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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정신현상학> 서문

by 이덕휴-dhleepaul 2020. 7. 29.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청년기의 헤겔은 거대한 우주론적 관념론을 세운 사람이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편집자 서론을 보면 잘라서 말해서 책이 인류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양을 미쳤다

라는 말이 있다.

 

말은 출판사 광고 카피다. 어떤 책이든지 자기에게 무의미한 책은 무의미한 책이다. 누구나 읽을 필요 없다. 근대세계의 정신적 지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지식과잉이다.

 

근대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어떤 책도 책을 이겨낼 없다.특히 Vorrede(서문) 난해하지 않다.

(‘Vor’ 이라는 뜻이고, ‘rede’ 이라는 뜻이다.) 독일어 자체의 문장이 난해할 뿐이다.

 

정신현상학 서문은 동시에 헤겔 철학의 서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헤겔의 술어, 방법론, 의식, 시대와 철학의 관계가 충실하게 나와 있다. 그래서 정신현상학 서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서문의 제목은 따로 이름 붙이는 일은 드문데

-- <학적 인식에 대하여Vom wissenschaftlichen Erkennen>이다.

 

그대로 철학적 인식은 어떤 종류의 것이고, 시대와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자세를 가지고 나서야 하고, 이런 내용들이 적혀있다

. ‘~대하여 제목 붙이기 제일 쉬운 것이다. 내가 서평 공화주의에 대하여 대단한 없다.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원제는 On liberty. <자유론>이라 이름 붙인 사람은 일본 사람이다. 어쨌든 서문이 헤겔 철학의 전반을 이해하는 입문으로 역할을 한다.

 

헤겔 철학을 지배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헤겔 특유의 개념들이다.

 

예를 들면 Erkenntines 우리말로 옮길 인식으로,  Kenntnis 지식이라고 옮긴다. 이것을 영어로 옮길 문제가 생긴다. 인식과 지식, knowledge 옮기는 원문을 보지 않으면, Knowledge Erkenttines Kenntinis 어떤 말에 대응시켜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영어판으로 공부하지 말고 차라리 일어로 배워라.

 

 

근대철학의 대장은 칸트다.

 

근대 철학은 주체성subjectivity 철학, 계몽의 철학이다.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이다.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오늘날 21세기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을 갈라낸 핵심적 프로젝트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멘탈러티 자체가 미성년자다.

남에게 의존한다. 대표적인 예가 결혼 정보회사이다. 유럽에는 결혼정보회사가 없다.

 

사람들은 내가 사귀겠다는 남이 추천해주는 것을 주체에 대한 침범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제대로 사귀고 있는 것인지 걱정한다. 더구나 이를 아름다운 공동체라고까지 여긴다.

 

파리는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서 계급적 성향이 나온다. 로컬 커뮤니티가 살아 있다. 한국은 강북의 일부 동네를 제외하곤 로컬 커뮤니티가 해체 되었다.

 

 

칸트가 근대철학, 계몽주의 철학의 완성자이다.

 

칸트는 현상지(현상에 관한 인식) 물자체에 관한 지를 구분할 밖에 없었다. 칸트는 언제나 뉴턴을 같이 떠올려야 한다. 

칸트가 보기에는 근대 자연과학만큼 확실한 성과가 없다. 칸트는 인간 의식의 확실성을 정초하는 것이야 말로 근대철학의 핵심과제라고 생각을 했고 작업이 순수이성비판 이다.

 

그런데 영혼, , 자유의지, 이런 문제들이 남았다. 칸트는 이것을 실천이성비판을 통해서 요청Postulat한다. 살아가다 보니까 있어야겠더라. 자유의지, 신이 없으면 사람들이 막가더라. 있어야겠더라. 그래서 요청한다.

 

 

헤겔이 보기에 요청이 칸트의 한계다.

 

헤겔은 이런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학문적 정초를 두어야 헸다.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헤겔은 칸트의 학생이다.

 

헤겔이나 칸트나 근대적 인간이 얼마나 확실하게 신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의 발걸음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를 철학적 문제로 삼은 사람이다.

 

문제에 대한 칸트의 답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현상에 대한 인식은 확실하다이고,

근대적 인간은 종래의 의미에서 신적인 위치에 까지 올라설 있다 것이 헤겔의 답이다.

 

문제의식은 같지만 답은 다르다.

 

칸트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헤겔은 오만하고 방만한 것이고 헤겔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칸트는 찌질이이며 쪼잔한 것이다.

근대의 고전을 다룰 , 정신현상학을 근대적 인간의 진리 파악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헤겔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지만 신적인 이성에게나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혼, , 자유의지 등에서 학적인 인식을 가질 있다고 한다.

 

근대적 인간의 진리 파악의 방법이, 헤겔이 말하는 학적 방법, 학문적 방법이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변증법적이라고 하지만 정신 현상학에는 변증법이라는 나온다. ‘, 여기 변증법 있어요, 하나씩 가져가세요 아니다.

 

유한한 인간이 진리를 파악하는 방법이 나와 있는 책이 정신현상학이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이 중요하고 바로 지점에 현상학이 놓여있다.

 

Der Anfang der Bildung und des Herausarbeitens aus der Unmittelbarkeit des substantiellen Lebens wird immer damit gemacht werden müssen, Kenntnisse allgemeiner Grundsätze und Gesichtspunkte zu erwerben, sich nur erst zu dem Gedanken der Sache überhaupt heraufzuarbeiten, nicht weniger sie mit Gründen zu unterstützen oder zu widerlegen, die konkrete und reiche Fülle nach Bestimmtheiten aufzufassen und ordentlichen Bescheid und ernsthaftes Urteil über sie zu erteilen zu wissen. Dieser Anfang der Bildung wird aber zunächst dem Ernste des erfüllten Lebens Platz machen, der in die Erfahrung der Sache selbst hineinführt; und wenn auch dies noch hinzukommt, daß der Ernst des Begriffs in ihre Tiefe steigt, so wird eine solche Kenntnis und Beurteilung in der Konversation ihre schickliche Stelle behalten.

 

교양[문화] 실체적 생활의 직접성으로부터 애써 탈각脫却하는 것이거니와, 이것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적인 원칙들과 관점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 먼저 사상事象 일반의 사상思想에로 애써 올라가는 , 그에 못지 않게 사상을 지지하거나 반박하거나 이유들을 들어서 하는 , 구체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규정성에 따라 파악하는 , 그리고 내용에 관해서 정연한 판결과 진지한 판단을 내릴 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교양의 이러한 단초端初는 이윽고 충실한 생활의 진지함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진지함이 사상事象 자체의 경험에로 이끌어주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개념의 엄격함이 사상事象의 깊은 저변에까지 이르는 경우에도, [교양의 단초인] 그와 같은 지식과 평가는 회화會話에 있어서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게 것이다.

 

현상학을 읽어야겠다면 독일어를 잘하든 못하든 3 계획을 세워라. 3 걸리면 읽을 있다.

3 읽으면 된다. 평생 읽어도 된다.

아무데나 펴봐도 되고. 좋다. 내가 공부를 못하던 시절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서 공부를 있을 때까지 읽었기 때문에 책의 부분에는 적어 놓은 것이 많다.

기록이 내가 정신현상학을 공부한 Autobiography 되는 셈이다.

 

문장 개짜리 패러그라프다. 역사철학은 이것보다 난삽하다.

 

독문과 다니는 사람도 번역해놓아도 이해 못한다. 독일사람들도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현상학은 헤겔이 예나 대학에서 시간강사 것이다.

 

당시는 나폴레옹이 침입해오고 있던 때였고, 동창인 셸링은 대학교수였다. 인생이 풀렸던 것이다. 야망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 단어를 제멋대로 재규정해서 쓰고 있다. 이것이 현상학을 읽는 미칠 듯한 괴로움을 준다. 번역도 이해하기 어렵다.

 

교양[문화] 실체적 생활의 직접성으로부터 애써 탈각脫却하는 것이거니와,

 

이렇게 번역을 했어도 실체적 생활 무엇인지를 수가 없다. ‘실체 가진 철학적 의미는 핵심적인이런 뜻이 아니다. 이해의 어려움이 여기서 생겨난다. 번역은 word by word 것이다.

 

임석진의 번역을 보자. 바로 다음에 우리가 패러그래프이다.

 

어쨌든 우리의 시대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정신은 지금까지 일상세계가 관념세계와의 일별을 고하고…”

 

반면 내가 번역은 이렇다.

 

그런데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요 새로운 시기에로의 이행의 시대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신은 지금까지의 그의 정재定在[생활] 표상表象[사상思想] 세계와 절연하고…”

 

임석진의 번역이 훨씬 매끄럽다. 그렇다고 이해하나? 번역이 좋아도 매끄러워도 필요 없다.

 

헤겔 사전이 없으면 읽어낼 없다.

 

일반 철학사전에서 실체라는 말을 찾아보면, 헤겔의 실체적 생활의 직접성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이 없다. 헤겔 학회에서 해야 가장 중요한 일은 국산 헤겔 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은 의도와 상관 없이 개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밖에 된다.헤겔 원전을 읽을 때는 반드시 독일어 원전을 구해서 번역본과 같이 읽어야 한다.

다음에 독일어를 모르더라도 단어가 헤겔 철학의 문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한다. 일본에서 나온 사전을 사라.텍스틀 보자.

 

나는 약간 의역을 했다. 직역을 하자면

 

 교양과 탈각Herausarbeitens 출발점은

 

이렇다. Bildung, 중요한 술어다.  탈각은 heraus arbeiten 더해진 말이다.

알바, 유명한 알바가 바로 아르바이텐이다. Harausarbeiten 애써서 벗어나는 것이란 뜻이다.

 

헤겔의 교양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논문이 강의실을 가득 채울 있다.

교양을 알려면 실체적 생을 알아야 한다.

 

실체 라는 말은

 

1)기초적인

2)초보적인

3)소박한

 

 이렇게 세가지 뜻이 있다.

 

정신현상학을 읽으려면 이렇게 단어 하나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는 소박한 뜻이다.

실체적 생이란 소박한 생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naive하다는 뜻이다.

독일어substantiellen 영어로 substantial 옮긴다.

영어 substantial life에서 소박한 이란 말은 나온다.

 

* 소박한 삶의 직접성

 

그럼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상태, 주관과 객관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어린아이를 생각하라.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아이가 자기와 놀아준다고 우는 어린애 말이다.

 

* 직접성

 

직접성 Unmittelbarkeit 어떤 것도 매개되지 않고 곧바로 무엇에 이어지는 것이다.

Un + mittel이다. Mittel 수단, 매개, medium’이다.

직접성은 어떤 것도 거치지 않은 이다.

실체적 삶의 직접성 어린애와 같은 상태, 미성년의 상태, 나와 남이 구별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에서의 의미이다.

 

개인의 의식이 소박한 의식의 단계에서 깨어나 점차로 무한한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는 , 개인이 어떻게 해서 신적인 진리로 올라설 있는가 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헤겔의 문제의식이다.

 

문장은 동시에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해서 띨띨한 정신을 가진 시대로부터 계몽되고, 어떻게 진보된 시대로 나아가는 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문장은 개인적 차원의 의미와 역사적 차원의 이미, 이렇게 이중적 긴장을 끌고 가는 것이다.

 

* 실체적 생의 직접성

 

신앙인을 의미한다. 시청 광장에 모여서 부쉬 그리스도하고 외치는 신앙의 생활 말이다.

 

* 실체적 생의 직접성으로부터의 교양

 

교양이라는 말과 계몽이라는 말이 있는데 칸트 하면 계몽, 헤겔 하면 Bildung이다.

 

교양은 각각의 개인이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이것이 계몽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신을 도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도야. 이것이 빌둥Bildung이다.

 

그러니까 지금 지점에서 헤겔 그러면 Bildung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한다.

말은 헤겔 철학을 하나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진리란 영미 철학에서 말하는 참으로 여겨지는 명제 아니다. 역사적 진리, 사회적 진리론이 이미 전제되고 있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헤겔 철학에서 Bildung개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헤겔 철학은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이 핵심적인 규정요소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든지 시대가 말하는 진리의 개념이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 마다 진리 개념이 다르다.

 

헤겔의 철학 체계는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 이렇게 나눈다. 

이것이 Enzyklopadie 1, 2, 3 부다. 정신철학은 주관적 정신, 객관적 정신, 절대적 정신 이렇게 나뉜다.

 

객관적 정신에는 법철학, 역사 철학이 속하고, 절대적 정신에는 예술철학, 종교철학, 철학사가 들어간다.

 

 

진리라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관점으로 보면 헤겔 철학의 핵심은 <객관적 정신> 범주에 있다고 있다.

이렇게 헤겔 철학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헤겔 철학의 핵심이 달라지는 것이다.

진리론이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다.

 

헤겔의 교양개념은 쾨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  등과 같은 독일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교양은 실체적 생활의 직접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벗어나느냐.

 

damit 로써 만들어져야 한다.

damit 대명사다. zu 부정사는 교양의 형성과정을 말해준다.

zu erverben, 획득하는

heraufzuarbeiten 애써 올라가는

zu unterstutzen oder zu widerlegen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aufzufassen 파악하는 zu erteilen zu wissen (판결과 판단을) 내일 안다는

 

구절은 글은 어렵고 까다롭게 쓰여있지만 학문적인 글을 쓰는 방법을 보여준다.

 

* 보편적인 원칙들과 관점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접성에 들어가서 자기 눈앞의 것만 본다.

 

* 이것을 사상 일반의 사상에로 애써 올라 가는

 

번째의 헤겔 철학의 술어가 나온다.

겔철학의 고유의 술어를 익히기 위한 것이 정신현상학이다.

 

Sache, 영어판은 matter 되어있다. 그러나 Sache 문제 혹은 물질이 아니다. Sache 전통적인 철학적 술어를 빌어서 말하자면 사태의 본질을 말한다.

 

Ding an sich 물자체(칸트의 용어) Sache selbst(사상事象 자체) 사태 일반을 가리키거나 사태의 본질을 가리키기도 한다.

 

사상事象일반의 사상思想에로, 사태의 본질에 대한 사상, 생각으로 애써 올라 가는 .

 

이것이 보편적인 원칙들과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고 그에 못지 않게 이유를 들어서 하는 , 구체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모든 규정에 따라서 파악하고, 파악한 내용에 대해서 정연한 판단과 진지한 판단을 내릴 안다는 .

 

여기까지를 철학적으로 한마디로 반성. 반성적 사유 라 한다. 반성적 사유라고 하는 것은 거의 상당히 여러 차례 헤겔의 문맥에서 칸트의 철학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사태의 본질에 관한 보편적 원칙을 알아야 하고 구체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파악할 알아야 하고 이는 소박한 실체적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주객미분의 상태에 있던 사람들에게 반성하라는 것이고 여기서 고기토gogito 사유가 개입되는 것이다.

 

 

중세의 소박한 삶과 근대의 고기토적 삶이란 주객 미분의 삶과 주객구별의 삶이라 말하는 것이다.

 

부분은 중세 철학에서 근세 철학으로 넘어온 계기를 함께 말하는 것이다. 서술방식의 이중성, 이중적 긴장이 다시 드러난다. 개인에 있어서는 이러하고 역사에 있어서는 이러하다는 식으로. 여기까지 번째 단계다.* 그러나 교양의 이러한 단초는 충실한 생활의 진지함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교양의 이러한 출발점은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다.

 

충실한 생활의 진지함. 진지하게 교양이 출발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분열되는 반성의 단계를 거쳐서 단계가 인간의 속에 스며드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진지하게 반성적 사유를 수행해 보는 것을 말한다.

 

* 이 진지함이 사상 차제의 경험에로 우리를 이끌어 주게 것이다.

 

안다고 말하지 않고 겪는다는 말했다.

경험Erfahrung이라는 단어 유심히 보라.

이것도 헤겔의 고유 술어이다. 경험은 경험론 철학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주관에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 아니다.

하이데거가 경험을 중요하게 여겨서, Holzwege(숲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헤겔의 경험에 대해서 썼다.

 

경험론의 경험 개념이란 무엇인가. 외부세계에서 주어진 , the given, 외부의 객관이 주관에게 감각 데이터가 경험론의 경험이다.

 

이건 헤겔의 뜻이 아니다.

 

헤겔의 경험은 -- 우리말과 들어 맞는데 --

겪어보는 이다. “내가 겪었다. 이놈아.” 이럴 , “산전수전공중전우주전 겪었다 말할 때의 겪어보는 이다. 

 

대상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것이 나에게 왔고, 그것이 마음 속에서 오고 가고, 이렇게 대상과 나의 interactive 모든 관계를, 대상과 의식이 맺는 모든 관계와 관계 속에서 맺어진 모든 인식들을 경험이라 한다.

 

무자비한 말이다.아주 엄격한 영미 철학자들은 <정신현상학> 철학적인 문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게 경험이야 그냥 인생살이지라고 얘기하지.

 

진지함이라는 것이 없으면 우리가 사태의 본질 자체를 겪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양이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읽는 다고 생기는 아니다. 교양은 헤겔에 있어서의 이론과 실천의 통일체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다.

 

여기까지 3단계가 언급되었다.

 

* 개념의 엄격함이 사상의 깊은 저변에 까지 이르는 경우에도 [교양의 단초인] 그와 같은 지식과 평가는 회화에 있어서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게 것이다.

 

개념의 엄격함이 사상의 깊은 저변에 이르는 경우, 부분에 긋고 학적 체계의 성립이라고 쓰기 바란다. Ernst des Begriffs, 부분을 개념의 엄격함 아니라 개념의 진지함이라고 번역해도 좋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한 것이 헤겔의 개념이다. 개념의 엄격함이 사상의 깊은 저변에까지, 사태의 본질의 심연에까지 이르렀다. 개념적으로 본질을 알아 버렸다.

무지하게 진지하게 알아버렸다.  체계적으로 알아버렸다.

 

 

학적 체계가 성립 되었다.

 

이것이 바로 Dialektit, Dialog.

 

* 의식 ß<------------> 대상à인간의 의식이 여기 있고, 대상이 여기 있다.

의식과 대상이 관계를 맺고,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인식이 경험이 된다.

 

이것이 의식과 대상이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뽕을 뽑도록 대화를 한다.

이것이 사상의 저변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학적 인식이다. 사상의 깊은 저변에 까지 이르렀다.

 

 

학적 체계가 이르렀다. 이것이 철학적 인식이다.

 

이정도 까지 못간 사람도 지식과 평가 정도는 있다. 지식과 평가는 학적인 인식보다 저급한 것이다. 회화 Konversation, 헤겔 철학에서는 Konversation 무조건 회화로 옮겨야 한다. 대화로 옮기면 Dialog 구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철학 사전 없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 지식과 평가를 하는 행위

 

사태의 저변에 까지는 이르지 않고 두루 살펴보는 것을 회화라 한다. Sache 남김 없이 드러내지는 않고 그것의 일반적인 원칙을 살펴보거나 반박하는 이유들을 보는 것이다. 디알로그 하면 좋은데 되는 분들은 회화를 하라는 것이다.나는 가끔 이런 구별을 글에다 쓰고 혼자 재미있어 한다.

 

 “그의 회화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래서 나는 그와 대화할 없다.” 기술을 아는 사람들은 혼자 즐기고 자빠졌다고 이메일을 보낸다.어떤 사람이 <<장미의 이름 읽기> 서술방식 1, 2, 3번의 암호를 풀어서 이메일 보내왔다.“ 책은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서 소설 장미의 이름과는 무관하다.”

 

그러면 어떤 책하고 관계가 있는지 어떤 양반이 발견했다. 장미의 이름 소설얘기는 나오는가, 하는 질문을 했던 것이다.

 

 

Es ist u¨brigens nicht schwer zu sehen, daß unsere Zeit eine Zeit der Geburt und des U¨bergangs zu einer neuen Periode ist. Der Geist hat mit der bisherigen Welt seines Daseins und Vorstellens gebrochen und steht im Begriffe, es in die Vergangenheit hinab zu versenken, und in der Arbeit seiner Umgestaltung. Zwar ist er nie in Ruhe, sondern in immer fortschreitender Bewegung begriffen ... Allein eine vollkommene Wirklichkeit hat dies Neue so wenig als das eben geborene Kind; und dies ist wesentlich nicht außer acht zu lassen. Das erste Auftreten ist erst seine Unmittelbarkeit oder sein Begriff. So wenig ein Geba¨ude fertig ist, wenn sein Grund gelegt worden, so wenig ist der erreichte Begriff des Ganzen das Ganze selbst. Wo wir eine Eiche in der Kraft ihres Stammes und in der Ausbreitung ihrer A¨ste und den Massen ihrer Belaubung zu sehen wu¨nschen, sind wir nicht zufrieden, wenn uns an Stelle dieser eine Eichel gezeigt wird. So ist die Wissenschaft, die Kro¨ne einer Welt des Geistes, nicht in ihrem Anfange vollendet. Der Anfang des neuen Geistes ist das Produkt einer weitla¨ufigen Umwa¨lzung von mannigfaltigen Bildungsformen, der Preis eines  vielfach verschlungenen Weges und ebenso vielfacher Anstrengung und Bemu¨hung. Er ist das aus der Sukzession wie aus seiner Ausdehnung in sich zuru¨ckgegangene Ganze, der gewordene einfache Begriff desselben. Die Wirklichkeit dieses einfachen Ganzen aber besteht darin, daß jene zu Momenten gewordenen Gestaltungen sich wieder von neuem, aber in ihrem neuen Elemente, in dem gewordenen Sinne entwickeln und Gestaltung geben.

 

그런데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요 새로운 시기에로의 이행의 시대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신은 지금까지의 그의 정재定在[생활] 표상表象[사상思想] 세계와 절연하고 그것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려고 하고 있으며, 자신을 변형하는 일에 착수하고 있다.

 

물론 정신은 결코 정지해 있는 일이 없고, 항상 전진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  그러나 새로운 것은 태어난 어린애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점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최초의 출현이란 겨우 그것의 직접태요 또는 그것의 개념이다. 건물의 기초가 놓여졌을 때에 건물이 완성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의 개념에 도달했다고 해서 개념이 전체 자체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힘찬 줄기와 벌어진 가지와 무성한 잎의 떡갈나무를 보고 싶어할 때에, 나무 대신 도토리를 보여주어도,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세계의 영예로운 관冠인 학도 단초에 있어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신의 단초는 다양한 문화[교양] 형식을 광범하게 변혁해온 산물이요,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오며 여러가지로 분발노력해온 대가인 것이다. 단초는 계기繼起와 확산으로부터 자신에로 귀환한 전체요, 전체의 생성된 단순한 개념이다.

 

그러나 단순한 전체가 현실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지금은] 계기契機가 [먼저의] 형태들이 다시금 새롭게, 그러나 그의 장면들에 있어서, 생성된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전개되고 [새로운] 형태들을 갖추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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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은 굉장히 많은 사람에게 인용되는 부분이다.

 

* 그런데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요 새로운 시기에로의 이행의 시대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우리 시대는 근대로 이행하는 시대다. 우리의 시대는 탄생의 시대다. 이행의 시대다.

 

시대Zeit라는 단어 중요하다. Zeitgeist 시대정신이다. Geist 정신이다. 시대정신을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상의 깊은 저변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제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시대정신을 파악하려면 경험하면 된다. 회화나 이런 하면 되고.

 

* 정신은 지금까지의 그의 정재와 표상의 세계운동을 하고 있다.

정신은 중세시대와 절연하고 과거시대와 절연하고 자신을 변형하는 일에 착수하고 있다. 물론 정지해 있는 일이 없고. 오히려 항상immer 운동하고 있다.

 

전진하는 운동, fortschreitender Bewegung, 좋은 말이다. 정신은 항상 전진하는 운동 속에 있다.

 

여기에서 헤겔의 진보사관을 드러낸다. 전진하는 운동 말은 <<역사철학>> 서문에도 많이 나온다. ‘진보진영 때의 진보가 fortschreitender이다.

 

* 그런데 새로운 것은 태어난 어린애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성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어떤 의도를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데 의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의도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책상을 만들려면 책상의 설계도와 나무와 결합해서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가 현실적으로 실현된 것이 현실성이다.

 

* 최초의 출현이란 겨우 그것의 직접태요개념이다.

 

직접태란

 

1)아직 실현되지 않는 소박한 상태, 맹아적 상태를 가리길 .

2)사상의 저변에 이른 것을 파악 .

 

* 건물의 기초가 놓여졌을 때의도달했다고 해서 개념이 전체 자체 것은 아니다.

 

지점에서 가지 헤겔 철학에 있어서 진리에 관한 얘기를 보자

.어린아이는 헤겔의 용어로 인간의 개념에, 인간의 현실성에 이른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성인이 되는 단계 전부를, 시간이 개입된 과정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진리 파악이다.

영미철학처럼 어느 순간의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 것이 진리파악이 아니다.

건물의 기초에서부터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 전체를 살펴보아야 진리를 있다는 것이다.

 

 

* 우리가 힘찬 줄기와 벌어진 가지와여러 가지로 분발 노력해 것이다.

 

새로운 정신의 단초는 근대적 정신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근대 이전의 여러 가지를 변혁해온 결과물이다. 오늘 우리가 가진 것이 과거로부터의 변혁의 산문들이라는 것이다. 단초. 근대적 정신의 단초 계기. 계속해서 일어나고 계속해서 펼쳐지고

 

 

* 이 단초는 계기와 확산으로부터 자신에로 귀환한 전체요, 전체의 생성된 단순한 개념이다.

 

자기로의 귀환 Sukzession, 역시 헤겔의 술어다.

 

근대철학의 단초가 마련되려면 이전의 중세 철학시대에 뭔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하나로 응집된다. 근대철학의 단초라고 하는 것이 기존에 있던 것과 무관하게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내재적 초출超出 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적 사회의 모순들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에서 드러나 공산주의 사회가 온다는 것이 내재적 초출이다. 역사적 전개과정이 이러하듯이 진리도 어느 갑자기 톨탱이 상태에서 나오는 거이 아니라 끄집어져 나와서 사상의 깊은 저변에 도달하는 , 이것이 진리다.

중세시대에는 사람은 진리를 모른다. 신이 뒷골에 박아준다. 영화 매트릭스의 이미지처럼. 근대적 인간은 자기 안에서 자기 시대로부터 진리를 끄집어 올린다. 그래서 시대의 아들이다.

 

* 그러나 단순한 전체가 현실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형태들을 갖추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의 일이다

 

이전에 형태들이 있었는데 새로운 정신의 단초로 집약이 되었다. 새로운 Anfang 이루는 구성요소들(모멘트) 새로운 장면 새로운 위치에서 과거의 것들이 자기 스스로를 갱신해 나가면서 앞으로 나아 간가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진리 형성의 방법이다.

 

정신현상학은 무식한 이가 세상을 경험해서 조금씩 깨이고 깨이고 깨어서 결국에는 절대적 진리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를 충실하게 서술하면 그것이 진리다.

 

진리 개념이다. 그러니 심란하다.

 

Dies Werden der Wissenschaft überhaupt oder des Wissens ist es, was diese Phänomenologie des Geistes darstellt. Das Wissen, wie es zuerst ist, order der unmittelbare Geist ist das Geistlose, das sinnliche Bewußtsein. Um zum eigentlichen Wissen zu werden, oder das Element der Wissenschaft, das ihr reiner Begriff selbst ist, zu erzeugen, hat es durch einen langen Weg sich hindurch zu arbeiten. -- Dieses Werden, wie es in seinem Inhalte und den Gestalten, die sich in ihm zeigen, sich aufstellen wird, wird nicht das sein, was man zunächst unter einer Anleitung des unwissenschaftlichen Bewußtseins zur Wissenschaft sich vorstellt; auch etwas anderes, als die Begründung, der Wissenschaft; -- so ohnehin als die Begeisterung, die wie aus der Pistole mit dem absoluten Wissen unmittelbar anfängt und mit andern Standpunkten dadurch schon fertig ist, daß sie keine Notiz davon zu nehmen erklärt. Die Aufgabe, das Individuum von seinem ungebildeten Standpunkte aus zum Wissen zu führen, war in ihrem allgemeinen Sinn zu fassen und das allgemeine Individuum, der selbstbewußte Geist, in seiner Bildung zu betrachten.

 

일반의, 또는 지知의 이러한 생성이야말로 정신의 현상학이 서술하는 것이다. 최초에 있는 그대로의 , 또는 직접적인 정신은 몰정신적인 것이요, 감각적 의식이다. 본래적인 지가 되기 위해서는, 또는 학의 순수개념 자체인 학의 장면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지는 도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 이러한 생성은 내용과 내용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형태에 있어서 드러나게 되거니와, 생성은 우선 비학적非學的 의식을 학에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때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닐 것이며, 또한 학의 정초와도 다를 것이며, -- 그리하여 마치 피스톨에서 발사되듯이 직접 절대지로부터 시작하고, 다른 입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걷어치우는 감격과는 다를 것이다. [본서에서는] [특수적] 개인을 그의 교양되지 않은 입장으로부터 [절대]지에로 이끌어가는 과제가 일반적 의미에 있어서 파악되지 않으면 안되었고, 보편적 개인, 자기의식적 정신이 교양의 과정에 있어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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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 일반의, 또는 지의서술하는 것이다.

 

 

앞의 부분과 이어져 말이 되도록 내가 떼어 붙인 것이다.

 

이것이 정신현상학의 서술과정이다.

 

있는 그대로의 , 직접적인 , 아무런 경험도 겪지 않는 ,

매개되지 않는 대상세계를 겪어보지 않는 , 이건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이다.

 

그래서 제정신 차리고 살려면 세상을 겪어봐야 한다.

헤겔을 공부하면 이것이 느껴진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다고 세상을 있는 것이 아니다.

헤겔, 마르크스 공부하면 이상 철학공부를 필요가 없다

. 이들은 철학의 한계까지 갔다. 이들을 공부하면 실용철학 같다. 공부 오래하고 싶으면 순수철학을 공부하라.‘직접적이라는 것은 대상세계를 경험하지 않는 , 매개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헤겔은 매개된 것을 좋아한다. 싫어한 것은 직관이다.

방에 떨어지는 싫어한다. 그래서 직관 좋아하던 셸링과 결별했다.

 

 

* 본래적인 지가 되기 위해서는 도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본래적인 , 본래적인 , 고유한 , 진짜배기 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학의 장면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학의 영역으로 들어서려면 최초의 도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된다.

 

도정, 공부해야 하나? 짜증이 난다.

 

einen langen Weg sich hindurch zu arbeiten. 기나긴 길을 통해서 노동해야 한다. 도정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써놓았다.

 

이것이 정신 현상학이다.

 

1. 비학적 의식을 학으로 인도하는 .

이것은 짐승 수준에 있는 애들에게 이리와 공부하자 하는 것이다. 계몽주의다.

 

2.학의 정초와도 다르다.

인간적 진리가 신적 입장으로 올라서는 것은 칸트의 학의 정초와는 다른 것이다.

 

 3.피스톨에서 총알이 나가듯이.

다른 입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걷어치우는 감격과는 다를 것이다.

 

부분은 셸링을 말하는 것이다. 셀링은 물불 가리는 감격하는 사람이다. 헤겔 방법론을 충실하게 익힌 사람은 직관, 때려잡기 이런 못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절망과 회의의 길이이다.

하나 하나 살펴보아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끌고 가야한다. 무지하게 호흡과 무지하게 진지한 발걸음을 디뎌야 한다. 학문하는 태도가 된다.

 

* 개인들을 교양되지 않은 입장에서 일반적 의미에서 파악되지 않은

보편적 개인. 일반적 개인 세계사적 개인. 세계사의 도정도 서술해야 했다.

 

 

Woauf es deswegen bei dem Studium der Wissenschaft ankommt, ist, die Anstrengung des Begriffs auf sich zu nehmen. Sie erfordert die Aufmerksamkeit auf ihn als solchen, auf die einfachen Bestimmungen, z. B. des Ansichseins, des Fürsichseins, der Sichselbstgleichheit usf.

 

 

그렇기 때문에 학의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개념[ 파악] 노고를 몸소 떠맡는 것이다. 노고는 개념 자체에 대한, 예를 들면, 즉자존재, 대자존재, 자기 자신과의 동등성과 같은 단순한 규정들에 대한 주의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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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노고, 이거는 외워야 한다. 개념의 노고를 자기 자신에게 떠맡는 , 간단히, 대가리 뽀개지도록 생각하라는 것이다. 10년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념의 노고를 받들려면 즉자 존재, 대자 존재, 자기 동등성 이런 개념들부터 파악하고 넘어가라

 

.an sich: 즉자적, 자기 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 . 물정 모르는 . 실체적 생활의 직접성에 있는 .

fur sich: 대자적, 벗어나면 세상이 보이는 , 거울을 보면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자기 객관적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기가 남의 입장에서 자기를 본다.

an und fur sich: 즉자이면서 동시에 대자적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태도. 이것은 사람만이 있는 . 자기 자신에게 풍부한 파악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정신의 운동이다.

 

지금까지 정신현상학에 대해서 조금 얘기 했다.

전체를 읽을 기회가 있는 사람은 읽어 보기 바란다.

 

오늘 말한 부분에 중세를 벗어난 인간의 진리가 어떻게 만들어 것인가에 대해서 헤겔이 제시한 학적 방법이 담겨 있다.

 

정신현상학은 세계사를 정신의 미분화된 실체성으로부터 자기가 자기를 알아보는, 그러다가 결국은 우주를 파악하는 장대한 파노라마를 그려보는 책이다.

 

근대가 이렇게 시작된다. 자신 만만하게. 헤겔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정조는 낙관주의다. 마르크스까지만해도 낙관주의다.헤겔에 있어서의 Geist라고 하는 것은 정신 차려! 때의 정신이다.

 

Geist 몸에 반대되는 mind 의미가 아니다.  

 

 경험이라는 주관과 객관의 겪음이다. 헤겔의 정신은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립하는 개념이다. 이런 정신을 계속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 것이 헤겔의 빌둥철학이다.

 

우리는 도야해야한다.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Bildung 대립되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를 속된 말로 잔대가리라 한다. 멋있는 말로 도구적 이성이라 한다.

 

도구적 이성과 어울리는 와꾸가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는 자본주의다.도구적 이성과 자본주의, 개가 결합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물질화 함으로써 파시즘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적인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인간들이, 근대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사는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인가를 마르크스가 탐구하게 된다.

 

이로써 다음시간에 읽을 텍스트 <<경제학 -철학 수고>> 연결된다.

 

 

/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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