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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티벳의 하늘 밑

by 이덕휴-dhleepaul 2020. 2. 1.











1.
 해발고도 4,062m의 도시, 리탕(理塘)은 티베트 전통마을이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는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아침 7시에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 티베트의 전통장례인 조장(鸟葬)이다. 조장은 시신을 새들이 먹어서 처리하는 장례방식이다. 티베트는 대부분이 고원지대다. 장작으로 쓸만한 나무가 많지 않아 화장은 어렵다. 기온은 서늘한데다 습도도 낮다. 거기다 햇빛까지 강하니 미생물이 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시신의 분해가 느리므로 매장이나 풍장도 적합하지 않다. 더군다나 매장은 얼마 안되는 경작지를 오염시킨다. 이도 저도 안되는 난처한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 조장이다.

 티베트인들은 오늘날에도 시신을 조장한다. 그 중에서도 조장풍습으로 잘 알려진 곳은 시짱티베트자치구 라싸(Lhasa, 拉萨), 쓰촨성 써다(Seda, 色达)와 리탕(Litang, 理塘), 그리고 윈난성 샹그릴라(Shangglila, 香格里拉), 총 네 곳이다. 이 중 샹그릴라의 조장은 송찬린사(Songzanlin Monastry, 松赞林寺)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참관이 불가능하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로부터 남서쪽으로 680km 떨어진 리탕에 찾아가보았다.

리탕의 랜드마크, 리탕사(理塘寺)


2.

현지인들에게 조장터가 어디인지 물어봤다. 다들 지도를 보고는 '이 부근에서 한다'며 아무 것도 없는 초원 한복판을 가리킨다. 써다와는 다르게 심지어 검색해봐도 나오질 않는다. 그곳으로 월요일 아침 7시까지 가면 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조장은 장례라는 특성상 죽은 자가 없으면 이뤄질 수 없고, 유가족이 원치 않을 경우 참관하지 못한다. 사전에 연락할 수도 없으니 가보기 전까진 모른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일찍 잠을 청했다.

현지인이 찍어준 조장터의 위치. 건물은 커녕 도로도 없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숙소를 나왔다. 현지인들이 알려준 위치까지는 약 3km를 걸어야 한다. 9월 말이라 여름이 지난데다가 중국은 세계 3위(또는 집계방식에 따라 4위)의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온 나라가 동일한 시간대를 쓰기 때문에, 서부지역인 리탕의 이른 아침은 한밤중처럼 컴컴하다. 발달된 도시도 아니기 때문에 큰길을 제외하고는 가로등도 거의 없다. 연신 지도를 확인해가며 불안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도 속 위치에 다가갈수록 큰 길에서는 멀어진다. 거리는 개 짖는 소리로 가득하다. '아무리 봐도 여긴 아무 것도 없을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커진다. 마침 차가 한대 지나간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차를 세워 길을 묻는다.

 "조장터가 이쪽 방향이 맞나요?"
 "맞아요. 나도 가는 길이니까 태워줄게요."

 운이 좋게도 차를 얻어탔다. 몇 분여를 달렸을까, 운전자가 초원 한복판을 가리킨다. 모닥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옆으로는 차량들이 가지런히 주차되어있다. 왜 사람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없는지 알겠다. 실제로 주변에 어떤 기준점도 없는 초원 한복판이기 때문이다.

 차량을 내려서 모닥불에 다가갔다. 외국인이 흔하지 않은 동네의 사람들은 외국인을 무례하리만치 빤히 쳐다본다. 그들의 눈에 이 장례의 초원까지 찾아온 이방인은 몹시 이례적이다. 쏟아지는 시선에 쭈뼛쭈뼛 다가서니 그들이 말을 건다.

 "어디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이에요."
 "아, 한국? 불 가까이 와요."

 그들이 자리를 내어주고는 티베트 전통 차까지 내어준다. 내게 먼저 말을 건 남자의 이름은 샹제. 서른 살인 그는 내게 궁금한게 많다.

 "걸어서 왔어요?"
 "걸어서 오다가 차를 얻어 탔어요."
 "유학생이에요?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요?"
 "아뇨, 여행 중이에요. 조장을 보러 왔어요. 봐도 되나요?"
 "그래요."

 샹제와 얘기를 나누니 주변 사람들이 샹제에게 나에 대해 물어본다. 시선이 편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찾아온 이방인에게 적대적이진 않다.

위패 무더기
바닥 곳곳에 독수리 깃털이 떨어져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그들이 언덕 위로 이동한다. 언덕 위의 한켠에는 위패 무더기가 있다. 맞은 편에는 해가 떠오르고 구름이 걷히며 거대한 설산이 위용을 드러낸다. 바닥에는 독수리 깃털이 군데군데 빠져있다. 몇몇 사람은 두세살짜리 아기만한 바위 세개를 들고 올라온다. 이윽고 사람들이 마대자루 하나를 중심으로 둘러선다. 자루는 타원 형태지만 시신이 담겨져있음을 곧잘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일부러 10m 정도 거리를 두고 섰다.

 그 순간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활공한다. 별안간 시신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그는 북쪽 하늘로 잠시 사라지더니 다른 독수리 네 마리와 함께 돌아왔다. 독수리들은 날갯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날개를 활짝 핀 채 위엄넘치는 모습으로 하늘을 유영한다.

본격적인 장례가 시작된다. 조장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새들이 시신의 살을 쪼아먹는다. 그 다음으로는 시신의 내장을 발라내어 새들에게 던져준다. 마지막으로는 뼈를 부숴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한다.

 자루에서 시신을 꺼낸다. 올해로 80세였다는 시신은 한눈에 보기에도 왜소하다. 핏기가 없는 피부는 얼룩덜룩하다. 이미 몸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들면 드는대로, 놓으면 놓는대로 움직인다. 아무런 저항도 없는 그 모습이 기이하다. 시체라기보다는 특수촬영용으로 만들어낸 인형에 가까워보인다. 몇일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꺼낸 시신에는 칼집을 넣는다. 관절부위에도 넣고, 등이나 허벅지 같이 면적이 큰 곳에도 넣는다. 도축한 통돼지를 해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칼을 꽂아 살을 가르는 모습이 똑같아 소름이 돋는다. 아까 전까지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은 어느덧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앉았다. 그 수도 열댓마리로 늘었다. 시체가 준비되기만을 목이 빠져라 지켜본다.

으레 있는 일이라는듯 독수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한켠으로 물러서자마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신에 달려든다. 날개를 접었을 때도 어지간한 중형견 크기는 되는게 독수리다. 그런 동물 열댓마리가 왜소한 시체 하나를 뜯어먹고 있으니 시신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오히려 뜯어낸 살점을 물고 있는 부리가 돋보인다. 간혹 독수리들 사이로 시체의 모습이 보이는데, 어찌나 세차게 뜯어대는지 시신이 들썩거린다. 그나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물체는 점차 피범벅의 고기덩어리로 변해간다.


 살점을 거의 뜯어내고 나면 장례사들이 다시 시신에게 다가간다. 독수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아까 기다리던 장소로 돌아간다. 그제서야 시신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처참하기 그지없다. 칼로 베어낸게 아니고 갈고리로 뜯어낸 모양새라 만신창이다. 찢겨나간 살점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고, 질긴 가죽은 찢어진 모양대로 널부러졌다. 장례사들은 가죽을 칼로 잘라 독수리에게 던져준다. 간혹 머릿가죽처럼 독수리들이 잘 발라내지 못하는 부위는 친절하게 발라내서 던져준다. 그러고는 시신을 수습한다.

 다음으로 내장을 발라낸다. 심장, 간 등의 주요 장기들은 갈비뼈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냥 둬서는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을 수 없다. 관절부위별로 시체를 토막내어 각종 장기를 꺼낸다. 갈비뼈 같은 부위는 칼로는 잘라내기 어렵기 때문에 도끼를 사용한다. 빠각.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가볍고 경쾌하다. 그렇게 꺼낸 장기를 독수리들에게로 던져준다. 그들은 어미새가 주는 간식먹듯이 삼삼오오 모여 내장을 뜯는다. 살점과 내장을 뜯느라 목과 머리가 피로 얼룩져있다. 하필 깃털이 하얘서 핏자국이 더욱 선명하다.

독수리들이 물어뜯기 시작하면 시체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독수리들이 내장을 뜯느라 정신없는 동안 장례사들은 뼈를 처리한다. 통뼈는 새부리의 구조상 먹을 수 없을 뿐더러 맛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게 부수고 '짱바'라는 가루를 뿌려 '입속임'을 해줘야 한다. 짱바는 티베트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 같은 가루다. 미숫가루와 쌀겨의 중간 정도 되는 입자에 매우 연한 노란색을 띠는, 단맛이 나는 가루다.

 아까 사람들이 가지고 올라왔던 돌은 도마로 활용된다. 도마 위에 뼈를 놓고 망치 혹은 도끼로 내려친다. 몇번 내려치고는 짱바를 뿌리고, 튕겨나간 파편을 끌어모아 다시 내려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모든 뼈들이 다리뼈처럼 부수기 좋은 모양은 아니어서 시간이 제법 걸린다. 두개골이 특히 그렇다. 둥근 모양이라 어떻게 부숴도 도마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내리치면 뻑 소리와 함께 파편이 이리저리 튄다. 엄지발가락만한 파편이 내 앞으로 튀었다. 성인남성 다섯명이 들러붙어 15분동안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정성스레 가공한 시신을 한데 모은 뒤 자리를 비키면, 독수리들이 다가온다.

 먹을게 별로 없다는걸 아는지 인기가 덜하다. 절반 정도 먹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아직도 대여섯근은 남아있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 '쑤이'를 꺼내든다. 쑤이는 야크버터 덩어리다. 남아있는 고기에 쑤이를 숭덩숭덩 썰어넣는다. 연장으로 고기와 버터를 뒤섞고는 비켜준다. 아직 배가 차지 않은 몇 마리가 와서 기웃거리더니 먹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이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짱바(좌)와 쑤이(우)를 통해 시체는 고기로 가공된다.

3.


10년 정도 전이었을까. 티베트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된 영상이라 생생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딱 하나가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내가 처음 조장을 알게 된 날이었다. 방송이기 때문에 잔인한 장면들은 모두 생략되었고 '이런 풍습이 있다'는 간략한 내용만 현지인의 입을 빌어 서술되었다. 지금도 매, 독수리 같은 맹금류에 환상을 갖고 있는 나인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어린 눈에 비친 조장은 새가 되어 하늘로 돌아가는, 꿈 같은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꼭 조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친 조장은 꿈보단 현실에 가까웠다. 조장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 과정은 수십년 간 인간의 존엄성을 교육받아온 사람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을 자연의 대척점에 두어, 자연을 극복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근대적 인본주의에 물들어있는 인간에게 인공적임은 자연스러움의 반의어가 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특권적인 위치에 올라앉았고, 어느덧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다. 죽으면 결국 한줌 유기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존엄하고, 인간이기에 죽어서도 존엄해야할 이유가 어디있을까. 매장이든 화장이든 조장이든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어쩌면 조장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소가 풀을 먹고 인간이 소를 먹는 것처럼, 고기를 먹는 동물이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이야말로 대순환이니까.


 하지만 나는 조장을 지켜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떤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미간은 찡그려지고 입은 벌어졌다. 시신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들이 잔인하게도, 걸레짝이 된 시신이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수십 년을 인간의 존엄성을 교육받으며 자라온 나에게 인간의 육신이 동물에게 뜯어먹히는 장면은 '무심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4. 結

티베트인들은 조장을 천장(天葬, 티옌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영어번역도 '천국의 장례식(heavenly funeral)'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새들에게 먹히는 것이 아닌, 하늘 즉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장례식에는 비통함이 없다. 비록 직계가족은 마음이 아파 참석하지 않는게 관례지만, 친척들은 참석했음에도 서글픈 곡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독수리들이 살점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샹제가 묻는다.


 "어때요?"

 "인상깊긴 한데, 무섭네요."

 "别怕.(무서워하지 말아요.)"


 모든 절차를 다 마쳤음에도 여전히 시신의 잔해가 있다. 아마 독수리들은 배가 다 불렀나보다. 사람들은 쓰레기만 치우고 잔해는 따로 정리하지 않고 내려간다. 들판에 남은 고기는 또 다른 새들의 양식이 되겠지. 그게 자연인 것을, 인간의 시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방치되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편치 못하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따라 나선다.


 초원은 전과 같이 푸르다. 설산은 전과 같이 하얗고, 하늘엔 어제와 같은 태양이 햇살을 내리쬐고 있다.

장례의 초원의 반대편에는 설산이 티베트인들의 하늘길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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