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철원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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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8.30 09:13 / 수정 : 2007.08.30 09:13
- ▲ 철원의 대표 명소로 꼽히는 고석정 전경. 한탄강 강변에 솟은 고석암과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일목대왕의 호령소리 들어보았는가”
통일조국 대동방국의 수도를 꿈꾸는 땅
강원도 철원(鐵原) 고을은 1,100여 년 전 삼한통일을 꿈꾸던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던 벌판이다. 또한 50여 년 전에는 남북으로 갈린 배달겨레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지금은 그 상흔인 휴전선으로 갈려 있는 변경 고을이다.
하지만 화산암이 분출되어 이루어진 용암대지 철원평야, 그리고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漢灘江)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아름다운 고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원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한다.
철원의 위치부터 살펴보자.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면 대략 중간쯤에 위치하는 철원은 강원도 땅에선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화천군, 서쪽으로 경기도 연천·포천군과 붙어있고, 남쪽에는 역시 포천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 강원도의 철원·평강·김화군과 접한다.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에 철원을 돌아보면서 이 고을의 행정구역이 조금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과사전 등 자료를 뒤져보면 철원의 행정구역은 철원·김화·갈말·동송읍과 서·근남·근북면 이렇게 4읍 3면으로 이루어졌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철원 관내도를 보니 이보다 많은 4읍 7면이었다. 철원 동부의 근동·원남·원동·임남면 이렇게 4개 면을 빠뜨렸던 것이다.
헌데 가장 정확해야할 철원군 홈페이지 ‘연혁’에서는 4읍 3면, 그 아래쪽 ‘일반 현황’에서는 4읍 7면이라고 더 헷갈리게 설명하고 있다. 행정구역이 최근에 변경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는 아마도 동부의 4면이 대부분 민통선 안에 속해 있어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복잡한 과거(?) 때문에 철원은 여느 고을과 달리 조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지금의 철원 내부를 들여다보면 철원은 대체적으로 구철원·신철원·김화 이렇게 3개의 시가지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철원의 중심지인 철원읍과 동송읍 이평리 주변을 구철원이라 하고, 철원군청 등 관공서가 자리한 갈말읍 신철원리 주변을 신철원이라 한다. 동부의 김화쪽은 읍사무소가 있는 와수리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
세 군데 모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게 특이한데, 이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휴가 나온 군인들과 면회 온 가족들의 교통 편리를 위해서다. 서울 수유역에서 철원쪽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까닭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요즘 흔히 ‘철원’이라 하면 철원읍이 아니라 갈말읍의 신철원리를 지칭하고, 철원읍 일대는 ‘구철원’이라 하여 따로 구분하여 부른다는 사실도 새겨두자.
철원은 지금은 비록 휴전선으로 막혀 있는 변경 고을이지만,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교통의 요지였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여 관북지방과 기호지방,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을 잇는 중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땅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진경산수의 선구자인 겸재 정선도 금강산 가던 길에 철원 삼부연폭포를 화폭에 담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에도 한성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큰 길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 ▲ 한탄강 물줄기 중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순담계곡. 요즘은 래프팅을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매우 붐빈다.
교통이 편리해서일까? 아니면 강원도임에도 널따란 평원이 펼쳐진 때문일까? 철원은 강원도 땅임에도 웬일인지 경기도 같은 느낌이 든다. 생활권도 같은 강원도로서 도청 소재지가 있는 춘천이라 아니라 경기도 연천이나 포천, 서울 등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수피령을 경계로 철원과 춘천을 잇는 56번 국도는 아직 구불구불 도는 왕복 2차선이지만, 의정부~포천~철원을 잇는 43번 국도는 철원 지나 김화까지 왕복 4차선으로 뻥 뚫려 있다.
- ▲ 직탕폭포 아래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이곳은 철원 주민들의 대표적인 천렵 장소이기도 하다.
그 43번 국도를 시원하게 달려서 들어선 철원. 여름철 주말의 철원은 생동감이 넘친다. 고석정을 찾는 사람들, 안보관광지 견학을 하는 사람들, 또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타려는 청춘들이 서로 얼키설키 뒤얽혀 녹색으로 물든 넉넉한 들판마저 살짝 들뜨게 한다.
신철원에서 삼부연폭포·순담계곡을 둘러보고, 구철원과 신철원을 연결하는 463번 지방도를 타고 한탄강을 건넌다. 여기엔 튼튼한 철제 다리 하나와 낡은 콘크리트 다리 하나가 나란히 사이좋게 있다. 한탄대교와 승일교다. 요즘엔 모든 차량이 2002년 건립된 한탄대교를 건너지만, 그 이전만 해도 승일교를 건너다녔다. 승일교-. 여느 지방이라면 새 다리를 지으면서 부셔버렸거나 그냥 한쪽에서 보조다리 역할로 전락했을 테지만, 이 다리는 난간에 화분까지 갖다놓고 단장한 것을 보면 제법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 한탄강은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현무암 평원을 굽이도는 거대한 협곡이다.
그렇다. 승일교는 남북 합작(?)으로 이루어진 다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북이 사이좋게 힘을 합친 게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중에 지어졌다. 원래 다리가 있는 이 지점은 한탄강의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나루였다. 예전엔 얕은 여울에 돌다리를 놓아 사용했고, 수위가 높아지면 나룻배를 이용해 건넜다 한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한탄강을 두고 지금의 신철원과 구철원 사이에 길이 나 있는데, 아마 이곳인 듯하다.
여기에 현대식 다리를 착공한 것은 남북이 3·8선으로 갈려 있던 1948년 8월. 북한땅이었던 당시 철원·김화 주민들은 5일 교대제로 운영되던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총동원되어 이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6·25전쟁 초까지 다리 기초공사와 2개의 교각을 세워 북쪽 부분은 거의 완성되고 남쪽 부분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뒤 휴전선으로 나뉘면서 남한에 속하게 되자 국군에 의해 나무로 임시 다리가 놓였다가 1958년 12월에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