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도 목사의 생애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을까? 어린 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예배당은 너무 추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意氣 저상하여 설교도 힘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거지아이. 뚜껑 없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손과 발은 홍도같이 빨갛게 얼었다. 바람은 눈 위에 칼같이 사나운데, 저런, 인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나님의 保佑之澤이었는가. 아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乞兒를 본 척이나 하고 지나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대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둘러 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 줄 때 나의 마음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너 조반 먹었니? 못 얻어먹었시오. 때는 열한시 반이다. 뜻뜻이 먹어도 떨리어 견딜 수 없는데 아, 어이 생명이 살아 남았노? 엊저녁은 어디서 잤니? 家街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 것도 안 덮고 잤어요. 어제 저녁같이 추운 밤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밖에서 잤다. 밤에 물그릇이 땡땡 언 어제 저녁에 아, 나는 너무도 호강스러웠다. 北風寒雪 추운 밤에 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禍가 있으리로다. 너 혼자 잤니? 네. 아 혼자서 어떻게 밤을 샜노. 엊저녁에 밥은 얻어먹었니? 네. 무슨 밥? 찬밥이오. 그래 찬밥을 주드냐? 네.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아직도 끝이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참회의 눈물이 그칠줄을 모르노라.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났어요... 아,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기한에 우는 乞兒. 네게는 죄가 없다. 네게 무슨 죄가 있으리. 눈물이 앞을 가리워 日記를 쓸 수 없어 수건을 눈에 대고 그냥 한참 울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이 가련한 乞兒를. 네 이름이 무어냐? 億成이에요. 성은 崔가요. 오 崔億成이로구나... 너 예배당 아니? 알아요 예수 믿는 사람 너의 동리에 있니? 많아요 여기도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다만 自己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 하는 現代 교인아. 너에게 禍가 있을진저. 여관 主人이 문을 연다. 이는 주인집 아이가 나의 乞兒 데리고 들오옴을 보고 들어가서 告하였기 때문이었다.
떡국 한 그릇 시켜오라고 하고 나는 조금 未安을 느꼈다... 여관에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乞兒의 얼굴과 手足을 씻기고 얼어터진 발가락을 헝겊으로 처맨 것을 끌르고 씻고 빅쓰를 발러 줄세 나의 憐恤이 극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씻어주고 싸맨 후 나의 內衣와 저고리 입었든 것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기고 버선을 덧 신겨 줄 세, 아, 이는 乞兒가 아니요 我子요 愛兒인 感이 興起하였도다.
그러나 저에게 맞는 것으로 입혀주지 못하고 나의 입었든 헌 것, 큰 것을 억지로 입히매 主님을 이리도 소홀히 대접한다는 感이 끓어올라 적이 민망하다. 주인 마누라 드려다 보더니 버선이 어찌 큰지 長靴 신은 것 같구나 하고 웃고 가는지라. 저녁밥을 같이 먹고 밤에 같이 자다... 나의 옆에서 자는 더벅머리를 보니 이는 꼭 羊과 같었다.
이는 나의 羊이 었든가? 아, 귀엽고 可愛로운 어린 羊아 기한에 울며 거리에서 방황하던 孤羊을 찾었노라. 오 주여 나는 목자 노릇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이 미소가 나타나고 그의 입은 平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 어인 인연인고. 이것이 과연 목자와 양의 인연이었는가?..."
거지 아이를 씻기우고 상처를 매만져주고 먹여서 재워 놓고도 가슴이 아파서 우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그 중에 그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산정현 집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겨울 산정현 집회 때에 회당에서 밤을 세워 기도할 때, 내 맥박은 끝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숨이 곧 끊어질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안수기도를 원하는 이가 한 분 왔습니다. 나는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으니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그 머리 위에 손만 얹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내 심중에 일어나는 감격은 컸습니다. 내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에 남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했습니다. 내가 숨이 지더라도 그 부인은 축복을 받을지니 나는 죽어도 내 대신 주님께서 그를 축복하실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나는 남을 도울 힘이 없사오니 주 친히 축복하옵소서.'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힘이 나고 말문이 터져서 둘이 다 충분히 감격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용도 목사. "예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게"되었다고 고백하는 이용도 목사의 산정현 집회에서 보여준 사랑은 예수의 사랑의 신비 속에 하나가 되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은 자연을 포함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고독해 보이는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만물과도 화합하고 서로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서 자란 이용도 목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안을 줄 아는 모성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려서 그를 폭은하게 감싸주고 안아 주고 업어주던 어머니의 모습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유한 물이 강한 돌을 굴려간다. 유한 골짜기 물이 단단한 굳은 반석을 쪼개고 깨쳐 모래를 만든다. 강한 것(石)의 힘보다 유한 것(水)의 조화가 실로 묘하도다. 유는 우주의 본성이었나니 유가 강을 주관하였나니라. 우주 만유의 본성은 小요 弱이요 柔이었나이다."
이용도 목사는 여성성인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의 본성인 부드러움이 강함을 주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도덕경의 上善若水를 생각하게 합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덕은 물과 같은 것이어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남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 또한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처해 있어야 되고, 비천은 늘 그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용도 목사의 삶은 포용적이고, 여성적이며, 그의 내면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생명력이 있었으며, 優位보다는 無位에 높아짐보다는 낮아짐에 처해 있었습니다.
일제하의 가난과 질고 속에서 몸부림치던 힘없는 민중들의 상처받은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을 줄 알던 사람, 그들의 아픔에 통곡할 줄 알던 사람, 민족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눈물의 설교를 통해 뭇 영혼들을 생명수로 촉촉이 적셔주던 사람,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웃으면서 가야금을 뜯을 줄 알던 사람,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던 사람,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하게 돌진하던 사람, 쫓기고 버림받은 사람을 조건 없이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 오직 예수를 그리워하고 예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무교회 서적도, 사회주의 서적도, 불경 서적도 읽기를 권했던 한없이 열린 영성을 갖고 있던 사람.
이용도 목사는 삶 속에서 철저히 죽어, 죽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 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 솟아오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하나가되는 삶,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깨어져 無가 되고 空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영원히 넘쳐흐르는 생명의 물결 위에 자신을 실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용도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나는 나의 일에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생명강수 넘쳐흐르는 대로 떠나려 갈 모양! 그러다가 어디 걸리면 머무르고 또 쓸려 가면 가다가 깨어지면 깨어지고!"
'홈지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온 힐 -성공의 법칙 (0) | 2019.02.13 |
---|---|
No opportunity is useless (0) | 2019.02.13 |
욥기 1장 1; 2장 1-10, 신학적 관점 (0) | 2019.01.24 |
존 스토트의 성령론 (0) | 2019.01.24 |
행동하는 신학 (0) | 2019.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