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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神學資料

칭의론의 근거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by 이덕휴-dhleepaul 201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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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1999/10/05 (01:01)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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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에 있어서의 칭의론의 근거와 의미
종교개혁에 있어서의 칭의론의 근거와 의미  


칭의론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성서적 근거에 대하여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칭의"라는 말은 우연하게 신학론의 중심주제가 되었다. 이 말과 가장 가까운 것은 "죄의 용서"이다.

칭의는 죄의 용서처럼 "부정의 부정"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나중된 자가 먼저된 자로 되는 정반대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성서적 증언을 망라하여 연구하는 것은 본서의 성격상 불가능하나 그 대체적인 윤곽을 소개함으로써 칭의의 성서적 기초를 신학적으로 논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의 바리새적 유대교에 있어서 인간현존재의 근본문제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에 있었다. 여기서는 의인의 인격이 문제되었으나 기독교에 있어서는 법률적인 의라는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법률적 의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삶의 의미문제로 바뀌었고 또 다른 편에서는 사회 정치적 정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특히 바울에게 있어서는 칭의가 중심적 문제로 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연관해서 그 의미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1)

1) 칭의론의 성서적 뿌리는 첫째로 바울의 삶과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그리스도의 박해자가 그리스도의 선교사로 변신한 체험과 관계가 있다(행 9 : 1-9; 갈 1: 15). 여기서는 단순히 용서가 문제가 아니라 선지자로 부르심 받는다는 구약의 사례처럼 사도로 부르심 받게 된 급격한 변신이 중요하다. 이 변신은 나중된 자가 먼저된 자로 바뀌는 극단적 역설이다. 이것은 죄의 사면만이 아니라 새것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부르심 받음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바울의 칭의론의 이러한 특징은 바울의 전기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환경적 조건과 유전적 조건은 모두 은사로 받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실존의 수용성을 감안할 때 아무 육체라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 부르심받은 소명의식과 수용서의 지식은 사람 앞과 하느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외면적인 고소와 고발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면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면제가 궁극적으로 의롭게 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성서에서는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 : 4)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람 앞에서의 의와 하느님 앞에서의 의가 일치하지 않고 배치될 수 있다.

2) 바울사도는 유대교의 제의법(Kultgesetz)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폐지되었다고 선언하였으나(갈 1 : 7: 5 : 1 ff. ; 비교 : 행 15 : 1, 24) 도덕법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는 윤리와 의무를 중히 여기고 선악의 절대적 대립을 전제하였다. 그러난 그에게는 도덕법도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하느님께 상급을 청구하고 이방인에 대한 우선권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업적과 자기구원의 길로서 결국 하느님의 의에 분참하는 데는 아무소용도 없는 도구가 될 뿐이다. 바울은 도덕과 윤리에 대하여 제의법과는 달리 긍정하기는 했으나 하느님 앞에서 의를 얻는 방법으로써는 거부하였다. 그것은 유대인의 토라에 대한 자부심을 거절한 것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등시한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이방선교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우선권이 상대화되듯이 죄인에 대한 의인은 우선권도 상대화되었다.

의인도 정확히 율법을 성취하지 못한다. 의인도 하느님 앞에서는 죄인이다.(롬 3 : 10).


3) 칭의론은 의인과 죄인을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한계를 인간적 표준에 따라 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바리새인과 세리를 대비하였다. 또한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도 하였다(마 20 : 16). 이러한 인간적 표준의 전환은 임의적이거나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신적인 표준은 인간적인 것과 다르고 또한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표준임을 의미한다.


4) 누가 불경한 자인가?

불경한 자는 단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나 잃어버린 자까지 의미한다. 지극히 작은 자와 불쌍한 사람도 불경한 자에 속한다. 앙화를 당한 욥도 불경한 자이다. 욥이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고 친구들의 질문도 물리침을 당했을 때 그는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형식적인 올라름과 그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부심, 독자적 인격, 건전한 본성적 반응, 어느 정도의 자기동경, 현실적 진리에 대한 열망 등에 대하여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욥은 친구들이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의 의보다는 하느님 앞에서의 의를 소원하였다. 흔히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경건한 자들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하느님 앞에서의 의는 비그리스도인 혹은 익명적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학 것이다. 무엇이나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즉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묻구리, 푸닥거리 뿐 아니라 각종 악덕과 악행이 있을 수 있다. 명시되지는 않았더라도 그리스도는 은밀한 방법으로 비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역사하신다. 우리는 욥의 사례에서 그러한 칭의의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욥은 유대인도 아니었고 앙화를 당한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의인도 아니었으나 하느님은 욥을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5) 칭의의 활동성은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적 체험 속에서도 일어난다. 일반적 인간체험에 비추어 보면 칭의론은 그 체험에 대한 일종의 주해(註解)이다. 인생의 길은 흔히 자신의 뜻과 노력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모든 것이 은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자체상 의롭지 못한 사람의 칭의에는 도덕적으로 염려스러운 점이 구체화된다. 구약성서는 이점에서 칭의론에 공헌할 수 있는 사상을 제공해 준다.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나 혹은 개인적 삶에 있어서나 은혜와 공로, 선택과 자격은 결국 일치되어 있지 않다. 특히 지혜문학은 개인의 삶에 대하여 아주 세속적이고 순수하게 지혜에 입각하여 말한다. 가령 바로왕 앞에 선 두 죄인의 운명은 대조적이다.(창 40 :1). 떡을 굽는 자의 우두머리는 처형당하나 포도주 담당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러한 불평 등의 신비를 개혁파 신학자들은 예정설과 결부시켰다. 바울도 토기장이의 예를 가지고 인간의 운명을 설명하였다. 구약성서의 관점으로 볼 떼 이것은 율법의 행위없이 이루어지는 칭의다. 루터의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 이라는 사상도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은혜로 사는 삶이라는 칭의의 원리는 인류전체에게도 해당된다. 특히 노아홍수 이후 하느님이 만물을 다시 소생하게 하시고 인류를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데서 나타난다(창8 : 21f).


6) 인간실존에 일어나는 은혜로운 것이 칭의론의 가장 일반적인 성서적 뿌리라는 사상은 칭의론의 성서적 기초를 논하는 것 이상의 몇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느님 앞에서의 죄책만을 인간의 문제라고 부각시킨 종래의 칭의론과는 달리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노아 계약, 시편의 경건 및 모세의 율법 전체에 나타난 인생의 문제, 마태복음 6장 35절 이하의 말씀이 보여 주는 인생의 근심과 걱정등은 칭의론의 확장된 영역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미 루돌프 불트만도 그의 『신약성서와 신화론』(Neues testament und Mythgologie, 1941)에서 죄책의 염려에서 실존의 염려로 전이시켜서 칭의론을 다루었다. 그는 불안으로서의 염려와 이생의 자랑을 거부하고, 인생을 선행과 염려와 자랑을 통하여 보장하려는 불신앙이나 혹은 신뢰와 신앙으로 사는 삶이냐를 결단하도록 촉구하였다. 본래적인 죄는 인생을 창조주의 선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창출해 내는 줄로 착각하는 망상에 있다. 하느님 앞에서의 죄책을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적절한 인간들(non propriis viribus)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칭의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 이처럼 확장된 칭의의 이해는 분명히 죄론적 협소화를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계기를 마련해 준다.


7) "내가 주님께만 죄를 지었나이다."라는 시편의 말씀의 근본의도는 결코 인간관계에서의 죄를 배제하지 않고 도리어 포괄하고 있다. 칭의론이 신학의 전체주제가 되려면, 죄의 용서가 인간상호간의 문제론도 이해되어야 한다(마 18 : 2,ff.). 이것은 주님의 기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된다(마 6 : 12). 따라서 이제까지 오해되어 오던 루터의 법정적 칭의(iustificatio forensis)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성화(sanctificatio)와 갱신(renovatio)이 문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비로소 기독교윤리의 기초가 발련될 수 있다. 윤리적 차원이 무시된 칭의론은 결국 제의적 종교 내지 내면의 신비주의로 협소화 될 수밖에 없고 개인주의적 행복론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8) 칭의론의 성서적 뿌리로 돌아간다면 바울의 칭의론조차도 종교개혁 당시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의 쟁점이 되었던 예정설과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얻을 수 있있게 된다. 그러니까 칭의론의 대칭을 성화론만이 아니라 예정설까지 포괄하게 된다. 예정설에서는 인간의 죄책문제보다는 오히려 선택문제에 더 치중한다. 예정설은 한계와 약점보다는 장점과 재능과 기회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칭의론과 예정설, 이 두 가르침에 공통된 점은 인간의 하느님 앞에서 맺는 관계가 은혜의 관계이지 법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또한 공통적인 것은 하느님의 주권의 관한 의식, 게다가 인간실존의 수용성에 관한 의식이다. 칭의론에 있어서 죄인과 의인의 한계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 못하지 않은 정도로 예정설로 선택받은 자들의 범위를 언제나 다시 변경시킨다. 사도바울은 아예 이스라엘의 선택조차 문제삼았다. 즉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모두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아니다(롬 9 : 6ff). 선택받은 자들의 범위를 인간적인 제도나 혈연관계에 의거하여 확정지을 수 없다. 이점에 있어서 칭의론과 예정설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칭의론의 성서적 기초뿐 아니라 이제 루터의 칭의론의 기초를 연구함으로써 이 교리의 깊은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의 칭의론에 대하여 새롭게 숙고할 때 하나의 해방적 사건이 논의될 수 있으나, 그 해방의 대상이 종교교육과 교회가 인위적으로 각성시킨 불안이라면, 노예화라는 신앙을 해방하는 신앙으로 극복하기보다는 차라리 종교적 신앙이 없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를 질문해 볼 만하다. 마르틴 루터는 고해성사의 면제를 의문시하고 자신을 양심적으로 검증한 끝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결코 교회가 직제에 따라 고해성사를 통하여 명렬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수도사 루터의 종교적 불안과 의심을 제거해 주는데 공헌한 사람은 여러 개의 수도원을 관장하던 시찰관 쉬타우피츠(Docktor Stauptz)였다. 그는 루터로 하여금 엄위로우신 하느님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느님께로 나가게 하였고 예수의 기적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너를 위해 흘린피"에 대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충족설이 항상 행방하는 말씀이라는 뜻은 아니다. 루터는 후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상을 봄으로써 해방을 얻었다고도 하였다.(2)

루터가 칭의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가 "하느님의 의"(justitia Dei)를 깨닫게 된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이 1513년 내지 1515년의 첫 번째 시편강론으로 소급되는지 혹은 루터자신의 증언대로 1518년 둘째번 시편강론때 그에게 일어난 사건인지 논의의 여지가 많다. 좌우간 루터는 시편 31 : 2( 및 71 : 23)에 나오는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in justitia tua libera me)라는 구절과 관련해서 하느님의 의를 문제삼았다. 세계 심판자이신 하느님은 여기서 인간에게 칭의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라고 요구하시는가 혹은 이 푠현이 혹시라도 "선과 은혜"를 표시하여 그 행당구절을 "주의 선과 은혜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읽을 수 있는가를 질문하던 루터는 바울서신을 연구하면서 하느님의 의를 깨닫게 되었다.(특히 롬 3 : 28 과 1 : 17에서 "의"를 깨닫게 됨). 루터는 1545년에 라틴어 문서들과 함께 발표한 「빗텐베르크 전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깨달음의 체험을 술회하였다.


나는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느라고 꽤나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그것에 대하여 냉정한 마음으로 읽을 수 없었다. '복음에는 하느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1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하느님의 의'라는 어휘를 미워하였다. 나는 모든 박사들의 관례와 관습에 따라 하느님은 의로우셔서 죄인과 불의한 자를 벌주신다는 소위 형식적 혹은 능동적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배웠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도사로서 아무리 흠이 없게 살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죄인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내 자신을 감지하고 내가 충족시키는 보상으로 그분이 진정되었다고 할 수 없어서 나는 의로우시고 죄인을 벌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하느님의 긍휼하심으로 밤낮 골똘히 생각하다가 ;기록된 바 복음에는 하느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들의 연결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의인이 하느님의 의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즉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eam qua iustus dono dei vivit)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의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의 즉, 수동적 의가 나타나서 그 의로서 하느님은 긍휼하심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기록된 대로 신앙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는 전적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느꼈고 열린 문을 통하여 자신이 낙원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성경전체의 얼굴이 즉시 다르게 보였다. 나는 평소에 기억하고 있던 성경을 죽 따라가면서 비슷한 어휘들을 떠올렸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사역 즉 '하느님의 사역'(opus dei) 하느님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시는 지혜, 즉 '하느님의 지혜(sapientia dei), '하느님의 힘'(fortiudo dei), '하느님의 구원', '하느님의 영광'을 떠올렸다.

내가 전에 '하느님의 의'라는 어휘가 매우 미웠던 것만큼 내가 지금 숫제 나에게 달콤하게 된 이 어휘를 찬양하는 사랑도 그만큼 컸다.(3)

종교개혁의 칭의론의 기초는 하느님의 벌주시는 의(fustitia activa, distributiva-qua deus justus et peccatores injustosque punit)대신에 하느님의 창조적인 의(justitia passiva-qua nos deus misericors justificat per fidem)가 하느님의 본래적인 의로 등장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의롭다 한다"(rechtfertigen)는 표현은 자체상 유대적 바울적 용어에서 유래하고 "하느님 앞에서의 의"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stleo의 산물이지만 그 표현은 인간의 하느님관계, 즉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대립이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신비적 혹은 마술적 즉물적 관계이기보다는 오히려 유사법률적 관계임을 자 나타내 준다는 점이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빗텐베르크 성곽교회 정문에 내붙였던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불붙이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루터는 사상을 내면화, 심화, 윤리화로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가장 큰 반응을 일츠킨 초미의 관심사는 죄의 용서의 권세가 교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교회의 고해부정과 처벌의 부과와 경감은 죽은 자들의 나라에까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교황은 죽은 자에게 벌을 내릴 수 없듯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지 못한다. 교회의 모든 법적 관할권은 산 자들에게만 행당된다. 또한 면제부 없이 모든 사람은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하여 교황청의 이권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루터의 「95개조 논제」가 신학적 논의를 위한 기초였다면「그리스도인의 자유」(1520)는 성직자들의 고해제도 밖에서도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널리 공개적 대중에게 증거함으로써 하느님의 의개념을 라틴어용법에 따라 능동적 의와 수동적 의로 구별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온갖 위선적인 종교적 제의나 선행자체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런 것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고자 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의 입장이 주권주의는 자칫하면 자의식의 관념론적 창조력이나 혹은 스토아적·관념론적 영혼의 자기만족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신플라톤주위적 삶의 철학이 권하는 영혼의 자율성이나 평안이 아니라 모험과 참여에의 동기유발이며 이웃을 섬기라는 요구를 의미한다.

모든 교회법상의 불의가 하느님에게 거역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루터는 또한 인간적 정의가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하필 종교적 제의에 있어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질서에서도 그러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나타나는 재면성은 사회적 책임을 피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외부세계에 개입하기 위한 지렛대이다. 영혼의 자족(自足)은 겉사람을 통하여 속사람을 강요하는 강제조치에 대한 부정이다. 영혼의 자족은 내면성을 가동하여 외적인 것을 함께 형성할 수 있게 한다.

종교개혁의 다른 기초 문서들 , 즉 「선행에 관한 설교」(1520), 「독일귀족에게 보내는 회람서신」(1520) 및 「교회의 바벨론 포로」(1520)에서는 기독교의 자유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내면성과는 다른 표현들, 즉 성숙, 자립, 책임, 물질세계에의 관여 등이 논의되고 있다. 가령「선행에 관한 설교」에서 행위와 신앙은 아주 다른 연관성에서 이해되고 있다. 행위는 세상의 부패를 막도록 십계명이 명하는 저항을 의미한다. 즉 진리와 정의가 폭행과 고통을 당할 때 모든 불의에 대하여 저항하는 행위는 신앙의 모험에 관한 것이다.(4) 이것은 흔히 잘 알려진 루터의 이왕국설과는 다른 입장이다. 신뢰와 신앙이 있는 곳에서는 용기있고 반항적이고 겁내지 않는 심장으로 진리편에 서서 교황이나 군주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5)

루터의 자유론논문은 이중적 표어를 내세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 위에 있는 자유로운 주인이고 아무에게나 복속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섬기는 종이고 누구에게나 복속되어 있다."(6) 둘째 명제의 목표는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봉사하려는 데 있다. 선행의 필연성은 나무와 열매의 경우처럼 결과적(Konsekutiv)인 것이지 조건적(Konditionnal)인 것이 아니다.

루터의 칭의론에서 볼 때 복음의 설교를 위하여 생기는 질문은 좁은 의미의 복음, 즉 죄의 용서 내지 염려의 면제 이외에 율법과 계명도 설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루터의 칭의론의 오해 때문에 당시의 율법은 교회의 설교주제가 될 수 없다고하여 율법을 부인하는 신학적인 극단화가 생겼고 루터파 지역 안에서는 윤리의 타락과 설교의 영향력 상실이 나타났다. 아그리콜라(J.Agricola)와 같은 반율법주의자들(Antionomer)은 율법이 칭의론의 속하지 않고 복음은 영혼에다 설교되어야 할 것이며 십계명(Decalogus)은 시청(Rathaus)에다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양심과 도덕의 영역을 떠나서 강압없는 인간지도라는 유토피아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율법은 복음과의 상관관계에서만 기독교진리의 새로운 법(nova lex)이 되는 것이지, 반율법주의자들처럼 율법을 예수의 복음에서 떼어내어 추상적인 몽학선생(갈3 : 24)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와 신앙이 온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몽학선생밑에 있지 않으므로, 종교법과 제의 규정에 얽매이지도 않고 강제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율법은 루터에게 있어서 복음을 깨닫게 할 뿐이다.

종교개혁신학에 있어서 전형적인 루터파의 칭의론은 특별히「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1530)과「변증론」(1530) 및 「일치신조」(1677)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중세기 카톨릭 교회뿐아니라 교회생활에서 모든 것을 '내적인 빛'에 의존하고 국가를 폐지하려던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가진 열광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특히 카톨릭 교회의 미신과 교권주의(Klerikalismus)는 천주교에 대한 중요한 반대이유가 되었다.

첫째로 경건한 미신을 반대한 이유는 결코 이성의 논증이나 현대적 세계상(Weltbild)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성자들에게 불러 아뢰기와 성상숭배와 텟첼(J. Tetzel)의 면죄부선전 등의 경건활동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스도의 사역만이 우리의 죄책을 대속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로사리오기도, 성자숭배, 순례, 금식 빛 각종 경건활동을 용납하지 않는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20조). 그런데 종교개혁당시의 종교관행으로 보면 이런 것들을 금지하는 것은 곧 무수한 사제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만일 고인을 위한 미사, 개인미사 및 출석치도 않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사람을 위한 미사가 부인된다면 미사드리는 사제도 필요치 않게 된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24조).

둘째로 교권주의에 반대한 이유는 교회가 영혼을 지배하기 위하여 경건한 미신을 주장했으나 이것을 다시 제후선출과 황제선출에까지 개입시켜 교회가 군주의 권세를 행사하려 하고 심지어는 황제까지 좌지우지하기 때분이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28조 및 「변증서」제7조). 교권주의문제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문제이지만 그리스도의 공로와 경쟁하는 경건한 미신은 오늘낭에도 문제거리가 된다.

칭의론과 관련하여 고백성사에 대한 문제를「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에서 형식적으로 취급하기는 하나 "충족"(satisfactiones)의 문제를 다루는 바 회개의 참회(contritio)와 고해(confessio)를 삭제하였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고해성사 자체가 폐기된 것이다. 즉 모든 범과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non sit necessaria omniun delectorun enuntiatio)는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교회는 죄를 낱낱이 빠짐없이 고백하기를 원한다. 반면에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인간이 개개의 죄들에 대하여 침묵할 권리를 인정한다. 이것은 분명히 획기적인 것이다.(7) 이것은 근세의 양심적 자유의 시작에 못하지 않은 조치이다. 따라서 고해와 고백이 기능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완전히 말소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고해강요와 교회통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의 근세적 요소를 의미한다.

그 고백이 지닌 둘째 근세적 요소는 수도원제를 부인하고 세속세계를 평가절상한 데 있다. 즉 정상적인 직업노동, 국가 및 국가의 기구들, 결혼, 개인이 소유와 재산을 평가절상한 것이 거기에 속한다. 즉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160조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의 관리나 제후직이난 재판장의 직무를 맡더라도 죄가 되지 않고 황제의 벌과 기타 다른 법률에 따라 재판하고 권리를 주장해도 좋고, 행악자들을 칼로 처벌하고 의로운 전쟁을 하고 싸우고 매매하고 맹세한 것을 실행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결혼하는 것 등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다만 카톨릭정부가 프로테스트개혁을 처벌하는 것은 차안에 부재한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2조"원죄조항"(De peccato origininis)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개별적인 자범죄들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적 근본자세 전체가 하느님 앞에서 죄책과 죄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며 색욕을 가지고 있는(sine metu Dei, sine fiducia erga Deum dt cum concupiscintia)존재를 의미한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대한 천주교측의 「논박서」(Confutatio, 1530)와 트리엔트공의회는 이러한 사상을 배격하고 인간의 본성적 존재를 하느님께 대하여 어느 정도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할 뿐아니라 인간본성을 아프리오리하게 하느님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맬랑히톤의「변증서」(Apologie. 1530)는 정확하게 그 뜻을 설명하기를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는 것은 "제1계명"을 엄수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이지 개별적인 계명을 지키는 데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제4조). 말하자면 "제1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른 계명들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4조 "칭의조항"(De justificatione)은 반종교개혁이전의 천주교의 구원론에 대하여 차별화를 분명히 하였다. 제2조가 비교적 이론적으로 보이고 그 입장이 미확정적인 반면에 제4조는 트리엔트 이전의 전통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구별을 시작하였다. 즉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힘이나 공적이나 혹은 활동으로 의롭게 할 수 없다(homines non possint justificari coram Deo propriis viribus, meritis aut operibus). 이렇게 해서 당시 교회적 삶의 표현들 전체의 절반 이상이 탈락되었다. 면죄부와 그것 때문에 생긴 미신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수도원제도가 탈락되고 게다가 수많은 제의적, 성례전적 및 "금욕적" 행위들이 탈락 되었다. 동시에 교회적 제의집례자들의 정당한 존재이유가 없어지고 본래적인 교회직분과 고위성직을 가진 사람들의 신용도와 권위가 상당히 실추되었다. 교회는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유효하기는 하나 더 이상 구속력은 없고, 교회가 도움이 되기는 하나 더 이상 구원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28조 마지막의 교권조하(De potestate ecclesiastica)은 주교의 권한에 관한 것인데, 이 조항의 경향은 교회를 통한 세속권력의 행사를 가능적, 대리적 등급 내지 인간적인 법에 따라 수행해야 할 정도의 등급으로 격하시켰다.

루터파의 칭의론은 영혼을 괴롭히거나 사후파안의 운명에 대하여 불안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비켜서 하느님과 직접 화해하려고 하는 미신에 반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루터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도덕설교가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하여도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충족시킨 그리스도(Chritus, qui sua morte pronobis peccatis satisecfecit)를 강조하였다. 칭의론은 기독교 신앙의 고유한, 특별한 그리고 특수한 성격을 드러내 준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정통적 형식의 기독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까닭은 정통교리 때문에가 아니라 행방하는 소식의 기초와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 제4조와 「변증서」 제4조에 거론된 또 다른 문제는 「일치신조」(Konkordienformel, 1577)의 칭의론과 관련하여 법정적 칭의(forensische Rechtfertigung)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좀더 상세하게 고찰하지 못하고 다만 "이 대목에서 법정적 갈래에 따라 참으로 의롭다하는 것은 피고를 사면하고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생소한 의 즉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Iustificare verohoc loco forensi consuetudine significat reum absolvere et pronuntiare iustum, sed propter alienam iustitiam, videlicet Christ…"(8)라는 조항을 소개할 뿐이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 제6조 "새로운 순종"(De nova oboedientia)이라는 조항에서는 "사람이 선행을 해야한다. "(quod oporteat bona opera … facere)고 강조하나 그것은 "하느님이 명하신 선행"(bona opera mandata a Deo)에 국한된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멋대로 명하는 행위들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서 해야 한다고 하는 것(debeat, oporteat)은 결과적 필연성이지 조건적 필연성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선행에 대한 신뢰를 배제한다.

반율법주의자 아그리콜라(J. Agricola)는 구약성서에 관련된 회개의 설교가 본래적인 복음의 설교에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맬랑히톤의 「검열조항」(Visitationsartikel, 1527)에 나타난 견해를 반대하였다. 아우그스부르크 제국회의시에는 아직 율법의 제3용법(tertiususus legis)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나 "새로운 순종"(nobaoboedientia)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예비하였고 이것은 후에 「일치신조」제6조에서 그리스도인의 중세기까지 율법설교를 단지 연장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 이상의 것을 주장한다. 즉 그것은 중생에 있어서도 여전히 타당한 율법(lex etiam in renatis)이다. 새로운 순종은 비중생자나 비그리스도인 에게도 타당한 율법의 제1용법(primus usus legis)으로서의 율법보다 더 큰, 더 새로운 그리고 특수하게 기독교적인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개혁파 측에서는 이 길을 특별한 기독교 도덕으로 발전시켰으나 루터파 측에서는 경건주의적 율법사상의 충동으로 폭발하였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의 50주년(1580)을 기념하여 작성된「일치신조」(1577)는 저 신앙고백에 대한 주해이기를 자처한 신조로써 부분적으로는 그동안에 생긴 전적으로 새롭고 종류가 다 문제를 다루었다.「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이나 「변증서」가 밖을 향한 것인데 반하여「잎치신조」는 개신교 내의 분쟁을 조정려던 것이다. 따라서 후자가 더 이론적 학술적으로 되어 있다. 특히 칭의론과 관련해서는 그 신조의 제3조에서 제6조까지에 몇가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제3조는 "하느님 앞에서의 신앙의 의"(De justtitia fidei coram Deo)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오지안더(A. Osiander)의 효과적(effective)내지 고유적(inhaesive)칭의론에 반대하여 법정적(Forensische) 내지 전가적(imputative)칭의론을 주장한다. 물론「일치신조」가 오지안더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지만, 좌우양극단의 적수를 사이에 조정하는 중용적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다. 비록 이 신조에서 법정적 칭의와 효과적 칭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나 내용적으로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실은 릿츨(A. Ritschl)이 이 내용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이라는 칸트식 표현을 사용하여 나타내려 했으나 적적하지 못하다. 이 신조에서는 이 문제를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성을 따라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이지 그분의 인성을 따라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칭의론에 있어서 대립되는 내용은 좌파와 우파의 대립 같은 것이 아니다. 선언적 성격을 가진 법정적 칭의는 인간의 모든 공로와 행위에 대한 불안을 철저하게 제거해 버린다. 반면에 반대측에서 제기한 문제는 인간이 성령을 통하여 부르심받은 사랑과 덕과 행위로 정말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이었다. 오지안더의 칭의론은 이러한 것으로 간주되고 거부되었다.(9) 법정적 칭의론에 있어 의롭다하심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비록 그들이 본성상 여전히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인이고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죄인이지만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멜랑히톤(Ph. Melanchton)의 선언적 법정적 칭의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덤에까지" 죄가 남아있다는 것을 거리끼게 생각하였다. 오지안더(A. Osiander)는 중생한 사람이 사실상 새로운 존재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인류 전체를 위한 일종의 고차적 발전과 진화마저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발전과 진화를 시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지 단순히 아담의 타락 때문에 하느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하였다.

반면에 루터파 정통주의가 내세운 교의학적 공식은 "의롭다하심은 여기서 불경한 자를 의인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도리어 법정적 관행대로 의인임을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 칭의는 인간에게 실재적이고 내면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Justificari Significat hic non ex impio justum effici, sed usu fornst justum pronuntiare… Justtificatio non importat realem et intrisecam homins mutationem)라고 되어 있다. 칭의는 죄를 전가하지 않고 사면하는 것이며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면은 매우 형식적인 것일 뿐이다. 사실에 있어서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선 유사법률적인 지위만이 변할 뿐이다. 그것은 제3자가 대신 빚을 갚아 주어서 채무자가 체권자에게 새로운 지위로 관계맺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이러한 법정적 칭의에 대하여 오지안더와 그밖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즉 칭의는 인간 자신에게서도 어떤 긍정적인 것이어야지, 단지 하느님과의 관해서만 인간에게 긍정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새로운 능력이 활동하여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고 그 새로운 인간은 새로운 삶 속에 행하는 자라야 한다.(롬 6 : 4).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같이 효과적 칭의를 강조하는 것을 구원의 조건을 위한 선행의 요구로만 생각했을 뿐이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라는 신비주의적 범주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오지안더의 관심사는 무시되고 「일치신조」의 법정적 칭의론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효과적 칭의의 주창자인 오지안더의 입장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동적 순종(oboedientia passiva)인 십자가의 죽음에만 집중시킨 안셀름의 충족기독론의 도신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의 구속(救贖)이라는 관념세계에서 칭의를 이해하려한데 있다. 희생기독론과 대리기독론의 바탕에서 보면 칭의론은 단지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는 반대론으로서의 투쟁론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패권세로부터의 구속으로, 죄와 죽음과 마귀의 극복으로 보고 새로운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고침받은 인간으로 이해하는 기독론에서 칭의론을 볼 때는 칭의를 결코 법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효과적 칭의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오지안더의 입장이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적으로 십자가 사건에만 집중시키고 아담의 타락에 대한 대속으로만 보는 안셀름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의 포괄적인 구원의 사건이 열렸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 포괄적인 구원사건은 이를테면 예수의 십자가처형에서 첫 단계가 시작되었으나 그것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어울리 정에 이르도록 인간을 인도한다는 것이다. 인간본성의 신성화(神性化)가 그 발전의 목표인 셈이다. 비록 죄의 타락이 없었다고 해도 그리스도는 인간의 신성화를 위하여 인간이 되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지안더가 어느 정도 공식화해서 주장했던 바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내주"(ingabitatio Christi in nobis)라는 사상은 순전한 신비주의 이상의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칭의와 성화의 문제에 대한 토착화 신학의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지 변죽을 울리는 정도의 논의에 만족할 수밖에 없고 다음에 좀 더 상세한 연구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예정설과의 관계를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오지안더의 효과적 칭의사상이 칼빈주의에 있어서는 성화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칭의 이후에 중생한 자는 성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성화를 단지 칭의에 부수하느 후속과정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칼빈의 이중예정설 이해에 있어서 제기된 소위 "타락전예정설"(Supralapsarianismus)에 어울리지 못한다. 전 예정설의 근본동기는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앞선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데 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긴조치로 설정한 시적인 예정이라는 의미로 이중예정설을 이해한 아르미니우스(J. Arminius)의 "타락후예정설"(Infralapsarianismus)과는 달리 타락전예정설은 성화 자체를 인간창조의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존 웨슬리도 역시 타락전예정설자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웨슬리를 아르미니우스주의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비록 인간적 자유의지의 긍정이라는 면에서는 그것이 적절할지라도, 창조와 성화의 관계에서만 보면 웨슬리는 오히려 타락전예정설의 경향을 대표한다. 즉 웨슬리는 아르미니우스의 타락후예정설과 고마루스(F. Gomarus)의 타락전 예정설의 신학전 동기들을 모두 포괄하면서도 단지 예정설 자체에 대하여는 반대하였던 것이다.

존 데쉬너(John Deschner)는 틀림없이 웨슬 리가 칼빈두의와 칭의에 관하여 말할 때는 죄를 짓도록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선택에 대한 하느님의 예지를 강조하나 성화의 문맥에서 타락에 대하여 말할 때는 타락전예정설의 동기가 갑자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10) 즉 하느님은 타락을 예지하시고 그 구제책을 예비하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은 그 분의 더 높은 신적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창조와 타락과 성육신을 천명하시고 예견하시고 허락하신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 이전의 아담보다도 더 거룩하고 더 행복하게 되도록 만드시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더 이상 타락전예정설의 지렛대받침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는 여기서 거룩함을 중대시키려는 하느님의 최고목적에 봉사할 뿐이다. 하느님은 타락을 예견하셨으나 "그것을 방지하지 않는 것이 전체적으로 보아 최선이었음"을 아셨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에게는 그의 타락으로 악보다는 풍성하게 더 큰 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는 만일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혹시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거룩함과 행복보다도…더 큰 거룩함과 더 큰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얻었던 것이다."(11)

이것은 구체적 천명(a remedial decree) 이상의 것이다. 하느님의 구속사는 점진적 성격을 가졌다. 하느님의 영원한 결의는 점진적으로 증대되는 거룩한 피조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웨슬리는 하느님의 계획이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신앙이 그 계획의 완성을 저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면에서는 역시 웨슬리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단순히 17세기 논쟁에서처럼 선택과 예정이라는 관련에서 하느님의 천명(decree)을 논한 것이 아니므로, 웨슬리를 고마루스주의자라든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웨슬리의 주요관심사는 성화였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타락전예정설과 타락후 예정설 양측의 주장에 형식적으로 일치되는 면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웨슬리를 아르미니우스주의자로만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음으로 토착화 신학에서 본 성화의 개념은 법정적 칭의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의 천명이 점진적 성화와 그것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영원한 천명과 결의는 타락전예정설의 경우처럼 창조의 최고목적으로서의 완전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토착화신학의 조화전개적 사유라는 논재와 잘 어울릴 수 있다. 사실상 타락후예정설은 분석종합적 사고에 더 잘 어울리는 사상이다. 이것은 부득불 구제적 천명 즉 타락의 회복이라는 신적 결의로 전제할 수밖에 없다. 웨슬 리가 말한대로"만일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법을 직설법으로 이해한 것이 동양사상이다. 여기서는 오히려 타락전 예정설이 더 설득력이 있게 생각된다. 칭의와 성화는 타락을 만회하기 위한 긴급조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결의에 속한 것이다. 토착화 신학의 조화전개적 사유는 이러난 타락전 예정설적 동기를 존중하고 수용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토착화신학이 칭의없는 성화를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더구나 칭의와 예정이 인간의 공로 대신에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칭의를 배제한 성화는 은혜없는 구원을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칭의를 법정적 칭의에만 국한한다든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십자가처형에만 국한시키는 충적이나 대리의 기독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전체적 그리스도(totus Christus)의 사역으로 이해되어야지 십자가상의 수동적 순종으로만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의 의" "사람 앞에서의 의"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느님과의 화해라는 법정적 칭의의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화해인 성화도 존중되어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의 의는 법률적 차원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선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는 완전성화를 목표로 삼게 되고 완전성화는 새로운 인간존재를 목표로 삼는 우주적 차원도 포괄한다. 이것은 오지안더의 효과적 칭의를 확대 해석한 것에 상응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토착화 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루터파 신조인 「일치신조」제3조에서는 칭의에 대한 조항이어서 성화의 문제를 단지 하느님 앞에서의 의라는 각도에서만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의 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람 앞에서의 의, 즉 이웃과의 관계에서 문제되는 의를 무시하면 안된다. 사람 앞에서의 의는 시민적 내지 사회적 의라고하여 법률적인 것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기독교 윤리의 과제이다. 이웃은 하느님께 속하여 있으므로 이웃에 대한 모든 죄는 하느님께 대한 죄이다. 하느님은 인간 사이의 모든 죄책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등장하신다. 따라서 죄는 하느님께만 짓는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의심스러운 극단적 주장이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통일성을 깨뜨려 버린다.

「일치신조」 제4조 "선행"(De bonis operibus)조항은 순수한 법정적 칭의론을 논박하면서도 선행이 필요하다는 게오르크 마요르(Major)의 논제와 선행이 해롭다는 니콜라우스 폰 암스도르프(Niko laus von Amsdorf)의 논제 사이의 분재을 조정하려 한다. 멜랑히톤(Ph. Melanchton)이 황제 칼 V세의 「아우그스부르크」임시규정(1548)을 작성하면서, 믿음, 사랑, 소망 및 기타 덕들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고 구원의 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말썽이 되었다. 이것은 반종교개혁의 카톨릭적 교리를 인정한 셈이어서 물의를 일으켰다. 멜랑히톤으 절친한 친구이자 오랫동안 빗텐베르큰 대학교 신학대학장이었던 게오르크 마요르는 선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튀링엔의 시찰과 암스도르프는 이에 맞서서 선행은 해롭다(perniciosa)고 하였다.

「일치신조」는 선행이 다른 이유로(non ud salutem, verum propter alias causas)필요하다고 하였다. 선행은 결코 강제의 필연성(necessitas coactionis)이라는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자유롭게 만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정신에서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선행이 구원의 복에 대하여 해롭다는 것은 사람이 선행을 신뢰하며 구원받고자 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려 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선행이 죄되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거짓되게 신뢰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선행에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선행을 게을리하여 해롭게 되기 보다는 선행을 열심히 할수록 그 선행이 구원의 복에 대하여 파괴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일치신조」 제5조 "율법과 복음"(De Lege et Evangelio) 조항은 반율법주의자들을 반대하고 율법과 복음이 더 일반적인 의미의 복음의 구성요소들이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율법을 오히려 낯선 사역(opus alienum)으로 그리고 복음을 죄의 용서라는 고유한 사역(opus proprium)으로 행하시었다. 율법은 시청에 맡기고 복음의 설교는 교회가 해야 한다는 식의 반율법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일치신조」 제6조 "율법의 제3용법"(De tertio usu legis)이라는 조항은 개혁교회 내지 칼빈의 이해와는 다르다. 「일치신조」는 율법이 정치적 용법, 신학적 용법 및 제3의 용법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틴다. 정치적 용법은 불순종과 야만에 대비하여 외면적인 규율을 세운다. 신학적 용법은 죄를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제3의 용법은 인간이 중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혈육에 붙잡혀 있으므로 평생토록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신학자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나 다른 사람들 특히 반율법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좌우간 이 경우에 제3용법과 제1용법은 결국 같은 것이 되고 만다. 반면에 칼빈에게 있어서는 제3용법이 윤리에 있어서의 본래적인 기독교적 특징을 위한 규칙들과 지시들이다. 개혁파는 이것을 "율법의 고유한 용법"(praecipuus usus legis)이라고 부른다.(Inst. II,7,12-17).

암스도르프(N. V. Amsdorf)와 오토(Otho면 Nordhausen)가 율법의 제3용법을 논박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개혁파가 주장한 기독교의 고유성(Proprium Christianum)에 대하여는 아직 미결인 채로 개방적이어서 그 고유성 문제에 더 가까이 접근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인리히 쉬미트(Heinrich Schmid)가 구루터파 교의학의 율법론의 논술에서 율법의 교훈적 용법(usus didacticus)을 위한 성서적 전거로서 마5:17을 인용하였다. 예수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다고 할 때 이것은"더 좋은 의"를 위한 것이므로 단순히 제1용법과 제3용법을 동일시할 수 없다. 여기서 산상설교는 율법의 제3용법으로서 성서적 전거가 된다. 가령 카톨릭측에서는 개인적인 복수가 충고에 불과하나「변증서」제 16조에서는 이를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보고 있다. 이것은 결국 칼빈의"고유한 용법"에 해당되는 셈이다. 즉 루터파와 개혁파가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나 여기서 서로 일치된다. 그러나 여전히 루터파 신학자들은 대부분「일치신조」제6조와 멜랑히톤의 윤리와 고전적 루터교의 윤리에 부응하여 제3용법을 제1용법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가령 에벨링(G. Ebeling) 같은 루터파신학자는 비록 율법의 두가지 용법만 인정하고 루터의 이왕국설을 견지함에도 불구하고 직책상의 윤리가 아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제16조와「변증서」제16조에서처럼 개인적 보복을 금하는 것이 단순한 충고상에서의 자신의 행위를 위하여 시민적인 의(justitia civilis)와 율법의 정치적 용법(usus politicus legis)의 관점에서 본 것 이상의 더 고차적인 의를 알지 못하나, 다른 편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적 용법의 한계 안에서 매우 비관례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강도하여 사랑을 위한 자유를 표현하고 또한 율법을 하느님의 율법으로 주장하는 것이 복음적이라고 한다.(12) 그러나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개인적 영역을 넘어서 포괄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그 말은 윤리적 내지 문화적 행위의 전체 영역을 의미한다. 이렇게 확대된 정치적 용법은 전통적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에서 이웃사랑은 개인적인 이웃돕기 이상의 것이다. 이웃사랑은 먼 사람을 이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차별대우를 받는 사람을 이웃으로 대접하는 것은 정치적 현실속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률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서로 구별된다. 법률적인 것은 윤리적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단지 윤리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 타협일뿐이다. 결국 제1용법이 부도덕에 대한 도덕의 대립(Moral Kontra Moral)에서 성립된다. 법률적으로 제1용법에 해당되나 후자는 제3용법에 해당되는 것이다.

요한 칼빈(Johannes Calvinus, 1509-1564)의 칭의론은 1536년에 낸「기독교강요」초판에서는 아직 독자적 체계로 정리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단지 루터의 칭의론을 수용하여 여러 가지 루터의 칭의론을 수용하여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술한 것 뿐이다. 여기서는 칭의론이 독자적 주제로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2판(1539)에서는 부분적으로 새롭게 이해된 칭의론이 하나의 독자적인 장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1559년 최종판에서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칼빈의 고찰이 신상증언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철시킨 일종의 조직적 이론으로서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는 문제를 다룬 제3권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칼빈의 칭의론의 주석적 기초는 우선적으로 그의 「로마서주석」이었다. 이 주석의 논술은 「기독교 강요」가 판은 거듭하면서 영향을 끼쳐주었다. 신학사적으로는 칼빈의 칭의론에 영향을 끼친 사상은 다양하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이외에도 그리스 교부들의 성화론을 수용하였고, 베른하르트 폰 클레르보(Bernhard von Clairvaux)에게서 발견되는 "그리스도와 하나됨"(unio cum Cheisto)이라는 사상도 받아들였다.

「기독교 강요」최종판(1589)에서 칼빈은 신앙과 회개에 대하여 논한 후에 중생, 성화 및 칭의의 연관성을 논구하였다. 또한 예정설이 그 다음에 연속되어 있다. 이 순서로 보아 선택은 칭의에서 확실하게 된다. 칼빈은 성화도 칭의로부터 이해하였다.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칭의와 성화를 구별하고 "이중적 은혜"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러한 칭의 이해는 칭의 받은 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겁듭나는 중생의 종말론적 성격을 표현하는 성화론에 이른다 칼빈의 신앙이해는 루터와 멜랑히톤에 비하여 볼 때 변양된 것 같다. 칼빈은 신앙이 하나의 행위(ein Werk)라는 생각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앙의 약함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신인협동설을 방지하려던 칼빈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칭의론을 심도있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그리스도와 하나됨"이라는 비신비주의적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영 안에서" 그리스도와 사귄다는 사상 속에서 칭의와 성화가 서로 관렬되어 있으나 그래도 양자가 겹쳐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자의 통일성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없이 선사되지 않는다. 칭의론에다가 값싼 은혜를 종속시키는 반종교개혁적 비판에 반대하여 칼빈은"선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나 이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의롭다고 칭의하시는 하느님은 오히려 인간이 성화 속으로 성장하도록 인간에게 행하신다는 것이다. 즉 신앙으로 얻은 의는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필립 멜랑히톤(Ph. Melanchton)의 경우도 「해제」(Loci. 1521)에서는 물론이고 칭의의 효과적 차원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다가 카톨릭의 비판과 부렌츠(Jehannes Brenz)의 질문에 자극받아 "교회의 존망이 걸린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을 새롭게 검토하여「로마서주석」(1532)과 「해제」(1535)에서 칭의를 죄의 용서와 화해, 즉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용납(Annahame)과 성령을 통한 갱신(Erneuerung)이라는 양면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신학해제」(Loci theologici, 1559)최종판에서는 칭의의 법정적 이해가 종말론적 화해와 새로운 창조의 총체적 수행을 포함한다. 이 총체적 사건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gratis propter Christum per fidem)일어난다고 하였다.

칼빈도 1536년에 칭의의 법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종말론적 심판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1543년에 하느님의 용납과 함께 화해의 총체적 사건을 가르쳤다. 특히 칼빈은 칭의의 구조를 철학적 도식으로 푠현하여 원인에 귀착하였다.(13) 첫째, 인간의 모든 활동보다. 선행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은혜(gratia praeveniens)는 "작용인"(causa efficens)이다.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의를 인간에게 얻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은"질료인"(causa materialis)이다. 마직막으로 의를 나타내 보이고 하느님의 긍휼을 찬양하는 것은 "목적인"(causa finalis)이다.

칼빈은「기독교강요」에서 "칭의의 순서"(ordo justificationis)같은 것을 암시하였다. (Inst, III, 11, 16). 여기서는 행위에 의지하는 것과 좌절 사이에서 동요하는 사역에 집중한다. 이 때 칼빈은 종교개혁의 출발점을 고해석에서 찾았다.

(가) 칭의의 시작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순전히 은혜로우신 선으로부터 내려오셔서 인간을 받아주신다. 하느님은 우리 죄인들 속에서 단지 무능만을 보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자신으로부터 작용인(causa efficiens)을 꺼내신다. (나) 하느님은 그분의 선의 감각(sensus)으로 우리 죄인을 만지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Stellvertretung)에 관한 복음을 믿게 하는 성령의 은사에 불과하다. (다) 이렇게 하느님은 죄책 속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기초적인 칭의를 선사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리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이점에서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고 그분과 화해한다. (라)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종말을 향한 하나의 역동적 과정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죄성(罪性)과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순종을 항상 새롭게 그리스도의 "낯선 의"속으로 넣어 간직하게 된다.

성서와 종교개혁에 비추어 볼 때 칭의와 성화는 밀접한 연관성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한 쪽도 다른 쪽 없이는 무의미하다. 칭의없는 성화는 불가능하고 성화 없는 칭의는 죽은 것이다. 언필칭 이신칭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법정적 칭의에만 매달리다가 신자의 본분을 망각한 값싼 은혜에 빠지기 쉽다. 반면에 성화의 이념을 앞세워 율벌주의로 되돌아 갈 위험성도 남아 있다.

혹시 조교학적으로 볼 때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지눌의 돈오점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14)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칭의와 돈오의 주체가 서로 다르고 점수와 성화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다. 성화는 인간의 자기수양이 아니라 칭의의 결과이다. 하느님의 은혜가 없는 돈오점수를 칭의와 비교되는 일은 성급한 시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상당히 접급되는 종교체험이 문제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두 교회의 직접적 비교는 곤란하나 두 교리가 지시하는 종교적 체험 사이의 접근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실존적 경험에서의 접근가능성이 신앙의 대상에 있어서의 접근가능성을 보장하거나 근거 설정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토착화의 이름으로 성급하게 직접적으로 칭의성화를 돈오정수와 비교하는 일은 교각살우격의 우를 범하기 쉽다. 신학의 과제는 단지 인간의 내면적 체험을 서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성을 규정하는 분의 대한 신앙을 통하여서만 하느님과 인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는 데서만 바르게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제삼자적 입장에서의 비교연구는 토착화신학의 과제가 될 수 없다.


▣  각  주   ▣


(1) Cf. Hans-Georg Fritzsche, Lehrbuch der dogmatik, Teil IV, (Bandenhoeck & Ruprecht, 1988), pp.202-210.

(2) M. Luther, Tischreden, Volksausgabe von Buchwanld und Kawerau, bd.8, p.303.

(3) W. A. 54, 185f.

(4) Werke BuchWald-Kawerau, Bd. I, p.34 ; WA 6, 226.

(5) lbid., p.94 ; WA 6, 275.

(6) WA 7, 21.

(7) 범과를 낱낱이 고백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물론 카톨릭교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사람이 자신의 범과를 알고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Confession Augustana, 25).

(8) Die Bekenntnisschriften der lutherischen Kirche, p.219.

(9) H.-G. Fritzsche, op.cit, p.230.

(10) John Deschner. Wesley's Christology, Dallas 1960, p.22.

(11) Ibid., pp.22ff.

(12) Gerhard Ebiling, Dogmatik des christlichen Glaubens III, Tubingen 1979, p.288.

(13) Inst, III, 14, 17, 21.

(14) 길희성,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 1994, pp.15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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