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성경과 문학
2007. 6. 5. 8:18
https://blog.naver.com/dhleepaul/150018542549
소설 첫 부분에서 케이시 목사는 조드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생각했지. ‘어째서 성령을 하느님과 예수와 관련시켜야 하는가...아마도 그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모든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게 성령이고 인간의 영혼이고, 모든 사물이 성령이다. 어쩌면 인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영혼의 일부분이 아닐까’...”
탐은 가족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자기만의 영혼이란 없다는 걸 깨달았대요. 자기는 엄청나게 큰 영혼의 일부라는 걸...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합쳐져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구요...
우스운 일이죠. 열심히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요.
인간이란 혼자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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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세 부분으로 연결된 구조의 소설로서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애급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총리대신이 되고 야곱과 그의 아들 가족이 기근으로 인해 식량을 구하러 애급에 갔다가 정착한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 살게 된 연유입니다.
그 후 야곱의 열두 아들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고 이집트의 왕조가 바뀌면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레위지파의 후손인 모세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애급을 떠나는 것과 미국의 대공황 직후 오클라호마 주에 심한 기근이 들고 지주와 은행의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떠나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오클라호마는 애급에, 지주와 은행이 바로와 애급관리에 병치되구요.
오클라호마 시티를 지나가는 66번 국도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가던 사막 길은 소설에서는 66번 국도가 됩니다. 시카고의 미시간 호반에서 시작해서 로스앤젤레스의 태평양 연안까지 2천마일 이상 뻗어가는 미대륙의 척추와 같은 횡단도로입니다. 미시시피강을 건너고 오클라호마의 대평원과 애리조나의 높은 산지를 넘어가면서 7개 주를 통과하는 험난한 도로입니다. 스타인벡은 66번 국도를 “길의 어머니”라고 했답니다. 실제로 1933년에 미국 대평원에 모래 폭풍이 불어와 농지가 사막이 된 오클라호마 농민들이 포장마차를 몰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1937년에 스타인벡은 이주민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고 생활을 기록하면서 <분노의 포도>를 써나갑니다.
성경에는 가나안에 정탐을 나갔던 열두 지파의 두령들이 돌아올 때 두 사람이 포도 한 송이를 메고 와서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말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본격적인 전쟁과 고난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시작됩니다. 조드 일가도 짐 케이시 목사와 함께 풍요의 땅으로 고난의 여행을 시작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조드 일가가 겪는 것은 가족들의 죽음과 이별, 배고픔과 질병, 선주민들의 잔악한 학대와 노동착취 뿐이었습니다.
조드 일가는 실업자 캠프에 수용되고 이곳에서 난민과 보안관들과의 싸움이 벌어질 때 짐 케이시 목사는 그 책임을 뒤집어 쓰고 체포됩니다. 그 후 탐은 자기 앞에서 케이시 목사가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그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탐은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핍박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투쟁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던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의 사명과 믿음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이어 갔듯이 케이시 목사의 뜻은 조드의 아들 탐이 이어받습니다. 스타인벡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급하던 과정을 <분노의 포도>에 인용하면서 모세의 죽음과 케이시의 죽음을, 여호수아와 탐을 비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소설 첫 부분에서 케이시 목사는 조드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생각했지. ‘어째서 성령을 하느님과 예수와 관련시켜야 하는가...아마도 그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모든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게 성령이고 인간의 영혼이고, 모든 사물이 성령이다. 어쩌면 인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영혼의 일부분이 아닐까’...”
탐은 가족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자기만의 영혼이란 없다는 걸 깨달았대요. 자기는 엄청나게 큰 영혼의 일부라는 걸...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합쳐져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구요...
우스운 일이죠. 열심히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요.
인간이란 혼자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이죠.”
케이시 목사가 했던 말은 기독교 보다는 상당히 불교적인 말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서 조드를 만나 병술을 마시며 하는 말이 의미있습니다.
“옛날에는 목사였지. 이제는 그냥 짐 케이시야...이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일도 없어...
죄스러운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나는 혼자 떠나왔어. 그리곤 앉아서 생각했네.
내 속에는 성령이 건재하다고...다만 옛날과 다를 뿐이라고.”
오클라호마를 떠날 때 154달러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두 통, 낡은 트럭 한 대, 약간의 세간살이를 갖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드 일가의 재산은 모두 사라지고 희망과 의지력까지 상실합니다. 할아버지는 길에서 죽어 이름없는 무덤에 묻히고, 할머니도 66번 도로를 달리던 차안에서 죽습니다. 케이시 목사는 탐 대신에 보안관 대리들에게 잡혀가고 나중에는 탐이 보는 앞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습니다. 탐은 케이시의 복수때문에 살인자로 수배되고 코니도 임신한 로자샤안을 버리고 도망가며 그녀는 아이를 사산합니다.
생존을 위해 캘리포니아에 왔지만 조드 일가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붕괴됩니다. 오클라호마 이주민들에게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싸워야 했던 여리고와 아말렉, 아모리, 압몬, 블레셋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앙으로 뭉쳐야 했던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조드 일가와 이주민들의 공동체 의식도 더욱 성숙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탐이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하는 말,
“우리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재배한 곡식을 먹고 또 자기들이 지은 집에서 살게 될 때, 그때에는 저도 물론 거기에 같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이 구약성경 예언서 <이사야>에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이루어 질 일을 스타인벡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家屋을 建築하고 그 곳에 居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建築한 데 他人이 居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것을 他人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壽限이 나무의 壽限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이사야 65:21~22)
폭우가 쏟아져서 진흙제방이 무너지며 난민텐트를 덮치고 로자샤안은 아기를 사산합니다. 짐짝같은 고물 트럭을 버리고 물에 잠기지 않은 헛간을 찾아다니다가 굶어 죽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합니다. 빵을 훔쳐다 주었지만 먹지 못하더라는 남자의 어린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어머니와 로자샤안이 눈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눈 후에 가족 모두를 나가게 합니다. 젖을 담을 그릇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젊은 로자샤안이 죽어가는 나이 든 남자 옆에 누워 젖을 물리는 장면은 기독교보다는 불교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풍요로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횡포에 대한 이주민들의 심정을,
'사람들의 눈에는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복받쳐 오르는 분노가 번득인다.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득 차서 가지가 휘도록 무르익어 간다.'고 했던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의 끝 문장을 이렇게 맺습니다
“그녀는 입술을 다물었고 그 입가에는 신비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분노의 포도>에서 분노의 포도가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에덴의 동쪽>의 한 장면
스타인벡은 1902년 캘리포니아 주 샐리너스에서 태어납니다. 작품이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소설 속에서 가난한 자와 노동자들의 삶이 생생한 것은 그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1962년 존 스타인벡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준 <분노의 포도>는 1940년 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에덴의 동쪽>은 영화의 주인공 제임스 딘 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작품인데 소설 속의 해밀턴 가는 스타인벡의 숙부 집안으로서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모두 실화라고 합니다. 스타인벡은 뉴욕에 나가 살면서도 고향 샐리너스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프리트먼트 피크 마루턱에 묻히기를 원했고, 뉴욕에서 죽어 유골은 샐리너스로 돌아와서 숙부인 해밀턴가의 묘역에 양친과 누이동생과 함께 묻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와중에 북에서 피난해 온 분들의 이주민 역사가 있었습니다. 북에서 내려 온 분들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계층의 사람들었지요. 이분들의 월남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부흥하는 계기가 됐고, 다들 힘들게 정착해서 지금은 여유있는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후 산업화가 되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온 분들이 정착해 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맨몸으로 타향에 와서 터전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한 분들만 알 겁니다. 한국인들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마음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입니다. 조선족과 고려인들의 사연까지 합치면 우리만큼 거대한 이주민의 물결이 여러 번 오고 간 나라가 없기 때문이예요...
스타인벡의 무덤
***** 존 스타인백(John Steinbeck)
1. 『에덴의 동쪽』
<에덴의 동쪽>과 아벨 신드롬
2. 『분노의 포도』
※ 『에덴의 동쪽』
1. 줄거리
캘리포니아 주의 샐리너스 계곡에 사는 새뮤얼 해밀튼 일가족과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담 트래스크와 그의 가족이 등장한다. 아담 트래스크는 -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처럼 - 냉혹하고 사악한 여자 캐시에게 말려들어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생의 보람, 생의 환희를 느낀다. 아담은 캐시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정리하여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을 물색하다가 샐리너스 계곡에다 자리를 잡는다. 그는 샐리너스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을 입수하여 거기에다 아내 캐시를 위해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할 꿈에 가슴이 부풀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 속에 동물의 잔혹성을 감추고 있는, 괴물인 그의 아내 캐시는 이러한 그의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고 만다. 그녀는 쌍둥이를 낳은 후 몸이 회복되자마자 갓난 쌍둥이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아담의 곁을 떠나 직업적인 창녀의 길을 택한다. 그녀는 창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명성과 돈을 얻는다. 그러나 아내의 배반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아담은 생의 보람과 기쁨을 송두리째 잃고 암담한 좌절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그러는 동안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카알은 마치 구약성서의 아벨과 카인 형제처럼 한 사람은 선을 한 사람은 악을 품고 자라고 있다. 카알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에 대한 갈등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아담은 자연히 천사 같은 외모에다 선의 쪽에 서 있는 아들 아론을 사랑하게 된다. 카알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 때문에 마음속에서 끝없는 투쟁을 벌이며 몸부림친다. 이브가 낳은 카인과 아벨이 질투 때문에 형제 살상을 벌이듯이 사악한 여자 캐시가 낳은 쌍둥이 아들 아론과 카알 역시 서로 반목하다가 마침내 카알은 아론을 전쟁터로 가게 하여 전사하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를 견디지 못한 카알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창녀(娼女)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아론에게 복수하고, 아론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을 팽개친 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2. 작품의 전개
(1) 제 1 부
새뮤얼 해밀턴 가(家)와 아담 트래스크 가(家)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전개된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의 농민 아들 해밀턴이 샐리너스 계곡으로 이주해 온다. 그는 아일랜드 옛 왕의 후손으로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 온갖 발명을 해 낸다. 농기구, 물푸레, 출산, 가정의학 등 만능 손재주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재주는 없다. 그의 아내는 침착하고 성실한 여인이다. 그에게는 아홉의 자녀가 있다. 아들 ① 조지 - 결백한 얌전이, ② 윌 - 힘장사, ③ 톰 - 아버지를 닮아 재주가 많다, ④ 조오 - 가족의 총애를 받는다. 딸 ⑤ 우나 - 사려깊고 근면, ⑥ 리지 - 어머니를 닮은 직선적 성격, ⑦ 데시 - 웃음과 재미, ⑧ 올리브 - 서술자인 나의 어머니, ⑨ 몰리 - 작은 체구로 사랑 받는다. 이것이 새뮤얼의 가계이다.
한편, 아담의 아버지 사이러스 트래스크는 코네티컷에 거주하면서 1862년 군에 입다한다. 그는 악마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6개월만에 부상을 당하여 귀향한다. 그 사이 아담을 낳았다. 사이러스는 군인적 성향으로 훈련, 음주, 도박, 계집질 등을 일삼는다. 어머니는 성실하고 내성적이지만 접신(接神)을 믿어 남편에 대한 복수의 화신이 된다. 그녀는 결국 연못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그러자 사이러스는 17세 농부의 딸이며 젊고 과묵하며 성실한 앨리스와 재혼한다. 그녀는 찰스를 낳는다. 사이러스는 아들에게 군사훈련, 사냥, 사격술, 등을 시키며 키운다. 아담은 순종적이고 아버지를 잘 따른다. 아담은 군입대를 두려워한다. 한 살 아래인 찰스는 독단적이고 경쟁적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형을 능가한다. 새어머니 엘리스는 두 아이를 극진히 돌본다. 사이러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에게 군인정신에 대해 설교한다. 아버지의 생일선물로 찰스가 독일제 칼을 선물했으나 무관심하다. 아버지는 아담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다. 찰스는 술집 등으로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아담은 기병대 사병으로 입대한다. 5년의 복무하는 동안 무공훈장을 수상한다. 새어머니 앨리스는 폐병으로 질식하여 죽는다. 찰스는 이런 사정을 아담에게 꾸준히 편지로 소식을 전한다. 1885년 아담은 제대하여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찰스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황하다 재입대한다. 사이러스는 위대한 인물로 변신해 있다. 고위 정치인과 접촉하면서 재산과 명성을 얻는다. 아담을 불러 재입대한 이유를 물어본다. 다시 5년 후 1890년 아담은 상사로 전역한다. 아담은 또다시 방랑인이 되어 떠돌다 방랑죄로 체포되어 6개월의 복역을 한다. 그 사이 아버지 사이러스는 아담과 찰스에게 재산을 균배하여 남기고 사망하고 만다. 찰스는 아담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단서는 선물로 주었던 강아지. 이것이 아듬 트래스크의 가계이다.
캐시 에임즈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육체적 괴물과 지적 괴물이 있는데 우리는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 무두질 공장을 경영하는 윌리엄 에임즈의 무남독녀인 캐시는 금발의 미녀로 소위 말하는 신들린 아이다. 거짓말과 질투, 금기, 성(性)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다. 어느날 동네의 두 사내아이에게 손발이 묶인 채 성희를 당한다. 그때부터 성격이 돌변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나 흥미를 갖지 못한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탐닉하기도 하고 가출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집안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이고 도망한다. 도망 끝에 아담과 찰스의 집 앞에 쓰러진다. 아담의 극진한 간호를 점차 원기를 회복한다. 그리고는 아담과 결혼한다.
(2) 제 2 부
1900년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자 아담은 찰스에게 농장을 팔고 샐리너스로 이주한다. 캐시는 임신하여 해밀턴의 조산아래 쌍둥이를 낳는다. 아담은 여기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캐시를 위하여 에덴의 동산을 꾸미기로 결심한다. 중국인 집사 리이의 간호로 건강이 회복된다. 쌍둥이의 이름은 성경에 따라 지었다. 케이레브(카알) 트래스크와 여호수아(아론) 트래스크이다. 이들은 둘 다 군인 즉 대위와 장군이다. 그러나 캐시는 이러한 사랑을 배신하고 권총으로 아담을 피격하고는 도망한다. 그녀는 차이나 타운의 창녀촌으로 간다. 홍등가의 세 여인 제니, 니거, 페이가 경영하는 집 중 페이의 집으로 간 것이다. 캐시에서 케이트로 이름을 바꾼 그녀는 페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창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페이는 케이트를 딸로 여기며 애정을 보이다가 전재산을 케이트에게 남기고 죽는다.
(3) 제 3 부
해밀턴 가의 가족의 성장과 결혼 그리고 사망의 과정이 펼쳐진다. 새뮤얼 해밀턴은 아담에게 케이트의 비밀을 말하고 만다. 그뒤로 아담은 성격이 비뚤어지고 절망한다. 홍등가에는 사악, 비열, 추잡,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비밀을 말하고 새뮤얼은 죽는다. 아담은 케이트를 만나 사실을 확인한다. 그녀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사실은 타고난 운명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쌍둥이가 찰스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담은 비로소 자유를 얻고 생기를 회복한다. 비오는 어느 날, 아담의 집에 군 감독관 베이컨의 내외가 비를 피해 찾아온다. 그의 딸 에이브라를 만나 아론과 가까워진다.
아담은 찰스에게 편지를 써 샐리너스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찰스는 이미 죽었고 아담과 캐시에게 재산을 남겨 두었다. 카알은 케이트를 미행하여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내고는 괴로워한다. 아론은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여 목사를 꿈꾼다. 추수감사절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한다. 카알은 아버지의 배추 손실의 자금을 선물로 준다. 1만 5천 달러. 아버지는 도둑질 한 것이라며 거절한다. 아담은 그 사이 징병위원으로 활동한다. 캐더린 트래스크는 아들 아론에게 전재산을 유산으로 남기고 약물로 자살한다. 카알은 이 모든 사실을 아론에게 말한다. 아론은 크게 충격을 받고 자진 입대한다. 1917년의 일이다. 에이브라는 이런 아론의 태도를 싫어한다. 아론은 전쟁 중 전사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아담은 실신하여 병석에 눕는다. 카알은 이 모든 불행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용서를 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다.
팀쉘(Timschel 뜻에 딸라) !
그의 눈이 감기고 그는 잠들었다.
3. 작품의 의미
(1) 인간회복의 의미
스타인백이 50세 때 쓰여진, 그의 원숙하고도 포용적인 인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의 결실로서, 인간 회복의 가능성을 추구한 20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고향인 샐리너스 계곡을 무대로 하여 인간의 선악 투쟁이 구약성서의 카인과 아벨의 주제에 의해 상징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인간애라는 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20세기 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케일이 웅대하고, 주제 면에 있어서도 관용과 인간애로 감싸진 대작이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가리켜 자신의 최대작, 대표작이며 이 작품 이전에 씌어진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습작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선악, 애증의 운명이 농도 짙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원죄를 주제로 하여 20세기의 신화를 창조하려고 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2) 자연주의 또는 자각의 소설
그의 작품들을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하기도 하고 대개의 경우 자각의 작품(the drama of consciousness)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의 대작 <에덴의 동쪽>은 1950년 일레인 스코트(Elaine Scott)와 세 번째 결혼-첫 번째 결혼은 1930년 캐롤 헤닝(Carol Henning)과 하였고 긴도른 콩거(Gwyndolen Conger)와 1943년 재혼하였다.-을 한 후 영국 등을 여행하면서 구상하여 처음에는 <샐리너스 계곡(Salinas Valley)>이라고 했다가 다시 제목을 바꾸어 1952년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이 지적 또는 철학적 정점에 이르면서 중국인 가사 관리인 리이가 이렇게 묻는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에 따라 세상이 이룩될 수는 없는 가요? 고통과 광란의 원인이 밝혀지면 이런 것들이 뿌리째 뽑혀질 수는 없는 가요?" 자각의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검토된 인생(examined life)을 리이는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소설에서 스타인백은 이렇게 자각되고 검토된 인생의 어려운 성취과정을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세상을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극화하고 있는 것이다.
3. 작품의 해설
(1) 일레인과 결혼을 한 후 뉴욕 맨해턴에 있는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갈색 돌집에 머물면서 1947년 이래 구상하던 장편 서설 <에덴의 동쪽>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구상을 한 이 작품에 대한 스타인백의 사상은 생전의 1951년 1월 29일과 11월 1일 사이에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 사후인 1969년에
<한 소설의 일지:[에덴의 동쪽]에 관한 서한(Journal of a Novel: The "East of Eden" Letters)>으로 출판됨으로써 보다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 글에서 편집자가 "두 책을 써서 이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스타인백은 "나는 한 가족에 대해서 썼습니다. 다만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이에 대한 대응 부분으로, 또는 페이스와 색상에서 대조를 이루도록 이용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2) 스타인백이 종종 인용하는 <실락원>에서 밀튼은 인간에 대한 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고있다. 사실이지 <분노의 포도>이후의 스타인벡의 작품은 대개 이러한 주제들을 우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타인백이 눈에 띄게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신이 태도를 내세운 작품이 바로 미국적인 현대 아담(Adam)을 다룬 <에덴의 동쪽>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은 누구나 알다시피 아담이다. 더구나 스타인벡이 고양된 자각의 과정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작품을 썼다는 확신은 사후에 발간된 <한 소설의 일지:[에덴의 동쪽]에 관한 서한(Journal of a Novel: The "East of Eden" Letters)>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리포트는 자식이 대소설(big novel)이라고 한 이 작품을 쓰고 있는 동안에 작가가 느낀 감정, 그리고 목적들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기 두 달 전인 1951년 4월 23일 스타인벡은 "나는 샐리너스 계곡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인류 전체의 축도(microcosm)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어느 작가보다도 내가 지금 의도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근본적으로 상징적인 인물들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각(consciousness)의 의도가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예술적 장단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의가 있어왔다.
(3)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 사이를 물결이 굽이치듯이 전개된다. 하나는 스타인벡의 외가 쪽인 해밀튼 가(家)에 근거를 두고, 다른 하나는 아담 트래스크라는 가공의 가족에 근거를 두고 전개된다. 스타인벡의 외조부를 모델로 한 새뮤얼 해밀튼은 숨은 수원(水源)을 찾고, 또 자신을 포함한 아홉 자녀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발명의 기재(奇才)로서 인자한 노인으로 묘사된다. 한편, 코네티컷의 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아담 트래스크는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불타 죽게 한 악의 회신인 캐시(뒤에는 케이트로 불림)의 유혹을 받아 그녀와 결혼을 한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서 캐시는 해밀튼의 도움을 받아 아론과 카알 쌍둥이를 낳는다. 그녀는 집을 빠져나가기 위해 남편 아담을 권총으로 상해하고 샐리너스 근교에서 한 청루(靑樓)의 주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에게 독약을 먹이기도 한다. 버림을 받은 아담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쌍둥이는 집을 관리하는 중국인 리이의 보살핌을 받는다.
아담과 아론, 카일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캐시가 살아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아담에게 알리지 못한다. 이때 해밀튼은 이 사실을 아담에게 알리는 책임을 떠맡는다. 후에 새뮤얼은 자기의 행동을 중국인 하인 리이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모든 인간이 파멸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멸 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횃불이 어두움을 비추어 겁에 질린 사람들을 인도하기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새뮤얼의 판단이 들어맞아서 아담은 그녀를 방문한 후 그녀의 악의적 부정에서 헤어나 생기를 되찾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담이 다시 회생하면서 해밀튼이 죽어간다. 하지만 리이는 해밀튼의 선행이 트래스크 가(家)의 오랜 고통을 통하는 동안 결국에는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4) 한편 두 쌍둥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고 어렴풋하게나마 확신하게 된다. 어떤 기회에 어머니가 살아서 청루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알은 자신도 사악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환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자신의 천박성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천박성이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카알은 아론에게 어머니가 살아서 타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제차대전 중 콩장사를 하여 번 돈 1만 5천 불을 아버지에게 선물로 전하려 하나 이를 아버지가 거절하자,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살을 아론에게 말한다. 아론은 어머니의 사악한 행위를 목격하고는 이를 참지 못해 군에 입대하고 만다. 어머니 케이트는 과거의 악행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으려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하고 만다. 아론도 군에서 전사한다. 아담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치명적인 뇌일혈을 일으킨다. 카알은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리이는 카알을 데리고 아담의 병실로 가서 말한다. "아담,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사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결혼을 할 것이고 그의 자녀들은 당신의 유일한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는 홧김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분노로 그의 형이자 당신의 아들인 아론이 죽게 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나의 잘못입니다. 당신의 아들 카알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 으스러뜨려서는 안됩니다. 그에게 당신의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세요." 이러한 간청을 듣고 아담은 안간힘을 쓰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뜻에 따라(Timschel)!"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영원한 잠에 빠진다.
4. 성경의 구원
이 장편 소설 속에서 스타인벡의 주된 관심사가 구약성서 창세기 4장에 나오는 히브리어 <Timschel>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카인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죄를 다스리게 하리라." 물론, 여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너희들이 죄를 다스리라." "너희들은 죄를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에 달려 있느니라." 이 말은 인간의 의지 또는 자아인식에 따라 죄를 다스릴 수도 있고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자유의지 또는 자아인식의 의지를 담고 있다. 캐시가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산파역을 맡았던 새뮤얼 해밀튼의 팔을 물어뜯었을 때, 또는 그녀의 사악한 행위가 악마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때마다 아담을 유혹하는 뱀에 비유되기도 했다. 트래스크가 샐리너스 계곡에 낙원을 건설하려다 모든 일이 파멸에 이를 때 성경의 <낙원에서의 추방>에 비유되기도 했다. 쌍둥이 형제가 시기하고 아론이 전사하게 되는 장면은 카인과 아벨이 벌이는 <형제 살상>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구약성서의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은 카인의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애의 부족으로 죄를 짊어지게 되고, 원죄를 짊어진 인간은 선과 악, 애(愛)와 증(憎) 사이에서 헤매게 되지만, 이 두 갈래 길을 선택하는 권리는 인간이기에 갖는 권리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각의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자기 행위에 인과(因果)를 예지하는 자유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인간이 자기 의지에 따라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 작가 연구
(1) 존 스타인백(John Steinbeck 1902 ∼ 1968)은 1902년 2월 27일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위치한 태평양 연안의 샐리너스(Salinas)라는 농경지에서 태어났다. 모터리 구의 재무책임자였던 그의 부친 스타인백은 북 아일랜드의 얼스터에서 1850년대에 이주해온 새뮤얼(Samul)과 엘리자베스(Elizabeth) 사이에서 태어난 올리브 해밀튼(Olive Hamilton)과 1890년에 결혼을 했다. 작가 스타인백의 외가가 되는 해밀튼 가의 가계는 이 작품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존 에른스트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설리너스에서 제분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그의 모친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는 고향인 설리너스의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서에 열중했으며,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1920년에 스탠퍼드 대학에 특별 학생으로 입학하여 해양 생물학을 전공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하고 말았다. 교내 기관지에 단편이나 시를 발표하면서 이 무렵 작가로서 성공할 것을 결심했다. 그 후 뉴욕으로 진출하여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나 기사 작성에 있어 주관적 견해를 실어 해고되었고, 이후 갖가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생활 체험과 전공 과목을 기초로 하여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29년에 처녀작 ≪황금배≫를 필두로 하여, 1932년에 ≪하늘의 목장≫, 1935년에 ≪토티어 평원≫, 1937년에 ≪생쥐와 인간≫, 1936년에 ≪승부 없는 싸움≫을 발표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분노의 포도≫를 발표하여 역량 있는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에게 아메리카 볼 샐러즈상과 플리처상을 안겨 주기도 했다. 1962년에는 ≪불만의 겨울≫이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렇게 고향인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자연애와 인간애로 가득 찬 작품들을 쓰다가, 1968년 12월 20일 뉴욕에서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외 작품으로는 ≪에덴의 동쪽≫, ≪진주≫, ≪피핀 4세의 짧은 통치≫, ≪달은 지다≫, ≪통조림 공장가≫, ≪즐거운 목요일≫, ≪발람 난 버스≫, ≪긴 골짜기≫등이 있으며, 논픽션으로 ≪코르테츠의 바다≫, ≪소련 기행≫, ≪한때 전쟁이 있었다.≫등이 있다.
습작시대를 거쳐 <토티야 대지>, <승부 없는 싸움>, <생쥐와 인간> 등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여 착실하게 발판을 굳혀 나갔으며, 1939년 발표한 <분노의 포도>로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자리잡았다. 1929년 경제공황이 일어난 미국의 30년대에는 불황이 심각해지면서 실업자가 군을 이루었으며, 사람들은 궁핍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는 자연주의 문학이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분노의 포도>는 그 정점에서 선 작품으로 격찬을 받았다. 1952년에는 또 하나의 대작 <에덴의 동쪽>이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와 있는 카인과 아벨 형제의 다툼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랑과 윤리를 주제로 다룬 필생의 야심작이었다.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 12월 20일,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본문스크랩]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작성자 이덕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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