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시내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매일 매일 거두어 먹고 살았습니다(출애굽기 16장). 만일 그들이 한 달 먹을 것이나 일 년 먹을 만나를 짊어지고 불볓이 내리는 광야를 걸어갔다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하나님은 매일 매일 아침에 광야에 나가서 식구가 먹을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루 하루 살아나가야 합니다. 미래의 여러 날이나 달이나 해의 짐을 포개 지고 살아간다면 삶의 짐이 너무 무거워 쓰러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루 하루 살아가며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장 34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태복음 6장 11절)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한 달 먹을 양식이나 일 년 먹을 양식을 구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일용할 양식 즉 하루의 양식을 매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아름답고 가치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다 보면 아름답고 가치있고 행복한 일생이 될 것입니다. 그림 하면 빈센트 반 고흐 Vincet van Gogh)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림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자기가 그린 자화상의 귀가 닮지 않다는 친구의 비평에 자기의 귀를 잘라서 비교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모델비를 지불할 수 없어서 자기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그의 자화상에는 한 쪽 귀가 없습니다. 그는 불후의 걸작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일은 작은 일들이 모여서 이루워 진다.(Great things are done by a series of small tings brought together."). 위대한 큰 작품도 수 많은 작은 선과 점과 칠로서 성취된다는 뜻이겠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작은 일과 하루 하루가 모여 위대한 삶을 이루는 것이겠지요.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된 안이숙 여사는 예상하지 못한 8.15 해방으로 갑자기 석방되어 '실패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모든 경험을 "죽으면 죽으리라" 이어서 "죽으면 살리라"는 간증집으로 내었습니다. 그의 작사의 복음송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의 일절은 이러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내일 걱정과 장래 걱정을 다 하지 말고 하루 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살다보면 아름답고 행복한 일생이 될 것입니다. Matthew 11:28-30: Come unto me, all you that are weary and are carrying heavy burdens,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직역,마태복음 11장 28절-30절:지치고 무거운 짐을 지고가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나게 배우라;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영혼의 쉼을 얻으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로는 아무도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거나 원하지 않았다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면 안된다. 예수님은 지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다 초대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초대는 좁은 범위가 아니다. 반면에,그는 초대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셨기 때문에, 양심을 가진 남녀는 나는 초대를 받지 않았거나, 지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이 초대하신 사람은 지적이나 영적인 특권층이 아니다.[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초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장 16절).] 지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남여노소와 모든 지위와 신분의 사람 전부를 의미한다. 외부적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도 불행할 수도 있고 인생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성경의 '부한 청년'의 예로서 예수님이 보이셨다(마태복음 19장 16절-22절). 그는 "근심하며 돌아 갔다". 외적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비참하게 불행한 예가 많다. 우리와 나를 초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사람들은 절망에 처할 때 조건 없이 완전히 믿을 수 있고, 고린도전서 13장 7절의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를 그리고 나를 초대하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인류의 구주이시다. Come to me, all who labor and are heavy-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Everything depends on this "I"-not as an idea , not as a word, not as preacher, but I, the human being, who knows each one of us, who has suffered and struggled though everything that we have to suffer, the human person Jesus, our Redeemer.(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모든 것은 이 "나"에게 달려 있다, 한 개념이 아니라, 한 단어가 아니라, 한 설교자가 아니라, 그러나 우리 각자를 아시고, 우리가 고난 받아야 할 모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시고 우리의 구속자이신 "나"에 달려 있다.) 이 "나"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도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짐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한 방법은 그 사람이 짐을 지는 것을 도와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첫째 방법을 행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짐이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가신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인간의 한 몫인 것과 우리의 십자가로 우리가 성화된다는 것을 아셨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지우신 짐을 예수님은 제거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짐을 잘 지는 방법을 보여 주셔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신다. "나의 멍에를 메고 그리고 내게서 배우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멍에는 또 다른 짐이다. 그러나 멍에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편리한 도구이다. 멍에 없이 짐을 끌면 소는 상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짐은 우리의 짐보다 수 천배나 더 무겁다. 그는 세상 사람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가셨다. "내게 배우라"는 말씀은 내가 지는 것 같이 지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멍에를 지셨다. "온유"의 뜻은 하나님이 어떠한 짐을 지우시던지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짐을 지우시고 그리고 끌고 가게 하신다. 겸손이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시고 그리고 종처럼 섬기는 사람으로 사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주와 선생"이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리고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을 나르는 사람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누가복음 22장 27절). 우리가 예수님의 삶의 자세를 가지고 인생의 짐을 진다면 우리는 쉼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인생의 짐을 지면 평안을 누리고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는 완전한 쉼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나란히 인생의 짐을 지고 함께 가신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인생의 짐을 지고 갑니다. 인생의 짐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잊을려고 술이나 마약이나 쾌락에 빠지는 것도 인생을 망가지게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의 짐을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 갈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장 24절). 예수님은 인생의 짐을 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초대하셨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초대를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 오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만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졌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유일한 사람이지만 세상 사람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최악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최대의 고통 가운데서 욕과 조롱과 버림을 받으면서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잔으로 여기시고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사명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감당하셨습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위로받아야 하며,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인생의 짐을 지고 가면 큰 힘과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칼 힐티는 "행복론"에서 인생의 행복에 가장 좋은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50여년 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기억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의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출처] 502.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설교 묵상:'내게로 오라'(Come unto Me)-마태복음 11장 28절-30절-요약과 묵상 (221)|작성자 doctor ro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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