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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하나님의 의 -공정

by 이덕휴-dhleepaul 2019. 1. 20.

미쉬파트와 체다카
하나님 보시기에 공정하고 옳은 일

자선의 로마어 어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돈, 음식, 의복 또는 시간을 기부하는 것이다.
자선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지만, 이 단어의 어원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영어 단어 “charity”는 “소중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단어 caritas에서 유래했다.
이는 자신보다 불행한 입장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선의 성경적 어근

히브리어 성경 원문은 자선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선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צדקה (발음: 체다카)는 “공정” 혹은 “정의”를 의미하는 צדק (발음: 체덱)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뜻은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하는 것이야 말로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주는 일은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의 도덕률 이해하기

신16: 20 말씀은 우리에게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צֶדֶק צֶדֶק, תִּרְדֹּף)고 명한다.

레 19:15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레 19:15 "'Do not pervert justice;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great, but judge your neighbor fairly.

"재판할 ( בַּמִּשְׁפָּ֔ט) 때에" 라고 하는 단어가 바로 미쉬파트이다.
"공정하게(בְּצֶ֖דֶק  ) 하여라 " 라고 할 때 공정하게가 바로 체다카이다.
미쉬파트와 체다카는 공의와 정의라는 단어로 쌍을 이루어 사용된다.

미쉬파트재판을 뜻한다.
샤파트에서 유래되었으며 샤파트는 심판하다,저주하다,다스리다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다.

1. 판단, 판결,의견
  1) 재판행위 레19:15, 35, 신1:17
  2) 재판장소 욥 9:32, 22:4,시143:2
  3) 법정 소송  민27:5, 신 10:18, 욥 13:18 , 23:4 , 시9:5
  4) 선고, 판결문   신21:22, 왕상 3:28, 20:40, 왕하 25:6, 시 17:2, 19:10, 119:75,  렘1:16, 4:12,  39:5
  5) 실수, 잘못, 죄, 범죄,결점,책임

2. 정당한 것, 합법적인 것, 법에 따른 것, 권리, 권한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가 미쉬파트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재판"이라는 행위와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체다카( צֶ֫דֶק  )는 그럼 무엇인가?
1. 올바르다, 의롭다  시 51:6, 시 19:10
2. 정당한 이유를 가지다   욥9:15,20
3. 의로운

시 89:14  정의(체다카)와 공정(미쉬파트)이 주님의 보좌를 받들고, 사랑과 신실이 주님을 시중들며 앞장서 간다.
시 89:14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the foundation of your throne; love and faithfulness go before you.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바로 이 체다카와 미쉬파트인 것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정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이 정의와 공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짧은 생각이나 이기적인 판단으로 그것의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며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그에게 말씀해 주신다.
창 18: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 18:19 For I have chosen him, so that he will direct his children and his household after him to keep the way of the LORD by doing what is right and just, so that the LORD will bring about for Abraham what he has promised him."

때로는 체다카를 justice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미쉬파트를 justice체다카를 right으로 영어는 번역했다.

옳은 일... 체다카
바른 일... 미쉬파트

이 옳은 일 즉 체다카를 잘 설명하는 구절은 바로 처음 설명했던 레위기 19장에 나온다.
레위기 19장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레 19:9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레 19:10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무엇을 설명하는가?
소외계층을 위해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살았을까?
정말 그대로 잘 지켜서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국가가 되었을까?
아니면 악명 높다고 말할 정도로 퍼져있는 돈 관리가 뛰어난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대로 고약하게 굴었을까?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보면 조금 이나마 그 정신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애쓴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이 말하는 자선에 대한 개념을 보면 이해가 된다.

유대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부르는 체다카이다. 현대의 유대인들이 말하는 체다카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기부금을 의미한다.
어려서 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서도 기부금을 내는 것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에 드는 빌게이츠가 바로 그 예이다. 
유대인인 그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구어서 번 돈 중에서 기부한 돈으로 재단을 세웠다.
그것이 빌앤드멀린다 파운데이션이다.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일 그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 또는 소외된 사람을 돕는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것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그것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뻐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 고백한 욥의 말과도 같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이야 말로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일인 것이다.

이처럼 레위기 19장에 적혀있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에 녹아들어가서 구현되는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으로 그 정신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어떻게 부정되고 무시되었는지 볼 수 있다.
모레셋의  미가가 북이스라엘의 발달하고 부유한 수도 사마리아에 가서 전한 메세지가 미가서다.

  미 6: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는 그 땅에 공의가 실천되어야 함을 힘써 전했다.
그 땅에서 부정된 것 중의 하나가 우선 공의요(미쉬파트)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연히 행하기를 바랬던 체다카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8절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을 어떤 영역에서 부정이 행해졌는지를 부연 설명한다.

미 6:10 악한 자의 집에는, 속여서 모은 보물이 있다. 가짜 되를 쓴 그들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미 6:11 틀리는 저울과 추로 속인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미 6:12 도성에 사는 부자들은 폭력배들이다. 백성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들의 혀는 속이는 말만 한다.
미 6:1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내린다. 너희가 망하는 것은, 너희가 지은 죄 때문이다.

그들은 공정의 기준을 왜곡 시켜서 속여서 수입을 거두어들였다. 그로 인해 망해야만 했다.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암 5:7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어찌 공의가 쓰디쓴 소태가 되어야 했던가?
정의가 왜 땅바닥에 팽개쳐져야 했던가?

이런 타락한 모습은 바로 잘못된 그들의 신앙에 그 뿌리가 있었다. 아모스나 미가는 바로 그런점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것이다.

  암 5: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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