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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歷史神學

歷史神學方法-헤겔을 중심으로

by 이덕휴-dhleepaul 2018. 1. 14.

歷史神學方法 - 헤겔을 중심으로

 

 

이덕휴의 신학포럼(http://blog.daum.net/dhleepaul)

 

 歷史神學方法-헤겔을 중심으로

 역사신학이라는 명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장되어 왔다. 이유는 역사를 서술하고 정의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헤겔은 역사고찰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논의하였다. ① 근본적 역사, ② 반성적 역사, ③ 철학적 역사로 구분하였다(Hermann Glockner: G. W. F. Hegel, S mtliche werk, vol. Ⅱ.,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mit einem Vorwort von Eduard Gans und Karl Hegel. Stuttgart : Frammannes Verag, 1928. 김종호 역,『헤겔』『역사철학강의』, 서울 : 삼성출판사, 1990, pp. 60-67 참조.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으로서, Burleigh Taylor Wilkins, Hegel's Philosop- hy of History, Cornell univ. press, 1974. 최병환 옮김,『헤겔의 역사철학』, 서울: 서광사, 1995, p. 26 이하). 


 먼저 근본적 역사는, 그들의 눈앞에서 현존하는 사건, 행위, 정세를 관념의 작용으로 개조한다. 예를 들어 헤로도투스, 투키디데스(Thukydides, 471-401 B.C;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로서 헤로도투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양대 역사가이다. 저서로서 펠로포네소스 전쟁사가 있다) 등을 지칭하면서, 이 역사가들의 서술은 자기가 눈앞에서 보고 자기의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을 정신적 관념 즉, 표상의 왕국에 이입시킨 사람들로 분류하였다. 이들은 눈앞의 현존사실에 착안하는 관계로 역사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뻗어나갈 수 없다.


다음 반성적 역사의 서술은, 특수한 시대에 한하지 않고 현재의 시대를 초월하여 정신에 관해 시도되는 역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각 민족의 민족사라든가 세계의 전 역사를 개관하는 소위 일반사와 도덕적 교훈을 목표로 진술되는 실용적 역사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비평적 역사를 이른바 고등비평적 역사의 관점으로 포착하여 거론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다음, 철학적 세계사에로 나아가는 전문적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적 역사 곧 역사철학에 관하여, 헤겔 철학의 방대한 城으로의 입문서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철학강의"를 시작한다.  


 칼 바르트의『교회 교의학』의 英譯者이자 풀러 신학대학원의 역사신학자인, 브로밀리(Geofrey W. Bromiley)도 말하기를, 理想的인 歷史神學이란, 人間의 可能性을 超越한다. 참으로 이상에 대한 관념조차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상에 근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적으로 부족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고 하면서, 역사신학을 저술하는 것은 모험을 수반하고 있으며 목표, 방법, 자료, 접근에 대한 일련의 선택들에 기초한다고 토로하였다(Geoffrey W. Bromiley, Histor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서원모 옮김,『역사 신학』,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사, 1994, p. 27).


 모든 목표는 방법을 결정한다. 따라서 역사신학은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존재할 수 있다. 모든 인물과 사건을 개괄하려고 시도하는 신속한 개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서 보다 큰 야망을 가지고 모든 인물과 사건들에 모든 것을 언급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 있는 이론들을 개진하거나 이러한 방식으로 자료들을 배열하고, 전문가들에게 애호되는 비결정적인 끝없는 분석들, 반명제, 종합들을 출발점으로 삼는 해석적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언명된 것들이나 기록된 것의 근원이나 이유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여 최종적으로는 영향 및 상호작용의 연쇄가 출현하도록 하는 설명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방식들은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신학자의 작품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씌어지는가 하는 서술의 방법과 목적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역사신학의 문제 제기와 위상은 사실적인 역사를 등한시하고서는 제대로 규명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이다.


 역사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확정된 정의는 없다. 역사신학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체계적이어야 한다. 체계적인 관점에서 역사철학은 역사를 의식형태, 문화유산 또는 학문으로 고찰한다. 즉 역사가 의식에 적합하게 주어지는 방식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고, 역사를 개인이나 집단의 삶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역사적인 것으로 고찰하고 역사의 구성형식, 서술형식 그리고 설명형식을 지식론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관심과 역사적인 입지점의 차이에 따라 역사신학은 탐구의 중점을 달리할 것이며, 또한 인류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체계적인 물음과 내용해석 사이에 다양하게 자리 매김 하게 될 것이다.


 역사신학에 대한 이해를 역사적인 틀 안에서 시도한다고 할 때, 이러한 태도는 이념사적인 관심에서가 아니라 사태의 특수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역사신학이 지닌 특수한 역사성을 통찰하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역사가는 언제나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아서 평가를 하되 무조건 책에 쓰여진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누가 저자인가 또는 그 저서의 권위는 학계로부터 인정받는데 인색한 점은 없는가 다시 말하여 저술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증 가능한 합리적 바탕을 전제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증거 자료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역사가의 임무는 스스로 자기의 객관화된 비평적 해석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연구를 시도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에 관한 모든 서적을 일일이 탐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간적 낭비일 뿐 아니라, 그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 객관적인 비평의 혼미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권위 있는 인물 비평지나 세계적인 인물사전을 탐색하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연구된 서적을 봄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쌓은 후에 그에 대한 연구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신학의 연구 주체인 신학자는 먼저 신학적 연구방법이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신학의 연구방법은 언제나 세속적이면서도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대두된다. 즉, 개연성과 가능성을 근거로 한 지식의 축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의 대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만, 敎會史이든 敎理史이든 역사적 사건의 진행과정이나 의미를 자연과학적이든, 인문 사회과학적이든 세속인이 세속적 안목으로밖에 바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하다보면 결국 일반사와 교리(회)사와의 차이가 좁혀지게 마련이다.


 현대에 가장 저명한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시카고 대학의 敎會史家 마틴 마티(Martin E. Marty)가 토로 한 바에 의하면, 일반역사와 교회사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Martin E. Marty, A Short History of Christian Church(N. Y.: Merdian Books, 1959. 참조). 만약 일반 역사가들이 자신들이 중세사나 근대의 유럽사 또는 미국사를 보는 것과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무 할 말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20세기에는 역사학이 전문화되어 학문적인 기준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어떤 역사가가 이를 어길 때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역사가에게는 자기집단에서 준수해야 할 규칙이 있다. 그래서 전문성에 대한 동료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학자로서의 존경심을 상실하고 만다. 이런 요인이 歷史家 개인이 문화, 정치, 혹은 종교로부터 받는 영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역사가가 어떠한 성향을 가진다는 불행한 경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억제하도록 노력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역사가의 개인적인 태도가 그의 역사서술에 반드시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유익을 줄 수도 있다.


 훌륭한 역사서술은 어떤 역사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기 위해 사료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역사가 자신의 문제는 두 사람의 역사가가 동일한 사료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동일한 시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각 시대는 당대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이유이다.

[출처] 이덕휴의 신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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