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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형이상학과 존재론 -철학 일반이론

by 이덕휴-dhleepaul 2022. 7. 30.

형이상학과 존재론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호응이나 지원이 없다 해서 징징거리면 안 된다. 한국은 인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근본적으로 빈약한 나라다. 지적인 풍토는 하루이틀에 세워지는 게 아니어서 한국의 경우 적어도 조선시대부터 살펴봐야 한다.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공부했다. 과거를 오늘날로 치면 행정고시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를 통해 관료로 진출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공부 자체를 즐기기 위해 공부하는 전통은 굉장히 빈약하다. 일본의 아주머니들이 배용준을 좋아해서 남이섬을 많이 찾는다 한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들이 다시 일본에 돌아가면 한국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다. 일본인들의 특징은 한번 공부를 시작하면 평생토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업과 관계없는 민간차원의 연구회가 굉장히 많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한국에서는 옛날 책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80년대에 출간된 책 중에 지금까지 팔리는 책이 거의 없다.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힘들다. 74년에 내 지도교수께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 번역을 번역하셨다. 30년이 넘도록 아직 새 번역이 나오지 못했다. 지도교수께서 41세에 이 책을 번역하셨다. 나는 그 나이에 뭐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술 먹으며 놀았을 게다. 어쨌든 책만큼 역사성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없는 것같다. 이번에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를 번역하면서 든 생각이다. <<경제학 철학 수고>>는 1987년에 이론과실천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번에 내가 다시 번역하였다. 다음달에 출간될 예정이다. 1987년에서 2006년이니 20년 만이다. 1987년판의 역자후기를 보면 번역자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말 –'독자들의 질정을 바란다' – 는 구절이 있다. 나는 새 역자후기를 쓰면서 그 구절을 인용한 다음 이렇게 썼다. '나의 번역은 독자의 한 사람이었던 나의 질정이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10년 후에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서 다시 번역해 내놓으면 30년만에 세번째 개정이 되는 셈이다.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칸트야말로 진정한 근대인이며, 진정한 근대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이교도pagan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레자 아슬란이란 사람이 쓴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이론과실천)를 읽어보면, 이슬람 사회는 자신의 전통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작업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아직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슬람은 아직도 종교적 교리의 해석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우지만 크리스트교는 30년 전쟁을 겪은 후로는 종교 때문에 싸우지는 않는다. 종교문제로 편을 갈라 싸운다는 건 사회가 아직 세속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막스 베버의 용어를 빌리면 탈신화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종교를 재검토함으로써 그것을 좀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인 동시에 완전한 의미에서 종교를 인간생활에서 털어내 버리는 것이다. 종교가 인간생활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쓸쓸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공유해온 가치관을 믿을 수 없게 되니 천박해지는 것이고, 그 천박함이 절정에 도달하면 정말로 쌍스러운 물신숭배가 된다.

 

이와 같은 세속화 혹은 탈신화화 과정이 곧 근대 계몽의 기획이다. 칸트를 가리켜 흔히 계몽주의의 완성자라고 일컫는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세속적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경험이 사태를 판단하는 핵심적인 규준이 된다. 칸트를 계몽주의의 완성자라고 일컫는 까닭은 이러한 계몽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몽주의의 완성자로서 칸트가 전개하는 철학은 한마디로 말해 '근대적 인간의 철학'이다. 칸트에게 인간은 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신의 세계를 알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현상知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이며, 절대知를 알지 못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함축이다. 현상知를 다루는 학문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인데 이들 학문분과들은 신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세계의 문제만을 다룰 뿐이다. 칸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을 현상知에 묶어둠으로써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같이 현상知를 다루는 학문들도 하나의 학Wissenschaft으로서 정초한다. 이 같은 정당화가 칸트의 놀라운 업적임은 분명하며, 오늘날 우리가 칸트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의의인 것이다.

 

"칸트 앞에 놓여진 것은 단적으로는 '인간적 인식의 몰락'이라고까지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합리론에서 성립하는 인식은 더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신적 이성의 것이었다. 경험론은 일체의 실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인과율의 타당성까지도 의심하는 회의론으로 귀결되었다. 칸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모든 학적 가능성이 절멸되어 버린 듯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시원始原을 마련할 가능성을 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칸트에게는 행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칸트는 합리론적 지반 위에 서있던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워준 이가 흄이었음을 의식하기라도 한듯이 경험론의 성과, 즉 회의론에서 출발 -- 이것은 무척이나 의미있는 출발점이다. 완전한 소진 속에서 불씨를 되살리는 이러한 사유의 힘은 위대한 철학자의 천재성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선행하는 사상의 궤적을 있는 그대로 되짚어 보는, 자기를 잊은듯한 읽기의 과정에서 그 사상의 부정합을 발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 한다. 그런 까닭에 경험론의 성과는 그대로 칸트 철학의 근본 구도를 이루는 것이 된다. 경험론의 핵심 주장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인식이 경험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당연하게도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 이를테면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확고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또한 경험론의 귀결인 회의론은 인과율의 타당성을 의심하며, 그에따라 인과율에 기초를 둔 근대의 자연과학적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부인한다. 칸트가 대결하는 문제영역은 이 두 가지이다. 그는 뉴튼Newton(1643-1727)의 수학적 자연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사실로서 확립되어 있는 자연과학적 인식을 단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선 이 영역에 있어서의 학적 인식의 근거를 밝힘으로써 자연과학의 확실성을 정초하려 한다.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사태가 조금 다르다. 그것은 경험 데이터를 통한 인식이 성립할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정초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칸트의 철학에서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발견되면 '학적인 인식과는 무관한'을 앞에 붙여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가 자연과학을 본받아 '학의 확실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정초하려 했으나, 체계적으로 완결짓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어지는 독일관념론의 철학자들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하다하여, '체계수립'이라는 최종 귀결, 이를테면 헤겔의 거대한 정신의 체계 등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칸트의 의의를 간과하는 것은 몹시도 부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는 분명 계몽으로서의 인간 정신이 그 극점으로까지 사유를 밀고나간, 다시 말해서 그에게는 신적인 정신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초하려 하면서도 끝내 신을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인간 정신에 대한 강인한 신뢰의 소산이었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합리론과 경험론의 의의와 그것이 칸트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자. 합리론은 인간이성을 진리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인간이성의 확실성을 신적인 이성으로부터 얻어내려 했기 때문에 결국은 독단적 형이상학으로 귀결되었다. 이에 비해 경험론은 인간의 경험을 진리인식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진리의 규준과 근거를 찾으려 한 태도를 견지하기는 했으나 일체의 실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대상세계를 움직여가는 인과율까지도 의심한다는 점에서 자멸적인 회의론으로 마무리된다. 여기까지 오면 합리론이나 경험론이나 신이 아닌 인간이 확실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름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적 인식의 몰락'이다. 이것이 칸트 앞에 놓인 상황인데, 칸트는 이로부터 자신의 학적 시원(始原/Anfang), 즉 출발점을 세운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칸트에게는 그만큼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칸트는 합리론의 기반 위에 경험론의 성과를 받아들인다. 이는 칸트가 흄의 회의론에서 출발함을 의미한다. 흄의 회의론을 거칠게 설명하자면, 어떤 대상을 끝까지 의심하고 의심하다 보니 세상에 아무 것도 믿을 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회의론이 그 자체로 철학적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전제도 갖지 않은 상태를 학적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하기 있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다. 흄의 회의론으로 대표되는 경험론의 성과가 칸트 철학의 출발점이다. 경험론의 핵심주장은 인간의 인식은 경험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은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형이상학에서는 확고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칸트가 보기에 경험이라는 것이 굉장히 생생하기는 하나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을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요컨대 필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험론은 회의론에 빠질 수 있는 여지가 드러난다. 어떤 음식점에서 먹은 스파게티가 맛있다고 하여 '스파게티는 맛있다'라는 명제를 끄집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험론의 성과를 받아들이는 한편, 칸트는 뉴튼에서 시작한 자연과학적 인식의 확실성을 살려두고자 했다. 경험론의 성과를 받아들였을 때, 인간의 감각경험은 형이상학적 대상의 확실성을 확신할 수 없다. 칸트철학에서 형이상학은 학적 인식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칸트가 보기에 형이상학적 대상세계는 학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필요에 의해서 받아들여야 할만한 것들이었다. 칸트에게 도덕법칙은 인식론적으로 확실함을 밝힐 수 없다. 그렇다면 도덕법칙은 어찌 하나? 인식론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니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인간들이 흐리멍텅하여 별 관심이 없다면?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이 시대를 겪은 칼 슈미트는 대중이 흐리멍텅하니 헌법을 누가 수호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칼 슈미트의 결론은 힘센 놈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대중들은 헌법을 지키지 못한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몇 달째 헌법재판소장이 비어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칸트가 보기에 형이상학은 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구성설적 인식이론처럼 우리의 경험데이터를 바탕으로 선험적 오성을 가지고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형이상학에서도 학적으로 확실한 토대를 만들려 하였으나 이 과제는 독일관념론의 철학자들에게 던져진다. 독일관념론의 철학자들은 칸트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간다. 

 

칸트 이후의 시각으로 칸트를 보면 칸트가 굉장히 별볼일 없어진다. 그래서 몇몇 헤겔 연구가들은 칸트를 우습게 안다. 헤겔이 완숙한 노인이라면 칸트는 철없는 청년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없었으면 독일관념론은 불가능했다. 어떤 이들은 헤겔의 '절대적 정신'이란 개념이 칸트가 신을 죽인 후에 신을 되살린 것인데  예전처럼 '신'이라고 쓰기 뭣하니까 '절대적 정신'이란 용어로 바꿔 부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칸트는 인간정신의 한계가 현상지에 머무른다고 한정한다. 칸트가 이렇게 인간정신이 신적인 도움없이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끌어놓으니, 헤겔은 아예 인간의 정신이 고양되면 신적인 차원에까지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 것은 아닐까 싶다. 칸트만큼 인간이성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없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보아도 그렇고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을 봐도 그렇다. 계몽을 공적으로 사용하면 그만큼 인간사회가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찌보면 칸트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인간이성을 토대로 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가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남는다. 칸트가 아무리 현상知에 대한 만족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꼭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바로 신이다. 신을 반드시 기독교적 인격신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관대하게 이해하자. 전통적으로 서양의 형이상학은 신에 대해 논의해 왔다. 한국인은 초월적인 인격신에 대한 개념이 없는 탓에 신의 문제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왜 서양적인 의미에서의 신의 개념이 없는 걸까? 플라톤에서 이데아와 현실세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플라톤이 그래서 이데아를 명확하게 논증하지 못하고 신화를 끌어들여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초월적이라는 말은 사람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은 도저히 이어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가령 모세가 하느님에게 십계명을 받을 때 "I am who I am"라고 한다. 서양인들은 Be 동사에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Be 동사를 가지고 고민한다. 한국어와 같이 있다/이다 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구적 형이상학은 우리 말로 완벽하게 번역이 안 된다. 서양인들은 사람과 신 사이에 십자가 모양의 다리를 놓고. 거기에 사람을 매단다. 바로 예수다. 예수가 신의 아들로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서양의 정신세계에서 진리값은 온전히 신에게 국한되어 있다. 현실은 사기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세속적인 삶을 화끈하게 산다. 어설픈 도덕주의가 없다. 트로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이나 인간이나 아쌀하게 현실을 산다. 그런데 우리는 사방에 신이 있다. 부엌에도 신이 있고 삼신할매도 있고 여기저기 걸리적 거리는 게 많다. 세속세계와 신적인 세계가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라틴어 profanus의 뜻 중에 '성당 앞뜰'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 profane(세속적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보면 profanus에서 히야까시(남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희롱하여 벌이는 짓)를 벌이는 모습이 묘사된다. 세속세계와 신의 세계의 분리가 서구세계의 기본적 정신이다. 신의 세계를 물 자체, 세속세계를 현상知로 생각해 보라. 물 자체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저 거기서 오는 감각 데이터에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러한 현상知에 만족하지 못한다. 물 자체의 본성을 알고 싶어 한다. 사물의 본성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형이상학적 욕구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앎에 대한 욕구이다. 그런데 물 자체는 알 수 없다. 연애에 비유해 보자. 남자라면 여자의 마음이, 여자라면 남자의 마음이 알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다. 여기서 스토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칸트가 연애하는 이들에게 주는 교훈이 여기에 있다. 물 자체를 알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라. 현상知에 만족해야 한다. 나는 그/그녀의 문턱에서 머물러야 한다. 물 자체에 대한 욕구와 그녀/그놈을 알고 싶다는 욕구는 거의 같다. 형이상학적 욕구가 깊어서 그/그녀의 본성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은 연애에 실패한다. 반면에 현상知에 만족하는 사람은 연애에 성공한다. 커플티 입으면서 즐거워 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욕구가 높은 사람은 커플티를 못 입는다. 그것을 입는다고 해서 둘의 본질이 같아지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본질을 파고들어 속속들이 알고 싶다는 욕망, 이것이 연애를 깨뜨리는 주범이다. 이백의 시를 필사하며 신선도를 닦아야 한다.

 

신의 세계와 세속 세계의 단절은 플라톤, 중세, 칸트에서 발견되며, 이것이 서양철학의 주류를 이룬다. 서양철학의 주류들은 기본적으로 초월과 인간 사이에 깊은 심연이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를 이어보려는 이들은 서양철학의 주류가 아니다. 무한자와 유한자, 본질과 현상의 문제, 양자를 학적으로 이어보고자 하는 시도는 서양철학의 비주류를 이룬다. 무한자의 문제, 본질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 형이상학, 제1철학이다. 앞서 설명한 서양인들의 맨탈리티를 바탕에 깔아야만 이해되는 것들이다.

 

먼저 제1철학부터 알아보자. 지금까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신을 거론하였으나 이제부터 신은 잊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근본적인, 궁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래의 텍스트는 <고전적 형이상학에 대한 현대적 접근contemporary approach to classical metaphysics>이란 책에서 관련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제1철학 First Philosophy

우리가 여기서 고찰하게 될 연구 분야는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연구과정의 당면과제를 명시하거나 특징짓기 위해 이런저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더러 선택된 접근법을 드러내거나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제1원리로서의 학문 혹은 제1철학이라고 불리워 왔던 것인데, 그것은 철학적 분과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철학의 다른 모든 분야들이 반드시 의존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철학(protē philosophia) 이라는 이 명칭에, 원리들에 대한 연구, 제1원인들에 대한 연구 그리고 존재로서 존재의 본질적인 속성들에 대한 연구를 부여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그가 "신학theology"이라는 술어를 사용했던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존재에 관한 연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은 분명히 기독교 전파 이후 서구에서 발전되어 온 것으로서의 신학, 즉 신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라 믿어지는 계시라는 기본 데이터에 일차적으로 의존해서 연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성의 일부분에 입각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는 시도이며, 그 시도 속에서 무엇이 참으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원인과 이유들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형이상학, 제1철학, 존재론 등 어떤 명칭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북한 핵 사태를 두고 얘기할 때. 어떤 사람은 핵의 평화적 이용은 찬성하지만 나는 핵의 평화적 이용 자체조차 반대한다. 북한에서 핵무기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남한의 핵발전소에 폭탄 터뜨리면 된다. 거기 터지면 10초도 안 되서 전국이 핵바다가 된다. 핵발전소도 전기만드는 공장이라 사용연한이 있어서 그게 지나면 콘크리트 쳐서 묻어야 한다. 나는 평화적 이용 자체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제1원인들에에 대한 연구, 즉 존재 그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연구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제1철학이다. 제1철학은 궁극적인 것에 대한 탐구이며, 따라서 이것은 탐구대상을 가지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별볼일 없는 것에 대한 연구는 제3철학 정도 되겠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신학theology라고 한다. 이것은 기독교적 인격신으로서의 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theos를 옮길 말이 적당치 않아서 신이라고 옮긴 것일 뿐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theology는 최상의 학문인데 우리는 그것을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존재에 대한 연구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궁극적인 원인인 제1원인에 대한 연구, 존재로서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연구, 궁극적인 것에 대한 연구, 사물의 본성 그 자체에 대한 연구라고 하면 그것은 제1철학이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철학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형이상학 Metaphysics

우리 연구주제를 서술하는 데 사용되는 또 다른 말은 형이상학이다. 이 말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연학(ta physica) "다음에(meta)"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주요부분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곤 하였다. 그러나 '자연학-다음에meta-physics'에서의 '다음에meta'는 모호한 말이다. 이 그리스어 전치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일련의 저작들 중에서 자연학Physics 다음에 배열된 것으로서의 "다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치사는 또한 "~보다 위에" 혹은 "~를 넘어서"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형이상학이 자연학보다 위에 그리고 자연학을 넘어서는 데 위치한 것과 관련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이라는 지시어는,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중 자료의 어떤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편집상의 편의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거기에서 무엇이 고찰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 즉 자연적인 것 위에 그리고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다. 그러나 "자연학physics"라는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그리스에서 더 많은 다양한 의미가 있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Physis라는 그리스어는 라틴어로는 natura로 번역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결국 영어로는 "nature"라고 번역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형이상학은 자연을 넘어서는 것 그리고 자연을 초월한 것 — 따라서 "초자연" 혹은 "초자연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 을 연구하는 것이라 믿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상 신학이라는 말을 이러한 연구 영역의 문제를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는 데 사용했음에도, 형이상학은 우리가 말하는 뜻의 신학이 아니며, 신비스런 학문의 하나도 아니다. 그리스어의 의미로 physics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또한 "physics를 넘어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어의 어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그리스어는, 그것의 라틴어 번역이 natura인 것과 같이, "자라는 것" 그리고 "발전하는 것"(phyo)이라는 뜻을 지닌 말에서 유래되었거나 최소한 그것과 관련이 있다. 이 그리스어는 자연, 즉 근본적으로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우주, 전체로서의 우주를 품고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을 가졌는데,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런 것처럼, 스스로 운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그리스어는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을 예리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전체로서의 세계는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며, 데카르트가 17세기에 상상했던 죽어있고 무생명적인 우주와는 매우 다른 관점으로 여겨지는데, 그는 물질(필연적으로 연장인)과 운동이라는 관점에서만 물리적 우주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연세계를 운동 혹은 움직이는 존재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그러나 그 운동의 궁극적인 원인 혹은 원인들은 우주 그 자체 안에, 즉 우주 맨 바깥에 있는 부동의 원동자(혹은 원동자들)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또한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와 운동들에는 기본적인 목적론 혹은 목적성이 있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마지막 인과율까지 포함하는 모든 인과율이 우주 그 자체 안에 있는 힘들로부터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데카르트에게 있어서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의 최초의 원인이 물질과 운동으로 이루어진 세계 외부에 있는 제1원인으로 귀속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정신 속에 그리고 제1원인의 알 수 없는 설계 속에만 있을 수 있는, 궁극적 원인들에 대한 탐구는 있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세계와 데카르트의 자연세계와의 차이점은,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차이점으로 규정지을 수 있겠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주를 기계와 다른 바 없이 단지 연장과 운동의 의미로만 생각하는 것은, 경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반복되는 계절로, 즉 봄이 여름에게 길을 비켜주고, 겨울의 죽음은 봄의 부활로 이어지는 그런 식으로 세계를 경험했다. 이와 유사한 주기적이고 자족적인 운동들은 천체의 움직임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었다. 만물은 우주 그 자체 안에 있는 원인들과 이유들에 의해, 생동하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운행되었다. 그리스적 관점과 데카르트적 관점이 자연세계를 보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또한 자연학physics 위의 것 그리고 자연학physics을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형이상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과학으로부터 혹은 근대물리학을 통해 받아들였던 자연세계에 대한 오늘날의 관점에도 거의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물론 이것이 형이상학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가 그리스적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소간에 과학적이었던 자연관, 즉 사람들이 자연학physics으로 간주했던 관점으로부터 나온 몇몇 전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physics 위의 것 그리고 physics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접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이상학metaphysics는 그것의 어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특정한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 meta는 '~다음에'를 뜻한다. physics는 physica에서 온 말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에서는 자연학으로 번역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물리학이란 학문분과가 성립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이를 물리학으로 옮기면 안 된다. 뉴튼의 주저인 <프린키피아> 즉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만 봐도 물리학이란 말 대신에 자연철학이라는 말을 쓴다. 자연학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자연철학이다. 자연철학에서 철학의 흔적을 말끔하게 털어내고 오로지 물리학으로 대체한 것이 근대 과학혁명의 성과이다. 어떤 이들은 Arisotle's physics를 '아리스토틀의 물리학'으로 오역하기도 한다. 월터 카우프만이 쓴 <<인문학의 미래>>라는 책에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의 제목을 달아놓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 편집자들이 재편집하여 제목을 붙여넣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도 그러한데, metaphysics를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자연학 다음의 형이상학'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meta는 '다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를 넘어서', '~ 위에' 라는 뜻도 있다. 이렇게 보면 형이상학은 자연을 넘어선 무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무엇일까? 그리스어 physis는 자연, 본질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natura가 된다. natura는 자라나는 것, 발전하는 것 등의 의미도 지닌다. 그러니까 physis라는 말을 쓸 때, 그리스인들은 거기서 자연세계를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의 자연관이다. 이러한 자연관이 17세기 데카르트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신영복 교수가 <<강의>>라는 책에서 동양사상은 관계론이고 서양사상은 존재론이라고 단순무식하게 도식화하는데, 고립된 원자론적인 의미에서의 존재론이 서양사상에 나타난 것은 데카르트 이후부터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는 것 자체가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physis는 살아있는 대상으로서의 무엇이다. 그러므로 physis의 핵심적인 속성은 운동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에서 운동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운동의 그리스어가 kinesis다. 운동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움직이는 것은 궁극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나 대상은 움직이는, 즉 운동을 일으키는 부동의 원동자를 거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운동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운동 대신 변화를 쓸 수도 있는데, 운동도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서 살다가 죽는 것도 일종의 운동이다. 1) 본질적 운동/변화 2) 우연적 운동/변화. 가령 강유원이 길을 가다가 사고가 나서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하자. 멀쩡한 강유원이 안멀쩡한 강유원으로 변화했다. 이것은 우연적 변화다. 왜? 강유원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목이 잘려 버리면 본질적 변화다. 중세 때 마녀를 화형시킨 이유는 악이란 본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로 태운 것이다. 돌멩이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진다고 하여도 돌멩이라는 본질은 유지하므로 그것은 우연적 변화이다. 결국 identity의 문제이다. 본질을 변화시키면 본질적 변화, 그게 아니면 우연적 변화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세계를 생물학적으로 보는 것이며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운동은 무엇인가? 인간의 성장과정은 어린이 – 청소년 – 청년 – 장년 – 노년을 거쳐서 마침내 죽음으로 일단락된다. 이 과정 전체를 일생이라고 할 때 어떻게 말하면 사람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영어 End가 끝을 뜻하기도 하지만 목적을 뜻하기도 한다. End의 그리스어는 telos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이 과정 전체가 운동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운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운동개념은 간단하다. A라는 장소에서 A'로 움직인 것만이 운동이다. 데카르트에게 앞서 말한 운동은 철학적으로 탐구할 대상이 아니다. 데카르트의 자연관은 지극히 물리학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이 변했네 라고 할 때 우리는 정서적인 관점에서 말하는데 데카르트는 그것을 논의하지 않는다. 근대라는 세계는 데카르트에 의해 physis의 개념이 바뀐다. 이 당시의 근대 자연과학의 특징적인 면모는 기계론으로 대표될 수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해서 인간을 해부하여 다시 붙이는 프랑켄슈타인적 인간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 즉 살아있는 전체로서의 생명과 자연은 폐기된다.

 

형이상학, 제1철학, 존재론 중에서 제1철학이라는 말이 가장 넓은 범위다. 존재자 그 자체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에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 형이상학적 태도다. 반대로 우리가 접근가능한 곳에 있다고 보는 것이 존재론이다. 제1철학은 근본적인 것을 논의하는 탐구대상을 가리킨다. 요컨대 근본적인 것을 어디에 두고 탐구할 것이냐에 따라 형이상학과 존재론이 갈리는 것이다. 형이상학은 궁극적인 것이 피안인데 비해 존재론은 차안에 있다.

 

여기서 자연을 어떻게 볼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고대 그리스인의 자연관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 사이의 차이점이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인의 자연관과 근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비교설명하라는 것이 철학과 시험의 단골주제이다. 생물이 가만히 있는다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은 하나의 단초이며 이것의 목적은 무성한 나무다. 그것은 열매를 맺게 되고 결국에는 도토리가 되어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그 도토리가 다시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결국에는 도토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결국 도토리의 목적인 도토리인 셈이다. 그런데 처음 도토리와 나중 도토리는 똑같은 것 같지만 나중 도토리는 인생을 격은 도토리다.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과정을 겪어본 뒤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면, 도토리는 삶의 과정에서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도토리 안에는 궁극적인 뭔가가 들어있고 나중에 펼쳐져 나간다는 것, 여기서 도토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 잠재태이고 펼쳐진 것이 현실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운동은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펼쳐지는 과정이며, 현실태가 잠재태를 끄집어내는 것이 목적이 된다. 잠재태가 운동의 목적이자 원인이 된다.

 

그러나 데카르트에서는 장소만 바뀌면 운동이 된다. 누군가 책상을 옮기면 그것이 운동이다. 단순한 이동도 운동이 되는 것이다. 씨앗이 도토리가 되는 것은 객관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측정이 불가능하므로 논의할 가치가 없다. 반면에 장소의 이동은 측정이 가능하다. 근대세계에서의 운동은 측정가능한 운동만을 운동으로 간주한다.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느냐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 근대 밑바탕에 놓여있는 운동관이다. 뭔가가 이동하려면 외부에서 그것을 쳐줘야 하는데 데카르트는 그것을 세계 외부에 있는 제1원인으로 상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세계와 데카르트의 자연세계와의 차이점은,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차이점으로 규정지을 수 있겠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주를 기계와 다른 바 없이 단지 연장과 운동의 의미로만 생각하는 것은, 경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반복되는 계절로, 즉 봄이 여름에게 길을 비켜주고, 겨울의 죽음은 봄의 부활로 이어지는 그런 식으로 세계를 경험했다. 이와 유사한 주기적이고 자족적인 운동들은 천체의 움직임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었다. 만물은 우주 그 자체 안에 있는 원인들과 이유들에 의해, 생동하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운행되었다."

 

자연관은 역사적 사유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은 지녔던 그리스인들은 기본적으로 순환사관을 가졌다. 반면에 데카르트적 자연관을 지닌 근대인들은 직선적인 진보적 역사관을 갖는다. 어떤 사회의 맨탈리티가 그 사회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자연관이 지배하고 있는 근대인들은 질적인 축적을 중요시하지 않고 양적인 축적만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고양되었고 인격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는 측정이 불가능하니까 거론하지 않는다. 근대는 정말로 행복한 시대다. 나의 가치가 견적서로 명확하게 나온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연이라는 말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었다는 것, 자연의 기본속성은 운동인데 그것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는 것을 형이상학을 통해 함께 이해하기 바란다.

 

존재론 Ontology

우리의 연구 과제를 기술하는데 사용하는 또 다른 술어는 존재론ontology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가 두 개의 그리스 단어 – logos(연구 또는 학문)와 ontos(그리스어 동사 "있다(to be)"의 분사형) – 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재의 연구에 대한 이 용어 사용의 기원이 그리스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존재의 학문이나 연구의 기원은 그리스이고, 이 용어의 어원 역시 그리스어이다. 그러나 존재론이라는 용어는 더 직접적으로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추종하고 체계화한 18세기 사람인 크리스티안 볼프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나 볼프 둘 모두 데카르트 이후의 사람들이고 새로운 물리학에 의해 소개된 자연 세계를 보는 물리적이고 수학적인 관점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데, 그들의 존재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후의 학(meta-physics)'과 그를 추종했던 중세의 사상가들과는 급진적으로 달라야 했던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볼프류(類)의 일반존재론과 특수존재론은 이러한 사실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또한 18세기 후반 임마누엘 칸트가 존재론, 즉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이 특별한 방법을 거부한 것을 성공적으로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ontology라는 말이 학문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8세기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에 의해서이다. 존재론은 제1철학의 대상인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을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차안의 세계에 있다고 상정하고 탐구한다. 존재론적 탐구는 제1원인에 대한 탐구방법 중 하나인데, 형이상학적 탐구와 구별된다. 칸트의 구성설적 인식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물 자체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칸트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시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도는 피안의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차안의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이므로 정확히 얘기하면 존재론일 것이다. 중세 형이상학은 신에 대한 탐구를 과제로 삼았다. 신은 피안의 세계에 있다. 중세에 사물의 궁극적인 원리는 신이다. 그러므로 제1철학은 신학이다. 형이상학적 방법으로 신이라는 궁극적 실체를 탐구하는 것이 제1철학이었다. 칸트에게 신은 물 자체에 속한 것이니 신에 대한 탐구는 곧 물 자체에 대한 탐구인데, 물 자체는 차안의 세계에 있는 것이므로 형이상학적 방법으로 그것을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칸트야말로 존재론적 탐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 

 

형이상학이란 말이 남용되는 바가 없지않은데 최대한 좁은 의미로 쓰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에는사물의 궁극원리와 존재자 그 자체를 초월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탐구하는 형이상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어쨌든 칸트 이후의 제1철학은 존재론적 방법을 가지고 시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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