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출애굽시기와 애굽체류기간에 대한 일고찰
Ⅰ. 들어가는 말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구속사(Heilsgeschichte)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족장들에게 주신 땅과 민족의 약속을 역사적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신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것을 현대적 상황 속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기란 쉬운 것은 아니다. 세속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애굽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오직 메르넾타(Mernephtah: Ramses Ⅱ세의 후계자. B.C. 1224-1211 경)의 승전기념비에 처음 등장한다. 또한 성서는 정확한 연대기를 제시하지는 않고 다만 얼마동안 체류하였다는 것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편린으로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은 글을 통하여 이집트 제국의 역사성이라든가 족장시대의 마지막, 즉 주전 1550년경부터 이스라엘이 이미 팔레스타인에 들어와 있었던 1200년경까지를 모두 다루기에는 소론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세속사적 연구방법을 떠나서 곧바로 구속사적인 연구방법, 즉 성경적으로 파악된 범위에 한정하고자 한다. 다만 구속사의 드라마를 역사적으로 확증하고자 하는 일부 고고학의 근거는 필요에 따라 언급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얼마동안이나 체류하였는가를 성서(갈 3:17)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애굽이 일어난 시기에 대한 역사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기간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의 출애굽시기가 연대기적으로 어떻게 연구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이스라엘의 체류기간을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Ⅱ. 출애굽의 연대문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관련된 복잡한 연대상의 문제나 오늘날 출애굽의 연대 결정의 문제는 커다란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애굽체류조차 부인하고, 출애굽의 연대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굽 땅에 체류했다는 전승을 믿지 않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연대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의 증거와 고고학의 증거들 및 고대 근동의 역사적 증거들을 볼 때, 출애굽 사건은 역사적 증거임에 틀림없지만. 복잡한 연대상의 문제나 지리상의 문제에 대한 확고한 해결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출애굽, 광야유랑, 가나안 정복 등의 기간에 관계된 인물들, 장소, 그리고 시간 등에 대한 정보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당시 애굽의 기록은 출애굽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 애굽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미미한 사건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출애굽민족은 이스라엘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힌슨(Daivid F. Hinson)은 주장한다. 출애굽의 연대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이스라엘의 애굽체류기간이 얼마동안이었나를 추정하는데 순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1. 주전 16세기설
주전 16세기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반유대적 애굽의 역사가였던 마네도(B.C. 250년경)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힉소스 족속들이 축출될 때 함께 탈출한 것으로서 그 연대를 주전 1550년경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이나 고고학이 뒷받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가치가 없다.
2. 주전15세기설
B.C. 15세기설에 대하여는 학자들간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이 주장의 견해는 성서적 견해이다. 삿 11:26과 왕상 6:1이다. 입다(삿 11:1-12:7)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때(B.C. 1100년경)에 "이스라엘이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 지 300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하여 모압 따의 도시들을 취한 것이 300년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 모압 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때를 1400년경으로 봐서 주전 15세기경을 출애굽 연대로 본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해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며, 그가 왕이 된지 4년째라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솔로몬 왕 4년째란 주전 961년이 된다. 솔로몬 치세연대를 B.C. 961/960-931/922로 본다면, (961/960+480)= B.C. 1441/1440년경의 출애굽 연대가 나온다. 이 때는 투트모스 3세가 애굽을 통치하던 시절이다.
고고학적 증거로는 영국의 리버풀대학교의 가르스탕(J. Garstang, 고고학자)은 1930-1936년 사이에 여리고(Tell es-Sultan)를 발굴 후, 여리고 지역이 주전 1400년경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봐서 출애굽 연대를 1440년경이라고 주장했다.
3. 주전 13세기설
출 1:11의 기록에 의하면 애굽으로부터 억압받던 이스라엘이 비돔과 라암셋 성을 건축하는 이스라엘의 기록에 의해 라암셋 2세(Rameses Ⅱ: B.C. 1290-1224)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 때 쓰여진 비문에 의하면 라암셋을 위하여 고역했던 아삐루(Apiru)족이 있다. 이 아피루족이 하비루(Habiru)족과 동일하며 이들을 '히브리'(Hebrew), 즉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한다.
왕상 6:1에서 말하는 출애굽한 지 480년만에 솔로문이 성전을 건축하였다고 하는 것은 숫자가 문자그대로의 숫자를 뜻하는 것은 아닌 한 세대(generation; 1세대=40년 혹은 25년)로 계산하여 대략 12대를 뜻한다고 보면, 실제로는 300년이라고 주장하여출애굽 연대를 주전 13세기로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던 즉위 4년은 주전 961년경이므로 출애굽 연대는 주전 13세기 중엽(961+300=1261)가 될 것이다.
고고학적근거는 미국의 글뤼크(Gleuck, 히브리 유니온대학 교수)가 트란스요르단(Transjordan)지역을 발굴한 결과이다. 아브라함 이후 에돔과 모압 땅은 주전 13세기 중엽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설에 의하면 에돔 인구가 밀집하기 시작한 주전 13세기 이후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라암셋 2세의 후계자인 메르넾타의 승전비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메르넾타가 즉위한 5년째, 즉 1220년경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에 있었고 따라서 출애굽은 그 이전이어야 한다.
Ⅲ. 이스라엘의 체류기간 -갈라디아서 3:17을 중심으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 본문 갈 3:17의 '미리 정하신 언약'도 반드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뿐만 아니라 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 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개역. 갈 3:17).
성조(聖祖)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가나안에 거주해 오던 야곱이 요셉의 초청(창 45:16-20)과 하나님의 허락(창 46:1-4)으로 말미암아 집안의 모든 가족들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얼마동안 애굽에 머물렀는가? 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체류한 기간이 몇 년인가? 에 대해서는 215년이란 견해와 430년이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430년 설을 먼저 살펴보고 215년의 입장을 비판한다.
1. 430년 체류설
먼저 갈 3:15에 보면,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작성되고 확정된 '언약'(diaqhvkh, 디아데케) 또는 성약(원어에서는 동일한 단어)에 관련된 것이다. "사백삼십"년 또는 어림잡아 "사백"년(창 15:13; 행 7:6)의 간격이 있다. 분명히 그토록 오랫동안 효력을 유지해온 언약은 성약의 성향을 띠었던 것이며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에 의하여 무효화할 수 없다.
여기서 430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즉, 아브라함의 소명과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창 12:4, 21:5, 25:26, 47:9)사이에는 215년의 간격이 있다. 그런데 이 215년에 애굽에서의 430년(출 12:40)을 더하면 아브라함의 소명으로부터 출애굽까지 그리고 율법을 받은(출 20장) 그 해에 이르기까지는 645년이 된다. 그 씨에 대한 특별한 언급과 더불어 아브라함의 만년에 주신 창 12:1-3에서의 약속의 재확인을, 약속에서 출범에 이르는 기간의 기산점으로 본다면 215년과 645년에서 몇 년이 감해질 수 있지만, 문제는 남는다.
바울은 어떻게 성약의 약속 후 430년만에 율법이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출 12:40에서 이스라엘이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 체류한 기간을 합계 430년이라고 잡고 있는 헬라어 구약성서(LXX, 70인 역, Septuagint)에 의해 오도되어 실책을 범하였다.
둘째, 창세기 12장에 기록되어 있는바,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진 때로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질 때까지는 사실상 꼭 430년의 기간인데 창 15:16; 출 6:15-19 및 민 26:57-59 등의 구절을 참고할 때,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 전체기간 중 21년은 가나인 거류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215년은 애굽에 체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절에서 살펴보는 215년 설을 살펴봄으로써 밝혀질 것이다.
2. 215년 체류설 -70인 역
215년 체류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70인 역(LXX)이다. 즉, 헬라어 구약성서의 출 12:40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43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가나안 땅에서 거주한 215년을 빼면, 애굽에 체류한 기간은 215년이 된다.
그러나 히브리 맛소라 사본(Masoretic Codex)의 출 12:40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출 12:41에서는 "430년을 마치는 그 날에"라고 하여 430년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맛소라의 권위와 수리아 역, 그리고 벨게이트 역 및 영어성경과 개역성경을 믿고 지지한다. 따라서 215년 설에 대한 70인 역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아가서 우리의 논의의 대상은 이것이 아니므로 다만 참고할 따름이다.
3. 215년 체류설 비판 -갈 3:17절
우리의 논점은 이것이다. 즉, 215년 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자들은 갈 3:17절을 논거로 제시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이 하지 못하리라"고 기록하였는데, 여기서 215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리 정하신 언약'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70인 역은 갈 3:17과 조화를 이룬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은 언약은 이삭과 야곱에게 베푸신 약속에서도 동일한 언어로 반복되어 확증되었다. 예를 들어 창 22:18(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과 창 26:4(이삭에게 주신 말씀) 및 창 28:14(야곱에게 주신 말씀)을 비교하면, "땅의 모든 나라들(창 28:14에서는 '족속')이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바울이 이 기간을 계산함에 있어서 야곱에게 한 약속이 확증된 시간으로부터 시내산 율법에 이르는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백 삼십년 (이)후"라는 수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설명의 합리성은 성서자체가 증거하고 있다. 즉, 바울이 말하는 바 나중에 생긴 율법이 그 이전에 이미 체결된 언약을 폐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바울이 70인 역 독자들을 혼란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645년(가나안 215년+애굽430년)이라는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고 본문 갈 3:17에서와 같이 다만 "430년"이라고 간결하게 말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문 갈 3:17에서 '미리 정하신 언약'도 반드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뿐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창 46:1-4)이라고 할 수 있다.
215년 설을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출 1:5에서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라고 밝힌바와 같이 그 짧은 기간에 70명이 거의 200백만 이상(장정만 60만, 출 12:37)으로 인구가 불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430년으로 잡아도 인구증가율은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 아닌가? 결론적으로 215년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 갈 3:17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아브라함에게만 정하신 언약으로 보는 해석상의 오류라고 말할 수 있겠다.
Ⅳ. 맺음
이스라엘의 애굽체류기간의 연대를 확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구약에 나오는 기사들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이웃 아시아의 종족들이 애굽에 입출하는 일은 빈번하였고, 삼각주의 동쪽 접경지대에서 병거(兵車)부대에게 닥친 재난도 애굽으로 보아서는 매우 미미한 사건이었기에 그들의 역사로서는 기록가지 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출애굽사건의 정확한 연대를 확정하는 정보를 이집트측 자료들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상 기원전 13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한 민족이 팔레스티나에 정착했고, 이 사실은 고고학적 자료나 그 당시의 기록들에 의해 입증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알려주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히브리인들의 족장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티나의 새로운 향토로 이주하였을 때부터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만 출애굽의 연대를 기원전 13세기 정도로 추정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성경의 설화들은 같은 시대 역사의 다른 사건들과 대략 들어맞게 나마 관련시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설화자체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주요 문제점을 이루고 있다. 그 문제란 한 마디로 말해서 역사상의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데 이 초기전승들을 어느 정도가지 기초자료로서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회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성경의 본문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면, 다른 편으로는 그것을 기피하는 것도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문제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또한 이스라엘의 애굽체류기간에 대해서 특히 본문 갈 3:17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사백 삼삽년 후"라는 설명의 합리성은 다음과 같이 성서가 확증하고 있기에 이스라엘의 애굽체류기간에 대한 우리의 결론은 성서의 본문에 도달한다. 그것은 성서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거의 모든 경우에 그 세 족장들이 마치 일체인 양, 하나님의 약속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동시에 묶여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사백 삼십년"간 이스라엘이 애굽에 체류하였다는 성서의 본문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신앙인으로서 신학한다는 것은 언제나 성격을 주축으로 모든 신학적 통찰을 이루어야 한다. 다만 구원사의 문제를 세속사의 연대기와 정확무오하게 맞추려고 시도하는 것은 신앙인의 눈과 세속인의 안목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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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구속사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족장들에게 주신 땅과 민족의 약속을 역사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었다.
이 작은 글에서 모든 사료를 적용할 수 없어서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사건, 그 중에서도 사도바울이 전하는 갈라디아인에게 보내는 글 중에서 제3장17절 말씀에 한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뜻있는 분들의 질정을 기다린다.
만나교회 담임 이덕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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