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주디스 슈클라(Judith N. Shklar)는 하버드 대학교에서만 35년 이상 봉직한 독일계 유대인 여성으로서, 1992년 사망할 때까지 그 비범한 지성의 폭과 깊이로서 정치철학은 물론이고 법철학에도 큰 족적을 남긴 사상가이다. 1 슈클라가 제창한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Liberalism of Fear)”는 2 자유주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서구 지성계의 하나의 자산이 되어 후학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있다. 3 이 논문은 바로 그의 자유주의 사상의 면모를 간추려 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라고 하면 여전히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상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더욱이 현재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조류 속에서는 ‘다른 자유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구 지성사의 중심에서 면면히 흘러 온 자유주의가 그렇게 편협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들어 자유주의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자유주의의 원류를 구하려는 움직임도 유의할 만하다. 4 아울러 롤즈의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의 의의에 대한 새로운 각성도 움트고 있다. 5
그러한 상황에서 슈클라의 사상은 근대 이후 서구 자유주의 지성사의 요체(이른바 barebones liberalism)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우리 학계의 인식의 지평을 보다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슈클라가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의 가치는 어떤 정치이데올로기나 경제적 기획에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 그것이 자칫 빠지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로부터, 개인, 특히 약한 이들의 삶과 자유를 지켜주는 데에 있다.
슈클라의 사상은 여러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다. “미국의 몽테뉴”라거나(Hulliung, 1995: 167~199) “퓌로닉 자유주의(Pyrrhonic liberalism)”라고 하듯(Miller, 2000: 810-821),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와 낭만적 세계관들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그 회의주의는 곧 이상사회의 열망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상한 것인지에 대한 각성이면서 또 인간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자의식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자유주의는 “디스토피아의 자유주의(dystopic liberalism)” 혹은 "환상이 없는 자유주의(liberalism without illusion)" 6 7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슈클라의 겸허한 방법론은 덕성의 함양을 목표하기보다 악의 회피에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인 정의의 공준을 입론하기보다 부정의에 대한 감시에 비중을 둔다. 이러한 점에서 슈클라는 이사야 벌린(I. Berlin)과 비견되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소극적 자유주의(negative liberalism)로 평가받고 있다. 8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슈클라의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방법의 이면에 놓여 있는 적극적인 가치들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9 이는 특히 슈클라의 후기 저작들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평등주의적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된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민주적 자유주의(democratic liberalism)(Gutmann, 1996: 64~81) 10 혹은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Benhabib, 1996)로 자리매김되기도 한다.
슈클라 자유주의의 다면성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혹자는 그의 감성적이고 심리적이며 정의에 대한 어떤 일반적 인식을 꺼려하는 방법론을 두고 포스트 모던의 정의론을 언급하기도 하고(White, 1991: 123~124), 또 다른 이는 슈클라의 자유주의를 정치제도 이전에 민주적 시민사회에서 요구되는 덕성에 대한 분석으로 이해하여 그의 사상을 시민적 정의감을 보유하면서도 상호 관용과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적당한 거리두기의 “일상의 민주주의(everyday democarcy)”라고 평가하기도 한다(Rosenbaum, 1996: 23~43).
이처럼 슈클라의 사상은 폭넓고, 웅숭깊다. 그것은 또한 그의 문화적 박식함과 놀라운 독서편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11 그가 제시한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서구 지성사의 거대한 뿌리에서 자라난 한 결정체이며, 동시에 그 인생의 경험과 사색의 열매라고도 할 것이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그 첫 번째 저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이후 다양한 지류를 가진 길고도 넓은 강물로 전개되었다.
II.슈클라의 자유주의 사상의 전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생애를 알아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20세기 인류의 야만의 기억이 각인된 결과이며, 특히 그 야만의 역사에 관한 유년 시절의 개인적 체험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슈클라는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서 유복하고 교양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지역은 독일계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곳이 아니었다. 슈클라는 그 곳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딴 곳에 가서 살았으면 하고 바라거나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적대적인 이웃들에 둘러싸인 삶”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Shklar, 1996: 264).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슈클라의 가족은 생존이 걸린 위험한 난민의 대열에 올랐다. 그들은 우선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에 겨우 스웨덴으로 피신하였지만, 다시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면서 더 이상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되돌아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탈출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일본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얼마 전에 겨우 캐나다 행 배를 탈 수 있었으며, 시애틀에 도착하여서는 동양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들의 검색으로 몇 주 동안 감옥살이도 하였다(Shklar, 1996: 264).
슈클라는 이러한 유년시절의 이른바 “초현실적인(surrealistic)” 경험은 그에게 “블랙 코메디”의 취향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는 곧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그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원형질을 형성하는 체험이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은 곧 ‘난민의 자유주의’라고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에는 20세기 인류의 야만과 그에 무력하고 또 그에 일조하였던 정치에 대한 회의가 짙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슈클라가 22세부터 마음에 두었다고 하는, 1957년에 발간된 그의 첫 번째 저작인 『유토피아의 상실: 정치적 신념의 몰락』의 주제이기도 하다(Shklar, 1957). 여기서 슈클라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정치이론”은 죽었으며,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여, 마르크스나 밀에 이르는 위대한 전통”들은 이제 몰락하였다는 사고를 전개하였다(Shklar, 1996: 272). 20세기의 비극의 시대에 모든 이상주의와 사회이론적 열망은 “환멸과 혼돈” 속으로 모두 소진되어 버렸으며, 이데올로기는 극단주의와 사기를 낳을 뿐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12
이로부터 슈클라는 정치철학에서 금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터득하였다고 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 대한 어떤 적극적인 목표설정 혹은 사회의 변형(transformation)의 철학에 대한 경계가 그것이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소극적인 성격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물론 슈클라는 염세주의와 비관주의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문화적 비관주의는 종종 전쟁이나 혁명에 대한 갈구로 터져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슈클라의 염원은 희망과 절망의 과잉으로부터 인간다운 평화질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Lilla, 1998: 6).
그 다음 저작은 1964년에 발간된 『법률주의: 법, 도덕, 정치 재판』이라는 법철학적 논저이다(Shklar, 1986a). 이는 법치주의에 관한 아주 유익한 정치철학적 고찰로서 출간 당시 이미 와인랩(Weinreb)이 서평을 통하여 그 가치를 평가하였을 뿐 아니라(Weinrab, 1965: 1494~1500), 현재도 법치주의의 이념을 성찰하는 데에 한 준거(West. 2003:119~158)가 되고 있다. 13 이 책에서 슈클라는 법학과 법체계는 더 이상 자율적인 존재는 아니고 어떤 정치적인 원리가 그 기초에 내재하여 있다는, 이후 비판법학의 한 특징을 이루기도 하는 명제를 제시하고, 뉴른베르크와 동경재판도 어떤 법률적인 근거가 아니라 결국은 정치적 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14
아울러 이 책에서 이미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핵심이 표출되고 있는데, “핵심 자유주의(barebones liberalism)” 및 “소수자의 자유주의(liberalism of minorities)”의 개념이 그것이다. 즉 슈클라는 “진보를 위한 이론과 특정의 경제적 기획을 포기하고, 오직 관용이 제일의 덕목이며, 의견과 행위의 다양성은 용인되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권장되고 함양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의 핵심이며(Shklar, 1986a: 5), “사회의 다양성과 타인의 자유를 용인하고 권장되어야 하는 까닭은 조직화된 억압이 야기하는 여러 비참함을 피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그러한 자유주의는 “사회의 상시적 소수자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타입”의 자유주의라고 말하고 있다.(Shklar, 1986a: 6) 여기서 이미 자유주의가 최후까지 지켜야 하는, 자유주의자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에 대한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뿌려진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씨앗은 이후 프랑스 근대 정치철학자들의 연구로부터 심화되고 성숙된다. 슈클라가 제일 애착을 느끼던 사상가는 루소이며, 그에 대한 연구는 1969년도 간행된 『인간과 시민: 루소의 사회 이론에 관한 연구』(Shklar, 1985)에 응축되어 있다. 슈클라는 대학 시절부터 루소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비록 슈클라는 『고백록』에 나오는 루소라는 인간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루소의 사상이 자유주의와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었지만, “루소의 지적 명민함에 감탄하였으며, 그를 읽을 때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재교육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슈클라는 루소를 플라톤 이후 가장 강렬한 비판의식의 소유자라고 꼽고 있다(Shklar, 1996: 275).
슈클라의 루소에 대한 애착에서 필자는 그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또 다른 근원을 읽을 수 있는데, 차별과 부정의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바로 그것이다. 슈클라는 루소를 “천재적인 부정의 수집가”이자, “가장 심오한 평등주의 사상가”로 평가한다(Shklar, 1990: 86). 또한 슈클라는 루소를 “인간 마음에 대한 역사가”라고 하기도 하고, “패배자들의 호머”라고도 표현한다. 슈클라는 루소의 이와 같은 특성을 민주주의와 평등의 옹호자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이야말로 루소 사상의 장점이라고 평한다(Shklar, 1996: 275).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색조도 결국은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감상으로 표현해 보자면, 인간의 덧없음과 인간 사회의 비참함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동시에 인간 존엄에 가없는 염원이라고 하고 싶다. 15
슈클라가 루소로부터 권력과 차별의 생리에 관한 인간심리학의 정수를 전수하였고 그로부터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감수성을 체득하였다면, 자유주의적 방법론과 제도적 덕목은 몽테뉴와 몽테스키외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다.
1984년의 저작인 『일상적 악덕들』(Shklar, 1984)은 전적으로 몽테뉴에 헌정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슈클라는 매 쪽마다 몽테뉴의 정신이 스며있다고 고백한다(Shklar, 1984: 1). 이 책에서 슈클라는 몽테뉴와 같이 잔혹함(cruelty), 위선(hypocrisy), 속물근성(snobbery), 배신(betrayal), 인간혐오(misanthropy) 등의 악덕들에 대한 고찰을 행한다. 슈클라는 덕성들을 교시하지 않고, 단지 악덕들을 성찰케 하는 몽테뉴의 에세이 방식에서도 큰 교훈을 얻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몽테뉴로부터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핵심을 체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잔혹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putting cruelty first)” 관점이다(Shklar, 1984: 5).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구상은 “의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야말로 무조건적인 악”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Shklar, 1996: 275). 즉 자유주의는 어떤 적극적인 덕성을 함양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악덕들을 피하는 것을 제일의 과제로 하며, 특히 다른 악덕들보다 잔혹함(cruelty)을 회피하는 데에 그 본질을 둔다는 것이다. 슈클라는 “자유 민주주의는 인류의 완전성을 위한 기획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처방”이라고 말한다(Shklar, 1984: 4).
이러한 자유주의는 권력에 대한 어떤 환상도 품지 않으며, 통치의 권력은 결국 공포와 잔혹함을 가할 수 있는 권력이며, 그 자애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비무장의 민중은 그 권력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즉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의심의 제도화(institutionalized suspicion)”인 셈이다(Shklar, 1984: 238).
그런데 실제 그 제도화를 정치원리의 차원에서 건설해 보인 사람은 바로 몽테스키외라고 할 수 있다. 슈클라가 계몽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사람이 바로 몽테스키외이다. 루소의 감성의 정치철학에서 깊은 인권적 감수성을 전수받고, 또 몽테뉴의 관용과 회의주의 미덕을 그 지적 자양분으로 삼았지만, 그 사상가들은 아직 정치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에 반하여 몽테스키외로 대표되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었다. 슈클라는 말하기를 “그 계몽주의자의 사유들 - 회의주의, 자율성, 개인에 대한 법의 보호, 자유, 그리고 정제된 학문적 탐구 - 이야말로 보다 덜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세계에 대한 최선의 희망”이라고 평가한다(Shklar, 1996: 275). 몽테스키외는 몽테뉴와 함께 인류에 대한 철없는 낙관을 금하는 자유사회의 비전을 공유하지만, 몽테스키외는 잔혹함에 대한 혐오에 더하여 공공의 정의와 정치적 자유가 인간의 가장 최악의 경향을 제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태었다고 평가한다(Shklar, 1984: 34).
몽테스키외의 정치철학에 대한 슈클라의 연구는 옥스퍼드 사상가 열전 시리즈의 하나인 『몽테스키외』(Shklar, 1987)에 정리되어 있다. 슈클라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헌법에 대한 전통적 이념과 근대적 이념들 사이에 가교를 놓음으로써 그는 대륙과 미국에 걸쳐 “헌법의 예언자(oracle)”가 되었다고 평가한다(Shklar, 1987: 11).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슈클라는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를 로크의 자유주의와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자연)권리의 자유주의[liberalism of (natural) rights]와 다르다(Shklar, 1984: 237~238). 물론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권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권리 우선의 정의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만,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에서의 권리란 “공포와 잔혹함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로서 정치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권력의 분산”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즉 권리는 잔혹함에 대한 저항일 뿐, 로크류의 자유주의에서처럼 어떤 다른 형이상학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슈클라는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는 권리(자연권이든 그렇지 않든)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몽테스키외에서 법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모두에게 공포의 족쇄를 풀어주고, 정부가 우리에게 테러를 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유의 의미라고 한다(Shklar, 1987: 238).
이러한 사상의 역정을 통하여 슈클라는 마침내 1989년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자유주의의 요체를 널리 천명하였다(Shklar, 1998a). 16 물론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라는 용어나 그 사상이 여기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앞서 소개한 대로 1984년의 저작인 『일상의 악덕들』에서 그 핵심을 선보였으며(Shklar, 1984), 1986년의 논문인 “부정의, 불법침해, 불평등 : 하나의 시론”(Shklar, 1986b: 13~33) 17에서 이른바 재분배적 정의론의 기획에 맞서 권리(즉, 공포로부터의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이미 성숙된 사상을 전개한 바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입론으로 정치사상가로서의 일가를 이룬 슈클라는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로 자신의 사상을 펼쳐간다. 그의 최후의 두 저작인 『부정의의 얼굴들』(Shklar, 1990)과 『미국 시민성 : 포용의 추구』(Shklar, 1991)는 그 결과물들이다.
『부정의의 얼굴들』의 목적은 슈클라에 따르면 기성의 정의론을 동요케 만드는(unsettling) 것이었다(Shklar, 1996:277). 여기서 슈클라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기성의 정의론이 감당하지 못하는, 또 그러면서도 무책임하게 도외시하고 있는 ‘부정의의 실제’에 다가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시민성』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미국의 역사에서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나를, 투표권(right to vote and to be represented)과 노동권(right to work and to earn)을 통하여 갈파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정치적 혹은 경제적 기획에 소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자격(standing)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III.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특색
1.형이상학이 아니라 정치적인
위의 구절은 주지하듯이 롤즈의 저 유명한 논문 제목이다(Rawls, 1999: 388~414).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상통함을 부각시키고자 일부러 그러한 제목을 뽑았다. 우리는 롤즈 자신이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의 사상으로 슈클라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Rawls, 1996: 374). 18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롤즈의 자유주의가 그렇듯이, 어떤 형이상학적 교리, 즉 포괄적 교리(comprehensive doctrine)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인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란 하나의 정치적 원리임을, 즉 전통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 계시종교나 다른 포괄적인 세계관들(Weltanschaungen)과 같은 삶의 철학이 아닌 정치적 원리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유주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하게 여기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적 자유의 행사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Shklar, 1998a: 1)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잔혹함(cruelty)을 가장 큰 악덕으로 간주하여 그로부터의 해방을 목적으로 할 뿐, “일반적인 윤리적 가르침을 제시하려는 어떤 경향도 회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Shklar, 1998a: 13).
“이러한 규정[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법원리들]은 명백히 칸트의 법철학에 빚지고 있는 바가 있다. 그러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칸트나 그밖의 다른 어떤 도덕철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오히려 얽매임이 없어야(eclectic)만 한다.”(Shklar, 1998a: 12)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로크와 칸트 등의 자유주의의 전통에서 연원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그에 내포되어 있는 근본적 철학적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다만 인류의 역사에 점철되어 있는 고통과 비참을 더 이상 겪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소망에 기초할 뿐이다.
즉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학적 방법론은 정초주의(foundationalism)가 아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권리의 자유주의와 다른 것이다. 슈클라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를 로크의 자연권적 자유주의 및 밀의 자아실현의 자유주의와 분명히 구분짓는다(Shklar, 1998a: 8~9). 슈클라가 로크나 밀에 대하여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그 “두 자유주의의 수호성인들에게는 어떤 절실히 전개된 역사적 기억”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슈클라의 자유주의는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라기보다 역사적이고 심리학적이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인류가 겪었고 또 현재 겪고 있는 명백하고도 커다란 역사적 참극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19
“체계화된 공포는 자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잔혹함을 먼저 고려하는 것’만으로 정치적 자유주의의 충분한 토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현재 자유주의가 세워질 수 있는 광범한 관찰에 기초한 도덕적 직관이자 제일의 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체계화된 잔혹함의 공포는 아주 보편적인 것이어서, 그 금지에 대한 도덕적 요청은 즉각적인 호소력이 있으며 많은 논증이 없이도 충분히 승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Shklar, 1998a: 11)
어떤 특정의 철학적 원리에 기반을 둘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착상은 롤즈의 “자립적인(free-standing) 원리” 혹은 “회피의 방법(method of avoidance)”의 착상과 같다고 할 것이다. 20 비록 후술하는 바와 같이 슈클라의 정의론과 롤즈의 정의론은 그 방법론에서 이질적인 것이지만, 특정의 세계관의 배타적 지배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슈클라도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시민들에게 자유주의적 심리형성에 영향(psychological effect)을 끼칠 수 있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슈클라는 그것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에 수반되는 것일 뿐,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과제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한다. 자유주의는 “교육적인 국가(educative state)”에 반대하는 것을 제일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내의 습관, 절제, 타인의 주장에 대한 경청, 그리고 신중함 등은 개인의 자유와 완전히 합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치로운 성품들을 고무하는 사회적 규율의 형태들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점이 강조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자유주의적 국가가 특정의 성품들을 창조할 것을 목표로 하거나 국가적 신조들을 강제로 시행하려는 교육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Shklar, 1998a: 15)
더 나아가 슈클라는 칸트의 덕론(doctrine of virtue)을 소개하면서, 자유주의의 정치는 도덕적 용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과 같은 덕성을 지닌 시민들의 노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의 완전성의 모델로 간주하여 촉진시키려는 것은 자유주의의 임무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슈클라의 논의가 공동체주의와 낭만주의로부터 “자아(the self)”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어떤 특정의 근원적(irreducible) “자아”에 대한 모색이 아니라, 여러 ‘자아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추구하는 것이다. 슈클라는 오히려 공동체주의 등의 이론이 정치에 적용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공동체의 품 안에서든 혹은 낭만적 자기실현으로써든,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주의적인 사회의 시민들에게 열려져 있는 선택들이지만, 그것들은 비정치적 욕구들이자 전적으로 자아 몰입적 성향이어서, 그것이 정치적인 원리로 제시될 경우에는, 나은 경우라도 사람들을 정치의 과제로부터 무관심하게 만들 것이며, 잘못되면 그리고 안 좋은 상황과 결부된다면, 자유주의적 정치를 심각하게 해치게 될 것이다.”(Shklar, 1998a: 18)
개인적 덕성과 정치적 원리에 대한 구분은 곧 “공과 사(the spheres of the personal and the public)의 구분”을 뜻한다. 물론 그 경계는 유동적이다. 다만 그 구분이 결코 망각될 수 없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Shklar, 1998a: 6). 한 사적 영역이 다른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을 막아 주는 공적인 영역의 중요성, 그리고 그 공적 영역이 오히려 사적인 영역들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절제와 경계의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하자면 자율, 관용, 절제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포괄적 교리는 아니지만, 사실 아주 강한 정치적 혹은 법적 덕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21
이리하여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권력의 절제와 경계에 관한 제도적 원리로 귀착된다. 슈클라는 관용과 자율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토대일지언정, 그 자체를 아직 자유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Shklar, 1998a: 5). 무엇보다, 정부권력에 대한 통제와 순화, 즉 공포와 잔혹함으로부터의 해방의 제도화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슈클라의 정치적인 자유주의는 곧 정부권력에 대한 통제와 법치주의의 확립을 뜻한다.
“제일의 권리는 잔혹함의 공포로부터의 보호이다. 공공의 가장 큰 악덕인 잔혹함이야말로 전력을 기울여 회피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의(혹은 사법제도; 필자 첨언)는 잔혹함, 특히 위협적 수단들을 손쉽게 가장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야기될 수 있는 잔혹함을 통제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 장치들의 그물이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오로지 제한적이며 예견가능한 통치에 그렇게 몰두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다.”(Shklar, 1984: 237)
끝으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두려워하는 권력은 단지 정부만이 아니라는 점이 꼭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말하는 법치주의란 이른바 하이에크류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슈클라가 두려워하는 권력에는 경제적 권력 등 사회적 권력도 해당함을 주의하여야 한다. 물론 슈클라는 소유권의 보장이 사적 영역의 보호와 공적 권력의 절제라는 차원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얘기한다. 그러나 소유권의 무제한한 보장이란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핵심인 “권력의 분산”이라는 관점에서 결코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Shklar, 1998a: 13).
또한 이러한 슈클라의 사상에 대하여 혹시 아나키즘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슈클라 자신도 바로 그런 점을 의식하고 아나키즘과 분명한 선을 긋는다. “가장 열정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들조차도 어떤 비공식적 강제와 사회의 교육적적 압력을 법의 대체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제안하는데”, 자유주의자들은 그 점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법과 정부가 무너져 내리는 사태를 결코 감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슈클라는 “법의 지배는 자유주의의 제일의 원리인데, 아나키즘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Shklar, 1998a: 18).
2. 회의주의가 아닌 지적 겸허
슈클라의 자유주의의 반(反) 형이상학적 반(反) 이데올로기적 특색은 곧잘 회의주의로 평가된다. 사실 슈클라의 자유주의는 종교적 극단주의, 거대담론, 이상주의, 사회변혁의 열정, 낭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은 회의에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그 회의주의는 단지 이상(理想)에 대한 과도한 열정에 대한 경계만이 아니고, 타자(他者)에 대한 어떤 포스트모던적 생소함까지 내포하고 있다. 슈클라는 이미 몽테뉴에서 그러한 요소를 보았다.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에 비하여 또 하나의 순수하게 심리적인 회의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서로 각자에 공통되는 규율을 고안하는 데에 있어 우리가 과연 서로를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심하며, 또 그러한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를 가져다주지 않을지 걱정하는 회의주의이다.”(Shklar, 1990: 26)
이러한 회의주의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부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putting injustice first)"(Yark, 1990: 1103~1120) 슈클라의 정의론의 주요한 특성을 이룬다.
“회의주의야말로 부정의를 온당한 취급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회의주의는 우리의 판단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Shklar, 1990: 28)
그러나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본질을 단지 회의주의에서 구하는 것은 오류이다. 우선 슈클라 자신이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회의주의와 다른 것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회의주의의 지적 유연성은 심리학적으로 자유주의에 보다 적응성이 높으나, 그것이 자유주의 정치학의 필연적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Shklar, 1998a: 7). 슈클라의 회의주의는 이상사회의 낭만적 열정에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정치적 회의주의일 뿐이며, 어떤 불가지론적 회의주의나 혹은 파괴적인 허무주의(nihilism)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슈클라의 회의주의는 우리에게 감춰진 무지(hidden ignorance)를 일깨워(Shklar, 1990: 20), 부정의와 고통스러운 현실의 생생한 리얼리티에 대면케 하려는 것이지, 우리를 인식론적 오리무중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회의주의는 종종 일반적인 인식론적 회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인식 일반에 대한 어떤 특정의 철학적 상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기성의 사회적 믿음들을 단순히 의심해 보고, 비인습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Shklar, 1990: 20)
“그것[정치적 회의주의]은 단지 반성적 독자들에게 부정의의 영역들을 보다 넓게 일깨우고, 인류의 부정의의 거대함을 새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Shklar, 1990: 28)
또한 슈클라의 회의주의가 정치적 원리로 될 경우 자칫 파괴적인 귀결을 보일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테면 니체의 니힐리즘적 정치적 관념들을 열정적으로 밀고 나갈 때처럼,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회의주의자들에 의하여 통치되는 사회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Shklar, 1998a: 7).
따라서 슈클라의 자유주의를 인식론적 회의주의자인 고대 희랍의 퓌론에 빗댄 ‘퓌로니즘’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Miller, 2000), 또 그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회의주의로 보면서, 슈클라의 후기의 사상인 평등주의적 경향은 그러한 전제와 양립할 수 없는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은 너무 고지식해 보인다(Whiteside, 1999: 501~524). 슈클라의 회의주의는 이성의 교만과 정치적 정열에 대한 경계일 따름이며, 그런 한에서 그 회의주의는 그의 사상 편력에서 시종일관하였고, 그의 후기 저작에서 뚜렷해지는 약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도 정의의 권력 혹은 권력의 정의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슈클라가 누구보다도 몽테뉴에 심취하였고, 그의 사상의 원류 가운데 하나가 몽테뉴의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임에는 틀림없지만, 슈클라의 자유주의는 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슈클라 자신이 몽테뉴는 아직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Shklar, 1998a: 5). 슈클라는 그 정치심리학적 측면에서 몽테뉴를 경배하였지만, 그 자유주의의 정치적 성격은 로크 그리고 더 나아가 몽테스키외의 사상의 세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슈클라를 미국의 몽테뉴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 자유주의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치 않다(Hulliung, 1995). 22
요컨대, 슈클라의 자유주의의 소극적 성격은 회의주의가 아니라 지적 겸허(intellectual modesty)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Shklar, 1998a: 8). 슈클라의 회의주의적 측면은 단지 인간의 지적인 한계에 대한 신중함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과거의 고통을 더욱 중시하는 것일 따름이다. 슈클라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표현을 빌어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를 “희망의 당(party of hope)이 아니라, 기억의 당(party of memory)”(Shklar, 1998a: 8)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의 고통은 명확하다는 점에서 슈클라는 오히려 회의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잔혹함을 방지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열망이라는 점에서 슈클라는 절대적인 상대주의도 아니다. 슈클라의 회의주의는 오히려 문학사조인 리얼리즘에 가깝다. 인간의 덧없음, 인류 역사의 야만성, 가엾은 인간들의 속절없는 고통 등을 여실히 그려 보이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슈클라는 또한 이사야 벌린의 철학적 상대주의와도 차이가 있다. 벌린의 상대주의는 다원주의적 도덕원리들 가운데 우리가 어떤 원리들을 필연적으로 선택할 것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슈클라는 그와 같은 철학적인 원리가 없이도 자유주의는 충분히 기능한다고 본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어떤 도덕적 다원주의의 이론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유주의는 어떤 최고선(summum bonum)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최고악(summum malum)을 회피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Shklar, 1998a: 10~11). 23
부연하자면 이러한 슈클라의 지적 겸허는 회의주의나 상대주의의 나쁜 형태의 전형으로 꼽히는, ‘진리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처단하라.’는 빌라도의 사악한 책임방기나, 24 단테가 지옥의 여정을 시작하기 직전 만나게 되는 ‘불명예나 영예로움 모두 피하며 사는’ 그리하여 경멸의 대상밖에 안되는 무소신(Dante, 1993: 56)과는 정반대의 ‘소극주의의 미덕’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소극주의의 미덕은 우리 학계의 심헌섭의 “인간다운 평화질서”(심헌섭, 1984:286)를 희구하는 ‘상대적 상대주의’, 혹은 ‘비판적 실증주의’의 태도에서도(심헌섭, 1984: 275, 287) 발견된다는 점에서 더욱 반가운 것이다. 필자는 일찍이 심헌섭의 정의론에서 그 소극주의적 인식론의 가치를 본 바 있는데(정태욱, 2000c:55~56), 25 그와 아주 흡사한 것을 다시 슈클라의 자유주의에서 목격한 것이다. 혹시 이러한 유사성이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적 지성이 인류 공통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어떤 기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3. 정의 원리의 정립이 아닌 불의에 대한 각성
슈클라의 지적 겸허는 그의 정의론으로 이어져, 서구 정의론사에서 아주 특징적인 면모를 등록하였다. 그것은 바로 부정의에 대한 통찰이다. 슈클라는 정의론의 연구에서 부정의가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함을 개탄한다.
통상적인 정의의 모델은 비록 부정의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정의의 전주곡 혹은 정의의 부정 혹은 정의의 결여로 이해하여, 마치 부정의가 단지 비정상적 특이현상인 양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Shklar, 1990: 17).
슈클라는 부정의를 단지 정의의 부정으로서만 인식하는 것은 진정 부정의의 현실을 감당치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슈클라는 정의를 자연법이나 자연권에서 나오는 원칙으로 보거나, 혹은 합리적 인간들의 선택의 귀결로 이해하거나 또는 문화의 기저에 흐르는 어떤 합의들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는 주류적인 정의의 이론들의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내 얘기는 단지 정의에 관한 통상적인 모델들은 부정의에 대한 적합한 설명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그 정의의 모델들은 근거없는 믿음, 즉 우리가 부정의와 불행에 관한 어떤 정확하고 분명한 구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Shklar, 1990: 8~9)
슈클라는 유한하며 인지적 제약이 있는 인간들이 어떤 일반적인 정의의 원리들을 정립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슈클라는 몽테뉴에 따라서 “우리는 각자 이방인들이며,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무지하다."고 말하고 있다(Shklar, 1990: 27).
"우리의 인지적 빈곤을 고려할 때, 보잘것없는 제도적 장치로 저 광범한 부정의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단지 부정의의 영역을 넓힐 따름이다."(Shklar, 1990: 27)
이러한 부정의의 이론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감춰진 무지를 노출시키고자 하는” 슈클라의 소극주의의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는 단지 소극주의의 미덕만이 아니라 또 다른 적극적인 미덕을 제시한다. 즉 “희생자의 관점에서 보는” 정의론이 그것이다(Yark, 1991: 1334~1349).
"(그 부정의에 관한) 사실과 의미에 있어 단순한 관찰자의 입장에 서거나 또는 그 피해를 회피하거나 혹은 경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는 결코 희생자들과 같은 체험을 할 수는 없다. 희생자들과 똑 같이 체험하기에는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Shklar, 1990, 1)
정상적인 정의의 모델에만 집착하는 경우 희생자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리지 않게 된다.
"단지 일정한 금지규율에 부합하는 희생자들의 절규만이 부정의의 고통으로 간주될 뿐, 그러한 규율에맞지 않게 되면, 그것은 단지 희생자의 주관적인 반응이고 한낱 불운일 뿐, 실제로 부정의한 것은 아닌 것이 된다."(Shklar, 1990: 7)
이렇게 희생자의 관점에서 정의를 봄으로써, 그 동안 정의론에서 거의 진지하게 다루어져 본 적이 없는,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절실한 논점들이 부각된다. “수동적 부정의(passive injustice)”의 개념과 “부정의(injustice)와 불운(misfortune)의 구분”이 그것이다.
수동적 부정의란 적극적 부정의에 대조되는 개념인데, 슈클라는 그 기원을 키케로에로 소급시키고 있다. 이는 우리 법학의 용어로는 “부작위에 의한 부정의”라고 할 만한 것으로, 부정의의 결과를 직접 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를 예방하거나 감경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않음에서 오는 부정의를 뜻한다.
슈클라가 언급하는 여러 예들 가운데 지진의 경우를 보자. 지진은 분명 자연적인 일이고, 그것이 야기된 데에 어떤 부정의를 얘기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으로 희생자들이 감수하여야 하는 불운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한 재앙에 기여한 사람들 그리고 그 피해를 더 크게 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건설시공사가 뇌물을 써서 규정을 어기고 건물을 지었을 수도 있고, 또 기술적으로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지진에 대한 예보가 제대로 안되었을 수도 있고, 공공기관이 재난을 위한 구호체계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 탓에 피해를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Shklar, 1990: 3).
이처럼 수동적 부정의는 주로 부패하고 무사안일에 빠진 공무원의 경우에 큰 문제가 될 것이지만, 슈클라는 그에 그치지 않고 그 범위를 일반 시민들에까지 넓힌다. 즉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민”들을 언급하며 민주주의는 시민적 각성이 없으면 존속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다.
"부정의는 단지 적극적으로 부정의한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저질러지는 불법행위들에 의해서만 창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희생자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수동적인 시민들(passive citizen)도 불평등의 총계에 기여한다."(Shklar, 1990: 40)
“우리가 범죄를 신고하지 않을 때, 어떤 경미한 사기나 절도가 벌어지는 데에 고개를 돌리는 때, 정치적 부패에 눈을 감을 때, 또한 부적절하고 부정의하거나 혹은 잔혹한 법률로 생각하면서도 침묵하며 수용하는 때, 우리는 시민으로서 수동적으로 부정의하다."(Shklar, 1990: 6)
물론 이러한 희생자 우선의 관점은 희생자들을 항상 선한 것으로 보는 나이브한 것은 아니며, 또 시민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미덕”을 법적 의무로 부과하는 도덕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기성의 법체계만으로 충분한 정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보거나, 그저 “인생은 불공평한 것이야.”라는 말을 되 뇌이며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안이한 시민들에게 일상의 민주주의(Shklar, 1990: 43)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다.
이미 시사되었지만, 수동적 부정의에 대한 슈클라의 문제의식은 “부정의와 불행(Injustice and Misfortune)”이라는 편리한 이분법의 위험성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슈클라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부정의들이 단지 불운으로 치부되고 마는가 묻고 있다. 역사적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도 예전에는 단지 자연적인 불행으로 간주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예전에는 불운으로 여겨졌던, 영아사망과 기아도 이제는 그것이 주로 공적 체계의 부패와 무사안일에서 빚어진다는 점에서 부정의라고 말한다(Shklar, 1990: 5).
물론 슈클라 자신이 부정의와 불운에 대한 명백한 구분선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슈클라는 다만 “부정의와 불행의 구분은 결국 정치적 선택의 문제”일 수 있음(Shklar, 1990: 5)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불운이라고 치부되는 것 속에 얼마나 많은 부정의가 들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로 희생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 체제가 참을만한 것인지는 거기서 희생을 겪을 가능성이 가장 큰 이들, 그 사회의 권력으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이들에게 물어보아야만 할 것이다."(Shklar, 1998a: 17)
이러한 슈클라의 정의관은 곧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핵심을 말해준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생활의 기본 단위는 논의하고 성찰하는 개인들도 아니며, 적과 동지의 구분도 아니며, 애국적인 전사들도 아니며, 열정적인 권리 투쟁자들도 아니며,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다.”(Shklar, 1998a: 9)
이 짧은 문장에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사상의 요체가 집약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부연이 허용된다면,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롤즈나 하버마스와 같은 이성적으로 성찰하고 토의하는 개인들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칼 슈미트와 같이 어떤 정치적 편가름과 패권을 추구하는 이론은 물론 아니며, 또 고전적 공화주의의 이상처럼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만이 인간다움의 징표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현대 법치주의가 흔히 그 때문에 조롱을 받듯, 권리를 위한 투쟁을 장기로 하는 법적 소송에 능한 개인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슈클라는 정의의 그늘이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면서도 그 부정의에 대하여 표현할 줄도 모르는 그리고 그러한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도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낮은 곳으로 임하여 작은 목소리를 청취하려는 연민의 표현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미 언급되었듯이 슈클라 자신의 초기의 표현처럼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이며, 또 그가 구분한 “로크의 강자의 개인주의”와 “루소의 약자의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후자의 것이다(Shklar, 1985: 41; Kateb, 1998a: xvii). 호프만은 슈클라가 루소를 “패자들의 호머”라고 한 것에 기대서, 슈클라의 자유주의를 “패배자들: 가난한 이들, 버려진 이들, 노예들, 미국 흑인들, 난민들, 그리고 부정의와 무관심의 모든 희생자들의 관점”으로 말하고 있다(Hoffman, 1996: xxiii). 필자의 축약이 허용된다면, 이는 곧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자유주의’일 것이다.
4.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우선성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슈클라의 자유주의에 뚜렷한 평등주의적 정조를 입힌다. 그리하여 슈클라의 자유주의는 결국 사회민주주의로 귀결된다는 많은 지적이 있어 왔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특히 벤하비브와 월저, 그리고 굳만 등이 그에 해당한다. 사실 슈클라가 하이에크 식의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최소정부를 요구하는 경우, 단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불운으로 치부되고 마는 부정의의 범위는 그 만큼 더 넓어진다."(Shklar, 1990: 117)
"비활동적인 정부는 힘없고, 취약한 이들을 그들의 운명에 그저 내맡겨 놓는 가혹한 일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에 관한 부정의를 아주 확대하여 법원에의 접근권, 법률 서비스, 경찰의 보호 등을 거의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Shklar, 1990: 118)
이미 언급한 대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두려워하는 권력은 단지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경제적 권력 등 사회적인 것도 포함된다. 월저가 얘기한 대로 슈클라의 자유주의의 “자유주의적(liberal)”인 가치는 자유주의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그렇게 하여 될 “자유주의적 자유주의”란 바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거부하는 의미를 담게 될 것이다(Walzer, 1996: 24).
그러나 그렇다고 슈클라가 재분배적 사회민주주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재분배적 정의가 전체적인 여건을 호전시킬 수는 있을 것이지만, 분배적 정의 26는 무엇보다 그 후견주의적(paternalistic) 성격으로 말미암아 조심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무능력한(incompetent) 존재로 간주될 수 있고(Shklar, 1990: 119), 그로부터 오히려 부정의의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슈클라는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분배적 정의의 구호인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눈다.”는 규정을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정부가 규정하는 각자의 필요의 몫에 따라 지급한다.”고 해석하면서, 그것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회의하고, 나아가 그것은 민주적 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Shklar, 1986b: 23).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어떤 사회경제적 기획을 논하기 이전에, 어떠한 국가권력이든 그것의 획일적이고 오만한 행사가 정치적 혹은 사회적 약자의 존엄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핵심은 여전히 우리 법학도에 친숙한 적법절차 및 죄형법정주의이다.
"잘 규정된 절차들, 정직한 판사들, 자문과 청원의 기회들이 없다면, 누구도 기회가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 상호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 이상으로 범죄를 확대해서도 안 된다."(Shklar, 1998a: 18)
물론 슈클라의 법치주의가 보호하는 권리란, 단지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개인의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슈클라가 이른바 ‘저항의 표현’으로 말하는 권리란 “어떤 근원적(fundamental)이며 생래적인(given)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리란 “단지 시민들이 권력의 남용과 일탈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자격이자 권능일 따름이다.”(Shklar, 1998a: 19)
"권리란, 인습의 억압, 혁명 통치, 전쟁, 군부 쿠데타 등, 고통의 절규조차 침묵케 만드는 폭력의 공포에 대한 표현이며, 헌정질서의 책무란, 권력의 남용과 일탈로부터 가장 연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the most feeble and helpless among us)을 보호하는 것이다."(Shklar, 1986b: 25)
이러한 기초적인 권리는 그 체제의 사회경제적 기획이 어떻든, 혹은 정치적 목표설정이 어떻든 관계없이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즉, 그렇게 모든 가엾은 이들의 보편적인 분노의 표현으로 이해되는 권리는 어떤 분배적 정의에도 앞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러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자유주의적인 정치사회를 간단히 묘사하자면, “권리들의 제도화와 권력분립으로 이루어지는 다원적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가 민주주의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슈클라 얘기대로 자신의 권리들을 주장하고 지킬 수 있는 충분히 평등한 권력이 없이는 자유는 단지 희망사항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 민주주의와 공정하고 독립적인 그리고 접근이 용이한 사법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다양한 단체들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충실하고도 항구적인 일부일처 혼인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Shklar, 1986b: 25)
이렇듯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는데, 묘하게도 슈클라는 위의 문장에 이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다만, 일종의 “정략결혼(marriage of convenience)”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벤하비브나 굳만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에 의한 결합일 수밖에 없다고 좋게 해석한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헌정질서로 제도화된다면 그것은 민주적 기본질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진단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선해가 혹시 슈클라의 예민한 뉴앙스를 너무 접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필자로서는 슈클라가 아마도 민주주의적 제도의 오용과 한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민주적 제도라고 인정할 수 있는 곳에서도 공무원들에 의한 권력 남용과 일탈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어떤 민주주의적 절차와 제도도 항상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잔혹함을 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하고, 공포의 공포를 이해해야 하며, 그것들이 도처에 편재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Shklar, 1998a: 19)
나아가 앞서 수동적 부정의의 논의에서도 보았듯이,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일상의 민주주의까지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민주주의는 우선 제도적인 민주주의의 결함을 치유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각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단지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만은 아니라고 할 때, 그 일상의 민주주의는 어떤 공동체이든 위계적이며 차별적인 곳에서 야기될 수 있는 모든 전제적 경향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열한 자와 열등한 자들이 확고하게 구분되고, 우월한 자들이 열등한 자들의 처지로 떨어질 염려가 없는 곳에서는 가혹한 폭력은 손쉽게 발생한다.”(Shklar, 1986b: 31)
요컨대 우리가 사회민주주의를 이른바 시혜적 혹은 권위주의적 재분배의 정책으로 이해하고, 민주주의를 단지 제도적 형식이나 절차만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그와 거리를 둔다. 아니 그러한 사회민주적 체제에서 수반될 수 있는 또 그러한 민주적 절차에서 오히려 가려질 수 있는 권력의 일탈과 남용을 우선 걱정하는 것이다.
IV.맺음말
슈클라의 자유주의는 대체로 보아 롤즈의 그것과 같은 범주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27 하버드의 명물(institution)인 슈클라와 하버드의 성인(saint)인 롤즈, 이 두 자유주의 사상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립하는 세계관과 상충하는 이해관계들의 평화 공존과 적정한 타협,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이 겪을 수 있는 차별과 고통에 대한 규탄과 정의의 회복이 그것이다.
필자에게 그들의 사상에 대한 탐색은 자유주의에 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28 그것은 또한 시장경제에 대한 교조적 신봉과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중과의 연대에 대한 히스테리를 자유민주주의의 본질로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우리 헌법현실 29에서 귀한 체험이기도 하였다.
필자는 이 두 사상가의 자유주의로부터, 한편으로는 하이에크는 물론이고 로크 등의 자유주의만이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맥퍼슨 30이나 칼 폴라니 31 등의 비판으로부터 자유주의를 구원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종래의 비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꼈다.
아울러 슈클라와의 만남은 필자가 연전에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기대어 개진한 바 있는 민주헌정질서의 진보적 가치에 대한 믿음(정태욱, 2002b: 55~72)을 보다 깊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보적 가치는 어떤 사회경제적 기획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슈클라의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민주헌정질서 자체에도 존재한다. 특히, 가장 규범적인 것, 즉 가장 올바른 것을 진보라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32 모든(단지 정치적 권력만이 아닌) 권력의 일탈과 남용을 제어하고,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공포를 ‘권리’로서 희석시켜 주는 것을 진보적 가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다른 측면에서 말해 보면, 우리 민주적 헌정질서가 진정 자유주의의 가치에 충실하려면 그러한 진보적 가치를 멀리할 수 없다는 뜻이 될 것이다. 즉 우리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우리 사회의 ‘레 미제라블’에게 어떤 위안이나 안식을 주지 못한다면, 그러한 자유주의의 해석은 오류이며, 그렇게 된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명예롭지 못할 것이다.
-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슈클라에 관한 논의를 본 바가 없다. 이는 특히 그와 인생역정이 유사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우리 학계의 관심과 열정과 비교할 때 심한 불균형으로 여겨진다. 슈클라에 대한 이러한 ‘부당한 홀대’는 미국의 경우에도 비슷하였던 모양이다. 슈클라의 오랜 친구이자, 하버드의 저명한 국제관계 사상가인 스탠리 호프만은 그가 한나 아렌트에 비견되는 통찰력 있는 사상가이며 또 동료 교수였던 존 롤즈 그리고 수 십 년간의 지기였던 마이클 월저(M. Walzer)에 못지 않은 풍부한 정치철학자였다고 하면서, 슈클라에 대한 밀도있고 광범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Stanley Hoffman, "Judith Shklar as Political Thinker", Bernard Yack 편, Liberalism without Illusions: Essays on Liberal Theory and the Political Visions of Judith N. Shklar(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83쪽. 1992년 작고한 이후 슈클라는 비로소 학계의 정당한 관심과 상찬을 받았다고 할 것이다. 슈클라의 제자였던 버나드 약은 스키너, 월저 등을 비롯한 저명한 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추도논문집(Bernard Yack 편, 위의 책)을 펴냈고, 스탠리 호프만과 데니스 톰슨은 슈클라의 주요 논문들을 두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였다. 그 하나는 정치사상 일반에 대한 연구논문들의 모음인 Judith N. Shklar(Stanley Hoffman 편), Political Thought and Political Thinkers(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지성사에 대한 논문 모음으로서 Judith N. Shklar(Stanley Hoffman/Dennis F. Thompson 편), Redeeming American Political Thought(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이다. 추가하자면 슈클라는 하버드에서도 아주 신망이 두텁고, 명망이 높았던 것 같다. ‘슈클라 저작들과 인격에 대하여 압도되지 않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스탠리 호프만의 일종의 추모사[Stanley Hoffman, "Editor's Preface by Stanley Hoffman", Judith N. Shklar(Stanley Hoffman 편), 앞의 책(Political Thought and Political Thinkers), xxi-xxvi쪽]에는 그에 대한 절절한 상찬이 가득할 뿐 아니라, 역시 하버드 같은 과에 있는 버코비츠도 또한 슈클라에 대하여 “학계를 너머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하버드의 명물(institution)이었으며, 정치학과 정치이념의 연구에서 대단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고, 난해한 이슈의 핵심을 뚫는 그의 능력은 눈부실 정도였으며, 그의 지식의 범위는 경악케 할 정도였으며, 다른 한편 말꼬리 잡는 문제제기에는 전혀 재주가 없었고, 거칠고 고압적이며 성마른 수사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Peter Berkowitz, "Fear and Thinking", New Republic, 제219권 2호, 1998. 7. 13, 34쪽. 그리하여 버코비츠는 슈클라는 ‘유명인은 사랑을 받든가 아니면 두려움을 느끼게 하든가 둘 중의 하나’라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틀린 것임을 입증하는 인물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본문으로]
-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사상은 Judith N. Shklar, "Liberalism of Fear", Judith N. Shklar(Stanley Hoffman 편), 앞의 책(주 1)(Political Thought and Political Thinkers), 3-20쪽의 논문을 통해 널리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그 논문은 원래, Nancy Rosenbaum 편, Liberalism and the Moral Life(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9), 21-38쪽에 실린 것이었다. Liberalism of Fear의 번역이 어려웠는데, 고민 끝에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라고 해 보았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창한 4대 인권에서 착안한 것으로서, 정확하게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라고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주지하듯이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의 와중에서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4대 인권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염원을 선언하였다. 필자는 법질서의 관점에서는 이 가운데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of fear)를 핵심적 인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보았다. 즉,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그 신앙과 발언에 어떤 공포가 결부되지 않을 때 비로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며,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도 식량에 대한 접근과 그에 대한 노력이 어떤 공포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을 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슈클라의 Liberalism of Fear는 바로 그와 같은 인권 사상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본문으로]
- 대표적으로 Jacob T. Levy, The Multiculturalism of Fear(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본문으로]
- 보다 오래된 것으로 노명식,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 : 그 비판적 연구』(민음사, 1991)을 꼽을 수 있고, 최근의 것으로는 이근식/황경식 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 자유주의의 의미, 역사, 한계와 비판』(삼성경제연구소, 2001) 및 같은 편저자들, 『자유주의의 원류 : 18세기 이전의 자유주의』(철학과 현실사, 2003)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 롤즈의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지만, 단행본으로는 장동진,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동명사, 2001)과 염수균, 『롤즈의 민주적 자유주의』(천지, 2001)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 Seyla Benhabib, "Judith Shklar's Dystopic Liberalism", Bernard Yack 편, 앞의 책(주 1), 55-63쪽. 이 논문은 원래 Social Research, 제61권 2호, 1994년 여름 477-488쪽에 실린 것이다. [본문으로]
- 이는 B. 약이 편찬한 슈클라의 추도 논문집의 제목이기도 하고, 또 그가 그에 서문으로 쓴 논문의 제목이기도 하다. Bernard Yack, "Liberalism without Illusions : An Introduction to Judith Shklar's Political Thought", Bernard Yack 편, 앞의 책(주 1), 1-16쪽. [본문으로]
- 슈클라와 벌린에 대한 비교로서는 Mark Lilla, “Very Much a Fox", TLS, 1998. 3. 27, 6-7쪽 및 Richard E. Flathman, ”Fraternal, But Not Always Sisterly Twins: Negativity and Positivity in Liberal Theory", Social Research, 제66권 4호, 1999, 겨울, 1137-1142쪽 참조. [본문으로]
- 대표적으로 Michael Walzer, on Negative Politics", Bernard Yack 편, 앞의 책(주 1), 17-24쪽. 월저는 슈클라의 소극적 자유주의는 전제(專制)를 막는 성채라고 비유하며, 그것은 결국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에 대한 해명이 없이는 온전한 정치이론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피력한다.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가 그 본질을 다만 소극성에서만 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떤 정치체제에서라도 소망되는 바의 권력의 남용과 일탈을 제어하는 의미에 국한 될 것이라고 한다. 즉 그 리버럴한 가치는 ‘자유주의적 군주제’ 혹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월저는 슈클라의 최후의 저작이자, 동시에 바로 자신에게 헌정된 것이기도 한 Judith N. Shklar, American Citizenship: the Quest for Inclusion(Cambridge, Mass., Londo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에서 강조되는 투표권과 노동권을 거론하며,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는 결국 사회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본문으로]
- 굳만은 슈클라의 자유주의가 초기의 소극적 자유주의(negative liberalism)에서 적극적인 자유주의로, 즉 민주적 자유주의(democratic liberalism)로 이행해 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본문으로]
- 슈클라가 남긴 유일한 자전적 기술인, “배움의 삶”은 “나는 책벌레다.”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또 끝난다. “A Life of Learning", Bernard Yack 편, 앞의 책(주 1), 263-280쪽. [본문으로]
- 혹시 이러한 슈클라의 입장을 동 시대 다니엘 벨 등이 얘기한 “이데올로기의 종언” 등과 같은 사상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에 대한 자세한 지적으로는 Mark Hulliung(1995: 169) [본문으로]
- 이 책의 저술의 동기는 원래 20세기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가 수년 간 법철학에 대하여 강의를 한 계기로 그 소재가 뉴른베르크와 동경재판이 된 것이라고 한다. J. Shklar, 앞의 글(주 16), 274쪽. 필자의 추측으로는 슈클라가 법철학의 강의를 하게 된 것은 그의 은사인 Carl Joachim Friedrich의 강의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칼 프리드리히 역시 정치사상가이면서 법철학도 아울러 연구하였다. 그의 법철학 저서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다음과 같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황산덕/안해균 공역, 『서양법철학사』(법문사, 1960) 및 이병훈 역, 『역사적 관점에서 본 법철학』(교육과학사, 1996). [본문으로]
- 이 책에 나타난 바와 같은 법치주의에 대한 슈클라의 관심과 그 사상의 기조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Judith N. Shklar, “Political Theory and the Rule of Law", Stanley Hoffman 편, 앞의 책(주 1), 21-37쪽. 이 논문은 원래 A. Hutchinson and P. Monahan 편, The Rule of Law(Toronto: Carswell, 1987), 1-16쪽에 실린 것이었다. 첨언하자면 슈클라가 법치주의를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법치주의에 대한 정치적 정당화의 필요성이 반드시 그에 대한 탄핵으로 귀결될 일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정치성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슈클라의 자유주의의 핵심에는 오히려 법치주의가 자리하며, 결국 그는 누구보다도 법치주의에 대한 강력한 정치철학적 옹호를 하는 셈이다. 슈클라는 그 회고의 글에서 이 책을 가장 아낀다고 하였으며, 그 책의 논지가 당시에는 법학계의 격분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진부한 상식이 되어버렸다고 쓰고 있다. J. Shklar, 앞의 글(주 16), 275쪽. [본문으로]
- 참고로 얘기하면, 루소에 이어서 슈클라는 헤겔의 사상을 천착하여, 『정신현상학』에 대한 논저를 간행한다. Freedom and independence : A Study of the Political Ideas of Hegel's Phenomenology of Mind(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가 그것이다. 슈클라는 지성사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헤겔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하며, 불완전한 인식들의 상호 변증법적 운동이 집단적 정신의 총체성을 형성할 것이라는 헤겔의 역사철학에 공감을 표한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첨언하자면, 슈클라는 헤겔 독해의 어려움도 고백하고 있다. 정신현상학의 난해함과 5년간 씨름하였으며, 헤겔의 논리학은 결국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슈클라는 하이데거의 저작에 관하여는 너무나 많은 구절들이 자신에게는 그저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밝히고도 있다. 이러한 진솔한 고백에서 필자는 슈클라의 자유주의적 덕성의 체취를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히려 그의 지적 자신감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J. Shklar, 앞의 글(주 16), 276쪽 [본문으로]
- 이 논문에서 슈클라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요체를 간명하면서도 집약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비판에 대해서까지 답을 주고 있다. 스탠리 호프만은 그렇게 짧은 분량으로 그만큼 많은 사상을 담은 논문이 또 얼마나 될까 하고 찬탄하고 있다. (Hoffman, 1996:91), "Judith Shklar as a Political Thinker", [본문으로]
- 이 논문의 중요성에 비추어, S. Hoffman이 편집한 슈클라의 논문집인 앞의 책(주 1)(Political Thought and Political Thinkers)에 이것이 빠진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로는 Levy(2000: 23 각주11) 참조. [본문으로]
- 롤즈는 슈클라와 아울러 Charles Lamore를 꼽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Bruce Ackermann과 Joshua Cohen도 언급하고 있다. [본문으로]
- 이러한 주장은 자칫, ‘사람은 잔혹함을 싫어하고 그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적 본능이 있으며, 그로부터 당위가 도출된다.’는 식의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슈클라도 자신의 입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오류를 넘어서는 보편적 규범성이 갖추어져야 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와 당위의 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은 분명치 않아 보인다. 위의 글, 11-12쪽. 한편 이와 관련하여 벤하비브는 ‘현상학적 접근’을 언급하고 있다. [본문으로]
- 이와 관련하여 롤즈의 이른바 정치적 선회(Political Turn)에 대하여는 정태욱, “롤즈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법철학 연구, 제4권 2호, 2001, 136-142쪽 참조. [본문으로]
- 덧붙이자면, 필자는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관하여 이러한 정치의 개념을 우리나라 판문점을 빗대어 ‘공동경비구역(JSA)’이라고 표현해 본 적이 있다. 즉 정치의 규범적 의의를 사회적 제 세력과 가치관들의 대립과 다툼으로 침해될 수 없는 공존과 관용의 영역이면서, 서로가 존중하여야만 하는 상위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구한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정태욱, 앞의 글(주 61), 142쪽. [본문으로]
- Hulliung 자신도 그에 대한 주의 환기가 있음은 물론이다. [본문으로]
- 한편 벌린의 다원주의 및 그의 두 자유의 개념에 대한 논의로는 안준홍, 『이사야 벌린의 두 가지 자유개념에 대한 연구』(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참조. [본문으로]
- 빌라도의 회의주의와 그에 반대되는 레싱의 나탄(Nathan)의 활동주의적 불가지론에 대한 훌륭한 대비는 Gustav Radburch(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75), 43쪽. [본문으로]
- 여기서 필자는 소극주의적 미덕을 “가치인식의 절대화를 반대하여 적극적인 가치판단은 자제하되, 일정한 범위와 경계를 가지고 소극적인 반가치판단은 견지하는 입장”으로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극적 인식주의를 켈젠류의 비인식주의 혹은 메타윤리적 상대주의와 구분하여, 인식의 한계와 타인에 대한 겸허를 뜻하는 ‘규범적 상대주의’로 평가하였다. 한편 그 글에서 필자는 “그러한 주장들(적극적인 정의론)은 자칫 현실의 부정의의 문제의 소재에 대한 적절한 파악이 결여된 결과 비현실적인 구호에 그치거나 혹은 자신의 정의기준과 원칙에 따르지 않으면 모두 부정의인 것으로 치부하는 편협성과 독선으로 인하여 부당하고 위험한 배타성을 빚어낸다. 바로 여기에 심교수와 같은 소극적 인식주의는 그 빛을 발한다.”(같은 글, 56쪽)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곧 후술하는 바의 슈클라의 정의론에 적용한다고 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심헌섭의 소극주의적 인식론은 자유에 관한 그의 본격적 논문인 “법과 자유 - 법가치로서의 자유에 관한 한 고찰”, 『법학(서울대)』, 제42권 4호, 2001, 1-26쪽에서도 견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그 논의는 “법가치로서의 자유의 의미, 그 분배원리 및 한계설정의 규준” 등 자유에 대한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그러한 노력의 근저에는 “최대평등의 자유원리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절대악과 같은 것이다. … 따라서 자유원리의 절대적 설정은 적극적으로가 아니라 ‘소극적으로’ 그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같은 글, 26쪽)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소극주의적 인식론이 깔려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 슈클라는 이 distributive justice라는 용어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그 대신 차라리 기초적 정의(primary justice)라는 용어를 쓰겠다고 한다. [본문으로]
- 본문에서는 양자가 그 ‘정치적’ 자유주의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고, 다른 부분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슈클라의 자유주의와 롤즈의 자유주의는 아주 밀접하며 상보적이다. 예컨대 공과 사의 구분이라는 명제가 양자의 정치철학에 관통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롤즈의 ‘자유의 우선성’은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의 착상에서 그 절실함을 더할 수 있을 것이며, 슈클라의 ‘패배자들의 자유주의’는 롤즈의 ‘최소수혜자의 이익으로’라는 차등의 원리로부터 그 적극적인 실현방향에 대한 시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사상가들의 비교를 위해서는 또 다른 논문이 필요할 것이다. [본문으로]
- 롤즈의 자유주의의 덕목을 슈미트의 권력적 헌법이론과 비교하여 분석한 필자의 연구로는 정태욱, 『정치와 법치』(책세상, 2002), 특히 60쪽 이하. [본문으로]
-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적 의미를 그렇게 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우리 헌법상 자유주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정종섭, “자유주의와 한국 헌법”, 이근식/황경식 편, 앞의 책(주 4), 279-312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첨언하자면, 정종섭의 헌법적 자부심, 특히 “종래 자유에 대한 많은 철학적 논의와 윤리학적 논의들은 우리 헌법에서 이렇게 정치한 구조를 가지고 보장되어 있다.”(같은 글, 286쪽)고 하는 자부심은 정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더 나아가 “사실 철학이나 윤리학 또는 정치철학 등에서 논의되는 원론적인 논의들의 많은 부분은 우리 헌법 하에서 새삼스럽게 따로 논의할 실익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합성을 지니는 논의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같은 곳)는 주장은 20세기의 하나의 야만의 역사이기도 한 우리 헌정사에 비추어 너무 안이하게 느껴진다. 그에 반하여 일찍이 국순옥이 제시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 “자유로운(free democracy)”의 구분은 주목할 만하다. 전자는 전통적인 부르주와 민주주의를 말하며, 후자는 자유주의적 전통을 파괴하는 파시즘적 형태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이 오히려 독재에 복무한 역사가 오래지 않은 우리의 경우 이러한 구분을 선명하게 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물론 그러한 사상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 수 있다. 국순옥과 슈클라의 사상적 지향은 같지 않지만, 양자 모두에서 그러한 구분은 도출될 수 있다.)는 여전히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유로운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이다. 그것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호전적 공격성이다.” 혹은 “이 같은 반자유주의적 호전적 공격성은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내용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부정의 논리로 나타난다.”는 등의 국순옥의 주장은 우리 헌법학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사상적 논의가 필요한 까닭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며, 그러한 관점은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주의의 사상에서도 터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C. B. Macpherson(황경식/강유원 공역),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박영사, 2002), 한편 맥퍼슨에 대한 슈클라의 비판은 J. Shklar, 앞의 글(주 2), 6쪽. 여기서 슈클라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자유주의의 효시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곧 사회계약론이나 혹은 반(反)가톨릭적 사상이면 모두 자유주의와 등치시키는 것일 될 것이라고 말한다. 레오 슈트라우스도 또한 그 비판의 대상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본문으로]
- 폴라니의 여러 저서가 번역되어 있으나, 대표적으로는 K. Polanyi(박현수 역), 『거대한 변환 :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민음사, 1996). 그리고 폴라니의 자유주의 비판에 대한 논의로는 “칼 폴라니와 자유주의 비판”, 이근식/황경식 편, 앞의 책(주 4), 341-362쪽. [본문으로]
- 이에 관하여는 “진보적인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이 진보적인 것이다.”라는 강경선의 명제를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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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anachist.tistory.com/entry/쥬디스-슈클라의-자유주의liberalism-of-fear [GERECHTIGK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