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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도덕과 윤리의 차이 초월과 내재

by 이덕휴-dhleepaul 2019. 12. 1.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을 중심으로

 

3절 도덕과 윤리의 차이 초월과 내재

 

우리는 위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윤리학, 나아가 철학 일반의 개념을 주체 개념을 중심으로 다시 이해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윤리와 도덕에 개념에 관한 철학적 명료화를 시도하고, 둘째로 주체와 철학의 관계에 고찰해 봄으로써 철학 일반의 개념을 재검토할 것이다.

우리가 앞서 ?도덕 내지는 윤리?라는 단어로 두 단어를 뭉뚱그려 설명한 반면에, 지금부터는 도덕과 윤리를 엄밀하게 구분하여 사유하고자 한다. 앞에서 우리가 주장한 것은 도덕 내지 윤리가 존재의 가치를 판별하는 판별 기준이며, 규범의 영역에 자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둘은 도덕과 윤리의 공통된 특성으로 인정할 만하다. 우리가 무어(G. E. Moore)의 『윤리학 원리』를 따라 윤리학을 "좋은 것에 대한 일반적인 탐구"로 정의한다면 말이다.[각주:27] 위의 정의를 윤리학에 관한 '안전한' 정의로 인정할 때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도출해낼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가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단번에 말할 순 없지만, 좋은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윤리는 가치의 판별 기준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의 판별 기준은 곧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치의 판별 기준은 우리의 실천적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가치를 지닌다면, 우리는 또한 그것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가치 있는 것을 하나의 규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과 윤리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전개된 니체의 도덕 비판의 관점을 따라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구분하고자 한다. 나는 도덕을 주체와 무관한, 혹은 주체의 외부에 있는 초월적인 규범으로 정의한다. 니체가 파악한 도덕, 즉 Moral의 핵심은 "너는 ~을 해야 한다."는 형식에 내재한 절대적 당위성이다. 우리는 도덕의 핵심을 초월성과 당위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도덕은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정당성을 신과 같은 초월자로부터 부여받는다. 십계명은 신의 명령에 의해 보증되고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명령이 절대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모든 도덕적 명제는 당위의 형식을 지닌다. "~을 해야 한다.", "~을 하지 말아야 한다."의 명제는 모든 보편적 상황에 적용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가 어떤 도덕을 받아들일 경우 주체는 도덕이 요구하는 바를 거부하거나 선택할 권리를 전연 갖지 못한다. 도덕은 주체에게 있어 초월적이기 때문에 주체의 외부에 존재하며, 심지어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도덕의 핵심 개념인 선과 악이, 그리스도교의 성립 이후에 등장한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선(Gut)'과 '악(Böse)'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좋음(Gut)'과 '나쁨(Schlecht)'이라는 개념만이 있었다.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사람의 긍정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으로 '좋음'을 사용하였고, 그것에 대한 결여 내지 부족으로써 '나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각주:28] 이렇게 정도의 차이로 표현되던 가치 개념은 그리스도교에 이르러 근본적으로 변화를 맞는다. 니체는 도덕을 가치를 지니지 못한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단으로 이해한다. 약자는 자신의 힘을 강자만큼 고양시킬 능력이 부족하기에 강자를 '악'으로 정의하고 그와 대비되는 자신을 '선'으로 놓는다.[각주:29] 따라서 니체가 보기에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에 불과하다.[각주:30] 첫째, 신이라는 초월을 가져옴으로써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면피하기에 저열하며, 둘째, 당위를 통해 강자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에 삶에 유해하며, 셋째, 강자와의 대립을 조건으로 원한 감정에 의해 성립되기에 자립적이지 못하고 노예적이다.

반면 니체는 주인 도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윤리(Ethics)의 영역으로 이해한다. 윤리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기술이며, 주체가 존재 변형을 위해 내적으로 부과하는 특정한 가치와 규범을 의미한다. 따라서 윤리는 자기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데 그 핵심이 있고 규범이나 진리 역시 이러한 정의 아래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윤리는 주체와 무관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일차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에게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윤리가 그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으므로, 윤리를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이해해도 똑같이 좋을 것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과 동일시한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윤리의 당위는 주체가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기 위한 실천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할 수 있고, 그렇기에 존재 변형을 이룬 주체에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자면, 도덕과 윤리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적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체인 내가 없어도 도덕은 존재하며 이 경우 "주체가 어떻게 삶을 잘 살 것인가?" 보다는 진리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윤리는 진리보다도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주체의 삶에 방점이 찍혀 있다. 도덕의 정당성이 초월로부터 부여된다면, 윤리의 정당성은 삶으로부터 부여된다.

내가 힙합의 윤리적 가능성에 관한 고찰을 시도한다 했을 때, 이는 힙합의 구체적인 두 양식, 진실과 고백이 주체에게 있어 실천적 변형의 조건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을 시도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물음의 필요성은 철학 개념의 재검토를 통해 정당화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늘날의 철학이 지닌 의미를 주체와의 연관 속에서 다시 파악해볼 수 있으며, 이러한 철학의 입장에서 주체의 윤리적 규범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구체적 저항과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탐구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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