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Immanuel Kant
요약
독일 관념론은 물론 현대 철학의 기초가 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면 헤겔과 마르크스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전이다. 칸트가 저술한 세 권의 비판 철학서 가운데 한 권으로, 비판적 · 선험적 관념론을 처음으로 확립하고, 과학 인식의 확정성을 보증함으로써 근대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칸트 철학의 개관
칸트 철학은 서양 철학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이다. ‘내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속의 도덕 법칙’이라는 묘비명에 새겨져 있는 말이 나타내듯 칸트 철학은 자연 인식에서 실천적 인식에 이르기까지 주체적으로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존재 양태를 규명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순수이성비판』은 그와 같은 칸트 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총론에 해당한다.
인간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근대 철학자인 칸트에게 ‘이성’은 신의 이성이 아닌 실로 인간의 이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순수이성비판』은 그 특질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저술이다.
이성은 넓은 의미에서 인식 능력을 말한다. 인식에서 인간은 직관을 통해 대상으로부터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점에서 수용적이며 수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직관 능력은 감성이며, 감성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다. 직관된 내용은 다만 수용되어 있는 상태로 머물지 않고 그를 통해 더 깊이 사유될 때 대상에 대한 인식이 성립한다. 이러한 사유 능력은 감성이 아닌 오성이다. 이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것이다. 이를 따르지 않고서는 참된 사유가 아닌 변덕이 되고 만다.
사유의 기본 형식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범주(카테고리)라고 일컬어져 왔다. 칸트는 이러한 범주를 오성의 순수한 개념이라는 의미에서 ‘순수오성개념’이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식은 직관 능력으로서의 감성과 사유 능력으로서의 오성이 종합되어 성립하는 것이다. 곧,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으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이라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 없는 사상은 공허하며,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오성은 아무것도 직관할 수 없으며,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의 합일을 통해서만 인식은 시작된다.’
‘순수이성비판’이라고 할 때의 ‘이성’은 이처럼 감성과 오성을 포함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오히려 고차원적 이성은 오성을 초월해 있다. 오성은 논리적으로는 ‘판단 능력’이며, 이성은 판단의 상호 관계를 구성하는 ‘추리 능력’이다. 오성이 범주라고 하는 규칙에 의지하는 인식 능력인 데 비해, 이성은 오성에 의한 개별적 인식을 체계적으로 통일시키는 능력이다. 이성에 의해 추론이 이루어지며, 인식은 그 극한인 무제약적인 것에까지 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제약적인 것은 『순수이성비판』에서 경험에 의거한 인식의 통제 원리인 ‘이념(이데아)’으로 정립된다.
이념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칸트는 그 같은 이념론을 통해 신과 영혼 불멸 그리고 자유와 같이 형이상학에 관련된 어려운 문제와 대결하며 독자적으로 그 해답을 구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어째서 순수 수학이 가능한가? 어째서 순수 자연과학이 가능한가?’라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어째서 자연의 성질인 형이상학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과제였다. 칸트는 종래의 형이상학을 독단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을 정립하려는 방법이 독단적인 것이었더라도 인간의 이성 속에는 자체의 성질로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칸트는 그 근거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칸트가 추구한 휴머니즘 정신
이렇게 설명하고 보면 이성은 수학이나 자연과학을 성립시키는 이론 이성일 뿐 아니라 실천 역시 성립시키는 이성, 곧 실천이 되기도 한다. 칸트는 실천과 도덕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실천이성비판』을 저술했지만, 그 기본 사상은 이미 『순수이성비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은 주로 종래의 형이상학을 비판한 ‘변증론’과 제2부에 해당하는 ‘방법론’ 부분에 소개되어 있다. 거기에는 칸트가 ‘순수 이성의 궁극적 목적에 관한 규정인 최고선의 이상각주1) ’에 대해 논한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이성의 이론적 적용뿐 아니라 실천적 적용에도 관련되는 궁극적 목적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성에 대한 모든 관심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집약되어 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이다.
첫 번째 질문은 지식론으로, 이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원칙론’에 그 해답이 제시되어 있으며, 두 번째 질문은 행위론이 되는 실천 철학에 대한 질문이다. 세 번째 질문인 희망론은 내세의 정복(淨福)에 관련된 것이므로 종교 철학에 대한 질문이 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그 무렵의 칸트로서는 차후의 과제였다. 칸트는 『윤리학』 서언에서 세 가지 질문에 네 번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추가했다. 칸트는 앞에서의 세 가지 질문은 모두 이 질문에 귀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칸트 철학에 담긴 휴머니즘 정신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이 네 번째 질문에 근거해 인간학으로의 형이상학에 그 기초를 제공했다.
칸트는 1804년 2월 12일에 죽었으나, 그에 앞서 2월 3일에 대학교의 학장이던 의학과 교수가 병문안을 하기 위해 왔을 때 쇠약한 몸을 병상에서 일으키며 “인간성에 대한 감정은 아직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임종을 맞이하면서까지 칸트를 떠나지 않았던 이 주제는 『순수이성비판』 속에도 흐르고 있다. 실제로 앞에서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서술한 몇몇 대목 속에서도 ‘최고선의 이상’으로, 인간 상호 간의 자유에 대한 범통적인 체계적 통일 세계, 곧 ‘도덕적 세계’라는 이념이 서술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자유 의지의 주체가 되는 인간은 ‘예지자’이며, 감성계를 초월해 당연히 ‘예지계’에 살아야 할 존재였다. 도덕적 세계라는 이념은 예지계이며, 이는 실천을 매개로 하여 감성계에 영향을 미치는 이념이다. 그리고 그 실재성은 여기서 또 ‘감성계에서 이성적 존재자의 신비적 교단’으로 규정된다. ‘이 교단의 이념에서 이성적 존재자 각자의 자유가 되는 선택 의지는 도덕적 법칙 아래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타인의 자유와 범통적인 체계적 통일성 그 자체를 가질 수 있다.’
인간 역시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감성계인 현상 세계 속에 살고 있으나, 인간에게는 그를 초월한 예지성이 깃들어 있다. 칸트는 본론에서 인식 주관으로서의 자아를 논한 대목에서 “나는 예지자로서 실천한다”고 말하며, 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부기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현 존재를 규정하는 작용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활동적 존재자인 나 자신의 현 존재로는 이를 규정할 수 없고, 나의 사유, 곧 규정 작용의 자발성만을 표상할 뿐이므로 나 자신의 현 존재는 언제까지고 다만 감성적으로, 곧 하나의 현상의 현 존재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사유의 자발성으로 인해 나는 나를 예지자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예지자로서의 인간은 예지자 상호 간의 체계적 통일 세계인 예지계에 대한 이념을 지니고 있다. 수학적 자연과학의 대상인 현상계를 통과해 형이상학의 세계로 나아갈 때, 도덕적 세계의 이념인 예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위치를 부여할 것인가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 맡길 과제이다.
비판 철학의 주장과 한계
여기에서 표제로 되돌아가, 먼저 ‘순수 이성’이라고 부를 때의 ‘순수’에 대해 살펴보자. 순수란 경험에 대한 순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순수한 것은 선험적각주2) (아프리오리)이다. 인식은 감각하거나 보고 듣는 것을 포함해 넓은 의미에서 경험을 매개로 하지만, 보편타당한 인식 속에는 선험성이 내재해 있다. 이와 같은 선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순수 이성’이다. 곧, ‘순수 이성이란 어떠한 것을 단적이고 선험적으로 인식하는 여러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순수이성비판은 이처럼 이성과 그 원리에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크리네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누는 것 또는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순수이성비판은 인식에 관해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을 구별하고, 선험적 인식의 타당한 범위와 그 한계를 명백히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범위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에 있는 현상계라고 여겨진다. 시간과 공간 역시 선험적 원리이지만, 그것을 타당하게 만드는 것은 현상계이다. 그 때문에 현상을 초월한 사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비판 철학의 한 특징이다. 이는 칸트 이후의 철학에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로 사유하고 공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객관적 인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직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내용이 없는 사상처럼 공허하게 된다. 유한자인 인간의 직관은 감성적이며, 그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다. 그러한 까닭에 인식의 대상 세계는 시공의 세계인 현상계이며, 그것을 초월한 사물 자체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이 예지자임은 앞에서 언급했다. 예지자로서의 자각 속에는 현상을 초월한 자체성이 포함되어 있다. 사유의 자발성에 투철하게 되면 현상에 의해 수동적으로 제약되지 않는 자기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실로 인간은 자유인 것이다. 칸트는 자유의지론에서 현상과 사물 자체의 긴장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른바, “현상이 사물 그 자체라면, 자유는 얻어질 수 없다. ······ 존재자의 원인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된다. 곧, 사물 자체의 행위에 따른다면 예지적으로 고찰되며, 감성계의 현상인 그 행위의 결과에 따른다면 감각적으로 고찰된다. ······ 전자의 예지적 성격은 사물 자체의 성격, 후자의 경험적 성격은 그러한 사물의 현상에 대한 성격과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행위를 하는 주체가 자신의 예지적 성격에 따르게 되면, 어떠한 시간 조건 아래에서도 논리에 맞지 않게 된다. 시간은 사물 자체가 아닌, 다만 현상의 조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주장을 규명하는 것을 비판 철학의 중심 과제로 삼고 있다.
칸트 철학의 선험론적 특징
『순수이성비판』의 본론은 원리론과 방법론의 두 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리론은 감성론과 논리학으로 나누어져 있다. 감성론은 감성의 형식인 시간과 공간을 원리적으로 고찰한 것이며, 논리학은 또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나누어져 있다.
분석론에서는 먼저 순수 오성 개념인 범주(카테고리)의 분석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범주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에 기초한 인식 기능인 점이 정밀하게 연역되고 있다. 이어서 분석론은 원칙의 분석으로 옮겨 가는데, 이 분석은 범주가 감성의 형식인 시간과 공간 위에 투영되어 도식화되고 이를 통해 현상계를 구성하는 최고 원칙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과성이라는 관계의 범주가 시간의 순서에 따라 도식화되며,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원칙(이른바 인과율)으로 정립되는 것과 같다.
변증론은 원칙론을 무제약적인 것까지 확대한 곳에서 생겨나는 가상(假象)의 논리학에 대한 비판적 규명이며, 아울러 그 성과는 이념론이다. 방법론은 원리론으로 분석된 여러 인식 요소를 결합시켜 구축하는 방법을 논한 것이다. 이들 논술의 표제는 모두 ‘초월론적’이라는 말로 형용되고 있다. 이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칸트 철학에서 선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 또는 원리는 경험만이 아니다. 그 같은 인식 자체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초월론적(transzendental)이라고 불린다. 이를 규명하고자 한 비판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실로 ‘초월론적 철학’이다. 이 용어는 원래 절대자인 신에 관련된 용어로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유래했으나 칸트는 그 같은 의미가 아닌, 인식을 주관하는 자아에 관련된 용어로 사용했다. 칸트 철학 역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흐름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의 최고 원리는 ‘나는 생각한다’이다. 이 ‘나’가 칸트에서 ‘초월론적 자아’가 된 것이다. 사유의 기본 법칙은 범주이지만 초월론적인 것은 범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주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범주를 사용해 이루어지는 대상의 모든 요소를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은 본문에 앞서 서언과 그에 이어지는 서론으로 시작된다. 서언과 서론은 모두 1787년의 재판에서는 대폭 수정되었지만, 그 내용은 비판 철학의 기본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서론의 첫 부분에서는 이른바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식이 모두 경험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점은 경험론과 통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경험에 의한 의식이 보편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선험적 원리가 놓여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칸트 철학의 선험론적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모든 변화는 원인을 가지고 있지만 원인의 개념은 결과와 이어져 있다. 원인과 결과의 이러한 연관은 선험적인 보편타당성을 갖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서론에서, ‘습관’을 통해 인과율의 근거를 부여하고자 한 흄의 주장은 경험론에 그친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이 객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원리적으로 선험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독단적인 몽상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비판 철학의 성립에 흄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칸트 철학의 정신
『순수이성비판』의 서설로 쓰인 『프롤레고메나』(학문으로 나타날 장래의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서설)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나는 분명히 고백한다. 데이비드 흄의 경고는 수년 전에 시작되어 나를 독단적 미몽에서 깨어나게 해 주었으며, 사변적 철학의 영역에서 내 연구에 전혀 다른 방향을 제공해 주었다.”
흄의 경고가 칸트에게 어떤 작용을 하여 인과 관계가 선험적으로 도입되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이성이 형이상학을 독단적으로 몽상하는 것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실은 형이상학에 대한 개혁의 요구였다.
칸트는 방법론 속의 한 구절에서, 흄은 독단을 비판한 회의론자로 이성을 ‘검열’했지만, 이성에 ‘비판’을 가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순수이성비판’이야말로 개혁을 위한 진정한 빛이었으며, ‘어떻게 하여 선험적인 종합 판단이 가능한가’라는 것이 ‘순수 이성의 보편적 과제’였다. 흄은 이러한 과제에 불을 약간 댕겼을 뿐이었다.
결과는 원인의 개념 속에 내재되어 있지 않고 그 개념을 분석해도 도출되지 않는다. 인과의 연결은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다. 이러한 종류의 종합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 법칙이 범주이다. 어느 관념이나 사실이 단순 사실로서 존재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정당성을 논증하는 일을 연역(deduktion)이라고 한다.
범주의 연역은 『순수이성비판』의 중심 과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연역론에 관해 사유와 직관의 기본적 종합에서 구상력각주3) 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범주는 도식을 통해 직관화된다. 도식화는 사유와 직관의 기본적인 종합이지만, 도식 그 자체는 구상력의 소산이다. 구상력은 미의 근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주도면밀한 고찰은 미학의 기초를 제공할 것을 목표로 한 『판단력비판』에 맡겨졌지만, 인식 능력으로서의 그 기본적 의의는 이미 제1비판에서 논해지고 있다. 곧, “우리는 일체의 선험적 인식의 근거에 있는, 인간 영혼의 근본 능력인 순수한 구상력을 갖고 있다. ······ 감성과 오성이라는 양극단은 구상력의 초월론적 기능을 매개로 필연적으로 서로 관련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칸트는 서문에서 사유 방법에 변혁을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는 인식에서 객체성으로부터 주체성으로의 변전을 뜻하며, 대상인 객체를 정지시켜 두고 주체인 관찰자가 능동적으로 대상을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가설을 대상 속에 집어 던져 구성하는 실험 태도를 의미한다. 곧, 자연에 대해 응답을 촉구한 것이다.
“이성은 다만 그에 합치하는 여러 현상이 법칙으로서 타당한 원칙들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러한 원칙에 따라 고안된 실험을 통해 자연에 접근한다. 이는 자연에서 지식을 얻기 위함이지만 그러나 교사가 원하는 대로 단지 흉내만 내고 있는 학생의 자격이 아니라, 증인에게 질문에 대한 회답을 강요하는 정규 재판관의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물리학은 매우 유익한 사유 방법의 개혁을 달성했지만, 이는 이성이 스스로를 자연 속에 던짐으로써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과학은 몇 세기 동안 다만 암중모색만 했을 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비로소 확실한 학문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여기에 근대 과학의 대자화(對自化)각주4) 로서의 칸트 철학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성 비판으로서의 칸트 철학이 지식 만능주의는 아니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명시하는 것 역시 『순수이성비판』이 비판한 하나의 과제였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신앙에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지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특정한 신앙의 내용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신앙상의 의견 대립은 “소크라테스의 방법, 곧 반대자의 무지를 매우 명석하게 증명함으로써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에 대한 자각이다. 지식의 포기란 독단적 형이상학을 단념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변증론’은 지식의 한계까지 추적하며 신앙의 본질적 양태를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오류추리론각주5) 으로, 영혼을 실체로 정립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율배반론으로, 우주론이 무제약성까지 나아갈 때에는 정립과 반정립이 움직이지 못한 채 대립과 항쟁에 빠지는 것, 세 번째는 이상론으로, 절대자인 신은 순수 이성의 이상각주6) 으로만 정립되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는 각각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 설명되고 있다.
영혼론에서 우주론을 거쳐 이상론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한계에 의해 각각의 이념이 통제 원리로서 정립되고 있다. 이는 철학적 사색에서 칸트가 보인 자기 인식의 길이다. 그러나 ‘심령인 자기 자신과 전 우주인 세계, 원래의 존재자인 신, 이러한 이념에 완벽하게 합치한 철학 체계가 과연 이 지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의 방법론에 대해 칸트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철학을 통해 배울 수 없다. 대개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것을 소유하는가, 무엇을 통해 그것이 인식되는가 등에 관해서만 철학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이 말 속에 독단에 빠지지 않고, 기존의 사상을 맹신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전향적으로 사색하는 비판 철학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순수이성비판』의 체계
범주표
양 : 단일성 · 다수성 · 총체성
질 : 실재성 · 부정성 · 제한성
관계 : 실체성 · 인과성 · 상호성
양상 : 가능성 · 현실성 · 필연성
원칙의 체계
1. 직관의 공리 : 모든 직관은 연장량이다.
2. 지각의 예측 : 모든 현상에서 감각의 대상이 되는 실재적인 것은 내포량, 곧 정도를 지닌다.
3. 경험의 유추 : 경험은 모든 지각의 필연적 결합이라는 표상으로서만 가능하다.
▲ 제1의 유추 : 실체지속성의 원칙
현상의 어떠한 변이에도 불구하고 실체는 지속되며, 그 양은 자연에서 증감하지 않는다.
▲ 제2의 유추 : 인과율을 수반하는 계기(繼起)의 원칙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결합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 제3의 유추 : 상호 작용 또는 공동체의 법칙에 따르는 공존의 원칙
모든 실체는 공간에 공존하는 것으로서 지각되는 한 범통적 상호 작용 속에 있다.
4. 경험적 사유 일반의 공준(公準, postulate)
(1) 경험의 형식적 조건(직관 및 개념에 관한)과 일치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 경험의 질료적 조건(감각)과 관련된 것은 현실적이다.
(3) 현실적인 것과의 관련이 경험의 일반적 조건에 따라 규정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어서 변증론에서는 이성의 추리가 무제약적인 것에까지 적용되지만, 그 추리가 주체 쪽을 향하게 되면 합리적 심리학, 개체 쪽을 향하게 되면 합리적 우주론, 주객 양쪽을 포함한 사물 일반 및 그 통일체를 향하게 되면 합리적 신학 등 세 가지가 성립하게 된다.
먼저 합리적 심리학에서는 영혼이 실체로서 정립되며, 그 비물질성과 불후성, 인격성, 불멸성이 추론된다. 추론은 대전제를 소전제를 매개로 하여 결론을 유도하지만, 칸트는 합리적 심리학에서는 대전제와 소전제에서 이 둘을 묶어 주는 매개 개념의 의미와 내용이 종종 어긋나기 때문에 합리적 심리학이 오류 추리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합리적 우주론은 이미 언급한 이율배반론을 전개한 것이다. 합리적 신학론은 선언(選言 ; ‘A는 P이든지 Q이다’라는 추리 형식으로 사유 법칙의 하나) 추리의 구조에 따라 신은 선언지(選言肢)로 서로 나누어져 있는 실재성의 궁극적인 통일자로 ‘순수 이성의 이상’으로 정립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변 이성의 입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의 존재 증명에서는 존재론적, 우주론적, 자연신학적이라는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설명하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변증론에서는 이율배반에 관한 매우 중요한 네 가지 종류의 명제를 꼽고 있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1.
정립 : 세계는 시간상 시초를 가지며, 공간상으로도 한계를 갖는다.
반정립 : 세계는 시초나 공간상의 한계를 갖지 않으며,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 무한하다.
2.
정립 : 세계 내에서 합성된 실체는 모두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단순한 것이나 단순한 것으로 합성된 것만이 실재한다.
반정립 : 세계 안의 어떤 합성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단순한 것은 세계 속에 전혀 실재하지 않는다.
3.
정립 : 자연 법칙상의 인과성은,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거기에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현상을 설명하자면 그 밖에도 자유에 의한 인과성을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정립 : 자유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오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긴다.
4.
정립 : 세계에는 그것의 부분으로서 또는 그것의 원인으로서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가 있다.
반정립 : 세계 안에서든, 세계 밖에서든 세계의 원인인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는 일반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이들 네 가지 종류의 이율배반 가운데 어느 하나에라도 마음이 이끌린다면, 그것은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인가, 저것인가’라는 이율배반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기 위한 여행길은 아득히 멀 것이다. 지혜나무의 열매는 처음부터 달지 않다.
범주표는 칸트 철학의 체계적인 전개를 위한 기반이다. 범주는 사유 일반의 기본 구조이므로 모든 판단의 양상(판단표)에 대응해 정립되고 있다. 범주를 경험적 인식의 대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도식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에도 범주표의 기본적 순위는 일관되게 유지되며 결코 헝클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 인식의 기본 구조인 ‘원칙의 체계’ 속에 1의 직관 공리는 양의 범주에, 2의 지각의 예측은 질의 범주에, 3의 경험의 유추는 관계의 범주에, 4의 경험적 사유 일반의 공준은 양상의 범주에 각각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무제약적인 것까지 확대할 때, ‘이것인가, 저것인가’를 나타내는 정립과 반정립의 이율배반에 빠지게 되지만, 이들 네 가지 이율배반 역시 앞에서의 범주의 순서대로 대응한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 양의 범주를 제1로 한 것에는 숫자라는 문자로 자연을 묘사하고자 한 수학적 자연과학에 기초를 제공하고자 한 목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범주표의 이러한 순위가 엄격히 준수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우리 자신이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칸트 자신 역시 미학에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서 미(美)라는 질을 쾌적이나 선과 구별하기 위해 질의 범주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율배반론의 의의는 매우 크다. 이는 일찍이 헤겔의 변증법과 키르케고르의 ‘이것인가, 저것인가’라는 실존 사상의 성립에도 기반을 제공한 것이며, 야스퍼스가 『세계관의 심리학』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죽음 · 고통 · 싸움 · 책망 등 한계 상황의 기초적 구조론을 이루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의 기본적 체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사색할 과제를 제공하고 있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칸트(1724~1804)는 1724년 독일 북부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804년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이른바 계몽 시대로, 정치가로는 프리드리히 대제, 시인으로서는 레싱과 나란히 칸트는 독일 계몽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손꼽힌다.
칸트는 1770년에 취직 논문인 『감성계와 예지계의 형식과 원리』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비판 철학에 관한 그의 첫 번째 관심 표명이었다. 1772년 2월 21일 제자에게 준 서간에서 현재 ‘감성과 이성의 한계’라는 제목의 저술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을 포함해 이제까지 감추어져 온 형이상학에 관한 전체의 비밀을 해결할 열쇠가 되는 물음과 인간에 내재해 있는 관념과 외부의 대상의 관계는 무엇에 근거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중심 과제라고 전한 바가 있다. 이것이 비판 철학의 탄생이다. 이 같은 철학적 사색을 위해 10년간에 걸친 고통스러운 사색의 시간을 보낸 성과로 1781년 드디어 800페이지가 넘는 대저작인 『순수이성비판』(1781)이 세상에 태어났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 지성의 기본 구조를 해명한 저술이다.
칸트에게는 비판이라는 이름을 붙인 저서가 세 권 있다. 『순수이성비판』은 그 가운데에서 제1비판에 해당한다. 제2비판은 도덕의 기초를 정의하기 위한 『실천이성비판』이며, 제3비판은 미학 및 목적론의 기초를 정의한 『판단력비판』이다. 제1비판인 『순수이성비판』은 제2, 제3의 비판의 원론도 이미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어 철학 총론적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에게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감성적으로 직관하고, 직관한 것을 이론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성립된다. 직관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며 사유의 형식은 범주이다. 『순수이성비판』은 이러한 두 가지 형식의 원리적 종합을 기초로 이를 통해 예를 들어 인과율과 같은 인식 원칙을 정립하고 있다. 더욱이 그 같은 종류의 원칙을 현상계를 초월해서 적용하고자 할 때 생기는 ‘가상(假象)’이론을 고찰했다. 그러한 고찰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 예를 들어 자유와 필연과 같이 정립과 반정립이 대립하거나 항쟁하는 이율배반론이다.
칸트에 이어 피히테와 셸링, 헤겔의 철학 역시 칸트 철학의 독자적 해석을 포함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현대 철학 역시 칸트 철학과의 대결을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을 정도이다.
출처
정치, 경제, 법 사상, 철학·사상, 여성론, 종교, 교육, 역사, 카운터컬처 등 총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마르크스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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