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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

The bell jar

by 이덕휴-dhleepaul 2022. 3. 25.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극적인 삶이 있을까. 실비아 플라스 하면 퍼뜩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서보다 사후 60년대 페미니즘열풍에 힘입어 더 큰 주목을 받았던 여류시인. 대학생때까지 무려 400여편의 시를 썼던 천재적인 글쟁이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소설은 『The bell jar』 이 단 한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한편으로 충분히 그녀의 정신적 고뇌와 삶에 대한 목마름과 글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삶이 극적이라고 표현한 데는 살아생전 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된 방법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사실 죽음에 이르게 된 방법을 왈가왈부 하는건 탐탁치 않지만 유명인이기에 피해 갈 수 없는 듯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전 남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다. 첫만남에서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만 8년이라는 결혼생활은 결국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된다. 이혼한지 1년 후 가스오븐 속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그녀의 삶은 그래서 비극적이고 아프고 또 아프다. 테드와의 사이에 낳은 두 남매의 빵과 우유를 챙겨놓고 가스가 새나가지 않게 문틀 꼼꼼히 테이프를 발라놓고 생을 마감했다는 그녀, 그 애정으로 살아갈 순 없었을까...어떤 의미로든 자살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까운 인재, 젊은 여인이 그리 허망하게 간데에 대해 안타까움만 그득하다.

 

실비아는 유독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벨자』 역시 그녀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불과 자살 한달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50~60년대에 성황이었던 전기충격요법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소설속에서 그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지금도 여전히 전기충법요법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우울증 환자 같은 경우 자살율의 증가와 기억상실과 같은 부작용도 있기에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심리적으로는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더욱 배가시키는 비인간적인 치료방법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말년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ECT(전기충격요법)를 12번이나 시행한 며칠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벨자는 종모양의 유리그릇이라는 뜻한다. 소설속의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자신의 머리 위에 이 벨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벨자 속에 갖혀서 제대로 된 자신의 삶과 소통하고 있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빗겨갈 수 없고 한번쯤 생각 해 보지 않은 문제일 수 없다. 다만 실비아 혹은 에스더에게는 그 기간이 오래(어쩌면 죽는 그날까지)였고 이에 대해 영원한 물음을 추구했다는게 다르다면 다를까. 전도유망한 여대생으로, 소설가가 되고싶었던 에스더는 잡지사 공모전에 입상해 뉴욕으로 입성入城한다. 평온하기만 했던 시골의 공부만 잘하던 촌스런 여대생의 삶과는 달리 마천루가 한없이 뻗어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의 삶과 뉴욕사람들의 모습은 그녀를 점점 혼란스러운 경지로 몰아넣는다. 자유롭고 참다운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과는 달리 폐허가 되버린 내면을 갖고있는 사람들의 가식과 가면이 덧씌워져 있는듯한  삶의 모습은 급기야 그녀를 정신분열증이라는 덫 속으로 가둬버리게 된다. 여인의 처녀성과 순결을 중시하는 그녀였지만 이곳에서의 문란한 성생활을 목도함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여성협오증 남성에게 강간을 당할뻔한 위기에 처하고 결혼할 상대로 생각했던 남학생의 동정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자신의 순결을 바칠 남성을 시시각각 찾아다닌다. 다시 만날 필요도 없고 자신의 삶에 하등 연관이 없을 사람으로. 급기야 이것은 피임시술로까지 이어지는데, 에스더의 모친이 바라는 딸의 삶(속기와 타자를 배워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과 자식으로써의 자신의 꿈을 향한 소신이 스스로의 생식의 기회를 박탈하고자 하는 행위로 표출 된 듯 하다. 겉잡을 수 없는 그녀의 정신분열 상태는 자살이라는 최후 수단에까지 이르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이르른다. 갇혀있는 그 곳에서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내면의 혼란스러움은 점점 거세지기만 하고,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나뉘어지는 입원생활 속에서,  더 나은 곳을 향한 기대와(자신의 정신상태가 멀쩡하다는), 자신의 정신은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져 정신병자라고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글로써 충분히 잘 전달되고 있다. 

 

읽는 내내 혼란스러운 소설이었다. 실비아 플라스 자신의 복잡한 정신상태가 그대로 투영된 듯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해가는 에스더의 심리상태로 인해 읽고 이해해나가는데는 좀 더디긴 했지만 실비아의 삶을 알고나서 읽다보면 왜 에스더가 이렇게 다층적인 인물인지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실비아 그녀의 글은 적나라하고 솔직하고 대범하다. 자신의 소리를 가감없이 글로써 자유롭게 표현해냈다.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살 직전의 혼란스러운 정신의 마지막까지도 한달에 30편이라는 시를 써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달라는 부르짖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나......끝으로 사랑과 인생과 자신에 대한 사상이 잘 녹아있는 그녀의 시 몇편과 함께 리뷰를 마칠까 한다.

 

 

 

 

*느릅나무

 

당신이 내 안에서 듣는 것은 바다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광기였던 무無의 목소리인가요?
사랑은 그림자랍니다.
사랑이 끝난 후 당신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우는가요,
들어보세요.
이런 것들은 사랑의 발굽이랍니다.
사랑은 말처럼 멀리 가버렸어요
온 밤을 나는 이렇게 맹렬히
당신 머리가 돌이 되고 당신 베개가 잔디가 될 때까지,
메아리를 울리며, 울리며
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어요. 밤마다 비명은 울부짖으며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 어두운 것이
구름이 지나가고 흩어집니다.
저런 것들이 사랑의 얼굴인가요.
저렇게 창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나는 나무를 꿈꾼다

 

가끔씩 나는 나무를 꿈꾼다
내 인생의 나뭇가지 하나는 결혼할 남자
거기 딸린 잎들은 아이들이다
다른 가지는 작가로서의 나의 미래
거기 딸린 잎은 나의 시다
또 다른 가지는 화려한 학문 경력
그러나 어느새 잎은 갈색이 되어 바람에 날려가고
나무는 모든것을 잃고
헐벗고야 만다.

 

*거울

 

나는 은빛이며 정확하다. 나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을 보든지 나는 즉시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사랑이나 증오로, 흐려지지 않는다.
나는 잔인하지 않다, 단지 솔직할 뿐이다.
네 귀퉁이를 갖고 있는 작은 신의 눈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반대쪽에 있는 벽을 보고 명상에 잠긴다.
그건 분홍색이며, 얼룩이 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기 때문에
내 심장의 일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깜박인다.
얼굴과 어둠이 우리를 자꾸 자꾸 분리시킨다.

이제 나는 호수다. 한 여인이 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내 한계까지 찾아보고 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저 거짓말쟁이들, 촛불이나 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녀의 등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그녀는 눈물과 안절부절 못하는 손짓으로 나에게 보상해준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는 왔다가 간다.
매일 아침 어둠을 대치하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내 속에서 젊은 소녀를 익사시키고, 그리고 내 속에서 늙은 여인이
매일 아침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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