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인내, 방언, 화평
1. 사랑 (love): ἀγάπη → 명사 ἀγάπη와 ἀγάπη와 연결된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롬 5:5, 8; 8:35; 갈 2:20). 또한 이 단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하고 (요 15:10; 17:26),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가져야 할 사랑을 말하기도 합니다 (롬 13:8–10; 갈 5:14). 그러므로 본문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자신을 온전히 주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온전히 드리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2. 희락 (joy): χαρὰ → 바울의 서신들에서 “χαρὰ”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믿음으로부터 비롯되는 마음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 마음의 상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만들어지고 어려움과 시험 속에서도 여전히 가질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을 통해 선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후 6:10; 7:4; 살전 1:6; 5:16; 빌 1:25; 3:1).
3. 화평 (peace): εἰρήνη → 신약 성경에서 “εἰρήνη”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지칭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러한 경우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이 구원 받게 되었을 때에 갖게 되는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롬 5:1; 엡 2:17). “εἰρήνη”는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가진 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조화롭고 사랑하는 관계를 나타냅니다 (롬 14:19; 엡 2:14, 15). 그러므로 본문의 "화평"은 믿는 자들이 갖게 되는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롭고 사랑하는 관계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4. 오래참음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 → “μακροθυμία”는 “어떠한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평온하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는 “화낼 이유가 있는 상황을 화내지 않고 견디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BDAG, 612–13; 골 1:11; 딤후 3:10; 히 6:15; 약 5:8, 10; 고전 13:4; 살전 5:14; 벧후 3:9; 마 18:26, 29). “μακροθυμία”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하여 가지신 태도입니다 (롬 2:4; 9:22; 벧전 3:20; 딤전 1:16; 벧후 3:15).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엡 4:2; 골 3:12; 딤후 4:2).
5. 자비 (kindness/generosity): χρηστότης → 이 단어는 “유익이 되는 자질”을 의미합니다 (BDAG, 1090). 이 단어는 바울 서신에서 불순종한 백성들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롬 2:4; 11:22; 엡 2:7; 딛 3:4).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유익이 되려 애써야 합니다 (고후 6:6; 골 3:12).
6. 양선 (goodness/uprightness): ἀγαθωσύνη → 이 단어는 도덕적 성숙함을 의미합니다 (BDAG, 4).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하는 자들은 도덕적 성숙함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고, 그들의 도덕성으로 비롯된 고상한 삶은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됩니다 (롬 15:14; 엡 5:9; 살후 1:11).
7. 충성 (faithfulness/reliability): πίστις → “πίστις”는 본문에서 “신실함/믿음직함”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BDAG, 818;
cf. 롬 3:3; 딛 2:10; 딤전 6:11; 고전 1:9; 10:13; 고후 1:18).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신뢰할 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실하고 믿음직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8. 온유 (gentleness/humility/considerateness): πραΰτης →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집중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BDAG, 861; 딛 3:2; 골 3:12; 엡 4:2; 딤후 2:25; 벧전 3:16; 갈 6:1). 이러한 태도의 최고의 모델은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마 11:29; 고후 10:1).
9. 절제 (self-control): ἐγκράτεια → 이 단어는 “감정, 충동, 또는 욕망의 통제”를 의미합니다 (BDAG, 274; 행 24:25; 벧후 1:6).
1. 양선과 온유한 마음
오래 참음은 사이좋은 사람 사이에서는 필요가 없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대적하고, 미워하는 그런 사람을 오래 참아 주라는 것이다. 오래 참는 사랑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친절함과 선함이 포함되어있는 사랑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단순히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내하면서 그 미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자기의 가진 것으로 그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가?
- 이덕휴 목사의 / 사랑으로 충만하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아 주지 않으셨다면 이 중에 누가 온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래 참아 주십니다. 이 우주가 창조 된 날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벌레 같은 인간들을 참아 주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셨는데 나는 나를 대적하는 자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궁극적 신앙의 목표는 사랑이다.
고린도전서13: 4~ 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4장 2절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를 알아 들을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방언은 배우지 않은 생소한 언어로써 사적으로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고, 공적으로는 방언을 매개체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영적이며 또한 정신적 건강을 확신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방언에는 사적인 방언과 공적인 방언이 있는데 사적인 은사 방언은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능력이고, 공적인 표적 방언은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통역은 공식적인 방언을 할 때는 필요하지만 사적인 방언을 할 때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이므로 필요하지 않습니다(고전 14장 28절). 방언의 특색은 우리 안에 영을 자유롭게 하며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단이 됩니다. 방언은 우리의 영적이나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주며 예배나 기도나 찬양에서 우리 신앙의 욕구를 채워줍니다.
영의 기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소리로 하나님께 하는 기도요 (고전 14장 2절), 마음의 기도는 이성으로 생각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방언에는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디알렉토” 지방어로 각 나라 방언으로 사도들이 하던 표적 방언 (행 2장 1절-13절)입니다. 둘째는 “헤레라이소 글로사이스” 혀의 소리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은사방언을 말합니다.
2. 방언 은사의 특징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을 하며 배우지 않는 초자연적 언어로 방언을 통해 믿음의 확신이 옵니다. 방언을 오래하면 깊은 기도가 되고 복음전도에도 힘이 생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방언의 은사는 신자의 영성개발을 위해 사용하되 방언을 인위적으로 배우고 해석하는 따위는 삼가하여야 합니다.
성경에는 3가지 목적에 의해서만 사용되었는데 1).표적과 기적의 은사로써 사도들이 메시지를 전하러온 하나님의 종인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사도행전에는 방언할 때마다 이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2).믿지 않는 백성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고전 14장 21절-22절). 3).교회의 예배시에 덕을 세우기 위해 (고전 14장 26절) 사용되었습니다.
이상의 목적을 살펴 지혜롭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어느 기도 원에서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방언이 되지 않을 때에는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할렐루야”를 연속으로 부르짖으면 방언이 터진다고 유혹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방언을 배워서 하는 것으로 착각한데서 오는 실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로 방언을 검사하는 일도 잘못인 것입니다.
다만 영분별의 은사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방언인가 사탄이 주는 방언인가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은사가 성령의 선물인 것을 모르는 자의 소행이요 수많은 은사 중에 방언도 그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은사자의 자기진단
이와같이 방언의 은사는 배우지 않는 생소한 언어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말씀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영적으로 확신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우리 모두 성령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조명을 받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1),나는 방언을 즐겨하며 나의 영이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하고 교통하는 수 단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2),배우지 않는 초자연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3).방언으로 인해 믿음의 확신이 오고 교회와 내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합니 다.
4).방언을 계속할 때 개인신앙이 향상되고 깊은 기도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5).방언을 열심히 할 때 병자를 위한 기도나 복음전도에 대해 힘이 생기는 것 을 느낄수 있습니다.
4. 방언 은사의 분별1).성령의 은사-배우지 않은 생소한 언어로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말씀의 계시를 전하고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는 능력입니다.
2).인간의 재능-인위적인 방법으로 배워서 하는 방언으로써 배워서 하는 방 언은 아무리 해도 기쁨이 없고 영적인 힘이 없으며 오래 계 속할 수 없습니다.
3).사탄의 유사품-혀도 잘 돌아가고 열심히 하나 방언이 단조롭고 듣는 사 람의 귀에 거부반응을 주며 소름이 끼치는 외마디, 비수 같이 날카로운 비명이 연속됩니다.
결 론 ; 이제 말씀을 정리해 드립니다. 이와같이 방언의 은사는 자연적이 아닌 초자연적인, 영적인 혀의 언어로써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으며 , 믿음의 확신이 오고, 깊은 기도의 단계까지 들어가며 복음 전도에 큰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설교(학)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자의 길-주의 길을 가라 (0) | 2018.09.23 |
---|---|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 (0) | 2018.08.26 |
새 하늘과 새 땅이 너와 함께 있을지어다 (0) | 2018.06.17 |
시험을 이기는 방법 (0) | 2018.06.02 |
[부활주일] 부활의 산 증인이 되라 (요 11:25) (0) | 2018.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