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4:47에 요세의 어머니는 누구며, 요세는 누구
요세의 어머니는 알패오의 부인으로 그 이름이 '마리아'입니다. 알패오가 난 아들중에 작은 야고보[열 두 제자중 하나]와 요세가 있습니다. 예수의 형제로 일컫는 자, 야고보[열 두 제자의 일원이 아님]와 요셉등 네 명이 있는데 그 어머니의 이름도 '마리아'이고 요셉의 부인입니다. '마리아'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물입니다. 열 두 제자중에 세배대의 아들인 요한의 형인 '큰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가 있습니다. '큰 야고보'가 열 두 제자중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야고보가 세 명인데 알패오의 아들[작은 야고보;예수의 제자]가 있고 세베대의 아들[큰 야고보;예수의 제자 요한의 형;예수의 제자]가 있고 요셉의 아들[야고보;예수의 제자가 아님]이 있습니다.
마27: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막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여기에 나오는 "요셉" 혹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인데
막15:40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라고 하였으므로
열두사도 중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입니다.
물론 남편은 알패오
마리아
•성경에는 모두 6명의 마리아와 4명의 야고보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 십자가처형을 목격한 사람은 ①예수어머니 마리아, ②작은 야고보와 요셉어머니 마리아, 세베대 아들의 어머니 (살로메)입니다 [마27:56] (2명의 마리아 + 살로메 이모?).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①그 어머니 (예수 어머니) 와 이모와 ②글로바(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와 ⑤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19:25] (3명의 마리아+ 살로메:이모?)
•막닥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해 앉았다 (마27:6)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작은아고보와 요세의 어머니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15:40)
--다른 마리아은 요셉의어머니/요세의어머니 입니다 (동일인: 1명의 마리아)
•예수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를 친자매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도표엔 없으나 ③요한 마가의어머니, ④로마의 마리아, ⑤막달라마리아, ⑥베다니 마리아가 있습니다 (3명의 마리아)
--베다니 마리아는 십자가 처형장소에 없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막달라마리아와 세베데마리아를 동일인이라 주장합니다.
1.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2. 다른 마리아: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동일인이라는 설)
•다른 마리아는 글로바(알패오)(글로바 참조)의 아내이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였다. (마 27:56, 61; 요 19:25) 성경적 뒷받침은 없지만, 전승에서는 글로바와 예수의 양부 요셉이 형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마리아는 예수의 숙모가 되고 그의 아들들은 예수의 사촌들이 된다.
•마리아는 “예수를 섬기려고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르던” 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분이 못 박히신 것을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작은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 27:55; 막 15:40, 41) 이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그 고통스러운 니산월 14일 오후에 무덤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 27:61) 셋째 날에, 그 두 사람과 그 밖의 사람들은 예수의 시체에 바를 목적으로 향료와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천사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고 설명한 뒤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시오’ 하고 명령하였다. (마 28:1-7; 막 16:1-7; 누 24:1-10) 그들이 가는 도중에, 부활되신 예수께서 이 마리아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마 28:8, 9.
3. 로마의 마리아.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마리아에게 인사를 전하며, 마리아가 로마 회중을 위해 “많이 수고”하였다고 칭찬하였다.—로 16:6.
4.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성경에 그 이름을 남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물론 명단 속에서 그의 온 집안까지 구원으로 인도한 신앙인들이 있다. 그들의 명단 속에서 우리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리아에 대하여 오직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행12:12).
•바나바는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조카였다. (행 12:12; 골 4:10)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의 아들 마가는 사도 베드로와 친밀하게 교제했는데, 이 사도는 마가의 영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베첫 5:13) 베드로는 헤롯의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 집은 틀림없이 상당히 컸을 것이며, 하녀가 있었던 것을 보면 마리아는 부유한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행 12:12-17) 그 집이 그의 남편의 집이 아니라 그의 집이라고 했으므로, 그는 아마 과부였을 것이다 (행 12:12).
5. 막달라 마리아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명의 마리아 가운데 예수님의 사역을 도운 막달라(Magdalene)출신의 마리아를 일컫는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에서 태어난 막달라는 예수님을 만날 당시 일곱 귀신에 들린 채 교향을 떠나 방랑하던 그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한 위기의 상황에서 마리아는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의 자리"에 동참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로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6. 베다니의 마리아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져 있는 베다니(Bethany)는 문둥병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격리되어 사는 강림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이처럼 사회로부터 냉대받은 베다니 마을에서 마리아는 마르다와 나사로와 함께 단촐하게 살고 있었다. 가장 역할을 하던 나사로의 죽음은 마리아게게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비탄에 잠긴 채 눈물을 토해내는 마리아의 호소는 예수님의 마음에 깊 은 감동으로 다가가서 마침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낳았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께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부음으로써 신앙고백을 대신한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마태복음 26:13)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막달라마리아와 베다니마리아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인 중에서 혼돈을 주는 경우로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의 과거 행적이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동일인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인물인지는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1)동일한 사람이라는 견해
•베다니의 마리아는 신약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 ①첫 번째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나온다. 요한복음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②두 번째는 그후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한 때이다 (누가복음 10: 38-42).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한데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들었다는 대목이다. ③세 번째는 베다니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식사할 때이다. 베다니의 시몬은 바리새인으로 나병환자이다. 이때 어떤 죄 지은 여자가 값비싼 향유를 들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엇다는 에피소드가 누가복음 7: 36-50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여자의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것이다. 다만, 시몬의 집에 향유를 들고 간 여자가 마리아라고 정확히 설명한 구절은 없어서 곤혹스럽기는 하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 마태복음 26: 7에는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되어 있으며 마가복음 14: 3에도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여자가 이름없는 '한 여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이며 그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동생이라고 믿고 있다.
•AD 591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연두 설교에서 그만 엄청난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자 이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기 위해 기막힌 술수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즉 베다니 마리아에 대해 성경이 <죄인>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기록한 것을 약간 부풀려서.. 그녀가 사실은 창녀이며 9 가지 죄를 진 큰 죄인이라고 뻥을 쳤습니다.. 이유는.. 큰 죄인인 창녀 마리아도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분히 교육적인(?) 의도로 그리했다네요..ㅠ.ㅠ
•교황무오설을 주장해온 로마가톨릭에서는 오래 동안 세 여자가 실은 한 사람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즉, 나중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까이에 있었으며 예수께서 죽으시자 시체를 장사지내는데 함께 하였고 특히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예수를 장사지낸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 그리고 예수께서 베다니의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에 향유를 가져와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이 실은 같은 여인이라는 것이다.
•1910년에 발간된 가톨릭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리스교회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와 누가복음 7: 36, 그리고 7: 50에 등장하는 ‘죄를 지은 여자’와는 다르다고 설명되어 있다. 누가복음 7: 36 이후에는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7: 50에는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죄를 지은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죄 지은 여자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개신교는 심지어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을 처음 전한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그리고 죄를 지은 여자가 서로 각각 다르다는 주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가깝게 지내셨기 때문에 그냥 관습적으로 마리아라고만 불렀다는 것만 가지고서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죄를 지은 여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상이한 사람이라는 견해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의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막달라라는 마을과 베다니라는 마을은 같은 곳이어야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동편에 있는 어촌은 이스라엘의 북쪽이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6키로쯤 떨어져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데에 있는 마을이다. 동네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따라서 막달라 출신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에 사는 베다니 마리아는 서로 다른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것을 예수님이 낫게 해주신 여인(눅8:2)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예수와 제자들을 따라다니면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던 신실한 여인이었고(마27:56. 61)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맨처음 무덤으로 달려간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죠..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에 들렸던 병력이 있었던 관계로 당시 귀신들렸다는 것은 육체에 병이 들었거나 부도덕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가 창녀였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으나 이는 전혀 근거없는 낭설입니다..
•한편 베다니 마리아는 마르다의 동생이며 병으로 죽었다가 나흘만에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나사로의 누이동생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베다니 마리아가 죄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다니 마리아가 창녀였을거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향유 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두 마리아들은 모두 창녀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셈인데요.. 한 마리아는 귀신 들린 병력 때문에.. 또 한 마리아는 죄인이라고 기록됨으로써 그런 오해를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 마리아가 예수님과 관련 되어있으며 예수님과 여인들 사이에 어떻게 해서라도 뭔가(썸씽) 있었던 것처럼(?) 꾸며내고 싶어했던.. 세상 사람들의 무리한 억측이 다분히 작용한 것이었다고 본 기자는 강력하게 진단합니다..ㅠ.ㅠ
•사건의 개요를 요약해 봤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베다니 마리아이며
-베다니 마리아가 창녀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
-다만 “죄인”이라고 기록한 걸로 봐서 창녀로 추측할 수는 있다는 것..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렸던 여자로서 향유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오해하는 것은 오해 중에서도 엄청난 오해라는 사실...
옥합은 누가 깨었나? (베다니 마리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그냥 한 여자라고만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죄인인 한 여자라고 되어있으며,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누이이며,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가장 정확하게 마리아의 신분을 밝혀주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바로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37에 베다니 마리아가 <죄인>이라고 했는데, 어떤 죄인이었는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여자더러 죄인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창녀가 아니었겠는가 추측할 따름입니다.
•누가복음에서 한 죄인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은 다른 복음서의 향유 사건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는데 그러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래 내용은 모두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눅 7: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향유는 어디에 부었습니까?
•향유를 부은 위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했는데, 예수님 자신은 몸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머리털로 향유가 흐르는 발을 씻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하여 미리 기름을 부었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종합해보면, 먼저 머리에 붓고나서, 발에 부은 것으로 보이며, 발은 향유와 함께 머리털로 씻은 것으로 보입니다. 몸에 부었다고 하는 것은 온 몸 전신에 부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복음서의 기자들이 서로 보는 관점과 강조하려고 하는 핵심이 달랐던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강조하였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하였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인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기자가 무엇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려고 하는 가에 따라 기록상 차이점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머리에도 기름을 부은 사실이 생략되어 있지만 발에 기름을 부은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은 것을 생략하며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을 부각시켰는데, 그 이유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기름을 부어 머리털로 발을 씻어 주었던 여인의 순종과 헌신의 관점을 강조한 것이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하여 기름을 부었다는 관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 메시야라는 단어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은 시편 23편의 성경구절과 연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