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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The Power of Truth -who am I?

by 이덕휴-dhleepaul 2022. 7. 8.

"픽션(fiction)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를 여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논픽션(nonfiction)은 본질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는 일상 속 가장 내밀한 순간을 통해 그 순수한 이야기의 힘을 교감하고자 합니다. 모호한 현실과 부산한 잡음 사이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아내는 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삶 속에서 목적과 의미를 되찾는 일. 논픽션은 변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순간과 함께합니다.

If fiction is a door that opens the world of imagination, Nonfiction is a mirror that reflects a story’s essence. We celebrate your pure narrative through the most innermost moments of our daily lives. Finding your own solution—between vague reality and bustling noise, regaining purpose and meaning—Nonfiction represents your story."

 

어느 화장품 회사의 광고문이다. 광고문이 이토록 문체가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하고 이 새벽에 감탄을 했다. 

실은 논픽션에 대해서 좋은 글귀가 있는가 하고 찾아보는 과정에서 발견된 글이다.

상당히 감동을 주는 글이어서 나의 칼럼란에 옮겼습니다.

 

이제 나의 글을 써야 본전이 되겠지요?

 

픽션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를 여는 관문이라는 말에 동조한다.

특히 소설의 경우에 많이 등장하는 패턴인데 하필 위의 글이 화장품 회사의 글입니다. 그려.

화장은 얼굴에 떡 칠을 하니까 가면이죠 .

희랍어에서 페르죠나 라는 말은 가면을 일컫는데 이는 인간의 본모습을 가리우고

세상에 드러내는 본인의 아바타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Who am I?

라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나다. 

 

하나님이 맨처음 자신을 드러내는 말씀이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드러내는

피조물로서의 존재일 뿐이다.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을 우리는 영어로 사람 -Person 이라고 한다.

라틴어로 PERZONA(가면)을 영어에서는 PERSON(인간)이라고 한다.

가면 무도회가 떠오른다. 무대는 세상을, 가면은 나의 본질을 세상에 의탁하고

나는 나 아닌 즉 나의 본질적 존재가 아닌 비존재로서의 나를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다. 나의 운명은 절대자인 하나님 신이 당신의 피조물로서 인격을

나의 질그릇에 담아 주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존재이자 질그릇에 담아 준 분량만큼의

나의 진실한 소유이다. 

 

그렇다면 현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신뿐이다.

세상 만유는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에 의해 생겨났다.

그래서 신은 조물주이시고, 만유는 피조물인 것이다.

만물은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 신만 스스로 있는 자이다.

논어 첫 장의  학이편(學而篇)에 보면;
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상은 나를 결코 호락호락하게 놔 두지도 않고

또 내가 좀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내가 좀 잘 나가면 오히려 셈을 내지요. 형제간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신만이 나를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 라고

아브라함이 스스로 고백했었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나는 나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나는 내가 남으로부터 비난가능성이 

한 점이라도 있는가? 있다면, 씻어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남을 먼저 비판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겟스비'(The Great Gatsby)라는 소설 첫마디에서

겟스비 아버지가 어린 갯스비에게 늘상 했던 말;

"네가 남을 비판하기 전에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 비판받아야 할 사람보다 최소한 더 나은 더 유리한 조건을 네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종종 가르쳤습니다.

영화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U4SyqtoBkdE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그래도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남을 판단하던지 잡수던지 하라!

 

오늘 제목이 너무 컷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실속이 없네요.

양지 양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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