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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神學資料

초대 기독교 예배의식과 예배음악

by 이덕휴-dhleepaul 2019. 2. 5.

초대 기독교 예배의식과 예배음악의 발달 과정

우리가 주일날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이 마치 "설교 들으러 가는 것"으로 잘못 인식 된 것은 예배의 형식과 그 내용이 잘못 된데에서 연유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현대 교회들은 예배의 갱신(Liturgical Renewal)과, 예배의 개혁(Liturgical Reform), 그리고 예배의 재생(Liturgical Renaissance)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예배를 갱신하고 개혁하자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되겠고 다시 새로와 져야겠고, 바꾸어져야 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재생한다는 뜻은 다시 태어난다 또는 부활한다의 뜻이 있다. 즉 예배의 원형인 초대교회의 예배양식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예배의 갱신을 논의 할 때, 예배의 역사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회복시켜야 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역사의 종교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전체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고도 말 할수 있겠다.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예배의식을 찾기 위해서는 예배의식과 예배음악 발달의 신학적이고도 역사적인 근거와 발달과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1. 초대교회의 상황

기독교가 처음 시작 될 때 어떠한 환경 내지 여건과 상황 속에서 시작 되었는가를 한번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동안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를 세우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회당과 성전에 가서 예배와 기도를 드렸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직후에도 제자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날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눅 24:52-53)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와 제자들은 처음부터 유대교회에서 이탈하여 독립교회를 세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거대한 유대교 안에 하나의 조그마한 종파(sect)로 유대교와 함께 공존 해 있었고, 그 안에서 서식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성전문 곁에서 날때 부터 앉은뱅이었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1-10)고 명하여 그로 하여금 걷게 만든 것도 요한과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었다. 야고보서 2장 2절에 "예수를 믿는 자들 끼리 모임을 가질 때 그들은 자기들이 모이는 곳을 회당" 이라고 부른 것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초대 기독교는 유대교회의 환경 내지 여건과 상황속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의식이 유대교의 의식을 근거로 해서 발전 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예배의식의 순서와 내용만이 아니라 예배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예배음악의 발전 과정도 그와 꼭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기독교회에서 예배중에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유대교회에서 내려온 전통인 것이다.

본래 유대인이었던 사도들은 모두 유대교의 의식순서에 익숙 했었으리라고 믿어 진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서 새로운 가르침을 받고 난 후에도 자신이 유대교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기독교인이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하였다고 보는 것은 오늘 우리의 생각이지 그 시대 그 환경에서 그 사람들 자신은 개종이라든가, 새로운 교파를 형성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제자들도 그들의 예배에서 새로운 의식을 창안해 낼려는 의도는 전연 없었던 것 같고, 단지 그들에게 익숙한 유대교회 의식 순서에 다가 순수한 기독교적인 요소인 성만찬을 첨가하는 것으로 그쳤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유대교가 새로워 져야겠고, 유대인 모두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기를 원했고, 뿐만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을 것을 원해서 늘 회당을 자기들의 설교 장소로 사용해 왔다. 사도행전 (9:20)에 "사울은 며칠동안 다마스커스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도 회당과 성전에서 유대인에 대한 전도에 힘써 온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것 외에는 유대고회와 꼭 같고 유대교의 모든 유산을 그대로 인정하고 유지해 왔지 기독교적인 것을 새로히 창안해 낼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유대교회의 예배와 예배음악

유대교회에서 음악은 항상 중요하게 취급되어 온 것을 성서를 통해 볼 수 있다. 즐거운 축제 때 부르는 미리암의 노래로 시작해서 모세의 찬양과 다윗이 쓴 시편에 이르기 까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무수히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 다윗이 사제 가문인 레위지파 중에서 특별히 선별하여 신앙생활의 가장 중심이 되는 성전의 음악을 전담하도록 하고,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한 것을 보아도 유대교의 예배의식 속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기하 5장을 읽어 보면 솔로몬에 의하여 완성된 성전 봉헌식을 설명하는 글이 나오는데 이 글을 통해 "음악의 힘"과 유대인들의 사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음악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그 아들들과 형제들을 거느리고 레위 성가대원으로서 모시옷을 입고 바라와 칠현금과 거문고를 들고 제단 동쪽에 늘어 섰고, 이들과 함께 백이십명 사제들이 나팔을 입에 대고 불었다고 한다. 거기에 참석한 사제들은 순번을 가리지 않고 전원이 목욕재계를 했던 것이다. 이들은 다 같이 나팔을 불고 또 노래를 불렀다. 야훼를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그 소리가 산소리 처럼 들렸다. 나팔과 피리와 그 밖의 악기에 맞추어, "야훼 어지셔라, 그 사랑 영원 하여라" 소리 높여 찬양하는데, 야훼의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찼다. 구름이 어찌나 짙었던지 사제들이 더 이상 예식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야훼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찼던 것이다. (대하 5:11-14)

이상의 글에서 보면 백이십명의 사제들이 성전음악 담당자들과 함께 서서 나팔을 불어 찬양에 동참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전 음악 담당자들은 사제들 가운데서 뽑아 임명 하였고, 사제들 자신이 성가대와 함께 악기를 연주 했다는 것은 사제들도 성전음악 담당자들 중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말 한다. 이와 같이 성전음악 담당자들이 유대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컸었다. 이 성경구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찬양대의 노래에 감격한 하나님의 성령이 구름으로 임하셔서 성전에 가득차 예식을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으리 만치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실 때에 살찐 송아지를 번제물로 살라 바쳐서 임한 것이 아니라 찬양을 통해서 임하셨다는 것은 성전의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성전예배에서 찬양을 할 때는 시편을 가지고 했는데 이 시편이 어느 주일에 불려져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구약을 제일 처음 희랍어로 번역한 70人譯 성서(Septuagint)를 보면 특정한 날의 예배 이름을 따서 시편의 제목을 붙인 것을 볼 수 있다. 특정한 날에 특정한 시편을 불렀다는 것은 유대교 예배의식 발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가 오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본다.

유대교회의 의식이 기독교회에 영향을 준 것을 추적 할 때 우리는 성전의식 보다는 회당의식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다. 초대 기독교 예배의식 발달과정에는 회당의식으로 부터의 영향이 성전의식으로 부터의 영향 보다도 훨씬 컸기 때문이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기도의 집"이었고, "찬양의 집"이였으며, 종교교육을 시키는 "학교"로도 이용 되었었다. 회당은 또한 초대 기독교인이었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활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유대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마을에 회당 하나는 꼭 있었고, 큰 도시에는 여러개의 회당이 있었다. 예루살렘 밖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에 가는 일이 용이치 않았고, 따라서 회당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명상을 하였다. 더구나 주후 70년에 로마 황제 Titus에 의하여 성전이 헐린 다음에는 더욱 더 회당이 그들의 일상 생활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종교적인 모든 행사가 이곳에서 주로 이루어 졌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했고 또 잘 알고 있었던 의식이 이 때의 회당 의식이었고, 이 회당의식이 그대로 초대 기독교회 의식(儀式)의 바탕이 되었다고 믿어 진다.

초대 기독교시대 회당 예배의식의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략 성경봉독, 설교, 시편찬양, 기도,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특송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 하다. 이때 설교만 제외하고 모든 순서에서 음악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설교외의 모든 순서가 음악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예배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음악을 붙이게 되면 보통 생활언어와 구별되어 종교적인 언어로 변하게 되고, 행동도 종교적인 행동으로 바뀌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에서 설교만 빼 놓고 예배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에는 반드시 선율을 붙여 노래로 하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예배는 특별한 언어로,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예배는 영적인 언어로 드려야만 한다고 이들은 생각 하였던 것 같다.

회당의 예배에서 성경봉독은 일반적으로 두번 있었다. 첫번 성경봉독은 구약의 모세 오경 중에서, 두번째 성경봉독은 예언서에서 각각 있었다. 모세 오경에서 봉독하는 부분은 매일 드리는 예배에서 항상 읽지 않고 안식일(토요일), 월요일, 목요일, 그리고 특별한 축일에만 읽었고, 오경 전체를 7년 동안에 두번 읽을 수 있도록 짜여진 계획에 따라 읽었다. 구약의 첫번째 다섯권의 책을 오경, 또는 율법서, 또는 토라(Torah)라고 하는데 예수 시대에 와서는 매일의 예배에서 율법서를 읽었다고 한다. 성서봉독은 성경말씀 위와 아래에 점과 획이 붙여 있는데 이 표기(sign)에 의한 특별한 방법으로 음율을 붙여 읽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보법은 기록을 통해서가 아니고 입과 입을 통하여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싸인의 해석이 각 가지로 발전 하였고 또 제대로 전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초대 기독교의 회당 예배에서 사용한 이들 음악에 관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봉독이 절대로 아무렇게나 읽혀지지 않았고, 어떤 표준화 된 공식에 근거한 운율에 맞추어 영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성경을 아무데서나 읽지 않고 특정한 날 특정한 의식에 맞추어 특정한 성경구절을 읽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로 미루어 구약시대부터 이미 절기에 따라 예배를 드린 것을 알 수 있다. 유대교에서 보는 것 처럼 교회력에 따른 구약시대의 예배가 기독교 예배의 근본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봉독과 마찬가지로 회당에서의 시편도 어떤 특정한 가창방법에 의하여 노래로 불렀었다. 물론 성경을 영창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가창되었다. 한 사람만이 영창하는 성경봉독과는 달리 시편창에 있어서는 가끔 회중이 함께 노래하도록 되어 있었다. 대개의 경우 레위 사람중 특별히 재주있고, 훈련받은 "선창자"(Precentor)라고하는 인도자가 인도하였고, 회중이 이에 화답함으로 시편창이 이루어 졌다. 이와 같이 선창자가 있으므로 해서 "교창송" (Responsorial singing)이라고 하는 특별한 연주법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을 나중에 기독교회에서도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 발전한 중요한 가창형식이 몇개 있었는데 하나는 선창자가 시편 한 절의 반을 선창하면 회중은 선창자가 부른 것을 즉시 그대로 따라부르는 방법인데 이것은 어린이들에게 시편송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둘째 방법은 "할렐루야 시편" (시편 111편 부터 117편까지를 말함)을 교창 할 때 사용되었는데 선창자가 첫 줄 (할렐루야)을 노래하면 회중이 그것을 반복해서 노래하고, 선창자가 다시 다음 구절을 노래하고 나면 회중은 마치 후렴을 부르듯이 "할렐루야"를 방복하는 방법이다. 세번째 방법은 일절의 전반부를 선창자가 노래하면 회중이 후반부로 답창하는 형식이다. 이상과 같은 교창 방법 외에도 시편 전체를 교창하지 아니하고 선창자 혼자 또는 회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방법(Direct singing)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답창송(Antiphonal singing)인데 회중이 두 구룹으로 나누어져서 한편이 한 절을 노래하면 다른 편이 다음 절을 노래하는 형식이다.

이와같은 유대교의 시편 창법이 그대로 기독교에 들어왔다. 교회기관에서 전문 교회음악가를 양성하는 학교인 Schola Cantorum이 4세기경에 생긴 다음 부터는 점차 교회음악이 복잡해 지고 어렵게 됨에 따라 지금까지 유대교 회당의 전통에 따라 회중이 불렀던 음악연주는 사제들의 영역으로 넘어가 회중의 시편 교창송을 독창자(Cantor)와 합창단(Schola)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 즉 독창자가 선창을 하고 회중 대신 합창단이 답창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초신자들의 모임(Synaxis or Mass of the Catachumen)에서는 시편이 교창식으로(Responsorially)불려 졌는데 독창자가 시편의 각절을 노래하면 합창단은 항상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답창하였다. 이것을 음악적인 형식으로 표시하면 R - V1 - R - V2 - R - V3 ... R 로 된다. R은 합창단에 의하여 같은 가사, 같은 음악이 반복되는 부분이고, V는 독창자에 의하여 불려지는 시편의 각 절을 의미 한다. 시편의 모든 절을 다 이와 같이 부르게 되면 몹시 길어지기 때문에 시편 전체를 부르는 대신 4절 내지 1절만으로 축소해서 부르게 되었고, R부분도 전체를 각 절 후에 반복해서 부르지 않고 축소된 형식으로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우리에게는 송영으로 알려진 Lesser Doxology (성부 성자 성령께 찬송과 영광 돌려 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가 부가 되었다.

성만찬(Eucharist or Mass of the Faithful)에서는 시편이 답창식으로 (Antiphonally) 으로 불려 졌는데 이는 두 합창단이 1절을 둘로 나누든가 또는 1절과 2절을 각각 부르고 교창식 시편송의 반복구와 같은 앤티폰 (Antiphon) 을 부르는, 다시말해 A - V1 - V2 - A - V3 - V4 - A - V5 - V6 - ....A 의 형식으로 불려 졌다. A는 위의 R과 같은 반복구이고 한쪽의 합창단이 V1을 노래하면 다른 쪽의 합창단이 V2를 노래한 다음 A가 함께 불려지고, 다시 V3 - V4 로 연결 된다. 여기에서도 마지막에는 송영을 불렀다. 매 시편 교창 마지막에 송영을 부르는 이유는 유대교의 찬송인 시편송을 기독교의 찬송으로 바꾸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야훼께 향한 시편의 모든 찬양을 기독교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라고 하는 의미를 덧 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교의 회당찬송을 기독교 찬송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대교의 찬송에 성삼위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기독교화 시키는 것이다.

시편을 교창(Responsorial singing)하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것 (Direct singing), 두 구룹이 답창 (Antiphonal singing)하는 등의 모든 유대교 회당의 시편창법이 이렇게 기독교에 그대로 받아 들여 졌다. 성서를 봉독 할 때 영창하는 것, 기도를 운율에 맞추어 드리는 것, 예배의식 등 모든 것을 회당의 것을 거의 그대로 따랐고, 그대로 받아 들여 졌다. 음악적인 면만을 특별히 고려한다면 유대인들이 사용한 기본적인 선율과 선율공식이 기독교 음악의 기본이 되어 왔다. 초대 기독교에서 사용한 많은 챈트의 선율이 유대교에서 사용한 선율과 비슷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중의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예> 히브리 시편 선율

기독교의 시편 선율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파생 되었고, 기독교의 의식도 회당의식을 따랐기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초대 기독교에서 교부 드르이 노래로 만 예배를 보도록 제한한 것도 유대교에서 온 사상이었다. 유대교에서는 회당에서의 악기 사용을 제한 했는데 많은 악기가 본래 이교도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았고 또 악기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용도에 따라 그 악기와 그 악기의 소리가 듣는 이들에게 은연중에 주는 의미와 상징이 다르기 때문에 예배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악기 사용을 규제 했었다. 이들 유대교회의 지도자들과 꼭 같이 초대 기독교회의 교부들도 하나님은 인간의 음성으로만 예배되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렇듯 기독교가 유대교로 부터 받은 교회예배와 예배음악에 대한 영향은 지대하였다.


3. 초대교회 예배의 형성과 시편창의 발달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미사"라고 하는 예배의식이 오늘날의 형태로 된 것은 중세 말에 이르러서다. 예배의 마지막에는 예배(미사)를 집례한 사제가 "모임이 끝났읍니다 (평안히) 가십시요"란 뜻의 라틴어인 Ite, missa est(= Go, (the congregation) is dismissed.)라고 했는데 이 말에서 "미사"란 말이 유래 했다고 한다. 미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 부분은 "초신자들의 미사"(Synaxis 또는 Mass of the Catachumens)이고, 둘째 부분은 "세례 입교인들의 미사"(Eucharist 또는 Mass of the Faithful)로 되어 있다. 미사의 첫 부분인 "초신자들의 미사"는 누구나 참석 할 수 있는 예배로써 이 의식은 유대교의 회당의식과 같았다. 초신자 모임의 순서와 중요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초신자들의 모임 (Synaxis or Mass of the Catachumens)

a.장로가 인사를 영창하면 회중은 이에 답창하는 것으로 예배가 시작된다.

b. 성경은 세군데서 봉독 하되 읽지 않고 영창으로 했고, 그 사이 사이에 교창형식으로 부르는 시편송이 삽입 되었다.

첫번 성서 영창은 모세의 오경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신명기) 중에서 선택되었고 두번째는 예언서에서 택해 영창 했으나 차츰 신약성서 (서신)로 대치 되었으며, 세번째 영창은 오경과 예언서에서만 영창하던 유대교의 전통에다 새로운 기독교 전통을 삽입하여 부분적으로 복음서에서 뽑아 영창 하였다. 성경 영창 사이 사이에 삽입되는 교창식의 시편송은 그 날의 말씀 주제 에 따라 선택 되었다.

c. 사제들과 주교에 의한 설교가 한 두번 있었고, 설교 다음에

d. 세례 입교인 외는 모두 헤어졌다.

이상의 미사 제1 부분은 기독교를 모르는 초신자들을 위한 교육의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공개 되어 심지어는 불신자들 까지도 참석 할 수 있었다. 제1 부분과 제2 부분은 처음에 따로 따로 모임을 가졌었다. 첫 부분은 회당에서 모임을 가졌고, 둘째 부분은 개인의 집으로 옮겨와서 모임을 가졌었다. 둘째 부분은 회당의식 이었던 첫 부분에 첨가된 기독교의 독특한 부분이다. 첨가 부분인 성만찬 부분은 임의로 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모일 때 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이다. 성만찬의 행위는 기독교 예배의 핵심적인 중요한 요소이다. 이 예배의식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고 그것을 먹음으로 우리의 살과 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 함께 연합되는 신비스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만찬은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성찬식은 매 주일예배(미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예배의식이다. 개신교회의 주일 예배에서 매주일 성만찬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성만찬 의식이 기독교의 독특한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도 유대교의 의식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기념하여 유월절 만찬을 갖는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질 때 유대인의 유월절 만찬의식을 따라 떡과 포도주에 축사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이다. 그 의식을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성찬식은 다음과 같은 요소와 순서로 진행 되었다.


성찬식(Eucharist or Mass of the Faithful)

a. 입교인들의 기도

b. 입교인들이 제단위에 여러가지 종류의 헌물을 바치고 나면 사제가 이 예물을 위한 기도를 한다.

c. 떡을 나누고 잔을 돌리면서 성찬을 갖고 성찬이 끝나면 시편을 노래 하였다.

d.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헤여졌다.

따로 따로 모였던 이상의 두 모임 (초신자를 위한 모임과 성만찬의 모임)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주후 2-3세기에 와서 비로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주후 4세기 초에 기독교 역사에 획기적인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로마의 황제 Constantine(280?-337)이 313년에 기독교를 승인하고 그 자신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이다. Constantine이 기독교인이 되기 까지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즉 Constantine은 자신의 숙적이었던 Maxentius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전쟁에 고심하고 있는 Constantine에게 어느날 하늘에서 섬광으로 "이 싸인으로 네가 이기리라"(In Hoc Signo Vinces) 란 글과 함께 큰 십자가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Constantine은 그것이 기독교의 십자가인 것으로 믿고 곧 개종한 후 십자가의 깃발을 앞세우고, 병사들의 방패에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이름을 쓰고 전쟁에 출전하여 312년 승리를 거두어 로마제국의 황제 (312-337)가 되었다. 그는 황제가 된 다음 "밀라노의 칙령"(Edict of Milan)을 내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락하고, 교회가 재산을 소유 할 수 있는 합법적 단체인 것을 승인 하였다. 그후 얼마 안가서 Constantine은 기독교인들에게 로마제국의 공직까지 주었고, 자기 자식들도 기독교의 신앙으로 교육하였으며 자기 자신도 세례를 받았다. Constantine은 나라를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옛 Byzantium 자리에 새 서울을 만들어 Constantinople이라 했다. Constantine의 이러한 도움으로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교세는 크게 확장 되었고 또 Theodosius(379-395)황제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 되기에 까지 이르렀다. 또한 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 이외 모든 이방인들의 종교행사는 금지 되었다. Constantine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 됨에 따라 지금까지 동굴속에 숨어서만 예배를 드리던 기독교인들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이에 기독교는 크게 확장 되었던 것이다.


4. 예배의식의 통일과 완성

여기에서 잠시 교회에서 사용해온 언어의 변천과정을 살펴 보아야겠다. 물론 유대인은 히브리어를 사용해 왔었다. 그러나 기원전 9세기부터 아람 (Aramaean)사람들의 언어(Aramaic)가 서남 아시아 지방의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정치적 언어로, 상업적 언어로 널리 사용되어 왔었다. Babylon 포로 생활 이후에는 유대인들도 아람어를 사용했다. 이 언어는 기독교 초기에 팔레스틴 전역에서 사용되어온 통상 언어였다. 따라서 예수도 이 말로 전도를 했으며, 초대 기독교인들도 이 말로 예배를 보았다.

그러나 희랍(Greece)문화는 기독교 이전(플라톤 시대) 부터 서양 문화의 중심이었고, 그것이 로마의 문화권이 형성 될 때 까지 지속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이전에 벌써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 되었고 이를 70인이 번역했다고 하여 Septuagint라고 부르고 초대 기독교인들이 이를 사용하였었다. 사도 바울이 외국에 나가 전도 할 땐 희랍어를 사용하였던 것을 보아도 희랍 문화권이 얼마나 강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사도 바울의 이방전도로 인하여 세계에 전파됨에 따라 그 당시의 국제 언어였던 희랍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여 모든 기독교 의식에서 희랍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기독교 의식에서 언어의 통일을 이루었다. 이때 심지어는 로마에서 까지 희랍어를 사용(3세기 까지)하여 예배를 드렸었다.

4세기 5세기에는 Rome, Antioch, Alexandria, Constantinople과 같은 세계의 대 도시가 발전한 시기이다. 이들 도시에서는 제각기 자기들의 예배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대로 발전시켜 나갔다. 제각기 다른 의식이 이들 도시로 부터 주위의 다른 도시로 전파 되면서 교회의식은 다양해 졌고 사용하는 언어도 점차 지방 언어인 Latin, Syriac, Coptic 에서 희랍어로 바꾸어 지게 되었다. 따라서 표준의식의 필요성이 높아져서 의식서, 의식 안내서, 의식 설명서 등이 저술되어 여러 지방에 나누어 졌다.

로마가 동서로 갈라지면서 서 로마 제국에서는 라틴어를 모든 예베에서 통일된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 했다. 희랍어에서 라틴어로 바뀌는 과정은 3세기로 부터 4세기에 점차적으로 이루어 졌다. 미사의 통상문 제일 첫 부분에 보면 Kyrie eleison(주여 우리를 불쌍히 보소서)이 있는데 이는 라틴어로 "主"는 kyrie(희랍어로 主라는 뜻)가 아닌 Domino 이지만 이미 "주님"이란 뜻으로 Kyrie가 로마인들의 입에 붙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St. Jerome에 의하여 405년에 라틴어 성경번역을 완성 했는데 이 성경을 불가타 성서(The Vulgate)이라 하고 천주교회의 공인 성경이 되었다.

다양화 된 예배 의식을 통일하는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 그레고리 교황 (Gregory the Great:590-604)이다. 교황 Gregory는 기존하던 Schola Cantorum의 교육을 강화하여 그 곳에서 통일된 의식을 가르치고 자신이 수집하고 편집한 교회음악 (chant)을 가르쳐 훈련받은 음악인을 구라파 전역에 보내어 각 교회에서 일하게 하였다. 이것이 계속 되면서 교회의 의식은 하나로 통일되고 교회음악도 통일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늘날 중세 단선음악을 Gregorian chant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와같은 그의 공헌 때문이다. 로마의 미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미사 형태로 대략의 모습을 드러 낸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노래로 불려지는 부분 영창되어지는 부분

특정문 통상문 특정문 통상문

1.Introit(입례송)2.Kyrie

3.Gloria 4.Collects (기도)

6.Gradual(시편교창) 5.구약성서

8.Alleluia 7.사도서한

10.Credo 9.복음서 낭독

11.Offertory(봉헌) 12.기도

13.Secret

14.Preface

15.Sanctus & Benedictus 16.Canon

19.Communion 18.Agnus Dei 17.주기도문

20.Post-communion

21.Ite, missa dest 또는 Benedicamus Domino


미사에 나오는 모든 순서는 20가지 이다. 이것이 노래로 불려지는 부분 11순서와 영창되어지는 부분 9순서로 나뉘고 또 그것이 특정문과 통상문으로 나뉜다. 노래 불려지는 11순서에서 다섯은 특정문으로 매주일 그 가사가 달라진다. 그리고 통상문 여섯은 그동안 음악을 만드는 일이 왕성 했었으나 중세 말기에 오면서 차츰 통상문으로 작곡하는 경향이 시작되어 이제는 음악에서 미사곡 하면 통상문에 나오는 다섯순서(Kyrie, Gloria, Credo, Sanctus 와 Benedkctus, 그리고 Agnus Dei)를 말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미사 순서가 확정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의 각고 끝에 이루어 진 것이다. 미사의 순서는 10세기 까지 지극히 유동적이었었다. 특정문을 영창으로 부르게 된 것은 6세기경의 일이고 통상문이 미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각각 그 시기가 다르다. Sanctus는 2세기 경으로 추측하고 있고, Kyrie 와 Gloria는 6세기 경에 미사순서에 들어 왔고, Agnus Dei는 7세기 후반으로 제일 나중에 미사에 삽입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미사의 순서는 경우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면 영광송(Gloria)은 대강주일 첫주부터 크리스마스 전 까지 부르지 못하고, 사순절 기간에는 절대로 부르지 못한다. 대강주일에 부르지 않는 이유는 4주일간 영광송을 부르지 않다가 크리스마스에 부르게 되면 그 영광송의 효과가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고 사순절에 부르지 않는 이유는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Gloria를 부르지 않을 경우에는 미사 맨 마지막에 Ite, missa est 대신에 Beneticamus Domino를 사용하고 사순절 기간에는 Alleluia 대신에 Tract 를 부른다. Alleluia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기쁜 찬양이기 때문이다. Tract는 시편을 부르는 것으로 Gradual에서 처럼 교창으로 부르지 않고 Antiphone이나 Response가 없이 독창자가 혼자서(direct singing) 부른다.

미사의 모든 순서를 영창 또는 노래로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악적으로 훈련이 잘 된 사제와 찬양대가 있는 교회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찬양대가 없거나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찬양대나 시골 작은 교회에서는 미사의 모든 순서를 영창 또는 노래로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와 같이 영창이 불가능할 때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Low voice)특정문을 읽고 교인들은 조용히 미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런 미사를 Low Mass라고 하고, 들을 수 있는 높은 목소리 (High voice)와 함께 완전한 그레고리안 챈트로 노래하고 다성음악으로 합창을 하면서 드리는 미사를 High Mass라고 한다. 또 전통적인 방식대로 노래와 영창으로 미사 드리는 교회를 High Church 라고 하고 개신교회와 같은 순서로 예배 드리는 교회를 Low Church 라고 한다.

개신교인인 우리들은 천주교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 무조건 배격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의 교회 예배의식과 예배음악 발달과정을 살펴 본 독자 중에는 그것이 천주교회의 미사의식과 미사음악 발달에 관한 것이지 우리 개신교회의 것이 아니라고 반발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종교개혁이 있었던 16세기 까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드렸던 예배양식이었다. 그때 까지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배 양식의 모두가 기독교에서 새로이 창조한 것이 아닐 뿐더러 거의 대부분을 유대교회의 전통과 예배의식에서 그대로 받아 들인 것을 보았다. Luther가 종교개혁을 하면서도 천주교의 예배의식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성공회의 경우도 천주교회의 의식과 대동소이하다. 이상의 두 개신교(Luther교회, 성공회)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개신교회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순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도 차츰 예배의식에 있어서 초대 기독교회의 의식으로 돌아 갈려는 노력이 여러 교회에서 시도되고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상에서 본 것 처럼 의식화 되어있는 예배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 감리교회의 예배의식을 보면 천주교회의 미사순서와 같은 순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미국 장로교회의 예배의식 순서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순서는 아름다운 것이어야만 한다. 아름다운 것은 그 구성에 있어서 미적인 가치가 높은 것이다. 음악에서 쏘나타가 아름다운 음악의 형식으로 채택되는 것은 그 형식의 구성이 음악의 어떤 형식 보다도 조직적이고 논리적이며 미적인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천주교회의 미사의 순서는 이천년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의식의 형태로 발전 해 온 예배의식의 미적인 결정체라고 말 할 수 있다. 개신교회에서 아름다운 교회미술, 아름다운 교회건축, 아름다운 교회조각, 아름다운 교회음악, 아름다운 예배의식...등등을 모두 포기한 본래의 의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존경과 숭배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과 숭배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것 그 자체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아름다운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더욱 아름답게 보여진다면 기독교는 아름다운 것을 반드시 추구해야만 한다. 자기가 살 집은 아름답게 지으면서 교회는 공회당처럼 허술하게 짓고, 자기집 거실에는 수백만원 짜리 서화를 사다 걸어 놓으면서도 교회당 안에는 간판쟁이 글씨로 "축 부활"이라고 쓴 천한 현수막을 붙이고, 세종회관과 국립극장에서는 아름다운 예술음악을 연주 하면서도 교회에서는 저질 음악을 연주해서 마치 하나님은 저질 음악만 좋아 하시는 분으로 타락시키고, 외국에서 귀빈이 오면 예전실에서 깍듯이 예식을 갖추어 성대히 맞으면서도 교회에서는 마굿간에 오신 예수를 너무 강조해서 인지 매주일 교회에 오시는 하나님을 예식도 갖추지 않고 아무렇게나 모실려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높으시고, 위대하시고, 영화로우시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생각 한다면 그분을 맞는 예식과, 그분이 오실 교회와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어야 하고, 가장 아름다운 교회이어야 하고,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인 음악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식교회(儀式敎會)에서는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를 포함한 모든 순서와 내용을 읽어 나가는것으로 예배(미사)가 진행된다. 예배의 내용과 순서를 모두 미리 준비하여 인쇄된 것을 읽는 이유는 예배 자체를 흠이 없는 완전 무결한 예배로 만들기 위해서다. 예배에서 드리는 기도를 준비하지 않고 머리속에 떠 오르는 기도를 그대로 행할 때, 그 기도는 흠이 있는 기도가 될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여호와께 드리는 예배가 부정하게 될수 있기 때문에, 완전 무결한 흠이 없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신학과 성경에 근거해서 틀림이 없는 내용의 것을 모두 인쇄하여 그것을 낭독해서 예배를 진행해 나간다. 위에서 지적 했듯이 이렇게 진행되는 예배는 성령의 감동이 전혀 없는 맹숭맹숭한 예배가 될 우려가 있는 반면, 기록된 시적인 아름다운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예배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 은혜도 되고 은혜가 없게도 되는 것이다.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등 개신교는 모두 천주교나 성공회 등의 예배의식을 거부하고 단순한 순서로 예배를 진행한다. 개신교 중에서도 교회 예배의식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파는 퀘이커(Quaker) 교도들이다. 이들에게는 일반적인 개신교회가 갖는 간단한 예배순서까지도 없다. 그들은 모두 함께 모여 조용히 앉아 기도하다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이 일어나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말씀도 전하고, 또 다른 사람이 역시 성령의 인도대로 성경을 읽고, 이와 같이 또 다른 사람이 기도하고, 끝나면 다시 묵상을 하고, 그러다가 또 다른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또 말씀을 전하고...하는 순서로 진행이 된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그날 아무에게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모두 조용히 묵상기도만 하다가 그대로 헤여진다. 완전히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예배가 진행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도들의 예배도 견해에 따라서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은혜받지 못하고 그대로 오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이러한 예배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예배의 본질은 자유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와 제한이란 요소도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하고싶은 욕망을 억제해야하고 자제해야 하는 요소도 있다. 성령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은 참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은 예배는 신학적인 제약(制約)을 받아야 하며, 또한 성령의 계시에 의하여 인도 되어야함과 동시에 또한 성령에 의하여 규제되어야 하고 억제 및 절제되어야 한다. 성령은 또한 영원하며 자기모순이 없는 진리의 영이므로,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는 예배는 자연히 교회의 전통적 의식(儀式 또는 禮典) 속에 응결된 지난날의 그리스도교 예배의식과 일치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의식이란 기독교의 계시에 의하여 형성되고 성령에 의하여 인도된 지난날의 예배를 구체화 한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 예배도 마땅히 성령의 역사적 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예배는 유대교의 예배 형식과 꼭 같았었고, 천주교회의 의식은 초대교회의 의식이 발전한 형태이며 개신교회의 예배 내용도 구교의 예배(미사)의식에서 본질적인 내용만을 뽑아 엮은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예배 내용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연히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예전의식으로 응결된 교회의 전통적 예전과 초대교회의 예배의식, 유대교회 예배의 의식에서 원천적인 의미를 찾아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요 4:24)가 기독교 예배의 본질을 요약하고 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신령으로 드려야 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야 말로 성령의 지도와 계시에 따라서, 그리고 신학적인 제한과 절제속에서 아름답게 정돈된 질서있는 예배의식이고 동시에 참 예배라고 말 할 수 있다.

- 출처 : 세계인터넷 선교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