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칸트>
이 책의 출발은 2013년 어느 봄날, 모 기업의 강연에서 시작되었다. 지인의 요청으로 재테크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작은 강연이긴 했지만, 지인의 부탁이기에 한 달 넘게 강연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강연이 끝나고 숙소에 머물면서 내 귓가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 집중했다. 그 소리는 나에겐 너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거울 속엔 낯선 나의 모습, 불행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선명했다.
• 나는 공자가 아니다.
공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吾十有五而志于學)
- 서른이 되니 홀로 설 수 있었다. (三十而立)
- 마흔이 되니 유혹을 받아도 혹하지 않았으며, (四十而不惑)
- 나이 쉰이 되어서는 하늘의 뜻을 알았다. (五十而知天命)
- 그리고, 육십이 되니 고집이 없어져서 듣는 것이 순해졌다. (六十而耳順)”
그러나, 나는 삼십 대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지금은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유혹에 약하다. 쉰이 되어도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마누라 뜻을 헤아리기도 힘들 것 같고, 아마 육십이 되어도 똥고집은 여전히 하늘을 찌를 것 같다. 공자의 삶은 내겐 그냥 꿈인 것 같다.
나는 대한민국 사십 대 가장이다. 사십 대가 되면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바뀔 줄 알았다. 그 믿음 하나로 이를 악물고 삼십 대를 버티며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사십 대의 인생은 안개 속이다. 불혹의 나이를 막 지났지만, 여전히 삶은 혼란스럽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들과 숙제를 안고 산다.
이십 대에 접어들면서 인생과 삶에 대한 낭만적 고민을 했었고, 서른이 넘어선 돈과 관련한 현실적 고민을 했었다. 그땐 모든 고민이 해결됐다고 판단되어 재테크 서적까지 출판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삼십 대의 내 인생은 엉망이었다. 그땐 내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았다. 그냥 무조건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한 삶이라고나 할까. 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다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삶을 살고 있었다.
내면의 삶을 풍성하게 키워야 했는데, 오로지 껍데기만 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데 그 자리를 주변 사람에게 그냥 맡겨 버렸으니 행복했을 리가 있었겠는가.
사십 대가 되어서 비로소 진정한 삶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어떤 방법론이나 공식이 있지는 않을까?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고민들 말이다.
• 왜 나만 불행할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부분의 얘기는 “힘들어서 못 살겠다~”이다.
이어서 계속 읽기를 원하면 아래를 방문할 것.
https://brunch.co.kr/@yettie/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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