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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Scandals
Scandal de Panama
1. 개요[편집]
<img class='wiki-image' height='100%' src='//cdn.namuwikiusercontent.com/s/cf04b71ecc3b49f4a6c5ae3179346d63a45bf08a273e1f1b57435fd9884ab3df452dcf3ba42ca071b2d3c6d678f0f0a2f741f5763df8d542c0c2608a00c89b07c958a86d93f784357e5ab79403c32751?e=1531787101&k=u4dhAnzpTqNqktn9ASj-Gg' alt='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eau_d'or_(Panama).jpg'>
당시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에 개재된 풍자 만평.[1]
프랑스 제3공화국을 뒤흔든 최악의 정경유착 스캔들.프랑스판 최순실 게이트
2. 내용[편집]
1880년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파나마 운하 수주권을 확보하고 공사에 돌입한다. 하지만 이 시기 아직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말라리아로 인하여 2만 2천명의 공사 인부가 사망하는 것과 같은 악재가 잇따르면서 1890년이 되면 공사가 실패했음이 자명해진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투자를 행한 건설사 측은 정부 모든 부서에 천문학적인 뇌물을 뿌려대면서 이 사실을 은폐하고자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공사의 실패가 세간에 드러난 시점은 1892년쯤이었다.
1892년 조르주 클레망소를 비롯한 여섯 명의 현역 장관들이 건설책임자인 페르디낭 드 르셉스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공사의 실패에 대해 함구하는 한편으로, 추가적인 투자액 확보를 위한 유령 회사 설립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프랑스 정국은 발칵 뒤집힌다. 연이어 드러난 부패의 규모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무려 510명의 국회 의원들이 르셉스로부터 뇌물을 제공받고 파나마 운하 건설 시공사의 시궁창스러웠던 재정 상태에 대해 침묵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경찰서 정모
장 조레스가 주도한 조사 위원회에서 이 510명 가운데 뚜렷하게 뇌물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난 의원만 무려 104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건설사 측의 주요 인물들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덧붙여서 1903년 프랑스는 수주권을 4천만 달러에 미국 측에 팔았고[2] 미국은 1914년에 파나마 운하를 완공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3. 여파[편집]
3.1.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편집]
무려 500여명의 국회 의원들이 너 고소를 시전당했고 그 중 100명 이상이 실제로 유죄가 드러난만큼 프랑스의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만 무려 세 차례나 내각이 붕괴되었으며, 특히나 거물이었던 클레망소는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 짊어지고 갈 부패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또한 대중들에게 '왕정이나 공화정이나 윗대가리들이 헤쳐먹는건 똑같다.'라는 인식이 만연해졌고, 이를 이용하여 왕당파들은 신나게 부패한 공화정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었다.[3]
3.2. 경제적 손실[편집]
대략 80만 명 가량의 프랑스인들이 유령 회사에 대해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나 이 중에는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한 독신 여성과 과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후유증을 낳았다. 총손실액은 당시 액수로만도 무려 9억 6천만 프랑으로 추정된다. 약간 시기 차이가 존재하지만 1873년 기준으로 금본위제에 근거한 1프랑의 가치가 대략 0.3그램[4]의 순금이다. 현재 금 값이 그램 당 대략 44000원 정도이니 오늘날 가치로는 무려 12조 4500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
3.3. 반유대주의[편집]
또한 건설사 측이 주식 투자를 위해 만든 유령 회사를 좌우한 것은 유대계 금융자본이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다시 한 번 만연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팽팽히 부푼 반유대인 감정을 크게 폭발시킨 것이 이로부터 3년 뒤의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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