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그리스도교 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개신교는 물론이고 가톨릭에서까지도 주저 없이 칼 바르트(Karl Barth)를 이야기할 것이다. 현대신학은 바르트와 함께 출발하였으며 바르트에 의해서 방향이 잡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바르트는 고등비평학에 의해 공격받은 성서의 권위를 재확립하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구별되는 새로운 신정통주의 신학의 흐름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그는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을 자신의 교의학 전면에 내세워 이전의 어느 신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신학 체계를 제시함으로써 ‘계시론’, ‘신론’, ‘예정론’, ‘화해론’ 등 그리스도교 교의학의 핵심적인 영역에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들을 이루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르트는 20세기 초의 두 차례 세계대전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물이다. 그는 나치 시절 히틀러에게 대항한 독일고백교회의 지도자적 인물로서, 전 세계 개신교 교회를 향해 나치와 싸울 것을 호소하였던 개신교 저항운동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저술은 초기작인 『로마서 강해』 제1판 및 제2판과 그의 신학을 집대성한 『교회 교의학』이다. 특히 『교회교의학』은 바르트 신학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전체 13권, 총 9250면으로 이루어진 대단히 방대한 저서이다. 그러나 현대신학에 있어 바르트가 끼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들에 접근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고서는 쉽지가 않다. 엄청난 분량과 내용의 난해함으로 인해 위의 저작들만을 다 읽는 일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바르트는 이 작품들 외에도 수많은 강연을 하였고 논문도 대단히 많이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평가받는다.
『교의학개요』는 바르트가 독일의 본(Bonn)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옮긴 책이다. 그는 이 강의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의 순서에 따라 자신의 교의학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바르트의 다른 주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얇은 분량임에도 전체 바르트 신학을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하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 이미 사도신경 자체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라는 삼위일체적인 고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안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믿는 바를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바르트는 이 간결한 신조의 내용을 따라가며 각 구절들마다 그의 교의학의 중심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이 책만으로는 바르트가 신학사적으로 이룬 여러 성과들을 다른 신학들과의 비교를 통해 부각시키는 어렵다는 아쉬움은 있다. 바르트가 다루는 주제의 폭과 논의의 깊이가 상당한 반면, 이 문제들의 배경이 되는 여러 신학적 논의들은 책 속에서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분량에 비해서는 바르트의 핵심 사상들이 잘 요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바르트의 『교의학개요』을 통해 그의 신학이 지닌 의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그리스도교 내에서 바르트가 이룩한 신학적 혁명성에 대한 논의가 포함된다. 그러나 나는 바르트의 사유가 지닌 신학적 의의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호소할 수 있는 바르트 신학의 철학적 가치 역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이 글은 바르트의 신학을 철학으로서 재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특별히 나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하길 거부한 바르트 신학의 면모를 ‘이해’의 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볼 것이다. 바르트에게서는 인간 주체의 선입견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타자성에 대한 경험이 강조됨으로써 ‘이해’가 주체를 붕괴시키는 사건으로서 묘사된다. 이러한 사고는 바르트 신학의 세계 해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타자성에 우위를 두는 바르트의 신학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주체의 조건과 상황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신학에서는 주체의 현실적 제약을 넘어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있었던 계약과 선택으로부터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가능해진다. 나는 바르트의 이와 같은 세계 이해가 그 근본에서 무한한 사랑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함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바르트 신학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의 근거 바르트 신학을 철학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신학에 대한 철학의 월권이라 비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르트는 결코 그리스도교가 철학으로 해석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대신학에서 신학이 철학화되는 경향을 극렬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불트만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수용하여 성서를 실존론적으로 이해하길 시도하였을 때, 틸리히가 철학의 물음에 대답하는 신앙으로서 문화신학을 제시하였을 때, 바르트는 이들의 신학이 이웃학문들을 곁눈질하며 비틀거리고 있다고 비난했다.1 바르트는 신학을 인간의 경험과 신념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확고히 세우고자 한 학자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바르트의 신학이 지닌 핵심적인 특징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바르트의 신학을 철학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이 글은 시작부터 이중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철학으로부터는 “철저히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바르트가 어떠한 철학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대로 신학으로부터는 “철저히 철학을 거부한 바르트가 어떻게 철학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와 같은 비판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비판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철학적’이라는 말이 어떠한 의미인지 해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바르트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할 때, 그의 신학은 철학의 다양한 분야들 가운데서도 ‘철학적 해석학’의 한 체계로서 읽혀질 것이다. 나는 바르트 신학이 그 자체로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신학 체계라고 생각하지만 해석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였을 때 더욱 풍부하고 호소력 있는 함의를 지닌 사상이라고 믿는다. 해석학적 관점으로 바르트 신학에 접근한다는 이야기는 다시 두 가지를 층위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1)해석학이란 ‘방법론적 탐구’로서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의 체계인 동시에, (2)‘존재론적인 탐구’로서 “이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학문을 통칭하여 의미한다. 독일 본(Bonn) 대학 본관 건물 방법론으로서 해석학: ‘신학(Theology)’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로 이미 일종의 해석학이다. 신학은 단순히 신에 대한 사변적 탐구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신학은 정신분석학, 종교현상학, 철학적 인간학 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담론 속에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며, 그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과 갈등하는 다른 해석들과 경쟁한다. 바르트 신학 역시 이와 같은 신학 일반의 특성상 해석학으로서 여겨질 수 있다. 특별히 바르트의 경우는 영원 이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기규정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통해 창조세계에 대한 강력한 긍정의 해석을 시도한다. 바르트 신학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되어 있다. 그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인간존재의 의미, 창조세계의 의미, 영원한 사랑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나는 바르트가 제시하는 세계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이 호소력 있는 사상이라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존재론으로서 해석학: 뿐만 아니라 각각의 해석학들은 그들이 마주치는 세계 안의 여러 대상들에 대해 개별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개별 해석학들은 인간, 사회, 윤리, 자연, 타자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그들 나름의 해석 근거와 방법 등을 지니고 있다. 그 해석의 원리들은 해석을 통해 세계 전체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가령, 인간존재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할 경우 그 이해의 구체적인 내용에 앞서서 “이해하다.”라는 과정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제된다. 먼저 이해에 대한 입장이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제시되고 난 다음에 여기에 근거하여 해석을 위한 체계를 세울 수 있다. 구체적인 이해 내용에 선행하는 이해 자체에 대한 고민은 개별 해석학에서 항상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 전제될 수밖에 없다. 이해 자체에 대한 이 고민은 더 이상 올바르거나 잘못된 이해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후설이 지향성 개념을 바탕으로 현상학을 정립한 이후로 대상세계가 우리에게 자연과학적 실재로서가 아니라 ‘의미’로서 주어진다는 점은 철학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우리는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 세계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우리의 이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며 다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세계를 객관적인 지점에서 바라보고 이로부터 철학의 문제들에 대해 보편타당한 답을 이끌어내려는 방식의 시도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상이한 해석학들 사이의 경쟁을 중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모든 개별 해석학들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의 구조에 대한 논의는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자연과학적 세계 해석에 근거한 근대철학의 논의들을 비판하고 다양한 해석들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해의 근본 지평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르트(왼쪽)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에드워드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오른쪽) 따라서 바르트 신학을 철학적 해석학으로 읽는 것은 비록 바르트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난 시도라 할지라도 근거 없는 일이 아니다. 신학 자체가 세계에 대한 해석학이며, 해석학으로서 바르트 신학 역시 근본에서 이해의 문제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 해석에 반대하여 근대적 인간학의 틀 속에 들어올 수 없는 성서의 내용들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해석학적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바르트에게 이해란 철저하게 텍스트 앞에서 내가 지닌 기존 입장과 사고가 부서지는 경험이다. 주체의 상황과 믿음을 텍스트에 투영시켜서 텍스트를 나의 맥락 속에 안전하게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진정한 의미의 이해가 아니다. 오히려 이해는 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들어오는 텍스트로서의 타자 앞에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구체적인 이해의 방법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세계에서 살아나가는 방식 그 자체이다. 바르트가 초기작인 『로마서 강해』 제2판에서 ‘전적 타자(Der ganz Andere)’로서 하나님을 주장하여 말년에 이르기까지 자연신학에 반대한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체의 지평을 부수는 타자에 대한 경험이 하나님의 타자성을 주장하는 그의 신학적 해석학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바르트 신학의 배경: 아래로부터의 신학에 대한 반발
20세기 초 여러 신학자들은 당시 사상계를 주름잡았던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과 같은 분야들의 성과를 신학에 접목시켜 현대적인 감각의 신학 사상을 전개시키려 하였다. 신학자들은 새로운 학문적 경향들이 그리스도교에 제기하는 여러 의문들에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더러, 동시에 그 학문들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오늘날에 재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현대신학이 그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참신하고 폭넓은 논의를 전개시킬 수 있었던 것 역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학문적 발전들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성서비평학의 발달은 성서 본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방법들을 제시해주었고, 비슷한 시기에 칸트의 영향을 받은 독일 관념론 철학 역시 교의학에 자극을 주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종교학의 발전, 무의식의 발견, 실존주의의 등장, 현상학 운동,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상들이 학문계에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신학적 논의들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신학의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보았을 때 바르트는 꽤 보수적인 신학자에 속한다. 바르트는 현대의 학문들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교를 설명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와 같은 경향들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바르트는 말 그대로 ‘신학자’이다. 그는 현대의 학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따라서 바르트 신학은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노력도 아니며 현대사회를 위한 세계관을 제공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전체 신학 여정을 통해 하나님 말씀만을 중심으로 삼는 신학을 전개시키고자 한다. 다른 신학자들이 신학 밖의 학문 분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현대사회에서 신학이 지닐 수 있는 의의를 모색하였다면, 바르트는 성서와 그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끊임없이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바르트의 태도는 우리에게 의문을 남긴다. 바르트와 만나는 독자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바르트에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신앙의 문제를 두고서 그와 대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신앙인에게 바르트 신학이 던질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른 신학들은 다양한 학문 영역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바르트 신학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바르트 신학은 단지 그리스도교라는 울타리 속에만 머무르는 담론일 뿐인가? 오늘 우리가 바르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바르트가 오늘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바르트가 이러한 신학적 성향을 견지하였던 이유는 신학사적 관점에서 해명될 필요가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바르트 신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여러 철학적 배경들과 시대적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정통신학의 내용들을 옹호하는 바르트의 입장은 얼핏 편협하고 극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자기 시대의 신학과 사회에 대한 바르트의 치열한 고민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신을 설명하는 아래로부터의 설명 방식을 특징으로 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태도 속에는 신앙을 내면화하려는 경향, 윤리에 대한 강조, 인간을 바라보는 낙관주의적 전망,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바르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자유주의 신학이 이론적인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실천적인 영역에서까지도 어떻게 실패하게 되는지를 직접 목격하였던 신학자였다. 바르트의 스승들이자 당대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던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빌헬름 헤르만(Wilhelm Hermann)은 세계1차 대전 당시 빌헬름 2세의 전쟁선포에 대해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실패를 극복하고 자기 시대에 다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세우기 위해 이전 세대와 동시대가 제시하는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따라서 바르트 신학의 의의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신학사적인 배경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록 바르트가 철학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신학은 당대의 철학적 사조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보수적인 입장에서 신학을 전개했을 지라도 그의 신학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대적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은 근대철학의 출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근대철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코기토(Cogito)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의심할 수 없는 모든 지식의 근거로 ‘생각하는 사물(res cogitans)’인 인간을 철학의 출발점에 올려놓았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선언은 단순히 그 자신의 개인적인 통찰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철학의 전반적인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근대철학의 중심적인 탐구는 인식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대상에 관해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철학자들이 더 이상 외부세계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도 그 세계를 매개함으로써 받아들이는 인간의 인식 능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근대철학에서는 의식 활동을 하는 인간이 외부세계 전체의 확실성을 근거 짓는 자로서 출현한다.
이전까지 존재하는 것들의 제1원인으로 여겨져 왔던 신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 근거를 인간에게 두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데카르트에게서부터 나타난다. 데카르트의 신은 비록 존재의 순서에서는 인간보다 앞서지만, 인식의 순서에서는 인간의 자기의식보다 이후에 위치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생각하는 사물’로서 인간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조차도 주체로서의 인간에게 귀속된다. 데카르트는 이렇듯 신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인간의 자기의식으로부터 발견함으로써 이후의 신학이 인간학적으로 변모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신은 점차 근대 철학자들이 상정한 인간학의 틀을 통해서 재단되어진다. 인간의 이성, 도덕, 종교체험, 자유 등이 신을 근거 짓는 지평으로서 제시되었다.
인간으로부터 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은 칸트(Immanuel Kant)에게서도 나타난다. 바르트 이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규정하여 우리가 이성을 통해 의미 있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인 ‘현상’과 그것을 넘어서는 ‘물자체’를 엄밀하게 구분하였다. 인간 이성이 감성형식인 시공간과 지성형식인 범주를 간과한 채로 물자체의 영역에 관해 직접 말하고자 하는 시도는 ‘독단’으로서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 형이상학에서 중요한 주제들로 다루어지던 ‘신’, ‘세계’, ‘영혼’이라는 주제들은 더 이상 순수이성의 영역에서 논의 가능하지 않은 것들로서 분류되었다. 다만 칸트는 이를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곧 윤리적인 영역에서 인간에게 요청되어지는 이념들로서 자리 잡도록 하였다. ‘최고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 이성에게 무한한 도덕적 진보의 노력이 요구되므로 ‘영혼의 불멸성’이 필요하며, 또한 ‘최고선’에 따라 세상을 운영하고 선과 악을 보상할 수 있는 ‘신의 존재’ 역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렇듯 우리가 신의 존재를 인식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대신 윤리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상정해야 한다고 제시함으로써 ‘신’과 ‘윤리’라는 영역을 밀접하게 결부시켜 놓았다. 칸트에게서 하나님은 최고선에 의거하여 윤리적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분, 최고선과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활동하시는 분이시며, 곧 최고선 자체로까지 기술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윤리의 근거이자 윤리 자체로 이해함으로써 칸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든 내용들 또한 윤리적인 견지에 입각하여 해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이후 자유주의 신학에 깊이 스며들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파악해 보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들로 나타났다. 예수는 뛰어난 도덕교사로서 이해되어졌으며, 성서의 내용들은 도덕적 교훈들을 함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리츨(Albrecht Ritschl),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같은 이들의 사상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철저히 윤리 종교로서 설명되었다.
칸트 이후 개신교 신학계에 등장한 또 하나의 위대한 신학자로서 자유주의 신학의 다른 한 축을 근거지운 인물은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였다. 칸트가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신앙을 바라보았다면, 슐라이에르마허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의 낭만주의의 영향에서 신앙을 이해하였던 인물이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내면적 경험으로부터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거짓는 내면적 경험을 『종교론』에서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혹은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절대 의존의 감정”으로 묘사하였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 경전이나 교의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내적 경험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신학 역시 이후 자유주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 아래에 있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를 들 수 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의 두상 교의학의 영역에 칸트와 슐라이에르마허가 끼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듯이, 성서 해석의 영역에 있어서도 필수적으로 지적해야 할 사항이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특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성서비평학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 무렵에는 다양한 성서 사본들이 발견되고 본문비평 방법들이 발전됨에 따라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전례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성서가 결코 완전무결한 책이 아니라 수많은 오류와 인간적인 흔적들로 가득하다는 사실 역시 밝혀지게 되었다. 구약의 내용들은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복음서들 속에는 서로 모순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사도의 저술로 알려졌던 책들 중 일부는 위작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회의 오래된 믿음을 포기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 생각은 19세기 말 독일의 종교사학파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종교사학파 신학자들은 성서 또한 특정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종교 텍스트로서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비교하였을 때 절대성을 지니지 않는다고 보았다. 근대철학으로부터 시작된 인간학적인 학문 배경들로 인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아래로부터 그리스도교를 해명하려는 경향을 띄고 있었다. 성서가 하나님에게서 주어진 계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인간적인 텍스트일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경험과 인식과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이루어져야 했다. 물론 자유주의 신학 안에서도 성서를 윤리적 가르침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내면적이고 종교적인 감정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지 등을 두고서는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모든 논의들은 인간학적인 사고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성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최고선, 종교적 직관과 감정, 자유의 이념, 이성의 영원한 진리 등에 대해 감추어 놓은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헤겔주의자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가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이다.”라고 말한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낯선 하나님의 발견: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적 경향의 그리스도교 이해는 20세기 초에 들어와 여러 분야에서 근본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 각각의 비판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등장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동일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종교학에서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종교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에 반대하여 ‘누멘적인 것(Numinose)’의 개념을 주장하였다. 교의학에서는 칼 바르트(Karl Barth)를 중심으로 하는 ‘변증법적 신학’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의 출현으로 성서의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간과할 수 없는 질적 차이가 강조되었다. 자유주의 신학 내부에서도 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신약성서의 ‘하나님 나라’와 ‘종말론’ 개념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기존의 인간학적 성서 이해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이와 같은 종교학적, 교의신학적, 성서신학적 성과들은 ‘낯선 하나님’에 대한 발견이었다고 요약해 볼 수 있다. 각 연구들은 서로를 견제하거나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 성서의 하나님이 결코 기존 자유주의의 인간관 안에 제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바르트를 비롯한 학자들은 성서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틀로는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당황스러운 내용들, 그 해석 틀에서는 간과되어 왔던 내용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성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근대적인 윤리관과 종교관을 성서에 투영시키는 방법으로 성서를 평가하게 되면 진정으로 성서가 말하는 내용 자체에 주목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비판이었다.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학자였던 오토는 성서의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는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비교종교학적 연구를 통해 다양한 종교전통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하고 표현한 기록들을 조사하여 ‘성스러움(Heilige)’이 ‘윤리’나 ‘선(善)’과 같은 영역과는 별개의 감정임을 밝혔다. 성서를 비롯한 여러 종교전통들은 신을 만나는 경험을 으스스하고 섬뜩한 느낌 가운데서 매혹을 느끼고 빠져 들어가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오토는 이러한 종교적 체험의 감정을 ‘두렵고도 매혹적인 신비(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as)’라고 표현하였으며, 이를 한 단어로 ‘누멘적인 것’이라고도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만일 오토의 주장에 따라 성스러움을 이루는 본질적 감정을 ‘누멘적인 것’이라고 할 경우, 성스러움이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윤리적인 영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된다. 누멘적인 것의 요소인 ‘두려운 신비’, ‘매혹성’, ‘어마어마함’, ‘장엄성’ 등은 칸트의 생각과 달리 ‘최고선’을 나타내고 있지 않으며, 다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는 구별되는 아주 낯선 체험에 대한 묘사라는 것이 오토의 주장이었다.
바이스와 슈바이처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 해석 방법에서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 이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데 이르렀다. 리츨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가 칸트적인 의미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이해하였기 때문에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를 칸트의 ‘목적의 왕국’에 상응하는 윤리 공동체의 실현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에서의 하나님 나라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내면적인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에게 현재적으로 임하는 것이었다. 반면, 바이스와 슈바이처는 근대적인 윤리관을 예수에게 투영시킨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러한 하나님 나라 이해를 비판하며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 자신의 선언들로부터 ‘하나님 나라’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예수가 주장하였던 ‘하나님 나라’와 ‘종말’의 개념은 현재적이고 내면적인 윤리공동체의 실현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순간에 실제로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초월적인 통치가 실현되어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유대 민족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유대교의 묵시문학에 근거하고 있는 믿음으로써 근대적인 윤리관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바르트의 자유주의 신학 비판 역시 오토, 바이스, 슈바이처 등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신학 안에서 간과되었던 성서 안의 낯선 하나님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제2판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라고 평가받는다. 여기서 바르트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속에서 세상과 질적으로 다른 ‘전적 타자’로서 세상의 모든 기준들을 부정하시고, 철저하게 심판하시며, 세상을 위기로 몰아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로마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윤리나 종교 체험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 모든 세상의 것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 인간성을 뿌리부터 뒤흔드시는 하나님,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뛰어난 신학자인 동시에 아프리카 의료활동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적 성과는 오토, 바이스, 슈바이처처럼 단순히 성서 속에서 ‘낯선 하나님’의 면모를 밝혀내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바르트는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인간이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석학적 문제에 접근해 들어간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주체의 해석 틀을 전제하고서 성서를 그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였다는 점에서 심각한 해석학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20세기 초 여러 분야의 학문들이 밝혀낸 바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라는 텍스트 자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였으며, 단순히 근대적인 사상들을 옹호하기 위한 자료로서 성서를 그들의 맥락에 따라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제 어떻게 성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텍스트 해석학적인 의문으로서 해석의 방법론에 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올바르지 않은 해석은 무엇인지,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제2판 서문을 통해 텍스트 해석학의 문제들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로마서 강해』 제1판이 출간되고 난 후 그의 『로마서』 해석으로 인해 일어난 논쟁에 답하며 자신의 성서 해석의 근거들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의 주저인 『교회교의학』을 통해 ‘성서’와 ‘계시’를 구분함으로써 텍스트 해석을 넘어선 이해의 존재론에까지 이르고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가 아니며, 진정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서는 계시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적 증언일 뿐이며, 하나님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계시이다. 그렇다면 신학의 진정한 문제는 “역사적 텍스트로서 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즉, 타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자신을 알려온다. 자신을 스스로 알려오는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인간 주체의 미리 전제된 해석적 틀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못하다. 이러한 해석은 타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원하는 면모들을 하나님에게서 발견해 내고자 하는 시도이며, 주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한 우상을 만들려는 시도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르트에게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문제된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이해 일반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의 해석 틀에 국한되기를 거부하는 존재이듯이, 모든 타자들은 주체의 해석 틀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실패는 곧 주체가 자신의 기대, 믿음, 추측을 투영시켜서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신학의 극복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해석학의 출현이 될 수밖에 없다.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바르트의 고민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철학적 해석학의 문제의식의 한 가운데 있다. 바르트 신학은 자신을 알려오는 타자를 이해할 때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타자는 우리에게 어떠한 요구로서 찾아오는지와 같은 해석학의 물음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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