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위하여
설교 188
성 어거스틴
(1)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시며, 사람의 생명과 빛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인간의 배려와 인간의 말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그 안에 세우셨으며 그와 동등하시고 함께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나타내 보이는 도구로 정하신 바 되었거늘 아직 보지 못하는 그에게 어찌 우리 혀가 합당한 예를 드릴 수 있으리요 만일 죄악이 깨끗하여지고 연약함이 나으며 깨끗하면 ,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복되다? [1] 1 내가 말하노니, 이제 그에 대하여 무엇인가 말할 우리를 있게 하신 그 말씀을 하신 그 말씀을 말할 만한 말을 우리가 찾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우리의 마음은 생각하고 형성된 후에 말을 존재하게 하지만 우리의 마음 자체는 말씀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도 말을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자신이 말씀을 통해 만물을 만드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분의 유일한 말씀을 낳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으셨으나, 낳으신 분과 낳으신 분은 하나이시며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동안 세상은 지나갑니다. 비록 만들어진 이 것들이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만물을 지으신 분은 아무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상하지 않다,
(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 때문에; 우연히 그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적절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 또는 혹시라도 그분이 뵙고자 하신 곳에서 그분에 대해 만족스럽게 논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분께서 친히 사람들이 이야기하게 하신 세대인 동정녀에게서 태어나도록 정하신 이 날을 경축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3] 하나님이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그 영원 속에서? 엄숙한 축하를 위해 구별된 그러한 날은 영원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승 없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설정 없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이요 빛이신 하나님의 독생하신 말씀은 참으로 영원한 날이시되 이 날에 그가 사람의 육체와 결합하여 말하자면 '신랑이 신부에게서 나오는 것'이 되셨다. 챔버' [4] 4는 우리의 오늘이고 내일이 어제가 되는 것처럼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오늘은 동정녀에게서 나신 영원한 날이 이 날을 봉헌했기 때문에 동정녀에게서 나신 영원한 날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시간을 지으신 이가 시간 안에서 사람이 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는 어떤 찬양을 하고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세상보다 더 오래된 그분의 영원 속에서 세상의 많은 그분의 종들보다 나이가 열등하게 되셨다는 것; 사람을 만드신 분이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친히 만드신 어머니 안에서 지으셨고, 그분이 만드신 손으로 안으셨으며, 그분이 채우신 젖가슴에서 양육되었습니다. 벙어리 유아기의 말구유에서 그가 없이는 모든 인간의 웅변이 벙어리 통곡하는 그 말씀이?
(3) 사람이여,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어떻게 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교사가 제시한 탁월한 겸손의 교훈을 이해하십시오. 한때 낙원에서 [5] 당신은 모든 살아있는 것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웅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당신의 창조주께서는 말을 못하고 누워 계셨고 어머니의 이름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순종을 소홀히 함으로써 당신은 비옥한 과수원의 길 없는 손길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분은 순종으로 죽음으로써 죽은 여러분을 찾으시려고 매우 좁은 필멸의 영역으로 오셨습니다. 당신은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이 되고자 하여 스스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오직 신성한 겸손만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깊이로 당신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구세주를 낳은 날을 기쁨으로 기념합시다. 거기에서 결혼한 사람은 결합의 창조주와 동정녀, 처녀들의 왕자를 낳았습니다. 남편에게 주신 이는 그 남편이 아닌 어머니니 이는 그가 혼전과 혼인 중에 처녀이요 아이를 밴 때와 그 아이를 젖먹일 때도 처녀였음이니라 그녀의 전능하신 아들의 탄생은 그분께서 인성을 취하심을 생각하실 때 친히 선택하신 거룩한 마리아의 순결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산은 결혼 생활의 축복이지만 거룩함의 성실함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어머니에게 두 가지 특권을 모두 제공할 수 있었던 인간 그리스도(그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신이셨기 때문에)는 어머니에게 더 좋은 선물을 빼앗아 갈 정도로 아내가 기뻐하는 축복을 결코 어머니에게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녀들은 모성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동정녀인 거룩한 교회는 오늘 동정녀의 잉태를 경축합니다. 교회에 대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6] 청년과 처녀뿐 아니라 기혼 남녀를 포함하여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면서 순결한 처녀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믿음, 희망, 사랑의 온전함을 언급하지 않는 한 왜 이것이 반복됩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중심에 순결을 세우시려고 마리아의 몸에 먼저 순결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먼저 동정녀의 아들을 자신이 주어질 배우자로 찾지 않는 한 동정녀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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