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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神學資料

기초신학의 중심 주제들

by 이덕휴-dhleepaul 2020. 3. 27.

기초신학의 중심 주제들

1. 기초 신학 강좌의 전통적 주제 영역

기초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과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토대’와 ‘원리’를 해명하고자 한다. 즉 신학과 경계하고 있는 철학을 비롯한 제반 인문과학들 사이의 “문지방 위에 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면서 하느님의 계시사건의 내용과 의미에 대하여 성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으로서의 기초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내용들(원천으로서 기초)을 다루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오늘날 가능할 수 있는 조건과 원리(원리로서 기초)가 무엇인지도 묻는다. “신학의 기초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기초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원리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원리에 대해 묻는 기초 신학의 첫 번째 과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의 이성적 성찰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 이성에 모순되거나 자의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기 위한 신학적 노력은 본래 그리스도교 내부의 요청이라기보다는 신앙을 위협하는 외부적인 도전들에 대한 응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른바 ‘호교론護敎論, apologetic’은 기초 신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계시 진리와 교회의 신앙을 정당하게 변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호교론적 전통에는 다분히 방어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적인 도전에 대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자기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을 중세 스콜라 철학의 바탕 위에 성실하게 구축해 놓은 스콜라 신학Scholastik의 경우 이성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신앙의 조명을 필요로 하는 이성적 인식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호교론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신학자인 ‘피에르 샤롱(Pierre Charron, 1541-1603)’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호교적으로 주장하고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해명한 바 있다.

 

종교적 논증(demonstratio religiosa): 신(神)과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논증

 

그리스도교적 논증(demonstratio christiana): 바른 종교의 선택에 대한 논증

 

가톨릭적 논증(demonstratio catholica): 진정한 교회의 선택에 대한 논증

 

 

이러한 호교론적 논증은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확산된 계시와 종교비판에 대항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중세 토미즘을 중심으로 발전한 스콜라 신학의 부흥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옹호하려던 ‘신스콜라 신학Neuscholastik’의 입장을 통해 계승 발전되었다. 이들 입장에서 출발한 호교론은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대를 겨냥하여 엄격하고도 분명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들이 신학의 발전 역사 안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요청에 따라서 그 논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가령 세 가지 중에 가장 먼저 발전한 논증 방식은 ‘가톨릭적 논증’으로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혁신앙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 대항하여 가톨릭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강조하기 위해 우선시 되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의 종교와 계시비판 시대에는 인간이 신神을 향한 존재이며, 따라서 종교적 존재임을 논증하려는 “종교적 논증”이 강조되었고, 이어 그리스도교가 신봉하는 하느님(神)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일하고도 절대적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이 계시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이른바 신적 계시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그리스도교적 논증’이 후대의 주된 관심사로 부각되기도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은 계시하시는 ‘하느님’, ‘신神’의 절대적 권위를 중심으로 사유하는 ‘신중심주의theocentric’적 사조에서 탈피하여 이른바 인간을 모든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Anthropozentrische Wende’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신학은 오늘날 과거처럼 절대적인 신적 계시진리의 권위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호교론적 논증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의 신학은 신적 계시진리 자체에 대한 해명보다는 계시를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의 다양한 가능조건들에 대한 기초적 연구에로 관심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오늘날의 신학은 새롭게 발전된 학문적 연구와 사상들과의 대화 속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보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오늘날의 기초 신학은 교회의 호교론적 전통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당성을 어떻게 우리 시대에 설득력 있게 드러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기초 신학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전통적인 주제영역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들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지만, 학문적 방법론과 신학적 사유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주제영역을 다른 관점에서 다루기도 한다. 가령 독일어권의 기초 신학은 오랜 관념철학의 영향으로 신학을 철학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성찰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종교적 논증(Demonstratio religiosa)’을 기초 신학의 제1주제 영역으로 받아들여, 종교라는 현상 속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신앙하는 것의 가능성을 묻는 이른바 이성과 신앙의 인식적인 측면들을 포함하여 ‘종교론적으로’ 연구하는 반면, 로마의 학제를 따르는 기초 신학은 철학과 신학의 분명한 경계선을 의식하면서, 종교적 논증 부분을 종교철학의 주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기초 신학의 제1주제 영역에서는 독일어권 기초 신학이 종교론적 논증을 다루는 반면, 로마권에서는 ‘그리스도교적 논증(Demonstratio christiana)’,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신적 계시사건을 제1주제 영역으로 삼는다. 독일어권에서는 가톨릭적 논증(Demonstratio catholica)을 보다 포괄적인 ‘교회론적 논증’으로 다루는 반면, 로마권에서는 ‘신학적 인식론, 즉 신학적 진리를 인식하는 척도에 대한 관심(De loci theologicis)’에서 신앙진리 인식의 기준들과 신앙행위와 관련된 다양한 원리들을 제3주제 영역으로 다룬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독일식 기초 신학

 

제1주제 영역: 종교론적 논증(Demonstratio religiosa)

 

제2주제 영역: 그리스도론적 논증(Demonstratio christiana)

 

제3주제 영역: 교회론적 논증(Demonstratio catholica)

 

 

로마식 기초 신학

 

제1주제 영역: 그리스도적 논증(Demonstratio christiana)

 

제2주제 영역: 가톨릭적 논증(Demonstratio catholica)

 

제3주제 영역: 신학적 인식론(De loci theologicis)

 

 

 

2. 현대 기초 신학의 주제영역

 

1) 종교론적 논증(Demonstratio religiosa) -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가능한가?”

 

계몽주의 이후 19세기부터 거세진 종교비판Religionskritik은 중세의 견고한 전통 호교론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존재를 거부하거나,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비종교인들이나 극단적 인본주의자들을 향하여 신학은 신의 존재문제와 신께 대한 예배와 경외심의 근거를 해명해야 했고, 종교적 삶과 종교의 타당성을 ‘논증demonstrationes’해야 했다. 그러나 전통적 호교론은 신 존재의 자명성과 신앙의 이성에 대한 우위를 신적 계시의 권위 위에 세웠기 때문에 계몽주의 사조가 제기하는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의 존재와 신의 인식가능성에 대한 해명이 중세 철학사 안에서 다양하게 제시되기는 했지만, 만일 초월적 신이 인간의 인식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다면 그러한 신은 더 이상 인간의 인식 한계를 뛰어 넘는 초월적 신이 될 수 없다는 계몽주의자들의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기초 신학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려는 흐름을 벗어나, 종교와 종교비판에 대항하여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초 신학이 다루는 첫 번째 주제 영역인 종교론적 논증은 19세기 이후 광범위하게 펼쳐진 종교일반에 대한 비판과 그리스도교 계시에 대한 ‘무신론자athesim’들과 ‘이신론자(理神論者 deism)’들의 비판에 대하여 ‘종교론적’ 응답을 시도한다.

 

첫째로, 종교론적 논증은 신에 대한 인간의 신앙 행위에 뿌리를 둔 종교와 종교적 행위가 근거 없고,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이라는 무신론자들의 비판에 대항하여, 신을 믿는 종교행위가 인간의 본질적 실존 이해에서 정초하고 있음을 해명하고자 한다. 동시에 종교적 행위가 인간의 이성적 인식에 부합한다는 점을 밝히고, 종교적 신앙을 단순히 가치 논리의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적이고 사회-정치적 자기존립의 도구 정도로 치부하려는 무신론적 태도를 극복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종교적 신앙이 인간의 인식의 구성적 요소인 동시에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살아갈 수 있는 토대임을 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을 동반한다.

 

둘째로, 종교론적 논증은 성경에 나타난 신에 대한 인격적 신앙의 가능성을 거부하고, 단지 신을 존재의 원리나 이성적 합리성에 국한하여 이해하려던 이신론자들에 대항하여 신을 향한 인간 본성의 근원적 정향성을 해명하여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특징을 규명하는 종교철학적 연구 성과들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접목시킨다. 근대 인간학에서 다뤄지는 인간의 실존적 자기이해를 기반으로 제시되는 인격적 신 신앙의 가능성과 필요성의 해명을 통하여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계시 신앙의 가능 조건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거인 하느님의 존재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기초 신학적 논의들은 오늘날에 와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과거의 호교론적 논쟁에 국한되지 않은 통합-보완적 방향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1) 우선 기초 신학은 과거처럼 종교를 이성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던 자세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즉, 이성은 단순히 지적능력이나 목적 지향 능력, 혹은 논리적 설득력을 통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을 증명해 내는 지성적 영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이성의 합리성이 가진 불완전성과 한계, 때로는 이성이 가설 이상의 명증성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통해 오늘날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한 지식의 형태로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더 이상 이성의 합리성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오히려 인간 정신 영역의 또 다른 능력들, 감성에 기반을 둔 윤리적 판단능력이나, 아름다움을 직관할 수 있는 미적美的 감각능력 등을 포함한 인간의 전인적 신뢰의 태도나 진리에 대한 투신의 의지적, 도덕적 능력이 이성의 본질을 일깨워준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종교적 신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2) 지성知性만으로 종교를 규정하려는 독선적 입장에서 벗어나 종교와 종교현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종교론적 논증은 서구철학이 오랫동안 헤겔의 진화론적 종교관에서 보여준 것처럼 종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절대자인 신과 유한자인 인간의 관계성을 합리적으로 규명하려는 데에서 탈피하게끔 도와주었다. 근래에 들어오면서 다양한 종교와 계시에 대한 이해는 서구의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이성중심의 종교관에서 탈피하여, 종교를 ‘무한자’ 혹은 ‘초월자’를 향한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하는 입장이 종교철학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는 종교의 합리성에 대한 논쟁보다는, 종교체험을 중심주제로 삼아 새롭게 종교를 규명하려는 시도들을 다음과 같은 연구를 통해 이 찾아볼 수 있다.

 

① 근대 해석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는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이면서도 현대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시대정신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재해석하거나 재진술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근대의 계몽주의와 경건주의, 낭만주의의 속에서 인간의 경험을 중시하고, 현대 과학과 그리스도교 전통을 중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종교에 대한 관점도 새롭게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주저主著 ‘종교론(1799)’에서 ‘체험’을 종교의 핵심개념으로 파악하면서, 종교를 인식의 윤리적, 합리적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느낌, 혹은 자각으로 종교를 인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에 따르면 종교란 이 독특한 느낌을 자각하는 인간의 무한자에 대한 ‘절대의존의 감정’ 혹은 ‘무한한 종속의 느낌’, 혹은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고 규정하였다.

 

②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비판에 맞서서 종교의 가장 본질적 요소를 ‘성스러움Das Heilige’으로 바라보고, 거룩함의 의미를 종교 안에서 재발견한 ‘루돌프 오토(R. Otto, 1869-1937)’는 “어떤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종교적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하나의 고유한 가치평가의 행위”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두려움과 동시에 매료하며, 매혹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누멘적인 것das Numiose’, 혹은 세속적인 영역을 철저히 초월하는 ‘전적인 타자’를 신神으로 바라봄으로써, 이른바 비합리적이란 이유로 비판 받던 종교를 오히려 합리성을 넘어 결코 합리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환원 불가능한 영역과 관련된 것으로 새롭게 이해하였다.

 

③ 동서양의 철학을 연구하면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한 일본의 교토학파의 창시자이자 불교철학자인 ‘니시타니 케이지(1900-1990)’는 종교를 제도적 종교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떠나,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자신의 삶이 ‘무無에 근거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고, 그 자각을 통해 그 허무를 극복하도록 해주는 것이 종교의 존재이유이자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무는 단순한 허무적, 부정적 무가 아니라 일체의 부정을 통해 일체를 긍정하는 무, 즉 절대무絶對無를 말한다.

 

④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지성화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종교와 문화가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문화신학文化神學’을 강조한 폴 틸리히(P. Tillich, 1886-1965)는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표현”이라는 관점을 통해 인간의 자기완성을 위한 문화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종교적 관심을 “유한한 인간의 무한자 혹은 초월을 향한 궁극적 관심”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종교와 종교비판’이란 관점에서 출발한 현대 기초 신학이 다루는 종교론적 논증의 주제들을 다음과 같다.

인류역사 안에서 종교현상에 대한 고찰

 

종교학의 이론 속에서 종교의 본질적 의미

 

종교에 대한 철학적 개념 정의

 

신에 대한 문제와 무신론에 대한 성찰

 

종교적 진술들이 의미 있는지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명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사유 가능성에 대한 물음

 

인간존재의 근본행위로서 종교의 의미

 

종교에 대한 신학적 개념정의

 

계시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적 구조들

 

 

2) 그리스도론적 논증(Demonstratio christiana) -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신의 계시 인가?”

 

전통적인 호교론에서 다루는 두 번째 논증인 ‘그리스도론적 논증’은 종교론적 논증에서 무신론자들과 비종교인들을 향해 하느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일에 성공한 후 신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어떤 종교적 형태가 참되고 가장 훌륭하며, 신에 대한 경외심의 적절한 형태인가?”란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점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초기부터 교부학과 호교론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철학적 이성의 합리성으로부터 그리스도교 계시신앙이 강하게 비판되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한 신학의 책임 있는 답변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론적 논증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의 절대성과 완전성을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교인들의 비판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 즉 예수를 신적 계시의 전달자로 이해하는 그리스도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 사건의 정당성에 대하여 해명하고자 했다.

 

오늘날 이러한 전통적 호교론의 논증은 ‘종교 신학’의 범주에서 다뤄져왔다. 종교 신학이란 타종교(이웃종교) 혹은 타문화와 필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그들 안에서 재발견하고, 거기서 드러날 수 있는 신적계시의 가능성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기초 신학의 한 분야를 말한다. 여기서 기초 신학은 계시에 대한 연구를 단순히 언어로 전달된 초자연적 계시내용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 안에 자신을 온전히 인간에게 전달한 ‘하느님의 자기계시Selbstoffenbarung Gottes’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이 과연 올바른 하느님 신앙의 형태인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계시의 완성인지는 의문에 처해 있다. 이 점은 다원주의 철학과 신학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교의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계시의 열린 가능성과 다양한 종교들 안에서 나타나는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의 형태들의 다양성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과연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어떻게 유일회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종교 형태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계시의 흔적들에 대해 배타적 입장이 아닌 포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다.

 

 

① 19세기 계몽주의의 비판을 받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은 계시사건을 하느님의 절대권위에 입각하여 해석한 바 있다. 일반적인 종교의 계시에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을 통한 하느님의 인격적 자기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적인 계시사건의 강조는 계시를 신학의 중심주제로 부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른바 ‘교시이론적敎示理論的 계시모델instruktionstheoretische Offenbarungsmodell’로 이해되는 전통적인 교회의 계시 이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의 계시 이해의 핵심을 이루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즉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종교적 진리와 초월적 능력을 알려주시며, 인간에게 계시의 원천으로서 드러내신다.” 공의회의 입장표명은 인간의 자연본성과 하느님의 초자연적 권위의 이분법적 원리에 기초한 전통적인 스콜라 신학의 계시 이론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즉,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자연이성과 양심을 선사 받았고, 대자연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 수 있지만, 하느님의 진리를 모두 인식할 수 없는 역사적이고 우연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초자연적 진리와 신비들의 특별한 계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초자연적 계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 조건은 인간을 구원에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적합하고 적절하며 인식 가능한 방법으로 진리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며, 인간은 신적인 인격성, 자유, 지혜와 덕스러운 것들을 계시의 수호자이며 전달자인 교회의 교도권의 가르침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적 계시의 전달에 관심을 둔 전통적인 스콜라 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호교론적인 입장에서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가령 타민족에게서 발견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작되어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사건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주론적 관점에서도 세상의 인과율의 법칙에 의거하여 존재의 최종적 근거자체를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의 유일하신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독특한 사상을 전개하였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윤리 도덕적 삶과 계명들이 신의 역사 안의 초월적 개입을 증명하는 것임을 드러낸다는 가치적 논증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나타나는 목격자들의 증언들의 신빙성에 대한 신뢰와 자연 질서를 뛰어 넘는 성경적 기적사화들 안에서 나타나는 초월적 계시사건의 구체성을 그리스도교 계시 사건의 절대성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와 유대교 전통에 부합하는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아이며, 신적 계시의 성취임을 입증하고자 했던 교회의 호교론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적 호교론의 관점에서 주장된 그리스도교 계시의 정당성은 자유로운 성경 비판적 연구방법의 발달과 근대 정신과학의 연구 성과에 따라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전인 구약성경에 나타난 계시신학이 타종교들의 것들 보다 결코 우월할 수 없다는 입장이나, 유대인의 유일신론이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신으로 해석되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윤리도덕의 정당성이 보편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근대의 성경 연구에 따르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강조하기 위한 기적사화들은 자연 질서를 깨뜨리는 초자연적 계시의 증거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과 치유, 해방을 가져오는 하느님의 현존임을 강조하기 위한 ‘신앙 고백’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성경의 탈신화화脫神話化가 가져다준 충격은 이제까지 주장해온 그리스도교 계시의 합당성을 주장하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을 던져주게 되었다. 이러한 계시 이해는 타종교들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계시의 가능성이나,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고통의 문제들을 통해 신의 전능과 신의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답변을 주지 못하였다.

 

 

 

②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이른바 하느님은 당신 거룩한 뜻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격적인 방식으로 인간에게 남김없이 전달해주셨다는 인격적 ‘통교-참여적 계시’kommunkativ-patizipatives Offenbarungsmodell가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Dei Verbum)은 계시를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의 사건으로 해석하면서 이러한 만남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중개해준 분이 바로 역사 안의 나자렛 예수이며, 그분이 하느님 계시 사건을 완성한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시며, 예수는 하느님과 완전한 인격적 일치를 통해서 인간의 궁극적 희망을 드러내 주신 부활하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 이해는 성경 전반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오늘날의 시대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적 성찰의 결실이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밖에서의 하느님의 계시의 가능성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교회는 계시의 완전한 담지자 혹은 전달자라기보다는 하느님과 인류가 긴밀한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자 도구’(교회헌장 1항)임이 드러난다.

 

 

오늘날 그리스도론적 논증은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변화된 계시 이해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생한 유일회적인 계시 사건을 독단적인 진리주장으로써가 아니라, 이웃 종교들과의 열린 대화를 통해서 발견하고자 한다. 즉,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는 인류의 위대한 종교적 전승들을 통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보편적인 하느님의 자기현시 혹은 자기실현의 다양하고도 동등한 경험이라는 포괄적인 입장에서 그리스도교 계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종교 신학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었고, 현대 신학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을 주제로 한 새로운 계시 이해를 주장했던 현대 기초 신학자들의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①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초월적 자기이해를 통해 계시를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기양여로서 이해하는 초월론적 해석방법을 주장한 칼 라너의 입장과, 계시를 역사로 이해하여, 역사 안에서 보편적인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해석해낸 볼파르트 판넨베르크Wohlfahrt. Pannenberg,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구체적인 인간의 현실과 실천적 연대성 안에서 재발견하고자 한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 Baptist Metz, 그리고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기 비허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원리를 재발견한 유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등의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

 

 

② 인간의 초월성을 인간 정신의 지향성에서 찾지 않고, 아름다움을 직관하는 미학에서 발견하려고 했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이나, 20세기 개신교의 변증신학을 통해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했던 칼 바르트Karl. Barth의 입장도 하느님과 인간의 근원적 차이를 전제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중재된 하느님의 은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③ 보편적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표명하는 새로운 계시 이해를 토대로 인류의 위대한 종교적 전승들을 보편적인 하느님의 자기현시 혹은 자기 계시로 수용하려는 토착화적 노력 역시 발전하였다. 하느님의 보편적 계시 사건 속에서 아시아라는 종교 문화적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해명한 아시아 신학자 송천성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해방의 체험을 아시아의 “가난과 종교심”과 남미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과 연대”라는 관점에서 하느님의 구원사건으로 재해석한 알로이시오 피어리스Aloisio Pieris의 아시아 해방신학, 구티에레즈Gustav Gutierz의 남미의 해방신학, 다양한 아시아의 문화들 안에서 종교의 본질과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폴 틸리히P. Tillich의 문화신학,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계시 사건을 불교의 공空사상 안에서 접목 시켜 예수를 하느님의 자기 비움으로 해석한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맥락적 상황 신학의 입장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④ 이러한 계시의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자기 계시로서 받아들이지만, 예수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의 완성이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다원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낳기도 했다.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사적 지위를 상대화한 일군의 다원주의 신학자들인 존 힉John Hick, 폴 니터Paul Knitter,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 Panikkar등은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를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느님의 신성을 오로지 예수만이 가졌다고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절대 진리 주장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날 계시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즉, 계시는 신앙의 기초라기보다는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 그래서 계시 주장은 단순히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는 우선적인 입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더 이상 하느님의 권위가 자명하지 않은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실성을 계시신학에서 더 이상 이끌어 낼 수 없다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기초 신학은 이러한 그리스도교 계시사건을 감싸고 있는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그리스도론적 논증’이라는 영역에서 다루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주제들은 대표적인 그리스도론적 논증의 주제들이다.

 

 

계시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계시 비판과 계시의 개념 정의

 

역사적 증언 속에서 계시와 계시들

 

구원계시의 근본으로서 보편성과 구체성

 

나자렛 예수에 대한 질문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로서의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문제

 

하느님 계시로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

 

진리에 대한 종교들의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인류에로의 그리스도교의 공헌

 

 

3) 교회론적 논증(Demonstratio catholica) -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참된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참된 교회에 대한 논쟁은 사실 전통적 호교론적 신학이 가진 관심 중에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였다. 종교론적 논증이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적 사조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교성을 규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면, 교회론적 논증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논란이 되었던 참된 교회에 대한 신학적 논의에서 출발하였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교도권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이단이나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다른 교회적 신앙의 다른 형태를 갖는 타교파(동방교회와 프로테스탄트)를 향하여, 예수가 세운 참된 교회는 오로지 사도로부터 이어져오는 교계적 계승을 간직한 가톨릭교회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런 전통적 호교론의 입장에서는 가톨릭교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참되고 본래의 교회라는 배타주의적 입장이 표명되었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논증 방식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가) 역사적 증언(via historica)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적 실재인 가톨릭교회를 세웠다는 논증은 역사적 증언에 의해서 입증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수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직접 사도들을 뽑으시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할 임무를 넘겨주셨다. 가톨릭교회는 예수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제자 공동체를 통해 단일하고, 가시적이며, 교계적인 교회를 직접 설립하셨다고 고백한다. 교회의 교계제도 역시 베드로에게 주어진 전권을 통해 교회의 영속성, 불변성, 무류성을 보장해 주셨다고 확신한다. 오랫동안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설립된 참된 교회이기 위한 네 가지 요소를 모두 소유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는데, 이른바 교회의 특성via noratum인 “하나이요,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전래된 교회”가 오로지 가톨릭교회 내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가톨릭교회가 역사 안에서 지켜온 단일성을 강조해왔다.

 

 

나) 경험적 증언(via empirica)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는 가톨릭교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교회의 경험적인 사실의 증언들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가톨릭교회는 역사 안에서 지속적인 현존과 발전을 가져왔으며, 거룩함과 모든 덕스러움에서 발견되는 불멸의 결실들을 성인 성녀들의 업적을 통해 이루어왔을 뿐만 아니라, 2천년의 역사 안에서 가톨릭적 일치가 파괴될 수 없는 견고성을 유지해 왔다는 경험적 증거들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강조한다. 더욱이 앞서 말한 대로 베드로의 수위권에 대한 신약성경적 전거들을 통해서 가톨릭교회가 참된 신약성경의 교회를 이어받았으며, 베드로의 수위권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전달해온 단일한 교회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호교론적 주장은 곧바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연구의 결과로 그 설득력을 상실하였다.

 

첫째로,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증언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적인 교회로서 가톨릭교회를 직접 세웠다는 성경적 증거는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명료하지 않으며, 베드로가 지닌 수위권의 정당성에 대한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가톨릭교회와는 다른 성경 해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개진되었다.

 

둘째로, 가톨릭교회의 경험적 증언 역시 가톨릭교회의 역사 안에서 발견되는 많은 오류와 참된 신앙을 오히려 방해해온 잘못된 교회적 전승들이 결코 가톨릭교회를 하나이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을 잃게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톨릭교회가 서구의 배타주의적 문명의 비호를 받으며 오랫동안 견지해온 타종교, 타교파들에 대한 승리주의적 입장은 현대의 일치적, 대화적 관점들과 상반된 교회의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된 탈서구화의 흐름과 제3세계의 독립, 민주주의의 발전과 교회에 대한 성경과 교부들에 대한 연구의 성과들은 교회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주장한 바처럼 ‘완전한 사회체societas perfecta’로서 하느님 계시의 절대 중개자 혹은 구원의 통로처럼 주장했던 배타주의적, 승리주의적 교회관에서 벗어나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함께 가톨릭교회가 과거 주장해온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배타적 입장은 현대 사회의 일치와 화해에 대한 열망과 상치되는 것으로 이해되어, 가톨릭교회 밖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교회일치와 타종교들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현대 세계에 적응하고 쇄신하기 위한 교회적 노력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통적인 입장과는 달리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으로 교회론적 주장을 재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일 수는 없으나,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선포되었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이 인류와 긴밀한 일치를 이루고자 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야할 표징이자 도구라는 교회의 ‘성사성’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성경에 나타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들을 새롭게 이해하였고, 교부들의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연구함으로써, 교회를 ‘하느님의 순례하는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봉사성, 친교성koinonia을 교회의 본질로 이해하였다. 이 점은 현대 교회가 처해 있는 일치에 대한 관심과 다양성 안에서 공동으로 그리스도교 진리를 발견하려는 연대성의 원리가 교회 안에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기초 신학은 전통적 호교론적 관심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교회의 참된 본질과 형태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즉, 더 이상 참된 교회에 대한 논쟁과 비난에 앞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왜 교회적 형태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교회의 참된 형태로서 제각기 주장하는 교파들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기초 신학은 폭 넓게 교회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표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교회 개념의 이해의 변천 과정뿐만 아니라, 교회의 역사적, 구체적 다양성의 지평에서 교회의 본질과 근거에 대한 해명과, 현재 갈라져 있는 타교파들과의 일치의 재건 혹은 회복에 대한 관심도 주목을 받는다.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들과 교회가 본질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해명이 중심주제로 부각된다.

 

따라서 교회론적 논증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교회성에 대한 폭넓은 주제들을 통해 전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이해 속에서 교회의 의미

 

예수는 어떤 교회를 원했는가? - 교회의 설립에 대한 신학적 이해

 

신약성경 안에서 교회의 실재성

 

역사의 도전 속에 놓여 있는 교회

 

교회의 인간학적 차원

 

제도로서의 교회

 

하느님의 영과 말씀으로부터 출발한 교회의 근원

 

참된 교회에 대한 문제: 가톨릭교회는 참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바탕을 둔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인가?

 

그리스도교 교회 일치의 현실과 미래

 

세계와 교회와의 상관성

 

 

4) 신학적 인식론(De locis theologicis) - 무엇이 그리스도교 진리 발견과 인식의 기준인가?

 

기초 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에 대한 연구라고 보았을 때, 앞에서 다룬 제1주제 영역인 종교론적 논증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철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회 신학을 강조하는 로마의 신학 학제는 기초 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계시사건과 신앙행위에 대한 입장에서 다루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론적 논증을 기초 신학의 제1주제 영역으로 다룬다. 그리고 종교론적 논증에서 다루는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행위나 진리를 발견하는 인식론적 척도들에 대한 논의는 특별히 “신학이 어떤 자리에서 성찰되어지는가?”를 묻는 주제 영역에서 별도로 다룬다. 이 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떻게 보편적 이성과의 만남 속에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기준일 수 있느냐는 신학적 인식론의 관점을 말한다. 독일어권의 기초 신학자들이 대개 이러한 인간의 이성과 신앙에 대한 갈등구조를 종교론적 논증에서 다루는 것은 기초 신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기인한다. 이들은 기초 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무엇이냐”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인가?”라는 질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 인식론은 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인간의 보편적 이성에서 납득 가능한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합리성을 주장하려는 입장에서 개진된다. 이른바 신학을 “신앙에 대한 봉사”라는 차원보다는 학문적 원리로서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진리가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납득 가능하려면 필연적으로 인간의 이성과의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성 안셀모의 정신과 토미즘의 사상을 따라 인간의 지성을 신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요소로 받아들여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이해한 것은 인간 지성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특징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 이성이 신앙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느냐는 점은 신학적 성찰의 첨예하고도 광범위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지성만을 고집해온 신학이 현대사회의 다양한 인간이해와 현실감각에 얼마만큼 접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인간의 자기이해가 오히려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는 신학적 성찰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른바 ‘인간학적-초월론적 신학’을 주장한 칼 라너의 입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보편이성을 강조하는 철학과 필연적으로 관련을 맺어야 한다는 점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전개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과 이성의 갈등 이면에 그리스도교 신앙진리를 발견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오랫동안 교회는 신앙 진리를 인식하는 기준으로 성경과 성전, 교도권과 신학의 권위를 가르쳐왔지만, 신앙인들의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통해서 이루어진 체험적 신학이나 삶의 권위를 신학적 인식의 중심주제로 다루지는 않았다. 신앙인들은 교도권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배우는 교회’로서의 미덕을 갖도록 요구되었고, 신앙 공동체의 역동적 체험들로 이루어진 신앙의 진리들을 직관할 수 있는 감각적 직관들은 신학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이러한 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세계의 다양한 인간학적 연구의 성과와 더불어 성경과 초기 교부들의 사상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결실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신학적 인식론의 핵심은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누구와 어떻게 대화하고 협력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세상과 통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더 이상 ‘가르치는 교회’로서만 남을 수 없다. 오히려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상호 통교의 교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학자들과 교도권자들 사이의 갈등이나, 성경과 성전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상반적인 이해, 구체적인 신앙체험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는 신앙인들의 삶과 교회의 가르침과의 괴리감 등은 신학이 어떻게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인식론적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신학은 권위주의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신학’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의 체험과 공동체의 신앙의 합의를 중시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에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소위 인간학적 전환시대에 신앙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자신의 역사와 삶에 던져진 의미에의 질문들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능력과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어쩌면 기초 신학의 중대한 과제일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신중심적 신학과 인간중심적 신학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상존하고 있는 현대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진리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인식론적 원리들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한 기초 신학의 주제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학적 인식론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신학적 인식의 객관적 원리로서 하느님 말씀

 

신학적 인식의 주체적 원리로서의 신앙: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논의

 

성경과 성전의 원리

 

전승의 규범과 척도, 구조들

 

교도권과 무류권에 대한 이해

 

신앙학으로서의 신학: 신앙의 합리성과 신앙선포의 언어성의 문제

 

신학의 실천적 학문 성격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교의 가신성의 척도와 표징들

 

가신성(可信性)과 신앙행위 분석

 

오늘날 기초 신학의 과제와 목표

 

 

 

 

 

 

 

요약

 

 

1. “신학의 기초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기초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원리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초 신학은 교회의 호교론적 전통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당성을 어떻게 우리 시대에 설득력 있게 드러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2. 전통적으로 기초 신학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하여(종교적 논증), 참된 종교에 대하여(그리스도교적 논증), 그리고 참된 교회에 대하여(가톨릭적 논증) 세 가지 전통적인 입장이 주제로 다뤄져 왔으나, 오늘날에는 현대 학문들의 성과에 힘입어 보다 이 주제들을 이해하는 관점들이 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지평에서 다뤄지고 있다.

 

 

3. 종교론적 논증은 참된 신의 존재 증명을 넘어 인간의 하느님 체험 가능성에 대해 묻고, 종교적 인간의 실존적 자기이해를 통한 하느님 체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4. 그리스도론적 논증은 역사 안에서 나자렛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정당성을 종교 신학적 관점에서 해명하며, 전통적인 스콜라 신학의 이론적 계시 형태를 벗어나,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인격적 통교 사건을 논증의 핵심으로 삼는다.

 

 

5. 교회론적 논증은 제도적 가톨릭교회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데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 신앙의 교회성과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조건들을 해명하면서, 갈라진 교회들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 교회 이해의 지평을 확보하고자 한다.

 

 

6. 신학적 인식론은 신앙 행위의 올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하느님의 계시를 수용하는 인간의 신앙 행위가 인간 이성과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묻는다. 동시에 교회가 올바른 진리를 발견하고 선포할 수 있는 기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증언과 체험들을 재인식하고자 한다.

 

 

 

(출처: 송용민, 신학, 이해를 찾는 신앙, 인천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