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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法神學

신학적 인간학에서 논하는 인격 개념 / 이덕휴 신학포럼

by 이덕휴-dhleepaul 2018. 5. 17.

신학적 인간학에서 논하는 인격 개념 / 이덕휴 신학포럼 2|좁은門

거울 | 조회 37 |추천 0 |2006.02.14. 13:01 http://cafe.daum.net/intake46/RoQ/237

 

3. 현대 신학의 인격 개념

3.1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

마틴 부버는 대표적인 유대계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추상성에 대한 거절과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철저한 실존주의자로서 시온주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학문적 공헌은

1922년 독일에서 발행된 “나와 너”라는 저작을 통해서였다.

나와 너의 관계는 타자(他者)와의 대화를 유발한다.

대화 속에서 나는 단순한 조망자가 아니라 참여자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개념적인 지식의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관계이다.

나는 너로 인해 비로소 내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관계성의 필수적인 부분인 개방성을 요구한다.15)

부버는 이런 ‘나와 너’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나는 자의식을 인격이라 부른다.16)

한수환 교수에 따르면, 부버에게 있어서 인격이란 인간 내면에 있는 독특성도 아니고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별성도 아니라 창조시 선물로 주어진 관계성에 의해

‘나와 너’의 관계가 가능하며 거기에서 인간은 인격이 되는 것이다.17)

‘나와 너’의 관계성에서 인간은 실체적으로 인격 자체가 아니며,

인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도 아니다.

다만, ‘나와 너’의 관계 도식 속에서 나는 너로 인해 인격이 되는 것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세 가지 영역에서 가능하다: 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부버에게 있어서 나와 너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인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조물로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격 자체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격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18)

이러한 나와 하나님의 만남은 황홀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는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케 하기 위함”인 것이다.19)

부버는 말하기를, “참다운 계시는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불러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내어 보내는 특질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칫 하나님의 계시를 실현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에게로 귀착(歸着)하려고만 한다.”20)

그 의미는 인간의 시선을 하나님께만 머물지 않고,

세상(자연과 인간)을 향하여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향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3.2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칼 바르트는 초기에 쉴라이허마흐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했던 학자였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에서 종교적 도덕주의 또는 개인주의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인간 중심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렇다고 해서 그가 인간학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신학은 기독론에 철저히 기초한 인간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 신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말씀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 있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신학적 지식의 대상이 된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계시되어졌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역사이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학적 인간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깊은 관계성에서 가능하다.21)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의 또 다른 특징은 철저히 기독론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참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으로 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22)

바르트는 현대 신학의 가장 큰 오해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인간 본성 자체에 주어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자의식 또는 인간의 도덕적 경험에 의해 하나님은 발견되기를,

그리고 만나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본성 자체가 하나님과의 조우(遭遇)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고 중재적이고,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라 주장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가능하다.23)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참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인격으로 존재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절대적 연합을 이루고 있다.

구속사 속에서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존재와 활동의 주체가 된다.2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속사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삼위일체적 삶의 역동성을 바라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본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에게 철저히 은혜로운 구주이며 보호자이시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인간됨은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그에 따른 책임성을 가지고 응답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25)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는 스스로의 인격적 책임 안에서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바르트의 이런 인식은 하나님의 인격과 인간의 인격이 자유롭고도 동등한

공동의 참여가 전제될 때 가능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바르트의 신학을 기독론에 기초한 인간학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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