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신)과 함께 가라>(Go with God)는 제목의 독일 영화(Vaya Con Dios)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수도사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경험하는 방향 정위(Orientation), 곧 하나님을 향하는 삶을 인생의 방향으로 확실하게 정하고 그 자리를 지켜가는 삶의 모습과 방향 상실(Disorientation), 원 방향으로의 복귀(Reorientation)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상으로 설정한 칸토리안 교단은 ‘성령은 소리이시니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를 규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당신만이(Tu solus)’라는 곡은 오직 주님만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창조주이자 구세주이시며 돌아갈 곳이기에, 인생 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전 과정에 오직 주님만이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섬김의 대상이라고 고백하며, 절대적인 삶의 기준과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단에서 파문당한 이 칸토리안 교단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단 두 곳의 수도원만을 두고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독일의 수도원에는 수도원 원장과 예수회 출신의 벤노, 농촌에서 살다 14살에 수도원에 들어온 타실로, 그리고 갓난아이 때 이곳에 맡겨진 아르보, 이렇게 4명이 함께 살면서 수도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 삶의 방향을 정하고 수도사로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의 삶에 어느 날 위기가 닥쳐옵니다. 아침 미사를 드리던 중 들이닥친 빚쟁이가 수도원 원장에게 3주 안에 수도원의 빚을 갚으라고 통보하고, 그 충격으로 원장 수도사는 죽음에 다다르게 되면서 목에 걸고 있던 소리굽쇠를 가장 나이가 어린 수도사인 아르보의 목에 걸어주면서 그 교단의 보물인 교황 우르반의 규범이 담긴 교단 종규 집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도원 원장이 없는 상황에서 아르보와 벤노, 그리고 타실로라는 세 명의 수도사들은 갑자기 만만치 않은 세상에 던져진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원장 수도사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 종규 집을 챙겨서 이탈리아로 가기 위한 길을 떠나게 되는데, 함께 길을 나선 세 명의 수도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모두 주저앉아 버리고 말게 됩니다.
이탈리아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자, 30년 전 집을 떠나서 수도원에 들어왔던 타실로는 노모가 살아계신 지 자기 고향 집에 잠깐 들려 확인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30년 만에 노모를 대면한 타실로는 혈육의 정 앞에 흔들리게 되고, 이탈리아로 가는 여정에서 벗어나 노모 곁에 남게 됩니다.
걸어서 여행을 막 시작할 때 도로에서 만났던 여 기자 키아라의 도움으로 기차역에 도착한 벤노와 아르보는 기차를 바꿔 타는 방법을 몰라 중간 기착지에 내려 길거리에서 초라하게 밤을 새우게 됩니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있던 벤노를 그의 예수교 신학교 동창인 클라우디우스가 발견하고는 그를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신학교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그의 동창은 이들을 척결해야 할 이교도로 여기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황 우르반의 규범집을 노립니다. 동창의 꼬임에 넘어간 벤노는 여정을 포기하고 아르보와 함께 신학교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 사이 고향 집 노모 곁에 주저앉아 버렸던 타실로는 일반인의 삶에서 수도사의 삶으로 되돌아오고, 연락을 받고 온 키아라와 타실로와 아르보는 벤노가 주저앉아 있었던 신학교의 미사에 참석하게 되는데, 미리 반주자에게 미사에 예정된 찬송가 대신 세 수도사에게 익숙한 찬송가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연주에 맞춰 타실로와 아르보가 찬송가를 부르자,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공명되지 않았던’ 인위적인 반주소리와 타성에 젖은 찬양소리는 사라지고, 맑고 깊게 울려 퍼지는 찬양 소리에 마음이 ‘공명’한 벤노 역시 동창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함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아르보의 도움으로 규범집을 가지고 주저앉았던 신학교에서 무사히 나오게 됩니다.
그들이 부른 찬송 ‘당신만이’라는 찬송의 역사적 배경은 잔혹했던 30년 전쟁(1618~1648)으로, 독일을 무대로 신교(개신교)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입니다. 이 찬양의 성서적 배경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으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입니다. 일반인의 삶과 지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이끌려서 원래의 방향에서 흔들려서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버렸던 이들 세 명의 수도사들이 그렇게 이런 저런 욕심에 이끌려서 흔들리던 삶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감동적인 거룩한 결단의 순간에 부르는 이 찬송이 의미 깊게 들립니다.
젊고 순박한 수도사 아르보와 사랑에 빠졌던 여 기자 키아라는 수도사의 길을 존중해 그를 떠나고, 아르보 역시 마음을 돌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세 수도자는 목적지인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이탈리아로 떠나가고 나서, 언젠가 젊은 수도사에게서 건네받아서 자신이 간직하고 있었던 소리굽쇠를 자신의 가방에서 발견한 여 기자 키아라는 자신의 아르보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탈리아의 수도원으로 소리굽쇠를 우편으로 보냅니다.
한편, 이탈리아 수도원의 수도사들과 함께 ‘당신만이’를 찬양하던 중 소리굽쇠를 전달받은 아르보는 자기가 사랑했던 여 기자 키아라를 만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나고, 벤노와 타실로는 슬픔과 결연함, 그리고 거룩함이 버무려진 표정으로 눈물을 참으며 ‘오직 주님만이 돌아갈 곳입니다.’라고 찬양합니다.
‘성령은 소리이시다.’라는 그 교단의 신조처럼 원장이 목에 걸고 있던 소리굽쇠는 수도사들이 성령의 소리를 따라 함께 공명하면서, 그들을 본래의 방향으로 이끄는 상징입니다. ‘소리굽쇠(tuning fork)’는 고유한 진동수의 음을 내기 때문에 악기를 조율할 때, 혹은 기준 음을 내는 도구로 사용되는데, 신기한 것은 소리굽쇠가 울릴 때 주변에 있는 같은 진동수의 물체는 함께 공명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 기자 키아라를 향해 떠난 젊은 수도사 아르보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승화되어, 다시 원래의 방향을 찾기 원하는 마음 깊은 곳의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간 생사를 모르던 노모가 홀로 사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아들로서 어머니를 돌보고 싶어서 어머니 곁에 주저앉았던 타실로의 마음, 궁핍한 수도원에서는 채울 수 없었던 지식욕을 모든 것이 갖추어진 신학교에서 마음껏 충족시키고 싶어서 친구의 권면에 슬쩍 그 욕심이 이끄는 대로 신학교라는 현실에 주저앉았던 벤노의 소망,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아닌 어려서 그에게 주어진 길이었던 수도원에서의 삶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이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던 아르보의 외침은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는 당연한 삶의 욕구일지 모릅니다.
수사 벤노가 아르보에게 한 말, "하지만, 우리는 이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누구나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선다.";;;;;;;;'dhleepaul
타실로의 혈육에 대한 애틋한 정과 벤노의 음악에 대한 지식욕, 그리고 아르보의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방향 이탈’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15~23) > 주일 낮 예배 설교문 | 왜관감리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영화 내용을 세심하게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위의 말씀과 함께 설교하신 말씀 내용도 유익하고 은혜받았습니다. dhleepaul.
영화vdo는 이 웹사이트의 '영화모음' 참조.
교황 우르바노 2세(라틴어: Urbanus PP. II, 이탈리아어: Papa Urbano II)는 제159대 교황(재위: 1088년 3월 12일 - 1099년 7월 29일)이다. 본명은 오동 드 라주리(프랑스어: Odon de Lagery)이다.[1][2]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을 계획했으며, 오늘날 로마 교황청 조직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3]
우르바노 2세
'홈지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lerance - 허용오차 또는 배려 (0) | 2023.03.27 |
---|---|
미리엘 주교의 설교- 레 미제라블 (0) | 2023.03.24 |
세계 교회 협의회와 국제 시민 사회. (1) | 2023.03.19 |
무상을 넘어서 (0) | 2023.03.18 |
천국에 가는 사람에 관한 7개의 구절 (0) | 2023.03.07 |