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 (부활절 설교) 본문 : 고전 15:16-23절 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탄, 십자가, 부활”은 끊어져도 안 되고 끊어놓을 수도 없는 연결고리다. 성탄이 씨를 뿌림이라면 십자가 고난은 꽃이요, 부활은 열매라 할 수가 있다. 본 설교는 이 중에서 “부활”의 구속사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춰서 증언하고자 하는 것이 내용목적이다. 그리하여 부활 소망의 확신을 줌으로 현재의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 적용목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구속사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강론 성탄절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하고, 부활절은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하고 찬양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성탄절과, 부활절” 중 어느 날이 더욱 기쁜 날이요, 자랑해야 할 날이라고 여겨지십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농부”라 하셨는가? “땅에 씨를 뿌린”, 즉 독생자를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어떻게 됩니까? 마가복음 4:26절을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씨를 뿌려서 추수하는 농사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떠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씨를 땅에 뿌림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고난은 무엇이겠습니까? 씨가 싹을 내기 위하여 터지듯 하는 해산의 고통과 같고, 부활은 열매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말씀하십니다. ㉠ 좀 더 살펴보면 세 마다로 되어 있는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요 3:16) 탄생을 의미하고, ㉡ “죽으면”한 것은 “내가 이를 위해서 이때에 왔나이다”하신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이요, 모든 사람들이 원하지 않지만 사실 고난은 “꽃”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이라는 꽃이 없으면 영광이라는 열매도 없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은 탐스러운 조 이삭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조 이삭 하나에 조가 몇 알이나 될까요? 이는 아주 작은 한 알의 조가 땅에 떨어져서 죽음으로 맺어진 결실인 것입니다. 이는 비단 조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수수이삭도 그렇고 벼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점을 호세아 14:7절에서는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그 독생자 한 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3:16, 15:5)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탄, 십자가, 부활”은 나눌 수도 없고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인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성탄, 십자가, 부활”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초점을 맞춰서 “부활”의 구속사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① 먼저 “부활 장”이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5:4-8절을 보겠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합니다. ㉠ 첫째로 우리 주님의 부활은 “성경대로” 성취된 일이라고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이점이 왜 중요한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러므로 “성경대로”란 최종적인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되었다는 것은 진실한 것이요 믿을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임기응변으로 된 일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통해서 미리 예언하신 성경대로 이루어진 진실한 것입니다. ㉡ 둘째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베드로, 12제자, 500여 형제, 맨 나중에 바울”에게 보여주심으로 확증하신 사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활의 증인”들이요, 이를 증언하는데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② 그러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17-18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합니다. 3마디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임마누엘(성탄)하시고,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해도 만일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 첫째로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합니다. 왜냐하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도리어 잡아먹힌 경우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 2:14) 부활하셨습니다. 여기 구속사적인 중대한 의미가 대두되는데 만일 주님이 부활하시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하는데 신약시대 성도들의 믿음만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다”(히 11:13)한 구약시대 성도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믿음도 헛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만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신구약 성도들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점에 확고해야만합니다. ㉡ 둘째로 만일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못하셨다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런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행한 첫 설교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고 증언합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이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사망에 매여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메여 있게” 되었다면 빚을 갚으러 간 사람이 붙들려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우리 죄가 해결이 안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확고해야 할 점은 신약시대 성도들의 죄만이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구약시대 성도들의 죄는 “속죄제”를 드림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을 것입니다만 아닙니다. 그것은 참 것의 그림자였을 뿐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4)합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4:25절에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신구약의 모든 죄가 다 청산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뜻입니다.
㉢ 셋째로 만일 주님이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합니다. “망하다”의 원어는 “파괴하다, 멸망하다”의 뜻인데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못하셨다면 그를 믿다가 죽은 자들이 부활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점에서도 통찰력이 필요한데 신약시대에 믿고 죽은 성도들만이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약시대에 메시아언약을 믿고 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등 모든 성도들도 “망하였으리니”, 즉 부활의 소망이 없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만합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 부활”의 구속사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게 되셨습니까? 이렇게 부활의 소망을 증언한 사도는 15: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즉 내세가 없다면 구약의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도, 특히 바울처럼 복음을 증언하다가 순교를 당한 자들이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③ 그러면 이제 15:2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선언합니다. ㉠ 첫 마디가 “그러나”합니다. 이는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15:14)하고 가정(假定)했던 말을 단번에 뒤집어버리는 말입니다. 그런 후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합니다. 이점에서 “첫 열매가 되셨다”는 구속사적인 의미가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언하시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 27:51)는 것은 “내가 문이다”(요 10:9)하신 “구원의 문”을 여셨다는 의미가 되고,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란 “부활의 문”을 여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만이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문을 여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15:23)합니다. ④ 이런 맥락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증언한 것은 바울 사도가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성경 어디에 근거해서 이를 깨닫고 “첫 열매”라고 힘 있게 증언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관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추적하여 증언해야만 설교의 깊이가 있게 되고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믿음의 뿌리”가 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4)고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의 비밀”(엡 6:19)을 깨달았다고 말씀하는데 레위기 23장을 통해서 “첫 열매”라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교회에게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지키되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 와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3대 절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절묘한 요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택하신 곳”에 와서 지키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곳”이 곧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었다는 점을 깨닫고는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 3대 절기 중 첫째가 유월절인데 레위기 23:5절을 보겠습니다. “첫째 달 열 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합니다. 이점에서도 사도 바울만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 둘째 절기가 “오순절”인데 23:16절입니다.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라”하십니다. “오십 일을 계수하여”한 50일이 오순절(五旬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 2:1)한,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3:10절을 보면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하고 “첫 이삭”이 등장합니다. 이를 문맥적으로 보면 “첫 이삭”이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끼어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첫 이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가 되셨다”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첫 이삭”, 즉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23:11절에서 “첫 이삭”을 “안식일 이튿날”에 드리라고 명하시는 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예표가 주님께서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마 28:1)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이어지는 23:16절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첫 이삭”을 드린 날부터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주님이 “첫 이삭”, 즉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는 날이 오순절이요,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새 소제”로 상징이 된 신약교회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떡 두 개”를 드리라 하십니다. 구약시대는 12지파를 상징하는 떡 12개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떡 두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엡 2:14)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심으로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엡 2:18)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떡 두 개를 드리라”하신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 3대 절기의 계시를 통해서 이를 깨닫고는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4)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고 담대히 증언했던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유월절, 첫 이삭, 오순절”이 참 것으로 성취가 되고 3대 절기 중 이제 “초막절”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레위기 23:36절을 보겠습니다. 다른 절기들은 7일을 지키라 하셨는데 초막절은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이라”하십니다. 이 “여덟째 날”을 민수기 29:35절에서는 “여덟째 날에는 장엄(莊嚴)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신약성경에서는 “명절 끝날 곧 큰 날”(요 7:37)이라고 말씀하는데 중문성경은 “최대지일”(最大之日)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덟째 날”은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 예표가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 우리는 지금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들인 것입니다. 우리를 영접하려 오실 재림의 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여덟째 날이요, 장엄한 날, 최대지일”(最大之日)인 것입니다. 주님은 재림의 날을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5)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장엄한 날, 큰 날, 최대의 날”입니까? “유월절, 첫 열매, 오순절”을 성취하여주신 하나님께서 하나 남은 “초막절”도 성취하여주실 것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합니다. 주님의 “성탄”은 씨를 심음과 같고 “십자가 고난”은 열매를 맺기 위한 꽃이라면 주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은 추수한 열매를 천국창고에 들임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성탄,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은 끊어질 수 없는 연결고리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형제의 마음 밭에도 “씨”가 뿌려져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익은 열매는 아닙니다.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심”(빌 3:21)으로 우리도 영화로운 열매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되심 성령 증거하시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16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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