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적도 있다. 그 학교는 오늘날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건은 훨씬 전의 일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제1차 대전 중에 일어난 일인데, 미시시피 중부 지방에 독일 사람이 흑인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린치를 당할 형편에 놓여 있는 로렌스 존스가 바로 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한 무리의 백인들이 그의 교회 앞에 서 있자, 목사는 군중을 해야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인생은 투쟁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겨 내고 살아 가기 위해, 우리 흑인은 모두 갑옷으로 무장하고 용감하게 싸워야만 한다.」 <싸우자!> <갑옷!> 이 말만 들어도 충분하다고 단정해 버린 흥분한 청년들은 밤의 어둠을 뚫고 달려가, 폭도를 동원하여 교회로 되돌아와서 목사님이 목에 밧줄을 감았다. 그들은 목사를 1마일이나 끌고 가서 장작더미 위에 세워 놓고, 성냥에 불을 당겨 그를 달아매는 동시에 태워 죽일 준비를 했단.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태워 죽이기 전에 그 괘씸한 설교나 하게 하자. 자아. 떠들어 봐라! 어서! 하고 소리쳤다. 로렌스 존스는 장작더미 위에 서서 목에 밧줄을 감을 채 그의 생명과 주의를 위해 연설했다. 그는 일찍이 1907년에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훌륭한 성격, 학업성적, 음악적인 재능은 학생들과 학교 당국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그가 졸업했을 때 어떤 호텔업자가 그에게 일 자리를 제공해 주었으나, 그는 이것을 거절했다. 또 어떤 부호는 음악 수업을 위한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사절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나름의 어떤 <꿈 >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커 T. 와싱턴의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자기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몽매한 동포들의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부에서도 가장 벽지인 미시시피주 잭슨 남쪽 25마일 지점으로 갔다. 그는 회중 시계를 1달러 65센트에 저당잡혀 숲 속의 빈터에, 나무 그루터기를 책상 대신으로 하여 학교를 시작했다. 로렌스 존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에게 린치를 가하려고 기다리는 흥분한 군중에게 그가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년 소녀들을 가르쳐 선량한 농부로, 혹은 직공으로, 요리사로, 가정부로 훈련시키기에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였는가를 이야기했다. 또 그는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을 창립해 보겠다고 애쓰는 자기를 도와 준 백인들을 비롯하여, 그의 교육 사업의 발전을 돕기 위해 토지, 목재, 가축, 현금 등을 기부해 준 수많은 백인들의 공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뒷날 로렌스 존스는 이렇듯 길바닥으로 끌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그를 달아매어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는 주의로써 머리가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자신보다 더 큰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남을 미워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잠들과 다툴 겨를 따위는 없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 폭도들은 로렌스 존스가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를 위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적인 열변으로 호소하는 것을 듣고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전에 남군의 병사였던 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의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지금 말한 백인들은 모두 내가 알만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오해한 거야. 죽이기는커녕 도와 주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 노병은 모자를 벗어 돌려,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의 창립자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모였던 사람들로부터 52달러 기부금을 거두었다. < 나에게는 남들과 다툴 겨를 따위는 없다. 후회할 틈도 없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라고 말했던 사람을 위해. 에픽테투스는 이미 19세기 전 옛날, 우리는 스스로 뿌린 씨를 거둬들이며, 운명이란 것은 어떻게든지 우리가 저지른 악행에 보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그의 말을 빌면 다음과 같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비행에 대해 보상해야만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분개하지 않으며, 아무도 욕하지 않으며,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미국 역사상에서 링컨만큼 욕을 먹고, 미움을 받고, 또 배반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아든의 훌륭한 전기에 의하면 링컨은 결코 좋고 나쁜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꼭 해내야만 했을 경우, 그는 자기의 정적도 그것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못마땅하게 행동했을 경우에도 어떤 지위에 적합한 인물이라면, 링컨은 친구나 다름없이 그를 대뜸 그 지위에 앉게 했을 것이다……나는 그가 자기의 정적이라거나 그에게 반감을 가졌다거나 해서 인사 이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링컨은 그가 권력의 지위에 임명했던 많은 사람들――막클레런, 시워드, 스탄튼, 체에스 등으로부터 탄핵받고 모욕당했다. 그래도 하아든의 전기에 의하면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한 일로 해 칭찬받을 바는 못 된다. 또한 한일, 안한 일에 대해서 비난받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간은 조건, 환경, 교육, 습관 등을 비록하여 현재로부터 미래에 걸쳐 인성을 형성하는 한낱 유전의 소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링컨의 이 말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적과 동일한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특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의 적도 우리와 마찬가지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면 우리는 확실히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우 족 토인들의 기도인 오오, 위대한 신이여, 내가 2주일 동안 그의 가죽신을 신어 볼 때 까지는 그를 판간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소서. 라는 말에 동조할 만한 너그럼움을 갖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를 미워하기 보다는 우리가 바로 그들이 아닌 것을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모름지기 원수에게 비난과 원한을 퍼붓는 대신 이해와 동정, 원조와 관용, 기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매일 밤 성서의 1절을 읽든지 성구의 일부를 되풀이하고 나서, 식구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가정의 기도식>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났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곧잘 쓸쓸한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풀이하던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너희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너의들을 미워하는 이를 좋게 해 주며, 너희를 괴롭히고 나무라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나의 아버지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려고 애써다. 이는 그분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지상의 제왕이나 군주가 얻을 수 없었던 마음의 평화를.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 태도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법칙 제2―― *적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직을 하면 그들에게 상처를 입헤는 것보다 더 많은 성처를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의 웅숭깊은 마음을 배우라. 다시 말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일 따위를 생각하는 데는 단 1분도 허비하지 말 것. 14. 이렇게 하면 망은에 고민할 일은 없다 나는 최근 텍사스에서 망은 (忘恩)으로 분개하는 어떤 실업가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 불과 15분도 되기 전에 틀림없이 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그 사건이란 벌써 11개월 전의 일이었는데, 그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다. 나를 만나서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그는 35명의 고용인들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서 평균 3백 달러씩이나 주었는데도, 누구 하나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면 한 푼도 주지 말걸 그랬어! 하고 그는 노발대발했다. 성난 자에게는 독이 가득하다. 라고 공자도 말했지만, 그 사람은 온 몸에 독이 충만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가 불쌍하게 보였다. 그의 나이는 60세 전후였는데, 생명 보험 회사 통계에 의하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현재의 연령과 80세의 차에서 3분의 2보다 조금 많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도 운이 좋으면 앞으로 14,5년을 더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미 끝나 버린 일에 대해 한탄하고 괴로워함으로써 남은 수명의 근 1년을 허비해 버린 것이다. 어 든 나는 그가 측은해 보였다. 원한과 자기 연민에 대해 빠지는 대신, 그는 어째서 감사를 받지 못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고용인들을 싼 급료로 혹사해왔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들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선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급료의 일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너무나 잔소리가 많기 때문에 가까이하기가 거북스러워 고맙다는 인사를 망설였거나 또는 잊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어차피 세금으로 바치게 될 테니까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고용인들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버릇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사무엘 L. 존슨 박사가 감사하는 마음의 교양은 결실이다. 비천한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사람은 감사를 바란다는, 인간에게 흔히 있기 쉬운 과로를 범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간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되기까지 유명한 형사 변호사였던 사무엘 라이보이츠는 78명의 피고를 전기 의자로부터 구해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몇 사람이나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며, 몇 사람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왔으리라고 생각하는가? 한 번 알아맞춰 보라―― 그렇다,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스도는 어느 날 오후, 열 사람의 나병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몇이나 그분에게 사례를 했는가. <누가복음>을 보면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모두 달아나 버리고 없었다. 한 마디의 인사도 없이 가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당신에게 묻겠는데, 우리나 텍사스의 실업가니 우리가 행한 사소한 친절에 대해 그리스도가 받은 것 이상의 감사를 기대하도 좋겠는다. 그런데 이것이 금전상 문제가 되면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차알즈 스와브르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언젠가 한 번 은행 돈으로 주권을 산 지배인을 구해 준 일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돈은 입체해 주어 그가 교도소로 가는 것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장에는 지배인도 그에게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자기가 교도소로 가는 것을 구해 준 은인을 나쁘게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친척에게 백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치하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앤드류 카네기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만약 카네기가 다시 이 세상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이 친적이 자기를 헐뜯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 카네기는 자선 사업에는 3억 달러씩이나 기부를 하면서도 그에게는 겨우 백만 달러라는 하찮은 돈밖에는 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이 친척이 하는 불평인 것이다. 무슨 일이나 다 이렇다. 인간성은 언제나 이런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그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찍이 로마 제국을 통치한 최대 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우리는 어째서 현실적이 못 되는가. 그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은혜를 모르는 자를 만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별로 놀랍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다. 이런 사람이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이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망은에 대해 계속해서 불평을 말한다면 대체 그것은 누구의 죄인가. 그것은 인간성의 죄일까. 아니면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무지인가? 어쨌든 감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한다면 간혹 조금이라도 받게 될 때 그것은 놀라운 기쁨이 될 것이므로. 또 우리가 감사를 받지 않더라도 별로 화가 나지 않을 터이므로. 여기에 내가 이 장에서 밝히려고 하는 제1 포인트가 있다. 즉 인간이 감사하는 마음을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감사를 기대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마음 아프기를 바라는 것이 된다. 나는 뉴욕에 사는 한 부인을 아는데, 그녀는 언제나 고독하다고 호소하며 불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친척은 아무도 이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누가 찾아가기만 하면 몇 시간이나 앉혀 놓고, 어린 조카들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들이 홍역이나 귀앓이나 백일해에 걸렸을 때, 그녀가 얼마나 알뜰히 간호해 주었는가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그들을 양육했다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를 실업학교에 보내 주었다는 것, 또 한 아이는 결혼할 때까지 도맡아서 보살펴 주었다는 것들을 불평을 가득 담아 늘어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카들은 그녀를 찾아오는 것일까? 물론 가끔 의무적으로 방문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장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넋두리를 늘어 놓고 불평을 쏟아 놓으며 자기 연민을 하소연하기 때문에 그만 진저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조카들을 위협하거나 야단치거나 들볶아대는 것으로도 그들을 오게 할 수가 없게 되면 그녀가 가장 잘 쓰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심장 발작은 사실이었을까? 물론 그렇다. 의사는 그녀의 심장은 신경질이어서 고동 부정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도무지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녀의 발작은 감정적인 것이기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부인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애정과 친절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보은>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일 그녀가 이것을 요구하고 있는 한 결코 감사도 애정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세상에는 그녀와 같이 망은, 고독, 포기에 고민하는 부인이 허다하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애정을 구하고 있으나,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으려면 그것을 요구하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리고 보답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가 애정을 베풀도록 힘써야만 한다. 이것은 비실제적이며, 한낱 공상적인 이상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는 평범한 상식인 것이다. 우리가 동경하여 찾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우리 가정 안에서 그것이 일어난 것을 보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남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는 가난했으나, 두 분은 매년 아이오와주 카운실 브랍스의 고아원에 돈을 기부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고아원에 가 본 일도 없었으며, 서신 이외로는 아무에게서도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두 분은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그것은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분들은 어린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나온 뒤부터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께 약간의 돈을 보내 드리고, 그것을 두 분이 무엇이든 즐거운 일에 쓰시라고 했다. 그러나 두 분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내가 크리스나스를 며칠 앞두고 귀향하여 보니, 어버지는 그 돈으로 여러 자식들을 거느리고 식량과 연료 때문에 고생하는 마을의 미망인에게 석탄과 식량을 사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두 분은 이 선물을 보내고 큰 기쁨을 맛보고 계셨다――그것은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기쁨이다. 나이 아버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상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인은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데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남의 친절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친절을 베푸는 것은 우월의 표시이며, 그것을 받는 것은 열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제2포인트가 여기 있다. 만일 우리가 행복을 찾고자 하면, 감사라든가 망은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겠다는 마음의 기쁨을 위하여 그것을 주어야 할 것이다. 1만 년 전의 옛날부터 사람들의 어버이들은 그 자식의 망은을 끊임없이 분개해 오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마저도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둔다는 것은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라고 외쳤었다. 그러면 어재서 자식들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그것은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 망은은 마치 잡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감사는 장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비료를 주고 물을 주며 사랑으로써 기르고 또한 보호해야만 되는 것이다. 설사 우리 자식들이 은혜를 모른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감사이 뜻을 나타내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자식들이 우리에게 감사하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시카고의 어떤 사람은 자기 의붓자식의 망은에 대해 불평을 말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상자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40달러를 버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어떤 미망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시켜서 남에게 돈을 빌게 하여 데리고 온 두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그는 주급 40달러로 식비, 집세, 연료대, 의복값으로부터 빚의 이자까지 치러야만 했다. 그는 이 짓을 4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치하를 받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아내와 의붓자식들은 이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계부에서 괴로움을 끼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마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나쁜가? 의붓자식?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 쪽이 훨씬 더 비난받아야 한다. 그녀는 자식들의 장래에 <채무를 느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들로 하여금 <채무를 지고 출발>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자식에게 너희를 대학에 보내 주시다니 아버지는 참 무던하신 분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하는 듯이 말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로서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자식들에게 세상은 자기들의 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 주어, 이렇듯 험준한 인생 항로에 내보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들의 하나는 고용주로부터 <빚을>지려다가 마침내 교도소로 가는 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자식들의 장래가 가정 교육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미네아 폴리스에 사는 나의 이모 바이올라 알렉산더는 자식의 망은에 대하여, 조금도 불평을 말할 만한 원인을 갖지 못했던 부인의 한 예였다. 내가 어렸을 때 이모는 자기의 친정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으며, 또 시어머니도 한 집에 계시게 하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두 사돈 마나님들이 이모네 집 난로가에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이모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때로는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모는 그런 내색을 보인 일이 없다. 그녀는 그분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응석을 받아 주고 마음 편하게 해 드렸다. 더구나 이모께서는 자신의 누이가 여섯명씩이나 있었는데, 자기가 특히 어떤 훌륭한 일을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모는 자기가 두 노인을 맡은 것을 오로지 당연한 일리고, 올바른 일이며, 하고 싶기 때문에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모는 어떻게 지내는가. 그분은 벌써 20년 남짓 미망인 생활을 하고 있다. 슬하의 다섯 자녀들은 저마다 독립하여 그 어머니를 서로 못겠다고 다투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를 열렬히 사랑하며 어머니라면 그만이다. 이것은 <감사한> 생각에서 일까? 어림없는 말이다. 그것은 사랑, 순수한 사랑인 것이다. 즉 이 자녀들은 그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온정과 우아한 인간애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입장이 뒤바뀐 오늘날, 그들은 애정을 반대로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생각이 두터운 자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옛말에도 있는 「어린이의 귀는 밝다.」 라는 격언을 잘 기억하여 각별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 좀 더 설명하면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남의 친절을 흠잡게 될 때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이가 크리스마스에 보낸 이 행주 좀 봐요. 그 애가 짠 거라는데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는 군요. 결코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 말이 우리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르나, 이이들은 이상하게 귀담아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이다. 수이가 이것을 짜느라고 한 동안 애썼겠다. 정말 여간 고맙지 않아. 곧 고맙다는 편지를 써 보내야지.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칭찬과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망은에 대해 원한과 고민의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칙 제3 1. 망은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망은을 얘기하라. 그리스도는 하루에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 주었지만, 감사한 사람은 그 중에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2.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3. 감사는 하나의 배양된 특성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15.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백만 달러에 팔겠는가? 나와 헤럴드 아보트와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다. 그는 미주리주웨브 시티에 살고 있다. 그는 오랬동안 내 강연 사업의 매니저로 있었따.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캔자스 시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미주리주 벨턴에 있는 나의 농장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그 도중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여 고민을 물리치고 있는가 물어 보았다. 그때의 그의 이야기는 실로 감명깊은 것이었다. 그때의 이야기―― 나는 곧잘 고민했다. 그런데 194년 어느 봄 웨브 시티의 거리를 지나다가 어떤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이 나의 고민을 한꺼번에 내쫓아 주었다. 그것은 불과 10초 동안의 일인데, 그 10초 동안에 나는 지금까지의 10년을 두고 배운 것 이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배웠던 것이다. 2년 동안 나는 웨브 시티에서 식료 잡화상을 경영했는데 그 동안에 모아 두었던 돈을 전부 잃었을 뿐 아니라, 남에게 빚까지 지게 되어 그것을 갚는데 7년이나 걸렸다. 점포는 지난 주 토요일에 문을 닫아 버렸고, 나는 캔자스 시티로 일자리를 구하러 갈 여비를 빌려고 은행에 가는 길이었다. 나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초라했으며, 의기 소침해 있었따. 그때 문득 저쪽에서 다리가 없는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뛰었다. 그 사람은 로울러 스케이트용 바퀴를 단 작은 나무 판자 위에 앉아서 양손에 쥔 나무토막으로 줄곧 따을 찍어당기며 오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은 마침 거리를 가로질러 보도 위로 올라오기 위해 자기몸을 2,3센티 가량이나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판자를 비스듬히 들어올리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빙긋 웃으며 쾌할한 묵소리로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좋군요.』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은혜를 입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나에게는 두 다리가 있다. 걸을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자신의 자기 연민이 부끄러웠다. 만약 이 사람이 두 다리가 없으면서도 행복하고 명랑하여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다리가 멀쩡한 내가 그러지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절로 용기가 생겼다. 애초나는 은행에서 백 달러를 빌 생각이었지만 2백 달러를 차용할 자신이 생겼다. 나는 일 자리를 찾으려고 캔자스 시티로 갈 생각이라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캔자스로 가는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자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취직을 했다.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욕실 거울에 붙여 두고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면도할 때마다 그것을 읽기로 하고 있다. 구두가 없다 하여 울적해지면 길에서 만난 다리없는 사람에게. 나는 일찍이 에디 리켄이커에게 그가 다른 조난자들과 3주일 동안이나 구명땟목을 타고 태평양을 표류했을 때 당신이 체득한 최대의 교훈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때의 경험에서 배운 최재 교훈을 마시고 싶은 신선한 물과 먹고 싶은 식량만 충분히 있다면, 그 이상 아무것도 불행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타임>>지에 과달카날에서 부상한 어느 상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는 포탄의 파편으로 목에 부상을 입고 일곱 번이나 수혈을 받았다. 나는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는 쪽지에 적어 군의에게 보였다. 그러자 군의는 예스 라고 했다. 그는 다시 군의관에게 적어 보았다. 나는 말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예스>였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종이에 썼다. 그럼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요? 라고. 어째서 당신도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하고 반성하지 않는가. 여기서 자신을 반성하면, 틀림없이 걱정하고 있는 일이 비교적 별것도 아닌 무의미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거의 90퍼센트의 일은 옳고, 나머지 10퍼센트는 잘못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90퍼센트의 옳은 일에 마음을 집중하고 10퍼센트의 잘못을 무시하면 된다. 또한 우리가 고민하여 위암에 걸리고 싶다면, 마음을 10퍼센트의 잘못에 집중시켜서 보람있는 90퍼센트를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영국의 크롬웰파의 많은 교회에는 「생각하고 또 감사하라.」 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마음에도 새겨 두어야 한다. < 생각하고 또 감사하라.>우리는 감사해야만 할 온갖 것을 생각하고, 주어져 있는 은혜와 자비에 대해 주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난 스위프트 영문학 사상 가장 과격한 염세주의자였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비관하여 생일날에는 상복을 입고 단식을 했다. 그러나 이렇듯 세상을 더없어 했지만 쾌활과 행복이라는, 인간에게 건강을 주는 힘에 대해서는 찬미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의사는 닥터 식가, 닥터 평온, 닥터 명랑이다. 라고 말했다.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알리바바의 부보다 더 나은 재보에 대해 언제나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하루 종일 <닥터 명랑인>의 봉사를 공짜로 받을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신은 두 눈을 천만 달러에 팔겠는가? 그 두 다리를 무엇과라면 바꾸겠는가? 당신의 손은? 청력은? 자식들은 ? 가족은? 모든 재보를 집계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록펠러 포오드, 모건 들의 재산 전부를 준다 해도 당신이 가진 것을 팔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의 진가를 인정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쇼펜하우에르는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한다.」 라고 했는데, 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없는 것만 생각하는>경향은 지상에 있어서는 최대의 비극이다. 이것은 아마 역사상에 있었던 전쟁과 질병 이상으로 인상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존 팔머씨도 <인간적인 보통 사람에서 늙어빠진 불평가>가 되어 하마터면 엉망진창으로 만들 뻔했다. 나는 직접 그분에게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들어서 알고 있다. 군에서 돌아오자 나는 장사를 시작했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으며, 처음에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그것은 부속품과 재료를 입수할 수 없게 된 일이었다. 나는 폐업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고민을 했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잉ㄹ반적인 보통 사람에서 늙어빠진 불평가가 되어 버렸다. 난 우울해지고 까다로와져서, 그 무렵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하마터면 가정의 행복을 망칠 뻔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상이군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부끄럽지도 않으시오? 당신은 고생하는 것은 자기 혼자라고만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잠시 가게를 닫았다고해서 어떻다는 겁니까?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할 수도 있지 않소. 그래도 당신의 경우는 아직 운이 좋은 셈이오. 그런데도 늘 투덜거리시는 군요. 저는 당신이 부럽소. 저를 보시오. 손은 하나밖에 없고 얼굴이 절반은 총알로 날아가서 형편없소. 그렇지만 저는 불평이 없소. 당신도 늘 불평만 하시다간 장사도 날아갈 테고, 건강도 가정도, 친구도, 전부 잃게 되고 말 거요.』 이 한마디에 의해 몰락으로 치닫던 것이 멈추어졌으며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당장에 옛날의 나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했다. 내 친구 루실 블레이크는 한때 비극의 아슬아슬한 고비에 서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고 그 대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함으로써 행복해질 것을 배웠던 것이다. 내가 루실을 알게 된 것을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는 칼럼비아 대학의 신문학부에서 단편 소설 작법을 공부했었다. 9년 전 애리조나에 살고 있던 그녀는 실로 놀라운 쇼크를 받았는데, 그 때의 일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눈이 돌 정도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애리조나 대학에서는 오르간을 배우고, 마을에서는 스피치 강습회를 지도하고, 디저트 윌로우 목장에서는 음악 감상 클라스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파니, 댄스, 심지어는 야간 자동차 달리기에도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저는 졸도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문제는 심장의 탈이었어요. 의사는 『1년 동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는 그전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저를 위로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1년 간의 병상 생활――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저는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을까? 난 이런 벌을 받아야만 할 짓을 했단 말인가?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비탄에 잠겨 몸부림치고 마구 흥분했으며 반항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말한 대로는 실행했지요. 그런데 이웃에 사는 화가 루돌프가 이러한 말로 격려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1년 씩이나 병상에 누워 지내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게 되니 자기라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지요. 당신은 요 몇 달 동안 지금까지의 생활 이상으로 정신적인 성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가치 관념을 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감에 관한 서적들을 읽었지요. 어느 날 저는 라디오 평론가가 『인간은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도 가끔 들어 왔지만 그때의 그 말은 제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고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환희, 행복, 건강의 사상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을 전부 생각하도록 힘썼습니다. 고통이 없는 일을 비록하여 귀여운 아가씨며 저의 시청력,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독서 시간, 맛있는 음식, 다정한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워낙 쾌활했고, 거기다가 위문객이 많았으므로 의사는 그분들을 일정한 시간에 차례로 한 사람씩 병실에 들어오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9년이 지났지만 저는 지금 충실히 활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1년간의 병상 생활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애리조나에서 보낸 가장 귀중하고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그때 들인 매일 아침마다 자신으 행복을 헤아려 보는 습관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배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쨌든 저는 죽음에 직면하기까지 정말로 산다는 것을 몰랐던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친애하는 루실 블레이크여! 당신 스스로 깨닫지 못했는지 몰라도 벌써 2백 년 전에 사무엘 존슨 박사가 체득했던 교훈을 당신은 배운 것이다. 그때의 존슨 박사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온갖 일에 있어서 가장 좋은 면을 보는 습관은 1년에 천 파운드의 소득보다 낫다. 이러한 말은 직업적인 낙천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20년 동안이나 불안과 누더기옷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그 시대에 가장 뛰어난 문학가이 한 사람――고금을 통해 가장 저명한 좌담가로 알려졌던 사람이 한 말인 것이다. 로건 피어설 스미드가 말한 다음의 이야기는 짧으면서도 함축성이 있다. 인생에는 그 목표로 삼을 바가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는일, 둘째는 그것을 즐기는 일이다. 그런데 일류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이들만이 제2의 일을 성취한다. 당신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일일지라도 드릴로 가득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은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불굴의 용기와 감격이 담겨 있는 버그힐드 사알의 <<나는 보고 싶었다>>라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ㅇ다. 이 책은 50년 동안을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이 지낸 한 부인이 집필한 작품인데, 그 부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에게는 한 쪽 눈밖에 없다. 한 쪽 눈도 심한 상처 자국이 나서 왼쪽 눈 가장자리의 작은 틈새를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얼굴에 바싹 대고 되도록 한 쪽 눈을 왼편으로 돌려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에게 동정받기를 거절했으며, <특별취급>을 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렸을 때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돌차기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표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놀다 돌아간 뒤, 땅바닥에 엎드려 표적을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들이 놀았던 지면이 구석구석을 모조리 외어 두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뜀박질을 해도 남에게 지지 않게 되었다. 한편 그녀는 집에서 책을 읽는 법을 배웠는데, 큰 활자로 된 책을 보면서도 그 페이지가 눈썹에 닿을 만큼 가까이 갖다대야만 했다. 그러면서고 그녀는 두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땄으며, 미네소타 대학의 문학사, 칼럼비아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더 것이다. 그녀는 미네소타주 트와인 벨리의 한 쓸쓸한 시골에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뒤에는 남다코타주 스우 펄스에 있는 오거르타나 칼리지에서 신문학과 문학 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13년 동안이나 강의를 하였으며 부인 클럽에 나가서는 강연을 라디오를 통해서는 서적과 그 저자에관해 방송했다. 언제나 나의 마음 속에는 아주 장님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잠재해 있었다. 그런데 공포를 극븍하기 위해 나는 쾌활하고도 경솔에 가까운 생활 태도를 취했었다. 라고 그녀는 쓰고 있었다. 1943년 그녀가 52세 되던 해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즉 유명한 마요 진료소에서 수술을 받은 결과, 그녀는 지금까지보다 40배나 눈이 잘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새롭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그녀 앞에 열렸다. 이제 그녀에게는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일마저도 몸이 으쓱거릴 만큼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나는 접시 위에 하얗게 이는 비누거품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는 그 속에 손을 넣어 비누거품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그 거품 하나하나 속에 작은 무지개의 찬란한 색채를 볼 수가 있다.」 라고 그녀는 쓰고 있다. 또 그녀는 부엌 수채 위의 창문을 통해 펄펄 내리는 눈 속을 잿빛 참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도 써 놓았다. 비누의 거품이나 참새를 보고도 이렇듯 기쁨에 찼던 그녀는, 자기가 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맺고 있다. 「사랑하는 주여,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여, 나는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께 감사합니다.」 접시를 닦을 수 있으니까, 거품 속의 무지개가 보이니까, 눈 속을 날아가는 참새를 볼 수 있으므로 그녀는 주께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의 나라에 살면서도, 눈뜬 장님이어서 그것이 보이지 않고 그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괴로움을 해소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법칙 제4―― * 괴로움을 세지 말고 축복을 세어라! 16. 자신을 알고 자신이 되어라. 이 세상에는 그대와 같은 인간이 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나는 북캐롤라이나주 마운트 에어거에 살고 있는 에디스 얼렛 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어렸을 때 나는 몹시 신경질이었으며 부끄러움을 타는 편이었다. 나는 언제나 몸이 뚱뚱하고 볼이 남달리 부풀어 있었으므로 한층 더 뚱뚱보로 보였다. 어머니는 구식이어서 옷치장하는 일을 바로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큰 것을 입을 수 있어도 작으면 찢어진다』고 하시며 나에게도 그런 방침으로 옷을 입혔다. 어쨌든 나는 한 번도 파티에 가지 못했고 즐거운 일이란 조그도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도, 여러 아이들과 함께 과외 활동――운동조차 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병적일 만큼 내성적이었고, 나 자신을 남들과는 <다른>존재이며 언제나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 일곱 살 위인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이러한 나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남편의 친척들은 모두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나의 이상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어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나를 가깝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기가 죽어 내 자신 속에 움츠러들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으며 걸핏하면 화를 내게 되고 친구를 피했다. 점점 이 증세가 심해지자 현관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겁을 먹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모자라는 바보였다. 더구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있는 앞에서는 억지로 쾌활한 듯이 행동한 결과 연기 과잉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으므로 나중에는 오랫동안 비참한 생각을 했다. 마침내 나는 너무 비참해져서 산다는 것이 싫어졌으며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이 불행한 여인의 생활을 전환하게 했는가. 그것은 우연한 말 한 마디였다. 엘렛 부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떤 우연한 말 한 마디가 인생의 전부를 바꾸어 놓았다. 어느 날, 나의 시어머님은 그동안 어떻게 자식을 길러 왔는가를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을 하였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자기는 자기이어야 한다.』<자기는 자기어야 한다>는 그 말씀! 이것이 나를 돌변케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자신이 순을할 수 없는 테두리 속에 나 자신을 집어 넣으려고 하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연구하여 나의 됨됨이를 알고자 했고, 또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색채와 스타일도 연구하여 나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친구도 사귀려 했다. 그리고 부인회에도 가입했는데, 발표자로서 프로그램에 내 이름이 올랐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걸쳐 이야기하는 동안에 자신이 생겼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에 상상도 못했던 만큼 행복스럽다. 지금 나는 자식들을 키우는 데도 그간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며 배운 교훈인 <어떤 경우일지라도 자기는 자기이어야 한다>는 말을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심이어야 한다는 문제는 역사와 함께 오래이며 마치 인간의 생명과도 같이 보편적이다. 라고 제임즈 고든 길버트 박사는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역하다는 것은 많은 신경증, 정신 이상, 강박관념이 잠재적 원동력이 되어 있다. 안젤로 패크리는 아동 교육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는 「자기의 마음과 육체를 버리고 자기 이외의 어떤 다른 사람, 자기 이외의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특히 헐리우드에 유행하고 있다. 유명한 영화 감독 샘 우드는 자기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일은 야심 만만한 젊은 배우들에게 자기 자신이 되라고 설득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라나 티터의 2급품, 크라크 게이블의 3급품이 되고 싶어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운치는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와는 뭔가 다른 것을 바라고 있다. 라고 샘우드는 덧붙여 말하고 있다. 우드는 <<칩스 선생이여, 안녕>>,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영화를 감독하기 전에 오랫동안 부동산의 매매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세일즈맨으로서의 요령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실업계이든 영화계이든 사업의 요령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코 앵무새는 아닐 터이니까. 내 경험에 의하면 자기가 아닌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해고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최근 소코니 바큐엄 석유 회사의 인사담당 이사 폴 보인트에게 취직 지망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가 면접한 구직자는 6만명을 헤아리며 <<일자리를 얻는 요령>>이라는 저서까지 있으니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구직자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침착하고도 솔직해야 할 사람이 면접자의 비위에만 맞을 대답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야바위꾼은 원치 않으며, 위조 지폐를 탐내는 사람을 없는 것이다. 어떤 시의 전차 차장은 가까스로 이 교훈을 배웠다. 그녀는 본디 가수를 지망했는데, 불행하게도 용모가 시원치 않았다. 입은 너무 컸으며 게다가 뻐드렁니였다. 그래서 뉴어저지의 나이크 클럽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윗입술로 삐져나온 이를 감추려고 하였다. 그녀는 억지로 매혹적인 제스처를 써 보였지만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그녀의 앞길에는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이트 클럽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한 신사가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 여보시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당신의 거둘을 보고 있었는데, 당ㅅ닝 감추려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이가 마음에 걸리지요! 그녀는 당황했으나 상대는 말을 계속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지요? 뻐드렁니가 당신의 죄는 아니오. 구태어 감출 필요가 없어요. 마음껏 입을 벌리고 불러 오아요. 모두 당신이 조금도 부끄어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사랑하게 될 거요. 지금 당신이 감추려고 하는 이빨 덕분에 뒷날엔 운이 열릴지도 모르죠. 캐스 다레이는 이 사람의 충고에 따라 이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 뒤로 그녀는 청중에게만 마음을 썼다. 그녀는 마음껏 입을 버리고 목소리가 자라는 데까지 힘껏 보래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화와 라디오의 대스타가 되었으며, 이제는 그녀를 흉내내는 희극배우까지 있다. 윌리엄 제임즈가 보통 사람은 그들의 잠재적인 정신 능력의 10퍼센트밖에는 발전시킬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가능성에 비한다면 우리는 반각성 상태에 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자원의 극소 부분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그들의 한계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힘을 지니고 있으나, 대체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과 같지 못하다는 이유로 고민함으로써 단 1초일망정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자. 당신은 이 세상 가운데서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당신과 똑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당신과 동일한 인간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새로운 유전과학은 우리에게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22개의 염색체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22개의 염색체와 XY 염색체로 당신이라는 인간이 생긴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46개의 염색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당신이 이어받은 것은 온갖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람 샤인펠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염색체의 하나하나에는 수십 내지 수백의 유전 인자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라도 개인의 온 생애를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인간이란 이렇듯 놀라울 만큼 불가 사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결혼한 후에도, 당신이라는 특별한 인간이 태어나게 되는 확률은 30조에 겨우 하나 정도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30조 명이나 되는 형제 자배가 있었다 해도 모두 당신과는 다른 것이 된다는 거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낱 추정인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사실이다. 이에 관해 당신이 좀더 알고 싶다면 알람 샤인펠드의 <<인간과 유전>>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한 때 쓰라린 경험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미주리주의 옥수수밭에서 처음으로 뉴욕에 왔을 때,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 입학했다. 말하자면 나는 배우를 지망했던 것이다. 나는 이처럼 간단 명료하며, 더욱이 확실한 성공에의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째서 야심을 품은 청년들이 나처럼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지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어쨌든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당대의 명우 존 드류, 월터 함프덴, 오티스 스킨너 등이 그들의 예술을 연마했던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만을 흉내내어 놀라울 만큼 눈부신 그들의 예기의 총합체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정말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나 같은 미주리주 태생인 멍청이에게 자시 자신으로 돌아가라, 절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반성이 생기기까지 나는 줄곧 남을 흉내내기에 오랜 세월을 낭비했던 것이다. 그 쓰디쓴 경험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교훈을 주었을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너무도 우둔했다. 다시 한 번 같은 것을 배워야 했다. 수년 동안 나는 실업가를 위한 퍼블릭 스타킹에 관한 일찍이 나온 일이 없는 훌륭한 책을 저술하고자 마음먹었다. 나느 이 책을 집필함에 있어서 연기 연구에 대해 범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여러 저서의 아이디어를 빌어다가 정리하여, 온갖 아이디어를 다 담은 책 한권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퍼블릭 스피킹에 관한 수십 권의 서적을 사들여, 그것을 정리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여태껏 내가 만들고 있는 남의 아이디어의 뒤범벅은 지나치게 총합적이어서 재미가 없기 때문에, 실업가들이 읽어 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1년 동안의 노작을 고스란히 휴지통에 쓸어 넣고 새로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너는 데일 카네기가 되어라. 결점이나 한계를 염려한 것은 없다. 나는 어차피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총합체가 되기를 그만 두고, 다시 분발하여 내가 처음부터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던 일에 착수했다. 나는 자신의 경험, 관찰, 강영자 및 연설법 교사로서의 자신을 기초로 하여 퍼블릭 스피킹에 관한 교과서를 집필했던 것이다. 나는 윌커 롤리경 (진창길에 상의를 벗어 던져 여왕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했다는 그 풍류 시인이 아니라, 1964년, 옥스포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였던 동성 동명인이다)에 배웠던 것과 똑같은 교훈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두고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양의 서적을 쓸 수는 없을지라도, 나의 서적을 쓸 수는 있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어빙 비얼린이나 조지 거쉰에 따라 행동하라. 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버얼린은 이미 유명해져 있었지만, 거쉰은 베를린의 더러운 뒷골목에서 주급 35달러라는 박봉으로 생활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 작곡가였다. 버얼린은 거쉰의 재능에 감동하여, 그가 받고 있던 급료의 3배를 잴 테니까 자기의 음악 비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얼린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맡지 않는 편이 나을 거요. 당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버얼린의 2류품이 될 염려가 있소. 그러나 당신이 끝까지 자기 자신을 지킨다면 언젠가는 1류 거쉰이 되고 말 거요. 거쉰은 그 충고를 잊지 않고 차근차근 자시 자신을 그의 세대에 있어 특색있는 아메리카 작곡가로 다져 갔던 것이다. 차알즈 채플린, 윌 로저스, 메리 마가렛 맥브라이드, 진 오트리, 그밖에도 무수한 사람들은 내가 이 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훈을 배워야만 했다. 그들은 모두 나처럼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이것을 배웠던 것이다. 차알즈 채플린이 처음으로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감독은 그에게 그 무렵 인기가 독일의 희곡배우를 흉내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채플린은 그의 독특한 연기를 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보브 호프와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노래하면서 춤추는 연기를 했으나 이것은 마침애 헛고생으로 끝나고, 경구 만담을 하게 된 뒤로 인기를 얻었다. 윌 로저스는 여러 해를 두고 무대 뒤에 나와 앉아서, 말 한 마디없이 로프만 비비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유머에 대한 특수한 그의 재능을 발견케 하여, 로프를 요리조리 휘두르면서 지껄이게 된 뒤로 그는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메리 마가렛 맥브라이드는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 아일란드의 희극 배우가 되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미주리주 태생인 시골 여자가 되었을 때, 뉴욕에서 가장 인기있는 라디오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진 오트리가 텍사르 사투리를 감추고, 제법 도시인처럼 뽐내면서, 난 이래뵈도 뉴욕 태생이노라고 큰소리쳤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돌려 놓고 냉소했다. 그러나 그가 밴조를 안고 카우보이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의 앞길은 저절로 열려서 그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세계 제1의 카우보이가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새로운 그 무엇인 거이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이 당신에게 준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정신 분석에 의하면 온갖 예술은 자서전적이다. 당신은 당신의 것밖에는 노래할 수 없다. 또 당신인 것밖에는 그릴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결험, 환경, 유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당신은 자신의 작은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좋든 나쁘든 당신은 인생의 오케스트라에서 당신 자신의 작은 악기를 연주해야만 한다. 에머슨은 <자신>이라는 논문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교육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확신에 도달하는 시기가 있다――즉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다. 그러므로 좋든 나쁘든 자기를 주어진 운명으로 깨닫고, 광대한 우주에는 좋은 것들이 충만하여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가져다 주는 곡식은 그에게 주어져 있는 좁은 토지에서 그가 애써 가꾼 것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의 육체 안에 잠재하는 힘은 자연에 있어서도 새로운 것이며,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지만, 그것도 그가 이를 시험하기까지는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은 에머슨의 말이며,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 더글러스 마 크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대 만일 저 언덕의 소나무가 되지 못한다면, 산골짜기의 잡목이 되어라――그러나 여울가의 가장 좋고 보기 좋은 나무가 되어라, 관목이 되어라, 만일 나무가 되지 못하겠거든. 그대 만일 관목이 되지 못하겠거든, 작은 풀이 되어라, 그리고 길거리를 보다 아름답게 하라. 그대 만일 꼬치고기가 되지 못하겠거든 농어가 되어라―― 그러나 호수에서는 가장 팔팔한 농어가 되어라! 우리 모두가 선장이 될 수는 없다. 선원이 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모두가 무언가 할 일은 있을지니. 큰 일도 있을 것이며 작은 일도 있을 것이니,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대 만일 큰길이 되지 못하겠거든 아주 작은 오솔길이 되어라. 그대 만일 태양이 될 수 없으면, 별이 되어라. 실패와 성공은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 되더라고 가장 좋은 것이 되어라. 우리를 고민으로부터 해방하여 평화와 자유를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한 법칙 제5―― *남의 흉내를 내지 말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자신이 되어라. 17. 레몬이 있으면 레몬수를 만들라. 이 책을 집필하고 있을 때, 나는 어느 날 시카고 대학을 찾아가서 총장 로버트 메이나드 허친스에게 어떻게 그가 고민을 처리하고 있는 가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시어스 로버크 앤드 컴퍼니의 사장 고 줄리어스 로젠왈그의 충언인 <레몬이 있으면 레몬수를 만들라>라는 말을 명심하여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교육자가 지표로 삼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는 이와 정반대의 짓을 한다. 가령 인생이 그에게 래몬을 주면 그것은 내러리고는 나는 지고 말았다. 이것도 운명이다. 이제 기회는 없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명한 사람은 레몬을 받게 되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한다. 이 불행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런 상태를 개량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이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가 있을 것인가? 한평생을 인간과 그 잠재 능력에 대해 연구를 해 온 위대한 심리학자 알프렛 아들러는 인간의 가장 놀랄 만한 특성의 하나인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 라고 설명했다. 내가 잘 아는 부인으로, 이것을 참으로 훌륭하게 처리했던 사람이 있다. 그 녀의 이름은 델마 톰슨인데 지금도 뉴욕에 살고 있다. 다음은 그녀가 이야기해 준 재미있는 경험담이다. 전쟁 중 제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이브 디저트에 가까운 육군 교련소에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가까이에 있기 위해 그 곳으로 옮겼갔습니다면 그 지방이 싫었습니다. 아주 싫었습니다. 비참하기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지요. 남편은 모제이브 디저트에서 있는 연습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아, 나는 움막집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선인장의 그늘까지도 125도라는 심한 무더위이고 고작 이야기 상대라야 멕시코 인과 인디언뿐인데다가 그것도 영어는 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줄곧 바람이 그치지 않아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서걱거릴 정도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고 슬픈 생각이 들어, 양친께 편지를 써서 아무래도 참을 수 없으니 마음 먹고 집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곳에 있으려면 자라리 교도소가 낫겠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아버지의 회답은 뎌우 두 줄의 문구였어요. 하지만 나는 평생을 두고 그 말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그것이 나의 생활을 일변시켰으니까요. 두 사나이가 교도소의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 땅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나는 이 문구를 몇 번이나 되풀이 읽고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라고 결심했습니다. 별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러는 동안에 나는 토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편물이라든가 도자기데 대해 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도 팔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나에게 선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선인장, 유카, 요슈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풀인 마르모트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보고 사막의 일몰을 바라보기도 하며, 몇 백만 년 전 옛날 사막이 해상이었던 때에 남겨진 조개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런 놀라운 변화를 나에게 가져왔을까요. 모제이브 디저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한 것입니다. 나의 마음가짐을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비참한 경험을 나의 생애의 가장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에 의해 자극되고 흥분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도 흥분하여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나는 자신이 만든 교도소에서 창문을 통해 별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델마 톰슨씨! 당신은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5백 년이나 전에, 희랍인들이 가르쳤던 오래된 진리 <가장 좋은 일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하리 에머슨은 포스딕은 20세기에 와서 이것을 재론하고 있다. 행복은 대개의 경우에 있어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승리인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성취, 성공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 있는 데서 오는 승이이다. 나는 언젠가 유독한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 있었던 행복한 농부를 찾아 플로리다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런데 처음 그가 그 농장을 손에 넣었을 때는, 그는 좀처럼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질이 워낙 거칠어서 과수를 재배할 수도 없고, 돼지를 사육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었다. 거기에서 번성하는 것은 작은 가시나무와 방울뱀뿐이었다. 그때 그는 기발한 착상을 했단. 그것은 즉 이 쓸모없는 귀찮은 것들을 자산으로 바꾸는 일, 말하자면 방울뱀을 이용하는 것이었따. 기상천외라고 할까. 그는 방울뱀의 고기로 통조림을 제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 방울뱀 농장을 구경하러 오는 여행자들은 1년에 20만 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의 사업은 성공하고 있다. 독사의 이빨에서 뽑은 독은 항독용 독소로서 각지의 연구소로 보내졌으며, 그 가죽은 부인용 구두라든가 핸드백 재료로서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뱀고기의 통조림고 온 세계의 식도락주의자들에게 실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그림 엽서를 사서 그 마을 우체국에서 부쳤는데, 그 지방은 독 있는 레몬을 레몬수로 바꾼 사람을 기념하게 위해 플로리다주 <방울 뱀 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미국을 여행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을 발휘한 남녀>들을 가끔 만날 수가 있었다. << 신들을 배반한 열 두 사람>>의 저자 고 윌리엄 보리스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자본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짓이라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진실로 중요한 일은 손실에서 이익을 올리는 일이다.그러자면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 점이 분별있는 사람과 바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보리스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철도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후였는데, 나는 두 다리를 잃었으면서도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었던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벤 포트슨이라는 사람인데, 나와는 조지아주 아틀랜타에 있는 어떤 호텔의 엘리베이터 속에서 만났었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구석에 자리잡은 바퀴의자에 두 다리가 없는 사나이가 벙글벙글 웃으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어섰을 때, 그는 남에게 좀 비켜 주지 않겠는가, 부딪치면 안 될 테니까 하고 말했다. 참 미안합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쾌활하게 미소지으며, 의자를 움직여 나갔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그 쾌활한 불구자의 일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 그의 방을 찾아내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29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원 콩밭에 말뚝을 꽂으려고 호도나무를 베러 갔었지요. 자른 나무 막대기를 자동차에 싣고 돌아오는 도중, 갑자기 막대리 하나가 차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바로 급한 커브를 돌리려던 찰나 핸들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는 제방 밑으로 굴러 떨어져 나는 나무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 때에 척골을 다쳐 다리를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내 나이 스물 넷이었는데, 그 후로는 한 발자국도 걷지 못했습니다. 24세에 일생을 바퀴의자에서 보내야만 할 운명이 되다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떻게 그렇듯 쾌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원 천만의 말씀음 하고 그는 말했다. 한때는 화가 치밀어 올라 길길이 날뛰고 반항하며, 운명을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런 반항은 다만 자신을 괴롭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친전하게 마음을 써 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도 세상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사고를 무서운 불행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오, 이제 와서는 오히려 기뻐할 정도입니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그 쇼크와 원한에서 회복되가 그는 곧 새로운 세게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수한 문학과 친하게 되었고, 14년 동안 천 4백원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서적들은 그의 시야를 넓히고,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의 생활을 풍성하게 했다. 그는 또한 음악과고 친하게 되어 전에는 그렇듯 그를 지추하게 했던 교향악에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사물을 생각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이 세계를 지켜 보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의 대부분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독서한 결과 정치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공공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바퀴의자로 유세를 다녔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도 그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벤 포트슨은 조지아주의 국무장관이다. 지난 35년 동안을 나는 뉴욕에서 성인 교육에 종사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클라스의 많은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은 대단한 핸디캡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러한 학생들에게 국민학교도 변변히 나오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다. 그는 극빈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관을 사 주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어느 우한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그리고 삯일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밤 11시가 밤일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소년은 가까운 교회 클럽의 소인극에 출연하게 되었었든데, 그것이 재미 있어서 열중하여 퍼블릭 스피킹을 하려고 결심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인연이 되어, 30세 때 뉴욕의 주의원으로 뽑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직책을 수핼하기에는 준비가 모자랐다. 그는 솔직히 일체가 오리 무중이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 그는 찬부의 투표를 해야만 되었고, 길고도 복잡한 의안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촉토오족의 토어로 쒸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숲 속에 발을 들여 놓은 일도 없는데 삼림법 의원에 뽑히었고, 은행에 거래도 없는데 주립 은행법 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입법부를 사직하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게 쓰라린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듯 절망한 나머지 분발한 그는 하루에 16시간이나 공부하여, 무지라는 레몬을 지식이라는 레몬수로 바꾸어 보려고 결심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을 일개 지방 정치가로부터 국민적인 대인물로 바꾸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를 가리켜 <뉴욕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민>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껏 알 스미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 스미드는 독학으로 정치의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후에는 뉴욕주의 정치에 관한 최대 권위자가 되어, 네 번이나 뉴욕주 지사로 선출되었다――이는 아무도 이룩할 수 없었던 기록이다. 1928년, 그는 민두장의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칼럼비아, 하버드 등을 포함하여 6개 대학이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던 이 사나이에게 명예 학위를 하루에 16시간이나 공부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니체의 초인에 관한 법칙에도 궁핍을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자가 초인인 것이다. 라고 했다. 나는 성공자의 경력을 연구하면 할수록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실하기에 이른다. 실로 대대수의 사람들은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이 노력과 성공에의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윌리엄 제임즈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약점 그 자체가 뜻밖에도 우리들을 돕는다. 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밀턴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보다 뛰어난 시를 썼으며, 베토벤은 귀머거리였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헬렌켈러의 놀라운 생애 역시 장님과 귀머거리에 자극되어 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만일 차이코프스키가 의기를 상실하지 않고 그의 비극적 결혼에 의해 자살 직전까지 쫓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일 그의 생활이 슬픈 것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불후의 명작 교향곡 <비창>을 작곡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 만일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고난의 생활을 해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 저 불후의 소설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내가 심한 병약자가 아니었더라면 하고 지상에 있어서 인간의 과학적 관념을 일변시켰던 학자는 말하고 있다. 만일 내가 심한 병약자가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많은 일들을 성취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기의 약점이 생각지 못했을 정도로 도움이 되었던 사실을 고백한 차알즈 다윈의 말이다. 다윈이 영국에서 출생한 것과 같은 날, 또 하나의 어린아이가 캔터키주 숲 속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도 또한 자기의 약점에 의해 도움받았는데, 그의 이름은 에니브러햄 링컨이다. 만일 그가 상류 가정에서 자라났더라면,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학사 칭호를 받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더라면, 그가 게티즈버어그에서 연설한 불후의 명언은 그의 가슴 속에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두 번째의 대통령 취임 석상에서 행한 저 고귀한 문구를 입에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일찍이 인간의 통치자가 입에 담았던 가장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말―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려 만인에게 자애를…… 하리 애머슨 포스딕은 <<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이라는 그으 저서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북풍이 바이킹(해적)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생활에 대한 일종의 격려하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고도 유쾌한 생활, 안일 따위가 인간을 선량하게 만들며 행복하게 한다는 관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인간이라면, 푹신한 쿠션 위에 가만히 뉘어져서도 여전히 자기를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도 알겠지만 인간이 자기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면 성격과 행복을 선악과 무관심을 불문하고, 어떤 경우에 처한 사람에게도 찾아드는 법이다. 그러므로 <북풍이 해적을 만든다>고 하겠다. 가령 우리가 전혀 의기를 상실하고,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만한 희망을 잃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때일지라도 해 보아야 할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한 것만큼 얻고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두 가지 이유이다. 이유의 하나―우리는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유의 둘―비록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뒤를 보지 않고 앞을 보세 만든다. 그에 따라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적인 에네츠기를 해방시켜 우리를 분주하게 하며, 영원히 지나가 버린 일을 언제까지나 고민할 시간이라든가 기분을 없게 한다.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 오레 부르가 파리에서 연주하던 중 바이얼린 현이 뚝 끊어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부르는 세 줄로 그 곳을 마치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A현이 끊어져도 세 현으로 탈없이 끝마친다는 것이― 이것은 하리 에머슨 포스딕이 한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인생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 이상이다. 빛나는 인생인 것이다. 만일 나에게 그렇게 할 힘이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윌리엄 보리스의 말을 동판에 새겨 국내의 모든 국민학교 교실에 걸도록 하겠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자본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진실로 중요한 일은, 손실에서 이익을 올리는 일이다. 그러자면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 점이 분별있는 사람과 바보의 차이를 마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 지켜야 할 법칙 제 6―― *운명이 레몬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레몬수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18. 14일 동안에 고민을 해소하는 법 나는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렇게 고민을 극복했다>에 대한 가장 유익하고 독려가 되는 실화를 보내 준 사람에게는 2백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콘테스트의 심사원에는 동부 항공 회사 사장 에디 리켄베이커, 링컨 기념 대학 학장 스튜어트 W. 맥레란드, 라디오 뉴스 해설자 H.V. 칼덴본 등 세사람이었는데 응모 작품 중 두 편은 대단히 우수하여 석차를 정할 수 없었스므로, 상금을 2등분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중의 하나, 미주리주 스프림필드에 살고 있는 C.R. 버튼 씨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9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12세때에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19년 전에 집을 나가신 것이다. 나는 그런 뒤로 지금껏 어머니도 못 만났고 또 어머니가 데리고 산 두 여동생동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버리고 나간 지 3년 후 사고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 공동으로 읍에서 조그마한 카페를 경영하고 계셨는데, 장삿일로 여행 떠나신 틈을 타서 상대편 사람은 카페를 팔아 치우고 자취를 감취 버렸다.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급히 돌아오라고 전보를 쳤기 때문에 아버지는 황급히 돌아오시던 도중, 캔자스의 사리나스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내게는 고모가 두 분 계셨는데 가난하고 병 중인데다가 연만하셨는데도 우리 삼형제를 맡아 주셨다. 그렇지만 나와 동생들은 누구에게나 따돌림을 당했다. 모든 사라에게 구박을 받았다. 나는 부모없는 자식으로 불리거나, 고아 취급을 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일이 얼마 안 있어 정말이 되었다. 나는 잠시 동안 마을의 어떤 가난한 가족과 함께 지냈는데, 불경기로 주인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나를 길러 줄 만한 여유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에서 11마일 떨어진 농잘의 로프틴 부부가 나를 맡아 주었다. 로프틴씨는 70세나 된 노인이었는데, 대상 포진으로 자리에 누워 지냈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하라는 대로 말만 잘 들으면> 자기 집에 두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세 가지 규칙은 나의 바이블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엄중히 지켰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처음 주일은 집에 돌아오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집적거리며 코가 크다고 놀려 대는가 하면, 나를 벙어리라는 둥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욕을 했던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싸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로프틴씨는 이런 말을 했다. 『싸움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싸움을 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잊지 않도록 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학교 교정에서 한 줌의 닭똥을 내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때는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실컷 그 아이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서 친구가 두서넛 생겼다. 그들은 그 녀석이 나쁘다고 나를 두둔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미시즈 로프킨이 사 준 새 모자를 신바람이 나서 쓰고 다녔는데, 하루는 커다란 여학생이 와서 모자를 와락 낚아 채더니 그 안에 물을 넣어 형편없이 말들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네 돌대가리를 적셔 준 거야. 혈액 순환이 아지도록 말이야.』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집에 와서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시즈 로프틴은 나를 달래며 차근차근 타일러 주었다. 그래서 나의 고민과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며, 나의 적을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랄프야, 네가 그 아이들한테 흥미를 가지고 무엇이든 그 애들이 좋아할 일을 해 준다면 그 아이들은 결코 너를 구박하지도, 고아라고 욕하지도 않게 될 게다.』나는 이 충고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으뜸가는 성적을 올렸으나 아무도 나를 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되도록 여러 아이들을 위해 일했기 문이다. 나는 남의 작문을 거들어 주었고 연설의 초고를 전부 써 준 일도 있었다. 나와 같은 반에 어떤 친구는 나한테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자기 어머니에게는 주머니쥐를 잡으러 간다고 하고는 로프틴씨네 농장으로 찾아와 개를 헛간에 매어 놓고, 나에게 학과의 예습과 복습을 받기도 하였다. 또 어떤 친구에게는 책의 비평문을 써 준 일도 있으며, 한 여학생에게는 여러 날 밤을 수학 지도를 한 일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이웃에는 사신이 찾아왔다. 늙은 두 농부가 죽었으며 한 여자는 남편을 잃었따. 그러자 네 세대 중에 남자라고는 나 하나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이 미망인들을 2년 동안이나 도와 주었다. 학교에 오고 가는 길에 그녀들의 농장에 들러서 나무도 잘라 주고 우유도 짜주며,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였다. 나는 이제 미움을 받기는 커녕 칭찬이 자자하게 되었으며, 어느 집에서나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해군에서 돌아왔을 는 진심으로 크게 환영해 주었다. 내가 돌아오던 그날에는 2백여 명의 농부들이 찾아와 주었으며, 그 중에는 20마일 밖까지 차를 몰고 온 사람도 있었따. 그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나를 생각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남을 돕기에 바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을 거이다. 그리고 최근 13년 동안 <아버지없는 자식>소리를 들어 본 일이 없다. 버어튼씨여, 장하다! 그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또 고민을 극복하여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알고 있다. 와싱턴주 시애틀의 고 프랭크 루프 박사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23년 동안이나 통풍으로 누워 지냈다. 그런데 시애틀 스타지의 스튜어트 화이트 하우스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가끔 루프 박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처럼 이타적이며, 그렇게 해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어떻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추측이 있다. 그는 그것을 불평과 남의 결점을 찾는 것으로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자기 연민에 빠져 언제나 주목의 초점이 되어, 남들이 그의 뜻을 받들도록 요구하는 데 의한 것일까? 아니다――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영국의 황태자처럼 <나는 봉사한다>는 말을 좌우면으로 삼음으로써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는 병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주소 성명을 모아 그들에게 위문과 격려 편지를 보냄으로써 자기와 다른 사람이 모두 쾌활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또한 환자들을 위한 서신 교환회를 조직해서 서로 간에 편지를 쓰게 하여 마침대는 그것을 <농거협회>라는 국제 조직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는 병상에 있으면서도, 1년에 평균 1만 4천통이나 되는 편지를 썼으며, 외출할 수가 없는 병자들을 위해서는 라디오며 서적들을 갖게 해줌으로써 수천 명의 환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루프 박사와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커다란 차이는 어떤 점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다. 그는 자기 자신보다도 훨씬 고귀하며, 훨씬 더 의이있는 관념에 따라 이용되고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버나드 쇼오가 <세상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조금도 힘을 보태 주지 않는다도 불평을 말함으로써, 짜증과 불만으로 편안한 날이 없는 자기 중심적인 소인배들>이라고 평한 사람들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다음에 든 예는 위대한 정신병학자 알프렛 아들러가 발표한 놀라운 보고이다. 그는 언제나 환자에 대하여 이 처방대로만 하면 14일 동안에 반드시 완쾌합니다――그것은 즉, 날마다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 줄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하고 말해 왔다. 이 말만 가지고는 신용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그의 명저 <<인생이 의미하는 것>>에서 조금 인용해 보기로 한다. 우울증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오랜 기간의 계속적인 분노, 비난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보호와 공정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는 자기의 죄에 따라 그것이 거부되고 있는 듯한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울증 환자의 첫째 기억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긴 의자에 눕고 싶었으나, 형이 그곳에 있었으므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형은 의자를 양보해 주는 것이었다.」 또 우울증 환자는 가끔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복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의사가 가장 주의해야 될 일은 그들에게 자살할 구실을 주기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나 자신은 그들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제일 조처로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면 결단코 하지 말라>고 제언하기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것 같지만, 실은 갖은 장래의 근원을 찌른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우울증 환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면, 아무도 원망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분풀이를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을 보러 가고 싶으면 가도록 하라. 놀러 가고 으면 그러도록 하라. 또한 도중에 싫어지면 그만 두라. 그런데 이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가장 좋은 상태이다. 더구나 나는 신에 가까운 존재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우월감을 찾는 이들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그의 생활 형태에 쉽사리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비난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그에게 동의한다면 그들을 지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법칙은 그들의 불안을 제거한다. 그르므로 나의 한자 중에는 자살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환자들은 하지만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일이 별로 없다.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런 대답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예기하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러시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도록 하는 거죠. 때로는 또 나는 종일 자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무작정 좋다고만 한다면 환자편이 불만스러워지는 것을 알고 있따. 그리고 이것을 거부한다면 환자가 펄펄 뛰고 야단을 치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동의한다. 이것이 제1의 법칙이다. 다음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생활 방식에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처반대로만 하시면 14일 동안 반드시 완쾌하게 됩니다――그것은 남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의 대답은 매우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일쯤은 문제없다. 난 한평생을 해 왔으니까. 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를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졸다. 그것인 건강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다음날 나는 다시 그들에게 물어본다. 어제는 대 말대로 하셨습니까? 그 대답인 즉 잠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려서. 물론 이러한 일들은 모두 평온하고도 매우 정다운 태도로 할 일이며 고압적이러서는 안된다. 어떤 환자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안되겠군요. 나는 고민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민을 계속하는 게 좋겠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 관한 일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째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 건가요? 그들은 조금이라도 나를 기쁘게 해주려 하지 않는데요. 나의 대답인 즉 그것은 당신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후회합니다. 그러나 나는 말씀하진 것을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환자는 실로 드물다. 나의 모든 노력은 환자의 사회저인 관심을 증대시키는 일에 기울여지고 있다. 그들 병의 참다운 원인은 협동 정신이 모자라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것을 의식케 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과 평등하고도 협동적인 입장에서 결합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그들은 완쾌된다―종교에 의해 부과된 가장 중요한 일은 언제나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인간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위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온갖 인생의 실패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요구하는 바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보다 좋은 협동자가 되라,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라,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는 참다운 반려가 되라는 것이다. 아들러 박사는 하루 한 가지씩의 선행을 역설하고 있다. 선행이란 무엇인가? 예언자 마호멧에 의하면 선행이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오게 하는 행위이다. 라고 했다. 어째서 매일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그 행위자에게 놀랄 만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는 것으로 오뇌, 공포, 오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인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비서 양성소를 경영하고 있는 윌리엄 T. 문 부인은 자기의 고민을 몰아 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준다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 두 주일도 걸리지 않았따. 그녀는 아들러 박사에게 한 걸음, 아니 열 세 걸음이나 차를 두었다. 그녀는 두 주일 동안이 아니라, 단 하루에 두 고아를 기쁘게 해 줄 것을 착안하여 자신의 고민을 몰아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문 부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5년 전 12월 나는 슬픔과 자기 연민의 감정에 싸여 버렸다. 수년 동안의 행복한 생활을 보낸 후 나는 남편을 잃어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짐에 따라 나의 슬픔을 더해갈 뿐이었다. 나는 지금껏 혼자서 크리스카스를 지내 본 일이 없었으므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하자고 초대해 주었으나, 나는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크리스마스 이브가 닥쳐옴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누구든지 감사할 일은 있는 것이지만, 정말 나는 많은 일에 감사 했어야 되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오후 3시에 사무소를 나와 이렇다 할 생각도 없이 5번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자기 연민과 우울함을 털어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큰 거리는 명랑하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과거의 즐거웠던 모든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쓸쓸하고 공허한 아파트로 돌아가다니,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 지 몰랐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이나 정처없이 걷는 동안에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틈에 버스 종점에 와 있었다. 전에도 나는 곧잘 남편과 함께 야릇한 모험심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는 버스에 탔던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그래 나는 맨 먼저 눈에 띄는 버스에 올라탔다. 허드슨 강을 건너 한참 가니까 차장이 『종점입니다. 아주머니』하는 바람에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 마을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어쨌든 다음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택가를 걸어 보았다. 그러다가 교회 앞은 지나치려는데 <고요한 밤>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 오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 안에는 오르간을 치는 사람이 혼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찬란하게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나는 광채는 그 주위의 장식들을 달빛에 춤추는 무수한 별인 것처럼 생각되게 했다.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는――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는 탓도 있어서 나에게 졸음을 가져왔다.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있었으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가 문득 눈을 떴을 때 나는 자신이 어디 있는 지 알지 못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눈앞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러 온 듯한 두 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 아이는 나를 가리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데리고 왔는지도 몰라』하는 것이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보자, 두 아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괜찮아』하고 말하여 그들이 마음을 놓게 했다. 그들은 모두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엄마는?』하고 물어 보았다. 『우린 엄마도 아빠도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보다도 훨씬 불쌍한 두 어린 고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자, 자신의 자기 연민과 슬픔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여 주고, 드러그스토어에 데리고 가서 캔디와 선물을 사 주었다. 그러나 보니 나의 쓸쓸함은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사라졌다. 두 고아는 수개월 만에 나에게 행복과 망아(忘我)의 감정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알게 되었따. 나는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부모님의 사랑과 자애로움에 넘쳤던 것을 주께 감사했다. 그 두 고아들은 내가 그들에게 해 준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느 행복이란 전여되는 것임을 자각했다. 그러므로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남을 돕고 사랑을 줌으로써 고민과 슬픔과 자기 연민을 극복하고 전연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그때분만이 아니라 그로부터 줄곧 그러하다. 나는 건강과 행복 후에 자기를 망각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 한권을 엮을 수 있다. 예로서 미해군 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부인 중의 한 사람인 마가렛 테일러 이예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예츠 부인은 소설가인데, 그녀의 소설보다고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던 그 무서운 날 아침, 그녀의 신변에 일어났던 실화가 더 재미있다. 이예츠 부인은 워낙 심장이 나빠서 약 1년 전부터 자리에 누워 있었따. 그녀는 하루에 12시간을 침대에서 지냈다. 그리고 일광욕을 하러 뜰까지 나오는 것이 그녀의 최대의 여행이었다. 그때조차도 그녀는 하녀의 팔에 매달려서 걸어야만 했다. 그 무렵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런 환자로 지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노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만약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나의 자기 만족을 동요시키지 않았던들, 나는 지금과 같은 새 생활로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도무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무질서했다. 바로 우리 집 근처에도 폭탄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진동으로 나는 침대에서 내동댕이쳐졌다. 군 트럭들이 육해군의 군인 가족들을 학교로 피난시키기 위해 허캄 비행장 스코필드 기지 등지로 급행했다. 적십자사에서는 피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여분의 방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적십자 사원들은 내가 침대 머리맡에 전화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에게는 정보 교환소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육해군의 처자들이 어디 수용되어 있는가를 조사했다. 한편 군인들은 적십자로부터 그들의 가족에 관한 소식은 나에게 문의하라는 통지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러는 동안 남편인 로버트 라레이 이예츠 함장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들 남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부인들은 격려하는 한편, 수많은 전사자들의 미망인을 위로 하려고 애썼다. 아무튼 그 때의 전투로 2117명의 해군 장병이 전사했으며, 960명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처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전화에 응답했지만 그러는 동안 몹시 바빠졌기 때문에, 흥분한 나머지 신병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 이상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 정신이 팔려 잣니의 일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매일 밤 정해진 8시간의 수면 시간 이외에는 두 번 다시 침대에 눕지 않았다. 만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을 반 폐인으로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침대 생활은 별로 괴롭지는 않았다. 정성껏 보살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때문에 나는 모르는 사이에 다시 일어날 기력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만 피습은 미국 역사상에 있어서 최대 비극의 하나였으며, 나 개이에 한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듯 무서운 위기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초자 못했던 힘을 주었다. 자신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목절을 주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해 머리를 쓰거나 생각할 시간이 전혀 없어져 버렸다. 정신병 전문 의사를 찾아가는 사람의 3분의 1은 마가렛 이예츠가 했던 대로만 한다면 아마 완쾌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흥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칼융이 한 말이다. 나의 환자의 3분의 1은 임상적으로는 진정한 신경증이 아니다. 그들의 병은 인생의 공허와 무감각이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인생을 공짜로 태워 달라고 하지만 차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잘 것 없는 무감각하고 무익한 인생을 이끌면서 정신병 전문의에게로 서둘러 가는 것이다. 보트를 놓치고 부두에 멍하니 선 채, 그들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비방하면서 세사은 그들의 자기 중심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얘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아를 만나면, 아마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또 그때 진주만에 있었다면 마가렛 이예츠와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다르다. 나는 여느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며 하루 여덟 시간을 흥미없는 지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극적인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어떻게 하면 남을 돕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겠는가. 어째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단 말인가? 그럴 듯한 질문이다. 이제 대답하리라. 당신의 생활이 아무리 평번할지라도 당신은 날마다 누구든지 만난텐데 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인가. 아니면 그들의 생활 상태를 알아보려 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편 배달부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그는 매일 수백 마일을 결으면서 지집마다 우편물을 마누의 주지만 당신은 한 번이라도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말해 본 일이 있는가? 혹은 다리가 얼마나 피로한지, 일이 지루하지나 않느랴고 물어 본 적이 있는가? 식료품 가게의 점원, 신문 판매원, 거리의 구두닦이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그들도 모두 인간이다――고민, 꿈, 야심으로 가슴이 벅찬 인간인 것이다. 그들은 또 누구에겐가 그것을 털어 놓고 싶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러한 기회를 주어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이나 그들의 생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나는 지금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 조력하기 위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라든가 사회 개력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내일 아침에 만나는 사람부터 이 일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에게 어떠한 이익이 있을 것인가. 보다 큰 행복! 보다 큰 만족과 자존의 감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계발된 이기주의>라고 불렀다. 또 조로아스터교는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환희이다. 그것은 베푸는 이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한다. 라고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를 간단히 요약하여 남에게 선을 행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뉴욕의 심리학 서비스 센터의 관장 헨리 C.링크는 근대 심리학에서의 발견 가운데, 자아 실현가 행복에 대해 자기 희생과 규율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실증한 것만큼 중요한 발견은 없다. 라고 쓰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자기 자신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를 만들어 준다. 어째서? 나는 언젠가 예일 대학의 윌리엄 라이온 펠프스 교수에게 그가 어떻게 이것을 성취했는가를 물어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호텔이라든가 이발소, 그밖의 상점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상냥한 말을 걸기로 하고 있다. 그들을 기계 안에 있는 한 개의 톱니바퀴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이야기를 걸도록 하는 것이다. 상점의 점원에게는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든가, 머리카락이 곱다든지, 이발사에게는 하루 종일 서 있자면 다리가 퍽 피곤하겠다든지, 지금까지 대략 몇 명 정도의 머리를 깎아 주었느냐 하고 물어 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이 흥미를 가져 주면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또 수하물을 운반해 준 역부에게는 악수를 하여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유쾌한 기분으로 일에 힘을 내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몹시 무더운 날이었는데, 뉴헤이븐 철도 식당차로 점심을 먹으로 갔었다. 차내는 만원이었다. 가마솥처럼 뜨거웠고 서비스는 더디었다. 그러다 웨이터가 겨우 메뉴를 가지고 나 있는 곳으로 왔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저 더운 조리실에서 일하는 쿡은 오늘 같은 날은 대단하겠군요.』라고. 그러자 웨이터가 거친 말투로 뭐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가 겅이 난 줄로만 생각되었다. 『정말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오셔서 음식 맛이 나쁘다, 서비스가 나쁘다, 덥다, 값이 비싸다는 둥 불평만을 말씀하십니다. 저는 19년 동안을 두고 그런 투정만 들어왔습니다. 저 가마솥 속 같은 곳에서 일하는 쿡에세 동정해 주신 분은 오직 선생님뿐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손님이 늘게 되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웨이터는 내가 흑인 쿡을 철도 조직 안에 있는 한 개 톱니바퀴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한 데 대해 놀랐던 것이다. 인간들은 모두 사람 취급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또 나는 거리에 귀여운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언제나 그 개의 귀여움을 칭찬하여 준다. 그리고 나서 조금 가다가 뒤를 돌아보게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은 개를 어루만지거나 쓰다름거나 한다. 나에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도 또한 다시 한 번 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에 있을 때의 일인데, 어떤 양치기가 크고 영리한 감시견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 개의 훈련법을 물어 보기도 했다. 헤어져 오면서 어깨 너머로 돌아 보았더니, 개는 앞발을 들오 주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양치기는 흐믓한 듯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양치기와 그 개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양치기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었다. 개도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나도 기뻤다. 역부와 악수를 한다든지, 무더운 조리실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동정을 베푼다거나 개를 칭찬하거나 하는 사람이, 성미가 까다로와 지나간 일을 오래도록 걱정하여 정신병 전문의를 찾거나 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절대로 .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에게 장미꽃을 바친 손에는 언제나 남은 향기가 있느니라.」 예일 대학의 빌리 펠프스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몸소 실행했기 때문이다. 남성 독자는 별로 재미가 없을 테니까. 다음의 일절은 넘겨 버려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잔걱정이 많은 불행한 소녀가 어떻게 하여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을 수 있었던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소녀는 지금은 이미 노파가 되어 있지만, 수년 전에 나는 이 노인 부부의 집에서 하룻밤의 손님이 되었던 일이 있다. 나는 그 마을에서 강연을 했는데, 다음날 아침 그녀는 자동차를 몰아 나를 50마일이나 떨어진 뉴욕 센트럴 철도의 본선 역까지 전송해 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친구를 사귈 수 있느냐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녀는 카네기씨, 난 아무에게도, 심지어는 남편에게까지도 고백한 일이 없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필라델피아 사교계 인명록에도 올라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소녀 시절서부터 철들 나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엇보다도 슬펐던 것은 집이 가난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다른 친구네처럼 훌륭한 파티 같은 것을 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내 옷은 언제나 싼 것뿐인데가가, 그것도 작아서 몸에 맞지 않았으며 유행에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웠고 계면쩍었으며 밤에 잠자리에 들면 곧잘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절망한 나머지 생각한 것은, 디너 파티 같은 데서의 파트너에게 그의 경험, 의견, 장래에 대한 플랜 등에 대하여 질문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보잘 것 없는 몸치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일을 차츰 알게 됨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며, 자신의 빈약한 몸치장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놀랄 말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즉 내가 남의 말동무가 되어 그들의 말을 열심히 들어 주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유쾌해지고, 그 결과 나는 사교 그룹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청년으로부터 구훈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성 독자여,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 장을 읽고 독자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에게 흥미를 가지라는 말은 넌센스이다. 그건 죽도록 떠받들고 겨우 얻어먹는 감주 격이야. 난 아주 질색이다. 난 돈벌이를 해야겠다. 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가지는 주의다――그 따위 공념불 같은 건 개나 먹어라! 그것이 당신의 의견이라면 그것도 괜찮을 게다. 그러나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면, 유사 이래의 위대한 철학자나 현인, 즉 그리스도, 공자, 석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트라테스, 성프란시스니 하는 여러 사람의 말은 모두 잘못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당신은 아마 종교적 지도자들의 교의를 비웃을 것이니 무신론자의 교설을 들어 보기로 하자. 우선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 고 A.E.하우스먼 교수라면 그 시대에 있어서의 석학의 한 분이었는데, 그가 1936년 그 대학에서 행한 <시의 명칭과 자연성>이라는 강연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있다. 고금 동서를 통해 가장 심원한 도덕적 발견은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즉 『그 생명을 얻는 자는 이것을 잃고, 나를 위해 생명을 잃는 자는 이것을 얻으리로다.』 우리는 태어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설교가가 입에 담는 이 말을 죽 들어 왔다. 그러나 하우스먼은 무신론자이며 염세주의자여서 자살하려고 한 일까지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자기에 대한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비참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기쁨을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이 하우스먼의 말에 감명을 받지 않는다면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저명한 미국의 무신론자 데오도 그라이저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하자. 그는 온갖 종교를 옛날 이야기라고 냉소하고, 인생을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이다. 잡음과 격정뿐으로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가 말한 <타인에 대한 봉사>라는 위대한 교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하낟. 인간이 짧은 인생에 기쁨을 빼내려거든 그는 자기보다도 타인을 잘 되게 할 것을 생각하고 계획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쁨은 그들 속의 기쁨에 이어져 있고, 그들의 기쁨은 그 자신 속의 기쁨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드라이저가 주장했듯이 <남을 잘 되게 해 주기 위해>노력할 생각이라면, 곧 착수해야 할 일이다. 때는 흘러간다. 나는 두 번 다시 이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노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이나 내가 표시할 수 있는 친절은 지금 실행하자. 망설인다거나 게으르거나 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이 길을 두 번 다시는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여기에 고민을 몰아내고 평화와 행복을 가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칙 제7―― * 다름 사람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자기를 잊으라. 매일 몇 사람인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띠게 할 만한 착한 일을 행하라. 제 4 부 요 약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 상태를 기르는 일곱 가지 방법 제1법칙: 우리의 마음을 평화와 용기와 건강과 희망으로 가득 채우자.<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가 만든 것>이니까. 제2법칙: 적에 대해 보복하려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적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니까. 제3법칙: A 망은을 고민하지 말라. 차라리 망음을 예기하라. 그리스도는 열 사람의 나병 환자를 치료하였지만 한 사람밖에는 감사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B 행복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기대하지 말고 남에게 주는 기쁨을 위해 주는 데에 있다. C 감사하는 마음은 <교양에 의한> 특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의 감사를 기대한다면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야 한다. 제4법칙: 이익과 복을 세고, 고민은 세지 말라. 제5법칙: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말라. 자아를 발견하여 자기 자신이 되어라. 왜냐하면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기 때문이다. 제6법칙: 운명이 레몬을 주면 그것으로써 레몬수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제7법칙: 다른 사람을 위해 조그마한 행복을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여 자기 자신의 불행을 잊어버려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선량할 때 당신은 자신에 대해 최선인 것이다. 제 5 부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19. 나의 부모는 어떻게 번민을 극복했는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자라났다. 그 무렵의 여느 농민과 마찬가지로 부모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골 교사였고 아버지는 한 달에 12달러를 받고 남의 집 밭에 가서 일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옷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의 옷을 빠는 비누도 만들었다. 집에는 1년에 한 번씩 돼지를 팔 때가 아니고는 돈이 없었다. 버터나 계란을 가지고 가 식료품점에서 밀가루며 설탕이며 커피와 바꾸었다. 내가 12살 때 받은 한 해의 용돈은 50센트도 안되었다. 독립 기념일의 축제여서 아버지가 10센트를 주었을 때, 나는 세계에서 으뜸사는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었다. 나는 날마다 1마일씩이나 걸어서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에 다녔다. 큰 눈이 내려서 한란계가 영하 28도쯤을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14세가 될 때까지 고무신이나 장화를 신어 보지 못했다. 길고 추운 겨울 동안 나이 발은 늘 젖어서 차가왔다. 어린 마음에 나는 겨울에는 그례 누구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에 17시간이나 있는 힘을 다해 일했지만, 그래도 늘 빚에 쫓기기만 하는 불운에 시달렸다. 아주 어렸을 때, 대 홍수로 옥수수 밭과 마초 풀밭이 물에 잠겨 엉망진창이 되어서 5, 6년 동안이나 농사를 짓지 못했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또 해마나 콜레라로 돼지가 죽어, 그것을 태우는 냄새로 속이 메스꺼웠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수해를 입지 않았던 해가 1년이 있었다. 옥수수가 풍작이었다. 우리는 송아지와 새끼돼지를 사러 옥수수로 그놈을 살찌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해 때와 마찬가지였다. 시카고의 가축 시장에서 가축 시세가 폭락되어, 우리는 애써 키워 겨우 30달러를 벌었을 뿐이었다. 꼬박 1년을 일해서 겨우 30달러를! 무엇을 해도 손해를 보았다. 아버지는 새기노새를 사들여 3년 동안 사람까지 고용해서 길러 잘 길들였다. 그런 다음 배에 싣고 테네시주의 멤피이스로 보냈었다. 그런데 노새는 3년 전에 산 값의 이하로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 10년 동안 모질게 온 가족이 힘을 다해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생기지 않고 빚은 늘어 가기만 했다. 밭은 저당으로 돌아갔고, 갚아야 할 이자도 밀리기가 일쑤였다. 저당잡은 은행은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우며 밭을 빼앗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아버지는 47세였는데, 30년 동안이나 피땀 흘려 부지런히 일한 결과는 과 굴욕감뿐이었다.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민했다. 그래서 건강을 잃었다. 날마다 밭에서 육체 노동을 하는데도 식욕이 없어져 식욕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날로 여위어 갔다. 의사는 아머니에게 이러다가는 앞으로 반 연도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따. 아버지는 몹시 고민한 나머지 더 오래 살기가 싫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암소를 젖을 짜기 위해 외양간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시간이 늦어질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혹시나 외양간에서 목을 매어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시며 외양간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느 곧잘 들려 주셨다. 어느 날 밭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은행이 있는 메어리빌에 갔다가 돌아고는 길에, 아버지는 다리 위에서 말을 세우고 마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흐르는 냇물을 굽어 보고 있었다――차라리 단김에 뛰어들어서 모든 것을 끝장지어 버릴까 하고 곰곰히 샌각하면서. 뒷날 아버지는 왜 그때 뛰어들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늘 인간은 주를 사랑하고 그 십계를 지켜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성심성의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과연 어머니는 옳으셨다. 나중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갔다. 아버지는 그 뒤 42년 동안을 행복하게 살다가 99세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 고투와 가슴아프던 기간 중에 어머니는 결코 고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마음의 괴로움을 주께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는 성경의 한 장을 낭독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어느 한 분이 저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 주는 예수의 말씀을 읽을 때도 있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저택이 있느니라……나 거기에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있을 곳을 마련하리라…… 내가 있는 곳에 그대도 또한 있으리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가호를 비는 것이었다. 위릴엄 제임즈가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있을 때 그는 고민에 대한 최대의 양약은 종교적 신앙이다. 라고 했다. 독자들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버드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나의 어머니는 미주리주의 농장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었다. 홍수든 빚이든 재액이든, 그녀의 행복스럽고도 찬연히 빚나는 씩씩한 영혼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면서도 노래하던 찬송가를 잘 기억하고 있다. 평화, 평화, 마음이 뛰는 평화여, 하늘이신 주께 흘러 떨어져 내 영혼을 길이 채워 주소서. 나는 비오니, 사랑의 끝없는 큰 물결 속에서. 어머니는 내가 한평생을 종교적인 사업에 바치기를 희망했다. 나는 외국의 선교사가 되기를 진지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내 생각은 바뀌어져서 갔다. 나는 생물학, 과학, 철학, 비교 종교학을 배웠고 또 어떻게 해서 성경이 씌어졌는가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장하는 바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그 무렵의 시골 설교자들이 말하는 편협한 교리의 많은 부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윌트 휘트먼첨럼 자신 속에 기묘하고도 당돌한 의문이 움직이지 시작하는 것을 느끼었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좋을 지 몰랐다. 인생에의 목적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하기를 그만 두었다. 나는 불가지론가가 되었다. 나는 모든 생활은 무계획하며 무목표라고 믿었다. 인간은 2억 년 전에 이 땅 위를 기어다닌 공룡이 지니고 있었던 것보다도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류도 공룡과 마찬가지고 멸망해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태양이 조금씩 식어 간다는 것과, 그 온도가 10퍼센트 내리면 땅 위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은혜로운 주――사랑을 상징하는 주께서 자신의 모습을 닮게 하여 인간들을 창조했다는 관념에도 냉소했다. 나는 검고 차가운, 생명없는 공간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태양은 맹목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영겁으로 존재하듯이, 겁초부터 존재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의 의문을 지금에는 해결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해명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신비에 싸여 있다. 당신의 신체 작용이나 당신 집의 전기, 금이 간 벽에 핀 꽃, 창 밖의 푸른 잔디, 이 모두가 신비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의 지도자로 천재인 차알즈 F. 캐터링은 <왜 풀은 녹색인가>의 연구비로서 한 해에 3만 달러의 돈을 자기의 용돈 가운데서 안티옥 대학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는 풀이 어떻게 하여 햇빛과 물과 일산화 탄소를 당분으로 변하게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면, 문명에 일대 혁신을 가져 오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의 작용조차도 완전히 신비인 것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는 오랜 시일과 거액의 돈을 투입하여, 왜 실린더 속의 조그마한 불꽃이 차를 움직이게 하는 폭발을 시키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그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자기의 몸이나 전기, 또는 가스 엔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것을 사용하고 향유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가도나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 때문에, 보다 풍부하고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간은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 는 산타냐의 말이 지니는 예지를 깨달았다. 나는 다시 종교로 되돌아 갔다――아니, 종교의 새로운 의의로 전진했다. 나는 이미 교회를 분립케 해 놓고 있는 신조의 상위 따위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흥미는 오로지 종교가 나에게 해 주고 있는 사실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기나 좋은 음식물, 또는 물이 내게 베풀어 주는 혜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보다 풍부하고 보다 충실한, 행복한 생활을 보내도록 도와 주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이상의 것을 베풀어 주고 있다. 종교는 나에게 정신적인 가치를 가져다 준다. 윌리엄 제임즈의 말을 빌면 그것은 나에게 인생에의 새로운 열의―보다 많은 인생―보다 크고 보다 풍부하고 보다 만족할 만한 인생. 을 베풀어 준다.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줌으로써,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과 고민을 해소하게 한다. 나의 인생에 목적과 방향을 가리켜 준다. 나의 행복을 증대케 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 그것은 나에게 <인생의 소용돌이치는 사막 속에 평화의 오아시스를 창조>해 준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3백 50년 전에 천박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무신론으로 기울어지게 하고, 심원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종교로 인도한다. 고 한 것을 옳은 말이다. 과학과 종교의 논쟁이 벌어진 일도 있었으나, 그런 논쟁은 지금에는 없다. 오늘날의 과학인 정신병학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것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병 학자가 기도와 강한 신앙이 질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고민이나 불안, 또는 긴장이나 공포를 몰아 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A. A. 브릴 박사가 정말로 종교심이 깊은 사람은 신경증에 걸리지 않는다. 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종교가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인생은 비극적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인 것이다. 나는 헨리 포오드와 그가 죽기 몇 해 전에 회견했었다. 나는 회견에 앞서 오랫동안에 걸쳐 세계 최대 사업의 하나를 창립하여 경영하고 있는 심로가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막상 78세 노인의 침착하고 온화한 모습을 대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내가 괴로움을 느낀 일은 없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없어요. 무슨 일이든 주께서 지배하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나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책임을 져 주시는 한 모든 일은 결국 가장 좋게 된다고 믿고 있어요. 무엇을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정빈병 학자마저도 새로운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내세의 지옥의 업화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인 생활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지옥이 업화――위암이라든지, 협심증이나 신경 쇠약, 또는 광기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 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나 정신병 학자의 대표적 의견을 알고 싶은 사람은 헨리 C.링크 박사의 <<종교에의 복귀>>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는 확실히 인간에게 자극과 건강을 가져다 주는 가르침의 종교이다. 그리스도는 「나는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왔다. 그대들의 생명을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왔느니라.」 고 강론했다. 그리스도는 그의 시대에 종교라고 지목되어 있었던 형식적인 의식이나 무의미한 형식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그는 반역자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세계를 뒤집어 엎을 위험성을 지닌 종교를 설파했다. 그는 그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던 것이다. 그는 강론하기를, 종교는 인산은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죄에 관해서보다 공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릇된 종류의 공포는 건강에 거역하는 죄이며, 그리스도가 역설하고 있는 보다 풍족하고 보다 행복하고 보다 용기있는 인생에 거역하는 죄이다. 에머슨은 <<환희의 과학>>의 교사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역시 <환희의 과학>의 교사였다. 그는 사도들에게 「기뻐하라. 그리고 용약(勇躍)하라.」 고 명령했다. 그리스도는, 종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진심으로 주를 사랑할 것과, 이웃 사람을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신앙가이다. 예를 들어 오클라호마에 사는 나의 양부 헨리 프리이스 같은 분이 그렇다. 그는 황금을 생활의 금과옥조로 삼고 비열한 짓이나 이기적인 짓, 또는 정직하지 못한 짓은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인가! 도대체 크리스찬이란 무엇인가! 이 대답은 존 베일리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그는 에든버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석학인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을 크리스찬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관념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어느 교의를 준봉하는 일도 아니다. 어떤 <정신>을 소지하는 일, 어떤 <생명>에 관여하는 일이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자 이라고 한다면, 헨리 프라이스는 훌륭한 크리스찬의 한 사람이다.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는 그의 친구 토머스 데비드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보냈다. 즉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는 주 없이는 더욱 더 나날을 지내기가 어려워졌다. 라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이 책의 첫머리에, 성인 클라스에서 모집한 실화 가운데 두 편은 심사 위원이 그 우열을 가리느라고 한 동안 망설였다는 것을 말했는데, 그 가운데 한 편은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남은 한 편을 여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것은 주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이하게도 경험한 어느 부인의 실화이다. 나는 그 부인을 메리 커슈먼이라고 부르기로 하낟. 그녀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발표된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당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가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실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나는 몇 달 전에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경기 시대 내 남편의 평균 주급은 18달러였는데, 남편은 신병 때문에 자주 결근했다. 그럴 때에는 수입이 없었다. 남편은 몸이 허약해 자주 자리에 눕곤했다. 성홍렬이니 이하선염이니, 게다가 감기가 잘 들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는 우리가 손수 지은 조그마한 집도 남의 손에 넘겨 주어 버렸고, 식료품 가게에는 50달러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섯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나는 이웃 사람들의 빨래도 맡아 해 주고 다림질도 맡아 해 주었다. 구세군 상점에서 헌 곳을 사다가 고쳐서 아이들에게 입히기도 했다. 나는 마침내 괴로움이 심해져서 건강을 해쳤다. 그러던 어느 날 11살 된 우리 아이가 연필 두 자루를 훔쳐서, 그 식료품 주인에게 꾸지람을 받았다고 울며 말했다. 그 아이는 정직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성질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모욕을 받고 창피를 당한 것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치명상이었다. 지금까지의 숱한 고생이 한꺼번에 덮쳐와 장래에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는 고민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던 모양이다. 나는 세탁기를 멈추고 5세 된 여자아이를 침실로 데리고 가서, 창문을 닫고 문틈마다 헝겊 조각이며 종이 따위로 틀러막았다. 딸은 『엄마, 뭘 해?』하고 말했다. 나는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라고 대답하고는, 침실에 있는 가스 히터의 스위치를 틀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딸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자 딸아이는 『엄마, 이상해. 조금 아까 일어났잖아』라고 말했다. 『괜찮단다. 낮잠을 조금만 자자.』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눈을 감고는 히터에서 새어나오는 가스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의 가스 냄새를 나는 한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뒤에 별안간 음악이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부엌에 있는 라디오 스위치를 깜빡 잊고 끄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대로 좋다. 그런데 음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옛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슬픔을 씻어주시나니, 마음 속의 괴로움 숨김없이 말하여 왜인가는 말하지 않는 무서운 짐을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들의 약함 알고 가엾어하시니, 괴로움과 슬픔 속에 빠져들 때도 기도를 들으시와 위로 주시네. 이 찬송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슬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 혼자서 온갖 무서운 투쟁과 싸우려고 해왔다. 나는 기도로써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스를 끄로 문과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눈물에 젖어 기도를 드려 . 나는 주의 도움만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주어져 있는 주의 축복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몸도 마음도 굳세고 튼튼한 아이를 다섯이나 주신 데 대해서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망은된 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주 앞에 맹세했고, 그리고 나는 그 맹세를 지켜 왔다. 우리는 집을 잃고 나서 조그만 시골의 교사를 월세 5달러로 세들어서 옮겨야 했지만, 나는 그때도 주께 감사했다.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장소가 생겼으니까. 나는 일이 그 이상으로 나빠지지 않은 것을 주께 감사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장은 아니었지만, 일은 조금씩 좋아졌고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돈도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컨트리 클럽의 모자 예치소에 고용되어 틈틈이 양말도 팔게 되었다. 아들 하나는 고학할 각오로 대학에 들어가 농장이 일 자리를 얻어서 아침 저녁으로 13마리나 되는 젖소의 젖을 짜게 되었다. 지금 내 아들들은 모두 잘 자라 결혼도 했다. 내게는 귀여운 손자가 셋이나 있다. 그 끔찍스러운 날, 가스 스위치를 틀없던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위기이 순간에 용케도 내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때에 만약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면 오늘날의 이 기쁨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이고 행복스러운 많은 세월을 언제까지나 잃어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러기에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죽어서는 안 돼! 안되구 말구!』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참아야 하는 캄캄한 어둠의 순간은 결코 길지는 않다――그런 다음에 앞날이 태어나는 것이니까……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35분마다 한 사람이 자살하고 120초마다 한 사람 꼴로 미치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이들 자살자의 대부분과 그리고 또한 미쳐 버리는 사람의 반수는, 만일 그들이 종교와 기도에서 얻는 평화와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방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가장 우수한 정신병 분석학자의 한 사람이 칼 융 박사는 그의 저서 <<영혼을 탐구하는 현대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 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이 의견은 실로 의의깊은 바가 있으므로, 눈에 잘 띄는 활자로 다시 할 번 게재한다. 칼 융 박사는 말한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 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윌리엄 제임즈도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이 살아 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힘이다. 신앙이 전혀 없다는 것은 허탈을 의미한다.」 석가 이후에 있어서 인도의 최대 지도자인 고 마하트마 간디도 기도라는 지지력에 의해 그가 격려받지 않았다면 의기가 소침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라고 말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증언을 할 수 있다. 나의 친아버지도 만약에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이 없었더라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많은 괴로움을 받는 영혼도, 만일 그들이 자력만으로 인생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려 하지 않고, 보다 높은 힘에 도움을 구하기만 했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힘의 한계에 도달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대부분 절망하여 신의 힘에 매어달린다. 일인용 참호에 무신론자는 없다.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왜 나날이 힘을 새롭게 하지는 않는가? 왜 일요일까지 미루는가? 오래 전부터 나는 평일의 오후면, 사람이 드문 교회에 들어가 보는 일이 있다. 마음이 분주하여 단 2,3 분 동안도 차분하게 사색할 겨를이 없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잠깐만 기다려, 데일 카네기. 잠깐만 기다려. 어째서 그렇게 언제나 조급하고 초조해 하는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사물의 대소 경증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는 거다. 나는 이럴 때, 으레 맨 처음에 눈에 띄는 교회당으로 들어간다. 나는 프로테스탄트이지만 곧잘 5번 거리의 성 패트릭 성당에 들르곤 하였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앞으로 30년 쯤 지나면 죽을 것ㅇ디지만,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정신적 진리는 영구 불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하느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육체도 편안해진다. 판단력도 명확해져서 사물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데 확신이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도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이 책을 쓰던 지난 6년 동안 어떻게해서 기도에 의해 두려움이나 고민을 극복했는가에 관한 실레 또는 실화를 나는 몇 백이나 수집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실의와 낙망에 빠져 있던 시적 판매원 존 R. 안소니의 이야기를 하겠다. 안소니씨는 지금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있다. 그가 나에게 말해 준 이야기는 이러하다. 22년 전에 나는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주 대표가 되기 위해, 나의 법률 사무소를 닫아 버렸다. 나의 전문은 일련의 법률 서적을 변호사에게 판매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한 훈련을 충분히 받았다. 팔 때의 응대법을 비롯하여 온갖 반대에 대한 설득적인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사 줄 것 같은 사람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상대편의 변호사로서의 위치가든가 그가 다루고 있는 소송 실무의 종류라든가, 그의 정견이나 취미 등도 조사해 두었다. 그리고 면담 중에 교묘하게 그러한 지식을 이용했다. 그러나 어디인지 잘못이 있었던 모양으로 나는 주문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낙담했다. 날이 지남에 따라 나는 지금까지보다 두 곱이나 세곱을 더 노력했지만, 그동안에 든 비용을 보충할 만한 주문을 얻기에도 실패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기슴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 무서워지기조차 했다. 사 줄 것 같은 사람들의 사무소에 들어가기 전에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어 버려서, 문 밖의 복도를 왔다갔다하기도 하고 그 건물 밖으로 나가서 부근을 어물어물 돌아 다니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끝에, 온 몸의 의지력으로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으로 살그머니 문의 손잡이를 돌리곤 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절반은 비는 심정으로. 나의 판매 지배인은 좀 더 주문을 받아오지 못하면 선불금을 정지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집에서는 아네가 네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한 식료품 가게에 지불할 돈이 필됴하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나는 절망으로 되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의 고향에서의 법률 사무소는 닫아 버려서 소송 위뢰자도 없어졌다. 마침내 그것이 파산해서 호텔이 숙박비조차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살 돈도 없고, 비록 기차표를 산다고 해도 실패자로서 집으로 돌아갈 만한 용기가 없었다. 마침내 악운의 날, 마지막 실패를 마친 뒤에 나는 터덜터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체면하며.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의기저상하여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뢰하기도 했다. 그날 밤 식사로는 우유 한 잔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가까스로 구한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절망한 사람이 호텔 창문에서 뛰어내린 심정을 알았다. 용기가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 메어달린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주께 매달렸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가두어 두고 있는 절망의, 어둡고 깊은 거친 파도를 인도하는 빛과 이해를 주십사하고 탄원했다. 나는 부디 주께 책 주문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또한 처자를 위해 필요한 돈을 얻게 해 주십사고 애처롭게 호소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뜨자 그 쓸쓸한 호텔 방 경대 위에 성서 기증 협회의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펼치고 몇 세기에 걸쳐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을 주신 그리스도의 후세에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말씀.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고민을 해고하는 데 대한 교훈을 읽었다.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시며 또한 육체를 위해 무엇을 입을까 하여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곡간에 저축도 아니하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저들을 기르시나니, 너희는 저들보다 뛰어나지 아니하냐……너희들은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시리로다. 내가 기도를 드리고 이 말을 읽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신경질적인 긴장이 사라져 버리고 불안이며 공포며 고민은 마음을 따사롭게 해 주는 용기와 희망과 빛나는 신념으로 변했다. 나는 호텔의 숙박비를 치르는데 충분한 돈도 없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침대에 들어가 참으로 몇 해 만에 푹 잤다. 완전히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다음날 아침, 나는 책을 사 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의 사무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 아름다운 비오는 추운 날, 자신에 넘치는 적극적인 걸음걸이로 첫째 사무실 문에 다가갔다. 나는 손잡이를 꽉 잡고 돌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힘차게 적당한 위엄을 유지하면서 목표한 사람 앞으로 곧바로 걸어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스미드씨! 저는 전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존 안소니라고 합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자, 앉으십시오. 이리하여 나는 그날 하루에 지난 몇 주일 동안 받은 주문 이상의 주문을 받았따. 저녁 때 나는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새롭고 용감한 정신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니까. 그날 밤 식사는 한 잔의 우유가 아니었다. 어엿한 비이프스틱이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의 판매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22년 전 텍사스주 아마릴로의 조그마한 호텔에서의 절망적인 밤에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그 다음날 내 겉 모양은 실패하던 때와 같았지만, 내부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주와의 관계를 달았다. 자기에게만 의지하는 사람은 쉽게 패배를 맛보게 되지만, 마음에 신의 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은 패배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의 인생이 그와 같이 된 것을 알고 있는 것이 .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물으라. 그러면 찾아 내리라. 두드리라. 그러면 그대에게 열리리라. 일리노리주 하일란드의 L. G. 베어드 부인은 무서운 비극에 맞부 쳤을 때 무릎을 꿇고 오오, 주여,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함으로써 평화와 침착성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그녀에게 온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14번이나 울렸을 때 나는 겨우 용기 내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병원에서 걸려 온 것으로 짐작하여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의 어린아이가 죽어 가고 있다고 근심했던 것이지요. 뇌막염으로 이미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체온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의사는 병독이 뇌에까지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외종양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살려 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전화는 내가 두려워 한 대로 병원에서 곧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우리 부부가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하는 것은 짐작하실 줄로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만은 예외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아기를 안게 될는지 근심이 되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 만에 우리는 부름을 받아 의사의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만, 의사의 표정을 보고 우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의사의 말은 더욱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아기가 살아날 확률은 넷 중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러니 만약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진찰을 받아 보고 싶거든 불러오는 게 좋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남편은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핸들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베츠, 난 단념 못하겠소. 절대로!』 성생님께서는 남자가 우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결코 즐거운 경험을 아닙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세워 놓고 여러 가지를 의논한 끝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아기를 데려가자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나는 자석에 무릎을 꿇고 눈물에 젖어서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끝내자 나의 마음은 좀 밝아졌습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화로움이 솟아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서도 줄곧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되풀이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오래 간만에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런 며칠 뒤에 의사로부터 아기는 위기를 벗어났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는 지금 4살된 건강한 어린아리가 집에 있다는 것을 늘 주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종교를 마치 부녀자나 셜교자를 위한 것인 것처럼 보믐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힘으로 싸워 나살 수 있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라는 것을 자랑삼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몹시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잭 템프시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는 밤마다 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선 주께 감사드린 뒤에야 식사를 하고, 시합을 앞두고 연습하는 둥에도 날마다 기도를 하며 또한 시랍 둥에도 매회 시합이 시작되고 벨이 울리기 전에 기도한다고 말했다. 기도는 나에게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싸울 힘을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코니이 맥은 매일 밤마다 기도를 드린 뒤가 아니면 잠잘 수 없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디 리켄베이커는 그의 인생이 기도에 의하여 구원되어 왔다고 믿고 있다. 그는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드워드 R.스테튜어스(전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간부였고, 전국무장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스러운 지혜와 지도를 베풀어 주십사고 주께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J. 피어폰트 모건은 그 무렵에 있어 최대 재정가였는데, 그는 토요일 오후에는 가끔 혼자서 윌가의 모퉁이에 있는 트리니티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아이젠하워는 영미 연합국 최고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갈 때 단 한 권의 책을 휴대했다. 그것은 성경이었다. < 사나이다운 사나이> 마크 클라크 장군도 전시 중에 날마다 성경을 읽고 또한 기도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장개석이나 몽고메리 장군도 기도했다. 넬슨 제독도 트라팔가르 해전 때 기도했다. 와싱턴이나 로버트 리나 스톤윌 잭슨 같은 장군들을 비롯해 군대의 수많은 지도자가 그러했다. 이들 <사나이다운 사나이> 들은 윌리엄 제임즈의 인간과 신관의 사이에는 서로 비즈니스가 있다. 따라서 우리들 자신을 신의 영향 밑에 피력하면 가장 심원한 운명이 성취된다. 고 한 말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똑같이 이 진리에 눈떠 가고 있다. 미국의 교인수는 7천 2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없던 기록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과학자도 종교에 귀의해 가고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인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의 저자로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박사가 있다. 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의 논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형식의 에네르기이다. 그것은 지구의 인력과 같은 현실적인 것이다. 의사로서의 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온갖 요법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기도라는 엄숙한 노력에 의해 질병이나 우울에서 구제를 받은 예를 목격하고 있다. 기도는 라듐처럼 빛나는 자기 발생 에네르기 원이다……인류는 기도에 의해 그들 자신을 온갖 에네르기의 무근원에 제소함으로써 그들의 유한의 에네르기를 증대시키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과 우리와를 결부시킨다. 우리는 이 힘의 일부가 우리의 필요에 배분되도록 기도한다. 이렇게 구함으로써만 우리의 인간적 결함은 충족되고 우리는 강화되고 치유되어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열렬한 기도로써 주께 호소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정신도 육체도 보다 좋은 것으로 변화하게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순간의 기도로도 반드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도한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바드 제독은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에 우리를 결부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 그것을 해낸 그의 능력에 의해, 그는 그의 생애 가운데서도 가장 곤란했던 시련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그 사실은 그의 저서인 <<혼자서>>에서 술회하고 있다. 1943년, 그는 남극의 오지인 로스 바리어의 만년빙 밑에 믿힌 오두막집에서 다섯 달 동안이나 살았다. 그는 남위 78도선 이남에 있어서의 유일한 생물이었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집 위로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추위는 영하 82도까지 내려갔다. 그는 언제까지나 변치 않은 어둠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 또한 그는 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일산화탄소 때문에 차츰차츰 무서운 중독을 일으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구조도 123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몇 개월 뒤가 아니면 도착할 가망성이 없다. 그는 난로와 환기 장치를 수리했지만, 새어 나오는 가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끔 그 가스 중독 때문에 의식을 잃고 마루 위에 쓰러져 있곤 했다. 그도 먹을 수도 없고 잘 수도 없었다. 그는 거의 침대를 떠날 수도 없으리만큼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생명이 붙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두려워한 때도 자주 있었다. 나는 이 오두막집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는 내리퍼붓는 눈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무엇이 그의 목숨을 구했는가? 어느 날 그는 절망한 나머지 일기장을 꺼내어 자기의 인생관을 써 두려고 했다. 그는 썼다. 인류는 우주에서 고독하지는 않다. 고, 그는 머리 위 성신이니 성좌니 유성 등의 규칙적인 운행에 대해 생각했다. 또한 영원한 태양이 언젠가는 황량한 남극 지방의 구석구석까지도 비쳐 주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기장에 「난 고독하지 않다.」 라고 썼다. 이 고독하지 않다. 지구 끝의 얼음 구덩이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고독하지는 않다는 자각이 리처드 바드를 구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일생 중에서 그들 속에 있는 정력의 극한적인 한계점까지 쫓겨 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결코 아직 사용되지 않은 깊은 힘의 우물이 있다. 리처드 바드는 주께 호소함으로써 이 힘의 우물을 길어내는 방법을 배웠고, 그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글렌 A. 아놀드는 일리노이주의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바드 제독이 극지의 빙설 속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것을 배웠다. 일리노이주 칠리 코스의 보험브로커인 아놀드씨는 고민의 극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8년 전 일이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무실 정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강쪽으로 갔다. 나는 실패자였던 것이다. 한 달 전에 전 세계를 내 머리 위에 무너져 떨어졌다. 내가 경영하던 전기 기구의 사업은 암초에 올라 안고 말았다. 집에는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고, 아내는 두 번째 아이를 낳으려 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갚아야 할 돈은 늘어 가기만 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는 데에 자동차며 가구 등을 비롯하여 그것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동차를 몰아 강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서글픈 혼란케 결말을 짓고 말겠다는 각오로. 나는 시내에 몇 마일 빠져 나온 지점에서 큰 길을 벗어났다. 차에서 내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민이라는 이름의 밭 속을 아무렇게나 빙빙 돌지 말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사태는 얼마 만큼이나 나빠졌는가? 이 이상으로 더 나빠질 염려가 있는가?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인가? 사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그날 그때, 모든 문제를 주께 호소하여 주의 뜻에 맡길 것을 결심했다. 나는 기도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나는 나의 인생이 그 하나에 달려 있는 것처럼 오직 한 가지만을 기도 했다. 그러자 그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나의 모든 문제를 나보다 위대한 힘에 맡기자마자 나는 최근 몇 달 동안이나 가져 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느낀 것이다. 나는 반 시간쯤 그곳에서 기도도 드리고 울기도 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깊이 푹 잤다.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나에게는 자신이 생기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서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 인도에 나를 맡겼기 때문이다. 나는 침착한 태도로 시내의 백화점에 가 자신에 넘치는 말투로 전기 기구부의 판매원 일을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예기한 바대로 그 일 자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 뒤로 일은 꽤 달 되어 나갔다. 전기 기구 관계의 사업이 전쟁 때문에 붕괴되기까지는. 나는 그 뒤로 이번에는 생명 보험의 권유를 시작했다. 그것은 겨우 5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계산이든 또박또박 지불하고 있다. 똑똑한 세 아이도 있고 집도 내 것이다. 새 자동차도 있고, 2만 5천 달러의 생명 보험에도 가입하고 있다. 나는 지금 곰곰이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보면, 모든 것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괴로워한 나머지 강쪽으로 차를 몰아 달려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의 비극이 주께 의지하기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과거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평화와 자신을 가지고 있다. 왜 종교적 신념이 우리에게 그러한 평화와 침착과 불굴의 정신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윌리엄 제임즈로 하여금 대답케 하여 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친 듯 날뛰는 해면의 거친 파도도 대양의 밑바닥을 시끄럽게 하지 못한다. 보다 광대하고 보다 영구적인 현실에 발판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의 개인적인 끊임없는 부침은 비교적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도요됨이 없이 평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온갖 의무에 대해서도 고요한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고민하고 불안을 느낀다면 어째서 우리는 주께 의지하지 않는가?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듯이 왜 주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한한 원동력>에 우리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는가? 만일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의, 또는 가정 교육에 의한 종교적 인간이 아니라, 완고하고 유동성이 없는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기도는 당신이 믿고 있는 이상으로 당신을 돕는 것이다―그것은 실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간에 온갖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 가지의 지극히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성취케 해 준다는 의미이다― 1. 기도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 준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실체가 애매하고 뚜렷하지 않는 한 문제에 대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는 어느 점에서, 문제를 종이에 적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고 싶다면, 상대자가 비록 신이더라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2. 기도는 우리에게 자기 혼자가 아니라 어느 누구와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은 너무 무거운 짐이나 또는 견디기 어려울 만한 고민을 자기 힘만으로 감당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때로는 우리의 괴로움이 너무나도 사적이어서 친척이나 친구에게도 털어 놓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기도가 있을 뿐이다. 정신병 의사는 모두 우리가 압박이나 긴장 또는 정신적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는 것은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에는―언제나 주님께 호소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기도는 행위의 활발한 법칙을 활동케 한다. 그것은 행동에의 첫걸음인 것이다. 날마다 무슨 일이든 그 성취를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한 은혜를 입고 있거나, 적어도 성취를 향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알렉시스 칼렐 박사는 말한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네르기다. 라고. 그런데도 왜 좀더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가?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부르든, 또는 정령이라 부르든, 그 정의를 가지고 다툴 필요는 없다. 지금 곧 이 책을 덮고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무릎을 꿇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이 좋을 것이다. 그대가 신앙을 잃고 있다면 전능한 신에게 그것을 거듭 주시게끔 기도하라. 그리고 7백전 전의 옛날, 아시아의 성 프란시스에 의해 씌어진 다음의 아름다운 기도 말씀을 되풀이하라. 주여, 저로 하여 당신의 평화와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소서. 위해가 있는 곳에는 사면을, 의혹이 있는 곳에는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암흑이 있는 곳에는 광명을, 비애가 있는 곳에는 환희를, 저는 위안하는 것처럼 위안받기를 구하지는 않고,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받기를 구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받기를 구하지 않나이다. 그것은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 6 부 남의 비평을 이겨내는 방법 20. 죽은 개를 걷어차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미국 교육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 1929년에 일어났다. 온 나라의 학자들은 그 사건에 입회하기 위해 시카고로 물려 들었다. 이보다 몇 해 전에 로버트 허친스라는 젊은이가 급사며 벌목 노동자, 가정 교사, 빨랫줄 판매원 노릇 등 등을 하면서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그로부터 겨우 8년 뒤에 그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재력이 있는 대학인 시카고 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30세라는 젊은 나이로! 그보다 나이가 많은 교육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요란한 ㅂ평이 이 <신동>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이렇다, 저렇다, 너무 젊다, 경험이 없다, 그의 교육관은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등등 신문까지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의 취임식이 거행되던 날, 친구 한 사람이 로버트 허친스의 아버지에게 나는 오늘 아침 신문에 아드님을 공격하는 사설이 실려 있는 것을 읽고 분개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습니까? 꽤 가혹하더군요. 그렇지만 아무도 죽은 개를 걷어 차지는 않으니까요. 노 허친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허다 그리고 개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걷어차는 데 보다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나중에 에드워드 8세가 된 영국의 황태자(지금의 윈저공)는 어린 나이에 이것을 체험했다. 그 무렵 그는 데븐셔의 다아트스 대학(이것은 미국의 아나폴리스 해군 사관학교에 상당한다)의 학생으로서 겨우 14세이었다. 어느 날 한 해군 장교가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으나 자꾸 캐어 물었더니 해군 후보생들에게 걷어채였다고 대답했다. 교장은 후보생들을 모이게 하여, 황태자가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왜 자기 하나면 특별히 이런 봉변을 당했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헛기침도 해보고, 음 에에――하며 어물어물 넘겨 보려고도 하고, 방정맞게 다리를 까불며 딱한 처지를 면해 보려고 하더니 후보생들은 마침내 털어 놓았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영국 해군의 사령관이나 함장이 되었을 때 나는 옛날 우리 국왕을 걷어찬 일이 있다! 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걷어채였다든지 비평을 받았을 때는, 당신을 걷어찬 사람은 그것으로 자기가 잘난 것 같은 느낌을 맛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흔히 당신이 무엇이든 남의 주목을 끌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는 자기들보다 놓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나쁘게 말하는 데 야만적인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이 장을 집필하는 도중, 한 부인으로부터 구세군의 시자인 위리엄 부우즈 대장을 비난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일직이 부우즈 대장을 찬양하는 방송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부인은 부우즈 대장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은 돈 8천만 다러를 가로챘다고 쓰고 있었다. 이 고발은 매우 어이없는 일이었고, 그 부인은 진실로 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보다도 훨씬 나은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악의에 찬 편지를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내가 그녀의 남편이 아님을 주께 감사했다. 그녀의 편지는 부우즈 대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녀에 관해서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쇼펜하우에르는 일찍이 비천한 사람들은 위인의 결점이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대단한 기쁨을 느낀다. 고 말했다. 예일 대학의 학장을 비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 학장이었던 티모시드와이트는 합중국 대통령에 입후보 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에 커다란 기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예일 대학의 학장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만일 이 사나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리의 아내나 딸은 공인 매춘 제도의 희생자가 되어 심하게 모욕을 받고 타락하게 되며, 우아함과 도덕으로부터의 추방자로 변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배척당할 것이다. 이것은 히틀러에 대한 탄핵가 퍽 닮지 않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것은 토머스 제퍼슨을 탄핵한 것이다. 어느 토머스 제퍼슨이냐구? 설마 독립 선언을 기초했던 민주주의의 패트런은 아닐 테지? 그렇다, 바로 그 제퍼슨인 것이다. 미국인으로 <위선자>, <사기꾼>, 살인범보다 조금은 나은 사나이>라고 공공연히 욕을 얻어 먹은 것이 누구였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신문의 만화는 그를 단두대에 세워 놓고, 목을 베는 커다란 칼을 곁에 놓고, 거리를 끌려 다니는 그에게 군중이 욕설을 퍼부어 꾸짖는 광경을 그렸다. 그게 누구인가? 조지 와싱턴. 그러나 그것은 옛일이다. 오늘날은 인간성이 향상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럼 생각해 보자. 페리 제독의 예가 있다. 그는 1907년 4월 6일, 개가 끄는 썰매로 북극에 이르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탐험가이다. 이 결승점이야말로 몇 세기에 걸쳐 용감한 사람들이 이르려고 노력하여 갖은 고초와 궁핍 때문에 생명을 잃었던 것이다. 페리 자신도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거의 죽을 뻔 했다. 그의 발가락 여덟 개는 격심한 동상 때문에 잘라 내어야만 했다. 그는 겹치는 고난 속에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싱턴에 있는 그의 상관들은 페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분개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과학적 탐험이라고 일컬어 돈을 모아 놓고도 북극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다고 말하며 그를 비난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도 모른다. 믿고 싶은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페리를 골탕먹이고 그의 계획을 저지하려고 하는 그들의 결의는 대답한 것이었다. 맥킨리 대통령의 직접 명령에 의해 페리는 북극 탐험을 겨우 계속할 수 있었다. 페리가 와싱턴 해군성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어도 그렇기 비난을 받았을까? 아니다. 그런 일은 그들의 질투를 살 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트 장군은 북부를 기쁨에 들끓게 한 최초의 대승리를 얻었따. 반나절의 전투에 의한 승리, 그랜트로 하여금 하룻밤 국민의 우상이 되게 한 승리, 멀리 유럽에까지 말할 수 없이 큰 반향을 일으키게 한 승리, 대서양 연안부터 미시시피강에 이르는 모든 땅에 교회의 종을 울리게 하고 축하의 횃불을 들게 한 승리이다.그런데 북군의 영웅 그랜트는 대승리를 거둔 지 6주일도 되기 전에 체포되어 군대의 지휘권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그는 굴욕과 절망 속에서 오열했다. 그랜트 장군은 왜 그 승리의 절정 때에 체포되었는가? 그 주요한 이유는 오만한 상관들의 질투와 선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당한 비난 때문에 괴로워하게 될 때를 위한 법칙 제1―― * 아무도 죽은 개는 걷어차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부당한 비난은 흔히 감추어진 찬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21. 감추라――그러면 비평도 그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는 한 번 스메들리 버틀러 소장과 회담한 일이 있다. <천통안>이니 <적귀>니 하는 별명을 지닌 명물의 사나이다. 미국 해군 중에서 가장 이채로운 기운이 팔팔한 사령관이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의 그는 인기를 얻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의 좋은 편판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극히 사소한 비평에도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흥분하곤 했다. 그러나 30년 동안의 해군 생활은 그러한 그의 피부를 경화시켰다. 나는 자주 욕설을 들었고 모욕당했다. 겁장이, 독사, 스컹크라고. 나는 전문가들에게 형편없는 말을 들었다. 영어의 온갖 욕설을 모두 나에게 퍼부었다. 분해서 화가 났느냐구? 아니, 요즘은 내게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도 욕하는 놈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네. 아마도 <천통안>은 비평을 졸업해 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던져지는 조소나 욕설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한 번 나의 성인 클라스의 선전 집회에 찾아온 <<뉴욕 선>>지의 기자에게, 나와 나의 일에 관해 재미있고도 우습게 씌어진 일이 있었다. 분개했느냐구? 물론이다. 나는 그것을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뉴욕 선>>지의 임원회의장 길 하지스에게 전화를 걸어, 조소적인 기사가 아닌 사실을 지상에 게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기사의 집필자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할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 그때 내가 취한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구독자의 반수는 그 기사를 읽지 않았을 것이고, 읽은 나머지 반수의 구독자는 단순한 웃음거리로 밖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이다. 그리고 그들도 몇 주일 안에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지금 인간이라는 것은 남의 일을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비평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아침이나 밤 12시까지 끊임없이 자기 일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보다도 자신의 가벼운 두통에 대해 천 배나 만 배로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속임을 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하거나 배반을 당하거나, 또는 등을 칼로 찔리거나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노예로 팔리더라도, 그 때문에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그보다고 그리스도가 겪은 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서 최대의 신임을 받고 있던 열 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은 오늘날의 돈으로 치면 겨우 19달러도 될까말까한 뇌물 때문에 그리스도를 배반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어려운 처지를 당하자 그를 버리고 달아나서 세 번이나 자기는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단언하여 선서까지 했다. 그리스도가 이러했다면 우리가 그 이상을 기대한다는 것을 무리가 아니겠 는가? 나는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에게서 부당한 비평을 받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러한 비평에 정신을 쓰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점을 명확하게 밝혀 두겠는데, 온갖 비평을 무시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비평을 무시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에게 부당한 비평에 대한 당신이 마음가짐은 어떠하냐고 물어 보았다. 화이트 하우스에 살았던 여성 가운데서 그녀만큼 열렬한 벗과 맹렬한 적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소녀 시절의 그녀의 거의 병적이라고 할 만큼 내성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데서 험담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숙모에게 의논했다. 아주머님, 전 이러저러한 일이 하고 싶은데 남들이 뭐라고 할까봐 겁이 나요. 데이 루스벨트의 누이동생은 조카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지켜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 속으로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남이 하는 말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록 한다. 에리너 루스벨트는 나에게 이 충언이 그녀가 뒷날 백악관이 여주인이 되었을 때 마음의 거점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또한 온갖 비평을 모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드레스덴의 도자기 인형처럼 선반 위에 자리잡고 앉는 일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자기 마음속에서 올바르다고 믿는 일을 하면 된다. 해도 욕설을 듣고 하지 않아도 욕설을 듣는다. 어차피 비평은 모면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것이 그녀의 충언이다. 고 매슈우 C.브러시가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코퍼레이션의 사장이었을 때, 나는 그에게 비평에 마음을 썼느냐고 물어 보았따. 그러자 그는 그렇소, 젊었을 때는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지요. 내 회사의 모든 종업원들에게 완전한 인물인 것으로 인정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들이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고민했고. 나는 나에게 가장 심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사나이를 포섭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노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음의 사나이와 타협하려 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무리들이 기분나빠 하더군요. 나는 마침내 개인적인 비평을 모면하기 위해 반감을 무마하고 수습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적이 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내 자신에게 타일었습니다. 남이 웃사람 노룻을 하는 한, 남의 비평을 모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라고. 이 생각은 놀라울 만큼 효과가 있었소. 그때부터 나는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하는 방침으로, 실행 뒤에는 낡은 우산을 받쳐 비평이라는 이름의 비로 목덜미를 적시지 않도록 하고 있지요. 딤즈 테일러는 한걸음 더 전진하여, 비평이라는 비를 목덜리에서 툭툭 털어 버리면서 군중 앞에서 유쾌하게 웃어 보였던 것이다. 그가 뉴욕 필하모닉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토요일 오후 라디오 콘서트 휴게 시간에 해설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그를 가리켜 거짓말장이, 배신자, 독사, 백치 라고 심하게 욕하는 어느 부인의 편지를 받았다. 테일러씨는 그의 저서 <<사람과 음악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 내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드셨나 보다. 테일러는 다음 주 방송 시간에 그 편지를 낭독하여 수백만의 청취자에게 알렸다. 그러자 며칠 뒤에 그 부인에게서 또 편지가 왔다. 그것에 의하면 그녀이 의견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거짓말장이, 배신자, 독사, 정신박약자, 그리고 저능아>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평에 대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사람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의 평정하고도 자신에 찬 자세와 유머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차알즈 슈와브는 프린스턴 대학 학생들에게 한 연설 가운데서 그가 지금까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슈와브의 제강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늙은 독일인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고백 다. 그 늙은 독일 사람은 전쟁 중에 흔히 일어난, 맹렬한 전쟁 논쟁에 휘말려 들어가서 흥분된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강에 내던져졌다. 슈와브는 그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진창 투성이의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꼴로 내 사무실에 나타났을 때, 나는 그에게 자기를 강물에 쳐 넣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 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그저 웃었을 뿐이죠』라고만 했다. 슈와브는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그 늙은 독일 사람의 말인 <그저 웃으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 좌우명은 우리가 부당한 비평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특히 도움이 된다. 덤벼드는 상대에게는 대꾸할 수가 있지만 <그저 웃는> 상대자에게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링컨이 만약 그에게 던져지는 신랄한 비난에 대꾸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도 남북 전쟁의 과로 때문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비난을 처리했는가에 관한 그의 기술은 문학 작품의 주옥으로서 고전이 되어 있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 중에 그 사본을 자기 책상 위에 놓아 두고 있었다. 윈스튼 처칠은 그 사본을 액자에 넣어 그의 서재 벽에 걸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나에 가해지는 공격에 대해 대답하기는 고사하고 다만 읽기라도 하려고 생각했다면, 나는 이 사무실을 폐쇄해 버리고 무엇이든지 다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좋은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실행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해 나갈 결심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결과가 좋으면, 나에게 가해진 비평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결과가 좋지 않다면, 열 명의 천사가 내가 옳았다고 증언해 주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는 짓이 되고 만다.」 우리가 부당한 비평을 받았을 때에 기억해 두기 위한 법칙 제2――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그대의 낡은 우산을 받쳐서, 비평이라는 이름의 비가 목덜미로 흘러 떨어지는 것을 막아라. 2.내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어리석은 행동을 일일이 기록한 서류를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이런 메모를 비서에게 말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개인적이고 지나치게 바보스러운 것은 부끄럽기 때문에 내가 직접 적기로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15년 전의 나에 대한 비평을 기억하고 있다. 만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매우 정직했다면 메모는 얼마만큼이나 많아졌을 지 모를 일이다. 30세기 전이 사울 왕이 나는 어리석었느니라, 나는 참으로 많을 잘못을 저질렀도다. 라고 한 말을 그대로 나에게 들어맞는 말이다. 나의 어리석은 짓을 기록한 메로를 꺼내 들고 자기가 쓴 자기에 대한 비평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앞으로 내가 직면하게 될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곧 자신의 고민을 남의 탓으로 돌렸던 일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현명해짐에 따라 결국 온갖 나의 불행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것을 깨닫는다. 나의 몰락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탓이다. 내가 나 자신이 최대의 적이며 나 자신이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 나폴레옹도 센트 헬레나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으로 자기 평가와 자기 지배에 있어서는, 예술가의 경지에까지 다다라 있던 사람이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기로 한다. 그의 이름은 H.P.하우엘이다. 그가 1944년 7월 31일에 뉴욕의 호텔 엠베서더의 약국에서 급사했다는 뉴스가 전국에 보도되었을 때 월가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국 재계의 지도자였으니까. 그는 커머셜내셔널 뱅크 앤드 트러스트 컴퍼니의 회장을 비롯해 몇몇 큰 회사의 이사이기도 했다. 그는 정식 교육은 조금밖에 받지 못했다. 어느 시골 상점 점원에서 입신하여 U.S. 스틸의 회사 판매 지배인이 되어 차츰 지위와 세력을 얻어 갔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날 그날의 약속에 대한 일람표를 작성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그의 성공법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가족은 토요일 밤의 예정표를 작성할 때 나를 빼놓곤 했다. 그것은 내가 토요일 밤을 자기 검토와 그 주일에 한 일의 평가와 재조사에 소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 비방록을 펼쳐 놓고 월요일 이후에 일어난 온갖 면접과 토의와 회합에 대해 재검토해 본다. 나는 그리고 자문한다. 『나는 그때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어떤 옳은 일을 했는가―어떻게 하면 내가 한 일을 개량할 수 있었을까?』『그 경험으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하고. 이 매주의 재검토는 때때로 나를 몹시 불행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또한 자기가 저지른 얼빠진 실수에 대해 어처구니없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가 지남에 따라 이러한 실패도 점점 적어져 갔다. 이 자기 분석법은 해마다 계속되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시도한 방법 가운데 이것 이상으로 내게 도움이 된 것은 없다. H. P. 하우엘은 아마도 이 아이디어를 벤자민 프랭클린에게서 빌어온 것 같다. 프랭클린은 다만 토요일 밤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매일 밤마다 자기 반성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13가지의 중대한 과실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3가지를 들면 시간의 낭비, 사소한 일에 언제까지나 마음을 쓰고 괴로워한다는 것, 다른 사람과 논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 등이다. 현명한 프랭클린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핸디캡을 없애지 않는 한 그렇게 크게 향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그는 먼저 첫째 결점을 1주일 동안에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주일에는 두 번째 결점을, 셋째 주일에는 세 번째 결점을, 그는 이렇게 하여 그 싸움을 2년 동안이나 계속했던 것이다. 그가 미국이 낳은 가장 사랑받고 가장 세력있는 인물이 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엘버트 허버드는 말했다. 누구나 하루에 적어도 5분 동안은 진짜 바보가 된다. 지혜란 그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소인은 아주 사소한 비평에 대해서도 흥분하여 성내지만, 현명항 사람은 자기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논쟁한 사람에게서도 무언사를 배우려 한다. 윌트 휘트먼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너는 너를 칭찬하고 너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하고, 네 편을 들어 준 사람에게서만 교훈을 배웠는가? 너는 너를 배척하고 너에게 반대하고 너와 논쟁한 사람에게서는 귀중한 교훈을 배우지 못하였는가? 우리의 적이 우리의 일에 가하는 비평을 기다리지 말고 그들을 앞질럿 우리들 자신이 우리에 대한 냉혹한 비평가가 되자. 우리의 적이 한 마디라도 발언할 기회를 잡기 전에, 우리 자신이 우리의 약점을 발견하여 고치도록 하자. 그것이 바로 차알즈 다윈이 한 일이다. 실상 그는 15년 동안을 비평으로 소비했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다윈이 그의 불후의 저작 <<종의 기원>>을 탈고했을 때, 그는 창세에 관한 그의 혁명적 개념이 사상계와 종교계를 뒤흔들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의 비평가가 되어 다시 15년 간을 사실의 재조사와 추리와 재검토와 결론의 비평으로 소비한 것이다. 만약 누가 당신에게 이 바보 놈아. 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성을 내겠는가, 분개하겠는가? 링컨은 다음과 같이 했다.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 육군 장관 에드워드 M. 스탄튼은 링컨이 그의 소관 사무에 간섭하고 있는 것에 분개한 것이다. 어느 이기적인 정치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링컨은 두서넛의 연대에 대한 이동 명령에 서명했다. 그런데 스탄튼은 링턴의 명령을 수행할 것을 거부했을뿐더러, 그런 명령에 서명하다니 링컨은 바보라고 욕설을 한 것이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겠는가? 스탄튼의 말이 링컨에게 전해졌을 때 링컨은 평온한 태도로 만약 스탄튼이 나를 바보라고 말했다면 나는 바보겠지. 그 사나이가 말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틀림없으니까. 내가 거기 가서, 어디 좀 직접 확인하고 와야겠군.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링컨은 스탄튼을 찾아갔다. 스탄튼은 그 명령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링컨으로 하여금 납득케 하였고 링컨은 그것을 취소했다. 링컨은 호의적인 동기에서 나온 지식에 바탕을 둔 성실한 비평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종류의 비평은 환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네 번 가운데 세 번 이상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이니까 하고 데어도 루스벨트도 말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의 가장 심원한 사상가인 아인쉬타인도 현대에 있어서는 그의 결론의 99퍼센트는 잘못되어 있다고 고백하였다. 또 루쉬푸코는 우리 적의 의견은 그것이 우리에 관한 것인 한, 우리의 의견보다도 진실에 가깝다. 나는 이 말을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누군가가 나를 비평하기 시작하면, 나는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도 알기 전에 재빨리 자동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하고 만다. 이에는 나 자신도 정이 떨어진다. 우리는 비난이나 칭찬이 합당하든 부당하든 간에 관계없이 비난에는 분개하고 칭찬에는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논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감정적인 동물인 것이다. 우리의 논리는 가정이라는 깊고도 어두운 폭풍의 바다에 내던져셔 떠 있는 자작나무 껍질의 카누와 같은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의 욕을 하고 있을 때에는 자기를 변호하지 않기로 하자. 그것은 어리석은 이가 하는 짓이다. 우리는 보다 독창적으로 겸허하고 훌륭하게 행동하자! 그리고 만약 비평가가 나이 다른 온갖 결점을 알고 있었다면 더 통렬하고 혹독하게 나를 비평하여 마구 때렸을 것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의 비평가를 어리둥절하고 당황케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칭찬을 획득하기로 하자. 나는 전장에서 부당한 비평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말했는데, 여기 또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다. 당신이 부당하게 비평되었다고 느껴져 노여움이 치밀어 올랐을 때, 당신은 그 노여움을 자제하고 이렇게 말하기로 하자. 잠깐만……딴은 나도 완전 무결한 사람은 아니니까. 만약 아인쉬타인이 99퍼센트나 잘못되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면, 나는 적어도 80퍼센트는 잘못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이 비평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도리어 감사해야겠는 걸. 그리고 거기서 나는 이익을 얻도록 노력해야 되겠어. 페프소덴트 컴퍼니와 사장 차알즈 럭먼은 보브 호프로 하여금 방송에 출연케 하기 위해 한 해에 백만 달러나 쓰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출연에 대해 칭찬하는 편지는 보려 하지 않고 비판적인 편지만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거이 참고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오드 회사는 모든 작업원들에게 회사를 비판하는 투서를 하게 했다. 관리와 작업에 무언가 결함이 있지 않을까를 꼭 알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의견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비누 판매원이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컬게이트의 비누를 팔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별로 주문을 잘 받지 못했으므로 혹시 직업을 잃지나 않을까 하고 근십했다. 그는 비누의 품질이나 가격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문제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래서 판매에 실패했을 때, 도대체 무엇이 잘못이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주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서성거리곤 했다. 그는 요령을 얻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열성이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그는 때로는 상인들에게 되돌아가서 말했다. 저는 비누를 펼려고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비평과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 돌아왔지요. 제가 아까 비누를 팔려고 했을 때, 저는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은 저보다도 훨씬 경험이 있으시고 성공하신 분이니 거절하지 마시고 비평을 내려 주십시오. 이 태도에 의해 그는 많은 벗을 만들었고 아주 귀중한 충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지금 세계 최대의 비누 제조업자 클게이트 팔롤리브 피트 비누 회사의 사장이다. 그의 이름은 E. H.리틀이라고 한다. 그는 미국의 작년도 다액 수입자 순위의 열 다섯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비평에 마음을 쓰지 않기 위한 세 가지 법칙――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을 기록해 두었다가 자기 자신을 비평하기로 하자. 우리는 완전해지기란 바랄 수 없으니까. E.H.리틀이 한 일을 실행하자. 편견이 없고 이익이 되는 건설적인 비평을 자진해서 구하도록 하자. 제 6 부 요 약 비평에 신경을 쓰지 않는 방법 제1법칙: 부당한 비평은 흔히 위장된 찬사이다. 그것은 흔치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질투나 선망을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죽은 개를 걷어차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제2법칙: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낡은 우산을 쓰고 비평이라는 비가 목덜미로 흘러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제3법칙: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을 기록해 두고 자기 자신을 비평해 보라. 우리는 완전해지는 것을 바랄 수 없으니, 최소한 E.H. 리틀이 한 것 같은 방식을 실행해 보자. 편견이 없고 이익이 되는 건설적인 비평을 자진해서 구하도록 하자. 제 7 부 피로와 고민을 예방하고 에너지와 정신을 왕성하게 하는 6원칙 23. 깨어 있는 동안의 생활에 하루 한 시간을 부가하는 방법 나는 괴로움을 예방하는 방법에 관한 책 가운데서 왜 피로의 예방법에 대해 1장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피로가 가끔 번뇌를 불러 일으키며 적어도 번뇌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피로는 흔히 감기를 비롯하여 다른 온갖 질병에 대한 육체적 저항력을 약하게 한다. 정신병 의사는 피로가 공포나 근심이라는 감정에 대한 저항력을 저하시킨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피로를 예방하는 것은 번뇌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표현이다. 에드워드 쟈코프슨 박사는 이보다 몇 걸음 전진하고 있다. 그는 휴양에 관해 두 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적극적인 휴양>>과 <<휴양의 필요>>의 두권이다. 시카고 대학 임상 생리학 연구소장으로 그는 다년간 의료의 한 방법으로서의 휴양에 대한 연구를 지도해 왔다. 그는 어떠한 신경적 또는 감정적 상태도 <완전한 휴양이 있기 전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것은 「당신이 휴양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계속 번민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피로와 번민을 예방하는 제1의 법칙은――가끔 휴식할 것. 피로하기 전에 휴식하라는 것이다. 어 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왜냐하면 피로는 놀라운 속도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미합중국 육군은 여러 번 시험한 결과 오랫동안의 군대 훈련으로 단련되어 있는 병자들도 한 시간에 십 분 가량 배낭을 내려 놓고 휴식하는 편이 행군도 더 잘 되고 지구력도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합중국 육군에서는 휴식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심장은 매일 철도 탄수차를 채우기에 족할 정도의 혈액을 온 몸에 순환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것은 24시간에 20톤의 석탄을 높이 3피트의 대 위에 넉넉히 퍼올릴 말한 에네르기를 소비하고 있다. 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중노동을 50년, 70년, 90년이나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은 견딜 수 있는가. 하버드 의학교의 윌터 캐논 박사의 설명을 듣기로 하자. 대개의 사람은 심장은 언제나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자미나, 실제로는 수축할 대마다 일정한 휴지 기간이 있다. 매분 70이라는 알맞는 속도로 고동칠 때, 심장을 실제로는 24시간 중에서 겨우 9시간 밖에 활동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1휴지 기간은 하루에 15시간이 넉넉한 셈이다. 제2차 대전 때 윈스턴 처칠은 60세 후기 70세 초기의 연배였지만, 전쟁 중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며, 영국의 육해군의 활동을 지휘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아침마다 11시까지는 잠자리에 누운 채 보고서를 읽고 명령서를 입으로 전달하며 전화를 걸어 중대한 회의를 열기도 했다. 점심 식사 후 그는 다시 침대로 되돌아가 한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 때가 되면 또 다시 침대에 누워 8시의 저녁 식사때까지 두 시간 잤다. 그는 피로를 회복한 것은 아니다. 회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예방했던 것이다. 여러 번이나 휴식하여 발랄하고 기운차게 깊은 밤까지 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존 록펠러 1세는 특풀한 기록을 두 가지 세웠다. 그는 그의 시대에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거부가 되었고 게다가 98세까지 오래 살았다. 어떻게 그처럼 해냈는가? 주요한 이유는 그가 잠수한 소질을 이어받았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매일 오후 사무실에서 반 시간의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던 일이다. 그는 매일 사무실이 소파에 눕고는 했다. 그리고 그가 코를 고는 동안은 합중국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전화통 앞에 불러 낼 수는 없었다. 유명한 저서 <<왜 피로한가>> 속에서 다니엘 W.조스링은 휴식이란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휴식은 수리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의 휴식일지라도 그 수리력은 매우 크니까. 5분간의 낮잠이라도 피로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야구계의 대원로 코니 맥은 시합 전에 낮잠을 자 두지 않으면 5회쯤에는 녹초가 되어 버린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일이 있다. 그러나 5분간이라도 낮잠을 자면 거뜬히 더블 헤더라도 해치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엘리너 루스벨트에게 백악관에서의 12년 동안 그토록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그녀의 숱한 사람들과 회견한다든가, 연설을 한다거나 하기 전에는 의자나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20분 동안 휴식하기로 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최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휴게실에서 딘 오틀러와 회견했는데, 거기에는 간단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매일 거기에 누워 휴식 시간에 한 시간 가량 자기로 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을 때는 곧잘 큼직한 안락의자에서 20-30준 동안 휴식합니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기운이 되살아납니다. 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에디슨은 그의 놀라운 에네르기와 내구력은 자고 싶을 때 자는 습관 덕분이라고 말했다. 나는 헨리 포오드가 80세의 탄생일을 맞이하기 직접에 그와 회견했는데, 매우 젊고 정정한 데 놀랐다. 그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나는 앉을 수 있을 때는 절대로 서 있지 않으며, 누울 수 있을 때도 결코 앉아 있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 근대 교육의 아버지인 호레스 만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와 같은 방법을 썼다. 그는 안티옥 칼리지의 학장 시절에 언제나 안락의자에 누운 채 학생들을 면접했다. 나는 헐리우드의 한 영화 감독에게도 같은 방법을 써보라고 권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고백했는데, 그 사나이는 잭 채트리크이다. 수년 전 나를 만나러 왔을 때의 그는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영화사의 단편부 부장이었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는 온갖 일을 다 해 보았따. 강장제며 비타민제를 비롯하여 갖가지 약을 복용했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매일 휴식을 취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무실에서 작가들과 회의를 할 때도 안락의자에 누워, 되도록 몸을 편하게 하라고 권고했던 것이다. 2년 뒤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주치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전에는 단편의 구상을 의논하거나 할 때 몸을 굳히고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누운 채 하고 있다. 요 20년 이래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일이 없다. 요즈음은 전보다 두 시간이나 많이 일하지만 피로한 일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당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속기 기자라면 에디슨이 했듯이 사무실에서 낮잠을 잘 수 없을 것이고, 회계원이라면 누운 채 부장에게 회계 보고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소도시에서 살며 점심 식사를 하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점심 식사를 한 다음 10분 쯤 낮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조지 C.마샬 장군은 그렇게 했었다. 그는 전시 중 군을 지휘하는 데 너무 바빴기 때문에 정오에는 반드시 휴양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당신이 50세가 지났어도 그럴 겨를이 없다고 한다면 재빨리 들 수 있을 만큼의 생명 보험에 들어야 한다. 요즈음 장례식 비용도 싸지 않고 갑작스럽게 죽는 일도 많다. 부인께선 당신의 보험금을 받아 젊은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잘 수가 없다면 저녁 식사 전에 한 시간은 눕도록 마음을 쓸 일이다. 그것은 하이볼 한 잔보다도 싸며 장거리 경주에는 5467배나 효과가 있다. 만약 5시에서 6시 또는 7시에 한 시간 잘 수 있다면, 당신은 깨어 있는 동안의 생활에 한 시간 덧붙인 것이 된다. 왜? 어째서? 왜냐하면 저녁 식사를 하지 전 한 시간 +야간 6시간의 수면―― 합계 7시간은 연속 8시간의 수면보다도 훨씬 당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육체 노동자는 만약 휴식 시간을 늘릴 수 다면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다. 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경영의 전문가로서 베들레헴 스틸 컴퍼니에서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었을 때, 이 사실을 실제로 입증해 보였다. 그는 노동자를 한 사람에게 하루에 12톤 반의 선철을 화차에 싣는 작업을 시키면, 정오에는 녹초가 되어 버리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온갖 피로의 요소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노동자들에게는 하루에 12톤 반이 아니라 47톤의 선철 싣기 작업을 시켜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에 의하면 어제까지의 약 4배의 작업을 시켜도 지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증명은? 테일러는 슈미트라는 사나이를 골라 스톱 위치에 의해 일하게 했다. 슈미트는 스톱 위치를 들고 있는 사나이의 명령대로 일했다―― 자아, 선철을 들어올리고 걸어라……자아, 앉아서 쉬어라……자아, 걸어라……자아, 쉬어라 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이 12톤 반밖에 운반하지 못하는데, 슈미트는 매일 47톤의 선철을 운반했다. 그리고 그는 테일러가 베들레헴에 있는 3년 동안 이 속도로 일을 계속했다. 슈미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치기 전에 쉬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시간 동안에 약 26분을 일하고 34분을 쉬었다. 그는 일하는 시간보다도 쉬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거의 4배의 일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풍설인가? 아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프레데릭 윈스로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법>>을 한 번 읽어 보라. 다시 한 번 되풀이 한다. 군대에서 파고 있는 일을 실행하라. 가끔 휴식하라. 당신의 심장과 똑같이 일하자 지치기 전에 쉬어라 이렇게 하면 당신이 깨어 있는 인생에 하루 한 시간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24. 무엇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그 대책은? 여기에 경이적이고도 의의깊은 사실이 있다. 정신적 작업만으로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보스러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년 전 과학자들은 사람의 두뇌가 피로하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가, 그것을 발견하려고 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뇌를 통과하는 혈액이 활동 중에는 전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하는 품팔이 노동자에서 채취한 혈액에는 피로 독소며 피로 생성물이 가득차 있지만, 엘버트 아인쉬타인의 뇌에서 뽑아 낸 피 한 방울에는 그것이 하루의 끝일지라도 피로 독소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뇌에 관한 한 그것은 8시간 혹은 12시간을 활동한 뒤라도 맨 처음과 마찬가지 정도로 활발하게 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뇌는 전혀 피로를 알지 목한다. 그럼 무엇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정신병 학자는 피로의 대부분은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태도에 원인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정신병 학자 J.A.하드필드는 그의 저서 <<힘의 심리>> 속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피로는 대부분은 정신적 원인에서 오고 있다. 순수하게 육체적 원인에서 오는 피로는 실로 드물다. 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뛰어난 정신병 학자의 한 사람인 A. A. 부릴 박사는 한 걸은 더 나아가 앉아 일하는 건강한 좌업 노동자의 피로의 백 퍼센트는 심리적 요소, 즉 감정적 요소가 원인이다. 라고 단언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감정적 요소가 좌업 노동자를 피로하게 하는 것일까. 기쁨인가, 만족인가? 아니, 결코 아니다. 지루함, 원한, 정당하게 평가되어 있지 않느다는 기분, 초조, 불안, 번뇌――이러한 감정적 요소가 좌업 노동자를 피로케 하고 감기이 원인이 되며 생산을 감퇴시키고, 신경성을 띤 두통을 느끼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감정이 신체 내에 신경적 긴장을 낳게 하기 때문에 피로하게 되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생명 보험회사는 피로에 관한 작은 책자 속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격한 일 자체에서 오는 피로는 대개의 경우 충분한 수면이나 휴식으로 회복된다. ……번민, 긴장, 감정의 혼란이 피로의 3대 원인이다. 가끔 육체적, 정신적으로 기인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도 그것들이 원인이 되는 일이 많다. ……긴장한 근육은 일하고 있는 근육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편히 쉬라! 중요한 책무를 위한 에네르기를 축적하라. 지금 곧 멈추고 자기 자신을 검토해 보라. 이 부분을 읽어 갈 때 당신은 책을 노려 보고 있지나 않는가. 눈과 눈 사리에 어떤 긴장감을 닫지는 않는가. 느긋하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가. 어깨를 떠벌리고 있지 않은가. 얼굴을 굳히고 있지는 않는가. 만약 당신의 온몸이 낡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 순간 신경적 긴장과 근육적 긴장을 발생케 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정신적 노동을 함으로써 이런 불필요한 긴장을 생기게 하는가. 조스링은 곤란한 일은 노력의 감정을 필요로 하고 그것이 없으면 잘 되지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믿어 버리는 것이 크나큰 장해가 되어 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집중할 때에 얼굴을 찡그리고 어깨를 으쓱대며 노력의 동작을 일으키기 위해 근육에 힘을 넣지만, 그것은 우리 뇌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놀라운 비통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금전을 낭비하려는 생각 따위는 꿈에도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술취한 수부처럼 엉망진창으로 그들의 에네르기를 낭비한다는 것이다. 이 신경 피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휴식, 휴식, 휴식! 일을 하면서 휴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당신은 일생의 습관을 전환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력할 가치가 있다. 그에 의해 당신의 생애에 일대 혁명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윌리엄 제임즈는 그의 <<휴양의 복음>>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인의 과도한 긴장, 고르지 못한 기분, 숨참, 강열함, 격동의 표정……이것들은 참으로 나쁜 습관이며 전혀 취할 나위없는 일이다. 긴장은 습관이다. 휴식도 습관이다. 나쁜 습관은 타파할 수가 있고 좋은 습관은 형성할 수가 있다.」 어떻게 하면 편안히 하는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가, 아니면 신경에서부터 시작하는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언제나 근육을 편안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하는지 한 번 해 보자. 먼저 눈부터 시작하자. 이 단락을 끝까지 다 읽고나면 눈을 감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쉬어라, 쉬어. 긴장은 그만 두라. 찡그린 얼굴도 그만 두라. 쉬어라 쉬어. 1분 동안 조용히 몇 번이고 이렇게 계속 말하는 것이다. 2,3초가 지나면 당신은 눈의 근육이 이에 따르기 시작한 것을 깨닫지 못했는가. 누군가의 손이 긴장을 씻어 버린 걱처럼 느끼지 않았는가.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이 1분 동안 휴양의 기술의 온갖 열쇠와 비결을 터득한 것이다. 턱, 얼굴의 근육, 목, 어깨, 온몸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들어맞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관은 눈이다. 시카고 대학의 에드먼드 재콥슨 박사는 만약 인간이 눈이 근육을 완전히 편안하게 할 수가 있다면 모든 번민을 잊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어째서 눈의 신경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하면, 눈은 신체가 소비하고 있는 온 신경 에네르기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력이 완전한 수많은 사람들이 눈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눈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 뷔기 보므는 어렸을 때, 한 노인으로부터 참으로 귀중한 교훈을 받았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넘어져 무릎과 손목을 다쳤다. 그 노인은 전에 서커스의 광대였는데 그녀를 도와 일으켜 주고 그녀의 흙을 털어 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다친 것은 몸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낡아서 풀기없는 양말처럼 부드럽게 하고 있어야 해. 이리 오너라, 할아버지가 하는 방법으로 보여 줄 터이니. 그 노인은 그녀와 다른 아이들에게 넘어지는 방법, 물구나무서는 방법, 공중제비를 도는 방법 들을 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흐늘거리는 낡은 양말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언제나 몸을 편하게 하고 있는 거야. 라고 타일렀다. 당신은 어떤 때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몸을 편안히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편안히 하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편안히 한다는 것은 온갖 긴장과 노력이 없는 것이다. 무아무심의 상태로 들어가는 일이다.우선 눈과 얼굴의 근육을 쉬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몇 번이든 <쉬어라……쉬어라……몸을 편안하게 하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에네르기가 안면 근육에서 신체의 중심부로 흘러가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갓난아이처럼 긴장에서 해방될 것이 틀림없다.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인 가리 쿨치도 이렇게 하고 있었다. 헬렌 제퍼슨은 막이 오르기 전에 곧잘 가리 쿨치를 만났는데, 그녀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 아랫입술은 축 늘어뜨리고 있더라고 나에게 이야기한 일이 있다. 다음에 몸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시사를 다섯 가지 제시한다. 1. 이 문제에 관한 가장 좋은 저서의 하나인 데이빗 해럴드 핑크 박사의 <<신경적 긴장으로부터의 해방>>을 읽을 것. 다니엘 W.조스린의 <<어째서 피로해 있는가>>도 한 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2. 언제든지 몸을 편안하게 하라. 신체를 헌 양말처럼 흐늘흐늘하게 한다. 나는 낡아빠진 양말 한 짝을 책상 위에 놓아 둔다. 언제나 흐늘흐늘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양말이 없다면 고양이라도 좋을 것이다. 양지바른곳에서 자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집어 올린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뒤의 다리가 물에 젖은 신문처럼 축 늘어진다. 이제까지 나는 지친 고양이, 신경 쇠약에 걸린 고양이, 불면증이나 번민이나 위암에 걸려 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ㄷ. 당신이 고양이처럼 몸을 편안하게 할 줄 안다면 틀림없이 이러한 불행을 면할 수가 있을 것이다. 3. 될 수 있는 대로 편안한 자세로 일하라. 신체의 긴장은 어깨의 뻐근함과 신경 피로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잊지 말라. 4. 하루에 너덧 번 자신을 검토해 볼 것. <나는 일을 실제 이상으로 곤란하게 만들고 있지나 않을까? 나는 이 일에 관계없는 근육을 쓰고 있지나 않을까?>하고 스스로 물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몸을 편안하게 하는 습관에 도움이 될 것이다. 5. 하루가 끝났을 때 다시 자신에게 물어본다. <얼마나 나는 피로한가. 만약 피로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한 정신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그 방법 때문이다. 다니엘 조스린은 말하고 있다. 나는 하루가 끝났을 때의 일의 결과를 얼마나 피로해 있는가로 계산하지 않고, 얼마나 피로해 있지 않은가로 계산한다. 하루가 끝나고 몹시 피로를 느낄 때는 일의 양과 질에 관해 전혀 효과가 오르지 않은 날이없음을 안다. 라고. 만일에 미국의 모든 실업가가 같은 교훈을 배운다면 과도한 긴장에 의한 사망율은 격감될 것이다. 그리고 피로나 번민으로 나가떨어진 사람들로 요양소나 정신 병원이 만원이 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25. 주부가 번뇌를 면하고 언제나 젊게 있으려면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의학 클라스의 하나에 출석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갔다. 그렇다. 의학 클라스이다. 그것은 보스턴 의료원에서 일 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것으로, 거기에 출석이 허요되는 환자는 미리 정기적으로 철저한 건강 진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 클라스는 실제로는 심리학적 진료소인 것이다. 정식으로는 영용 심리학 클라스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 참 목적은 번뇌로 병이 든 사람들을 다루는 데 있다. 그리고 환자의 다수가 감정적으로 이상이 있는 한 집안의 주부들이다. 어떻게 되어 이 클라스는 발족한 것일까? 1930년 윌리엄 오슬러경의 가르침을 받은 조셉 프라트 박사는, 보스턴 의료원에 오는 환자의 다수가 겉으로 보면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실제로는 온갖 질병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부인의 손은 관절염으로 몹시 구부러져 있어 아주 부자유스럽다. 또 다른 부인은 위암의 징후가 있어 고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등이 아프고 두톨 때문에 만성적으로 피로해 있으며 혹은 막연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이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철저한 건강 진단을 한 결과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구식 의사들이었다면 틀림없이 기분 탓이다. 상상이다 하고 처리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프라트 박사는 환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그것을 잊도록 하시오, 라고 말해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부인들의 대부분은 병에 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병을 잊어 버릴수 있다면, 벌써 자기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는 일부의 의사나 관계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 클라스를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클라스는 훌륭한 업적을 올렸다. 개설된 이래 18년 동안에 몇 천 명이라는 환자가 거기에 출석함으로써 완쾌된 것이다. 환잔 중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 같은 종교적인 열성으로 해마다 출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조수는 9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출석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진료소에 갔을 때 자신은 이동성 신장과 어떤 심장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너무나 근심하고 긴장한 나머지 때때로 눈 앞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된 일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마음이 차분해져서 쾌활하고 건강하다. 그녀는 40살을 조금 넘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손자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가정 불화로 너무도 괴로워하여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진료소에서 괴로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괴로워하지 않는 벙법을 알았습니다. 지금의 나의 생활은 정말로 평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클라스의 의학 고문이 로즈 힐퍼딩 박사는 번뇌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괴로움을 털어 놓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변(排便)>이라고 부른다. 환자들은 여기에 와서 자세히 자기들의 번뇌를 털어 놓고 그것을 마음 속에서 몰아낼 수가 있다. 혼자 걱정하며 자기의 가슴에만 품고 있는 한 크나 큰 신경적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고민을 서로 나누어야만 한다. 고생도 서로 나누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자기의 고민을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껴야만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나의 조수는 한 부인이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 놓음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진 것을 실제로 보았다. 그녀의 고생은 가정 문제였다. 처음에 그녀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는 긴장으로 딱딱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침착해져 갔다. 면접이 끝나갈 무렵에는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그렇게 간단하게는 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누구에겐가 털어 놓았다는 것, 조금의 충고와 동정을 받았다는 것에 의하는 것이다. 그녀의 심경을 변화하게 한 크나큰 치료적 효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신 분석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 말의 치유력을 토대로 하고 있다. 프로이트 이래로 정신 분석자는 만약 환자가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그의 내부의 불안에서 안심을 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째서인가? 아마도 그것은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자신들의 괴로움을 웬만큼 분명하게 할 수가 있으며 사물의 경중을 판단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대답은 아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털어 놓는 것>,< 가슴의 덩어리를 토해 내는 것>이 곧 안심감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에게 무언가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것을 털어 놓고 말할 사람을 찾아 내야만 되지 않겠는가. 물론 나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늘어 놓거나 불평을 늘어 놓거나 하여 모든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 의논을 받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친적, 의사, 변호사, 목사, 모두 좋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조언을 바라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주십시오. 조언을 해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나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다른 각도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당신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이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주시는것만도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라고. 그러나 만약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정말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인명 구조 동맹의 이야기를 하겠다. 이것으 보스턴 의료원과는 아무런 관게도 없다. 인명 구조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흔하지 않은 동맹의 하나이다. 그것은 본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해가 지남에 따라 일을 확대하여 지금은 불행한 사람들이나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조언을 주고 있다. 나는 그 동맹에서 불행한 사람에게 조언을 주고 있는 로나 본넬양과 회담한 일이 있었는데, 이 책의 독자로부터의 편지에는 기꺼이 회답을 낸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누구건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에게 가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편이 당신에게 보다 더 큰 안심감을 줄 테니까. 번민을 남김없이 다 이야기해 버릴 것, 이것이 보스턴 의료원 클라스에서 쓰여지고 있는 주요한 방법인데 그외에도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이것은 주부인 당신이 가정에서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1. 감명을 줄 듯한 책을 위해 노트나 스크랩북을 준비할 것. 그 속에 당신을 감동시키고 향상시키는 시, 짤막한 기도의 말, 인용문을 붙여 놓는다. 그렇게 하면 음산하게 비오는 오후나 어쩐지 마음이 을적할 때, 이 노트 가운데서 마음이 활짝 개게 해 줄 만한 시나 기도의 말이 발견될 테니까. 예의 의료원 환자 중에는 오랜 세월 이러한 노트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그것은 <팔에 맞는 주사>라고 부른다. 2. 다른 사람의 결점에 언제까지나 구애되지 않도록 할 것. 확실히 당신의 남편에게도 결점은 있다! 그가 성인이었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잔소리가 많고 불평 투성이에다 여윈 얼굴의 마누라가 되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 한 부인이 있었는데, 주인 어른께서 돌아가시면 어쩌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단번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 남편의 장점을 종이에 주옥 적어 보았더니 퍽 많았다. 당신의 전제적인 폭군와 결혼했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거든 당신도 이런 방법을 한 번 써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의 좋은 점을 전부 써 보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남성이었다고 깨달을 것이다. 3. 이웃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 당신과 같은 고장에서 인생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이고도 건강적인 흥미를 깊게 해 갈 것. 매우 배타적이어서 자신에게는 한 사람의 친구도 없다고 믿고 있는 어느 부인이, 다음에 만난 사람에 관해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시내 전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배경, 주위,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걸어 보았다. 그 결과 지금 은 괴로움이 없어지고 행복하며 남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의 스케쥴을 만들 것. 클라스에서 많은 주부들이 해야만 하는 일에 끊임없이 쫓기는 것처럼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이 쫓기고 있는 기분과 번민을 고치기 위해 매일 밤 다음날 스케쥴을 만들도록 시사되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보다 많은 일을 마쳤고 피로는 줄고 자랑스러움과 성취감을 느껴 쉬는 시간도 화장하는 시간도 생겼다. (부인은 매일 화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부인은 신경 쇠약 같은 것은 걸리지 않는 법이다.) 5. 마지막으로 긴장과 피로를 피할 것. 몸을 편하게 할 것. 편하게. 긴장과 피로만큼 당신을 빨리 늙게 하는 것은 없다. 이것처럼 당신의 싱싱한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은 없다. 나의 조수는 보스턴의 사상 조절 클라스에서 보울 E. 존슨 박사의 지도 아래 유연 체조를 했는 데 10분 뒤, 그녀는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은 채 잠이 들었더라고 한다. 번민을 몰아 내기 위해서는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주부로서 몸을 편하게 해야만 한다. 당신에게는 다행한 일이 있다. 당신은 언제라도 누울 수 있다. 마룻바닥에도 누울 수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딱딱한 마루는 탄력이 있는 침대보다 몸을 편히 하기에 적합하다. 저항이 강하기 때문이 척추에 좋은 것이다. 그럼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운동법을 들기로 하겠다. 일 주일 동안 계속해 보고, 당신의 용모나 성질에 어떠한 효과가 나타났는가를 알아 보리고 하자. a. 피로하다고 느끼었을 때는 마룻바닥에 누워, 될 수 있는 대로 기지개를 켠다. 뒹굴어도 좋다. 하루에 두 번 한다. b. 눈을 감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해 보는 것도 좋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하늘은 파랗게 맑다. 자연은 평온하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나는 자연의 아이로서 우주와 조화하고 있다. 그보다는 기도하는 편이 한층 더 좋을 지도 모른다. c. 만약 누울 수 없으면, 다시 말해서 쇠고기를 불에 올려 놓고 요리하는 중이어서 시간이 없다면, 의자에 앉아서도 거의 같은 효과를 올릴 수가 있다. 몸을 편하게 하는 데는 딱딱하고 똑바른 의자가 가장 적합하다. 이집트의 좌상처럼 똑바로 의자에 앉아,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넓적다리 위에 놓는다. d. 그리고 천천히 손톱 끝을 긴장시켰다가 힘을 뺀다. 다리의 근육을 긴장시킨다. 그리고 힘을 뺀다. 온 몸의 모든 근육을 아래로부터 위로, 같은 운동을 되풀이 한다. 그리고 목에 이른다. 머리를 풋볼처럼 힘있게 돌린다. 그러는 동안 내내 <쉬어라 ……쉬어라……>하고 계속 말한다. e. 천천히 안정된 호흡으로 신경을 가라앉힌다. 심호흡을 한다. 인도의 고행자가 하는 것은 잘못되어 있지 않다.――리드미컬한 호흡은 신경을 가라앉히기에는 무엇보다고 좋은 방법의 하나이다. f. 당신 얼굴의 주름살과 가시돋힌 듯한 표정에 마음을 써서 그것을 없애라. 이마에 그려진 여덟 팔자나 입가의 주름을 펼 것. 하루에 두 번 그렇게 하면, 미용원에 가서 마사지를 부탁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주름살은 말끔히 없어져 버릴 테니까. 26. 피로와 번뇌를 막는 네 가지의 좋은 작업 연습 *좋은 작업 습관의 첫째――당면한 문제에 관계있는 서류 외엔 모두 책상에서 치워 버려라. 시카고 노우드웨스턴 철도 회사 사장 롤란드 L. 윌리엄즈는 말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서류를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사람이 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는 것을 모조리 치워 버리면,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일을 할 수 있다를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능란한 살림살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능률을 올리는 첫걸음이다. 와싱턴의 국회 도서관 천정에는 <법왕의 질서는 하늘의 첫째 법칙이다>라는 글귀가 페인트로 씌어 있다. 질서는 일의 첫째 법칙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비지니스맨의 책상 위에는 몇 주일 동안이나 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서류로 어지럽혀져 있다. 사실 뉴올리안즈의 어느 신문사 발행인이 나에게 한 말인데, 비서가 그의 책상 하나를 치웠더니 2년 전에 잃어버렸던 타이프 라이터가 나왔다고 한다. 답장을 보내지 않은 편지, 보고, 메모로 어질러져 있는 책상은 보기만 해도, 혼란, 긴장, 번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 이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다. 그것은 예의 <꼭 해야만 할 많을 일, 그것을 할 시간이 없는 것>이며 이것은 사람을 긴장과 피로로 몰아 댈 뿐만 아니라 고혈압, 심장병, 위암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대학 의학부 교수인 존 H.스토크 박사는, 일찍이 온 미국 의학협회에서 <장기의 여병으로서의 기능적 노이로제>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를 했는데, 그 가운데서 <환자의 정신 상태에서 탐구해야 하는 것>으로서 11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그 첫째 항목은 다음과 같다. 「해야만 한다는 관념 또는 의무감. 오직 해야만 하는 일이 그칠 줄 모르는 긴장.」 그러나 책상 위를 정돈하고 결단을 내린다는 그러한 기본적인 방법으로 고혈압, 의무감, 해야만 하는 일이 그치지 않는 긴장 따위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 유명한 정신병 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이 간단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신경 쇠약을 방지할 수 있었던 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사나이는 시카고의 큰 회사 중역이었는데 새들러 박사에게로 왔을 때, 긴장, 초조, 번민으로 바야흐로 거꾸로 떨어지기 직전 상태에 있었다. 그래도 일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도움을 구했던 것이다. 새들러 박사는 말하고 있다. 이 사나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그것은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나는 그 일을 그 자리에서 처리했다. 그것이 나의 방침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끝나자, 곧 또 전화가 걸려 왔다. 긴급을 요하는 문제였으므로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번째의 방치에 대해 나의 의견을 들으려고 온 것이었다. 그 일이 끝나서, 나는 손님 쪽을 보고,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을 사과했다. 그런데 그는 활짝갠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 이 사나이는 새들러에게 말했다. 지금 이 10분 동안에 나는 내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을 안 것 같습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 일하는 습관을 바꾸렵니다…… 그전에 선생님, 실례입니다만 책상 위를 좀 보여 주실 주는 없으시겠습니까? 새들러 박사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환자가 물었다. 처리되지 않을 일거리는 어디에 넣어 두셨습니까? 모두 처리가 끝났습니다. 새들러 박사가 대답했다. 답장을 내지 못한 편지 같은 것은? 그런 것은 한 통도 없습니다. 나는 편지를 받는 즉시 답당을 쓰고 있답니다. 6주일 후, 이 중역은 새들러 박사를 그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는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도 달라져 있었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책상 속에는 처리되지 않는 일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중역은 말했다. 여섯 주일 전에 나는 두 개의 사무실에 세 개의 책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책상은 처리되지 않을 일거리로 파묻혀 있었습니다. 일거리가 끝나는 일이라곤 없었습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보고서며 묵은 서류를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 나는 책상 하나로 일하고 있으며 일거리가 생기면 당장에 처리하여, 처리되지 못한 일거리 때문에 초조하거나 긴장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완전히 회복된 일입니다. 내게는 이제 아무 데도 나쁜 곳은 없습니다.! 합중국 최고 재판소 장관이었던 차알즈 에반스 휴즈는 말했다. 사람은 과로가 원인이 되어 죽지는 않는다. 낭비와 번민이 원인이 되어 죽는 것이다. 그렇다. 낭비와 일거리가 언제까지나 밀려 번민으로 죽는 것이다. *좋은 작업 습관의 둘째――중요도에 따라 일을 처리해 나가라. 시티즈 서비스 컴퍼니의 창립자 헨리 L. 두허치는 월급액과 관계없이는 찾아 낼 수 없는 재능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다. 이 극히 귀중한 능력이란 하나는 생각하는 능력, 또 하나는 중요도에 따하 일을 처리해 가는 능력이다. 빈털털이 신세에서 12년 동안에 페프소덴트 회사의 사장으로 출세한 차알즈 럭먼은 자신은 헨리 두허치가 거의 찾아 낼 수 없다고 말한 두 가지 재능을 늘인 덕택으로 성공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차알즈 럭먼은 말했다. 나는 실로 오래 전부터 아침 5시에 일어난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 에는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일을 그 중요도에 따라 처리하는 계획을 세우는 데는 이른 아침이 제일이다. 미국에서 제일 성공한 보험 외교원의 한 사람이 프랭클린 베드거는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데 아침 5시까지 기다리기 않는다. 그는 그 전 날 밤에 그것을 계획한다. 이튿날 팔 보험 액수를 정하는 것이다. 만약 팔다가 남으면 그 금액을 다음날 목표에 덧붙이는 것이다. 나는 오랜 경험에서 사람은 반드시 사물을 그 중요도에 따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 가장 중요한 사항을 맨 처음에 한다는 계획이 그때그때 형편되어 가는 데 따라 되는 대로 하는 방법 보다는 훨씬 좋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일 조지 버나드 쇼오가 첫째 사항을 맨 먼저 할 것을 엄중한 법칙으로 해 두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작가로서 실패했을 것이고 한평생 은행의 출납계원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그의 플랜은 매일 반드시 5페이지씩 쓰는 일이었다. 이 계획에 의해 그는 어렵게 9년 동안 노력하여 매일 5페이지를 계속 썼다. 그 9년 동안의 소득은 30달러, 하루에 1페니밖에 되지 않았지만, 로빈슨 크루소조차도 매일매일 일의 플랜을 세웠던 것이다. * 좋은 작업 습관의 셋째――문제에 직면하면 즉각 그 자리에서 해결하라. 만약 결단에 필요한 사실이 쥐어져 있다면, 그 결단을 연기하지 말라. 나의 클라스의 학생이었던 고 H. P. 하우엘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가 U.S. 스틸의 이사였을 때, 이사 회의는 언제나 여러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의안이 심의되어 결정은 대부분 그 다음으로 미루어지곤 했다. 그 결과 각 이사들은 산더미 같은 보고서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 연구해야만 했다. 드디어 하우엘씨는 한 번에 한 가지 의안을 채택하여 심의 결정하기로 하자고 제안하여 전원을 설득했다. 연기나 보류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보고를 구하거나 어떤 일을 실행하게 되거나 실행하지 않거나, 아무튼 그것을 결정한 다음이 아니면 다음 의안으로 옮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다.기록해 놓은 메모는 정리되고 일정표는 깨끗해졌으며, 보고서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갈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골치를 앓지 않아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U.S. 스틸의 이사 회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좋은 법칙이다. *좋은 작업 습관의 넷째――조직화, 대리화, 지휘화하는 것을 배우라. 대부분의 실업가는 책무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시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혼자 하려고 하다가 아직 그럴 정도의 나이도 안됐는데 죽어 간다. 자질구레한 일과 혼란에 짓눌리어 고민, 불안, 긴장, 초조에 몰린 결과인 것이다. 책임을 위임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경험상 잘못된 사람에게 권위를 맡긴 데서 일어나는 재난도 알고 있다. 그러나 권위를 위임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사들은 번민, 긴장, 피로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면 그것은 실행해야만 한다. 큰 사업을 이룩한 사람으로 조직화, 대리화, 지휘화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50세나 60세 초기에 심장병으로 덜컥 죽을 것이다. 실례 말인가요? 날마다 실리는 신문의 사망난을 보면 될 것이다. 27. 피로, 번뇌, 원한을 낳게 하는 권태를 몰아내는 방법 피로의 주된 원인의 하나는 권태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엘리스라는 속기사의 등장을 부탁하기로 하자. 어느날 밤, 엘리스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정말 지쳐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고 등살도 뻣뻣했다. 그녀는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곧장 잠자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붙잡기 때문에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 친구로부터였다! 댄스 파티에 가자는 초대였다! 그녀의 눈은 빛났으며 순식간에 팔팔해졌다. 그녀는 2층으로 뛰어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새벽 3시즘까지 춤을 추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도 지쳐 있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너무나도 마음이 들떠 있어 잠도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대체 엘리스는 여덟 시간 전에 정말 지쳐 있었을까? 분명히 지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로 우울해 있었다. 아마도 인생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엘리스와 같은 사람이 몇 백만 명이나 있을 것이다. 당신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적 태도가 육체적 노력보다 한층 더 피로를 낳게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수년 전 조셉 E. 바마크는 <<심리기록>> 속에서 권태가 피로의 원인이 되는 것을 입증하는 보고를 발표했다. 그는 한 무리의 학생에게 그들이 흥미를 가질 수 없는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학생들은 피로했고 졸음이 왔으며, 두통과 안정의 피로 등을 호소하며 초조한 심정이 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위에 변조가 나타난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상상>이었을까? 아니다. 이러한 학생들에 대해 신진대사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사람이 권태를 느끼면 인체의 혈압과 산소의 소비량이 현실적으로 감소되고, 사람이 자신의 일에 흥미와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신진 대사의 속도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무언가 흥미를 느끼고 흥분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는 최근 루이스 호반에 있는 캐나다 록키 산맥에서 휴가를 보냈다. 나는 수일 동안 코럴크리크를 따라 우리의 키보다로 높은 잡목이 우거진 숲을 헤치며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진 나무 밑을 빠져 나가기도 하면서 송어 낚시를 했는데, 이것을 여덟 시간이나 계속한 뒤에도 지치지 않았다. 어째서 그랬을까? 나의 들뜬 마음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없이 성공감에 젖어 있었다. 큼직한 놈을 여석 마리나 낚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령 내가 낚시질에 지루해 했다면 어떤 기분이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해발 7천 피트나 되는 고지에서 심한 일에 녹초가 되어 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등산과 같은 격렬한 활동에 있어서도 소모적인 일 이상으로 지루함이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이를테면 미니애폴리스의 은행가 S.H. 킹맨씨는 나에게 이 사실을 실증하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1943년 7월,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산악회에 특별 유격대원의 등산 훈련에 필요한 안내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킹맨씨는 이 안내자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그리하여 40세에서 49세까지의 안재자들은 젊은 군인들을 인솔, 빙하를 건너고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40피트나 되는 벼랑을 기어 올라갔다. 그들은 작은 요호 계곡에 있는 여러 개의 꼭대기에도 기어 올라갔다. 그리하여 15시간에 걸친 등산 끝에 원기 발랄했던 젊은이들은 녹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피로는 이제까지 훈련되어 있지 않았던 근육을 썼기 때문이 일어난 것이었을까? 격렬한 유격대의 훈련을 거쳐 온 젊은이들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들은 등산에 지루했기 때문에 피로했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도 피로하여 식사도 하지 않고 자 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병사들보다도 두 새 세 배나 나이가 많은 안내자들은? 그들도 지치기는 했지만 그러나 완전히 지쳐 버리지는 않았다. 안내자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몇 시간이나 자지 않고 앉아 그날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녹초가 되지 않았던 것은 등산에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럼비아 대학의 에드워드 손다이크 박사는 피로에 관한 실험을 할 때, 몇몇 청년에게 끊임없이 흥미를 갖게 하면서 약 1주일이나 잠을 못 자게 했다. 박사는 말하고 있다. 일이 감퇴되는 유일한 원인은 권태이다. 만약 당신이 정신 노동자라면 일의 양으로 피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의 양으로 피로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지난 주의 하루에 당신이 자주 일의 방해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편지 답장도 내지 않았다. 약속을 깨뜨렸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날을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신이 한 일은 모두가 헛수고로 끝났다. 그리고 당신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깨질 듯한 머리를 안고. 다음날, 모든 일이 형편좋게 잘 되었다. 전날의 40배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눈처럼 희 치자와도 같은 신선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당신에게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있다. 배워야 할 교훈은? 다음과 같은 일이다. 우리의 피로는 가끔 일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민, 좌절, 원한이 원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장을 집필하는 도중, 나는 제롬 카인의 즐거운 뮤지컬 코메디 <쇼우 보트>의 재연을 구경하러 갔다. <목화꽃 필 때>의 앤디 선장을 그의 철학적 막간극 가운데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 행복한 인간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보다 많은 에네르기와 행복을 가졌고, 보다 적은 고민과 피로를 갖기 때문이다. 당신의 흥미가 있는 곳에 에네르기도 있다. 잔소리가 심한 아내를 데리고 1마일을 걷는 것은, 사랑스러운 연인과 10마일을 걷는 것 이상으로 피로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느 속기사의 한 실례를 소개하겠다. 오클라호마의 어느 석유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속기사이다. 그녀는 매달 1주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인쇄가 되어 있는 대차 계약서에 숫자며 통계를 써 넣는 것이다. 그 일이 너무나도 지루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그것을 재미있게 해보리라고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 날마다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과의 속기사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무엇을 가져오게 했는가? 칭찬? 감사? 승급? 중급? 아니다, 아니다, 천만에. 그러나 지루함에서 오는 피로를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지루한 일을 흥미있는 것으로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에네르기와 열의를 가지고 지금까지 이상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처녀와 결혼했기 문이다. 다음에는 자기의 일이 재미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이익을 본 속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녀는 언제나 일에 대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일리노이주 엘름허스트에 사는 발리 G 골든 양으로, 그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내 사무실에 속기사가 네 명이 있어 저마다 4,5 명의 사람들 편지를 받도록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할당된 일이 일시에 쏟아져 들어와서 바빠 쩔쩔매는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장이 길다란 문장으로 된 편지를 다시 치라고 하기에 나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모조리 다시 치지 않더라도 정정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부장은 당신이 싫다고 하면,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으나 다시 치기 시작했을 때, 문득 나를 대신해 이 일을 하려고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급료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져서, 갑자기 정말은 싫은 일이었지만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해주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일을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하자, 정말로 조금 즐거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일이 즐거워지자 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시간 외 근무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나는 이 새로운 마음가짐 덕택으로 부지런히 일을 잘 한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장이 전속 비서가 필요해졌을 때 그는 나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시간 외에 근무를 하게 되어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에서 생기는 힘의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발견이었으며, 매우 훌륭하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골든양은 한스 바이힌겔 교수의 기적을 낳는 <것처럼> 철학을 사용한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 마치 행복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마치 자신의 일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행동하면,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이 그 흥미를 진실한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피로, 긴장, 고민을 줄여 주는 것이다. 수년 전 하이런 A.하워드는 일대 결심을 했다. 그것이 그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을 재미있게 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정말 하찮은 일이었다. 다른 소년들이 야구를 하거나 여아자이를 놀리거나 하고 있을 때, 그는 고등학교 식당에서 접시를 씻기도 하고 카운터를 닦기도 하며, 아이스크림을 내놓거나 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이런 하워드는 자신의 일을 경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계속해야만 했으므오 아니스크림에 관한 연구를 하려고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 어떤 재료가 사용되고 있는가. 어째서 맛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가. 그는 이이스크림의 화학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화학 코스의 수석이 되었다. 그는 점점 영양 화학에 흥미를 갖게 되어 매사추세츠 스테이트 칼리지에 입학, 식품 화학을 전공했다. 뉴욕의 코코아 거래소가 코코아의 초콜렛 이용에 관한 현상 논문을 전국의 학생들로부터 모집했을 때 하워드는 입선하여 상금 백 달러를 획득했다. 취직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매사추세츠주 아마스트의 자기 집 지하실에 개인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밀크 속의 박테리아 함유량을 계산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었다. 하워드는 아마스트에 있는 열 네 곳의 우유 회사를 위해 박테리아를 계산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조수를 두 사람 고용해야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후에 그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현재 영양 화학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때에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물러났거나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창의와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 의해 이어질 것이다. 25년 후에는 하이런 하워드는 아마 그가 종사하고 있는 일의 분야에 있어서 지도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손에서 카운터 너머로 아이스크림을 샀던 그의 급우들의 대부분은 직업을 잃고, 낙담하여 정부를 저주하며 우리는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불평을 늘어 놓을 것이다. 하워드도 만약 그가 지루한 일을 재미있게 하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찬스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전, 공장 안의 선반 곁에 서서 볼트를 만드는 단조로운 일에 몹시 싫증을 내고 있는 젊은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샘이었느데, 샘은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었으나 그 다음 일이 발견될 것 같지 않아 그대로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루한 일을 어쨌듯 해야 하는 이상, 어떻게 든지 그것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옆의 기계를 움직이는 직공과 경쟁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하는 일은 꺼칠꺼칠한 표면을 매끈하게 깎는 일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볼트를 알맞는 지름으로 자르는 일이었다.그들은 신호와 함께 기계에 스위치를 넣어 누가 가장 많이 볼트를 만들어 내는가 해 보았다. 현장 주임은 샘의 일이 빠르고도 정확한 데 감탄해서 알마 안되어 곧 그를 좀 더 좋은 일을 하게 했다. 그것이 승진하게 된 실마리였다. 30년 뒤 그때의 샘이었던 새뮤얼 보클레인은 볼드윈 기관차 제조공장의 사장이 되었다. 망약 그가 지루한 일을 재미있게 하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한평생 직공으로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 유명한 라디오 뉴스 해설자 H.V. 칼텐보르는 일찍이 나에게 어떻게 하여 지루한 일을 재미있게 했는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22살 때 가축 수송선을 타고, 송에 사료를 주기도 해고 물도 먹이면서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에서의 자동차 여행을 마친 뒤, 그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파리에 당도했다. 주머니 속에는 한 푼도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5달러에 저당잡혀서 <<뉴욕 헤럴드>>지의 파리 판에 구직 광고를 내고 입체 환등기의 세일즈맨 일자리를 얻었다. 40살 전후의 사람이라면 눈 앞에 들어올려서 들여다본던 그 구식 입체 사진경이 생각날 것이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느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입체 사진경 속에 있는 두장의 렌즈는 제3 차원의 작용으로 두 개의 영상을 하나로 만들어 보인다. 그래서 물건의 원근이 확실하게 실제의 경치처럼 눈에 비치는 것이다. 칼덴보르는 이 기계를 한 집 한 집 팔러 다녔는데 프랑스 말은 할 줄 몰랐다.그래도 처음 1년 동안에 5천 달러를 벌었다. 그는 세일즈 맨으로서는 가장 급료가 많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나에게 그때 1년 동안의 경험은 하버드 대학에서의 1년간 이상으로 유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있었느냐고? 그는 이런 상태라면 <국회의사록>이라도 팔아 보이겠다는 심정이 되었다고도 이야기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프랑스 사람의 생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그것이 뒷날 유럽의 시사를 해결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 말을 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제1류 세일즈맨이 되었을까? 그는 우선 자기를 고용한 고용주에게 판매하는 데 필요한 말을 완전한 프랑스 말로 써달라고 하여 그것을 암기했다. 문의 초인종을 울린다. 주부가 나온다. 칼텡보르는 말할 수 없이 우스꽝스러운 악센트로 암기한 문구를 지껄여댄다. 그리고 자신을 내보인다. 상대가 무언가 질문하면 어깨를 으쓱하고 치켜올리며 아메리칸……아메리칸 하고 말한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뒤쪽에 붙여 놓은 판매용 프랑스어의 문구를 가리킨다. 주부가 웃음을 트뜨린다. 그도 따라 웃는다. 좀더 사진을 보인다. 이런 형편이다. 칼텐보르는 이 이야기를 했ㅇ르 때 일은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재미있는 것으로 하려는 처음에 품은 의지에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에게 기합을 넣었따. 칼텐보르, 이 짓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는 없는 거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상, 자 유쾌하게 하자. 문 앞에서 벨을 울릴 때, 자신은 조명 앞에 서 있는 배우로 구경꾼이 너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게 어떤가. 결국 네가 하고 있는 일은 무대 위의 것과 마찬가지로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어째서 좀 더 흥미와 정열을 투입하지 않는가. 칼텐보르씨는 이 매일 하는 자기 격려의 말이 처음 그가 싫어하던 일을 재미있는 이익이 있는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성공을 갈망하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에게 뭔가 충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매일 아침 자기에게 따끔히 한 마디 하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절반쯤 잠자고 있는 것 같은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육체적 운동이 필요하다느니 어쩌니 하지만, 그보다 매일 아침 우리를 행동하게끔 고무하기 위한 정신적 운동이 보다 필요하다 하겟다. 매일 자기에게 기합을 넣어야 한다. 매일 아침 자기 자신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나니, 그것이 바보스러운 일일까? 아니다. 그거이야말로 말할 나위없이 건전한 심리학의 진수라고도 할 만한 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말은 18세기 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 명상록>>에 썼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리인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음으로써 용기와 행복에 대해, 또한 힘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사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자신에게 이야기하느라면 기운이 나서 쾌활한 생각으로 가슴이 가득 찰 것이다. 올바른 일을 생각함으로써 당신은 싫은 일을 조금은 싫지 않게 할 수가 있다. 당신의 고용주는 당신이 일에 흥미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면 한층 더 이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잊기로 하고, 당신이 자신의 일에 흥미를 갖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인생에서 얻는 행복을 두 배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낮의 절반을 일로 소비하고 있고, 만약 그 일 가운데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면 아무 데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으니까. 일에 흥미를 가지면 고민으로부터도 해방되고, 결국은 지위도 오르고 월급도 도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피로를 최소 한도로 줄이고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8. 불면증의 고민을 막는 방법 당신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고민하는가?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유명한 법률학자 새뮤얼 앤터마니어는 한평생 깊은 잠을 자지못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새뮤얼 앤터마이어는 대학에 다닐 때 천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그두 가지 병 중 어느것도 나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차선책을 취할 결심을 했다――잠잘 수 없는 시간을 이용하는 일이다. 그는 잠들지 못할 때,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 일을 고민하거나 하지 않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공부했다. 결과는 어떠했나? 그는 우등상이라는 상은 모조리 휩쓸어 뉴욕시의 대학 가운데 천재아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변호사 개업을 한 뒤에도 불면증은 계속되었으나, 앤터마이어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이 나를 지켜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잠자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건강해서, 뉴욕 법조계의 어느 청년 변호사보다고 훌륭하고 활동했다. 그는 또 누구보다도 많이 일했다. 모두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일했으니까. 21살의 새뮤얼 앤터마이어는 1년에 7만 5천 달러나 벌었다. 청년 변호사들은 그의 방식을 배우려고 법정으로 몰려갔다. 1931년, 그는 어떤 사건을 다루어 아마 사상 최고의 변호료라고 생각되는 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받았다. 그의 불면증으 여전히 계속되었다. 밤 시간의 절반은 독서로 소비하고, 아침은 5시에 일어나 편지를 구수(口授)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쯤에는 그의 일은 벌써 절반이나 끝나 있었다. 그는 한평생 깊은 잠을 자는 맛을 알지 못했지만 81세나 오래 살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신의 불면증을 괴로워했다면 아마도 그는 신세를 망쳤을 것이다.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수면으로 소비하면서도 무엇이 진짜 수면인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습관이며 휴식하는 상태여서, 그 속에 자연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각 개인에게 몇 시간의 수면이 필요한지, 또한 수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어떤지도 알지 못한다. 지나치게 엉뚱한 일이라고 할 것인가? 제1차 대전 중 폴 케룬이라는 헝가리 병사의 대뇌엽 앞끝을 총알이 관통했다. 부상은 나았는데 이상하게도 불면증이 되었다. 의사는 온갖 종류의 진정제며 최면제를 다 써 보았고, 최면술까지도 시도해 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따. 케룬을 잠들게 할 수 없었고 졸음조차도 오게 할 수가 없었다. 의사들은 그가 도저히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취직하여 몇 년 씩이나 오래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누워서 눈을 감고 휴식했지만 잠은 자지 않았다. 그의 예는 우리가 수면에 대해 믿고 있는 사실을 뒤엎는 의학상의 수수께끼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면을 필요로 한다. 토스카니니는 하룻밤에 5시간 자면 되었지만, 칼빈 쿨리지 대통령은 그 배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는 하루에 11시간 이상이나 잤다. 다시 말해서 토스카니니는 일생의 5분의 1을, 쿨리지는 절반을 수면으로 소비한 것이 된다. 불면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불면증 그 자체 이상으로 건강에 해롭다. 예를 들면 나의 클라스의 학생이었던 뉴저어지주 리치필드 파크의 아이라 샌드너는 만성 불면증 때문에 자살 직전에까지 몰렸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나는 미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전에 내가 푹 잠 잤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자명종 시계가 요란하게 울려도 눈이 떠지지 않아, 곧잘 아침 일에 지각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걱정했습니다. 사실 나는 규정된 시간에 일을 시작하라고 주인에게 주의를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해고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의논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잠들기 전에 자명종 시게에 주의력을 집중해 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불면증의 시초였습니다. 그 저주받은 자명종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에 흘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그 소리가 신경에 걸려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기만 하고 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날이 밝았을 때 나는 피로와 번민으로 반 병자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여덟 주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이 괴로움은 도저히 말로만 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틀림없이 미쳐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나는 몇 시간이나 방 안을 서성거렸습니다. 나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차라리 모든 것을 끝내 버릴까 하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옛날부터 잘 아는 의사를 찾아갔습니다.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이라,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이것은 자네의 자업 자득이니까. 밤에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잘 수 없거든, 그것을 잊어버리는 걸세, 그리고 자신에게, 잠을 자지 못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아침까지 깨어 있은 들 어떻겠는가 하고 타이르는 걸세. 그리고 눈을 뜨지 않도록 하고 있는 걸세――가만히 누워서, 쓸데 없는 생각을 하거나 지나간 일들을 걱정하기 않으면, 아무튼 휴식할 수 있는 걸세.』나는 그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주일이 될까말까했을 때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한 달이 못 되어 8시간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경은 보통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나이는 자살 직전에까지 몰고 간 것은 불면증이 아니라, 그에 대해 번민하는 일이었다. 시카고 대학 교순 나다니엘 클레이트면 박사는 수면에 대한 연구로는 이 방면의 제1인자이지만, 그는 불면증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는 예는 들은 일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분명히 인간은 불면증에 대해 고민하여 차츰 생존 능력을 잃고 병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그것은 고민이 원인이지, 불면증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클레이트명 박사는 또 불면증에 대해 번민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자각하는 것보다고 훨씬 많이 잠들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어젯잠은 한 잠도 자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깨닫지 못했을 뿐잊, 여러 시간이나 잤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의 한 사람인 허버트 스펜서는 늙은 독신자로 하숙 생활을 했는데, 언제나 불면증 이야기를 하여 같은 하숙 사람들은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는 떠드는 소리를 싫어하여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 귀에 솜을 틀어박혔다. 또 때로는 잠을 청하기 위해 아편을 먹었다. 어느날 밤, 그는 옥스포드 대학의 에이스 교수와 어떤 호텔 방에서 함께 머물렀다. 이튿날 아침 스펜서는 밤새도록 한 잠도 못잤다고 했는데, 사실은 한 잠도 자지 못한 것은 에이스 교수 쪽이었다. 그는 스펜서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밤새도록 자지 못했던 것이다. 깊이 푹 자기 위한 첫째 요건은 안전감이다. 우리 자신보다도 위대한 힘이 아침까지 우리를 잘 수호해 준다고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토머스 히스로프 박사는 영국 의학 협회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 나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잠을 촉진해 주는 가장 좋은 힘은 기도이다. 나는 의사로서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를 실천하는 것은 그것을 습관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가 신경에 대한 진정제로서 가장 적절하고 정상적인 것이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자네트 맥도널드는 잠들 수 없을 때는 언제나 시편 제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나 부족함이 없도다. 여호와는 나를 푸른 들에 눕게 하시며, 휴식의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의 대목을 되풀이함으로써 안도감을 얻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종교적이 아니라 이것이 곤란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물리학적 방법으로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경적인 긴장으로부터의 해방>>의 저자 데이비드 해롤드 핑크 박사는, 이것을 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몸에 이야기를 거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핑크 박사에 의하면, 말은 온갖 종류의 최면 상태로 가는 열쇠이다. 당신이 아무리 해도 잠잘 수 없을 때, 그것은 당신이 작 자신에게 이야기하여 불면 상태에 빠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치려면 자기 최면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몸을 편히 하라, 편히 하라, 마음 느긋하게 쉬어라>하고 몸의 근육에서 타이르는 데 있다. 우리는 근육이 긴장하고 있는 동안은, 마음도 신경도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잠자고 싶다면, 우선 근육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핑크 박사는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다리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무릎 베개를 놓는다. 같은 이유로 팔 밑에도 작은 베게를 놓는다. 그리고 턱, 눈, 팔, 다리에 편히 쉬도록 타이르고 있느라면 어느 틈에 잠들고 마는 것이다. 나는 해 본 일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불면증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은 핑크 박사의 저서를 한 전 읽는 게 좋다. 불면증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원예, 수영, 테니스, 골프, 스키, 그밖의 육체적인 동작으로 몸을 피로하게 하는 일이다. 데오도 드라이저는 그렇게 했다. 그가 아직 이름없던 청년 작가 시절, 그는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그는 뉴욕 센트럴 철도의 보선공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그는 레일이 움직이지 않도록 큰 못을 박기도 하고, 자갈을 퍼올리기도 하며 하루 일했는데, 지칠 대로 지쳐 식사도 하지 않고 골아떨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지쳐 버리면, 자연은 우리를 걸으면서 잠자게 하려고 한다. 그 실례를 이야기하겠다. 내가 13살 때, 아버지는 살찐 돼지를 화차에 실어 미주리주이 세인트 조우로 보냈다. 그는 철도의 무임 승차권은 두 장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그 때까지 4천 명 이상이나 사람이 사는 거리에 가 본 일이 없었다. 세인트 조우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인구 6만 명의 도회지이다.)나는 흥분되어 가슴이 뛰었다. 우뚝 솟은 6층 건물도 보았다. 난생 처음 전차도 보았다. 지금은 눈을 감으면, 그때의 전차가 보이고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자극적이고 흥분적인 하루를 지낸 뒤, 아버지와 나는 미주리주 일레븐 우드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는 새벽 2시에 그곳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농장으로 돌아가는데 4마일이나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여기가 중요한 점이다. 나는 아주 녹초가 되도록 지쳐 있었기 때문에 걸으면서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말을 달리면서 간 일도 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살아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이 완전히 지쳐 있으면 전쟁의 위험, 공포, 포화 속에서도 잔다. 유명한 정신병 학자 포스터 케네디 박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1918년 영국 제5군단이 퇴각할 때 그는 병사들이 안정히 지쳐 땅 위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들의 눈까풀을 열어 보았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눈구명 속에서 위쪽으로 돌아간 것을 깨달았다. 케내디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눈알을 빙그르르르 위로 돌리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 곧 하품이 나오고 졸음이 온다. 이것은 자동적 반사 작용으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수면을 거부하여 자살한 예는 없으며 앞으로는 아마 없을 거이다. 자염은 인간의 온갖 의지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잘 것을 강제한다. 자연은 우리를 오랫동안 음식물을 주지 않고 내버려 두지만, 수면 없이는 결코 오랫동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자살이라고 하면, 나는 헨리 C.링크 박사가 <<인간의 재발견>>이라는 저서 가운데서 말한 것을 상기한다. 그는 <공포와 고민의 극복에 대해>라는 제목을 단 한 문장 속에서 자살을 기도했던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링크 박사는 의논은 쓸데없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환자에게 말했다. 만일 당신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살하겠다면 적어도 영웅적인 방법으로 하는 거요. 이를테면 거리의 한 구역을 빙글빙글 뛰어서 돌고, 마지막에 푹 쓰러져 죽는다는 것은 어떤가? 그 환자는 그 말대로 해 보았다. 한 번뿐만 아니라, 두 번 세 번이나 했다. 그 때마다 근육은 어쨌든 간에 마음 속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사흘 째 되는 날 밤이 되자, 그는 육체적으로 너무나 지쳐(그리고 육체적으로 긴장이 플려서)통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링크 박사는 처음부터 이것을 노렸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체육 클럽에 가입하여 경기에 나가게 되었으며, 완전히 회복되어 영원히 살아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면증에 대해 번민하지 않도록 하려면 다섯 가지 법칙을 지칠 것. 1. 만일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새뮤얼 앤터마이어가 한 방법을 쓰라. 일어나서 잠이 올때까지 일을 하든지 독서할 것. 2. 수면부족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불면증에 대해 번민하는 것이 잠을 못 자는 것 이상으로 해로운 것이다. 3. 기도를 드리든지, 자네트 맥도널드처럼 시편 제23편을 되풀이하여 잃을 것. 4. 몸을 편하게 쉴 것. 5. 운동하라, 일어나 있을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몸을 피로하게 할 것. 제 7 부 요 약 피로와 번민을 예방하여 예네르기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여섯가지 방법 제1법칙: 피로해지기 전에 휴식하라. 제2법칙: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몸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라. 제3법칙: 만일 당신이 주부라면 가정에서도 몸을 편하게 함으로써 건강과 용모를 지켜라. 제4법칙: 다음 네 가지의 좋은 작업 습관을 적용하라. a. 당면한 문제에 관게있는 서류 이외의 것은 전부 책상 위에서 치워 버린다. b. 중요도에 따라 사물을 처리해 간다. c.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결단에 필요한 사실이 있으면 굳 그 자리에서 해결하라. d. 조직화, 대리화, 지휘화라는 것을 배우라. 제5법칙:번민과 피로를 막기 위해 일에 정열을 가져라. 제5법칙: 수면 부족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불면증에 대한 고민이 해를 주는 것이지 불면증 그 가체가 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제 8 부 즐기면서 성공하는 일을 발견하는 방법 29. 인생에 있어서의 두 가지 큰 결단의 하나 (이 장은 하고 싶어하는 일거리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젊은 남녀를 위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 하나라면 이 장을 읽는 것이 당신의 이제부터의 일생에 크나큰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당신이 18살 이하라면 오래지 않아 당신은 인생에 있어서의 두 가지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과 동시에 당신의 행복, 수입, 건강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것이다.이 두 가지 결단이란 무엇인가? 첫째, 어떻게 생계를 세울 생각인가? 당신은 농부가 될 것인가? 우편 집배원인가? 화학자인가? 대학 교수인가? 아니면 햄버거 식당을 열 생각인가? 둘째, 어린이를 위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서 누구를 선택할 생각인가? 이 두 가지의 크나큰 결단은 때로는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 해리 에머슨 포스틱은 <<달관력>>이라는 저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의 소년들은 모두 도박자이다. 그는 그 일에 일생을 걸어야 한다. 」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어떻게 하면 도박적인 분자를 감소시킬 수 있는가? 계속해서 읽어 주기 바란다. 될 수 있는 대로 잘 이야기할 테니까. 우선 첫째, 할 수 있으면 즐거운 일을 찾아 내도록 노력할 일이다. 나는 일찍이 B.F.구드리치 회사의 회장 데이비드 M. 구드리치에게 사업을 성공하기 위한 첫째 요건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이 즐거우면 장시간 일을 해도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생각된다. 라고 대답했다. 에디슨이 그 좋은 예이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신문팔이 소년에게 출세하여 미국 산업계의 형상을 일변시킨 에디슨, 그는 곧잘 연구소 내에 기거하며 하루 18시간이나 일했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어 노역이 아니었다. 나는 일생에 단 하루도 일을 한 적은 없다. 모두 위안이었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가 성공한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차알즈 슈와브가 똑같은 내용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끝없는 정열을 품고 있는 일에는 거의 성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일에 대해 정열을 가질 수 있겠는가? 뒤퐁 회사를 위해 몇 천 명의 남녀를 고용한 에드너 카 부인은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월급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딱한 사람은 없다. 카부인에 의하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그녀를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저는 이러이러한 대학의 문학사 학위를 갖고 있는데, 이 회사에 무슨 할 만한 일거리가 없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에 적합한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유능한 지성과 장미빛 꿈을 가지고 인생에 발을 내디딘 남녀가, 40세만 되면 좌절되고 신경 쇠약에 걸려 일생을 끝내 버리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정말 적당한 직업을 찾아 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존즈 홉킨즈 위과 대학의 레이먼드 파알 박사는 일찍이 모 보험 회사와 공동으로 오해 사는 요소에 대해 연구한 결과 <적당한 직업>을 항목의 상위에 놓고 있다. 카알라일은 자기의 일을 찾아 낸 사람은 축복받고 있다. 그 이외의 축복을 구할 필요는 없다. 고 말했는데 파알 박사도 아마 동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 소커니 바큐엠 석유 회사의 인사부장인 폴 보인튼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는데, 최근 20년 간에 그는 7만 5천 명 이상의 구직자와 면접해 왔다. 그에게는 <<일을 얻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저서도 있다. 일을 찾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인가? 하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다. 2,3년 지나면 입을 수 없게 되는 옷을 사는 데는 몹시 주의를 하면서도 자기의 일생 문제――미래의 행복과 평화가 얻어질 수 있을 지 없을 지가 걸려 있는 직업 선택에는 의외로 무관심하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거기에는 <직업 지도>라고 불려지는 새로운 직업을 이용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당신이 의논한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이익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직업은 아직도 널리 보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미래성은 있다. 이 과학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거기서는 직업 테스트와 직업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합중국 도처에 이런 종류의 서비스가 있다. 당신이 전에 군인이었다면 소속 단체에서 물으면 알 것이고, 전에 군인이 아니었다면 국공립 도서관, 지방 교위원회,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에도 직업 지도부가 설치되어 있다. 그밖의 그리스도교 청년회, 여자 청년회, 적십자, 미국 소년 클럽, 구세군 등 등의 전국적 공공 단체에는 모두 직업 지도부가 있어 당신에게 적당한 지도를 해 준다. 그러나 거기서는 단지 시사를 해 줄 뿐이지, 결단은 당신이 내려야만 한다. 이러한 지도원을 절대로 확실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 사이에도 서로 의견이 틀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직업 지도원은 나의 클라스의 한 여학생에게 단순히 말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가 되라고 권했다. 길로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뛰어난 작품은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사상, 경험, 신념, 흥분이다. 말을 많이 알고 있던 이 소녀에게 조언을 주었던 직업 지도원은 한 가지 일에는 성공했다. 그것은 전의 행복한 속기사를 실의에 찬 자칭 작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직업 지도 전문가들도 우리도, 결코 절대적으로 잘못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들 몇 사람과 의논하여 의견을 듣고, 상식의 척도로 판단해야 한다. 고민에 관한 책 속에 이런 장을 마련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번민, 회한, 실패가 우리가 경멸하고 있는 일에 의해 불러 일으켜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다면 결코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나 이웃 사람이나, 그렇지 않으면 감독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다. 사상계의 거물 존 스튜어트 밀은 산업적으로 적격이 아닌 것은 사회의 가장 큰 손실의 하나이다. 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그리고 땅 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 중에는, 자기의 매일의 일을 혐오하고 있는 산업적 부적격자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군대에서 <망가져 버린>사나이를 알고 있는가? 잘못 쓰여진 사람들이다. 전쟁에 의한 부상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일반적인 군무에 복무하고 있으면서 망가져 버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정신병 의사의 한 사람인 윌리엄 매닌거 박사는 전시 중 육군 신경 정신병 의사의 한 사람인 윌리엄 매닌거 박사는 전시 중 육군 신경 정신병부의 책임자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군대에서 선택과 배치의 중요성에 대해, 또 적재 적소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특히 아주 가까운 일에 대해서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일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곳, 잘못 쓰여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곳, 참다운 가치가 인정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곳, 자기의 재능이 살려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곳에서는 실제의 정신적 장해는 어떻든 간에 반드시 어떠한 가능성이 인정된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사람은 산업계에서도 <망가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일을 경멸한다면, 일까지도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필 존슨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그의 아버지는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도록 하기 위해 일을 돕게 했다. 그러나 필은 세탁소를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만큼 피워, 세상 없어도 해야 할 일밖에는 하지 않았다. 집을 비우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만 속이 상해서, 야심없고 버릇없는 아들을 가졌다는 사실을 고용원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했다. 어느 날 필은 아버지에게 기계공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뭐라구? 작업복을 입고 싶다구? 노인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필은 처음 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기름 투성이가 된 더러운 작업복을 걸치고 일했다. 그는 집에서 일하던 때보다도 훨씬 일을 잘했다. 휘파람을 불면서 신나게 일했다. 그는 공학 기술을 익히기 시작해, 엔진이며 다른 기계들을 닥치는 대로 만지작거렸다. 그리하여 필립 존슨이 1933년에 죽었을 때, 필은 보잉 항공기 회사 사장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하늘의 요새>를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의연히 세탁소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특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마도 그는 가업을 망쳐 버려 파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가정 쟁의를 일으킬지라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가족이 바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된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권고한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종사해서는 안된다. 물론 부무의 의견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들은 당신의 두 배나 오래 살아왔으니까. 그들은 오랜 세월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분석으로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일로 행복해지는 것도, 또한 불행해지는 것도 모두 당신 자신인 것이니까. 이렇게 말해 왔으니, 나에게 일을 선택하는 데 대한 시사와 경고를 말하게 해주기 바란다. 1. 직업 지도원을 선택할 때, 다음의 다섯 가지 제언을 읽고 연구할 것. 이것은 미국의 지도적 직업 지도 전문가 해리 키트슨 교수가 작성한 것이다. a. 인간의 직업 적성을 명백히 하는 마술적 시스템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가지 말 것. 그들은 대부분 골상학자, 점성술사, 성격 분석자, 손금 보는 사람 등이다. 그들의 이른바 시스템은 신용할 수 없다. b.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를 명시하는 테스트를 한다는 둥 말하는 사람에게는 가지 말 것. 이런 직업 지도자는 의논하러 와 있는 사람은 에워싸는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그는 의논하러 와 있는 사람에 대해 열려 있다고 생각되는 직업적 기회에 대해 ㅈ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c. 직업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갖추고 있어, 의논 중에 그것을 호과있게 이용하는 그런 지도자를 선택하라. d. 완전한 직업 지도는 한 번 이상의 면회가 필요하다. e. 결코 통신에 의한 직업 지도를 받지 말 것. 2. 이미 인원이 과잉된 상태에 빠져 있는 사업이나 직업을 피해야 한다. 미국에는 2만 가지 이상이나 되는 다른 생활 방법이 있다. 2만 종류 이상이나!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 결과 어떤 고등학교 남자 학생의 3분의 2는 다섯 가지의 직업 선택으로 집중되고 말았다―2만 종류 중의 다섯 가지―그리고 여자 학생의 5분의 4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의 사업이나 직업이 만원이어서 불안정, 고민, 불안, 노이로제가 화이크 칼라족 사이에 유행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특히 법률, 저널리즘 관계, 라디로, 영화 등 초만원인 분야에 돌입하려고 하는 것은 좀 생각할 문제이다. 3.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찬스나 열에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일에서느 멀어질 것. 그 일례가 생명 보험의 외교다. 매년 무수한 사람들이 (그 가운데는 실업자도 있지만)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생명 보험의 외교원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베드거에게 <어떻게 되는가> 물어 보기로 하자. 20년 동안 베드거씨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생명 보험 세일즈맨이었다. 그에 의하면 생명 보험의 외교를 시작한 사람이 90퍼센트가 실망 낙담하여, 1년도 못되어 그만 두어 버린다. 남은 10명 중의 1명이 10명이 파는 보험 전부의 90퍼센트를 취급한다. 그리고 남은 9명은 겨우 10퍼센트를 취급할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당신이 생명 보험을 팔기 시작한다고 하면, 당ㅅ니이 1년 이내에 실패하겨 그만 두는 확률은 9대 1로 1년에 1만 달러를 버는 확률은 백에 하나이다. 설사 당신이 그것을 계속해 가더라고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생활 이상의 것을 벌 확률은 열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4, 당신의 일생을 바칠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몇 주일, 몇 달이 걸려도 그 직업에 관한 온갖 사항을 조사해야 한다. 그러려면 10년, 20년, 30년이나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남성이나 여성을 면회하여 물어 볼 일이다. 이러한 회견은 당신의 장래에 중대한 영행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경험하여 알고 있다. 나는 20살을 조금 지났을 무렵, 두 연장자에게 직업상의 조언을 구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와 보니 그것이 나의 일생에 있어 전기가 된 것을 깨닫는다. 사실 내가 그들과 회담하지 않았다면, 나의 일생은 어찌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하여 직업 지도 면회를 할 수 있는가? 설명하기로 한다. 가령 당신이 건축 기사가 될 생각이라고 하자. 당신은 결심해 버리기 전에 당신이 사는 거리를 비롯하여 인접된 거리에 있는 건축 기사와의 면회에 몇 주일 동안을 소비해야 한다. 전화 번호책으로 그들의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여 방문해도 좋고, 면회 약속을 받고 싶은 생각이라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내도 좋다. 조금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저는 선생의 높으신 의견을 여쭙고자 합니다. 저는 18세로 장래에 건축 기사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결심을 해 버리기 전에, 저는 선생님의 충고를 듣고 싶습니다. 만약 바쁘시어 사무실에서 만나 주실 수 없으시오면 실례입니다만, 댁에서 반 시간쯤 폐를 끼쳐 드리게 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제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일에 대한 것입니다. a. 선생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일생을 되풀이하신다면, 또 건축 기사가 되시겠습니까? b. 만나 뵈옵고 난 뒤에, 저는 저에게 건축 기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c. 건축 기사라는 직업은 이미 만원인가요? d. 가령 4년 동안 건축학을 공부한 정도로는 취직하기가 어렵겠습니까?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하게 되겠습니까? e. 만약 저에게 보통의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처음 5년 동안은 어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f. 건축 기사에게는 어떠한 이익과 불리함이 있습니까? g. 만약 제가 선생님이 아들이었다면,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건축 기사가 되라고 권고하시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내성적이어서 <거물>과 혼자서 마주 대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여기에 두 가지 시사가 있다. 당신과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년을 동반하면 좋다. 두 사람이면 무슨 일에나 마음이 든든할 터이므로, 동행할 만한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년이 없으면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함께 가도록 한다. 그의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상대는 당신이 간청으로 우쭐해져 있을 것이다. 대체로 어른은 젊은 남녀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그 건축 기사는 아마도 당신과니 회견을 유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면회 시간을 결정하기 위한 편지를 쓰기가 주저된다면, 불쑥 아무런 예고없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뭔가 조금이라도 조언해 주면 참으로 고맙겠다고 정중히 부탁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다섯 명이 건축 기사를 방문한 결과 다섯이 모두 바빠 만나 주지 않았다 한다면(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때는 다른 다섯 명을 찾아가야 한다. 그 가운데 틀림없이 당신을 만나 몇 년이나 실의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게 될 당신을 구해 줄 귀중한 충고를 해 줄 터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래에도 영향을 미칠 두 갖 결단 가운데 하나를 하려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행동하기 전 사실을 파악하기에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한에 찬 반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30분 동안의 조언에 사례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5. 자신은 단 한가지의 직업밖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잘못된 관년을 이겨 내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은 직업에 성공하는 수도 있고 실패하는 수도 있다. 제 9 부 경제적 고민을 더는 방법 30. 「모든 고민의 70퍼센트……」 만약 내가 모든 사람의 경제적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옆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그 방면의 권위있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몇 가지의 실제적인 시사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레이디스 홈 저널지의 조사에 의하면, 인간의 고민의 70퍼센트까지는 금전 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갤럽 여론 조사소의 조지 캘럽은 그의 조사에 의하면, 대개의 사람은 그들의 수입을 10퍼센트 증가할 수 있다면 그들의 경제적 고민은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한편 대단히 많은 경우 그것은 진실이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 장을 집필하는 중에, 예산은 정통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했다. 뉴욕 와너 메이커 백화점의 고객에 대한 경제 고문을 오랫동안 맡아 보고 있는 엘시 스테플턴 부인이다. 그녀는 그 후 개인적 상담역으로서도 돈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와왔다. 그녀는 온갖 종류의 소득세에 관하여, 아래로는 1년에 천 달러밖에 소득이 없는 짐꾼에서부터, 위로는 1년에 10만 달러나 수입이 있는 사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은 도와 왔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수입 증가가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아닙니다. 사실 나는 수입의 증가는 오직 낭비만 증가시킬 뿐이며, 두통이 증가되어 버린다는 것을 종종 보아 왔습니다. 대개의 사람들 고민의 원인은 금전의 부족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일입니다. 저런, 누군지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군요. 코웃음을 치기 전에 다시 한 번 스테플턴 부인은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녀는 <대개의 사람>이라고 했지 당신에 대해서 말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카네기란 이에게 내 계산서를 지불하게 하고 싶군, 내 빚을 지워 주고 싶군――내 월급으로. 그러면 이런 남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거야. 라고. 글세, 어떨는지. 나도 경제적 고민은 이미 경험한 바다. 나는 미주리주의 옥수수 밭이며 가축에게 먹일 건초를 넣어 두는 곳간에서 하루에 10시간씩이나 심한 육체 노동을 해 왔다. 그만 지칠 대로 지쳐 버려서, 어떻게든 몸의 아픔을 잊었으면 하는 것이 단 하나의 소망이었을 정도였다. 이 중노동에 대해 1시간에 1달러는커녕 50센트, 아니 10센트도 지불해 주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에 10시간을 일하고 한 시간당 5센트를 받았던 것이다. 나는 20년 동안, 목욕탕도 없고 수도도 없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하는 것을 잘 알아 왔다. 영하 15도나 내려가는 추운 방에서 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도 알고 있다. 5센트의 전차값을 절약하기 위해 10마일이나 걸어서, 구두며 양말에 구멍을 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싼 요리를 주문하고, 바지의 주름살을 펴기 위해 요 밑에 까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시절에도 나는 여태까지 나의 수입에서 어떻게든 조금은 저축을 하고 있었다. 저축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의 결과, 나는 우리가 빚이나 경제적 고민을 모면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사업 회사와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미리 돌은 소비할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의 친구이자 이 책을 출판하는 회사의 사장인 레온 시무킨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에 대해 품고 있는 기묘한 맹점을 지적해 주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어느 부기 담당 계원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사나이는 회사의 일에 있어서는 숫자의 귀신이었지만, 자신의 개인적 경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전혀 말이 아니었다. 가령 금요일 오후에 급료를 받는다고 하자. 마침 상점가를 거닐다가 어느 가게의 윈도우에서 그의 취미에 맞는 오버를 보았다고 하자. 그는 대뜸 그것을 산다. 그는 집세, 전기료, 그밖의 모든 고정된 비용을 늦든 빠르든 간에 봉급 봉투에서 지불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호주머니에 돈이 있다. 그 돈의 용도야 어찌 되었거나 돈이 있다는 사실밖에는 머리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나이는 만약 그가 근무하는 회사의 회계를 이런 태평스러운 방법으로 한다면, 회사는 파산해 버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당신의 금전 관계는 당신이 비지니스라는 것이다. 정말 당신이 어떻게 돈을 소비하는가는 글자 그대로 당신이 비지니스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돈은 지배하는 원칙은 무엇일까? 어떻게 우리는 예산을 만들고 계획을 세워나가야 하는가? 그 열 한 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법칙1: 사실을 종이에 적어 보라! 아놀드 베넷이 50년 전 런던에서 소설라로서 출발했을 때, 그는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아무리 작은 금액의 돈이라도 소비한 것은 차근차근 적어 놓았다. 그는 자기의 돈이 어디에 쓰여지는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생각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부자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요트를 소유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어도 이것을 계속했던 것이다. 존 D. 록펠러도 출납부를 적었다. 그는 밤에 기도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의 대차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1페니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노트에 금전 출납을 기록하기로 하자. 노후에 대비해서인가? 아니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산 전문가들은 적어도 처음 한 달은 우리가 소비한 돈의 정확한 수입 지출 결산표를 만들라고 권하고 있다. 만약 할 수 있으면 석 달간 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돈이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므로 예산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기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천 명에 한 사람 정도 있는 보기 드문 인간이다. 스테플턴 부인은 말하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사실이나 숫자를 진술하는 데 수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므로 나는 종이에 쓰게 하고 있는데, 막상 그 결과를 부면 그들은 의례 내 돈이 이렇게 쓰여졌었군요? 하고 깜짝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따.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법칙2: 당신의 필요에 잘 맞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닌 예산을 작성하라! 스테플턴 부인은 같은 교외의 주택지에 두 가족이 아주 똑같은 집에 살며, 이이들의 수도 같고, 수입도 같다고 하더라도 그 예산의 필요도는 전혀 다르다로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에 의하면, 예산이라 개인적이고 습성적인 것이라는 얘기이다. 예산이란 인간의 생활 속에서 모든 기쁨을 쫓아 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감정적인 안정감과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있다. 예산을 세워 생활하는 사람들은 보다 행복한 사람들이다. 라고 스테플컨 부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 그렇게 해나가는가. 우선 앞에서도 말했듯이 온갖 지출을 표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법칙3:돈을 살려서 쓰는 방법을 배우라! 돈에 대해 최대의 가치를 얻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모든 큰 회가에는 전문적인 사입계나 구매계가 있어, 그들의 회사를 위해 유리한 거래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당신의 자산의 관리인 겸 책임자로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 법칙4: 수입과 함께 두통을 늘게 하지 말라! 스테플턴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상담을 받고 가장 골치를 앓은 것은 연수입 5천 달러가 된다는 가족의 예산 작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연수입 5천 달러는 대개의 미국 가정에 있어 목표점인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은 몇 해나 견실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연수입 5천 달러가 되면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리고 생활이 화려해집니다. <아파트의 집세보다 오히려 싸게 먹힌다>고 하면서 교외에 집을 사고, 자동차도 사고, 새로운 가구, 많은 옷가지 따위를 사들입니다. 이크, 하고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적자입니다. 그래서 그전보다도 더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수입이 늘었다고 하여 좋아라고 우쭐해진 것이 원인입니다. 그녀는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보다 많이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스스로 억제하여 예산의 범위 안에서 생활하는 것과, 불쾌한 독촉장과 빚장이에게 시달리는 것과, 과연 어느 쪽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법칙5: 신용을 얻도록 노력하라. 남의 돈은 꾸어 쓸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만약 당신이 남에게 돈을 꾸어야 하는 다급한 입장에서게 되었을 경우, 생명 보험 증서나 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은 현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보험 증서를 담보를 낳고 돈을 꾸어 쓸 생각이라면, 그것이 저축 채권적인 것인가 어떤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금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정기보험>이라고 불리는 보험은 일정한 기간만의 보증이지, 저축적인 성질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종류의 보험 증서는 빚을 얻는 담보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에는 미리 빚을 얻는 데 담보로 쓸 수 있는가 어떤가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빚을 얻는 데 담보가 되는 보험 증서도 국고 채권도 없지만, 가옥이라든가, 자동차라든가, 그밖의 부저당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어디로 가면 되겠는가? 물론 은행이다. 은행은 신용이 중요하니까. 당신에게 부정한 짓은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돈이 잘 융통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 당신의 의논도 받아 줄 것이고, 플랜도 세워 줄 것이며, 당신의 고민과 채무를 해결하는 데 도와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부저당물이 있다면 반드시 은행으로 갈 일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저당물도 없고, 그밖의 아무런 소유물도 없고, 다만 임금이나 월급 외에는 담보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생명이 아깝거든 다음의 경고를 잊지 말라! 결코 이른바 <금융 회사>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을 때는 악랄한 고리 대금업자의 무서운 수단에 빠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1년에 1억 달러 이상이나 가로채고 있다. 그 가운데의 실례 한 가지. 텍사스주 댈러스의 어떤 사람이 병원의 치료비를 지불하려고 20달러를 무허가 금융업자로부터 빚을 얻었다. 그 이자가 무려 1주일에 2달러 25센트! 그는 9년 동안 증서를 다시 바꾸어 쓰기를 계속하여, 합계 천 53달러를 지불하였는데, 그래도 아직 20달러 이상의 미불금이 남아 있었다 한다. 법칙6: 질병, 화재, 불시에 닥칙 사건을 위해 대비하라. 온갖 종류의 사고, 불행, 불시에 닥칠 사건에 대비하여, 비교적 싸고도 도움이 되는 것은 보험이다. 나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풍진에 대해서까지 모두 보험을 들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돈이 들 것이 뻔하고, 그리고 어쩔 줄 몰라 쩔쩔 맬 것이 뻔한 크나큰 불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험에 들어 두라고 말하는 것이다. 보험은 확실히 싸다. 이를테면 내가 알고 있는 부인이 작년에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녀가 퇴원하자, 불과 5달러의 계산서를 받았다. 그녀는 상해 보험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칙7: 생명 보험금은 미망인에게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하도록 해 두지는 말라. 만약 당신이 당신이 유가족을 위해 대비할 목적으로 생명 보험에 가입하였다면, 부디 당신의 보험금이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되도록 하지 않기를 바란다. < 새로운 돈을 손에 넣으 새로운 미망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마리옹 S. 애벌리 부인에게 대답을 부탁하기로 하자. 그녀는 뉴욕의 보험 협회 부녀 부장이다. 그녀는 전 미국의 부녀 클럽에서 생명 보험금을 현금으로 한꺼번에 미망인에게 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돈으로 일생을 통해 수입이 있을 만한 그런 방법을 강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현금으로 2만 달러를 받은 어떤 미망이의 예를 들고 있다. 그 미망인은 그 돈을 아들에게 빌려 주어 자동차 부품 판매업을 열게 했다. 그런데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미망인은 현재 매우 궁핍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말솜씨 좋은 부동산 세일즈맨의 감언 이설에 떨어져, 보험금의 거의 전부를 <1년 이내에 반드시 폭등>할 것으로 예상한 땅에 투자했는데, 3년 뒤에는 산 값의 10분의 1의 헐값으로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생명 보험금을 1만 5천 달러나 받았으면서도, 1년도 되기 전에 몽땅 날려 보내고, 이이들의 양육바저도 아동 복지 협회에 의뢰한 미망인도 있다. 이와 똑같은 비극은 일일이 헤아릴 겨를이 없을 정도이다. 부인의 손에 넘겨진 2만 5천 달러의 돈의 생명은 평균 7년이 채 되지 못한다. 라고 뉴욕 포스트지의 경제부장 실비어 F. 포터는 레이디스 홈 저널지상에서 말하고 있다. 몇 해 전인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 사설이 실려 있었다. 「실무에 관한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았고, 조언해 줄 은행가 한 사람도 없었던 미망인이 교활한 세일즈맨의 말주변에 속아 생명 보험금을 형편없는 엉터리 중에 투자해 버리는 예가 실로 많다. 많은 미망인이나 고아가 그들을 속여 먹고 살아가는 교활한 악당들을 신용했기 때문에, 견실한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자기의 욕심을 이기고 부지런하게 일하고 알뜰히 아껴 한 푼 두 푼 저축한 전재산을 고스란히 빼앗겨 버린 실례는 많은 은행가나 변호사가 잘 아는 바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미망인이나 자식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현명한 J.P. 모건이 한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는 유산을 16명의 상속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가운데 12명은 부인이었는데, 모건은 그들에게 현금을 주지 않았따. 그는 그것은 신탁예금으로 하여,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매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가 지불되도록 했던 것이었다. 법칙8:돈에 대해 책임을 갖도록 자녀들을 교육하라. 나는 일찍이 <<유어 라이프>> 지상에서 읽은 한 가지의 새로운 생각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을 생각한 것은 스텔라 웨스턴 타틀이라는 부인인데, 그것은 그녀가 어떻게 하여 자기 자식에게 돈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 주고 있는가를 말한 것이다. 그녀는 은행에서 수표 용지를 얻어다가 9살 된 딸아이에게 주었다. 딸아이는 매주 용돈을 받으면 그것을 어머니에게 맡긴다. 어머니는 아이를 이해 은행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딸아이는 돈이 필요할 때에는 수표를 끊어 어머니에게서 돈을 받는다. 이렇게 하여 잔액을 잘 기억해 두게 한다. 소녀가 이런 방법에 흥미를 느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동시에 자기의 돈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게 되어 갔다고 한다. 이것은 실로 훌륭한 방법이다! 만약 당신에게 고등학교 학생 정도의 남자아이나 여자아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돈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돈 쓰는 법을 먼저 지도해야 한다. 법칙9: 만약 당신이 한 집안의 주부라면 부엌 살림에서 약간의 저축을 짜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견실한 수입, 지출의 예산을 세운 뒤라도 전처럼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 당신은 다음 두 가지 방법 중의 어느 쪽인가를 택하게 될 것이다. 곧잘 화를 내고 불평을 하고 고민하든가, 아니면 달리 돈을 벌 플랜을 세우든가 하는 두 가지이다. 어떻게 해서 돈을 벌 것인가? 그것은 그때까지 누군가가 하고 있을 법한 일인데 아직도 하지 않은 일을 하면 된다. 뉴욕의 잭슨 하이츠의 넬리 스피어 부인이 그렇게 했다. 1931년 그녀는 방이 셋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자식은 둘 다 결혼한 뒤였다. 어느 날 그녀는 드러그스토의 소다수 판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때, 그 가게에서 매우 빈약하고 맛도 없어 보이는 파이를 늘어 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게 주인에게 진짜로 자기 집에서 만든 파이를 사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두 개만 견본으로 사겠노라고 대답했다. 스피어 부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디 나는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조지아에 살았을 때는 언제나 하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파이는 스무 개도 만들어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파이 두 개를 주문받고 나서, 나는 이웃 댁의 부인에게 애플파이를 굽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답니다. 내가 맨 처음으로 집에서 만든 파이는, 하나는 사과 또 하나는 레몬이었는데, 이것이 소다수 판매장 손님들의 호평을 얻어 다음날에는 다섯 개를 주문받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매점과 경양식 집에서도 주문이 오게 되어, 2년 이내로 나는 1년에 5천 개나 파이를 굽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의 좁은 부엌에서 혼자 일했습니다. 그리고 파이로 쓰는 재료비 이외에는 1페니도 쓰지 않아서, 1년에 천 달러의 순이익을 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피어 부인의 집에서 구운 파이에 대한 수요량이 갑자기 늘었으므로 그녀는 가게를 하나 마련하고 사람도 두 사람을 고용하여 파이, 케니크, 로울 빵 등을 구웠다. 전시 중에는 그 집에서 만든 것을 사기 위해 길다랗게 줄을 서서 한 시간씩이나 기다렸다. 스피어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이나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에게는 일이랄 것도 없으므로 지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생활 가운데의 모험인 것입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빠서 쓸쓸해 하거나 번민하거나 할 겨를은 없습니다. 어머니나 남편이 가정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나의 인생의 공백은 완전히 일로 채워졌습니다. 내가 스피어 부인에게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라면, 요리 솜씨가 좋은 다른 부인들도 같은 방법으로 여가를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겠는가 하고묻자, 그럼요, 되구말구요라고 대답했다. 올라 스나이더 부인의 이야기도 이와 흡사하다.그녀는 일리노이주의 메이우드라는 인구 3만 명인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부엌의 난로와 10센트의 재료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이 병으로 쓰러졌다.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가? 경험은 없고 특수 기술도 자본도 없다. 보통 주부였다. 그녀는 계란 흰자위와 설탕으로 몇 가지 사탕 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접세에 담아 학교 가까이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한 개 1페니에 팔았다. 내일은 돈을 좀더 많이 갖고 오너라. 집에서 만든 과자를 갖고 아줌마는 날마다 여기에 올 테니까. 그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1주일 동안에 그녀는 4달러 15센트의 이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새로운 정열이 솟구쳤다. 그녀는 자기뿐 아니라 아이들도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번민하거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일리노이주 메이우드의 얌전하고 조용한 주부는 점차로 힘이 났다. 그녀는 그 소란스러운 대도시 시카고에 대리인을 두고 집에서 직접 만든 캔디를 팔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길에서 땅콩을 팔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조심조심 다가가서 말을 해 보았으나, 상대는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의 손님은 땅콜을 원하지 캔디를 찾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견본을 내주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캔디를 팔기 시작하여, 첫날에 벌써 스나이더 부인에게 2달러의 이익을 내주었다. 4년 후 그녀는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가게는 8피트의 넓이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녀는 밤에 캔디를 만들어 낮에 그것을 팔았다. 이 소심하고 겁많던 주부가 이제는 열 일곱 군데의 가게를 시카고 시내 여기저기에 가지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뉴욕의 넬리 스피어 부인도, 일리노이 주 메이우드에 사는 올라 스나이더 부인도 경제적 문제로 번민하지만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녀들은 부엌 난로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데 극히 규모가 작은 방법으로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잡비도 집세도 광고비도 급료도 들지 않았다. 이런 조건 밑에서는 여자가 경제적 고민에 지고 마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의 주위를 둘러보라. 할만한 일이 그대로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이를테면 만약 당신이 요리 솜씨가 능숙하다면 자신의 집 부엌에서 처녀들을 위해 요리 강습을 시작하여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배울 사람은 한 집 한 집 권유하고 다니면 모일 것이다. 여가를 이용한 돈벌이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책이 출판되어 있다. 그것도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한 마디 주의해 두겠는데,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세일즈맨으로서 적격이 아닌 사람은 집집마다 호별 방문하는 판매에는 종사하지 않는 편이 좋다. 대개의 사람이 그것을 싫어하고 성공도 하지 못하니까. 법칙10:결코 내기에 손대지 말라. 나는 언제나 경마나 도박으로 돈을 별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데 놀라고 있다. 어떤 사나이는 몇 대의 자동 도박기를 소유하여, 그것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도 도박으로 돈을 별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나는 또 미국에서 손꼽을 만큼 이름난 마권 장수를 알고 있는데, 그는 나의 성인 클라스의 학생이었던 일이 있다. 그는 나에게 그만큼 경마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어도, 경마로 돈을 벌기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더욱이 현실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경마에 1년에 60억 달러나 걸고 있다. 이것은 1910년도 전 국채액의 6배이다. 이 마권 장수는 이런 말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못마땅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나이를 파멸케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마에 손을 대개 하는 일이라고. 나는 그에게 예상표를 믿고 마권은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질문했더니 그렇게 하면 조폐 공사가 아무리 많더라도 모자라지요. 라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기에 손을 대고 싶다면 적어도 스마트하게 하자. 얼마나 이길 승률이 있는지 알아 보자. 어떻게 하면 내기로 돈을 벌 수가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에는 무관심하다. 그는 단순히 모든 내기에 있어서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분명히 안다면 당신은 땀흘려 번 돈을 경마, 트럼프, 주사위, 빠찡꼬에 내기를 걸고 있는 한심한 사란들에게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법칙11:만약 우리 경제 상태를 개선할 수 없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분풀이를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을 원망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자. 가령 우리가 자신의 경제 상태를 개선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임하는 우리의 정신 태도는 개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고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A.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여 번민한다. A는 A대로 B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고 하여 번민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들도 경제상의 고민이 있었다. 링컨이나 와싱텅도 대통령 취임식에 출석하기 위한 여비를 다른 사람에게서 꾸어야만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부 얻을 수 없다고 하여 번민이나 원망으로 우리의 매일을 헛되어 망쳐 버려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책망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위하자. 철학적이 되자.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 철학의 진수는 될 수 있는 한 외부의 사물에 시달리지 않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고 에픽테토스는 말하고 있다. 세네카는 또 만약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을 느낀다면 전 세계를 다 차지해도 불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을 잊지 않도록 하자. 즉 전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둘레에 울타리를 둘러친다고 해도 당신은 하루에 세 번밖에는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잘 때는 침대 하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구덩이를 파는 인부라 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가 오히려 록펠러보다도 세 번 먹는 식사를 맛있게 한층 더 편안히 잠잘 것이 틀림없다. 이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적인 고민을 적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법칙을 지키도록 하자. 1. 종이에 사실을 적어 놓는다. 2. 필요에 맞고도 정확한 예산을 작성한다. 3. 돈은 알뜰하게 살려서 쓸 것. 4. 수입이 느는 것과 함께 두통을 늘게 하지 말 것. 5. 신용을 얻어 둘 것. 빚을 얻어 쓸 경우를 고려하여 6. 질병, 화재, 불시에 일어날지도 모를 사건에 대비하여 자기 자신을 지킨다. 7. 생명 보험금을 아내에게 한꺼번에 현금으로 주도록 해 놓지 말 것. 8. 자녀에게 돈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가르친다. 9. 주부라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일지라도 여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10. 절대로 승부를 겨루는 내게에 손대지 말 것. 11. 경제 상태를 개선할 수 없는 때일지라도, 그것을 단념하고 자신을 책망한다거나 원망하거나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로할 것.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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