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弊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此誠危急存亡之秋也 차성위급존망지추야
선제께서 창업을 반도 못 이루시고 중도에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고 익주는 피폐하니, 지금은 진실로 존망이 달린 위급한 때입니다.
- 先帝(선제): 촉(蜀)의 먼저 임금 유비(劉備). 자(字)는 현덕(玄德), 소열황제(昭列皇帝). - 創業(창업): 나라를 세움 - 崩?(붕조): 천자가 죽음. 붕어(崩御)라고도 함. - 秋(추): 時(시)와 같은 뜻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연시위지신, 불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그러나 [폐하를] 모시고 호위하는 신하들이 안(궁중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하고 뜻 있는 선비들이 밖(전장)에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모두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잊지 못하고 폐하께 갚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 侍衛(시위): 임금을 모시고 호위함 - 殊遇(수우): 특별한 대우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성의개장성청, 이광선제유덕, 회홍지사지기,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불의망자비박, 인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진실로 마땅히 견문을 넓혀 선제께서 남긴 덕망을 빛내고 뜻 있는 선비들의 기개를 넓혀야 하며, 폐하 스스로 변변하지 못하다고 여기시고 사리에 맞지 않은 비유를 들어 충간(忠諫)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 光(광): 빛내다 - 恢弘(회홍): 크게 넓힘. - 妄自菲薄(망자비박): 비박은 변변치 않음. 무릇 스스로 변변치 않다고 여김. - 引喩失義(인유실의): 실의는 의를 잃음, 의를 잃은 비유를 끌어 됨, 즉 사리에 맞지 않은 비유를 들음.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불의이동.
궁중과 승상부가 모두 한 몸이 되어 잘한 자에게 상주고 잘못한 자에게 벌주는 것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 宮中(궁중): 천자가 있는 궁궐 안. - 府中(부중): 승상부(丞相府), 재상이 집무하는 관아. - 陟(척): 공이 있는 자의 직위를 올림. - 罰(벌): 죄를 벌하여 직위를 내림. - 臧(장): 善 - 否(아닐 부, 악할 비): 惡.
若有作奸犯科 及爲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刑賞, 약유작간범과 급위충선자, 의부유사, 논기형상,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이소폐하평명지리, 불의편사, 사내외이법야.
만일 간사한 짓을 하여 법을 어기는 자와 충성스럽고 착한 자가 있으면 마땅히 관리에게 맡겨, 상벌을 논정(論定)하게 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다스림을 밝혀야지 사사로움에 치우쳐 안팎으로 법도를 달리하면 안 됩니다.
- 犯科(범과): 법을 어김. 科는 법률. - 有司(유사): 관리.
侍中侍郞, 郭攸之.費褘.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시중시랑, 곽유지.비위.동윤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시중 시랑인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사려가 참되고 순수합니다.
- 侍中(시중): 天子를 측근에서 모시며 고문(顧問) 응대(應對)하는 직책. - 侍郞(시랑): 궁중의 문호(門戶)를 경비하고 거기(車騎)를 호위하는 직책. - 良實(량실): 선량 성실(善良 誠實). - 志慮(지려): 마음, 생각.
是以 先帝簡拔, 以遺陛下. 시이 선제간발, 이유폐하.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우이위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연후시행,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필능비보궐루, 유소광익.
이 때문에 선제께서 뽑으시어 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물은 연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부족하거나 빠진 것을 도와주고 보충하여 널리 이익이 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 簡拔(간발): 선발함. - 愚(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에 대한 겸칭. - 咨(자): 웃사람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물음. - 裨補(비보): 도와서 보충함. - 闕漏(궐루): 빠짐, 빠뜨림.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장군향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 能. 是以 衆議擧寵爲督. 시용어석일, 선제칭지왈 능. 시이 중의거총위독.
장군 향총은 성품과 행위가 선량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군대의 일에 밝아 두루 아는지라, 예전에 시험 삼아 써 보시고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기에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습니다.
- 向(상): 성씨 상. - 淑均(숙균): 선량하고 공평함. - 曉暢(효창): 밝게 통하고 있다. 자세히 앎, 훤히 앎. - 督(독): 지휘관.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우이위, 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필능사행진화목, 우열득소야.
제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진중을 화목하게 하고 우수한 자와 열등한 자를 잘 가려 각각 알맞은 임무를 맡길 것입니다.
- 營中(영중): 진영 안, 진중. - 行陣(행진): 부대. 行은 25인.
親賢臣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친현신원소인, 차선한소이흥륭야,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친소인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이것이 선한(전한)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후한이 기울어지고 쇠한 까닭입니다.
- 傾頹(경퇴): 기울어 무너짐.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선제재시, 매여신론차사, 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선제께서 계실 때에 매번 저와 더불어 이런 일을 의논하며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때의 일을 탄식하고 통한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 桓靈(환영): 후한의 효환제(孝桓帝)와 효영제(孝靈帝). 환관(宦官)의 세력이 막강하고 정치가 문란하여 국세가 기울기 시작한 때이다. 진번(陳蕃)?이응(李膺) 등의 학자가 환관의 횡포에 반발하자 환관들이 이들을 종신금고(終身禁錮)에 처한 당고(黨錮)의 사건이 일어나 많은 인재를 잃었다.
侍中 尙書 長史 參軍 此悉貞亮死節之臣也 시중 상서 장사 참군 차실정양사절지신야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대야.
시중, 상서, 장사, 참군은 모두 마음이 곧고 신의가 있으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니, 폐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하시고 믿어 주시면 곧 한 왕실이 부흥하는 것을 날을 세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 尙書(상서): 天子와 臣下간의 文書의 授受를 맡은 직책. 당시 장진(張震)이 맡고 있었다. - 長史(장사): 황궁 및 각省의 書記長. 당시 장예(張裔)가 맡고 있었다. - 參軍(참군): 군사회의에 참여하는 직책. 당시 장완(張琓)이 맡고 이었다. - 貞亮(정양): 마음이 곧고 신의가 있음. 굳고 성심(誠心)이 있다. - 計日而待(계일이대): 날짜를 세면서 기다리다. 즉 며칠 이내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難世, 不求聞達於諸侯,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유시감격, 허선제이구치.
신은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난세를 피하여 구차히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구하지 않았는데, 선제께서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면한 세상의 일을 물으시니,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힘써 일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 布衣(포의): 베옷.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입는 옷이므로 평민을 가리킴. - 南陽(남양): 하남성 남양현의 땅. - 聞達(문달): 명성을 떨치고 높은 지위에 오름. - 卑鄙(비비): 신분이 낮음, 비천(卑賤)함. - 枉屈(왕굴): 몸을 굽혀 방문함. - 驅馳(구치): 남을 위해 뛰어 다니는 것.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래이십유일년의.
그 뒤에 당양의 장판에서 조조에게 대패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선제께서는 위급에서 나라를 구하라 명령하셨으니, 그 이래로 21년이 지났습니다.
- 値傾覆(치경복): 나라가 기울어져 뒤집히는 상황을 당함. 値는 當하다. - 敗軍(패군): 헌제 건안 13년(208년) 유비가 당양(當陽)의 장판(長阪)에서 조조에게 패한 것을 말함.
先帝知臣勤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선제지신근신. 고임붕, 기신이대사야.
受命以來,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수명이래, 숙야우려, 공부탁불효, 이상선제지명.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돌아가실 때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으니, 명령을 받은 이래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탄식하며 부탁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신 덕을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 夙夜(숙야): 이른 밤.
故 五月渡瀘, 深入不毛.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고 오월도로, 심입불모.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서갈노둔, 양제간흉,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이부흥한실, 환우구도,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그러므로 오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들어가 지금은 남쪽이 이미 평정되어 무기와 갑옷이 풍족하니, 마땅히 삼군을 권려하여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 조예를 쳐 없애고,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 五月渡瀘(오월도로): 건흥 3년(225년) 5월, 노수(瀘水)를 건너 남방을 평정한 일. - 南方已定(남방이정): 맹획을 평정한 일. - 奬率(장솔): 독려하여 끌고서. - 庶(서): 바란다, 원한다. - 駑鈍(노둔): 걸음이 느린 당나귀와 무딘 칼. 재주가 없음. 아둔함. - 姦凶(간흉):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 즉 위나라를 말함.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 褘 允之任也.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언, 칙유지 위 윤지임야.
願陛下,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원폐하, 탁신이토적흥복지효, 불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령.
若無興德之言 則責攸之 褘 允等之咎, 以彰其慢. 약무흥덕지언 칙책유지 위 윤등지구, 이창기만.
[나라의] 손해와 이익을 짐작하고 나아가 충성스러운 말을 다하는 것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임무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도적을 토벌하고 (한실을)부흥시키는데 실효를 거둘 일을 맡기시어 신이 공훈을 세우지 못하면 곧 신의 죄를 다스리어 선제의 영 앞에 고하시고, 만약 폐하의 덕을 세울 만한 바른 말을 올리지 않으면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 태만을 밝히십시오.
- 斟酌(짐작): 사정을 미루어 살핌. 짐작한다. - 諮諏(자추): 자문(諮問), 웃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의견을 물음.
陛下亦宜自謀,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폐하역의자모,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일을 도모하시어 좋은 방도를 하문하시고, 신하들의 바른 말을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십시오.
- 雅言(아언): 바른 말. 正言. - 遺詔(유조): 임금이 죽을 때 내라는 조서(詔書).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臨表涕泣, 不知所云. 신불승수은감격, 금당원리, 임표체읍, 부지소운.
신이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지라, 지금 멀리 떠나게 됨에 이 표를 올리려 하니 눈물이 나서 말씀 드려야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제갈량의 출사표
선제(先帝)께서는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익주(益州)는 싸움으로 피폐해 있으니 이는 실로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거린 위급한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하되 폐하를 곁에서 모시는 신하는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된 무사는 밖에서 스스로의 몸을 잊음은, 모두가 선제의 남다른 지우를 추모하여 폐하께 이를 보답하려 함인 줄 압니다.
마땅히 폐하의 들으심을 넓게 여시어, 선제께서 끼친 덕을 더욱 빛나게 하시며,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우셔야 할 것입니다.결코 스스로 덕이 엷고 재주가 모자란다고 함부로 단정하셔셔는 아니되며, 옳지 않은 비유로 의를 잃으심으로써 충성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도 아니됩니다.폐하께서 거처하시는 궁중과 관원들이 정사를 보는 조정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벼슬을 올리는 일과 벌을 내리는 일은 그 착함과 악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궁중 다르고 조정 달라서는 아니됩니다.
간사한 죄를 범한 자나 충성되고 착한 일을 한 자는 마땅히 그 일을 맡은 관원에게 넘겨 그 형벌과 상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다스림을 세상에 뚜렷하게 내비치도록 하십시오.사사로이 한쪽으로 치우쳐 안(궁중)과 밖(조정)의 법이 서로 달라지게 해서는
아니됩니다.시중벼슬 시랑벼슬에 있는 곽유지·비위·동윤은 모두 선량하고 진실되며 뜻과 헤아림이 충성되고 깨끗합니다.선제께서는 그 때문에 그들을 여럿 가운데서 뽑아 쓰시고 폐하께까지 넘겨주신 것입니다.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궁중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림없이 그들에게 물어 그대로 따르심이 좋겠습니다. 그들은 빠지거나 새는 일 없도록 폐하를 보필하여 이로움을 넓혀 줄 것입니다.
장군 상총은 그 성품과 행동이 맑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를 부리는 일에도 구석구석 밝습니다. 지난날 선제께서도 그를 써보시고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어 여럿과 의논 끝에 그를 도독으로 삼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사에 관한 일이면 크고 작음을 가림이 없이 그와 의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반드시 진중의 군사들을 화목하게 하고 뛰어난 자와 못한 자를 가려 각기 그 있어야 할 곳에 서게 할 것입니다.어질고 밝은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한 까닭에 전한은 흥성하였고, 소인을 가까이 하고 어진 신하를 머리 한 까닭에 후한은 기울어 졌습니다. 선제께서 살아 계실 때 이 일을 논하다 보면 환제·영제시절의 어지러움을 통탄하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시중상서 장사 참군 자리에 세 사람은 곧고 발라 절의를 지켜 죽을 만한 신하들입니다. 폐하께서 그들을 가까이 하시고 믿어 주시면 한실이 다시 융성하기를 날을 헤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신은 본래 아무런 벼슬 못한 평민으로 몸소 남양에서 밭 갈고 있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목숨이나 지키며 지낼 뿐 조금이라도 제 이름이 제후의 귀에 들어가 그들에게 쓰이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선제께서는 신의 낮고 보잘것없음을 꺼리지 않으시고, 귀한 몸을 굽혀 신의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으시고 제게 지금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물으셨습니다. 이에 감격한 신은 선제를 위해 개나 말처럼 닫고 헤맴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 뒤 선제의 세력이 엎어지고 뒤집히려 할 때 신은 싸움에 진 군사들 틈에서 소임(싸움에 진 군사를 되살리는)을 맡고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서 명(그 위태로움과 어려움에서 구해 달라는)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스물하고도 한 해,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성실함을 알아 주시고, 돌아가실 즈음하여 신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명을 받은 이래, 아침부터 밤까지 신이 걱정하기는 두렵게도 그 당부를 들어 드리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심을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너 그 거친 오랑캐 땅 깊이까지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행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인마도 넉넉합니다. 마땅히 3군을 격려하고 이끌어 북으로 중원을 정벌해야 합니다. 느린 말과 무딘 칼 같은 재주나마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고 한실을 부흥시켜 옛 서울(장안)로 되돌리겠습니다.이는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폐하께 충성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이곳에 남아 나라에 이롭고 해로움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올리는 것은 곽유지와 비위·동윤의 일이 될 것입니다.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제의 영전에 알리옵소서. 만일 폐하의 덕을 흥하게 할 충언이 없으면 곽유지와 비위·동윤을 꾸짖어 그 게으름을 밝히옵소서.폐하 또한 착한 길을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소서. 아름다운 말은 살피시어 받아들이시고 선제께서 남기신 가르치심을 마음 깊이 새겨 좇으시옵소서.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멀리 떠나면서 어린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리며,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나이다(임표체읍 부지소운, 臨表涕泣 不知所云)."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신출귀몰한 군사적•학문적 재주, 놀라운 임기응변, 유연한 처세술, 유비가 죽은 후에도 끝까지 유언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충성심,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는 엄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에 너무나 가슴 깊게 감동을 받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은 제갈량이 위(魏)나라로 북벌을 나서기 전, 유선에게 바친 출사표를 읽을 때라 생각된다.
출사표는 원래 신하가 적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나 왕에게 올리던 상소문이다. 출사표 중에서도 중국 삼국시대의 촉나라 승상 제갈량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빼어난 문장이었다. 이 출사표에는 유비에 대한 충성심, 유선에 대한 애정과 충고, 촉나라에 대한 애틋한 애국심, 출정을 앞두고 그가 느끼는 비장한 결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후 북방 위나라의 땅을 정복하지 못한 채 철천지한을 품고 223년, 63세의 나이로 백제성에서 죽게 된다. 이때 제갈량에게 북방을 정복할 것을 유업으로 남겼다.
제갈량은 17세 된 어리고 철없는 유선을 황제로 모시고 자신은 승상으로 실질적인 촉한을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권력자였지만 권력을 남용하거나 통치하고자 하지 않았다. 끝까지 유비와의 약속을 지켜 스스로 패권을 잡지 않고 묵묵히 유선을 보필함으로써 훗날 진정 충성스럽고 신의있는 신하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는 불철주야 유훈을 받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치기 위해 떠나던 날 아침, 어린 유선에게 나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출사표를 올렸다.
여기에서 그는각 분야의 현명한 신하를 추천함과 동시에 유선에게도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올린다. 이 출사표는 구구절절 충언으로 가득차 있어 그를 일약 충신의 표상으로 만들게 한 유명한 글이 되었다.
出師表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고자 하여 촉제(蜀帝)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출사표라는 말 자체는 신하가 적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나 왕에게 올리던 표문(表文)[1]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제갈량의 출사표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문맥 없이 '출사표'라고 하면 제갈량의 출사표를 일컫는다.
전/후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은 227년, 후편은 228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삼국지(三國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 《문선(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에도 원문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전출사표는 제갈량의 나라에 장래에 대한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주된 내용을 이루며 진정성이 절절히 담긴 문장으로[2] 이밀의 진정표와 함께 표문의 바이블 같은 존재다. 옛말 중에서는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3] 명문장이다.[4]
양나라의 문학가 유협(劉勰)은 문장론의 체계를 세운 문예비평서이자 글쓰기 지침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뜻을 다하고도 문리가 잘 소통되어 표의 정수를 보여준다"라 극찬하였다. 그 외 그가 항상 관중과 비견했던 악의의 보연혜왕서의 전범을 따랐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 부분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그러나, 후출사표는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 중에 있다. 혹자는 제갈각이 북벌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후출사표를 작성했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히 판증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작 의혹이 입증이 되지 않았기에 진짜로 여겨지고 있다.
서경의 이훈편에 기록된 이윤의 표문과 열명편에 나오는 부열의 글 역시 문장이나 내용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출사표이지만 무후의 출사표로 인해 잘 알려지지 못했다. 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안습
중국의 현 중등교과과정 국어 교과서에 1990년대부터 아직까지도 등장하는 예문 중 하나이다. 중국의 8, 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에 최소 한 번 이상 시험 때문에 암기한 기억이 있을 것이며, 유명사립 중학과 같은 경우에 일정 부분 이상의 암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국 청년들은 지금도 출사표의 첫 구절 정도는 암송할 수 있다.
중어중문학과 교육 과정에서 자주 나오는 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관동별곡을 싫어하듯이 중문과 학생들은 출사표를 싫어한다고 한다(...).
이후 출사표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그에 대한 결심과 각오를 나타내는 관용어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론에서도 선거에 참가하는 정치인이나, 어떤 큰 대회를 앞둔 스포츠 감독이나 선수 등의 각오를 인터뷰한 기사 등의 제목으로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사실, 어원을 엄밀히 따지면 출사표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기 때문에 '던지는' 성격의 글이 아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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