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삼한(三韓)의 정통후예국

by 이덕휴-dhleepaul 2020. 3. 29.



[홍익인간 366]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단군조선(檀君朝鮮) 삼한(三韓)의 정통후예국

2012년 06월 30일 (토) 00:41:5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 대한민국 땅은 단군조선 마한(馬韓) 땅이자 후삼한(後三韓) 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땅은 역사적으로 단군조선 시대의 마한 땅이다. 

서기전2333년 무진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께서 송화강 아사달에 수도를 삼고 구족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시어 조선(朝鮮)을 개국하셨다. 

단군왕검 천제(天帝)께서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천하(天下)의 나라인 요임금의 당(唐)나라와 구분하여, 천왕격(天王格)의 비왕(裨王)으로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임명하여 각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곧 단군조선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 한다. 

서기전239년 4월 8일에 단군조선의 종실인 천왕랑 해모수가 북부여의 시조가 되어 서기전232년에 단군조선을 접수하여 북부여시대가 되었으며, 서기전209년에 마한 땅인 한반도의 동쪽에 소백손(蘇伯孫)이 나라를 세우니 진한(辰韓)이고, 동시대에 남쪽에 나라를 세우니 변한(弁韓)이며, 서기전194년에 번조선의 기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잃고 마한 땅의 서쪽으로 망명하여 나라를 세워 마한왕이 되었다가 서기전193년에 번조선 출신으로 중마한(中馬韓)을 세운 탁(卓)이 기준왕을 이어 이후 후삼한 시대가 되었는 바, 이후 마한왕이 후삼한의 진왕(辰王)이 되어 후삼한을 통할하였다. 

이리하여, 지금의 대한민국 땅은 단군조선의 마한 땅이자 후삼한의 땅인 것이다. 


가. 단군조선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영역에 방(方) 6,000리 삼한관경의 나라 

단군조선은 배달나라 정통계승국으로서 배달나라의 영토를 계승하였고, 배달나라는 한국(桓國)의 정통계승국이므로 또한 한국의 영토를 계승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은 한국의 영토를 계승하였으니, 동서 2만리이며 남북 5만리의 땅을 가진 대제국(大帝國)이었다. 동쪽으로는 동해(東海)지역의 연해주(沿海州)에서 서쪽으로는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수메르지역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일본 땅인 삼도(三島)와 중국대륙의 남해안과 인도(印度)지역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북극해와 북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연해주는 진한 땅에 속하며, 일본 땅 삼도는 마한 땅에 속하고, 그 외 수메르지역과 인도지역과 중국대륙의 남해안 지역과 북극해 지역과 북유럽 지역은 단군조선의 직할 영역인 삼한관경에는 속하지 않는 천하(天下)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동서 2만리와 남북 5만리 안에 단군조선의 직할(直轄) 삼한관경이 있으니, 가로 세로 각각 6,000리의 땅이며, 각 1,000리의 땅이 36개로 모두 36주(州)가 있었던 것이고, 요순하은주 고대중국의 9주(州)에 4배나 되었다. 인구는 평화시대이던 서기전1666년에 단군조선 천자국(天子國)인 고대중국의 은(殷)나라를 포함하여 모두 1억 8,000만명이나 되었다. 

나. 단군조선 마한 땅은 한반도와 삼도(三島) 

단군조선의 마한 관경에는 한반도와 지금의 일본 땅인 삼도를 포함하였다. 

삼도(三島)는 세 개의 섬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구주(九州:큐슈), 본주(本州:혼슈), 사국(四國:시코쿠)이다. 

구주와 본주와 사국의 삼도는 마한관경에 속하였으며, 본주의 동북지역과 북해도(北海道:홋가이도)는 진한관경 중에서 예(濊)에 속한 땅이었다. 특히 섬나라이므로 단군조선 시대 중죄를 지은 자들의 유배지(流配地)에 해당하였다. 

다. 단군조선 삼한의 백성이 세운 마한 땅의 삼한(三韓) 

단군조선이 서기전232년에 북부여에 접수되어 북부여(北扶餘) 시대가 되고, 서기전209년에 마한 땅에 단군조선의 백성들이 이동하여 와서 차례로 진한, 변한, 마한이 세워져 후삼한(後三韓) 시대가 되었다. 

서기전209년에 서라벌에 자리잡고 진한(辰韓)을 세운 소백손(蘇伯孫)은 원래 요(堯)임금 나라의 소성(蘇城)에 봉해졌던 성주(城主)의 후예이며, 이 소성이 단군조선 초기에 단군조선에 편입된 후 진한관경에 속하였던 것이고, 진시황의 폭정기 때 만리장성 부근으로 진한관경의 서편에 살던 단군조선 백성들이 난을 피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로 유입되었던 것이며, 이에 소백손이 단군조선의 제도를 본따 왕이라 하지 않고 비왕(裨王)으로서 천왕(天王) 자리를 남겨두고 6부 화백제도(和白制度)로써 자치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반도에 진한이 세워질 무렵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지리산에 걸치는 남쪽 지역에 변한이 세워졌으며, 이 변한도 또한 왕을 세우지 않고 단군조선의 제도를 본따 비왕에 해당하는 9간(干)들이 화백(和白)으로 자치를 하였던 것이다. 

북부여의 제후국으로 서기전194년에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번조선(番朝鮮)의 기준왕(箕準王)이 한반도 마한 땅의 서편의 금마(金馬:익산)에 자리잡고 마한왕이라 칭하였으며, 이어 서기전193년에 마한 땅의 중간지역이 되는 목지국(目支國:월지국)에 나라를 세웠던 번조선 상장군 탁(卓)이 기준왕을 이어 제2대 마한왕이 되었으며 마한왕이 대대로 후삼한의 진왕이 되어 통할하였다. 

서기전209년에 세워진 진한과 변한이 서기전194년에 시작된 마한왕을 진왕(辰王)으로 섬겨 단군조선의 제도에 따랐던 것인데, 진한은 서기전57년에 이르러 북부여 거서간(居西干)의 아들인 박혁거세를 추대하여 거서간으로 옹립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에 신라는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를 태왕의 나라로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북부여와 고구려는 천왕, 태왕의 나라이고, 신라는 거서간, 마립간(麻立干), 이사금(尼斯今:매금:寐錦)의 나라이며, 백제는 어라하(於羅瑕:어륙:於陸)의 나라로서 제후국에 해당한다. 


2. 단군조선 삼한(三韓)의 후예들 

가. 진한(眞韓)의 후예 

단군조선의 마한과 번한을 제외한 나머지 단군조선의 후예들은 모두 진한의 후예라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족속명으로 기록되는 몽고(몽골), 흉노, 선비, 돌궐, 거란, 여진(숙신,읍루,말갈,만주) 등이 모두 단군조선 진한의 후예가 된다. 

그리하여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은 물론 몽골, 흉노, 선비, 돌궐, 거란, 여진 등이 세운 나라는 모두 우리 역사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몽골과 헝가리와 터키와, 단군조선의 천자국이던 고대중국과 근대 청나라의 땅을 차지한 지금의 중국과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나. 번한(番韓)의 후예 

단군조선의 번한 땅은 지금의 발해만 유역으로서 대체적으로 지금의 대릉하에서 서쪽으로 영정하 중하류를 거쳐 산동지역과 양자강 하류유역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번한 땅에 있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는 번한(番韓), 낙랑(樂浪), 고죽(孤竹), 기후국(箕侯國), 남국(藍國), 청구(靑邱), 엄(淹), 서(徐), 회(淮), 래(萊), 개(介), 우(隅), 양(陽), 도(島), 사(泗) 등 군국(君國)과 소위 내륙 9이(夷)의 제후국이 있었다. 

주(周)나라 이후에 내륙8이 또는 9이는 서서히 중국화 되어 갔으며 진시황이 중원대륙을 통일하면서 모두 진한(秦漢)에 흡수되었던 것이다. 

서기전195년에 한(漢)나라의 연왕 노관이 흉노로 망명하고 그 수하였던 위만(衛滿)은 번조선에 망명하였으나 서기전194년에 기준왕을 배신하여 나라를 빼앗았고, 서기전108년에 한(漢)나라에 망하여 번한 땅은 고구려가 서기313년 낙랑군과 대방군을 완전히 축출할 때까지 북부여와 고구려의 격전지가 되었다. 

이 번한 땅에는 주로 흉노족,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하면서 결국 고구려가 승리하였던 것인데, 요동요서에 명멸한 나라는 곧 단군조선의 후예인 흉노와 선비의 나라로서 우리 역사이기도 한 것이 된다. 

번한 땅은 고구려 이후에 대진국(발해)의 영토가 되어 발해, 발해만이라는 명칭이 지금까지 남게 된 것이며,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와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단군조선 진한의 후예가 세운 나라의 땅이 되었던 것이다. 

다. 마한(馬韓)의 후예 

단군조선의 마한은 한반도의 대동강 평양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는데, 단군왕검 천제(天帝)께서 강화 마리산에 참성단을 세우고 천제(天祭)를 지냈으며, 단군조선의 남쪽에서 보좌(補佐)하였다. 

서기전209년에 마한 땅의 동쪽에 진한이 세워진 이후에 마한 땅에 모두 78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단군조선 시대부터 존속해 온 나라도 있고 진한, 변한, 마한처럼 단군조선 유민들이 새로이 세운 나라도 있는 것이 된다. 

기본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땅의 삼도는 단군조선 마한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다. 여기에 서기전209년경부터 이동해 온 단군조선 진한과 단군조선 번한의 백성들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서기전57년에 신라가 진한을 계승하고, 서기9년에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고, 서기42년에 가야가 변한을 계승하고, 고구려의 남부지역으로서, 이후 신라, 대진국의 남부지역, 고려, 조선, 대한민국 땅의 중심으로 이어져 온 것이 된다. 


3. 한화(漢化)된 역사속 단군조선의 진한(眞韓)과 번한(番韓) 

지금의 역사로 볼 때, 대한민국의 영토 외에 있는 단군조선 진한과 번한의 땅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중국 땅이 되고 단군조선 후예들은 소위 중국화(中國化), 한화(漢化)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북부여 시대에 위씨(衛氏)조선 땅에 소위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어 고구려 때까지 요동과 요서 지역은 이 곳에서 명멸하였던 나라와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청나라가 역사속에서 사라지면서 단군조선의 진한 땅과 번한 땅은 고스란히 지금의 중국에게 내어주게 된 것이다. 

다만, 서기1712년에 백두산정계비로 인하여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북쪽의 송화강에 합류하는 토문강(土門江)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으로 정하여 동간도와 북간도 땅이 조선 땅으로 인정되었다가, 후에 청나라가 억지로 이를 부정하게 되었고 이어서 일제가 1909년에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신에 아무 권한없이 간도를 청나라 땅으로 인정하는 간도협약을 맺었는데, 일제가 망한 후 일제가 조선을 배제하고 청나라와 맺은 조약이나 협약이 무효로 선언되었으므로, 백두산 정계비에 따른 동간도와 북간도 땅은 대한민국의 땅으로 반환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 된다. 

동간도와 북간도 땅은 지금의 두만강 북쪽, 송화강의 동쪽으로 우수리강에 걸치는 지역이 되는데, 한반도의 두배나 되는 넓이가 된다. 

서기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항복하였으니 이때부터 대한민국은 동간도와 북간도를 도로 찾을 기회를 갖게 되었으나 지금까지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바, 이때부터라도 중국은 지금까지 땅을 사용하여 온 대가로서 임차료 상당을 지불하고 순차적으로 반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며, 이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마땅히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서기1909년부터 지금까지 100년이상 땅을 사용한 대가는 약 13경원이 될 것인데, 그 반절인 6경원이라도 반환 받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은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일본화(日本化) 된 마한 땅 대마도(對馬島) 문제 

대마도는 원래 단군조선의 마한 땅에 속하였으며, 서기400년에 고구려 광개토호태황이 완전히 고구려에 복속시켰다가 후에 신라가 관할하였으며, 고려와 조선을 이어 서기1907년까지 대마도는 조선의 영토로서 지도상에 표기되어 왔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 시절에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대마도는 조선의 관할에 있었고 대마도주는 조선에서 봉함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이 서기1877년에 무력으로 대마도를 일본 땅에 강제로 편입시킨 후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이 되는데, 지금까지 약110조원에 상당하는 땅 임차료를 지불하면서 반환해야 할 것이다. 

대마도(對馬島)라는 말 자체도 일본식 용어가 아니다. 즉, 대마(對馬)는 “쯔시+마”라는 말이며 일본식의 진도(津島)가 되는 “쯔+시마”가 아니다. 대마 즉 쯔시마라는 말은 “맞닿아 있는 머리(말)”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대마도(對馬島)는 “맞닿아 있는 머리의 섬”이라는 뜻이다. 


5. 대한민국은 7만년 역사를 이어온 홍익인간 정통후예국 

대한민국은 현재로서는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이은 유일한 나라이며, 그 방계로는 몽골, 흉노의 후예인 헝가리와 핀란드, 돌궐의 후예인 터키가 있다. 반면, 지금의 중국은 단군조선의 천자국이던 요순, 하은주를 이는 나라로서 북부여와 고구려와 병립하였던 나라이며 영토상으로 단군조선의 진한과 번한 땅을 흡수한 나라가 된다. 

단군조선은 배달나라와 한국(桓國)의 정통 계승국이고, 한국(桓國)은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된 마고성(麻姑城) 한국(桓國)의 정통 계승국이므로, 서기전70378년부터 올해 임진년(壬辰年)은 72,39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마고할미 전설을 수많이 간직하고 있는 마고할미의 직계 후예로서 장손족(長孫族)이며, 마고할미는 한국(桓國)의 황궁(黃穹), 유인(有因), 한인(桓因) 천제(天帝)께서 삼신(三神)으로 받드는 최초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고할미 이후 지금까지의 7만 2,390년의 역사를 정립하여 서기전70378년부터 전수되어온 천부(天符) 즉 천지인(天地人)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을 이 세상에 실현하는 데 책임지고 앞장서야 할 주인공들임을 깨닫고, 온 세상인들을 사상적으로 지도하면서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6. 연호 사용 문제 

일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연호 문제와 관련하여, 일제에서 해방되어 대한민국이 정식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우리 역사의 정통맥을 망각하고자 하는 처사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 역사적 정통맥이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거쳐 배달나라(檀國:倍達國)와 한국(桓國)을 넘어서서 그 이전의 마고할미의 마고성(麻姑城) 한국(桓國:하늘나라)에 직결되어 있는 바, 단군조선의 개국을 기준으로 한 단기(檀紀), 배달나라 개국을 기준으로 한 개천(開天), 한국(桓國)의 건국을 기준으로 한 한기(桓紀), 천부(天符) 사상을 실현한 마고성 한국의 천부(天符)를 병기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 임진년(壬辰年)은 단기(檀紀) 4345년이며, 개천(開天) 5909년이고, 한기(桓紀) 9209년이며, 천부(天符) 72390년이 된다.

<이상으로 지난해 7월 1일부터 만 1년간 366회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동안 애독하여 주신 여러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하루빨리 우리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천산(天山)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쉬띄꼬프  (0) 2020.04.22
연개소문(蓋蘇文)  (0) 2020.04.09
사회주의 국가 헌법  (0) 2020.01.08
대한민국 헌법과 그 역사  (0) 2020.01.08
각국 헌법과 동북아정세  (0) 2020.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