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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法神學

신학적 인간론이란

by 이덕휴-dhleepaul 2018. 5. 17.
                       
- 신학적 인간론이란? -

신학적 인간론이란 과목은 전통 신학에서 물려받은 여러 과목의 폐합정리의 결과로 죄론, 은총론, 구원론을 다루는 것이며, 제목을 풀어 보면 하느님의 입장에서 본 인간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 하느님에 관한 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리스도론을 이어서 신-인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인간론은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연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근본 신인 관계를 결론 내리는 과목이다. 인간들 앞에 서 계시는 하느님을 관상하면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을 살펴야 한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로 계시해 주시면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속량 신비를 중심으로 해서 떨어질 수 없는 신인 관계를 연구하면서 하느님의 거부로 볼 수 있는 죄와 하느님의 환영으로 볼 수 있는 은총 문제를 다루게 된다.

구원사 전체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곡절 속에서 나누어진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화는 인간 측에서 일방적으로 단절되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고 완성되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당신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말씀을 듣고 인간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계시는 신학의 원천인 동시에 인간학의 출발점이다. 이 과목을 겸손 되이 인간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인문과학이 추구하는 확실성을 가질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대 과학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인문과학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서 그렇다. 겉으로 볼 때 우리 과목의 제목을 현대 인문과학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 같지만 우리 역사, 우리 인간 세계에 개입하시는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성서와 교회가 인간에 대하여 할 말이 있다. 사상사를 뒤집어 보면 인간이 애초부터 인간성을 규명하려고 했지만 인간은 우선적으로 자기가 사는 세계를 파악하려 애써 왔다.

현대 과학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천문학이 제일 먼저 발달되었고 그 다음에 물리학, 화학이 구성되었고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인류학, 사회학, 심층 심리학 등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인문과학이 요새 전성기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발달되었지만 철학이 퇴보 상태에 빠진 바람에 인간이 누군가 하는 질문에 확답을 얻기에 무척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에 대하여 적절성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신학적 인간론의 덕분에 우리가 인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본능의 세계 즉 필연의 세계를 떠나서 우리는 인간을 갈망의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제한성에 체념하는 인간은 절대성의 갈망을 포기하는 인간이며 개방과 완성을 거부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주심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신 것이다. 자기 제한성에 만족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거부하든 환영하든 간에 인간은 자유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죄의 원인을 따질 때나 자기 자신을 내놓으신 하느님께 응답할 때나 인간은 자유를 음미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기나긴 역사 속에 벌어진 신인적인 대화를 살펴보면서 인간의 역사성을 이해하게 된다 신학적 인간론은 무엇보다도 결정론을 거부하고 있다. 인문과학의 덕분에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심층심리학적, 생리학적, 사회학적 잠재력을 어느 정도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지만, 인간은 갈망의 존재, 사유의 존재, 역사의 존재로 나타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의미 있는 존재로 나타날 것이다.

신학적 인간론은 인간의 유일한 의미를 제시한다고 자부하지는 않겠으나 가능한 여러 의미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의미를 탐구한다고 자랑할 수는 있다.

신학적 인간론의 특색을 간략하게 나마 살펴보면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인간에 관한 지식 획득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론과 그리스도론에 비해서 신학적 인간론은 다음의 특징을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꾸밀 수가 없어서 성서와 교회 즉 증언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론의 구상에 있어서 계시와 우리 경험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정체를 계시된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각자가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해내신 일에 대하여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신학적 인간론은 계시와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계시와 경험을 같은 차원에서 볼 수는 없다. 계시는 항상 우리 경험의 절대적인 규범이다. 계시 덕분에 우리 생활을 비판하고 교회의 전통과 비교할 수 있다. 경험이 앞서고 있을 경우 성서 이해가 곡해될 수 있다. 계시와 경험의 상호 관계를 잘 묘사해 주는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벌어진 견해 차이이다.

신론과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양측이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만, 인간론에 있어서 엄청난 견해 차이가 드러난다. 서로 다른 경험에서 출발하여 성서마저 다르게 해석하기까지 한다. 인간론의 구성 요소로 인정해야 할 우리 경험은 성서뿐만 아니라 인문과학의 비판도 서슴지 않고 받아야 한다. 인문과학이 인간의 최후 의미를 제대로 제시할 수 없지만 우리 영적 활동의 요소들과 유발과 동기를 잘 분석해 주고 있다. 심층 심리 분석학 덕분에 신학자들이 이제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죄책감과 죄의식을 구별할 줄 알고 사회학 덕분에 사회 제도에 따라 죄의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서 신성화된 사회와 세속화된 사회 사이에 죄의식이 다르고 죄를 상징하는 표현도 다르다. 종교학도 우리의 영적 경험을 비판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죄관이 신관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 사회의 신관에 따라 죄관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영성생활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에게 인문과학이 대단한 충격을 줄 수 있으나 정화하여 수용하는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론의 특색 중에 인간론의 범위를 들 수도 있다. 신론은 모든 과학적 지식의 종합을 지을 주장을 이미 포기한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인간론은 그가 다루는 문제로 보아서 광대한 범위 속에 인생의 기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신-인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개입으로 인간의 입장이 달라졌다. 일반 인간학이 인간의 개방과 “확대”를 거부하고 있지만 인간만이 절대자에 대한 갈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의 개방과 확대를 다루어야 한다. 신-인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론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그리고 인간의 제한성과 개방성을 배려해야 한다.

전통적인 인간론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 문제를 연구해 왔지만 현대 인간론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신-인관계를 따지고 있지만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위주로 하여 즉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신-인관계를 규명하려 해야 한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인간론 문제들 취급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는 데 막상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전 신학을 재구성하는 엄청난 작업이 생기게 되었다.

오랫동안 신론은 절대 상수였고 인간론은 변수였으나 최근에 와서 신론은 변수가 되고 인간론은 상수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면 신론과 인간론의 핵심성을 찾을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인간론을 연구할 때 신학 전체를 재종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에 우리 연구 범위를 확대하는 이유도 있다. 인간론은 일반 인문과학과 같이 발전 과정 뿐 아니라 전 역사 즉 세말론과 시원론까지 다루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원천과 목적을 연구함으로써 인간론은 인간의 포괄적인 의미를 따지는 것이다. 인가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면 자유 문제를 중요시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론 자체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고 각 개인 생활을 건설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인간론 자체가 자아 관여와 책임을 호소하는 과목이다. 자유를 내세우는 철학도 있지만 자유와 자성을 결부시키는 학문은 인간론뿐이다.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8, 36). 父子 관계만이 사람을 낳게 한다.

인간은 항상 누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첫 인간도 하느님의 아들이다(루가3, 28). 부자 관계는 자유를 성립시키는 동시에 인격적인 관계를 수립시킨다. 인격적인 관계는 신앙의 절정을 이룬다. 신앙은 인격체간의 관계를 保障해 주고 하느님께 드릴 유일한 응답이다. 父子관계만이 인간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버지에서 태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다운 존재만이 인생의 원천과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아들다운 존재만이 인생과 죽음을 대면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론이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신-인관계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확정된 성부와의 父子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성이 하느님과의 자녀 관계로 완성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학적 인간론은 현대 인간학이 아예 짊어지지 않으려는 무거운 문제 즉 인생, 죄, 죽음 등을 다루게 된다. 공포와 여러 가지의 제약 속에 사는 현대인들이 그런 근본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전통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이 이 문제들을 극도로 신성화시켰기 때문에 인생과 타?霞求? 그 문제들과 대면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대인이든, 전통인이든 인간이 인생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론은 죄와 은총 문제를 통해서 바로 인생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출처/이덕휴 신학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