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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적극적인 사고를 위한 10가지 비결

by 이덕휴-dhleepaul 2018. 5. 23.

적극적인 사고를 위한 10가지 비결 -"그래도 희망은 있다" 中에서


만리장성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인간의 손으로 쌓은 것이다.


여기에 당신이 따르고 이행해야 할 10가지 원리가 잇다. 이 원리를 무시하면 당신은 결코 무한한 감격과 성취와 성공의 탑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10가지 원리를 '적극적 사고를 위한 비결'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당신의의 생각을 무조건 확대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이 원리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 당신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에 절대로 긍정하지 말라.

2. 당신은 어려운 문제가 포함된 어떤 유익한 생각에 직면했을 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

3.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가능성을 부인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고, 지금은 오직 열쇠만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가능성은 충분하다.

4. 당신은 어떤 일에 대해 실패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결코 계획을 포기하지 말라.

5. 당신은 잠재적으로 어떠한 훌륭한 제안을 거부하는데 결코 참여하지 말라. 물론 훌륭한 제안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6. 당신은 어떠한 일정한 일이나 문제에 대해 지금끼지 어떤 사람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갖지 말라. 남과 비하여 창조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것은 금물이다.

7. 당신은 당신이 개발한 시간과 돈과 두뇌와 정력과 재능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해서 어떠한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하지 말라.

8. 당신은 스스로 불완전하다고 해서 어떠한 계기나 장래의 설계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

9. 당신은 당신이 지금까지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고, 확신도 못 가졌고, 또 거기에서 개인적으로 유익함이 없었다고 해서 어떠한 제안을 거부하지 말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10. 당신은 당신이 밧줄의 끝에 이르렀다고 해서 결코 중단하지 말라. 한 가지 목표가 달성되면 더 높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계속해서 전진하라.

이제 이 10가지 원리를 기억하면서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꿈을 키우기 바란다. 신께서 능히 채워주시는 무한한 꿈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쉬임 없이 전진하기 바란다.



참고 성경 말씀: 빌1:6/2:13, 마5:16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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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착한 일이고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일이 있는가 인간이 착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고작 자기들이 정의 해놓은 도덕적인 것이다. 그런 일과 그런 행함으로 하나님께 칭찬 받고 인정 받으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더럽히는 일이다. 만일 행함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열심을 요구해서 스스로 이루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의 도움은 전혀 필요없고 그렇게 자격을 갖추어서

인정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가 바로 신이 되기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바로 그런 것들을 착한 일이라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행함이라고 가르친다.

 

어찌 이런 기독교를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탄의 회일 뿐이다.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기때문이다

그런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치는 것이며 교육에서도 가르치는 내용이지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착한 일과 행함은 단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바로 착한 일이며 받으실만한 행함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악한 것에서 악한 것이 나오고 선한 것에서 선한 것이 나오는 것이지

악한 것에서 선한 것이 나오거나 선한 것에서 악한 것이 나올 수 없는 이치이다.

 

그것을 좋은 나무 나쁜 나무의 비유에서 나타내듯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면 착한 일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행함이 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그 일이라고 하느냐 하면,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 옛 사람을 부수고 새 사람으로 재창조하시는 그 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성전 짓기 그일이 바로 착한 일이고 행함이시다.

 

우리와 하나님의 연합은 그렇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짓기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 안에 우리가 거함으로 연합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모습이다.

그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새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 일만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시는 착한 일이며 의로운 일이고

거룩한 행함이다. 그일은 우리의 인생 현실에서는 미완이지만 이미 묵시 세계에서는 완성 된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의 마침은 모든 완성의 선언이며 마침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완성 되었으나 아직 이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난과 고통과 괴로움의 삶은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이며 내가 주인 된 삶에서의 구출이며 그 과정에서 오는

잘라냄과 분리 시킴과 찢어내는 것이기에 우리가 힘들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행함이시고 착한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일은 중단 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이루시고야 마시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이다.

이 복음으로 초대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겪는 역사적 인생의 광야 길을 걷게하심으로

너를 낮추고 시험하사 고난의 풀무 가운데 집어 넣고 단련하사 정금으로 나오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정하신 자들을 하나님이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반드시 완성의 길로 가신다는 신뢰와 확신 속에서

그분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로 아무것도 아닌 자로 면목 없어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그분께 맡기고 처분만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이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마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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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착하게 살아서 자신을 선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자 하면 분명 착한 행실은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칭찬을 받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감춰지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악을 감추고 선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곧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 곧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증거이다. 예수님이 그 속에 있는 신자라면 자신이 의롭고 착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증거 하는 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임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또 그래서 더욱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벌거벗고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의로 악을 행하며 세상으로부터 욕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령 테레사 수녀나 김수환 추기경처럼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듣는 일을 행했다고 해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역시 속에 악을 품고 살아가는 악한 자일뿐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의가 아니면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선포하는 것이야 말로 소금으로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자의 착한 행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그 착한 일이라고 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착한 사람이 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증거 한 것이 된다. 자신이 악한 사람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데 악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으로 드러남으로서 예수가 아니라 자기가 드러난 것이기에 착한 행실이 아니라 악한 행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착한 행실은 나는 죄인으로 드러나야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인을 사용해서 우리가 착한 일이라고 하는 그런 일에 사용해주시는 예수님이시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빛이요 소금인 것이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그 어떤 선한 일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어야지 내가 선한 일이라고 여기며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결국 자기가 자기 일 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착한 일이 아니다. 착한 일이라고 하는 개념 정리부터 새로 해야 한다. 착한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일이라고 한다면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일은 악한 일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인간을 사용해서 선한 일을 나타내기도 하신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없다. 그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절대 자기가 했다고 챙길 수 없다. 만일 자기의 기여나 공로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한 일이다. 그 일은 모양은 착한 일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탐심이 들어간 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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