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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법의학의 세계

by 이덕휴-dhleepaul 2018. 2. 4.

왜 법의학이 필요한가?

지혜와 권위로 재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자식을 두고 서로 어미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 가운데 진짜 어머니를 가리기 위해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지라고 명령하고, 차마 자기 자식을 자를 수 없어 포기한 여자를 친어머니라고 판단한 솔로몬의 지혜는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지혜와 권위만으로 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런 판결 방법을 안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식을 둘로 자를 수 없다"고 눈물을 흘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결을 한 번은 써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 번 쓸 수는 없다. 객관성(조건이 같으면 누가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성질)이나 재현성(다시 그렇게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성질)이 있는 과학적인 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재판에서는 이런 경우에 혈액검사를 하여 아이의 유전자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여자를 친어머니로 판결한다. 유전자검사 결과(과학적 증거)는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재현성이 있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법을 시행하거나 적용하는 일에도 필요하다. 따라서 법을 다루는 사람은 이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복잡해진 사회와 시비를 가리기에 어려운 사건이 많아진 오늘날에 법을 바르게 적용할 수 있다. 나라는 법을 다루는 전문가(법조인)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자격과 권위를 주었지만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들이 법이 아닌 다른 과학적 지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법을 적용하는 전문가는 의학을 비롯한 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도움이 절실해졌고, 때로 그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본디 의학은 법과 관련된 과학은 아니었고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발달한 응용과학이다. 다른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였지만 처음부터 의학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의학과 관련된 생물학과 같은 다른 과학 분야들이 발달하면서, 이런 지식들을 질병 치료나 예방에 이용하면서 또 질병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점점 '과학적'이게 되었다. 이런 지식들은 때로 법을 적용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 다만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몰랐고, 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식들이 어떻게 법에 쓰일 수 있는지를 몰랐다. 법과 의학을 잇는 법의학은 이런 필요로 생겨났다.

법의학은 사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발달하였다. 오늘날 전세계를 둘러보아 국민의 권리를 높이 보장하는 나라는 법의학 또한 발달한 나라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사망에 관련된 것만 보아도, 복지국가를 바라는 나라에서는 국민의 사망에 관한 사항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나름대로 자기 사회에 맞는 검시제도를 발전시켜 놓았다. 검시제도는 법의학제도의 핵심인데, 검시제도는 단순히 범죄와 관련된 사망에 국한하지 않고 보건정책의 기초 자료를 얻는 데에도 이용하고 사람들의 여러 권리를 적절하게 지켜주는 데에도 활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법의학이 발전하지 못하였다. 법률이나, 사회제도나, 심지어 의학교육에서도 법의학은 아직 무관심 속에 묻혀 있다. 무역에 관한 한 우리 나라는 전세계에서 열다섯 번째이지만, 법의학 수준으로 보면 (이것이 꼭 우리 나라의 인권 상황을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아직 후진국에 속한다.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법치국가, 복지국가를 이루려 한다면 우리 나라도 법의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법의학이 필요한가? (법의학의 세계, 2003. 10. 15., ㈜살림출판사)



일반인들이 법의학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법의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고, 그 역할 또한 높아지고 있다. 법조인, 수사경찰...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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