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2261815001
이어령은 83세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너무 좋았다.
한국인의 평균수명(81.3세)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그의 왕성한 지적 활동은 도무지 퇴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노화가 진행될수록 단기기억력은 감퇴되고, 최근 정보를 입력해 처리하는 판단력이 급속히 저하된다고들 한다. 하물며 창조력이야. 오늘은 작정하고 파고들어 물었다. “도대체 80대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창조력의 원천은 뭔가요?” 하고.
이 교수는 답변 대신 물었다. “80에 0이 몇 개나 있어?” 답변을 주저하는 사이 말을 이었다. “당연히 0은 하나밖에 없지. 그런데 잘 봐. 8자에도 0이 두 개나 있잖아?” 그러면 세 개? 그런데 그도 아니라고 한다. “눕혀 봐. 뫼비우스의 띠가 되고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0이 무한개나 있다고. 조금만 눈을 깜박이고 생각하면 80이 무한대로 보여요. 80에 늙음은 없어.”
수학에서 ∞는 무한대의 수를 약속한 기호다. 찾아보니 ∞는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그는 이번엔 한문으로 옮겨 간다. “한자를 봐요. 여덟 팔(八). 어때요? 끝에 갈수록 점점 벌어지고 넓어지지. 중국 사람들에게 8자는 펼 발(發), 발전의 의미예요. 그래서 중국인이 8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88서울올림픽에 8자를 놓친 것이 분했던지 베이징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회식을 했어요. 숫자로 읽으나 한자로 읽으나 ‘팔’은 최고의 기쁨을 줘요.”
8자를 눕혀 수학의 무한대와 연관시키고, 한자의 형태에서 발전의 의미를 찾아내는 순발력에 기가 찼다. 과연 ‘언어의 마술사’다웠다.
이어령의 80여년 창조물은 유무형을 망라하지만, 최고봉은 역시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말 가운데 그가 만든 말들이 많다. 그는 낡은 말에 숨결을 불어넣어 새로운 개념어를 탄생시키는 데 귀재다. 딱딱한 행정용어도 그의 손에 닿으면 황금의 언어로 바뀐다. 도시의 자투리 땅에 세운 미니 공원을 ‘쌈지공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대표적인 예. 학술용어로는 정보사회의 키워드로 제시한 ‘디지로그’가 그렇고 새천년 밀레니엄베이비를 ‘즈문둥이’라고 칭한 것이 그렇다. 남들이 동아시아를 ‘동북아’라고 부르는 지역명칭을 ‘한·중·일’로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을 떠올리는데,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대륙-반도-해양의 삼종세트로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오늘은 그 많은 말 만들기 중 창조 이력서에 등재할 만한 것을 하나 제시하고 그 생각의 비결을 공개해 달라고 청했다. 남이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의 양념솜씨의 비법 말이다. 그는 주저 없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답을 내놨다. 그러더니 55년 전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K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이야기예요. 편집국에서 ‘한국의 문화풍토’에 대해 연재 형식의 글을 써달라고 해. 1960년대 초의 일이라, 당시엔 칼럼이나 에세이란 말도 통용되지 않았지. 신문이나 책 제목은 으레 한자투였어요. 사설도 ‘생각하는 바이다’ 같은 독립선언문식이고. 지리 교과서같이 딱딱한 ‘풍토(風土)’라는 말을 세 살 때 배운 우리말로 풀어봤어요. ‘풍(風)’을 ‘바람’으로 ‘토(土)’를 ‘흙’으로 바꿨더니 진짜 우리가 살아온 한국의 흙냄새 바람결이 몸에 와닿는 것 같은 말이 된 거여. 그리고 ‘바람 속에 흙 속에’의 순서를 뒤집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저’라는 지시대명사를 넣었지. 한국의 풍토론이 시적 감각어로 변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이 살아났어요. 굳은살이 밴 풍토라는 판박이 말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된 것이지. 낡은 개념어를 우리 토착어로 바꾸고 순서를 바꾼 것뿐인데 전연 새 감각의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거여.”
외래어는 구두 신고 긁는 격
그는 “왜 굳이 우리말을 살리려 했나”란 질문엔 “한자나 영어 같은 외래어들은 구두 신고 긁는 것과 같다”며 구두 위를 벅벅 긁어 대는 시늉을 해보였다. “상처에 난 딱쟁이가 떨어지면 여린 새살이 나잖아. 한자와 그 많은 외래어들은 한국인의 마음에 난 상처를 덮은 딱지 같은 것이에요. 그것이 떨어지면 그 안에서 나온 새살의 감촉과 예민한 신경줄 같은 뜻이 살아나게 되는 거고. 한국말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아무 데나 만진다고 간지러워? 아니잖아. 간지럼 타는 부분이 따로 있듯, 같은 말이라도 센서티브한 말이 있어요. 좋은 말이라도 자꾸 쓰면 굳은살이 박여요. 일상어는 발뒤꿈치처럼 굳은살이 박인 언어지.”
모국어로 생각하기. 지극히 당연한 이 말 속에 이어령의 창조력의 씨앗이 녹아들어 있다. 당시만 해도 한자의 벽이 높았다. 최남선의 최초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라든지 이인직의 소설 ‘혈(血)의 누(淚)’가 대표적. 전자는 ‘바다에서 소년에게’의 의미이고, 후자는 ‘피의 눈물’이다. ‘사람이 길에 서서’를 ‘인(人)이 로(路)에 입(立)하여’ 식으로 쓰는 일도 허다했다.
이와 관련,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2012년,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펜(PEN)대회 당시의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르 클레지오 그리고 한국 대표로는 이어령이 주제 강연을 했다. 그런데 이어령의 발표문 가운데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From the Sun To Boys’로 표기한 것.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한자로 해(海)라고 말해야만 했던 개화기 한문 문화의 슬픈 유산 때문이었다.
이어령은 한자의 벽에 갇혀 있던 우리말을 과감히 불러냈다. 이때의 우리말은 단지 우리말을 살리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영을 ‘살림살이’, 자본을 ‘밑천’으로 바꾸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전화기’를 ‘번갯불 딱따구리’, ‘공처가’를 ‘아내 무섬쟁이’,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계집큰배움터’ 식으로 바꾸는 건 패착이라고 한다.
모국어 중에서도 ‘토착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토착어는 세 살 때의 말이다. 세 살 때 어머니의 품에서 옹알이를 할 때부터 몸에 익힌 모국어. 이에 대해서는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 두 번째 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내 인생의 첫 책은 어머니의 모습”이라며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고 밝혔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왜 창조력과 영감의 원천이 되는지 설명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아들어야 하는 말이어야 해요. ‘맘마’ ‘지지’같이 이가 나오면서 배우기 시작하는 ‘근지러운 말’, 어머니의 육체성이 있는 말, 학교에서 암기한 말이 아니라 맨몸으로 어머니로부터 배운 말 말이여. 그래야 피와 살이 있는 거지.”
‘저’는 빈칸 넣기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누군들 모국어로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까. 따져 묻자 그는 “나는 말(言) 위에 서서 말에 말을 걸었다”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말을 흘리지. 스케이트 타듯이 말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말이여. 그런데 나는 말 위에 멈춰 서서 말에 말을 걸어요. 그 차이라는 거지. 사람들은 휙휙 주마간산 식으로 보는데, 나는 재미난 말이 있으면 멈춰 서서 봐요. 1초만 멈춰 서서 생각해 봐도 새 뜻이 나오고 새 음성이 나와요.”
‘풍토’도 그렇다. ‘풍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지역의 기후와 상태’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풍토’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로 흘리듯 말할 때, 그는 ‘풍’과 ‘토’라는 말 위에 멈춰 서서 단어의 의미를 묻고 생각하고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그리고 그 ‘흙’과 ‘바람’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고정불변의 문화코드를 읽어냈다. ‘흙’이 고정불변의 상징이라면, ‘바람’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변화의 상징이다.
“흙은 고정돼 있어서 못 움직여요. 일본인이 아무리 약탈을 많이 해가도 흙은 약탈할 수 없어. 흙 속이라는 건 땅속이라는 거여. 땅이라는 건 결국 우리 선조들이 죽어서 흙이 된 거지. 그런가 하면 바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거예요. 바람은 동쪽에서도 불고 서쪽에서도 불어오잖아. 서양에서도 불어 들어오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불어 들어와요. 그래서 내가 국토대장정을 나서는 대학생들에게 이런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너희들이 한 발 한 발 밟는 흙 속에는 선조 수억 명이 죽어간 혼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있다. 백년 후 너희들도 흙이 되어 땅속 어딘가 묻힐 거 아니냐. 그러니 그 국토의 끝에서 끝까지 한 발 한 발 밟는다는 건 얼마나 큰 감동이냐. 결국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들의 운명이 있고, 과거와 미래가 있고 오늘이 있는 거다’라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말의 맛은 ‘저’라는 대명사도 한몫한다. ‘저’라는 대명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저’가 삽입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추상적인 것이 몸짓의 언어로 바뀐다. 길들여진 언어의 원뜻을 찾아내 처음처럼 낯설게 하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냥 빈칸으로 남겨둔다. 독자는 이 여백의 ‘빈칸 메우기’를 통해 독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창조적인 글이란 작자와 독자가 서로 협력해서 만들어가는 상상물이라는 것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뭐가 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거여. 뒤에 무슨 말을 넣든지 자유예요. ‘만약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슬픔이 있다’ 해봐. 메아리가 없잖아. 빈칸이 있어야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면 끌어들이는 힘이 없어. 전보문이나 열차 안내문 봐요.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잖아. 한국 음식과 비슷해요. 한국 음식은 하나하나가 완성품이 아니여. 밥은 싱겁고 반찬은 짜. 싱거운 밥이 맵고 짠 김치와 입속에서 어우러질 때 진정한 맛이 나는 거여. 먹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게 한국 음식이지.”
언어의 고속도로에 ‘갓길’을 만들다
한자말을 뒤집어 새살을 돋게 하는 말의 창조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자주 보이는 ‘갓길’이란 표지판의 말이 그렇다. 지금은 표준어로 굳어진 ‘갓길’은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그가 제안해 바꾼 말이다. 1991년 10월 9일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국어학계에서는 한글날을 맞아 일본식 한자말의 무분별한 유입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일 내무부가 국무회의에 제출한 도로교통법개정안에 포함돼 있던 ‘길어깨’(路肩(노견))라는 말이 대표적인 예. 길어깨는 영어의 ‘RoadShoulder’를 일본에서 글자 그대로 ‘노견’으로 직역한 말을 다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노견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직수입판임을 지적한 뒤 ‘갓길’ ‘길섶’ ‘곁길’ 등 좋은 우리말이 있음을 제시. 국무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다행히 ‘갓길’로 고치기로 결정했다.”
이 교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다시 흥분했다. “바꾸지 않으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어.”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시 이상연 내무부 장관이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 가능했다고 한다.
만약 한자의 노견을 한글 그대로 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노견.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로 보이지 않을까? 이 교수는 ‘갓길’의 조어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노견을 노변(路邊)이라고 한 글자만 바꿔봐. 누구나 다 알아듣지. 그런데 새 개념이어야 하니까 ‘노변’의 순서를 뒤집은 거예요. 풍토처럼. 어때? ‘갓길’이 되잖아. 수백만 명이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갓길이란 말을 봐요. ‘노견’ ‘길어깨’라고 하면 너무 이상해서 경기(驚氣)가 생길 것 같지만, 갓길이라고 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지.”
이 교수는 이 대목을 말하면서 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종종 이런 식으로 흥분하는데, 흥분할 때면 “그게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같은 의문형을 쓴다. 이 또한 ‘말’과 관계 있다. 논리에 민감하고 논리에 강한 그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참지 못한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 남기춘 교수가 언어와 뇌 연구를 했다. 연구팀은 모국어를 배울 때와 외국어를 배울 때의 뇌 활성 부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결과를 보면서 이어령 교수의 뇌가 궁금했다. 그의 모국어 관장 뇌 부위는 신경 스냅스가 훨씬 활발하지 않을까. 살아생전 그의 뇌를 MRI에 넣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인슈타인처럼 사후 뇌 연구가 아니라 말이다. 이 생각을 전하자 그는 씨익 웃더니 한마디로 잘랐다.
“안창살이라고 맛이 다 같어?”
* 이어령 교수는 세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 글을 보내왔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는 눈앞의 경치를 볼 수 없다. 고장이 나야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멈춰 선다. 그래서 여러 가지 풍경과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창조란 잘 달리는 수퍼카가 아니라 구닥다리 고장 난 차와도 같은 것이다. 남들이 정신없이 달릴 때 홀로 멈춰 선다. 그리고 비로소 본다. 느낀다. 생각한다. 갓길 역시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 교수는 답변 대신 물었다. “80에 0이 몇 개나 있어?” 답변을 주저하는 사이 말을 이었다. “당연히 0은 하나밖에 없지. 그런데 잘 봐. 8자에도 0이 두 개나 있잖아?” 그러면 세 개? 그런데 그도 아니라고 한다. “눕혀 봐. 뫼비우스의 띠가 되고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0이 무한개나 있다고. 조금만 눈을 깜박이고 생각하면 80이 무한대로 보여요. 80에 늙음은 없어.”
수학에서 ∞는 무한대의 수를 약속한 기호다. 찾아보니 ∞는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그는 이번엔 한문으로 옮겨 간다. “한자를 봐요. 여덟 팔(八). 어때요? 끝에 갈수록 점점 벌어지고 넓어지지. 중국 사람들에게 8자는 펼 발(發), 발전의 의미예요. 그래서 중국인이 8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88서울올림픽에 8자를 놓친 것이 분했던지 베이징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회식을 했어요. 숫자로 읽으나 한자로 읽으나 ‘팔’은 최고의 기쁨을 줘요.”
8자를 눕혀 수학의 무한대와 연관시키고, 한자의 형태에서 발전의 의미를 찾아내는 순발력에 기가 찼다. 과연 ‘언어의 마술사’다웠다.
이어령의 80여년 창조물은 유무형을 망라하지만, 최고봉은 역시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말 가운데 그가 만든 말들이 많다. 그는 낡은 말에 숨결을 불어넣어 새로운 개념어를 탄생시키는 데 귀재다. 딱딱한 행정용어도 그의 손에 닿으면 황금의 언어로 바뀐다. 도시의 자투리 땅에 세운 미니 공원을 ‘쌈지공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대표적인 예. 학술용어로는 정보사회의 키워드로 제시한 ‘디지로그’가 그렇고 새천년 밀레니엄베이비를 ‘즈문둥이’라고 칭한 것이 그렇다. 남들이 동아시아를 ‘동북아’라고 부르는 지역명칭을 ‘한·중·일’로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을 떠올리는데,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대륙-반도-해양의 삼종세트로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오늘은 그 많은 말 만들기 중 창조 이력서에 등재할 만한 것을 하나 제시하고 그 생각의 비결을 공개해 달라고 청했다. 남이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의 양념솜씨의 비법 말이다. 그는 주저 없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답을 내놨다. 그러더니 55년 전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K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이야기예요. 편집국에서 ‘한국의 문화풍토’에 대해 연재 형식의 글을 써달라고 해. 1960년대 초의 일이라, 당시엔 칼럼이나 에세이란 말도 통용되지 않았지. 신문이나 책 제목은 으레 한자투였어요. 사설도 ‘생각하는 바이다’ 같은 독립선언문식이고. 지리 교과서같이 딱딱한 ‘풍토(風土)’라는 말을 세 살 때 배운 우리말로 풀어봤어요. ‘풍(風)’을 ‘바람’으로 ‘토(土)’를 ‘흙’으로 바꿨더니 진짜 우리가 살아온 한국의 흙냄새 바람결이 몸에 와닿는 것 같은 말이 된 거여. 그리고 ‘바람 속에 흙 속에’의 순서를 뒤집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저’라는 지시대명사를 넣었지. 한국의 풍토론이 시적 감각어로 변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이 살아났어요. 굳은살이 밴 풍토라는 판박이 말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된 것이지. 낡은 개념어를 우리 토착어로 바꾸고 순서를 바꾼 것뿐인데 전연 새 감각의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거여.”
외래어는 구두 신고 긁는 격
그는 “왜 굳이 우리말을 살리려 했나”란 질문엔 “한자나 영어 같은 외래어들은 구두 신고 긁는 것과 같다”며 구두 위를 벅벅 긁어 대는 시늉을 해보였다. “상처에 난 딱쟁이가 떨어지면 여린 새살이 나잖아. 한자와 그 많은 외래어들은 한국인의 마음에 난 상처를 덮은 딱지 같은 것이에요. 그것이 떨어지면 그 안에서 나온 새살의 감촉과 예민한 신경줄 같은 뜻이 살아나게 되는 거고. 한국말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아무 데나 만진다고 간지러워? 아니잖아. 간지럼 타는 부분이 따로 있듯, 같은 말이라도 센서티브한 말이 있어요. 좋은 말이라도 자꾸 쓰면 굳은살이 박여요. 일상어는 발뒤꿈치처럼 굳은살이 박인 언어지.”
모국어로 생각하기. 지극히 당연한 이 말 속에 이어령의 창조력의 씨앗이 녹아들어 있다. 당시만 해도 한자의 벽이 높았다. 최남선의 최초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라든지 이인직의 소설 ‘혈(血)의 누(淚)’가 대표적. 전자는 ‘바다에서 소년에게’의 의미이고, 후자는 ‘피의 눈물’이다. ‘사람이 길에 서서’를 ‘인(人)이 로(路)에 입(立)하여’ 식으로 쓰는 일도 허다했다.
이와 관련,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2012년,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펜(PEN)대회 당시의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르 클레지오 그리고 한국 대표로는 이어령이 주제 강연을 했다. 그런데 이어령의 발표문 가운데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From the Sun To Boys’로 표기한 것.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한자로 해(海)라고 말해야만 했던 개화기 한문 문화의 슬픈 유산 때문이었다.
이어령은 한자의 벽에 갇혀 있던 우리말을 과감히 불러냈다. 이때의 우리말은 단지 우리말을 살리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영을 ‘살림살이’, 자본을 ‘밑천’으로 바꾸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전화기’를 ‘번갯불 딱따구리’, ‘공처가’를 ‘아내 무섬쟁이’,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계집큰배움터’ 식으로 바꾸는 건 패착이라고 한다.
모국어 중에서도 ‘토착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토착어는 세 살 때의 말이다. 세 살 때 어머니의 품에서 옹알이를 할 때부터 몸에 익힌 모국어. 이에 대해서는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 두 번째 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내 인생의 첫 책은 어머니의 모습”이라며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고 밝혔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왜 창조력과 영감의 원천이 되는지 설명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아들어야 하는 말이어야 해요. ‘맘마’ ‘지지’같이 이가 나오면서 배우기 시작하는 ‘근지러운 말’, 어머니의 육체성이 있는 말, 학교에서 암기한 말이 아니라 맨몸으로 어머니로부터 배운 말 말이여. 그래야 피와 살이 있는 거지.”
‘저’는 빈칸 넣기
▲ ◀ ‘길어깨’는 영어의 RoadShoulder를 일본에서 글자 그대로 ‘노견(路肩)’으로 직역한 말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이어령은 문화부 장관 당시 이 말들이 일본어의 직수입판임을 지적하며 ‘갓길’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여전히 국토 구석구석에는 ‘길어깨’와 ‘노견’의 흔적이 남아 있다. photo 이윤옥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누군들 모국어로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까. 따져 묻자 그는 “나는 말(言) 위에 서서 말에 말을 걸었다”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말을 흘리지. 스케이트 타듯이 말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말이여. 그런데 나는 말 위에 멈춰 서서 말에 말을 걸어요. 그 차이라는 거지. 사람들은 휙휙 주마간산 식으로 보는데, 나는 재미난 말이 있으면 멈춰 서서 봐요. 1초만 멈춰 서서 생각해 봐도 새 뜻이 나오고 새 음성이 나와요.”
‘풍토’도 그렇다. ‘풍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지역의 기후와 상태’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풍토’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로 흘리듯 말할 때, 그는 ‘풍’과 ‘토’라는 말 위에 멈춰 서서 단어의 의미를 묻고 생각하고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그리고 그 ‘흙’과 ‘바람’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고정불변의 문화코드를 읽어냈다. ‘흙’이 고정불변의 상징이라면, ‘바람’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변화의 상징이다.
“흙은 고정돼 있어서 못 움직여요. 일본인이 아무리 약탈을 많이 해가도 흙은 약탈할 수 없어. 흙 속이라는 건 땅속이라는 거여. 땅이라는 건 결국 우리 선조들이 죽어서 흙이 된 거지. 그런가 하면 바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거예요. 바람은 동쪽에서도 불고 서쪽에서도 불어오잖아. 서양에서도 불어 들어오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불어 들어와요. 그래서 내가 국토대장정을 나서는 대학생들에게 이런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너희들이 한 발 한 발 밟는 흙 속에는 선조 수억 명이 죽어간 혼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있다. 백년 후 너희들도 흙이 되어 땅속 어딘가 묻힐 거 아니냐. 그러니 그 국토의 끝에서 끝까지 한 발 한 발 밟는다는 건 얼마나 큰 감동이냐. 결국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들의 운명이 있고, 과거와 미래가 있고 오늘이 있는 거다’라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말의 맛은 ‘저’라는 대명사도 한몫한다. ‘저’라는 대명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저’가 삽입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추상적인 것이 몸짓의 언어로 바뀐다. 길들여진 언어의 원뜻을 찾아내 처음처럼 낯설게 하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냥 빈칸으로 남겨둔다. 독자는 이 여백의 ‘빈칸 메우기’를 통해 독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창조적인 글이란 작자와 독자가 서로 협력해서 만들어가는 상상물이라는 것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뭐가 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거여. 뒤에 무슨 말을 넣든지 자유예요. ‘만약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슬픔이 있다’ 해봐. 메아리가 없잖아. 빈칸이 있어야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거지. 정확하게 말하면 끌어들이는 힘이 없어. 전보문이나 열차 안내문 봐요.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잖아. 한국 음식과 비슷해요. 한국 음식은 하나하나가 완성품이 아니여. 밥은 싱겁고 반찬은 짜. 싱거운 밥이 맵고 짠 김치와 입속에서 어우러질 때 진정한 맛이 나는 거여. 먹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게 한국 음식이지.”
언어의 고속도로에 ‘갓길’을 만들다
한자말을 뒤집어 새살을 돋게 하는 말의 창조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자주 보이는 ‘갓길’이란 표지판의 말이 그렇다. 지금은 표준어로 굳어진 ‘갓길’은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그가 제안해 바꾼 말이다. 1991년 10월 9일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국어학계에서는 한글날을 맞아 일본식 한자말의 무분별한 유입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일 내무부가 국무회의에 제출한 도로교통법개정안에 포함돼 있던 ‘길어깨’(路肩(노견))라는 말이 대표적인 예. 길어깨는 영어의 ‘RoadShoulder’를 일본에서 글자 그대로 ‘노견’으로 직역한 말을 다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노견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직수입판임을 지적한 뒤 ‘갓길’ ‘길섶’ ‘곁길’ 등 좋은 우리말이 있음을 제시. 국무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다행히 ‘갓길’로 고치기로 결정했다.”
이 교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다시 흥분했다. “바꾸지 않으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어.”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시 이상연 내무부 장관이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 가능했다고 한다.
만약 한자의 노견을 한글 그대로 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노견.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로 보이지 않을까? 이 교수는 ‘갓길’의 조어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노견을 노변(路邊)이라고 한 글자만 바꿔봐. 누구나 다 알아듣지. 그런데 새 개념이어야 하니까 ‘노변’의 순서를 뒤집은 거예요. 풍토처럼. 어때? ‘갓길’이 되잖아. 수백만 명이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갓길이란 말을 봐요. ‘노견’ ‘길어깨’라고 하면 너무 이상해서 경기(驚氣)가 생길 것 같지만, 갓길이라고 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지.”
이 교수는 이 대목을 말하면서 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종종 이런 식으로 흥분하는데, 흥분할 때면 “그게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같은 의문형을 쓴다. 이 또한 ‘말’과 관계 있다. 논리에 민감하고 논리에 강한 그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참지 못한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 남기춘 교수가 언어와 뇌 연구를 했다. 연구팀은 모국어를 배울 때와 외국어를 배울 때의 뇌 활성 부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결과를 보면서 이어령 교수의 뇌가 궁금했다. 그의 모국어 관장 뇌 부위는 신경 스냅스가 훨씬 활발하지 않을까. 살아생전 그의 뇌를 MRI에 넣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인슈타인처럼 사후 뇌 연구가 아니라 말이다. 이 생각을 전하자 그는 씨익 웃더니 한마디로 잘랐다.
“안창살이라고 맛이 다 같어?”
* 이어령 교수는 세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 글을 보내왔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는 눈앞의 경치를 볼 수 없다. 고장이 나야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멈춰 선다. 그래서 여러 가지 풍경과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창조란 잘 달리는 수퍼카가 아니라 구닥다리 고장 난 차와도 같은 것이다. 남들이 정신없이 달릴 때 홀로 멈춰 선다. 그리고 비로소 본다. 느낀다. 생각한다. 갓길 역시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6개 국어로 번역 출간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 (왼쪽부터) 한국어판. 일본어판1. 일본어판2. 러시아판. 영문판. 중국어판.
1962년에 출간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한국문명론’의 시금석 같은 책으로 평가받는다. 윷놀이, 한복, 숭늉 등 친근한 소재를 끌어들여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특장점을 파헤친 이 책은 출간 1년 만에 30여만부가 팔렸고,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라 지금까지 한 번도 절판되지 않고 중판되어 반세기 넘게 롱셀러를 기록했다. 이 책은 영어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으로 번역, 발간됐다.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은 이 책을 읽고 이어령에 대해 “아시아의 빛나는 거성”으로 평했고,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다다 미치오 교수는 “가장 감동을 준 세 권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는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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