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15가지 놀라운 속성
하나님의 15가지 놀라운 속성: 그 의미와 중요성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와 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그분에 대해 참된 것입니다. 제한된 존재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완전히 이해하는 동시에,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말씀과 창조물을 통해 자신에 관해 계시하신 내용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경이로운 창조주께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
하나님은 우리가 알거나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나 그 누구와도 다릅니다. 그는 독특하고 독특하며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단순한 말로 그분을 묘사하는 것조차도 그분이 누구신지 포착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말로는 우리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부분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속성을 갖고 계시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15가지 속성 목록을 따랐습니다. 일부는 신학자들이 “비공유적”(하나님만이 소유하신 특성)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다른 일부는 “전달 가능”(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소유하지만 오직 그분만이 완벽하게 소유하시는 특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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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하나님의 15가지 속성과 그 의미 및 중요성입니다.
1.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 그분은 기원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신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골로새서 1:17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풍부하시도다.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 시편 147:5
하나님이 자존하신다는 사실, 즉 그분은 아무것도 없이 창조되었으며 언제나 영원히 존재하셨다는 사실은 아마도 신자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 속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본성을 붙잡는 것은 강물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토저는 하나님의 무한성의 혼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우리 너머에 계시는 분, 우리의 모든 범주 밖에 존재하는 분, 이름 때문에 무시되지 않으실 분, 우리 이성의 한계 앞에 나타나지 않으실 분, 우리의 호기심 많은 질문에 굴복하지 않으실 분을 인정하려면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많은 겸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낮추거나 적어도 우리가 그분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함으로써 체면을 세웁니다.”
Christian.com에 실린 기사에서 에이드리언 로저스 박사는 하느님의 자존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성서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약 6800번이나 사용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개인적인 언약의 이름이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주 하나님(Lord God)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의 어원은 '자존함', 즉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나 항상 존재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을 때, “바로가 나를 보낸 사람이 누구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나는 바로 나다(I AM THAT 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또는 야훼 는 유대인 서기관들에게 가장 신성한 이름이며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을 발음조차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다른 이름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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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 그분은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나 주는 변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자손은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말라기 3:6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속성은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동일합니다. 그의 성격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습니다. 그의 계획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놀라운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샘 스톰즈(Sam Storms)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본성에 대한 좋은 소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이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확고한 신뢰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변하지 않으실 것이며 실제로 변하실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목적은 실패하지 않으며, 그분의 약속은 난공불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불변하시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우리를 사랑에서 끊을 수 없 느니라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천사나 귀신이나 현재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세상에서 갈라놓을 수 없느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롬 8:3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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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은 자급자족하십니다 – no needs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느니라.” – 요한복음 5:26
제한된 인간으로서 우리는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엄청난 욕구를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죽음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팀 템플(Tim Temple)이 쓴 것처럼 , “하나님은 그 자신의 존재 안에서 완벽하게 완전하십니다.”
Reformation21.org의 블로그 게시물에서 스콧 스웨인은 하나님의 자급자족은 그가 “그 자신 안에서 무한한 부와 지혜와 선하심과 능력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창 17:1; 요한 복음 5:26 ; 엡) 3:16 ).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사랑 안에서 이 측량할 수 없는 부를 소유하셨기 때문에(마 11:25-27; 요한 17:24-26 ), 하나님은 "복이 있으신" 혹은 "행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딤전 1:11). ; 6:15).”
하나님은 자급자족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분께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끝없는 선하심과 평화 와 긍휼과 은혜의 샘이 마르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에베소서 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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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 almight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입의 기운으로 별들의 군대가 이루었느니라.” – 시편 33:6
“당신은 하나님의 신비를 헤아릴 수 있습니까? 전능자의 한계를 조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늘보다 높으니 네가 무엇을 하리요? 그것은 아래 깊은 것보다 더 깊으니 네가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냐? 그 크기는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와서 여러분을 감옥에 가두고 재판을 열면 누가 그에게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그는 속이는 자들을 아신다. 그가 악을 보아도 깨닫지 아니하느냐?” – 욥기 11:7-11
전능함(omnipotent)은 무한한 힘을 갖는다는 뜻입니다(옴니 = 모든 것, 유력 = 강력함). 하나님은 자신의 노력 없이도 자신이 뜻하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본성과 모순되거나 반대되는 어떤 일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 진술에서 “그분의 뜻은 무엇이든”이라는 부분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6장 18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론 무어(Ron Moore)는 그의 신앙 서적 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 “하나님의 전능하신 속성은 하나님이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무엇인가를 계획하시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목적하시면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무엇도 그분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하려고 손을 펴시면 누구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전능함은 두 개의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합니다. 옴니(Omni)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포텐스(potens)는 "강력하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항상 그분의 성품과 일치하며, 그분은 자신이 결정하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 성경은 하나님이 강하고 능하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시편 24:8 ). 그분이 성취하시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 창 18:14 ; 예레미야 32:17 , 27; 누가복음 1:37 ). 종종 하나님은 모든 능력과 권위를 소유하신 분으로 묘사하면서 "전능자"라고 불립니다 ( 고린도후서 6:18 ; 요한계시록 1:8 ). 사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 에베소서 3:20 )라고 말합니다.
“그런 능력이 무섭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분의 무한한 능력에 따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그분 자신과 일치하는 일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도 없고, 죄를 용납하실 수도 없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구원하실 수도 없습니다.” – 존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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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 그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이전 일, 오래 전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나는 종말을 처음부터, 옛적부터, 앞으로 있을 일을 알게 하느니라. 내가 이르노니 내 뜻이 설 것이라 내가 나의 뜻을 다 이루리라” - 이사야 46:9-10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이는 그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뜻이다. 데비 맥다니엘(Debbie McDaniel)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그분은 동시에 어디에나 계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자거나 졸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길을 아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지구상에서 그분이 보시고 아시지 않는 곳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Tozer는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완벽하게 아시며 모든 것의 근원이자 저자이시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것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든 우주 어디에나 존재했거나 존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에 관한 모든 가능한 지식 항목을 포함하는 충만한 완전함으로 아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모든 일과 내일 겪게 될 모든 일을 그분이 알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묵상할 때, 특히 그분의 다른 속성인 선함과 사랑 에 비추어 묵상할 때 , 매우 심각한 일부터 어리석고 평범한 일까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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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은 편재한다 - 그는 항상 어디에나 있다
“내가 당신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당신의 면전에서 어디로 도망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늘 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고 내가 음부(히브리어: Sheol)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에는 주께서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7-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이 있는 하나님이요 먼데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어서 나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나는 하늘과 땅을 채우지 아니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야 23:23-24
편재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Ligonier.org 웹사이트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는 물질적인 물질과 전혀 다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 “그는 오감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차원과 완전히 구별되는 차원에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충만한 임재는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갈까요? 아니면 내가 당신 앞에서 어디로 도망해야 합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아침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기자는 시편 137편 에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선포합니다 .
이는 외로움과 깊은 슬픔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계시다고 토저는 썼습니다.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지식은 우리 삶의 험난한 바다를 잠잠하게 하고 우리 영혼에 평화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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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나님은 지혜로우십니다 – 그분은 완전하고 변함없는 지혜로 가득하십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측량할 수 없도다!” – 로마서 11:33
지혜는 단순한 머리 지식과 지능 그 이상입니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실을 이해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기술과 능력과 함께 사용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만큼 지혜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한결같이 지혜로우시며, 완벽하게 지혜로우십니다. Tozer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는 완벽한 목적을 고안하고 가장 완벽한 수단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입니다. 처음부터 끝이 보이기 때문에 추측하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는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고 각각이 모든 것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고, 따라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흠잡을 데 없는 정확성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런 지혜를 볼 때, 우리의 제한되고 유한한 지혜가 하나님의 무한하고 무한한 지혜와 얼마나 비교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람이 깊이 생각하는 데 얼마나 위안이 되고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보다 더 지혜로우실 수 없다는 사실은 그분이 항상 우리 삶에서 가장 지혜로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을 위해 우리가 세울 수 있는 어떤 계획도 그분이 이미 세우시고 우리를 위해 실행하고 계신 계획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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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 그분은 무한하고 변함없이 진실하시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느니라” - 신명기 7:9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 2:13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분리되고 고립된 특성이 아니라 그분의 완전한 존재 전체의 상호 연결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신실하심은 그분의 불변성, 즉 그분이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으시므로 항상 신실하시다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분의 이러한 속성들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봅니다. 그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결코 신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W Pink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당신의 백성과의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사람은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그분을 헛되이 신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귀중한 진리가 성경의 거의 모든 곳에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백성은 신실함이 신성한 성품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확신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고 변함없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은 그분이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시며, 하기로 작정한 것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며, 결코 마음을 바꾸시거나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심은 그분의 사랑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일을 행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바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계획이 얼마나 신실한지 항상 이해하거나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이해력과 유한한 생각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버림받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고 상처를 입고 죽도록 허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순간에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기억함으로써 위로 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고 선하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혜로우신 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을 신실하게 신뢰하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느니라. 이제 나는 부분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온전히 알려졌던 것처럼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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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은 선하시다 – 그분은 무한하고 변함없이 친절하시며 선의가 가득하신 분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 – 시편 34:8
토저(Tozer)에 따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을 친절하고 온화하며 자비로우며 사람들을 향하여 선한 뜻이 가득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마음이 부드럽고 동정심이 빠르며, 모든 도덕적 존재에 대한 그분의 확고한 태도는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우호적입니다. 그분은 본성상 축복을 베푸시는 경향이 있으시며 그분의 백성의 행복을 거룩한 기쁨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불변성과 무한한 본성 안에 존재하므로, 하나님은 변함없이 항상 선하십니다. 그분의 자비는 그분의 선하심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선하심에서 우리는 그분이 그분의 백성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선하시려는 목적을 갖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Ligonier.com ).
하나님의 다른 완전한 속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일이 잘 진행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증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삶이 급락할 때, 그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시편 기자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 시편 34편 )라고 썼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라고 권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Desiring God의 작가인 앤드류 윌슨(Andrew Wilson)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주제에 관한 자신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단언합니다. 19절에서 그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주목할 만한 선언을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선한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핵심은 다음 문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것에서 그를 구원하시느니라.” 악한 일이 일어나도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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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 그분은 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무한히, 불변적으로 옳고 완전하시다
"반석이시여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길이 다 의로우시도다 신실하시고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 듀엣 32:4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가 단순히 공정한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분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의롭고 선한 일을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라도, 그분이 악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지옥으로 선고하시는 것 역시 옳고 선합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질문은, 그렇다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의한 자를 의롭게 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우리 각자에게는 그리스도가 없듯이!). 토저는 우리가 기독교의 칭의와 구원 교리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줌으로써 이에 답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공의는 침해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만족됩니다.”
하나님의 다른 속성인 선하심, 자비, 사랑 , 은혜에 비추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경건한 자들을 처벌하기에는 너무 친절하다고 잘못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무한하고 변함없는 정의의 현실을 무디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정의를 내리시거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에서의 영원한 진노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수많은 인류 중에서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들 중 일부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나머지는 무엇을 얻나요? 그들은 정의를 얻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비를 받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정의를 얻습니다. 누구도 불의를 당하지 않습니다.” - RC Spr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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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 그분은 무한하고 변함없이 자비로우시며 친절하시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원하는 사람이나 실행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 로마서 9:15-16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자비는 그분의 공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무한히, 변함없이, 변함없이 자비로우십니다. 즉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친절하십니다. 그는 지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정심이 많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우리에게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Spurgeon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실로 모든 참된 자비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것은 과분한 자비입니다. 왜냐하면 마땅한 자비는 단지 정의를 잘못 부르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구원의 자비를 받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반역자가 즉시 영원한 불에 던져질 운명에 처해졌다면, 그는 마땅히 그 운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오직 주권적인 사랑 만이 원인을 찾았을 것입니다. 죄인 자신에게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불순종한 마음 때문에 우리는 죽어 마땅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 그러나 자비 때문에 우리는 마땅한 것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토저는 하나님의 자비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심판은 도덕적 불평등에 맞서는 하나님의 정의인 것처럼, 자비는 인간의 고통과 죄책에 맞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세상에 죄가 없고, 고통과 눈물이 없다면,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는 창조된 우주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분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비를 찬양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간의 비참함과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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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 하나님은 무한히 죄인을 용서하시는 경향이 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 시편 145:8
자비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저주)을 얻는 것이 아니라면, 은혜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자비는 인간의 비참함과 죄악에 맞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듯이, 은혜는 인간의 빚과 허물을 향한 그분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 공로를 부여하시고 이전에 있었던 곳에는 빚이 없다고 선언하시는 것은 그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가 영원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은혜는 우리가 얻거나 잃지 않는 것입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 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 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 그분의 은혜는 또한 주권적입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주고”( 출 33:19 ).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신학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일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구별합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작가 패트릭 마비로그(Patrick Mabilog)는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분의 일반은총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모든 사람이 생명과 공급, 풍요의 축복을 누리는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은 '그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시느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류가 일반은총의 혜택을 받는 반면, 그리스도를 믿고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만이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살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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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 하나님은 무한히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 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 .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요한일서 4:7-8
사랑. RC Sproul은 자신의 저서 God's Love 에서 “현실을 설명하기 전에 비틀거리는”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 모든 속성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다른 속성에 비추어 볼 때에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주권적이며 불변하고 무한합니다.
Tozer는 이렇게 썼습니다. “자유로우신 하나님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기이함은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인간과 동일시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자급자족하시므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며 그것을 얻으실 때까지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유롭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을 우리에게 영원히 묶어 두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활동적이어서 우리를 그분께로 이끄십니다. 그의 사랑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는 어떤 막연한 의미에서 인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당신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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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 그분은 무한하고 변함없이 완전하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이시로다” – 요한계시록 4:8
거룩하다는 말은 신성하다, 구별되다, 존경받다, 신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우리 하나님의 경이로운 거룩함을 묘사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하나님의 모든 속성 중에서 거룩함은 그분을 가장 독특하게 묘사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그분의 다른 모든 속성의 요약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그분의 분리됨, 그분의 다름, 그분이 다른 어떤 존재와도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완전하고 무한한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거룩함은 다른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끝없이, 항상 완전하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분의 기준도 완벽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48 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표준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토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관심은 우주의 도덕적 건강, 즉 거룩함이므로, 이것에 반대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그분의 영원한 불쾌하심 아래 있습니다. 그분의 창조물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것을 파괴하려는 모든 것을 파괴하셔야 합니다. 그분은 죄악을 진압하고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붕괴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일어나실 때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세계 역사상 모든 진노의 심판은 보존을 위한 거룩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진노 , 피조물의 건강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타락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결코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값이 지불되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여겨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그리스도의 완전한 거룩함을 보십니다. 할렐루야! 오직 이것만이 우리가 눈부시게 순결하고 완전하며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랄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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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하나님은 영광스럽습니다 – 그분은 무한히 아름답고 위대하십니다
“그분의 광채는 햇빛과 같습니다. 그분의 손에는 광선이 비치고 그분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 하박국 3:4
존 파이퍼(John Piper)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다양한 완전성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위대함입니다. 무한한 아름다움, 그리고 나는 그분의 성품과 가치와 속성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분의 모든 완전함과 위대함은 보이는 대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Ligonier.org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생각할 때 눈부신 빛의 이미지가 종종 우리 마음에 떠오릅니다. 성경은 종종 우리가 지상에서 경험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밝게 빛나는 빛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하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히 적절합니다 .”
물론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다른 속성들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변함없이 영광스럽습니다. 그의 광채와 아름다움은 그의 존재와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나옵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재와 목적은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예비하신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인간은 다른 것에서 영광을 찾으려 하거나, 자신을 영광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에게 시선을 돌릴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