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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by 이덕휴-dhleepaul 2019. 2. 16.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칼 포퍼, 이한구 옮김(세미나 발제문) 서평(일반)

2005. 3. 12.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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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페 > 벼리의 철학 노트 | 벼리
원문 http://cafe.naver.com/philonote/245

 

 

 

 

 

 

 

 

민음사, 1998

 

발제부분 :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 1
제8장 철인 왕(The Philosopher King)
제10장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이 발제문은 'Karl 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 Routledge, 1945;1966'과 한국어 번역본인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옳김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민음사, 1982'를 참고하였습니다. Part 1의 인용문 괄호 안의 첫 번째 숫자는 영어본, 두 번째가 한국어본 페이지수입니다.

Part 1 평주
들머리
1. <국가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국민을 다 속이는 것이-만약 그것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국가 통치자의 일이며, 다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이다>(138;194).

:포퍼가 이 장에서 주목하는 플라톤의 언급이다. 플라톤이 철학자를 정의하는 바. '진리를 사랑하는 자'와 그의 정치철학적 저서(대표적으로 『국가』와 『법률』)에 등장하는 철인치자의 모습이 모순된다는 것이 포퍼의 문제제기며, 여기서부터 플라톤 정치철학의 심각한 맹점이 드러난다고 본다.

Ⅰ. 통치자와 의사
2. 나는 그 선전용 거짓은 단지 피지배자들에게 써먹기 위한 것이고, 지배자들은 완전히 개명된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크로스만의 제의에는 동의할 수 없다. … 내가 의미하는 그의 위대한 선전용 거짓이란, 그의 종족주의와, 인간에 있어서의 금속의 신화와 대지에서 태어난 자의 신화로서 알려진 그의 피와 흙의 신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공리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원리들이 모든 것, 심지어 지배자들의 진리를 알 권리, 진리를 말하도록 요구하는 특권까지도 위압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배자들까지도 선전용 거짓을 믿어 주기를 원했던 플라톤의 동기는 선전의 전체적 효과를 높이고자 한 데서 연유한다. 즉 주인 종족의 지배를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139~140;196).

:크로스만의 해석은 , Plato To-Day(1937), p. 130을 말한다(주7). 크로스만은, 포퍼에 의하면, 플라톤의 '거짓말'이 단지 피지배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선전 기술이라고 말했다. 포퍼는 그것이 선전(propaganda)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단지 피지배 대중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퍼가 여기서 플라톤 철인치자론의 핵심적 사고라고 보고 비판하는 우생학(eugenic)과 종족주의(racialism)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생학과 종족주의는 플라톤에게 철인치자론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사용된다. 이 논의는 다음 절로 이어진다.

Ⅱ. 종족주의와 선전용 거짓
3. 정치가는 <설득과 힘으로>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서 … (140;197)

4. 플라톤이 자신의 종족주의를 좀더 과격한 형태로 당장 내놓기 꺼려한 것은, 그것이 당시의 민주주의나 인도주의적 경향에 얼마나 반대되는가를 그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141;198).

:플라톤의 '머뭇거림'과 '갈등'에 대한 해명은 이 책의 10장에서 서술되고 있다. 그러한 머뭇거림은 결과적으로 플라톤에게 내적인 갈등을 유발시켰는데,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철학적으로 배반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갈등과 갈등의 '비열한'(208) 해결이 드러난다는 것이 포퍼의 관점이다. 또한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소크라테스의 민주주의적 이상과 모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의 기소는 그와 다른 이유에서 이루어졌었다(261~263, 블로흐 49~30).
플라톤의 이론적 머뭇거림을 단적으로 언급한 부분을 추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4-1. 플라톤의 생각으로는, 구 과두파의 강령들은 다른 신념, 즉 열린 사회의 신념과는 대치되는 부족주의의 옛가치를 재확인하는 확신에 근거하지 않고는 재생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정의가 불평등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Men must be taught that justice is inequality. 그리고 사람들은 부족이나 집단이 개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공개적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플라톤은 그것을 닫힌 사회에 대한 신념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 일은 어려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는 그를 요구할 어떤 권리도 상실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지혜가 없다고 해서 다수의 대중과 그의 지도자들을 비판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소크라테스는 <교육받은> 학식있는 철학자의 통치를 권장했기 때문에 그를 재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195;265).

4-2. 플라톤의 가장 큰 갈등은 소크라테스가 그에게 준 인상에서 시작했지만, 그 자신의 과두주의적 기질은 이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197;267).

4-3. 한 편으로는 플라톤의 이론과 다른 한편으로는 舊과두정치 독재자와 30인 참주의 이론에 차이가 있는 것은 위대한 세대의 영향 때문이다. 개인주의, 평등주의, 이성에 대한 신념, 자유에 대한 사랑은 새롭고 강력한 것이었으며, 열린사회의 적들의 관점에서 보면 항거해야만 할 위험스런 감상이었다. 플라톤 자신은 그 영향력을 느끼고 그의 내부에서 그것과 싸웠다(198~199;269).

5. 그러나 플라톤이 종교적 문제를 정치와 관련지어 생각할 때는, 그의 정치적 기회주의가 다른 모든 감정들을 밀어내 버린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법률』에서 플라톤은 정직하고 명예로운 국민이라 할지라도 신에 대한 그들의 의견이 국가가 생각하는 바와 빗나갈 때는 가장 무거운 형벌로 다스리기를 요구한다.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런 죄목으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잊었던 것일까?
… 이런 요구를 내세우게 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로 국가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중심적인 종교원리에 의해 제시된다. … 국가는 이런 정치, 종교적인 교의의 모든 부분에 대한 의심을-특히 신들은 결코 처벌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는 원리에 대한 의심을-모두 억압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요구에 의해서 이것은 더욱 명백해진다(143;200).

:플라톤에게 종교 즉 신화는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민의 복종을 신에 대한 공포를 통해 이끌어 내기 위한 술책이다. 여기서 포퍼가 잠시 지적하는 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그러한 신성에 대한 '모독'과 관계 있다는 것인데, 플라톤은 그러한 모독에 대한 기소를 그의 정치철학적 논변을 통해 긍정하고 있다. 이것은 포퍼가 10장에서 자세히 논증하는 '플라톤의 이론적 배반'의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264~267). 공포를 통한 정치는 스피노자에 의하면 가장 저열한 종류의 치세다.

6. 특히 모든 변화를 억제해야 하는 긴박한 필요성이 있다는 그의 신념의 근본적인 성실성은 거의 의문시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제10장에서 이것을 다시 논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이 진리에 대한 소크라테스적인 사랑을 지배자 계급의 통치는 강화되어야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칙 아래에 두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어져야 하며, 그런고로 <진리>라고 불려져야 하는 이상 진리에 대한 다른 기준이란 없을 것이다(243;200~201).

:다시말해, '철학자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진리를 사랑하는 자'라는 소크라테스적인 정의가 플라톤의 의도적인 배반으로 인해 정치적 훼손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 전락이 필요했던 절박한 이유를 포퍼는 변화(change)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감에서 찾고 있다. '변화에 대한 거부'라는 플라톤 정치철학의 테제는 보다 근본적으로 포퍼의 정치철학에 반한다. 포퍼의 정치철학은 온건한 의미에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 이론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온건하다'는 것은 그가 맑스주의나 무정부주의의 '혁명적 사회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포퍼의 이런 보수주의적 경향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비판받은 바 있다(안상헌, 이한구 293~294).

7. 이론적으로 유사한 단계가 헤겔의 실용주의적 후계자들에 의해 실제로 취해졌고, 실천적으로는 헤겔 자신과 그의 급진주의적 후계자들에 의해서 취해졌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소크라테스적인 정신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나는 헤겔 학파가 취한 단계는 소크라테스의 어떤 동료에게서도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145;201).

:여기서 말하는 '헤겔의 실용주의적 후계자들'은 발제자가 생각하기에 헤겔 우파를 말하는 것 같으며, '급진주의 후계자들'이라 함은 헤겔 좌파, 즉 맑스와 맑스주의자들을 말하는 것 같다. 다시말해, 헤겔 학파들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퍼의 이러한 반헤겔주의적 경향은 그가 이 책 2권에서 밝히는 바, 역사주의(historicism) 비판과 관계 있다. 포퍼에게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측을 사회과학의 기본적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목적은 역사 진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율동이나 유형,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보는 사회과학의 한 접근법>을 의미한다(엄정식 주12, 이한구 282, ? 119). 그래서, 역사주의는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를 설정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유토피아에 대해 마술적(magical) 선전을 해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포퍼에게 유토피아는 일종의 부족주의(tribalism)의로의 퇴행현상이며, 플라톤적 전체주의(holism)와 다르지 않다(이한구 282~289). 포퍼는 후에 맑스의 이론을 유토피아주의와 구별하게 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거두지는 않는다(? 110).

:포퍼가 플라톤은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언급은 이 책 203쪽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플라톤의 『국가』편에는 그 '설명할 수 없음'이 플라톤 자신의 무능력에 기인하기 보다. 선의 이데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설명을 거부하는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플라톤 506 d).

Ⅲ. 학식지배
8. 플라톤이 철학자는 진리를 사랑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왕은 <보다 용기있고> 또 거짓말을 사용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든가,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 철학자는 학식있는 자이며, 현인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학식의 지배, 즉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학식지배 sophocracy인 것이다(144~145;201~202).

:플라톤 비판의 화두가 되었던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는 포퍼가 만든 '학식지배'라는 개념으로 플라톤 철인치자론을 정의하는데, 이 정치체는 '창건(foundation)'과 '보존(preservation)'을 그 기능으로 한다. 이후부터 이 두 가지 기능연관이 분석된다.

Ⅳ. 철학자와 선의 이데아
9. 이런 식으로 플라톤은 철학자라는 술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In this way, Plato gives the term philosopher a new meaning. 즉 형상이나 이데아의 신성한 세계를 사랑하는 자며, 투시하는 자라는 새로운 의미를 철학자라는 말에 부여한 것이다(149;202).

:따라서, 철인 왕은 '형상이나 이데아의 신성한 세계' 즉, 선의 이데아를 따라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자다. 그러므로, 국가의 창건은 철학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10. 선이 목적이며, 선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라는 언명들은 우리의 정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 공허한 형식주의 …(151;203)

:포퍼에게 이데아는 '공허한 형식주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과학철학 이론과 관계가 있다. 그의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구획기준론에 의하면, 이데아론은 과학적 지식으로서 쓸모 없는 공허한 이론다.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에 비추어 봐도 이데아론은 비과학적 형이상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11. 따라서 선은 사물들의 변하지 않는 상태며 억제된 상태인 것이다. … <철학적 본성은 영원히 존재하며 생성이나 파괴에 괴로워하지 않는 실제를 나타내 주는 그런 종류의 학문에 대한 사랑이다.> 플라톤이 지혜를 논하는 방법도 변화를 억제해야 한다는 그의 이상을 넘어서는 것 같지 않다.(159;203)

:논제 6 참조. 플라톤의 선 이데아를 이렇게 바라보는 입장은 현대 프랑스 철학의 들뢰즈의 입장과 유사하다(질 들뢰즈, 이정우 옮김 『의미의 논리』한길사 중 보론「플라톤과 시물라크르」).

Ⅴ. 왜 철인 왕이 요구되는가?
12. 플라톤이 지배자의 철학적 교육에 부여한 최대의 중요성은 다른 이유-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들로써 설명되어야 한다.
그 주된 이유는 지배자의 권위를 최고도로 증대시킬 필요성이었다고 생각된다.
… 그러므로 플라톤의 철학적 교육은 명확한 정치적 기능을 갖는다. 그것은 지배자에게 어떤 표시를 붙여 주는 것이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장벽을 쌓는 것이다(157;205).

:이 부분에서 포퍼는 철인치자의 기능 중에서 두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교육이며 다른 하나는 우생학이다. 여기 발췌부분은 교육에 관계 되는 것인데, 플라톤의 국가에서 철학이 교육적 가치를 가지는 것도 명확한 정치적 목적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Ⅵ. 축산왕으로서의 철인 왕
13. 이런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지배자들이 그들 자신의 지위와 훈련으로 <탁월하게 우수한>계급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최초의 암시중의 하나이며, 그리하여 지배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150;208).

:이 절에서 포퍼는 이 책 4장에서 언급한 플라톤의 목축업에의 비유를 직접적으로 플라톤의 정치철학과 연관시킨다. 이 목축에는 일종의 우생학적 고려가 철저하게 도입된다. 다시 말해, 치자계급의 순수혈통을 보존하고 그 능력을 최고화하기 위한 기술이 고려되는 것이다. 포퍼에게 이러한 시도는 종족주의의 전형이다.

Ⅶ. 철인왕은 플라톤 자신이다.
14. 철인왕의 주권 … 플라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요구만이 사회생활의 악을 종식시킬 수 있다. 즉 이러한 요구만이 정치적 불안정 political instability과 같은 국가 안에서 만연하는 악을 종식시킬 수 있고, 이 악의 보다 근원적 원인인 종족퇴화 racial degeneration와 같은 종족 구성원 상호간에 만연하는 악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152~153;210)

:정치체의 흥망을 바라보는 플라톤의 방식은 그의 우생학과 관련되어 있다. 종족주의의 명확한 발로로서 이러한 우생학은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을 계급간의 혼효에서 찾는다. 포퍼에게 이것은 반인간주의며 전체주의다.

15. 철학자들이 각국의 왕이 되지 않는 한, 혹은 오늘날 왕이나 통치자라고 불리는 자들이 진실되고 아주 훌륭한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즉 정치적 권력과 철학이 합쳐지지 않는다면, (오늘날 자연적 성품에 따라 이들 가운데 하나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억압당하고 있지만) 여보게 글라우콘, 그렇지 않으면 안정은 있을 수 없을 걸세. 또 그 나라에는 재앙이 그칠 날이 없을 거고-마찬가지로 인류에게도 재앙이 그칠 날이 없을 거라고 믿네.>
… 플라톤의 이 중요한 구절은 책 전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요구를 선언한 이 핵심적 구절에서 그의 종족주의를 시사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생학에 필요불가결한 그 모든 과학을 연구한 <진실되고 충분한 자질을 갖춘 철학자>가 없으면, 국가는 멸망하기 때문이다(151~152;209~210).

:따라서, 우생학은 정치철학의 핵심적 기술이 된다. 여기서 철학자들은 앞서 말한 교육적 입장에서 선의 이데아를 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 능력으로 우생학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있는 자는 폴리스에서 단하나의 계급 철학자들 뿐이다.

16. 이리하여 우리는 진정한 수호자의 자격에 대한 비밀을 알고 또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플라톤 자신뿐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한가지 사실만을 의미할 뿐이다. 철인왕은 플라톤 자신이며, 『국가』는 플라톤 자신의 왕권에 대한 요구다. 플라톤은 철학자로서의 요구와, 순교자 코드루스의 합법적인 후계자로서의 요구를 모두 자신 속에 통일시켜, 권력은 마땅히 자기가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11).

:이것이 8장에서의 포퍼의 결론이자 플라톤 철인치자론이 가지고 있는 함의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며, 일종의 '단죄'일 것이다. 포퍼는 이렇게 해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이 뒤의 절은 이 판단에 대한 부가적 논증과 상황전개, 그리고 풍자로 이루어진다.

Part 2 정리와 비판
1. 이 책에서 펼쳐지는 포퍼의 플라톤 정치철학 비판은 실로 강력하다. 많은 평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비판은 단순한 '깍아내리기'나 자기 입장으로의 '환원'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포퍼의 일반적 비판 방식은 일종의 내재적 비판이라고 보이는데, 그것은 비판 대상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존경 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 111~113).
이 장에서 포퍼는 최초의 문제제기로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의 철인치자론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추적한다. '왜 철학자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그것은 플라톤의 정치적 야심이다'라는 답변으로 용의주도하게 이끌려 간다. 질문 자체가 제기된 배경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논증의 구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왜 철학자가 통치해야 하는가? ②철학자는 국가의 창건과 보존에 관계한다. ③철학자만이 이데아를 볼 수 있으므로 국가의 창건은 철학자들이 맡아야 한다. ④국가의 보존은 교육과 우생학적 고려를 통해 가능하다. ⑤우생학 또한 철학자의 전문분야이므로 철학자는 마땅히 이 일에 적합하다. ⑥그런데, 플라톤의 철학자는 당시 몇 명 되지 않았으며, 그의 저서 안에서 그 이외의 철학자들은 진정한 철학자로서 부적합하다(212~213). ⑦그러므로, 철인 왕은 플라톤 자신이다.
이러한 논증은 플라톤이 실제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시라쿠스로 두 번이나 갔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이다.

2. 그렇다면, 이러 비판이 가능한 포퍼 자신의 이론적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열린사회(open society)와 닫힌 사회(closed society)라는 포퍼 정치철학의 중심개념을 이해할 때 알 수 있다.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 사회 closed society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 open society라 부르고자 한다"(241, 이한구 278~281)
이러한 정의로부터 포퍼는 소크라테스 전후 페리클레스 시대, 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전후한 그리스 폴리스를 열린사회로의 이행기면서 닫힌사회와의 갈등이 존재하던 시대라고 말한다(239~251, 엄정식 130). 이것은 포퍼의 복고적 정치성향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 편으로 당시의 그리스 상황에 대한 포퍼의 긍정은 일정정도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 이해와도 맞닿아 있다(이한구 290, ? 6장 전체).
포퍼는 직접적으로 자본주의를 얘기하지는 않지만, 그에게 민주주의는 바로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96~97).
이 입장에서 포퍼는 애초에 제기된 "누가 통치하는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하면 그릇된 통치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한다(? 98, 이한구 281). 이러한 전환은 포퍼가 통치의 형태로서의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난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포퍼의 사회개혁의 방법론인 점진전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개량주의라고 볼 수 있다. 포퍼가 플라톤의 철인국가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맑스와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긍정하지 않고 마술적 예측을 일삼는 이론은 반증가능성이 희박하며, 따라서 과학적 이론일 수 없다. 맑스주의는 일정정도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의 측면을 극복했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비과학적인 이론인 것이다. 포퍼는 그러한 이론을 역사주의로 보고, 부정한다.
그리고, 포퍼는 열린사회와 달리 닫힌사회는 전체주의적이라고 규정한 다음 그의 방법론적 개체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을 전개한다(엄정식Ⅱ 131). 이로부터 포퍼는 그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도출해 낸다.

3. 포퍼의 이러한 방법론과 정치철학은 많은 지지자들을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했다(엄정식 Ⅱ 42, 이한구 293~294). 그 주된 비판의 표적은 포퍼의 사회공학이 가지고 있는 인위성과 보수성에 놓여졌다. 포퍼가 명시적으로 혁명적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주로 맑스주의 정치철학과 비판이론 쪽에서 많이 제기되었다.

4. 포퍼의 보수적 경향에 대한 비판들 외에 발제자는 그러한 보수주의가 어떻게 포퍼의 이론과 방법론 내부에 자리잡게 되었는가 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비판을 해 보고자 한다.

첫째, 포퍼의 열린사회/닫힌사회의 이분구도는 한 사회의 통시적 경향을 분석하는데 매우 부적합한 틀로 보인다. 그가 사회학주의에 대해 부정적 자세를 견지하였다는 것은 이런 경우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엄정식 230).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이 이분구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도 내에서는 어떠한 역사적 경향성에 대한 분석도 역사주의라는 오명을 쓰게 되어 있다.

둘째, 그의 방법론적 개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원적 해악이라고 볼 수 있는 '경쟁'의 구조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항상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성원들 간의 지위다툼'(241)을 열린사회의 특징으로 긍정함으로써 포퍼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을 해결할 이론적 통로를 애초에 차단해 버린다. 유일한 길은 구성원들 간의 토론과 합의인데, 이 토론과 합의가 만일 '반증가능성'이라는 원칙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연기하거나, 탁상공론화시켜 버릴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그 토론은 엘리트주의로의 위험한 샛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국가개입이라는 케인즈적 해결방식은 자칫 자신의 개체론과 심각하게 모순될 수도 있을 것이며, 실천적으로 그가 결코 원치 않은 국가주의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이것은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나치가 바로 이 국가개입의 극단적 실현이라는 점을 두고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 국가개입이 가져온 수많은 독재의 예증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셋째, 포퍼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근원적으로 계급론의 부재에 있다. 이것은 사회학주의에 대한 거부와 결정적으로 그가 개인주의를 선택했다는 데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점으로 보인다. 이로서, 그는 모든 정치경제학적 사회분석을 도외시하며, 역사적 변화에 대한 비결정주의에 빠지게 된다.
계급론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지 계급투쟁만을 쟁점화하는 정치적 분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치철학적으로 계급론은 그것을 타협을 중심에 놓고 보느냐(사회민주주의), 계급소멸을 중심에 놓고 보느냐(코뮤니즘)에 따라 그 이론적 입지를 달리하게 된다. 그러나, 포퍼는 이 분석틀을 단지 미미하게 취급함으로써, 자신의 분석을 협소한 틀에 가두게 되었다. 계급론의 부재는 포퍼의 대안틀로서의 열린사회/닫힌사회 규정을 협소한 지평 내에서만 사고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포퍼가 사회민주주의자라든지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규정은 발제자가 보기에 그릇된 것으로 비춰진다(? 99, 101). 차라리 포퍼는 신합리주의(neo-rationalism, 엄정식 121) 또는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의 철학적 입장에서 정치철학을 전개하면서, 실천적으로는 '최소고통의 원칙'을 입론하는 '현실적 실용주의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포퍼의 비판은 지금까지의 정치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적 맹점으로서의 '국가형태론'에 갇혀 있다(네그리 Ⅰ258, Ⅱ 448). 직접적으로 국가를 변호하는 측면을 내비치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철학은 일종의 이상적 아메리카 안에서 정치체의 개입을 합리화하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권용립).

5. 그렇다 하더라도, 포퍼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함의가 희석될 필요는 없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넓은 바운더리 안에서 그를 이해한다면, 국가개입 문제가 갖고 있는 아포리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그것은 상호 토론과 함께 현실적인 투쟁의 일정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포퍼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열린사회의 참뜻은 '경쟁'이 아니라, 이러한 소통에 있을 것이다.
앞서 여러 논자들이 지적하는 포퍼의 맹점과 함께 그것들을 해결할 이론적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그의 정치철학은 비판적 예각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역사적 전망을 함께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Karl 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 Routledge, 1945;1966.
권용립「공화국 아메리카-어느 정치문명의 초상」, 『당대비평』2001, 겨울호.
안상헌 「비판적 합리주의자 칼 포퍼의 생애와 사상」, 청주대 신문, 94 10 20.
안토니오 네그리, 펠릭스 가따리 지음, 조정환 옮김,『미래로 돌아가다』, 갈무리, 2000.[네그리 Ⅰ]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윤수종 옮김 『제국』이학사, 2003.[네그리 Ⅱ]
엄정식 지음, 『자아와 자유』, 길, 1999.[엄정식 Ⅰ]
엄정식 「포퍼와 그의 비판철학」[엄정식 Ⅱ]
에른스트 블로흐, 박설호 옮김, 『희망의 원리』, 솔, 1993.
이한구, 「포퍼의 생애와 철학」, 『열린사와l 그 적들』, 민음사273~194.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옳김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민음사, 1982.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국가』, 서광사 1997.

 

*포퍼는 그저 그래, 라는 게 벼리의 생각인데, 그래서 야무지게 포퍼를 비판해 볼 심산이었으나 .... 발제문이라는 제약이 심대하게(?) 작용한 것 같아 아쉬움.

포퍼를 읽으면서, 얘기꺼리 하나를 건졌는데, 이런 거다. 포퍼가 그의 반증가능성 이론과 비결정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의 예증을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충이 나비가 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하더라도, 모든 모충이 나비가 된다고 확증할 수 없다."

포퍼가 진지하게 말한 이 부분에서 벼리가 피식 웃은 것은, 아마 과학의 비결정성에 대한 포퍼의 '사랑'이 멜로드라마 대사의 한 구절처럼 부질없게 들렸기 때문일 게다. 포퍼식으로 돌려 다시 농담하면, 하여간, 우리는 모충이 나비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모든 모충이 나비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방이 될 수도 있고, 매미가 될 수도 있고, 모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포퍼가 말했듯이 추측하는 것이 과학적이라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저 추측한 것을 전칭명제식으로 일반화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포퍼의 과학에 대한 사랑이 참, 너무 소심해 보이는 건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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