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신 존재 증명

by 이덕휴-dhleepaul 2022. 12. 17.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칸트와 헤겔의 견해

 

백훈승(전북대)

[한글요약]

고전적인 신 존재증명에는 우주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 그리고 존재론적 증명 등이 있다. 우주론적 증명과 목적론적 증명은 유한자로부터 출발하여 신의 실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반면에, 존재론적 증명은 완전자, 최고의 실재자, 필연적 존재자라는 신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신의 실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안셀무스가 제시한 논증의 오류를 밝힘으로써, 존재론적 논증이 실패했음을 보이는 한 편, 존재론적 논증에 대한 칸트와 헤겔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칸트의 주장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존재론적 논증의 갱신자라고도 알려져 있는 헤겔의 주장에 내포된 오류를 바로 잡고자 한다. 안셀무스는 관념 (개념)과 실재를 혼동했으며, 헤겔 또한 개념의 의미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자의적인 규정에 따라 사용함으로써, 완벽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신의 실재의 증명에 실패하고 말았다.


주제분야 : 서양근대철학, 형이상학, 종교철학
주 제 어 :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안셀무스, 칸트, 헤겔, 개념

 

 

 


1. 들어가는 말

인류의 역사를 통해 수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논증이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자부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증들에는 존재론적 논증 (ontological argument), 우주론적 논증 (cosmological argument), 목적론적 논증 (혹은 자연신학적 논증, 고안에 의한 논증 teleological or physico-theological argument, argument from design), 도덕적 논증 (혹은 의무론적 논증 moral or deontological argument) 등이 있는데, 본 논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존재론적 논증이다. 헤겔은 모든 논증들 가운데서, 일찍이 聖 안셀무스 (St. Anselmus)에 의해 그 원초적 형태가 제시된 존재론적 논증만이 참된 논증, 성공한 논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존재론적 논증은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 논문에서는, 존재론적 논증에 대한 칸트와 헤겔의 견해를 서술하고, 과연 이들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2. 존재론적 논증에 대한 칸트의 비판

1)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

칸트가 존재론적 논증을 어떤 점에서 비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론적 논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역사상 존재론적 논증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안셀무스의 논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존재론적 논증은 안셀무스의 Proslogion의 제 2장-5장에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논증은 두 개다. 첫 번째의 논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것 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다. aliquid quo maius nihil cogitari potest" (Proslogion, 84).
2. "그것 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는 단지 지성 (사유) 속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이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 id quo maius cogitari nequit, non potest esse in solo intellectu. Si enim vel in solo intellectu est, potest cogitari esse et in re; quod maius est" (ebd.).
3.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는 지성 속에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Existit ergo procul dubio aliquid quo maius cogitari non valet, et in intellectu et in re" (ebd.).
2) 칸트의 비판

칸트는 Kritik der reinen Vernunft에서 전통적인 신 존재 증명인 존재론적 증명, 우주론적 증명, 그리고 목적론적 증명의 세 가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사변적 이성에 의한 신의 현존재 증명은 오직 세 가지 방식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칸트는 맨 마지막의 존재론적 증명에 관한 검토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성의 이러한 노력 (감성의 세계를 초탈하려는 노력: 필자 주)을 지도하며, 이성이 상정한 목표를 그 모든 시도 속에서 제시하는 것은 오직 선험적 개념이기 때문" (KrV, B 619)이라고 말한다. 칸트는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존재자라는 개념은 순수이성의 개념, 즉 단지 하나의 이념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객관적 실재성은 이성이 그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아직 증명되는 것이 아니며,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KrV, B 620) 것이라고, 존재론적 논증의 성립 불가능성을 결론적으로 제시하면서 그의 논증을 시작한다.
존재론적 증명에 관한 비판에서 칸트는, 안셀무스나 그의 저작인 Proslogion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논증에 관련해서는 삼각형의 예를 들어 논박하고 있다. "삼각형은 세 각을 갖고 있다"라는 진술을 살펴보자. 이 경우에, 분명히 주어와 술어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삼각형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즉, "세 개의 각을 갖고 있다"는 술어가 삼각형이라는 주어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러한 술어를 가진 주어에 해당하는 존재자가 이 세상에 실재한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만일 삼각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세 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3각형이 있다고 가정해 놓고 그 삼각형에 세 개의 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삼각형이 없는 경우에, 세 개의 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즉, "삼각형을 정립해 놓고도 이 삼각형의 세 각을 제거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삼각형과 그 세 각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은 하등의 모순도 아니다" (KrV, B 622-3).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자가 실재한다고 가정해 놓고 그런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그런 필연적 존재자는 없기 때문에 '실재'라는 속성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KrV, B 621-624 참조). 존재론적 논증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무기로 내세우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절대 필연적인 존재자' (das absolut notwendige Wesen, KrV, B 620 참조)라는 개념이며, 그들은 "그것의 비존재는 불가능하다" (같은 곳)고 주장한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절대 필연적인 존재자'라는 개념은 순수이성의 개념 혹은 이념에 불과하며, 이 개념이나 이념에 대응하는 존재자가 실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을 보증할 수는 없는 개념인 것이다. 즉, 이러한 이념은 우리의 이성에 부과되어 있는 (aufgegeben) 것이지, 우리 앞에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는 (gegeben)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안셀무스의 논증의 첫 번 째 전제에서, 주어와 술어의 필연적 관계는 전적으로 논리적인 관계다. 그것은 결코, 주어개념이 언표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즉, 이러한 필연성은 판단의 필연성에 불과하며, 사실 그 자체의 필연적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칸트가 들고 있는 또 하나의 예는 100탈러에 관한 것이다. 가능적인 (혹은 생각 속의) 100탈러와 현실적인 100탈러는 개념상으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생각 속의 100탈러는 실제의 100탈러와 동일한 수의 탈러로 구성되어 있다 (KrV, B 627 참조). 그러나 양자가 그 개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해도, "나의 재산상태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100탈러가 단지 100탈러의 개념 (즉, 100탈러의 가능성) 보다 더 많이 포함하는" (같은 곳) 것이다. 즉, 현실적인 100탈러를 가지고는 여러 가지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생각 속의 100탈러로는 아무 것도 살 수 없다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 이다'는 분명히 실재에 관련된 술어가 아니다 Sein ist offenbar kein reales Predikat" (KrV, A 598, B 626). 그것은 단지 "판단의 계사" (같은 곳)에 불과할 뿐이며 결코 "술어가 아니라, 술어를 주어와 관련시켜서 정립하는 것" (KrV, A 599, B 627)이다. 따라서 개념 (Begriff)과 실재 (reales Sein)의 동일시는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즉, 우리가 신이라는 관념 내지는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주관적으로 사유된 신 관념에 해당하는 객관적 실재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선험적 이상으로서, 즉 모든 실재나 규정들의 총괄 (omnitudo realitatis)로서 사유된 신이라는 思想은 "이성의 사유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 것 ein blo es Selbstgesch pf ihres Denkens" (KrV, B 612)이다.
3. 존재론적 논증에 대한 헤겔의 견해

칸트에 의하면, 전통적인 모든 신 존재 증명, 즉 존재론적 증명, 우주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헤겔은, 우주론적 증명과 목적론적 증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칸트와 일치하지만, 존재론적 증명으로 신의 존재가 증명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오직 존재론적 증명만이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존재론적 증명만이 참된 증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항상, 다른 증명들 곁에 있는 하나의 증명으로 함께 열거되고 있음을 불평한다. 헤겔은 신의 존재가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근거로 그는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1) 칸트의 오성적 인식에 대한 헤겔의 비판과 신의 인식 가능성

칸트 이후의 관념주의자들은, 칸트 이전의 독단적·합리주의적 형이상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참된 현실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의 全 영역을 포괄하는 철학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헤겔은, 칸트가 '물 자체'로써 현실인식에 제한을 가한 것을 비판하며, 칸트의 이성비판을 무력화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헤겔과 사변적 관념주의자들은 "선험철학의 특정한 견해들, 특히 오성형식들을 현상영역에 제한한다든지 혹은 이성의 이념들을 통제적 원리로서 해석한다든지 하는" 견해들을 부정함으로써, 이성은 다시금 현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칸트의 철학은 "절대적 유한성과 주관성으로 전락하고", 그의 철학의 "모든 과제와 내용은 절대자의 인식이 아니라, 이 주관성의 인식이거나 인식능력의 비판"이라고 헤겔은 비판하는데, 헤겔은 인간이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신을 인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신을 직접적으로 안다는 사실을 안다". 오성은 무한자, 절대자, 신을 인식할 수 없지만, 이성·정신으로서의 유한자인 인간은 무한한 정신인 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유사한 주장을 한다. 즉, 그는 "인간의 이성은 (...) 인간 속에 있는 신적인 것" (TW 16, 40)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도 정신이고 신도 정신이므로 인간은 신을 알 수 있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헤겔은, 같은 것을 통해 같은 것을 본다고 말한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인식론적 기초 위에 서 있다고 하겠다.
신은 정신이므로 대자성을 그 본질로 가지고 있다. 즉, 정신은 자기를 객체화·대상화·외화하고, 이렇게 외화된 자신으로서의 타자를 부정하고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하는 생동적인 존재자다. 이렇게 대자적인 정신, 자기를 객관화·외화하는 정신으로서의 신은 인간에게 자기를 계시하며, 이러한 자기계시는 바로 신의 본질에 속한다고 헤겔은 말한다 (TW 17, 193 참조).

2) 칸트의 개념관에 대한 헤겔의 비판
   : 주관적 관념 (표상, Vorstellung)과 개념 (Begriff), 혹은 주관적 개념 (유한한 개념)과 절대적 개념 (문한 한 개념, 참된 개념)
 
그러면 과연 헤겔은 어떻게 자신의 증명을 전개하고 있는가? 존재론적 증명은 "신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ebd., 208). 그리고 이러한 신 개념은 "가장 실재적인 것" (ebd.)이라고 헤겔은 말한다. 헤겔은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비판하는데 이는, 자기의 독특한 Begriff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존재론적 증명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다.
칸트는 "존재와 개념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신 개념으로부터 존재를 끄집어 낼 수 없으며" (ebd., 그리고 209 참조), "개념은 존재를 포함할 수 없다" (ebd.)고 말하는데, 이러한 칸트의 비판과 동일한 비판을 이미 안셀무스와 동시대인인 한 수도사가 주장했다고 말함으로써, 헤겔은 고닐롱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헤겔은 칸트가 '진정한' 개념들과 추상에 근거한 개념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선 그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들고 있는 100탈러의 예에 대하여, 칸트가 든 예에 있어서는 칸트가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헤겔이 칸트가 옳다고 말한 이유는, 그 경우에 100탈러 라는 관념이나 표상 혹은 개념은 유한자에 관한 관념이나 표상 혹은 개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한자의 영역에서는 어떤 사물의 관념과 그 사물의 존재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헤겔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TW 17, 531 및 TW 19, 559 참조). 이 점에 대해 헤겔은, "내가 생각하고 표상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고 표상한다고 해서 실재할 수는 없다는 사실 이상으로 분명한 사실은 또 있을 수 없다. 곧 이 분명한 사실이란, 표상활동이나 혹은 개념도 존재와 일치할 수 없다는 사상이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평범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안셀무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TW 19, 559 참조). 그러나 헤겔이 "사소하다" (같은 곳)고 말한 이러한 진술로부터, 이러한 구별이 근본적이어서, 가능한 모든 개념에 대해서도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그러면 과연 헤겔은 칸트의 주장의 잘못된 점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헤겔에 의하면, '신'은 "100탈러나 혹은 그 어떤 하나의 특수한 개념이나 표상이나, 그 명칭이야 어떻든, 이러한 것들과는 전혀 類가 다른 대상"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여기서 관념 (표상)과 개념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다. 즉 "100탈러와 같은 것을 개념이라고 부르는 것은" "야만적인 것, 미개한 것, 교양 없는 일 Barbarei" (TW 8,   51)이라고 한다. 100탈러와 같은 것은 단지 주관적인 표상이나 관념에 불과하고, '신'은 이런 주관적인 관념이나 표상이 아니라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신은 자신 속에 존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또는 "자신에 의해 규정된 무한자 속에서는, 개념에 실재가 상응함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념, 즉 주관과 객관의 통일이다" (TW 17, 531)라고도 말한다. 즉, 무한자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은 존재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ebd.) 것이어야만 한다. 유한자의 경우에는 관념 (표상)과 존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옳지만, 무한자의 경우에는 사유와 존재가 통일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칸트에게는 이러한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헤겔은 비판한다 (TW 19, 559 참조). 다시 말하면, 칸트는 개념을 유한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개념으로부터 실재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TW 17, 532 참조).
그런데 헤겔은 이러한 개념 자신은 자기의 주관성을 지양하여 자신을 객관화하며, 자신의 구별을 지양하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TW 17, 533 참조). 그리고 유한자, 거짓된 것에 있어서는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채로 있지만, 개념으로서의 신은 이 양자의 진리이며 통일이라고 말한다 (ebd. 참조).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통일은 더 이상 "전제가 아니라 결과" (ebd.)라고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개념으로서의 신은 자기 자신과의 단순한 동일성으로 머물러 있는 추상적 존재자가 아니라, 자기를 객관화하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이러한 통일은 "절대적인 과정으로서, 신의 생동성으로서" (ebd.) 파악되어야 하며, 따라서 "통일은 자기를 영원히 산출하는 절대적 활동" (ebd.)이라고 한다. 이러한 무한한 개념을 헤겔은, '스스로의 원인 causa sui'이라는 개념과 동일시하고 있다: "'스스로의 원인'이라는 것은 중요한 표현이다. 결과는 원인과 대립해 있다. 자기 자신의 원인이란, 타자를 분리시키는 원인, 작용인이다; 그런데 이 원인을 산출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이러한 산출행위 속에서 원인은 구별을 동시에 지양한다 (....) 그것은 전적으로 사변적인 이러한 개념이다". 헤겔이 말하듯이, '스스로의 원인'은, 개념의 통일을 나타내는 "아주 기발한 표현 (ein sehr frappanter Ausdruck" (TW 17, 494)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우리는 헤겔이 '개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즉, 첫 번째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다. 예를 들면 그는 바로 우리가 인용한 구절에서도, "개념과 존재의 이러한 통일이 바로 신 개념을 이룬다" (TW 8,   51)고 하는데, 이 때, 이 진술의 맨 앞에서 말하는 개념이 바로 이런 의미의 개념이다. 또한 Grund- 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TW 7로 약함)에서 법 이념 (die Idee des Rechts)을 법 개념 (der Begriff des Rechts)과 법 개념의 실현 (dessen Verwirklichung)의 통일로 설명하는 경우 (TW 7,   1), 또한 헤겔이 개념과 그 개념의 실존 (현존 Existenz, Dasein)과의 관계를, 영혼 (Seele)과 육체 (Leib, K rper)의 관계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경우의 '개념'이 그것이다 ( TW 7   1, Zusatz 참조). 두 번째 의미의 개념은 바로 위에 인용된 {법철학}   1의 보유에서 "개념과 그 개념의 실존 (현존)의 통일, 육체와 영혼의 통일이 이념이다" (Die Einheit des Daseins und des Begriffs, des K rpers und der Seele ist die Idee)라고 할 때의 '이념'에 해당하는 의미의 개념이다. 이 때의 개념은 바로 헤겔이 {논리학}에서 존재와 본질의 통일체로서의 개념을 말할 때의 바로 그 개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전자의 의미의 개념을, 그 개념이 그에 대응하는 사물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그것은 단지 인간의 주관 속에 있는 관념에 불과하므로 <주관적 관념>으로 보고 있고, 또 주관적 관념에 대응하는 객관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에서 <추상적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관적 관념이 그것에 대응하는 사물과 결합될 때 이것은 <구체적 개념>, <진정한 개념> 혹은 <이념>이 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신'은 헤겔에 의하면, '주관적 관념'이나 '주관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그에 대응하는 그것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보통의 추상개념과는 구별되는 개념 혹은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 혹은 이념에 관하여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것은 단지 주관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존재와 상이한 개념 자체는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결핍이다. 그러나 개념은 가장 심오한 것, 가장 높은 것이다. 모든 개념은 자기의 주관성의 이러한 결핍과 존재와의 이러한 상이성을 지양하고 자기를 객관화하는 이런 것이다; 개념 자체는 자기를 존재하는 것, 객관적인 것으로 산출하는 행위다" (TW 17, 526). 그러므로 헤겔에 의하면, 칸트에 의해 주장된, 의식내용으로서의 개념과 실재 (현존)의 차이는 유한자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며, "주관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이런 주관적인 것을 극도로 지양하고 자기를 객관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TW 19, 585) 자로 생각되는 절대자라는 개념이나 신이라는 개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4. 맺는 말

 안셀무스의 논증의 첫 번째 전제 속의 '신'이 '관념으로서의 신'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진술은 두 번째의 전제와 모순되기 때문에, 그의 논증이 타당한 논증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전제 속의 '신'은 '실재하는 신'을 뜻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전체의 논증은
1. 실재하는 신은, 그것 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다 (만약 신이 실재한다면, 그는 그것 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다).
2. 그것 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는 단지 지성 속에서만 존재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이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자는 지성 속에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논증의 형식은 1. p q 2. q p 3. p q (1과 2로부터)  q p 로서, 타당한 논증이다. 그런데 두 전제들이 모두 옳은가? 물론 우리는, '가장 큰 것', '가장 위대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여러 다른 의견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두 전제들을 반드시 옳은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두 전제들이 모두 옳다고 인정할 경우, 이 논증은 완벽한 논증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결론으로 제시된 주장이 정언진술이 아닌 가언진술이라는 점이다. 즉, 결론의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위대한 존재자가 존재하고, 그 존재자는 실재한다"라는 주장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주장은, "만약에 가장 위대한 존재자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자는 실재한다"는 가언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의 실재는 여전히 증명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칸트는 안셀무스의 논증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겔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을 그 자신의 특수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논점을 흐리고 말았다. 즉, 첫 번째 전제 속에 있는 '신'을, 소위 그가 말하는 '절대적 개념'으로 해석하며, 따라서 이러한 절대적 개념은 실재물이므로 우리의 '주관적 개념이나 관념'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자신의 입장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헤겔은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머리 속에서 가지고 있는 신 관념에 대응하는 대상이 실재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헤겔에 있어서는 절대자, 무한자로서의 신이 이미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서 전제되어 있고, 이 전제로부터 자신의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안셀무스의 사유는 내용으로 보면 참되고, 필연적인 사유" (TW 17, 526-7)이지만, 그러나 "신은 실재한다"는 주장은 추상적이며 가장 불충분한 신 규정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헤겔에 있어서 신은 단지 이러한 단순한 자기동일자로서 실재할 뿐만이 아니라, 신이 정신인 한, 신은 활동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념과 존재의 동일성은 전제로서 제시될 것이 아니라, 주체의 객체화 과정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이상의 고찰로써 우리는, 안셀무스로 대표되는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은 실패한 논증이며, 헤겔에 의해서 이 논증이 갱신되어 신의 존재가 입증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과학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Russell, B,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서양철학사}, 하권, 최민홍 역, 서울, 1977.
      ,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제 5장: '직접지에 의한 지식과 기술에 의한 지식', 235-245, {행복의 정복·철학이란 무엇인가?}, Great Books 58, 서울, 1976.
      , Introduction to Mathematical Philosophy, {수리철학의 기초}, 제 16장: 기술, 212-230, 임정대 역, 서울, 1986.
Anselm von Canterbury, Proslogion. Untersuchungen Lateinisch-deutsche Ausgabe von P. Franciscus Salesius Schmitt O.S.B. Abtei Wimpfen, Stuttgart-Bad Cannstatt, 1962.
Descartes, R., Meditationen  ber die Grundlagen der Philosophie, in denen das Dasein Gottes und die Verschiedenheit der menschlichen Seele vom K rper bewiesen werden,  In: Ren  Descartes Philosophische Schriften in einem Band, Hamburg, 1996.
Empedokles, Fragmente, In: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Griechisch und Deutsch von Hermann Diels, hg., v. Walther Kranz, Bd. 1, Weidmann, 1974.
Hegel, G. W. F., Glauben und Wissen oder Reflexionsphilosophie der Subjektivit t in der Vollst ndigkeit ihrer Formen als Kantische, Jakobische und Fichtesche Philosophie, In: Jenaer Schrifen 1801-1807 (TW 2), Theorie Werkausgabe in zwanzig B nden, Redaktion von Eva Moldenhauer und Karl Markus Michel, Ffm, 1969 ff (=TW).
     , Wissenschaft der Logik Ⅰ(TW 5)
     ,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TW 7)
     , Enzyklop die de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Ⅰ(TW 8)
     ,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Ⅰ(TW 16).
     ,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Ⅱ(TW 17).
     , Vorlesungen  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Ⅱ(TW 19).
Henrich, D., Der Ontologische Gottesbeweis. Sein Problem und seine Geschichte in der Neuzeit, T bingen, 1960.
Hick, John H., Philosophy of Religion, Englewood Cliffs, 1983.
Kant, I., Kritik der reinen Vernunft, hg. v. Raymund Schmidt, Hamburg, 1956.
Lauer, Q., "Hegel on Proofs for God's Existence", In: Kant-Studien Bd. 55, 1964, 443- 465.
Lensink, J., "Im Spiegel des Absoluten. Kritische Erw gungen zum ontologischen  Gottesbeweis", In: Dialektik 1992/1, 75-91.
Mojsisch, B. ( bers., erl utert u. hg), Kann Gottes Nicht-Sein gedacht werden? Die Kontroverse zwischen Anselm von Canterbury und Gaunilo von Marmoutiers, Lateinisch-Deutsch, Ffm, 1989.
Plantinga, A., The Nature of Necesity, Oxford, 1989.
R d, W., Der Gott der reinen Vernunft, M nchen, 1992.
Wagner, Falk, Kritik und Neukonstitution des kosmologischen und ontologischen Gottesbeweises in der Philosophie Hegels, In: Archivio di filosofia Bd. 58, 1990, 299-333.
"Theo-Logik. Ein Beitrag zur Teologischen Interpretation von Hegels Wissen- schaft der Logik", In: Religionsphilosophie und spekulative Theologie. Der Streit um die G ttlichen Dinge (1799-1812), hg., v. W. Jaeschke, Hamburg, 1994, 195-220.


[Abstract]

Kant and Hegel on the Ontological Argument
for the existence of God

Paek, Hun-Seung (Jeonbuk Univ.)

There are cosmological, teleological and ontological argument among the classical arguments for the exitence of God. The former two arguments start with the finite so that they may reach the God, while the latter one begins from the idea of God, namely with the concept of the Perfect, Infinete, and Necessary Being in order to prove the exitence of God.
 It is argued in this essay, that neither St. Anselm nor Hegel succeeded  in proving the existence of God with their ontological arguments. They confused the idea (or concept) with being. Even if we consider Anselm's argument as sound, therefrom follows but a hyperthetical statement that "if there exists a being, than which nothing greater can be conceived, it exists in reality". Therefore this argument did not prove the exitence of God. Moreover, Hegel makes us confused by using the concept of 'concept (Begriff)' arbitrarily. Concept means for him originally God as Substance, Subject and Spirit. God is for him presupposed and from this presupposition he begins his argument, but this is never a sound argument for the existence of God. Kant was clear enough to expose and solve the problems contained in the ontological argument.

Key Words : ontological argument, Anselm, Kant, Hegel, concept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German, Philosophers  (0) 2022.12.25
유명한 철학자  (0) 2022.12.25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0) 2022.12.14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0) 2022.12.13
에라스무스  (1)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