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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by 이덕휴-dhleepaul 2018. 12. 30.


이란 여름왕궁(이스파한-페르세 폴리스 사자상)알렉산더왕의 침략시에 사자얼굴이 많이 손상되었다.

나는 이란 남부 아바단에서 자동차로 8시간 걸려서 이곳에 왔다.

       아래: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왕궁에 들어가는 입구의 돌벽이다.

  

    

  • 제목 : 페르세폴리스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페르세폴리스

상세정보

  • 국가 이란(Iran, Islamic Republic of)
  • 위치 파르스(Fars) 지방
  • 좌표 N29 56 3.984|||E52 53 25.008
  • 등재연도 1979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이중 현관 계단, 조각한 장식 띠로 덮인 여러 층의 벽, 대규모의 입구, 날개 달린 거대한 소들, 대형 홀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은 장엄한 건축 조형물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건축가들은 탁 트인 공간에 지붕의 채광을 세심하게 조치하며, 놀랄 만큼 가는 기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였으며, 문과 창문을 가로지르는 가로대는 나무로 만들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전형적인 수도들 가운데 최고이다. 특히 유적 입구 천장 대들보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위에 있는 두 쌍의 황소 조각은 서로 등을 맞대고 무릎을 꿇은 채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황소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날개를 달고 있다.

    기준 (ⅲ) : 웅장한 진입로, 기념비적 계단, 알현실, 접견실, 부속 건물들의 이 앙상블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학적 유적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독특한 자질을 보여 주는 증거로 평가된다.

    기준 (ⅵ) :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은 바로 그것을 건설한 다리우스 1세가 정상의 자리를 계속 누린 곳이다. 훗날 다리우스 1세와 다름없는 많은 왕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적을 정복하고 왕위를 지켜 나간 이곳에는, 조각되어 있는 무리처럼 전사, 호위병, 고관, 그리고 공물을 가져온 여러 국가들의 사신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요약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1세(Darius I)가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 Empire)의 수도로 세운 도시이다. 거대  한 반(半) 인공, 반 천연 기단 위에 건설되었으며, ‘왕 중의 왕’이 이곳에 메소포타미아 양식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왕궁 복합 단지를 창건하였다. 페르세폴리스 유적은 그 중요성과 가치로 인해 독특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차
유산면적
13㏊
참고번호
114
본문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한 유적지는 현재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650㎞ 가량 떨어진 마르브다슈트(Marv Dasht) 평야의 쿠이라마트(Kuh-i-Rahmat, 자비의 산) 산기슭에 있다. 기원전 518년에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다. 기단의 남쪽 면에 새겨진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대제가 페르세폴리스의 창건자임을 알 수 있다.

‘왕 중의 왕’이 거대한 반 인공, 반 천연 기단 위에 메소포타미아 양식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왕궁 복합 단지를 창건한 것이다. 불규칙하고 바위투성이인 산의 사면을 잘라내어 거대한 기단을 만들고, 잡석으로 갈라진 틈과 팬 곳을 메우는 작업이 주가 되었다. 건물을 세우기까지의 작업은 상당히 힘들고 방대했다. 이중 현관 계단, 조각한 장식 띠로 덮인 여러 층의 벽, 대규모의 입구, 날개 달린 거대한 소들, 대형 홀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은 장엄한 건축 조형물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건축가들은 탁 트인 공간에 지붕의 채광을 세심하게 조치하며, 놀랄 만큼 가는 기둥(지름 1.6m, 높이 20m)을 최소한으로 사용했고, 문과 창문을 가로지르는 가로대는 나무로 만들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전형적인 수도들 가운데 최고이다. 특히 유적 입구 천장 대들보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위에 있는 두 쌍의 황소 조각은 서로 등을 맞대고 무릎을 꿇은 채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황소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날개를 달고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상징으로 왕조 도시의 걸출한 예이다. 그 때문에 330년,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다. 『플루타르크(Plutarch)』에 따르면, 그들은 20,000마리의 노새와 5,000마리의 낙타에 페르세폴리스의 보물을 실어 갔다고 한다. 오늘날 도시를 이루는 유적은 산을 배경으로 한 반 인공, 반 천연의 거대한 석조 기단이며 크기는 가로 530m, 세로 330m이다.

다리우스 1세는 이 웅장한 복합 왕궁을 통치의 중심지로서만이 아니라 주로 아케메네스 왕가와 제국의 알현식과 연회를 위한 연회장, 연극 무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다리우스 1세는 생전에 자신의 계획 일부만을 실현하였다. 웅장한 진입로, 기념비적 계단, 공식 알현실(Apadana), 접견실, 부속 건물들의 앙상블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학적 유적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독특한 자질을 보여 주는 증거로 평가된다.

다음 수세기 동안 많은 사람이 페르세폴리스와 아케메네스 왕궁의 터를 방문하고 묘사했다. 시카고 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후원으로, 에른스트 헤르츠펠트(Ernst Herzfeld)의 감독 아래 1931년~1934년, 그리고 에리히 F. 슈미트(Erich F. Schmidt)의 감독 아래 1934년~1939년에 페르세폴리스와 그 부근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유적의 터가 발견되었다.

기단에는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대왕(Xerxes, 기원전 486~465), 그의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기원전 465~424)가 장려한 왕궁 복합 단지를 세웠다. 대규모의 입구, 공식적인 홀, 개인의 방들이 안뜰을 통해 회랑으로 연결되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주로 크세르크세스의 작품이다. 기단의 북쪽 부분은 주로 접견실, 알현실, 크세르크세스 대문으로 이루어지며 페르세폴리스 복합 단지의 공무용 공간으로서 제한된 일반인에게만 접근이 허락되었다. 다른 쪽에는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대왕 및 후궁들의 왕궁, 의사당 등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주요 건물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이었다. 현관의 문설주와 상인방, 문틀, 들보의 불룩한 부분, 토대와 기둥머리 등의 주된 지탱 요소, 기념비적인 현관, 조각된 널찍한 바닥에 사용된 마름돌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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