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말한다 “인간들아, 너희는 나에게 꿀벌일 뿐이야”
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 지음|이경식 옮김|황소자리|395쪽|1만4900원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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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봄, 미국 코네티컷주(州) 울창한 숲 속에 사는 스물일곱 살 꺽다리 청년이 자기 집 뒷마당에 대마초 씨 두 개를 심었다. 맹세컨대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원을 가꾼 관록 있는 식물 애호가로서, 태초부터 수많은 인간에게 황홀경과 관재(官災)를 번갈아 안긴 이 희한한 식물을 직접 가꿔보고 싶었을 뿐이다. (일단 본인 주장은 그렇다.)
대마초는 쑥쑥 자랐다. 문제는 마약 단속이었다. 주(州) 경찰이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돌며 대마초 재배자를 색출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비행기 소리가 날 때마다 청년은 기겁을 하며 하늘을 살폈다.
9월이 되자 뒷마당에 키 2m 40㎝에 굵기가 팔뚝만한 대마초 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섰다. 청년은 흐뭇했다. 그러나 재앙은 불시에 닥쳐오는 법이다. 무심코 전단지를 보고 장작을 주문했는데, 트럭 가득 장작을 싣고 울퉁불퉁한 숲길을 달려 청년의 집에 들이닥친 사람이 하필 동네 경찰서장이었다. 서장님은 부업으로 장작 가게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괴력을 발휘한다. 서장님이 장작 일부를 부려놓고 나머지를 가지러 간 사이, 청년은 미친 듯이 도끼를 들고 뒷마당에 뛰어가 사랑스런 대마초 나무를 우지끈 찍어냈다. 와중에도 독한 향기가 나는 잎을 쓰레기 자루에 쑤셔 넣어 다락방에 숨기는 건 잊지 않았다. 청년은 전 과정을 딱 4분 안에 마쳤다.
이 수상하고 민첩하고 유쾌한 청년이 바로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52·사진) 버클리 대학 언론학과 교수다. 둥근 철테 안경을 쓰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버클리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이 남자를 두고 미국 언론은 “과학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연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식물이 인간에게 구사하는 전략
‘욕망하는 식물(The Botany of Desire)’은 폴란이 2001년에 낸 책이다.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영국·프랑스·독일·일본·중국·이스라엘·이탈리아 판(版)이 속속 나왔다. 책은 엉뚱하게도 감자밭에서 시작된다. 5월 어느 날, 활짝 핀 사과나무 꽃 아래서 꿀벌이 붕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감자씨를 뿌리던 폴란은 문득 의아해졌다. “저 벌과 나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하고.
‘꿀벌은 자기가 주체이고 꽃이 객체라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건 꿀벌을 착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꽃이 꿀벌을 조종해 자기 꽃가루를 옮기게 한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지 않은가.’(18쪽)
인간은 “내가 식물을 심고 수확한다”고 생각하지만, 식물 입장에서 보면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식물에게 입이 있다면 “내가 열매와 꽃으로 인간을 꾀어 내 씨를 퍼트리게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꿀벌과 인간은 둘 다 식물이 ‘공진화(共進化·여러 종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화하는 것)’를 위해 선택한 ‘파트너’에 불과하다. 식물이 보기에 꿀벌과 인간 사이엔 우열이 없다.
폴란은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에 주목한다. 이 네 가지 식물은 인간이 가진 네 가지 원초적인 욕망을 만족시킨다. 사과는 달콤함을, 튤립은 아름다움을, 대마초는 황홀경을, 감자는 영양분을 인간에게 준다. 그 대가로 인간은 유사 이래 기를 쓰고 이 네 식물을 심고 가꾸고 퍼뜨려왔다.
가령 사과의 원산지는 카자흐스탄이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사람들이 먹음직스런 열매를 하나씩 따서 바랑에 집어 넣었는데, 그게 유럽을 거쳐 북미 대륙에 퍼졌다. 설탕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단 맛’하면 자동적으로 사과를 떠올리고 군침을 흘렸다.
개척자 조니 애플시드(본명 존 채프만·1774~1845)가 미국 전역에 사과나무를 퍼뜨렸다. 그는 평생 커피 포대를 둘러쓰고 맨발로 터덜터덜 걸어 다니며 황야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기후가 좋고 토양이 기름지고 물길이 닿는 땅을 찾아 사과 나무를 심은 다음, 뒤따라 밀려들어온 정착민에게 사과 밭을 팔고 자기는 사과 씨를 둘러맨 채 더 먼 서부로 다시 길을 떠났다. 그렇게 사과는 인간을 종으로 부리면서 북미 대륙을 점령해나갔다.
사과와 튤립이 세계를 점령하는 방법
17세기에 튤립은 요부(妖婦)처럼 네덜란드 사람들을 홀린 다음, 그들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지만, 그곳 사람들의 일상은 흥청거리는 사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부자나 가난뱅이나 어두운 단색 옷을 입고 열심히 일했다.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이 창백한 국민들이 돌연 튤립에 미쳤다. 절도 있게 쭉 뻗은 꽃대, 화려하고 선명한 꽃잎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매사에 질서와 규율을 강조하는 국민답지 않게, 네덜란드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무늬가 나타난 돌연변이 튤립을 최고로 쳤다. 튤립 붐은 튤립 투기로 이어졌다. 희귀한 튤립 알뿌리 하나가 저택 한 채와 맞먹는 값에 거래됐다. 모든 거품이 그렇듯, 튤립 값 거품도 이유 없이 돌연 꺼졌다. 튤립 때문에 알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했고, 지식인들은 튤립 열풍을 비난하는 책을 쏟아냈다.
이 책에서 폴란은 시적인 유머를 구사한다. 금단의 작물 대마초를 다룬 부분을 읽고 있자면 곳곳에서 웃음이 킬킬 터져 나온다. 가령 폴란이 키우는 고양이는 오후 5시만 되면 개박하를 찾아 채소밭을 헤집어 놓았다. 개박하에 들어있는 ‘네페탈락톤’이라는 화학물질이 고양이가 구애할 때 나오는 페로몬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 정부가 대대적인 마약 단속에 나서자, 그때까지 야외에서 대마초를 가꾸던 사람들이 각종 기발한 재배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구대만한 실내 공간에 대마초를 빽빽이 심은 뒤 할로겐 전구를 쫴서 두 달에 한번씩 대마초 이파리를 1.5㎏씩 수확할 수 있는 작법이 나왔다. 자연 상태에서 5~8%에 불과한 환각물질 함유량을 무려 20%까지 끌어올린 품종도 나왔다.
이 모든 사실을 폴란이 어떻게 알게 됐냐고?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대마초 컵 대회’에서였다. 이 대회는 전세계 대마초 재배자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이 개발한 품종을 자랑하고, 재배 경험과 신기술을 교환하는 품평회이다.
대마초와 감자와 시건방진 인간과…
폴란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는 먹거리다. 이 책에 나오는 마지막 작물, 감자를 다루는 그의 태도를 잘 살펴보면 어째서 그의 지적 관심의 행로가 식물에서 음식으로 옮아갔는지 짐작이 간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가 주는 영양분에 열광한 나머지, 단 한 가지 품종의 감자로 전 국토를 채웠다. 병충해가 엄습했을 때 아일랜드의 감자는 단번에 전부 말라 죽었다. 인간이 자연 교배를 통해 유전자가 뒤섞이는 길을 막았기 때문에, 감자가 병충해에 대한 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은 그래서 일어났다.
한 가지 감자로 전국을 채운 그 시절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저 우둔했다면, 유전자 조작을 시도해 ‘살충 성분이 포함된 감자’ 따위를 개발하는 데 열광하는 오늘날의 인간은 뭐랄까, 시건방진 건 아닐까.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우리는 과연 충분히 알고 있는가. 저자는 묻고 싶다.
“인간과 자연은 지배 관계 아니죠, 그저 공존할 뿐”
마이클 폴란 인터뷰
21일 새벽, 마이클 폴란이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자택에서 전화를 받았다. ‘욕망하는 식물’을 쓸 때 그는 코네티컷주(州) 숲 속에 살았다. 6100평짜리 마당 한 켠에 가로 3.6m, 세로 2.4m 짜리 집필실 을 짓고, 하루 6시간씩 거기 틀어박혔다. 그는 가끔 90m 떨어진 본채로 냅다 뛰었을 것이다. 집필실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가 지금 사는 집 정원은 가로 12m, 세로 6m다. 18평쯤 되는 공간에 그는 상추, 브로콜리, 토마토, 여러 가지 콩, 당근, 오이, 세이지와 레몬 밤 같은 허브를 촘촘히 심고 가꾼다. 그는 일주일에 1~2시간을 정원 일로 보낸다. 하루 6~9시간씩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보이는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대학 때 만나 20년 전 결혼한 아내 주디스 벨처(51·화가)가 그의 첫 독자다. 아내가 그의 글을 품평하듯 그도 아내의 그림을 품평한다.
폴란은 롱아일랜드에서 자라나 영국 옥스포드 대학을 거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석사 학위를 땄다. 미국 잡지 하퍼스 매거진에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돌아섰고, 뉴욕타임스지(紙)에 자연 기사를 쓰다가 2003년 버클리 대학 교수가 됐다. ‘다 쓰고 죽어라’(해냄·2000년)를 쓴 금융 컨설턴트 스티브 폴란(78)이 그의 아버지다. 누이 트레이시(47)는 영화배우 마이클 J 폭스와 결혼했다.
폴란은 “나는 자연을 다루되 머나먼 야생 생태계가 아니라 집 근처에서 소재를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사 한 편, 책의 한 장(章)을 완성하는데 그는 2~3달씩 공을 들인다. 생물학·정치학·사회학·문학·종교학 등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게 책을 읽고 생각을 다듬는다. “인간이 자연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오랜 화두였다. “우리 집 고양이는 자기가 우리 가족을 관장하는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고양이를 관장한다고 착각하고요. 한 발 물러서서 화성인의 입장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고양이와 인간은 지배하고 지배당한다기 보다, 그저 공존(共存)하지요.”
폴란의 아들(14)은 자연에 흥미가 없다. 폴란은 “나도 10대엔 식물을 무시했다”며 “아들도 철이 들면 별 수 없이 정원을 일구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아들한테도 그 말씀을 하셨냐”고 묻자 그는 “물론 안 했죠!” 했다.
[출처] 6.23. 조선일보 'Books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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