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 대한 충동은 인간이 가진 본능입니다.
복수는 정당하지 않은 피해로부터 보상받고자 하는, 인간에 내재한 본능입니다.
심지어 성서 안에도, 과연 이런 말이 성서에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를 탄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편 69편입니다.
우리말로 가장 생생하게 번역된 공동번역 성서로 읽어봅니다.
"야훼여, 당신 사랑 어지시오니, 들어주소서... 수치에 수치를 당하니 심장이 터지려고 합니다... 죽을 달라 하면 독을 타서 주고 목마르다 하면 초를 주는 자들, 잔치를 차려 먹다가 그 음식에 걸리고, 친교 제물을 나누어 먹다가 망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 허리는 영원히 가누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사는 부락을 돌밭으로 만드시고 천막에는 아무도 없게 하소서... 그들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버리시고 의인들의 명부에 올리지 마소서."
(시편 69:1-28 중에서)
이 세상의 어느 문학이 이보다 더 리얼하게 인간이 가진 복수심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서는 복수를 금합니다. 엄격히 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 갚은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신명기 32:35, 새번역)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로마서 12:19)라고 권면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38-44)
사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무자비한 복수의 법이 아니라 거꾸로 복수의 한계를 설정하는 법입니다.
복수하는 사람은 작은 처벌을 가한다 해도 당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혹하게 느껴 거기서 과잉보복을 또 보복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복수를 한정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법칙은 사사로운 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관에게 위임된 지침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이 법칙이 나타나기도 하지만(출애굽기 21:23-25, 레위기 24:19-20, 신명기 19:21) 이와 반대로 원수에게 자비를 보이라는 구절도 동시에 나옵니다.(레위기 19:18, 잠언 25:21, 잠언 24:29) 하지만 예수께서는 제한된 복수법인 옛 법을 깨끗이 폐지하시고, 원수에 대한 자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님 설교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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