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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여립 역모사건

by 이덕휴-dhleepaul 2022. 8. 23.

기축사화(己丑士禍), 己丑獄事

서인을 옹호하고 동인 집권자들을 탄핵한 서인 강경파 조헌을 길주로 유배하고, 서인의 영수로 칭해지던 박순이 67세를 일기로 별세한 1589년 10월, 동인 권력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정여립 모반 사건이다. 정여립은 모반을 도모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동인은 조정에서 물러나고 서인이 조정을 장악했다. 서인 정철이 조사 책임자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동인들이 모반 연루혐의를 받아 제거되었다.

1589년 10월 2일 선조 임금은 황해감사 한준이 은밀하게 조정에 보낸 서신을 받아들었다. 안악군수 이축이 와서 역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의 보고서인데 역모의 주동자는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었다. 정여립은 전주 출신으로 기대승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왔다.

정여립은 25세에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성혼과 이이를 찾아가 학문을 토론하곤 했다.

1584년(선조 17) 우의정 노수신이 정여립을 천거했다. 노수신은 김효원과 심의겸 사이에 인사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동인 김효원의 편을 들었던 일로 인해 동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정여립은 노수신의 천거로 수찬이 된 후 당시 집권세력인 동인에 들어가 이이를 배반하고 성혼을 헐뜯었다. 이로 인해 선조 임금의 미움을 사서 관직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정여립은 서인 사람들을 비판하고 동인인 유성룡 등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서인 측에서 그를 비난하자 벼슬을 접고 전라도 금구로 내려가 그곳에 별장을 짓고 학문을 강론한다고 위장하여 사람을 모았다. 그리고 황해도로 가서는 변승복 · 박연령 등 정치 불만세력을 포섭했다.

얼마 뒤에 그는 당대에 떠돌던 목자(木子)는 망하고 전읍(奠邑)은 흥한다는 ‘정감록’에 나오는 참언을 옥판에 새겨 승려 의연으로 하여금 지리산의 석굴 속에 감추어 두게 한 다음 자신이 우연히 이것을 얻은 것처럼 꾸몄다.

여기에서 목자는 곧 조선왕조를 세운 이씨이고 전읍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정여립은 의연에게 각 지방을 다니면서 ‘왕의 기운은 전라도에 있고, 전주의 남문 밖에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전주의 남문은 정여립이 태어난 곳이다.

마침내 정여립은 반란을 결심하고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모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서울로 진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전에 승려 의암의 밀고와 정여립의 제자인 조구의 자백으로 역모는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안악군수 이축이 황해감사 한준에게 보고했고, 한준이 조정에 장계를 올린 것이다.

1589년 10월 8일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은 수많은 인물들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선조 임금은 정철에게 이 사건의 조사책임을 맡겼다. 그리고 서인 송익필은 정철의 집에 기거하면서 배후에서 동인들에 대한 처단을 조종했다.

주범인 정여립을 체포하기 위해 의금부 도사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금구로 갔으나 그는 이미 피신한 후였다. 변승복이 역모가 사전에 발각된 것을 알아채고 정여립에게 달려가 알리자 정여립은 변승복과 죽도로 도주했다. 진안현감이 관군을 이끌고 정여립의 뒤를 추격하자 그는 10월 17일 변승복과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자결했다. 이 무렵 서울에 와 있던 일본 사절단의 승려 게이테쓰 겐소(景轍玄蘇, 1537~1611. 11. 26)는 이러한 조선 내부의 갈등과 변란을 살피고 있었다.

이 역모사건 조사 과정에서 동인 사람들이 다수 제거되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3년여 동안 1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를 입은 동인 측 사람으로는 이발 · 이길 · 정언신 · 백유양 · 최영경 · 정개청 등이며 이를 가리켜 기축옥사라고 한다.

제14대 선조 임금 가계(출생 1552년, 서거 1608년, 재위: 1567. 07~1608. 02)

출처: 유승환(2009), 308쪽. 일부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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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유승환 편역,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비열전』(서울: 글로북스, 2009), 273쪽.
  • ・ 이상각, 『조선왕조실록』(서울: 들녘, 2009), 294쪽.
  •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⑪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서울: 한길사, 2000), 30쪽.

김현우

일본 야마구치대학 경제학부 졸업,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저서로 <한국정당통합운동사>, <한국국회론>..펼쳐보기

출처

임진왜란의 흔적 | 김현우 | 한국학술정보

한국에는 임진왜란의 역사를 담은 유적과 유물이 지역 곳곳에 분포해있다. 전란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전국에 있는 임진왜란 현장과 남겨진 흔적들을 지역별로 정리하여 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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